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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오세(5,500만년 전~3,400만년 전): 현세의 새벽
팔레오세 후기의 메탄 대방출로 에오세 초기는 별안간 더 따뜻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실 지구 전체가 진짜 온실상태가 되었는데, 신생대 그 어느 때보다도 온도가 높아서 백악기에 가장 온도가 높았던 시기만큼 따뜻했다고 합니다. 현재 에오세의 온실조건을 설명하는 기체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메탄입니다. 확실히 팔레오세는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방출되면서 종말을 맞았습니다. 이산화탄소와 달리, 메탄은 열대지방에서 뚜렷한 온도 상승을 일으키지 않고도 극지방을 따뜻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대기 중의 메탄은 극지방의 성층권에서 렌즈처럼 두꺼운 얼음구름의 형성을 촉진합니다. 이 시기의 식물과 동물의 생육상태 등은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51쪽에는 앞으로 읽어도 우영우 뒤로 읽어도 우영우 변호사가 가장 관심을 가진 포유류 고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포유류의 해양침공이 최초로 일어난 시기는 에오세 초기였다고 합니다.
에오세 초기의 지구는 백악기 이래 가장 따듯한 시기였지만 올리고세 초기가 되자, 빙하가 다시 남극을 뒤덮었고 지구 전체가 ‘냉동실’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오세 초기에는 해저의 평균 온도가 섭씨 13도 정도였다가 점차 하강해, 올리고세 초기에는 지구 전체적으로 심해의 수온이 섭씨 0도에 가까웠고 남극에는 빙하가 형성되었습니다. 지구가 온실에서 냉동실로 바뀐 이유를 설명하는 것 중 제가 관심이 갔던 설명은 ‘확장 속도 가설’이었습니다. 해저 확장 속도가 빨라지면 맨틀에서 이산화탄소가 다량 배출되어 온실조건이 나타나고, 반대로 해저 확장 속도가 느려지면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줄어들고,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풍화에 의해 점차 토양에 흡수되어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지구의 광물 속에는 엄청난 양의 물과 이산화탄소가 저장되어 있다는 얘기를 전에 들었던 적이 있어서 이 가설에 눈이 더 갔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한랭화는 열대와 온대 바다에 살던 엄청난 수의 생물종에서 멸종이 일어나고, 해양 동물상이 근본적으로 재편된 신생대의 가장 극심한 이러한 멸종 사건은 1980년대의 주장처럼 ‘에오세 경계 사건’이 아니라 에오세 중기가 끝날 무렵의 한랭화와 함께 발생했다고 합니다.
올리고세(3,400만년~2,300만년 전) : 빙하기 찾아오다
올리고세를 요약하면, 올리고세 초기의 해양 생태계에서는 에오세 중기만큼 극심한 멸종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특히 열대와 온대의 날씨에 적응한 분류군이 사라졌고 차가운 날씨에 적응한 분류군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올리고세 초기의 후반이 되자 해양 생태계는 에오세 때보다 더 다양성이 훨씬 낮은 수준으로 안정화되었고, 그 후로 혹독한 추위가 이어졌던 올리고세 내내 이렇게 종수가 감소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위의 지질시대 구분표, 올리고세의 주요 사건에는 생물계의 사건으로 ‘대간극’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대간극이란 에오세와 올리고세의 동물상의 차이가 큰 것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대간극 동안 동물상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긴 했지만, 이런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갑작스러운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예전 동물들을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식물상 분석을 통해 드러났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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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R. 프로세로 저/김정은 역 의 공룡 이후 -신생대 6500만 년 포유류 진화의 역사-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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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세(1만 년 전~ 현재): 우리의 간빙기
지질학자들은 지난 1만 년 동안의 기간을 홀로세(또는 현세)하고 부르면서, 신생대의 독립된 시기로 다룹니다. 사실 이 시기는 플라이오세와 플라이스토세의 전반적인 특징인 10여 번의 빙기-간빙기 주기 중 그저 하나의 간빙기일 뿐입니다. 홀로세 초기의 해양과 육상에 살았던 대부분의 동식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그러나 많은 종들이 지난 수 세기 동안 빠르게 사라졌지요)
1만 년 동안 이어진 홀로세 간빙기에도 기후는 다양하게 변해왔습니다. 지난 1만 년 동안의 기후 주기에 포함되어 있는 소규모의 온난기와 한랭기들은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최근까지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인류 역사는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지구의 기후변화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 같은 운 좋은 기후사건이 없었다면, 인류는 결코 선사시대의 수렵-채집 사회를 벗어나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문화가 인간 지성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하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지만, 지구의 역사를 보면 이 역시 좋은 조건을 만난 덕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었습니다.
고생물학자들은 지난 4억 5,000만 년 동안 다섯 번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홀로세의 최근 수 세기 동안, 지구에서는 과거에 일어났던 멸종 사건들보다 더 규모가 큰 대멸종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리처드 리키와 로저 르윈은 이를 ‘여섯 번째 멸종’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도 없는 곤충 몇 종이 사라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지만, 그 영향은 먹이사슬 전체에 미칩니다. 우리가 세계 야생 동식물의 멸종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이들 생명체들이 세상에 존재할 권리가 있고 도덕적, 철학적 이유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현실적 이유도 있습니다. 해마다 우리는 야생 동식물에서 신약을 비롯해 여러 가지 중요한 쓰임새를 찾아내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열대우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연구를 통해 유용성을 발견하기도 전에 열대우림의 파괴와 함께 이런 종들이 파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지구가 따뜻해진다고 그리 나쁠 것은 없어 보이지만, 지구의 온난화는 수많은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합니다. 극지방의 빙모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여 전세계 저지대와 해안지대가 거의 전부 물에 잠겨 인간 문명의 상징인 도시가 기능을 상실합니다. 다른 전망도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사실상 다음 빙하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홀로세의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끝은 너무 더울 수도, 또는 너무 추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지는 인구 조절과 경제 문제에서 얼마나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지, 그리고 우리로서는 불가항력인 지구 자체의 변화에 달려있습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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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오세(500만년~180만 년 전): 변화하는 세계
플라이오세는 매우 짧은(?) 시대라 한 장을 온전히 할애할 가치는 없지만, 그러나 최후의 온화한 시기였던 마이오세 후기와 플라이오세 초기를 거쳐 북극 최초의 빙하가 형성되고 빙하기가 시작되었던 플라이오세 후기까지, 플라이오세는 중요한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메시니안 사건 이후, 세계는 여러 면에서 바뀌었습니다. 마이오세 말의 한랭화 후에 대부분의 대양에서는 수온이 회복되었고, 플라이오세 초기는 산소 동위원소 곡선으로 볼 때 더 따뜻해진 시기였습니다. 플라이오세 초기의 온난화를 일으킨 원인에 관해서는 지금도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결국은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늘어났느냐는 설명이겠지요.
플라이오세 말에 우리와 같은 사람속에 속하는 유인원이 최초 등장합니다. 아프리카에서 플라이오세에 살았던 원인은 거의 수십 종이나 발견되지만, 마이오세에 대단히 높았던 유인원의 다양성은 사라져 현존하는 대형 유인원의 계통만 살아남았습니다.
플라이스토세(180만 년~1만 년 전): 빙하시대
표석이란 ‘돌아 다니는 바위’란 뜻을 가진 큰 돌입니다. 과거 ‘제3기’라고 알려진 지층이 노아의 홍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던 대부분의 당시 지질학자들은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바위들인 표석을 놓고 고민에 빠집니다. 이들은 표석이 노아 때, 홍수의 엄청난 위력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졌지만 스위스의 젊은 고생물학자인 루이 아가시가 1837년 7월 뇌샤텔에서 열린 스위스 자연과학학회에서 ‘빙하시대’(아이스차이트Eiszeit)가 있었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홍수와 노아의 배는 사라졌습니다.
빙하가 남긴 퇴적층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자, 지질학자들은 아기시의 주장처럼 빙하기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럽 어떤 곳에서는 크게 다섯 개 이상으로 구분되는 빙하 퇴적층이 차례로 쌓여 있어서, 최소 다섯 번의 빙하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했습니다.
지질학자들은 빙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나타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라는 문제에 직면하였고 여러 의견이 제시됩니다. 의견들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1864년에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인 제임스 크롤(James Croll)이 내놓은 개념입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인 위르뱅 르베리에(Urbain Leverrier)의 계산에 따라, 크롤은 태양의 주위를 도는 지구 공전 궤도의 형태(지구의 이심률離心率)가 약 10만 년을 주기로 원형에 가까운 모양에서 좀 더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으로 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전궤도가 타원형일 때는(이심률이 클 때는) 빙하기의 조건이 나타나고, 원형에 가까울 때는 간빙기가 된다는 것이 크롤의 생각이었습니다. 크롤은 지구가 겨울철에 받는 태양빛의 양이 결정적 요인일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공전궤도의 이심률이 더 클 때는 겨울철에 태양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지고, 그로 인해 겨울이 될 때마다 더 춥고 눈이 많이 내려 빙하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크롤은 우주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는 지구의 다른 주기, 공전 궤도면에 대한 지구 자전축에 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는 일정한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24.5도에서 21.5도까지 가팔라졌다가 완만해진다며 이렇게 지구 자전축이 서서히 변해 주기가 완성되기까지는 약 4만 1,000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현재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황도 경사)는 23.5도입니다. 그 결과 북극권(북극점에서 위도가 23.5도 안에 있는 지역)에서는 북반구가 겨울일 때는 6개월 동안 밤이 계속되고, 여름일 때는 6개월 동안 낮이 계속됩니다. 남반구는 그 반대가 되지요.
1976년에 페이스메이커 논문이 발표된 후, '궤도변화이론'은 많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기체가 태양 복사량의 변화로 나타나는 기후 주기를 변형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후 모형들이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느리게 변화하는 거대한 빙상은 더 느린(그러나 태양 복사량의 변화가 적은) 이심률의 10만 년 주기에 주로 반응했습니다.
기후가 추워지면 동물의 진화는 몸집이 커지고, 근육량이 많아지도록 게다가 두터운 털로 덮이도록 진화를 한다고 합니다. 플라이스토세의 포유류 중에는 거대동물이 많았습니다. 체온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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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오세(2,300만년~500만년 전): 사바나 이야기
신생대에서 두 번째로 긴 세인 마이오세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였습니다. 지구의 기후는 끊임없이 요동쳤고, 올리고세 말의 극심한 추위와 마이오세 초기의 따뜻한 시기를 거쳐, 마이오세 중기에는 오늘날 남극에 있는 빙모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중위도 지방에서는 기후의 한랭화와 건조화가 최고조에 이르러 사바나 초원이 형성되었습니다.
신생대 초기에 일어났던 모든 대륙의 분리와 해저 확장과는 대조적으로, 마이오세의 특징은 지각판의 충돌과 조산운동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인도양의 심해로 퇴적물이 유입되는 속도를 확인하면, 마이오세 중기에 인도와 아시아의 충돌이 끝나고 히말라야 산맥의 융기가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융기가 활발한 풍화작용을 일으켜 대기 중에 있는 여분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했고, 지구의 한랭화 경향이 강해지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마이오세 초기에는 또 다른 특별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오세 초기 이래로 가장 규모가 컸던 대륙 간 포유류의 대이동입니다. 추측건대, 베링 해협으로 이어지는 길이 어느 방향으로나 날씨가 온화하고 식물이 풍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사이를 쉽게 오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각변동으로 이동하기가 더 쉬었던 육로가 형성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질시대 거의 대부분의 기간에 남극은 얼어 있지 않았습니다. 남극은 페름기(2억 9,000만~2억 5,000만 년 전)에 빙하가 형성된 것이 있었지만, 중생대에는 대체로 냉온대 기후를 유지했음이 풍부한 식생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온화한 기후는 신생대 초기에도 지속되었고, 약 4,900만 년 전인 에오세 중기가 되어서야 빙하 형성의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남극에 큰 빙하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올리고세 초기였으며, 올리고세 중기에 한 차례 새로운 빙하가 형성되었고 올리고세-마이오세 경계에서도 한 번 단기적인 빙하 형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이오세 초기와 중기에는 기온이 상승했고, 그 결과 뉴질랜드에서는 다시 산호초가 자랐으며 남극점과 가까운 곳에도 따뜻한 물에 사는 플랑크톤과 연체동물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남극이 온화했던 시절은 마이오세 중기에 영원히 끝납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어떻게 줄어들었는가를 설명하는 가설들이 맡고 있습니다.
현재의 아프리카 동부 사바나는 마이오세 후기의 온대 지방과 건조한 열대 지방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서식지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이야기입니다. 지중해는 바닥을 드러냈다가 엄청난 물이 밀려들어 다시 채워지는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는 설명이 그것입니다.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 사이에 있는 메시나 해협의 암석이 그 증거라고 합니다. 지중해가 바닥을 드러내면 침식이 일어나고 지브롤터 해협에 나이아가라 폭포의 10배가 넘는 거대한 폭포가 형성되고, 대서양의 바닷물이 다시 지중해로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었고, 이런 반복 작용이 40번 넘게 반복되었다는 설명이 그것입니다. 책을 보시고 놀라움을 확인하세요. 이 사건이 ‘메시니안 염분 위기’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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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오세(6500만년 전~5500만년 전): 용감한 신세계
신생대가 시작될 무렵의 지구에서 곤드와나 초대륙을 형성했던 남반구의 대륙들은 백악기 중기나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부터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백악기 후기에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온 인도는 인도양을 가로질러 빠르게 돌진하고 있었고, 결국 아시아의 아랫부분과 충돌해 히말라야 산맥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륙이 이동하고 해수면의 높이에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팔레오세의 기록은 특정 지역에서만 퇴적되고 잘 보존되었습니다. 이들 지역을 조사한 기록들을 토대로 우리는 팔레오세의 기후와 생물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하지만 따분하긴 합니다. 대강의 내용만을 문단별로 끊어서 쓰윽 일별 하는 독법을 권합니다. 모든 장에서의 설명이 비슷한 방법이므로 일별 하는 독서법을 나무랄 수 없다고 믿습니다)
K/T사건으로 인해 플랑크톤의 생산성과 해저의 생태적 다양성이 일시적으로 억제되고 암모나이트처럼 중생대에 번성했던 일부 종이 멸종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해저생물의 생태적 관계가 재배치되지는 않았습니다.
팔레오세 초기에는 연평균 수온이 섭씨 8~10도 정도로 약간 따뜻하다가 팔레오세 중기 이후에는 온도가 약간 낮아졌습니다. (이것은 해저 온도입니다. 심해저는 계절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10분의 1도 이하의 변동을 보일 정도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심해에서 몇 도의 차이가 난다는 것은 해수면 위, 육상에서는 훨씬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팔레오세 후기에는 온난화 경향을 되찾아, 평균 온도가 섭씨 11도로 높아졌습니다. 이는 전세계 대양에서 얻은 수백 개의 심해저 코어와 현재는 융기되어 육상이 된 일부 해성층에서 나온 유공충 껍데기를 통해서도 산소와 탄소 동위원소의 자세한 기록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 기록들은 모두 비슷한 경향을 나타냅니다. 이런 심층수의 온난화 현상의 이유는 1990년 후반에 등장한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해양지리학자들은 오늘날 심해 퇴적층 사이에 있는 공극 속에 엄청난 양의 탄소가 메탄(CH4, 천연가스)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메탄은 얼음분자 결정구조에 둘러싸여 복합체를 형성하는데, 이 복합체를 메탄 하이드레이트 또는 메탄 클래스레이트라고 부릅니다. 이 복합체가 따뜻해진 날씨로 인하여 녹으면서 엄청난 양의 메탄 방출을 촉발시켜 해수면에 이르러 공기 중으로 나온 뒤에 온실기체로 작용해, 지구 전체의 기온이 갑자기 상승하는 초온실효과를 일으켰을 것으로 설명합니다. 팔레오세가 따뜻해진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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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종 사건(백악기-제3기 멸종을 중심으로)
지층이 화석 기록에 따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라는 세 개의 시대로 구분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고생대 말기에 일어난 페름기 대멸종으로 지구상에서는 당시 생물종의 95퍼센트가 사라졌습니다. 이 대멸종으로 인해 트라이아스기에는 그 전과는 대단히 다른 해저생물이 나타났고, 판이하게 다른 모습의 중생대 동물상이 형성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생대와 신생대도 백악기-제3기 멸종이라는 두 번째 대멸종으로 경계가 나뉩니다. 이 사건을 줄여서 K/T라고 부릅니다. K는 백악을 뜻하는 독일어 크라이데(Kreide)에서 따온 것입니다. T는 제3기를 의미합니다.
K/T는 공룡이 멸종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공룡 멸종에 초점을 맞춘 주장들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백악기 말기에 일어난 대멸종은 지구 전체에 걸쳐 먹이사슬의 위아래에 있는 생물들이 모두 사라진 사건입니다. 따라서 먹이사슬의 토대(바다의 플랑크톤, 육상식물)가 붕괴된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공룡 같은 동물에 일어난 일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곧바로 공룡에만 초점을 맞춘 설명은 완전히 논점을 벗어나게 됩니다. 백악기의 멸종은 지구 전체적으로 벌어졌던 현상이고, 공룡의 멸종은 큰 그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떤 이유로 대멸종이 일어났는지 그 주장을 보겠습니다.
첫째, 6,500만 년 전에 우주공간에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떨어지면서 공룡 시대가 갑자기 종말을 맞았다는 가장 대중적인 설명입니다. 이것을 충돌가설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있는 칙술루브라는 지역에 깊이 15-20킬로미터, 지름 170킬로미터가 넘는 크레이터를 남긴 운석이 지구에 충돌했다는 가설입니다. 충돌의 충격으로 거대한 지진해일이 일어나고, 충돌 지점에서는 운석 자체로 인해 100세제곱킬로미터의 암석 파편이 100킬로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대부분은 곧바로 떨어졌지만 미세한 먼지 같은 일부 파편은 몇 달 동안 공기 중에 머물러 지구를 핵겨울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 당시의 지구는 기온이 어는점 근처까지 떨어지고 광합성이 일어나지 않아 육지와 바다에 사는 대부분의 식물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충돌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인 산성비가 내리면서 더 많은 식물과 대부분의 육상동물이 죽었다는 것이지요.
1978년 이탈리아 아펜니노 중부에 위치한 구비오 인근의 두터운 석회암층을 조사하던 버클리 대학의 지질학자 월터 앨베르즈(Walter Alvarez)가 백악기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진흙층 표본을 채취하고, 핵화학자인 프랭크 아사로(Frank Asaro)와 헬렌 미셀(Helen Michel)이 이 표본에서 희귀한 백금족 원소인 이리듐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분석했고, 엘버레즈의 아버지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 루이스 앨버레즈(Luis Alvarez)는 이 이리듐을 외계 유입의 증거로 제시하고 1980년에 소행성-충돌 시나리오를 내놓았습니다.
둘째, 인도 서부와 파키스탄 남부에 걸쳐 뻗어 있는 데칸 고원에서 일어났던 화산활동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1980년 루이스 앨버러즈의 주장을 의심했던 과학자들은 이리듐의 첫 발견 이후 2, 3년 안에 이리듐은 전세계 해양뿐 아니라, 해양의 화학적 농축 과정이 일어날 수 없는 곳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983년 한 무리의 과학자들이 또 다른 사건을 찾아낸 것이 바로 화산활동이었습니다. 화산활동으로 대규모의 용암 분출이 일어나면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대기 중으로 쏟아져 충돌가설에서 예측한 것과 거의 비슷한 핵겨울 효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 번째 전지구적 사건이 있습니다. 백악기 말에는 해수면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져 그 결과 해안선이 물러나면서 해양생물의 주 서식지였던 대륙붕이 대부분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이 세 가지 사건의 상대적 중요성을 밝히는 최선의 방법 역시 화석기록 자체에서 나온 직접적인 증거를 살피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은 생물은 무엇이고, 상대적으로 영향을 적게 받은 생물은 무엇일까? 멸종은 점진적으로 일어났을까(용암 분출이나 해수면 하강이 주요인일 가능성이 커집니다), 아니면 갑자기 일어났을까(충돌가설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화석 분포를 살펴서 생물들이 백악기 말기에 갑자기 사라졌는지, 아니면 점진적으로 사라졌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화석기록은 지구상에 살던 모든 생명체의 모습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화석이 될 확률은 아무리 후하게 잡아도 1펴센트를 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상에 살았던 종의 약99퍼센트는 한 번도 화석화된 적이 없습니다. 결국 지층에 나타난 화석의 밀도로 점진적인 멸종인지 파국적인 멸종인지를 평가하고자 할 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과연 공룡은 멸종했을까요? 1960년대부터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이 고생물학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공룡이라고 알고 있는 거대 생물은 멸종했는지 몰라도 공룡의 후손은 현존하고 있으며, 그 후손이 바로 조류라는 것입니다. 만약 조류가 공룡이라면 공룡은 멸종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공룡이 잽싸고 영리한 조류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요? 이후 70년 동안 이 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숙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조류와 공룡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공통된 해부학적 특성들은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1970년대가 되자 대부분의 고생물학자들이 확신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조류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지나면서, 더 많은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꽤 많은 육식 공룡의 화석에서 쇄골(부서지기 쉬워 보존되는 일이 드물다고 합니다)이 발견되면서, 조류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쥐라기와 백악기의 조류 표본 수백 점도 새로 발견됩니다. 발견된 화석에서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초의 날개는 보온을 위해 활용되었다. 그러다 땅에서, 그다음에는 비탈을 올라가는 추진수단이 되었고, 그 후에는 짧은 거리를 활강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재 전력비행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2005년 시점에는, 조류가 공룡의 후손이라는 점에 대해 척추동물 고생물학자들 사이에 거의 이견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어쨌든 공룡은 백악기의 종말과 함께 멸종된 게 아닙니다. 저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공룡’이라고 알고 있는 거대한 파충류를 ‘비조류(새를 제외한) 공룡’이라고 부르겠다고 합니다. 공룡은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식탁 위에 있는 치킨도 공룡이라는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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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대 지질시대의 구분은 어떻게 확립되고 명칭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주요 사건 중 짙은 글은 기후 사건, 옅은 글은 생물계의 사건임
1600년대 후반부터 지질학자들은 지층 누증의 법칙을 이용해 화석과 암석의 상대적 연대를 밝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법칙은 덴마크의 의사인 니콜라우스 스테노(Nicolaus Steno)가 1669년 처음 내놓았는데, 그 기본 원리는 연속적인 지층(퇴적층이나 용암류)에서 바닥에 있는 층이 가장 오래전에 쌓인 지층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나중에 쌓인 지층이라는 것입니다.
그다음 획기적인 발전은 1790년대 잉글랜드 남부의 한 운하 회사 기술자였던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는 지층에는 저마다 독특한 화석군이 있고, 서로 다른 두 지층에는 동일한 화석군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곧 이 동물군 천이의 유형을 잘 파악하게 되었고, 스미스가 지층의 지도를 만들고 정확한 지층의 서열을 결정하는 데에는 동물군 천이가 더없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지층의 연대를 결정하는 일은 동물군 천이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 지층의 부정합이라는 기록의 단절 때문이었습니다. 지질시대 전체가 완벽하게 나타난 지층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질학자들은 동물군 천이를 활용해 세계 전역의 정확한 지층 서열을 밝혀야 했고, 이렇게 화석을 이용해 층위 관계를 밝히는 학문을 생물층서학이라고 합니다. 지질시대별로 저마다 특유의 화석군이 있으므로, 각각의 화석군을 활용해 한 지역의 층서를 다른 지역의 층서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 세기 전쯤, 고생물학자들은 서로 다른 지역의 지층을 비교해 북아메리카 포유류 진화의 완전한 연대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지질연대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안타깝게도 우연히, 예기치 못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 연대표는 한 사람이 체계적인 방식으로 확립한 것이 아니라서, 완벽한 순서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정리되어야만 했습니다. 연대표는 지질학자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각기 다른 암석을 통해 시대를 부르는 용어들을 제안하면서 점점 더 살이 붙고 발전해 온 것입니다.
상대적인 시간 간격인 ‘세’는 유럽 일부 지역의 지층과 그 지층에 들어 있는 연체동물 화석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고미생물학자들은 심해저 퇴적층의 화석 연구를 시작하던 시기인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심해저 퇴적층에는 그 어떤 퇴적 환경보다 훨씬 완벽하고 연속적인 지질시대의 기록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는 침식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작은 플랑크톤의 미화석이 끊임없이 퇴적되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반이 되자, 연속적인 미화석층은 심해저 코어뿐 아니라 조산운동에 의해 융기된 해성층에서도 신생대의 생물층서학적 시대를 알려주는 전세계적 표준이 되었습니다. 일단 심해의 층위 관계가 확립되자, 고미생물학자들은 얕은 바다에서 형성된 서유럽의 대표적인 퇴적층 단면을 조사해 유럽의 지층이 지구 전체의 고미생물 시간척도 중 어디와 맞는지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과 신생대의 사건을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까요? 이론상으로는 표준지리학의 방법인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으로 정확한 연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화성암에 적당한 방법이지 퇴적암의 연대를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일부 예외를 빼고는 적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퇴적암의 연대는 어떻게 측정할까요? 상대적인 연대를 알기 위해 필요한 화석은 대부분 퇴적암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화석이 들어 있는 퇴적층 사이에 용융된 마그마에서 형성된 화산재층이 끼어 있어서(화산재층은 칼륨-40의 붕괴 속도를 이용해 연대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상대적인 연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1950년대 후반에 칼륨-아르곤 연대측정법이 등장한 이후 지질학자들은 앞을 다투어 화산재층의 연대측정을 시도했고, 중요한 화석을 함유한 신생대의 조와 대의 지층 단면에서 발견되는 여러 화산재층의 연대를 측정했습니다. 이 결과는 포준연대표에 포함되었고(가장 최근의 개정사항은 Berggern 등이 1995년에 발표), 이 책의 연대표에 나오는 미화석과 해양동물 화석(대부분 연체동물)과 육상 포유류 화석의 연대도 이렇게 결정된 것입니다. 그 후로는 육성층이든 해성층이든 거의 모든 신생대 암석의 연대가 정확히 결정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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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구라를 치는 것이 아니라 증거로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생각은 단초가 주어지면 일어납니다. 벌떡. 그리고는 이어서 키가 크고, 근육이 늘어 몸피를 키웁니다. 간혹 끝 간 데 없이 달려가다 노루처럼 ‘내가 왜 뛰지?’ 자문하며 제자리에 서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곁길을 기웃거리기도 하고요. 삼천포에 들어가 나올 생각을 안 하기도 하지요(요즘 삼천포는 다리가 연결되어 왔던 자리로 다시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 쓰던 관용구인데 삼천포 시민도 이제는 들어도 사실이 아니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될 듯하여 사용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물리의 교과성적이 ‘가’였던 것 때문인지 과학책이 좋습니다(학생들이 물리 수업 시간에 강의를 듣지 않는다고 하여 혼자서 칠판을 보고 수업을 하시고는 칠판이 가득 차면 교실을 나갔던 물리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시험을 치면 문제를 읽지 않고 객관식에만 아무 답만 쓰고는 시험 시작 5분 만에 교실을 나왔더랬습니다) 논리가 정연한 것이 그 이유이고요. 주장하는 바를 증거를 이용해서 증명하는 것이 말이 믿을 만해서 더욱 좋습니다. 요즘은 말인지 방귀인지 모를 자기 멋대로 쓰는 말들로 인해 우리말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습니까? 앞에 한 말과 뒷말이 서로 호응을 하지 못해 듣는 사람이 자기 귀를 의심하게 하는 요즘이니 과학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과학지식도 늘리지만 그보다는 말은 이래야 한다는 용례를 보며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최근 1-2년 사이에 과학책을 선별하여 읽기 시작한 것은 ‘창조과학’이라는 유사과학을 과학이라며 강변하던 자칭 교수라는 분의 강의를 듣고서 가진 의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종교가 과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신념이 작용하는 종교와 증거가 작용하는 과학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창조과학이 진화의 증거를 대라며 윽박지르는 주장이 맞을까? 그래서 지구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진화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전공책을 읽기는 버거워 일반인을 위한 쉬운 책을 찾기를 희망했지만 책을 고르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룡 이후’라는 책을 찾은 것은 다행입니다. 진화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알 수 있었고, 이런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증거를 모았으며 지금도 어떻게 논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과학은 지겨울 정도의 성실과 인내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행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조과학이 구라라는 것을 확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책들을 읽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진화를 설명하는 것에 하나님의 은혜가 고생물학자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알면 얼마나 놀랄까요.
이 책은 백악기 공룡이 살았던 시대가 멸종되고 이후 시대를 설명합니다. 공룡 이후의 시대를 신생대라고 합니다. 전체 지구의 지질시대 분류를 볼 때는 잘 외지도 못했지만 신생대 만을 분류하니 조금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생대는 ‘팔에올마플플’로 나눕니다. 650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시대를 신생대라고 합니다. 과학책이라서 제가 읽다가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
| 오파비니아 시리즈가 생물학 관련으로 권위있는 시리즈라 하여 구매하게 되었다. 포유류의 진화를 다룬다고 홍보했지만 실제 내용은 환경 변화로 인한 지구 생태계 변동 전반을 다루며 포유류는 그 일환으로 언급될 뿐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신생대 생물 진화의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환영할 수 있겠지만 포유류의 진화를 집중적으로 다뤄주길 원했던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아무래도 책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가는 오래된 책이다보니 최신 학설과 맞지 않는 내용도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공룡의 멸종 원인에 대해 운석 충돌을 결정적 원인으로 꼽는 현재 학계 주류와 달리 이 책에서는 운석 충돌 이전부터 공룡의 멸종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최신 학설과 충돌하는 내용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