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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서울》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연상케 한다. 현대에 넘쳐나고 있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우울과 공허의 은유가 넘쳐나는 책이다. 파리의 시인 보들레르는 파리를 매춘부라 묘사하였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보편적 매춘’의 사회라 표현한 것과 같은 표현이다. 성적으로 몸을 판다는 의미가 아닌, 스스로의 노동력이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의 은유인 셈이다. 책에 실려 있는 총 7편의 단편이 주는 은유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속성인 ‘보편적인 매춘’을 하고 사는 현대인들의 암울한 자화상이다.
<로스트 인 서울>은 그렉 안나라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여대생의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추락의 일대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단편소설이다.
한국에서 성공의 바탕은 첫째도 외모, 둘째도 외모이다. 그렉안나의 외모는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그러면서도 청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국 남성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것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린다. 외국인이었던 그녀는 케이블 방송업체를 운영하는 강이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강과의 동거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고급아파트, 수입자동차, 높은 출연료가 당연한 듯 보장되었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삶은 강의 집착과 폭행으로 얼룩지게 되고 그 모든 것을 그렉 안나의 집 인테리어를 하게 되면서 ‘비밀의 방’을 만들어 준 ‘나’가 엿보게 된다. 그렉 안나를 엿 보게 되면서 사랑이라 생각했던 ‘나’는 ‘사랑은 그것을 갈망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확언한다. ‘나’의 사랑은 강과 그렉안나의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모른 채 ‘나’는 점점 ‘안나’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그렉안나가 한국인 사회를 폄하하는 발언을 방송 중에 하게 되면서부터 안나의 인기는 순식간에 추락한다. 결국 강에게서 이별 통보의 문자를 받은 그렉 안나를 두고 ‘나’는 그렉 안나와의 사랑을 ‘내 사랑이 과장되었던 것은 아닌지’하는 비겁함으로 무장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세컨드 라이프>에서 주인공은 아내와 여행을 간 곳에서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른 삶의 기억을 기억한다. 형의 죽음에 대한 기억, 환상인지 상상인지 모를 기억이 뒤엉켜 혼미함을 남긴다. 도망다니던 형과 형의 친구 홍아저씨, 이어 남겨진 홍아저씨의 여자와의 만남까지도, 단지.
<탈옥> 감옥에서 주인공이 탈옥을 하기 위해 편도선을 떼내고 위궤양으로 위를 반쯤 떼어내고 맹장을 떼어냈음에도 탈옥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도망이다. 나의 내장은 나를 위해서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이다.’ 빈 내장 안에는 주식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욕망으로 가득 채운다. 다시 한번의 내장을 비워내고 타게 된 앰뷸런스 안에서 그는 과연 탈옥에 성공하였을까? <그 남자의 손목시계>의 주인공도 모호함이 가득하다. 아버지를 ‘그자’라고 할 정도로 가족 연대감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해체 된 가족의 모습. 늘 반듯하고 예의바른, 시계를 보는 모습의 ‘그자’의 어머니를 향한 학대와 폭행을 보며 ‘그자’가 애지중지하는 시계를 때려 부수는 것이 ‘복수’라고 생각하며 성장한 한 남자가 성장하고 나서는 시계를 죽이는 것이 아닌 ‘그자’를 죽이는 실제적인 목표를 가지게 되는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도시에서 느끼는 원천적인 두려움이 바로 가정의 해체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누군가는 죽을 것이고 죽은 누군가는 이처럼 가벼운 영혼이 되어 퐁퐁 날아다닐 것이다.’
<후쿠오카 스토리>는 8년을 사랑했던 남녀, 두 쌍의 연인이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요크 여행을 떠나 좌초될 위기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커플들을 통해 피상적인 사랑이 주는 파국을 보여주고 있다. <로라, 네 이름은 미조> 영국에 시집간 미조가 로라로 살기 위한 이야기. 그녀의 삶은 “서울에서 스코틀랜드로, 세계를 돌아 다시 영국으로, 파리에서 마닐라로, 마닐라에서 다시 서울로.‘ 요약될 수 있지만, 그녀의 위장에는 영국 왕실의 전용 찾잔인 유리조각과 영국 버버리 금장 단추만 남아있었다.
7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지 않다. 이들의 욕망과 불안의 원천적인 것은 바로 ‘도시’라는 거대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도시에서의 사랑은 자신의 욕망 앞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며, 가족과의 관계 또한 ‘친부 살해’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 도덕적인 양심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보다도 ‘가문'이나, ’왕실의 찾잔‘이 더욱 소중한 영국 문화에 물들기 위해 깨진 왕실 찾잔 유리조각을 삼키는 한국인’미조‘의 행위도 자본주의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스스로 병들어가고 있는 현대 문명속의 현대인들의 모습과 진배없다. 이 소설이 특이한 것은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그리지만, 현대인들의 아픔이나 상처를 전혀 치유하려 들지 않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과정을 따라감에도 작가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비정함의 속살을 과감히 벗기고 있을 뿐 상처를 감싸거나 섣불리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보들레르가 파리의 우울에서 “나는 삶이다. 견디기 힘든 , 냉혹한 삶!” 이라고 외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잔혹성을 마주하란 듯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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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내게는 늘 그리움이었다. 이십 대 시절,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던 단짝 때문에 나는 휴가때나 주말에 자주 그아이의 집을 향해 기차를 타곤 했었다. 그 아이가 보고 싶어, 출발할때부터 보고 싶음에 가슴 설레어하고, 어서 서울에 도착하기를 바라며 창밖의 느린 풍경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차창 밖은 빠르게 지나가는 듯 하지만 느린 풍경으로 있었고 나는 애써 마음이 먼저 달려감을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그리운 친구가 마중을 나와 우리 둘이는 손을 맞잡고 그 아이의 집을 향해 또다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탈때마다 몇호선인지, 어디서 갈아타야하는지를 보며, 먼 거리였지만 그 아이와 함께 탄 서울의 지하철은 곧장 도착한 것처럼 시간이 빨리 흘렀다.
서울은 내게 영화의 도시이기도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새로 영화가 개봉하면 거의 다 챙겨 볼 정도로 영화 관람을 했지만, 서울보다는 시간이 더 지나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서울을 가면 우리는 항상 시내로 나가 영화를 보았다. 나한테는 거대하게 보였던 대한극장에 먼저 도착해서는 영화부터 예매하고 시내를 배회하기도 했었다. 그 친구가 살고 있던 서울에 살고 싶기도 했다.
「로스트 인 서울」의 그렉안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의 서울로 공부하러 왔다.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케이블 방송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방송업체 사장인 강을 만나 그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안방을 연결하는 안쪽에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공간을 '나'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렉안나와 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원대한 꿈을 꾸고 서울에 왔지만 룰렛구슬은 그렉안나를, 강을, '나'를 점점 나락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비밀의 방 때문에 그 집을 임대해 온 한 남자의 이야기는 서울의 모습을 우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어딘가를 갔을때, 그곳의 풍경이 낯설지 않음을 느낄때가 있다. 꼭 예전에 와보았었던 곳 같고, 익숙함을 느낀다면, 우리는 과거에 이 곳에 와 본적이 있었나 하고 느끼는 때가 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보일때 우리는 순간 당황을 하곤 한다. 「세컨드 라이프」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담았다. 중국의 가흥에 여행간 부부, 그곳의 낯설지 않음을 느낀 '나'는 그곳에 오래전에 형과 머물렀던 공간이었다고 느낀다. 마치 형과 함께 있는 듯, 이곳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자, 아내는 십육 년전 부터 같이 살지 않았느냐며, 그것을 강하게 부정한다. 내가 있되, 또다른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 우리는 그것을 또 다른 나, 도플 갱어라고 한다.
자신의 몸 속에 있는 내장을 모두 도망시키고도 감옥을 빠져나가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탈옥」과 어렸을때부터 가족을 때렸던 아버지를 아버지라 여기지 않고 그 남자라 부르며, 그 남자를 미행하며 정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그 남자의 손목시계」도 있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후쿠오카 스토리」에서는 외로운 타국 후쿠오카에서 유학을 하며 사귀었던 네 명의 연인들이 다시 후쿠오카로 향하는 요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담았다. 로라 버넷과 로라 브랜든으로 살았던 미조에 대한 이야기를 쓴 「로라, 네 이름은 미조」외국인과 살면서 외국인의 문화에 애써 적응하고자 했지만, 겉돌기만 했던 로라의 아픈 이야기를 담았다. 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라는 부제의 「퍼펙트 블루」는 슈퍼스타 M과 K, M2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담은 이야기가 마지막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모두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느 것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의 도플갱어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이끌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자 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해답은 없었다. 그저 걷기만 할뿐.
이런 사람들이 있음에도, 나는 이제 또다른 이유로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책 나눔하며 책에 대한 토론하는 모습이 참 부럽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기 때문인지 이럴 때 난 서울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나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가 방현희는 『로스트 인 서울』이라는 단편집에서 서울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주고 있었다. 건강하고 밝은 모습보다는, 문학평론가가 말했듯, '병든 서울'의 모습을 말했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거란 생각은 한다. 누군가와 정을 나누고 베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해하거나 핍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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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가진 것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 책에 나오는 7편의 작품에서는 각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버림으로써 우리의 삶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렉안나의 사라진 꿈이 그렇고 익명의 주인공들인 <나>들이 잃어버린-혹은 스스로 버린-삶들이 그랬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유학생 그렉안나는 우연히 나간 방송에서 성공을 거두게 되자 자연스럽게 강이라는 방송국 간부의 파트너가 된다. 고국에서와는 비교되지 않은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든 안나는 강의 소유욕에 넌더리를 내면서도 강이 주는 물질의 쾌락을 즐긴다. 강을 피해 자신 만의 공간에서 쉬고 싶었던 안나는 강이 마련해준 고급 아파트에 자신 만의 장소를 만들고 그 장소를 만들어준 인테리어 업자인 <나>와 비밀 교재를 한다. 안나가 방송에서 밀려나자 강은 안나에게 준 모든 것을 뺏고 안나와 헤어진다. 이런 안나를 <나>가 책임지지도 못한다. 안나는 한국에 올 때 가졌던 삶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기억하지 못한 채 거대 도시 서울을 헤맨다.(로스트 인 서울) 16년 만에 갖는 부부의 여행지는 중국의 가흥. 화자인 <나>는 기이하게도 그곳에서 살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함께 온 아내는 이런 나를 어이없어 하지만<나>가 갖고 있는 기억은 너무도 뚜렷하다. 형의 투신자살에 대해 자책감을 갖고 있던 <나>는 현실의 고통을 외면하고자하는 방어기제가 자신도 모르게 작동해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고통만을 준 현실을 스스로 버리고자 한다. <나>는 갖은 합리화로 자신의 새로운 기억에 매달리지만 아내나 독자들이 보기엔 비겁한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세컨드 라이프) 주가조작으로 일반인들의 돈을 착복한 <나>는 자신이 감옥에 들어온 것은 재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재능 있는 자신이 감옥 안에 오랫동안 있는 다는 건 사회적인 손실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 자신이 할일-주가조작-을 해서 사회를 제대로 돌려놓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탈옥) 이렇게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은 저자가 의도했든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결과이든 간에 허무주의로 도피하고 있었다. 허무주의자들은 내면의 문제를 견디지 못해 약에 의지하거나 쾌락을 빌려 문제를 잊는다. 고통 뒤에 오는 행복을 알지 못한 채 고통과 행복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행복만을 추구한다. 이런 허무주의자들이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고통의 시간에 대한 회피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행동들이 고통의 회피이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우울할 땐 니체>>에서 읽은 허무주의를 떠올렸다. <나>는 자신과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군대로 떠나게 된다. 허무주의자들의 특징은 현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갖은 방법으로 합리화시키는 사람이다. (그 남자의 손목시계)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맺어진 두 쌍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지지부진한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으로의 요트여행을 실행한다. 하지만 난파라는 계획에 없던 위기상황에 빠지자 그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회피처 역할을 하던 ‘사랑’이라는 관계를 일시에 깨트리고 만다. 이들 역시 자신들 앞에 닥친 고통을 관계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 허무주의자로 보였다. (후쿠오카 스토리) 허무주의에 빠진 등장인물들이 현실을 딛고 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나가 자신을 찾는 길은 서울이 그녀에게 준 쾌락보다 처음 그녀가 한국에 올 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힘든 이국 생활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것이다. 그럼 그때는 장소가 우즈베키스탄이든 서울이든 혹은 또 다른 어떤 장소라 하더라도 상관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허황된 생각에 빠져 점차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탈옥>의 <나> 역시 허무주의에 허우적거리는 우울한 삶으로 읽혔다. <나>가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살려면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침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변할 이유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대한 나의 간섭은 여기서 멈춘다. 방현희라는 작가는 작년에 <<오늘의 슬픔을 가볍게, 나는 춤추러 간다>>라는 에세이로 처음 만났다. 춤을 추러 다니면서 느낀 단상을 평이하게 펴냈다고 생각하며 별 관심을 갖지 못한 작가였는데 이 작품으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소설을 잘 쓰려고 노력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이런 작품 속의 등장인물을 취재하고 소설로 살려내는 과정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흔히 달라붙어있는 허무주의를 털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쓰기를 통해서만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작가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다음번에는 어떤 작품을 들고 찾아올지 궁금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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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사이라는 단편집을 보며 단편의 매력을 느끼게 된 적이 있다. 완성도 높은 단편들이 주는 (내가 평가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재미를 더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여전히 나는 장편을 더 선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로스트 인 서울>이라는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히 다가온 행운이라고 볼 수 있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보게 된 책이긴 하지만 이 책 역시도 하나의 장편소설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나의 소설(읽을 때는 하나의 장(章)이라 생각했다)이 끝나고 다음 소설을 읽을 때에서야 깨달았다. 이 책이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앞서 이 책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각 소설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인간의 욕망에 초점 맞춰져 있는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로스트 인 서울’은 가장 처음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의 제목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안나’라는 여성이 우연한 계기로 방송 출연을 하고 인기를 얻은 후 물질적인 욕망에 물들어 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미녀들의 수다’를 배경으로 한 듯싶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어디 출신인지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 대중을 거스르는 말 한마디에 벌떼처럼 달려들어 한 사람을 매장시키는 공격적인 사회가 지극히 현실적이고 비판적으로 그려진다. 그 속에서 스타가 되고 커져만 가는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해 추락할 수 밖에 없던 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또 그녀를 사랑한다고 여겼지만 사회적인 편견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위기에 처한 그녀를 못 본체하는 것을 자기 합리화 시키는 ‘나’의 모습은 이 시대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탈옥’이라는 작품에서는 돈의 노예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식시장에서 소위 작전세력이라 부르는 조직의 리더가 감옥 속에 갇힌 상태로 시작된다. 어쩌면, 그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자신들이 계획한 주가조작 놀이에 말려든 사람들을 농락하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욕망이든 간에 그는 그것에 중독되어 있다. 자신의 장기를 하나 둘씩 망가뜨려가며 탈옥을 시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주식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들은 바대로라면 마치 마약과도 같다고 한다. 작전을 꾸며 남의 돈을 갈취하고자 하는 인간이나 대박에 눈이 멀어 그 속으로 뛰어드는 인간이나(현명한 투자자들과는 관계 없는 말이다.)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매 한가지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정해져 있다. ‘퍼펙트 블루’에서는 연예인들과 그들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 연예인들의 만들어진 허상을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 속 화자는 벨라도나(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이태리어이자 추출물은 진정제로 사용된다고 함). 작가는 벨라도나에 사신의 이미지를 부여하여 글을 끌어간다. 계획에 의해 창조된 또 하나의 나. 연예인들은 이미지로 먹고 산다는 말을 한다. 그들의 실제 ‘나’와는 별개로 만들어 진 ‘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그들. 스타가 되고자 하는 욕망 속에서 자신을 잃어 버린 대가는 가혹하다. 정체성의 혼란과 인간성의 변화는 타인과의 관계도 망가뜨리고 자신도 결국 망가뜨린다. 벨라도나의 목표물이 된 M. 흰 색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은(銀)까지 먹었던 그가 탈출구로 찾았던 벨라도나는 결국 생명을 앗아간다. 또 다른 연예인 K. 그에게 찾아간 사신은 최근에 연예인들이 투약하여 잘 알려진 프로포폴이다. 또 한명의 등장인물 M2. M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M의 모든 것을 따라한다. 은(銀)까지 따라 먹어가며 M에 대한 일방적인 유대감을 느꼈던 그의 삶 역시도 M과 같이 끝난다. 책 속에 담긴 소설들은 무척 현실적이다. 그리고 어둡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희망을 얘기하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돈, 마약, 욕망, 이기심, 질투, 편견 등의 어두운 이미지의 단어들이 중심이 된다.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시대가 실제 부정적인 단어들로 얼룩져 있기에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세상이다. 누구나 욕망이 있다. 또한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그것이 비뚤어진 방향으로 과하게 커지는 것일 테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보며 흔들리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찾고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조금 더 주위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소설 속 그들은 허구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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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한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자음과 모음사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외국의 스릴러 및 호러 단편소설집과 동화와 같은 소설을 읽었고 어제는 방현회 작가의 "로스트 인 서울"을 읽었다. 처음에는 장편소설로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단편소설이다. 단편소설을 대하게 되면서 한가지 느끼는것은 단편소설이 장편소설에 비해 한편으로 글을 쓰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단편이다 보니 장편에 비해 길지않은 종이에 작가가 이루고자 하는 내용 전개의 방식이며, 배경 설명, 주인공들의 심리며 극적 반전 이러한 것들을 한정된 파피루스위에 적어야 하기에 오히려 더 힘들겠다고... 그러나 단편은 장편에 비해 항상 뭔가 불안하다는 생각을 한다. 결과에 대한 어떤 기대보다도 어떤 상황일까?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이것은 무엇에 대한 복선인가? 등등을 생각하다보니 항상 가슴이 벌렁거림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작품으로서의 독자들이 기대하는 내용에 적합할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작가들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전개했을까라며, 혼자 중얼거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로스트 인 서울"은 비슷한 상황이 많이 등장하는것 같다. 한국생활을 하는 외국인,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중국 여행중인 부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아들, 연애인M의 생활. 한편 생각하면 "로스트 인 서울"의 제목이 적합하게 붙여진것도 같다. 서울 하늘아래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을 다루고 있으니... 서울은 빛나는 도시이기도 하면서 가장 힘든 생활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인종에 대한 차별, 선진국과 후진국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가장 많은 곳도 서울인것 같다. 물론 미주가 영국에서 겪은 것도 이와 유사한 사례이다. 그리고 매 맞으면서 살아가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아들.. 우리도 이제는 보다 성숙하게 글로벌 세계에 속한 현재에서 이 소설은 비록 글로벌을 위해서만 아니라 서울하늘 아래에서 모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잃어버린것을 들추어내기 보다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 행복을 위해 갈길이 어떤 곳인지, 각박해지는 서울에서 잃어버린것을 되찾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헤매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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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생. 방현희 작가의 '로스트 인 서울'은 읽으면 읽을수록 다른 이는 어떻게 느꼈는지 그 리뷰를 훔쳐 보고싶게 만드는 소설이다. 여기엔 모두 7편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단편들이 모여있는데 이 소설이 '소설집'이 아니라 '소설'이란 이름으로 나온 곳을 보면 이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로 읽어지도록 의도한 것이 분명하다. 한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읽는 나는 소설 제목 처럼 '로스트 인 노블' 해 버린다. 이 소설, 정말 미로와도 같다. 미궁이 아니다. 미로와 미궁의 차이, 그것은 출구가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 미궁은 어쨌든 출입구가 존재하는 미로이고 미로는 출입구 자체가 없는 미로를 말한다. 한 번 붙들리면 결코 달아날 수 없는 사이렌의 노래 소리와도 같은 곳. 그렇게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가 바로 방현희 작가의 '로스트 인 서울'이다.
미로를 빠져나오려면 어디까지나 먼저 미로의 구조부터 이해해야 한다. 문학이 미로와 같다면 출구란 이해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그대로 이 소설에다 대입해 본다면 서울에서 '로스트'하지 않으려면 서울이란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이해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소설엔 전혀, 아무런 출구가 없다. 읽는 나는 그저 오리무중의 는개 속을 헤멜뿐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지금 살고 있지만 사실은 이 서울을 전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소설 자체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방향을 상실한 감각들로 충만해 있다. 시작을 여는 러시아에서 온 미녀 그렉안나는 자신이 도대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서울이란 곳에 적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다 스스로를 고독 속으로 유폐시켜 버린다. 그렉 안나에게 서울이 도무지 이해불가의 공간으로 보였던 것은 그녀가 이방인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뒤에 나오는 한국인들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듯이 내부인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똑같기 때문이다. 이미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린 그들은 아예 스스로 이해할 수도, 적응할 수도 없는 서울에서 어떻게든 달아나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다. 두번째 이야기, 세컨드 라이프에 나오는 남편처럼 어디로 달아나든 '서울'의 기시감에 빠질 뿐이다. 그 이야기에서 도시들은 그 도시들이 어디에 있든지 서로를 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도시 중정은 한국의 도시 서울을 복제하고 한국의 도시 서울은 중국의 도시 중정을 복제한다. 그 복제의 상호 중층적 교차속에서 마주 본 거울 속에 놓여진 사람이 무한의 잔상으로 분열되듯이 살고 있는 이들 또한 어느 것이 자신의 진짜 실체인지 알 수 없는 유령이 되어 버린다. 해서 도시의 삶은 그저 몽환적일 뿐이다. 유령이 되어 버린 존재들의 정처없는 헤매임만이 가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자주 서울이 아닌 곳을 담는다. 이를테면 중국의 중정이라든지 일본의 후쿠오카 혹은 영국의 북부 스코티시 같은 곳들. 그것은 달아남의 욕망이 도달한 곳이지만 사실은 '다른 곳'이라는 것은 그저 만들어낸 환영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난다. 결국은 이쪽 거울의 잔상에서 저쪽 거울의 잔상으로 옮겨갔을 뿐인 것이다. '달아남'은 유령이 되어버린 자신에게 진정한 실체 혹은 주체를 찾아주고자 함이었지만 그 어디서든 환영의 복제와 파편화된 '나'라는 잔상만 확인할 뿐인 이들의 삶은 결국 파괴된다. 위에서 이 소설이 방향 상실이 감각으로 가득차 있다고 한 것은 그 때문이다. 출구없는 세계. 그것이 바로 이 소설 '로스트 인 서울'이 주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해서, 서울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몽유병 환자로 만들고 있으며 온갖 실체 없는 유령들의 속삭임과도 같은 유혹으로 방향을 잃고 헤매이게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도 생각된다. 어찌보면 서울이란 곳에 살면서 우리가 가지는 욕망이란 내 자신이 너무도 유령같아 보이기에 내가 유령이 아님을 확인시켜 줄 '실체'를 가지려는 집착인지도 모른다. 그 획득의 몸짓이 소설에서 자주 사랑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헤겔도 말했듯 사랑이야 말로 가장 원초적인 나와 타자의 실체 확인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떠남과 떠나지 않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의 실체를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이것이 소설이 진정으로 던지는 문제라고 본다. 방현희 작가의 '로스트 인 서울'은 점점 내재된 존재들을 유령들로 만들고 있는 미로와 다를 바 없는 서울에서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내 실체를 획득하고 확인하고 있는지 그런 질문을 문득 갖게 한다. 방현희 작가가 이 소설을 방향 상실의 감각으로 가득 채웠던 것은 그 질문을 스스로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자기 소설은 그 몫을 다했다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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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방현희
요즘 들어 어머님이나 오라버님이 내 방에 들어오시면 꼭 하는 말씀이 있다. “예전처럼 추리 소설만 있는 게 아니니 보기 좋잖아.” 예스 24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보니까, 추리 소설이외의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이 소설 역시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로 손에 잡지 않을 책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처음 읽는 책인데, 꽤 재미있었다. 지루함이 아닌, 흥미를 가지고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일곱 개의 단편들이 각각의 말하고자 하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른하게, 또 다른 부분에서는 안타깝게. 글은 다양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뭔가에 집착한다. 사랑을, 자유를, 꿈을, 그리고 완벽한 삶을 갖고자 노력하지만 손에 넣지 못한다.
‘로스트 인 서울’의 여주인공은 한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국인 우즈벡으로 돌아가 필요한 인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금발의 백인 미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농간에 휘말려, 재력가의 첩이 되었다가 결국은 홈쇼핑 모델로 살아가게 된다.
돈으로 한 사람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했던 재력가의 행태에 분노했고, 그녀와의 은밀한 만남에만 집착하고 책임을 회피한 또 다른 남자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묵직한 것이 무척이나 씁쓸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였다.
‘세컨드 라이프’는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고민을 했던 이야기이다. 어쩌면 주인공은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짓누르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와보는 곳에서, 마치 진짜로 살았던 것처럼 과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부인이 있는 현재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형의 죽음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 그가, 마음 한구석에서 만들어낸 행복한 결혼 생활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냈을 수도 있다. 결국 그는 환상과 현실을 구별해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탈옥’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목표인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읽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SF 소설이 생각났다.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실험을 하는 박사의 이야기였다. 나중에 그는 머리만 살아있지만,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아마도 이 글의 주인공이 다음에는 무엇을 빼낼까 생각하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 소설이 연상된 모양이다.
‘그 남자의 손목시계’는 가정 폭력을 겪는, 아버지를 절대로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다. 홍길동은 타의에 의해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지만, 이 소년은 스스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어머니를 구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도 힘도 없던 소년. 결국 그는 나름의 복수를 계획한다.
‘후쿠오카 스토리-위급 상황에서의 이별에 관한 섬세한 보고서’는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있다. 결국 그들의 예쁜 추억은 거짓으로 가득한 가식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평소에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아마 그랬다면, 오래 전에 헤어졌겠지.
‘로라, 네 이름은 미조’는 마음이 아팠다.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고, 사랑을 꿈꾸던 여인. 하지만 그녀가 택한 길은 어렵고 힘들었다. 왜 그녀가 그런 습관을 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로 자신을 벌주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상대의 일부를 취함으로 상대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원시시대의 풍습을 선택한 것일까? 하지만 원시인들은 사람을 먹었지, 물건을 먹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장애를 갖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음식이 아닌 다른 것을 먹는 장애가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녀의 그런 심리는 남에게 자신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녀는 행복했을까?
‘퍼펙트 블루-기이한 죽음에 관한 세 가지, 혹은 한 가지 사례’는 음, 마이클 잭슨 생각이 나서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겠다.
책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고, 허무하기도 하면서,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기분도 들고, 묵직한 것이 가슴의 일부분을 누르는 느낌에, 먹은 것이 얹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의미모를 한숨도 새나왔다. 유쾌상쾌통쾌한 기분은 들지 않고, 그냥 뒷맛이 씁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찜찜해서 다시는 안 볼 책 목록에 들어가진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중간 중간에 생소한 어휘들을 보게 되어 놀라웠다. ‘이런 단어도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난 얼마나 무지한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예를 들면 ‘톺다’, ‘착종’ 그리고 ‘짯짯하다’가 있었다. 사전을 뒤져보면서, 신기하고 부끄럽고 그랬다. 음, 난 어휘를 잃어버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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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음과모음 1기 서평단에서 열일곱 번째 받은 책이다. 이 책을 펼칠 때는 부담없는 마음이었다. 한국의 여류작가가 쓴 소설이고, 더구나 단편이 아닌가? 공지영 작가나 김애란 작가 같이 독자를 흡인하는 매력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느긋하게 책장을 넘겼다. 과연 그런 작품이었던가? 내가 이 책에서 느낀 마음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첫 작품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쉽지가 않았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일기처럼 날자가 나오는데 그것이 일정하지 않고 이런 식이다.
어떤 부분은 시간까지 나오고, 어떤 부분은 날짜도 없이 달만 표시되어 있다. 그러면서 그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 또 과거…. 이것이 반복되니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얼마 전에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인『아름다운 폐허』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몹시 힘겨웠는데, 또 다시 이런 작품인가 싶어서 짜증도 났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10여 쪽을 읽으니 내용이 이해가 되고, 무언가 여운도 느껴졌다. 그러나 첫 작품은 약과였다. 일곱 편의 작품 중에 그나마 몰입한 것은 표제작이자 첫 작품으로 나오는 「로스트 인 서울」정도였고, 갈수록 난해한 작품의 연속이었다. 모든 작품이 1인칭 시점인데 전개되는 사건들이 현실인지 꿈이나 상상인지, 화자가 제 정신인지 정신착란증 환자인지 혼동이 될 정도였다. 특히 마지막 작품인「퍼펙트 블루」는 더욱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인공인 M의 피부색이 처음에는 검은색이었다가 흰색으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푸른색이 된다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백인처럼 보이려고 수술을 거듭했다는 마이클 잭슨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둘째, 과거의 서정적인 작품들이 그리웠다. 올해 들어서 유독 이런 류의 작품을 여러 편 만났다. 정신병자의 넋두리나 마약 중독자의 독백 같은 이야기들을…. 그렇다면 현대소설의 시대적인 조류가 이런 식으로 가고 있다는 뜻일까?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나 알퐁스 도데의『별』과 같은 작품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현대를 떠나서 고전이나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개성을 요구하는 시대라고 하니까 글에서도 남과 다른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그런 작가는 우리 문단에서 이상 한 사람이면 족하지 않을까, 라는 푸념도 했다. 아마도 새로운 양식의 작품을 이해하기에 나의 역량은 너무 부족한가 보다.
셋째, 미묘한 매력과 중독성은 느꼈다. 혼란스러우면서도 의외로 집중이 되고, 다음 부분에 대한 호기심이 느껴져서 쉽게 책을 덮지는 못했다. 두세 작품을 읽다 보니 그 다음부터는 이 작가의 작품은 이렇거니, 라는 생각으로 그런대로 적응이 되었다. 독자를 이렇게 길을 들일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고, 작품의 매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방현희 작가의 실험 정신은 소기의 목적을 거두었는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스스로가 비겁해졌다는 자책도 했다. 새로운 형태의 작품도 읽어 보고 거기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 책을 읽는 마음가짐이 성숙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도전 정신보다는 다음에는 읽고 싶은 내용,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것만 찾아 읽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꼬리를 내리고 있으니…, 반성이 필요하다는 독백도 했다.
그렇기는 해도 이 책을 누구에게 선물하기는 힘들 듯하다. 이웃들을 힘들게 했다가 치사는커녕 원망을 들을 지도 모르는데, 공연히 그런 인연을 맺을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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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국의 가홍, 후쿠오카,,, 어떠한 도시든 소설 속 도시와 그 속의 사람들은 자욱한 안개에 휩싸여 어느 길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이리저리 채이며 걸어가고 있다. 방현희 작가의 7편의 단편이 실린 [로스트 인 서울]은 참,,, 우울한 소설이었다. 사실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기 직전 밤 펼쳐든 책이었는데,,, (정말 우연 같은 필연처럼 말이다.) 음,,, 첫 단편 소설인 서울을 배경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그렉 안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스트 인 서울]은 평범한 유학생인 그녀가 우연히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게 되고, 방송관계자 ‘강’의 여자가 돼 고급아파트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된다. 의례적으로 생각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아름다운 여인인 그렉 안나는 방송의 화려함과 강의 내연녀로 포장돼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가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나름의 저항 아닌 저항, 반항 아닌 반항을 꿈꿔보지만, 그녀는 병든 도시 서울의 한 구석에서 도시의 병든 1인이 되어 간다. [세컨드 라이프] 역시 암울하긴 마찬가지였다. 결혼 16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중국 가흥으로 여행 온 ‘나’, 하지만 그는 여행 온 중국의 가흥을 예전에 자신이 형과 함께 살았던 곳이라고 기억하고 그 생생한 추억들을 뒤죽박죽 회상하기 시작한다. 물론 아내는 그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며 핀잔을 하고, 현실을 직시하라 조언하지만, 아내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의 기억 속 추억에 머무르며 형의 투신자살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죄책감을 씻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이렇듯 방현희 작가의 단편 소설 7편은 모두 몽환적인 가운데 현실을 도피하려는 모습이 짙게 배어있다. 온전히 안개에 둘러쌓여 헤어 나오기 힘든 섬처럼 말이다. “그토록 행복했고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아무것도 없는 지금보다 나은 게 아닐까? 지금은 그 삶의 잔여로서 흘려보내고 있을 뿐인데, 이 하찮은 삶을 위해 기억을 버려야 하는 걸까? - 세컨드 라이프, 77쪽 길을 잃은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자신도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을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도심 속 병들어 가고 있는 한 인간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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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방현희의 책은 두번째였다. 이 약간 어둡고 짙은, 마치 허스키한 목소리의 재즈 싱어의 노래같은 분위기의 문체를 어디서 봤더라 하고 생각해보았다 문득 저자 소개에 눈이 갔다. 낯선 이름이었다. 내가 이 작가를 알았던가, 싶었는데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이라는 복잡한 제목을 봤다. 그래, 그 책이었다. 바로 이 문체를 그 책에서 읽었었다. 머리 속이 순간 잘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 방현희가 가진 자기만의 색이 분명해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저자의 문체나 작품세계가 지금의 나에겐 그다지 마음에 잘 들어맞는 편은 아니다. 내 취향과는 별개로 그저, 이토록 분명하게 기억되는 문체나 분위기를 가졌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좋은 일이 아닐까. 자신만의 색을 갖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책을 읽고 있는 모양을 보고 지인은 표지가 참 예쁘다는 말을 몇번이나 했다. 글쎄, 표지 안 쪽의 내용을 본다면, 저 표지의 그림이 들큰한 냄새를 풍겨내는 위험한 식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역시 단편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로스트 인 서울'이었다. 아마,-아마라는 표현은 사실 어울리지도 않을 정도로 분명히-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했던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여성들이 한명씩 패널로 나와 그 주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니까 케이비에스의 '미녀들의 수다', 남희석이 사회를 봤던 바로 그 -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일 것이다. 주인공인 그렉안나라는 인물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온 교환학생이었고, 빼어난 외모로 TV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굴러갔는지 또, 그녀가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이해하고 어떤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지 약간은 얼띄고 치기어린 시선으로 보여준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지독히 냉소적이었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그 이상으로 감정적이기도 했다.
또 다른 단편으로는 '로라, 네 이름은 미조'가 좋았다. 영국인 지인이 있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본 '영국인은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 좀 딱딱해보이고 엄격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라는 개인적인 선입견, 이를테면 영국인 보모의 엄격함에 대한 생각이나 음식의 맛보단 밸런스를 고려하는 딱딱한 사고 등 정말 개인적이고 정확한 이유도 없는 - 좀 비슷하게 느껴져서 읽는 동안 재미있었다. 로라가 영국으로 떠나서 겪는 일들이 너무나 사소하고 하잘 것 없지만 사람 마음만큼은 크게 다치게 하는 것인지 잘 알 법하기도 해서 재미도 있었다. 원래 작고 치졸할수록 그냥 넘기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글쎄, 원하는 것에 대해 무의미한 갈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을 잃은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하게 됐다. 넘치는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부어 매번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만 기웃거리고 마는 안쓰럽고 어리석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것 같았다.
전에 읽었던 '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보다 이 단편집이 더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좀 더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따로 꼽아놓은 단편들 외에는 그럭저럭이었고, 사실 읽으면서 몰입이 안되 애를 먹은 단편도 있었다. 방현희 작가의 책과 세번째로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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