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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면서 여러 사건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 우리 부평구에서 일어났던 남양유업사건은 지워지지 않는다. 얼마나 억울하고 살기 망막했으면 자살이라는 것으로 삶을 끝낸단 말인가? 이런 분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갑과 을의 나라>를 읽으면서 화가 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사실 내 입에서 욕부터 튀어나왔다고나 할까? 사실 나는 회사 생활이나 을의 입장인 생활을 많이 해보지 못해서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도 ‘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책을 읽었다. 돈 없고 나약하면 왠지 ‘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 책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슬로건으로 대변되는, 한국 갑을관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책 머리말에 열 가지의 사례들이 나온다. 주로 나약하고 힘없는 ‘을’의 사례들이다. 주로 갑의 횡포를 감내하고 당하는 사례들이다. 열 가지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이른바 ‘갑을관계甲乙關係’에서 을에 속하는 사람들은 갑의 횡포를 감내해야만 한다. ‘갑’ 과 ‘을’은 원래 계약서를 쓸 때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일 뿐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상하관계 上下關係나 주종관계 主從關係로 왜곡돼 있다. 관官은 민民에 군림하려 들고, 민民사이에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한 조직 내에선 힘 있는 부서가 힘없는 부서에 군림하려 든다. 위에 글이 저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아도 서류상으로 갑, 을에 대해 많이 나오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갑의 회사에 들어가도 힘없는 부서나 아래 직원들은 을이 되더라고요. 우리나라 출세에 따라. 인맥에 따라 을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갑의 입장에 서려는 취향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디를 가서 높은 출세의 누구누가다 하면 다들 인정해 주고 누가 추천해서 왔다거나 소개, 아니면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 우선시하는 하는 나라잖아요. 이러한 것들이 몸에 배어 사는 그런 나라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갑을관계는 우리의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들어 일상적인 행동 패턴으로 내면화 됐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갑을관계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건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지요. 역사적으로 그 갑을 관계가 역사 속에 깊게 뿌리 내려져있다고 저자인 강준만님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건 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우리의 역사가 이리 우리를 갑을관계 속으로 밀어 넣은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요즘 들어 갑을관계가 심하게 나타나는데 그것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장 <왜 한국인은 갑을관계에 중독됐나 : 갑을관계의 역사> 한국인이 중독돼 있는 서열주의의 다른 이름이 바로 갑을관계다. 관존민비官尊民卑, 전관예우 前官禮遇는 기승을 부리고 적자생존 適者生存,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로 대변되는 사회진화론이다. 과거에 강대국들의 우리나라를 침범해 당하면서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이 이리 변한 것 같다. 위협과 강탈이 한국인의 개개인의 운명이 이리 갑을관계로 과거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자기중심적인 사고, ‘뜯어먹기 경연대회’라고 할 정도로 착취가 난무했고 여기에 공직자들도 가세를 했다. 역사를 확 바꿀 수도 없고 이런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람들까지 갑을관계에 병들어 가는 게 애석하다. 2장 <갑을관계 문화가 낳은 사생아, 브로커: 브로커의 역사> 브로커는 갑을 관계 문화가 낳은 사생아다. 브로커들이 갑을 관계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한국은 브로커 공화국이다. 여러 가지 예를 들 수가 있다. 군대를 가려고해도 병무청에 브로커를 썼고, 첫 시작은 통역관으로 시작된다. 통역관들이 뇌물을 받고 브로커 역할을 한 것이다. 예전에는 ‘뿌로 커’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법조 거물 브로커가 등장했고, 돈세탁이 우리나라 신문에 떠들썩했고, 우리나라 현실이 지금도 지자체를 한다지만 정치적으로 지자체가 따라가는 경향이 심하다. 언제까지 이런 브로커 속에 갑을관계가 지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3장 <선물은 ‘가면 쓴 뇌물’인가 : 선물의 역사> 한국인의 선물 관행은 갑을관계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선물은 을이 갑에게 주는 것이란 정의가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와 선물을 들여다보면 사건이 많다. 특히 차 트렁크에 ‘사과박스’는 잊을 수 없는 갑을관계의 한 장면이다. 선물 안 받고 안주기 운동도 해도 잘 실행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선물을 마음의 선물로 주자고 해도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 주는 것 보면 참 한심해 보인다. 을의 등골을 빼먹는 이런 선물들 정말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 같다. 4장<권력자들의 갑질에 시달려온 을의 반란 : 시위의 역사> 한국은 국제적으로 늘 을의 위치에서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은 나라이며 국내적으로도 오랫동안 권력자들의 갑질에 시달려온 나라다. 사실 시위를 해도 갑의 시위는 인정해주고 을의 시위를 조용히 말로서 하면 인터넷이나 각종매개체에서 방영을 하지 않는다. 꼭 물질적으로 과격하거나 사람이 죽어야 공개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 앞으로 을이 살아남으려면 같은 을끼리 단합을 잘해서 해쳐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래도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로 을이 갑의 횡포를 올리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을의 반란’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그것이 언더도그마로 전락하지 않게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리를 지키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는 ‘을의 반란’ 이 ‘증오의 이용’을 넘어 ‘증오의 종언’을 향해 나아가는 걸 전제로 한다면 감히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을의 반란’ 이여, 더욱 가열차게 행군하라! 이 글 네 편엔 내 주장이 적잖이 들어가 있긴 했지만 이 책은 주장을 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과거에, 그때 그 시절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네 가지 주제를 통해 음미해보자는 뜻이 강하다. 이 책이 역사를 재미있게 즐기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한다면 더는 바랄 게 없겠다. - 강준만- 책을 읽으면서 을의 입장에서 역사 속에 우리가 갑을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그 뿌리를 어떻게 제거해야할지 암담하지만 그래도 우리 을이 뭉쳐서 가열차게 행군을 해야겠지요.
빙글빙글도는의자 회전의자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사람없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 사랑도 젊음도 마음까지도 가는 길이 험하다고 밟아버렸다 아~~억울하면 출세하라 출세를 하라. 돌아가는 의자에 회전의자에 과장이 따로있나 앉으면 과장인데 볼때마다 앉을자린 비어있더라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보자고 밟아버린 젊은 꿈을 즐겨보자고 아~~억울해서 출세했다 출세를 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사회적 차원의 슬로건이 된 건 1964년이다. 그 시기에 나온 회전의자의 가사가 주는 메세지가 풍자적으로 전파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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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언론과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회자된 단어 중에 '갑을'이 있다. 연결되지 않을 사회적 주제가 있겠는가만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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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읽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빠르다는 강준만이 또 신간을 냈다. 제목이 무려 ‘갑과 을의 나라’다. 시의적절한 제목과 내용이겠다.
강준만은 편하게 갑을관계의 역사를 따라가 보자고 하지만 사실 갑을관계야말로 현대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에 자본주의가 심화할수록 갑을관계는 이 낱말이 뜻하는 바를 넘어서 주종관계, 노예관계로 변질해 버렸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갑을관계가 없을 수 없는데 한국 사회가 유독 심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최근 몇 개월 사이에 폭발하듯 터져 나온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비행기에서 세 번이나 다시 라면을 끓여 내라는 ‘라면 상무’의 ‘진상짓’이 황당해서 그럴 것이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욕설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더 강도가 세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을로서 겪어 봤을 ‘갑질’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갑을관계에 지쳐 있다는 반증, 즉 지금이야말로 한계 상황인 셈이다.
강준만은 “을의 반란이여, 더욱 가열차게 행군하라!”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전혀 생각도 없는 갑에게 자비를 바라는 것보다 을이 단결해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을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을끼리 연대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이 길밖에 방법은 없는 듯하다. 정부에서 약자인 을을 지원해야 할 텐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그럴 만한 생각이나 깜량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갑과 을의 나라>는 갑을관계를 매개 삼아 엮은 책으로, 한국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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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의 횡포, 을의 눈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생활 속에서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풀고 넘어가야 할 시대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관계, 본사와 지점과의 관게, 성희롱의 갑을 관계, 심지어 "대한민국의 마지막 성역"이라고 일컬어지는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 즉 재판에 있어서의 판사와 소송당사자(원고이든 피고이든)와의 갑을 관계에서 갑의 횡포(재판)는 오래 전부터 사법개혁이니 검찰개혁이니 하며 생색내기만 수 없이 반복되어 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사람(국민)들은 알고 있다.
" 판사의 재판권 남용, 견제장치 있어야", "판사 마음대로인 구속영장 발부' 기각", "재판 공정성 해치는 향판(鄕判)", "고위 판.검사 출신이 법 어기면 법치 사회 불가능" 등이 자주 등장하는 신문기사를 보면, 알 수 있드시 아직도 법원의 재판, 검찰의 수사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법관이 소송당사자나 증인, 변호인에게 막말을 하고 고압적 태도를 보여 비판을 받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민이 정의가 실현된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재판, 수사, 서민이 법의 보호를 받고 있고 정의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려면 재판기관이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사건들을 공정하게 재판이 제대로 돼야 국민이 법의 보호나 법의 심판을 믿고, 법에 따라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 재판의 문제점들은 재판과 기소를 판사와 검사에게만 맞기지 말고, 미국이나 독일처럼 일반인들의 상식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나가야 할 필여성을 보여주고 있다. 재판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에서 여기에서의 양심은 법관 개인의 양심이 아니고 전국민의 양심임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건 판사의 재량을 인정하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가능한 법위 안에서, 객관적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재판이 공정성을 잃으면 한 개인의 삶을 망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사회의 안녕도 해칠 수 있다. 이같은 중대한 문제를 판사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만 맡겨 놓을 순 없다.
재판권 남용의 또 다른 견제 장치 중에 근무평정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는 것은 직무상 준칙을 일탈한 법관에 대해서는,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변호사와 소송 당사자 등이 행하는 "법관펑가제"를 통해 그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법관이 공정하지 못한 심판을 하면 정의가 무너지고 잘못된 사법제도와 그 제도를 악용하는 법관이 있는 한, 불공정과 불의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법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법원.검찰. 법이 되살아나려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 중요하다. 사법부는 스스로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감시와 견제는 거부하고 있다. 오늘날 국가는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각각의 권력이 독립성을 지키며, 각기 견제하면서 권력의 타락을 막아야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법부는 오만과 편견의 상징이다.
사법부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던 전 정권들도 사법부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으며, 지금도 자신들끼리 끌어주고 당겨주고 밀어주고 하는 짓은 여전하다. 한 기업인이 발혔던 스폰서 검사에 대한 이야기도 진실로 드러났다. 그만큼 사법부는 신뢰를 따에 떨어뜨린지 오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많은 논란이나 비리들을 일으키는 그네들은 왜 자신들의 독립성만 주장하고 감시와 견제는 받아들이지 않는지 씁슬하다.
판사들이 조를 짜서 불시에 다른 동료 판사의 재판을 방청한 뒤 의견서를 작성하는 "암행법관"에서 "방청석서 보니 판사들 표정 무섭더라"가 아니라, 그반대로 되어 밝은 표정이 되는,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법부를 바라며, 우선 법관들이 그동안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법권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성과를 창출할 필요가 있고, 아울러 관계기관이나 법률전문가 및 국민 일반의 여론을 폭넓게 수용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결국 법관이 연구업무와 실무업무에 동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이고, 외부의 전문 연구 인력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사법부에 "사법정책연구기관"을 설립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법조실무에 필요하면서도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된 미래 사법의 희망찬 청사진이 제시되고 열매를 맺어 새로운 사법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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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교수님의 강한필치에 매료되어 또 사보게 되었다.
갑을관계는 동물의 세계에도 존재합니다.
(내안에 물고기 ,동물들의 생존게임)
제가알기론 미군정하에서도 만생을 다루었습니다.
대표적인예가 체포된 마약사범증 김두한도 있었습니다.
P147 설렁탕은 몽고의 슐렝에서 연유합니다.
잉카최후의날 ㅡ에서 보시면 황제가 신하들에게
코카인을 나눠줍니다.
선물은 어느사회에나 다 존재합니다.
필체도 날카롭고 우리사회가 고쳐야할 부분들을
자세히 지적해주셨다.
다만 다른 현대사책에 나온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새로운게없다 어떤건 빼먹은것도있다
한일국교 정상화는 미국의 압력에 의한건 다아는이야기다.
또, 유령세상을 향해 주먹을 뻗다 ㅡ 등 사회엔 갑을관계
얼마든지 있다 너무 정치에 편중된 느낌이든다.
그래서 별하나 뺐다.
참조하셨으면하는도서
거라,잊혀진 유목제국이야기 소설 태백산맥 그현장을 찾아서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패러다임 수목장 대쥬신을찾아서 조선족그들은 누구인가 욕망하는지도(이성계가 역모의수괴인이유) 김두규교수의풍수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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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사회이슈에 관계된 책을 가장 많이 낸 저자가 있다면 단연 강준만 교수일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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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을관계라는 말이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한건 언제부터였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본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의외다. 이러한 갑을관계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음이 틀림없음에도 미디어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4년부터 등장했다고 한다.
# 기자와 검사, 그리고 교수가 만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식사후 밥값을 계산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은 식당주인. 그만큼 이 부류의 사람들은 밥값을 내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다.
포스코 라면상무나 남양유업의 이야기를 미디어에서 줄기차게 다루던 때가 얼마전인데 요즘은 아예 갑을관계 청산...이 아니라 개선을 캠페인으로 벌이고 있는 듯하다. 이러던 차에 출간된 이 책은 이참에 아예 우리나라 역사를 바탕으로 갑을 관계를 테마로 잡아 선물(뇌물), 브로커, 시위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엮어내고 있었다. 간간히 인문사회 서적을 읽어보고자 노력하고 있었기에 잘 알지 못했거나 주목하지 않았던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꽤나 재밌게 읽혀졌다.
브로커라는 단어는 그냥 들었을때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중개인이나 에이전트라고 하면 또 뉘앙스가 다른것 같다. 성공하면 마당발로 인정받고 실패하면 사기꾼이라 매도 당하는 브로커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지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사회를 보는 시야를 조금더 넓혀주었는데 아예 없앨수 없다면야 어떻게든 양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잘 알지 못했던 희대의 브로커 사칭 사기꾼(?) 사례를 보면서는 그만큼 정상적으로 인정받거나 능력을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마지막 챕터에서 을의 반란을 다룬 부분에서는 현대사에서의 데모의 역사를 짚어주고 있는데 불과 수십년전의 역사조차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았구나 싶어 가슴이 미어졌다. 요즘은 심지어 국사가 수능 선택으로 바뀌어 다시 필수로 지정해야 한다느니 하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판인데 아무리 우리 사회가 개판이라고 하더라도 그나마 이정도의 자유를 얻기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근현대사도 동일선상에서 대우를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평화시위는 아예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주지도 않는 현실 속에서 조금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이어나가는 분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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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부제 그대로 갑을관계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 왔는지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워낙 뻔한 주제여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문제 제기는 강하게 되는데 대책 혹은 해결책은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살다 보면, 특히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갑과 을이 참 매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갑도, 을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어떤 때는 갑이 어떤 때는 을이 되기 마련인데 왜 그걸 모를까...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좀 더 하면서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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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시 오적..39p 1960년 5/2 조선일보 너는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 같은 작가의 두번째 책. 한 주제에 관하여 현대사를 살짝 훑는 것이 지루할 틈도 있었으나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상이란 것들이 일 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 간에 위 아래가 없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야 하는 '당연한' 이치를 잃어가고 있음을 한탄하며.. 이 분 책을 한 두 세권정도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에 끌리는 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