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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와 극좌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시작되다.
"극우와 극좌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시작되다." 내용보기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지배에서 해방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일들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광복에서부터 대한민국이 수립되던 그 때까지, 미군정청과의 갈등 그리고 극심한 좌우대립을 겪었던 것이 전부인양 알고 있기도 하다.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우리가 그 때의 일들을 살펴보는 까닭은 과거를 한탄하고, 아쉬워하기 위해서가
"극우와 극좌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시작되다." 내용보기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지배에서 해방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해방공간에서 일어난 일들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 광복에서부터 대한민국이 수립되던 그 때까지, 미군정청과의 갈등 그리고 극심한 좌우대립을 겪었던 것이 전부인양 알고 있기도 하다.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우리가 그 때의 일들을 살펴보는 까닭은 과거를 한탄하고, 아쉬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교훈 삼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때의 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역사학자 김기협이 해방공간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쓰는 해방일기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는 3년의 기한으로 1945 8월 해방 전후부터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1948 8월까지, 3년 동안 일어난 일을 총 10권의 책에 일기형식으로 담겠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다섯 번째 책으로 1946 9월부터 12월까지 넉 달 동안, 해방 후 1년이 지난 시점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담고 있다. 그 기간 동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가 부제로 달은 것 마냥 길 잃은 해방이 가져온 비극으로 칭할 수 있겠지만, 책을 읽고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당시 좌우합작의 노력이 통일국가 수립을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다는 점이다.

 

해방 후 1, 과연 조선은 해방을 맞이한 것일까? 외세의 지배가 일제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바뀌었을 뿐, 해방 후 상황은 암담하기만 했다. 그나마 38선 이북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세워져 소련 점령군으로부터 통치의 권한과 책무를 넘겨받고 있었던 반면, 이남에서는 미군정이 통치권을 틀어쥐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미국과 소련의 정책차이에 기인한 것 이었다. 소련은 조선의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만큼 무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점령군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확연하게 갈리었다. 미국은 비로소 조선의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남조선 통치방식을 개선하려 노력하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힌다. 그들이 개선한 통치방식을 제도적 측면과 인적 측면으로 구분 해 보면, 제도적으로는 대의기관인 입법의원을 설치하였지만, 그것은 명목뿐인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인적 측면으로 볼 때, 자신들을 도와 남조선을 통치할 자원은 부일 협력자 집단이 주축이 된 반공세력뿐이었다. 더불어 경제사정마저 악화되자 남조선의 민심은 더욱 이반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남조선을 경찰국가로 만들었고, 이는 중도주의자들이 그 동안 공들여온 좌우합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남한의 좌익은 조선인민당,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의 좌익3당이 합당을 추진하여 좌우합작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헌영의 모험주의 노선은 합당이 불가하게 만들었고, 이는 미군정의 좌익탄압을 초래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46 9, 공산당은 미군정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내용으로 하는 신전술을 채택하고 9월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파업은 923일 부산철도공장 파업을 시작으로 며칠 사이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우익테러단체들은 경찰과 연대하여 파업파괴에 나섰다. 101일 대구에서는 파업중인 노동자들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른바 대구사태이다. 이를 두고 우리는 좌익이 선동한 대구폭동으로 역사에서 배워왔지만, 이는 폭동과 항쟁의 성격이 가미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민생고를 배경으로 경찰서를 습격하고 대치한 점에서는 폭동이지만, 미군정과 경찰의 횡포에 대항한 점에서는 항쟁의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파업은 실패로 끝나는 예정된 수순을 걷고 있었다. 그 결과, 공산당의 신전술은 좌익을 위해서는 최악의 길이 되어버렸다. 미군정의 공산당 고립정책에 대항해 박헌영 중심의 공산당 주류세력이 좌익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자 채택하였지만, 좌익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19469, 좌우합작의 7원칙을 김규식과 여운형이 공동 발표하였다. 중간파 민족주의자들이 통일조선을 향한 열망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그러나 우익의 한민당이 이 원칙에 반대하고 나서자, 중간파들은 한민당을 탈당하기에 이른다. 이제 한민당은 범우익에서 떨어져 나와 부일 협력자들이 주축이 된 극우세력으로 변신하였다. 공산당의 박헌영 역시 이를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극좌의 길을 택하였다. 미군정이 지지하는 좌우합작에 대해 명분에서 밀리던 극우와 극좌는 겉으로는 그것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에게 좌우합작의 성공은 곧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일 이기도 했다. 끝없는 방해공작이 이루어진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우리는 극좌와 극우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극우는 통일전선을 회피하였다. 그것만이 친일파 처단을 피하고, 식민지시대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히 민족국가의 건설보다는 외세에 의존하는 분단국가를 원했다. 박헌영의 극좌 또한 마찬가지이었다. 현실정치 속에서 헤게모니 획득을 위한 정략차원의 투쟁노선이, 그들에게는 우선 당장 민족통일보다도 중요했던 것이다. 즉 좌우합작은 이들 극좌와 극우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따라서 어렵게 성사된 좌우합작이 그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가망이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여기에 미군정은 좌우합작 7원칙의 다른 조항은 도외시 한 채 오로지 입법기구 설치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총파업의 와중에 선거를 실시하여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을 선출하였다.

 

1946 11월 미소공위 재개 움직임이 보이자, 이제껏 미군정과 밀월관계를 보이던 이승만은 독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UN총회에 참석한다는 핑계아래 미국으로 출국한다. 이듬해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은 예전의 이승만이 아니었다. 그는 미군정과 하지에게 도전하며, 분단건국을 통한 권력장악을 향해 치닫게 된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1947년의 해방일기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1946년 말, 남조선과 미국에서 이승만이 보여준 행태는 그의 도덕성의 파탄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승리자가 되었다.

 

해방 후 1,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모습들이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낯익은 것들이다. 바로 현재의 우리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여야로 갈린 수구세력들, 그리고 양극단에 포진한 극우와 극좌세력들, 그들은 해방이래 아직도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들에겐 정권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가 정권을 잡던 그들의 기득권과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방공간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비록 실패하였지만 저자는 좌우합작을 추진했던 중도파들을 재평가하고 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해방공간의 역사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해방공간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끼친 해악의 대부분은 조선을 망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무식하고 게을러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하지 말아야 될 일들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47, 남조선에서 그리고 북조선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우리는 그 때,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또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가 자꾸만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k*****1 2013.06.18. 신고 공감 11 댓글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