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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때는 바로 전쟁 중이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과 사춘기는 나름의 전쟁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P45
난 사랑이 고체 상태인 줄, 말하자면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 같은 것인 줄 알았다. 이제 난 사랑이 기체라는 걸 깨달았다. 그 기체가 응고되기 위해서는 키스라는 신속한 첨가물이 필요하다. -P50
우리는 사랑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 ‘랑’이라는 두 글자를 쓰지만, 사랑이 정말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 -P78
《숨을 용을 보여 주는 거울에 대하여》는 다니엘 아라스가 《회화의 역사》에서 인용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학자 파올로 토스카넬리가 쓴 신비서의 제목이라고 한다. 이 소설 속의 이야기는 작가 마르탱 파주의 상상력에서 산출된 소산 결과이겠지만, 주인공 이름이 마르탱이듯 감정만큼은 작가의 것이라고 한다. 청소년 시절을 다시 떠올려 보고 그 시간으로부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라져 버린 마리의 사랑과, 홀연히 죽음으로 비어있는 엄마의 자리와,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썩어가는 집과, 살짝 제정신이 아닌 아빠와, 쉽지 않을 것 같은 미래 때문에 마르탱은 고달프다. 생각해 보건대, 나 역시 그 시절을 유난히 고달프게 여겼고 보통에서 벗어난 과잉의 감정 표출을 기억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만이 괴상한 것은 아니며 또한 그러한 마초본능은 오히려 풍부한 정신과 뜻밖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자 했다. 열패감과 절망을 더 힘껏 끌어안게 만드는 훈련과정, 상처가 곧 아름다운 축복과 역설적 치유로 안내되는 순간이다.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마리가 주인공 마르탱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사랑에 빠진 마르탱에게 마리가 먼저 좋아한다고, 사귀고 싶다고 말해놓고선 불과 한 시간 만에 태도를 바꾼다.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사귀자는 말을 듣는 순간, “그래.”로 온통 가득 찼던 도서관은 금세 낙엽처럼 떨어진 재앙의 계절로 둔갑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로에 서툰 아빠는, 잠옷 차림으로 환자를 진찰하는 기이하고도 불량한 상태의 닥터였고, 오늘 아침엔 기르던 개까지 죽었는데, 마리의 말 한마디까지 가중되어 마르탱에겐 끔찍한 대재앙이 되고 말았다. 지붕의 기왓장이 떨어져 나가서 푸른 이끼가 끼는 집에서 살아가느라 터무니없는 액수가 적힌 난방 요금 고지서를 받아도 아빠는 고작 비닐 쓰레기봉투로 기와가 떨어진 자리에 스카치테이프 붙이는 게 고작이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정신이 나간 건 마르탱이 아닌 아빠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빠는, 마르탱에게 매주 수요일 ‘분별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길 원했고, 마르탱은 심리 치료 상담사를 만나러 간다. 마르탱에겐 가장 특별한 친구들, - 학교에서 가장 이상한 취급을 받는 조롱의 표적이지만 - 부적응자 클럽이 있다. 전자 기타로 연주하지 못하는 곡이 없는 프레드, 대단히 창의적이고 우주에서 가장 예민한 에르완, 수학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내는 염세주의자 바카리,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우리의 주인공 마르탱이다. 마리의 색조가 마르탱의 일상에 떠돌고 있지만 그 사랑은 분노가 대신하면서 심술궂고도 기분 좋게 끝을 맺는다.
이 책을 마르탱이 《숨을 용을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부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제목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둘째, 삶도 사랑도 여자도 결국 중요한 주제는 해석되지 못한 오래된 이탈리아 책 제목과 같이 그 깊이와 본질은 완벽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이 이야기가 결론적으로 숨은 용(마리)을 보여 주는 거울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많이 있다. 우리는 그 거울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불완전한 감각이 (혼란스러운 마음과 함께) 우리를 속이려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용은, 마리이자 사랑이고, 마르탱이 살아가면서 극복해야 할 죽음과 이별, 총체적 삶의 명제들로 풀이된다. 분명 주인공 마르탱은, 시종일관 사랑에 대한 상실로 인해 절망하고, 현실의 고통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웃음을 유발하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도 상징적인 가치를 추구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얻는 것 이상으로 잃어버리는 것 또한 많은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상실 역시 삶의 일부로 인식해야 하며, 잃어버린 것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 중요한 이유다. 아름다운 것은 부족함 속에서 태어나기도 하므로 자기 안의 비어 있는 부분에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은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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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남편이 첫사랑이라고 말은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겐 언제나 첫사랑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엔 짝이 그랬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교회 오빠가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스물살엔 선배가 첫사랑으로 다가왔다. 그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었고, 사랑외에는 인생에 어떤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때 느꼈던 가슴앓이에 대한 치유를 난 어떻게 했었을까? 어른들 말씀처럼 시간이 약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금새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던것도 같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거린다. 하지만 여전히 황순원의 <소나기>나 알퐁소 도데의 <별>을 기억하는 이유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때문일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은 있는데, 아련함과 가슴앓이로 엉망이 된 마음에 치유는 어떻게 했을까?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라는 얄궃은 제목이 붙어있는 가벼운 책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씨~익' 웃게 만들다가 '아~'하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100페이지도 안되는 이 가벼운 책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마르탱에 삶에 마리가 들어왔단다. '그 애에 대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다른 여자애들의 머리와는 조금 다르고, 몸짓은 조금 느리거나 조금 빠르고, 고양이 눈을 가진 마리에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어도 절대 그 속에 섞여 들지 않고,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한 방울의 피처럼 주위로부터 도드라져 보이고, 마리가 나타나면 온 세상이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p.15)라고 마르탱은 이야기 한다. 분명 이건 사랑이다. 만 열세살이 된 소년에게 다가온 사랑. 마리가 마르탱에 삶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것은 변하기 시작했을것이다. 똑같은 하늘도 똑같은 공기도 새롭게 태어났을테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사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버렸다.
나는 더듬거렸다. 심장 박동이 몹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화끈거렸다. 나는 “그래.”라고 말했다, 그것도 셀 수 없이.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 순간 도서관은 온통 “그래.”로 가득 찼다. 문으로, 창문으로 “그래.”가 넘쳐흘렀다.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p.18)
“너와 사귀고 싶어” 마리의 한마디는 마치 심장을 관통하는 기차처럼 마르탱의 주위를 맴돌았다. 꽉 잡은 두 손과, 마주치는 두 눈빛. 마르탱에게 잊을 수 없는 황홀한 사랑은 도서관의 책 사이사이 가득히 스며들고도 넘쳐 도서관 창문을 넘어 흘러내렸는데, 60분 후에 사귀고 싶다는 말을 취소한단다. 이런걸 설상가상이라고 해야한다. 왜냐하면 잠옷을 입고 출근하는 좀 이상한 아빠, 기지개를 켜다 오늘 아침 죽어버린 사랑하는 개. 이 가을, 다른 사람들은 바삭바삭한 낙엽을 밟고 있지만 물에 젖은 낙엽을 짊어지고 힘들게 서있는 중학생 마르탱에게 다가온 60분간의 연애후에 찾아온 이별은 이제 마르탱의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마르탱에게 사랑과 이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이제 마르탱이 이별 극복기를 들려준다.
딱 열 세살, 영락없는 그 나이에 아이들 같은 프레드, 에르완 바카리는 마르탱과 함께 '부적응자 클럽'에 멤버들이다. 흔한말로 베프다. 베프에겐 비밀이 있을 수가 없으니 60분간에 연애 이야기 시작.. 두근두근 귀 쫑긋세우다가 키스도 못해보고 차였다는 말에 마리는 아이들에게 괴물이 되어버린다. "여자애들이 그렇다니까. 음악도 다 그런 내용이잖아. 여자들은 이해 불가능이라고"(p.35). 오해가 있을꺼라고 이야기하는 녀석, 마리가 잔인하다고 이야기하는 녀석. 그럼에도 여전히 마리를 사랑하고 있지만 마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so cool할 수 밖에 없는 마르탱. 이와 중에 아빠는 아침에 죽은 개에 장례식 축제를 치러야 한다고 하고. 이별은 슬픈데, 해야할 일이 많다. 60분간에 달달하고 짜릿한 경험이 평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마르탱은 자신이 나비였으면 60분은 아주 긴 시간일테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리가 어쩌면 용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 제목이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일까? 마르탱은 참 친절하게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첫째, 제목이 아름다우니까. 둘째, 제목을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셋째, 마리처럼 매력적이고 섬세하며 영리한 소녀가 용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는 힘이들기 때문이란다.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었다"는 마르탱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다가도 '풋~'하고 웃게 되는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얻지만, 삶이란 또한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다. 이 모든 과정은 마음속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마르탱은 자신이 구멍난 치즈 덩어리 같다고 표현을 하고 있다. 열세살 소년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60분간에 연애와 긴 이별을 통해 본 사랑 이야기 같지만, 그안엔 인생이 들어있다. '용'과 '거울'에 대한 '은유'에 대한 이야기인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그래서 책에 무게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구멍이 잔뜩 난 치즈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내가 자라 어른이 되어 갈수록 나의 내면이 풍선처럼 부풀어 새로운 공간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날 것 같았다. 그 빈자리에 정신이 아찔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그 공간으로 떨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p.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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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위한 테라피... 첫사랑의 설렘과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된다는데 이젠 딸아이의 첫사랑이 제겐 더 설레고 기다려지는 건 뭔지 모르겠어요.
저자는 자신과 같은 이름의 주인공 마르탱의 이야기를 하는데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상상의 이야기지만 웬지 모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감정이입을 한 듯 합니다. 마르탱은 도서관에서 좋아하던 소녀 마리에게 고백을 받지만 바로 대답도 못해보고 60분만에 첫사랑은 끝나버리죠. 요즘 애들 보면 바보같다고 할 지 모르겠으나 전 왜이리 순수하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얼마나 좋으면 말도 못할까 싶습니다. 5년전 돌아가신 엄마때문인지 잠옷바람에 진료하시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 아버지와 사는 마르탱은 7년을 함께 한 개의 죽음도 지켜봐야 하는데요. 엉뚱한 아버지가 제안한 동네 사람과 함께하는 개의 장례식 파티를 합니다. 짧은 순간의 이별, 그리고 영원한 이별 조금은 다른 이별이지만 아이가 받을 충격은 크겠지요. 우리딸 기르던 햄스터가 하늘로 갔을 때 통곡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우리딸도 그 뒤로 마르탱의 아빠처럼 무엇인가를 기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더라구요. 장례식 축제를 하며 덧없는 인간의 삶과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생명력을 동시에 생생하게 느겼다고 하는데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아름다운 첫사랑의 이야기가 아닌 이별의 이야기라 어두운 면도 있지만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 가는 소년의 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신의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닫고 이겨 내지 못하면 아무도 꺼내주고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도 현실을 깨닫고 힘들고 아프지만 조금씩 커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얇은 두깨의 책이지만 마르탱 파주의 시적인 투명함을 가진 문장 속에서 우울한 위트와 삶에 대한 관조적 지혜들이 반짝거리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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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텡 파주는 참 특이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다. 특이라 하는 것은 유전적인 면과 후천적인 기질이 더해져서 이루어지는데, 마르텡 파주의 사고는 문장 곳곳에서 드러나듯이 슬픔을 승화는 시키되 그의 살아온 이력으로 인해 기쁨의 표현으로 대체시키지는 않고, 곧바로 삶과 죽음의 본질적인 면을 연결시키는 점을 볼 수가 있다. 그의 문체는 부드러우며 깊고 도드라지면서도 절제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내면이 가공할 만큼 성장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의 문장은 철학적이면서도 시인이 낼 수 있는 함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면모를 겹쳐서 표현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장편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가 시인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충분한 미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암시를 해 주고 있다고 본다.
이 책, '숨은 용을 보여 주는 거울'은 제목 자체로도 독특하지만 그가 이 책의 제목을 그처럼 명명한 세가지의 이유를 알게 되면 역시 다소 남다르거나 엉뚱한 면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책의 줄거리는 주인공이 정신적 의지처이며 사랑이 깃든 성장의 구심체가 되어주어야 했던 엄마의 죽음 이후, 그가 기댈 또다른 의지처인 기르던 개의 죽음이 잇다른 이후부터 시작이 된다. 남은 것은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보이며 주인공과 어슷비슷한 엉뚱 면모를 가지고 있는 아빠와 세 명의 친구, 바카리, 프레드, 에르완뿐이다. 이 세명의 친구들 역시 남들로부터 주인공과 비슷하게 취급받는 엉뚱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한 명의 엉뚱함이 세개가 되니 그 힘은 절묘한 하모니로 개성적인 하나로 완성되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첫사랑을 겪었고, 그 첫사랑 마리의 착각인지 변덕인지에 의해 60분만에 깨져버림으로 인해 사춘기 속 절망으로 탄생이 된 것이다. 절망스런 주인공의 환경 속에 설상가상으로 절망이 보태어지니, 그것은 미래에 단단한 반석이 될 수도 있으나 현재로 볼 땐 과히 고통의 나날이요, 주인공 갈등에 불을 피어 놓은 경우가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주인공과 같은 엉뚱하고 개성적인 세 사람이 보태어짐으로 인해 첫사랑 마리가 용인 것으로 거울에 비치어 졌다. 그럼으로 인해 주인공은 마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주인공이 볼 때 아빠는 뭔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존재로 비추어 질 수 있지만, 독자 입장에서 볼 땐 그가 식솔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적인 면을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상황이므로 차후 주인공의 독특함이 완성되어지는데 결정적인 몫을 해 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책 내용 중에 눈에 박혔던 문장이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는 존재하며 절망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책의 맨 뒷부분에 쓰여진 옮긴이의 말 중에,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에 구멍이 생기는 걸 너무 두려워 말길 바란다. 구멍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마음을 이렇게 흔든 작가 자신도 마음속에 빈자리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가치 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저자와 옮긴이의 이 두 생각은 정말 멋진 표현이지 않은가. 사람은 온전할 수 없는 존재이다. 온전치 못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온전치 못한 존재에게 빛이 발해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본보기가 되고 타인들의 삶 속에 삶의 본질이자 정의로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아름답고 멋진 작품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작품인데, 그 속에 충분히 많은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해 주었다고 생각을 하며, 그로인해 마르텔 파주의 작품과 세계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고 할 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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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맞는 이성 친구와 연애를 하는 시간은 꿀보다 달콤하고 행복할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그 어떤 것도 둘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는 천국같은 시간??? 하지만 세상은 항상 달콤하고 아름답도록 내버려지 두지 않는다. 영원할 것만 같던 시간은 어느 새 끝이 나고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선사하는 이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열 네살 소년 마르탱에게 드디어 고백을 해 온 여친 '마리'가 있다. 원자폭탄에 관한 보고서를 쓰던 도서관에서 마리는 마르탱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너무 당황한 마르탱은 그래, 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겨우 마리를 좋아한다는 말만 하고 키스도 못 했다. 그 때문일까? 마리는 60분만에 아무래도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휭하니 나가버린다. 아무리 속전속결이라지만 한 시간 동안의 러브스토리는 해도해도 너무 한 것 아닌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르탱은 머리도 멍하고 힘도 없고 아무 것도 하기 싫다. 게다가 함께 7년이나 살았던 개마저 죽고 위로해 줄 엄마도 없다. 아빠는 5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난 후로는 오히려 마르탱이 보살펴야될 정도로 엉뚱해지고 말았다. 잠옷을 입은 채 진료를 보는 의사에게 자신을 맡기러 오는 환자도 분명 정상이 아니겠지만. 프레드, 에르완, 바카리가 없었다면 마르탱은 그 힘든 시간을 제대로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더러운 나의 불행 너에게 덜어 줄게>에 이어 프레드와 에르완, 바카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학교와 사회는 부적응자라는 이름으로 조롱하고 끼워주지도 않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다. 마르탱의 아빠는 죽은 개를 위해, 아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신과 아들을 위해 '장례식 축제'를 제안하고 마르탱은 친구들과 함께 대문 앞에 개의 시체를 묻으며 죽음을 또 하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 들인다. 그렇다고 죽음이 애완동물처럼 절대 온순해지지는 않겠지만. 마르탱은 슬프다. 개 때문만은 아니라, 사라져 버린 마리의 사랑때문에, 엄마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때문에, 곰팡이 피는 집 때문에, 살짝 제 정신이 아닌 아빠와 쉽지 않을 게 분명한 미래 때문에 눈물이 솟구친다. 하지만 아프다고 슬프다고 할 수 없어서 더 슬프고 아프다. 작가 특유의 감성적이고 담담한 문체가 또 한 번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인간의 내면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작가의 솜씨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위트 넘치는 문장 속에 드러나는 슬픔과 아픔에 닿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다. 작가와 이름이 동일한 마르탱은 작가의 분신이 되어 어릴 때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책을 읽는 독자를 치유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며 절망하는 편이 낫고, 겁을 내 도망치는 것보다는 부딪혀서 깨어지는 게 낫다는 말처럼 마르탱은 마리와의 기억때문에 트라우마가 될 뻔 했던 도서관으로 친구들과 함께 용기를 내어 찾아간다. 60분 만에 끝난 사랑은 마르탱에게 분명 상처지만 성숙해지는 시간을 갖게 하기엔 충분했으니까. 좀 더 오랜 시간을 사겼다면 훨씬 더 많이 성숙해질 수 있었을까? ^^;; 작가는 마르탱의 입을 빌어 <숨은 용을 보여 주는 거울>이라는 책 제목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없지만 '마리'라는 약삭 빠르고 영악한 용을 통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듯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살다보면 숨어 있는 용들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마다 아프고 상처받는 내 모습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니... '마르탱 마주'의 책은 마음을 치유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작가의 이력에서 묻어나오는 경험과 따뜻한 에너지가 와닿기 때문이리라. 많은 청소년들이 '마르탱 마주'의 책을 통해 힐링되고 위로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용'을 피하지 않기를,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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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마르탱 파주
이 책의 소제목은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이다. 청소년기에 겪을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조율하고 치유하는가는 앞으로의 삶속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중요한 한 요소일 것이다. 그 시기는 모두 다르겠지만 사람을 만나 좋은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끌어가는 것은 그리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다. 특히 학교내에서 불행의 한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주인공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 마르탱의 삶속에 마리가 들어왔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같은 반이 된 이후로 마르탱은 마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자연과학 과제를 같이 하게 되고 둘은 도서관 하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과제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리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사귀고 싶다고 말하자 나는 그 말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한다.
나는 더듬거렸다. 심장 박동이 몹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화끈 거렸다. 나는 "그래"라고 말했다. 그것도 셀수 없이.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 순간 도서관은 온통 "그래"로 가득 찼다. 문으로, 창문으로 "그래"가 넘쳐흘렀다.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p18)
마리는 키스를 받기 원하는 듯 했으나. 나는 감히 그러지 못하고 둘은 한시간 동안 과제를 준비한다. 과제를 마치고 일어설때 마리는 다시 한마디를 한다.
""있잖아, 우리는 아무래도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나은것 같아."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 속의 원자 폭탄이 하나하나 차례로 터지며 나를 가루로 만들었다. (p19)
이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래."는 모두 시들어 내 주위로 낙엽처럼 떨어졌다. 공기가 고체가 되어 폐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듯 숨 쉬기가 거북했다. 바닥에 누워 천 년 동안 그대로 있고 싶었다. (p20)
그뒤 마르탱의 집 개가 죽게되고 아빠는 개의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마르탱은 친구 바카리, 프레드, 에르완은 마르탱이 차인 이유를 나름 분석하며 마르탱을 위로해준다. 결국 마르탱은 마리가 사실은 섬세하고 영리하며 약삭빠른 용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1시간 만에 차인 그 사건은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이 된것이다.
아빠의 개 장례식을 통한 독특한 이별 방식은 무사히 끝이 났다. 마르탱도 나름 그 사건에 대한 정리를 끝내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마리와 사귀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달라졌을 것이다. 성장하고 뭔가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의 슬픔도 헛되지는 않다. 헛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은 이 일로부터 분명 영향을 받을 것이고 나는 달라질 것이다. (p82)
짧은 내용 중에서도 주옥 같은 문장들을 남기는 것이 마르탱 파주의 특징인것 같다. 처음 그의 작품 <나의 불행 너에게 덜어줄게>를 볼때는 너무나도 적은 글밥, 거기에 상당히 철학적 의미의 문장들에 적잖이 놀랐었다. 분량이 적어도 초등에게는 말의 의미 하나하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청소년 책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여기에 개 장례식은 뜬금없이 나오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아빠의 이별 방식 이었다.
나는 아빠를 안다. 아빠가 벌이는 이상한 일 뒤에는 항상 어떤 의미가 숨겨져있다. 나는 아빠가 우리 개를 대문 앞에 묻음으로써 죽음을 길들여 보려 했다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죽음은 절대 애완동물처럼 온순해지지는 않을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빠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에 옮겼다는 데 감사한다. 이 무덤은 우리의 일상에 죽음을 물리적으로 새겨놓았다. 이제 죽음이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p58)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마르탱은 마음의 치유를 받고 자신을 스스로 인정해주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르탱 파주의 작품은 철학적이다. 섬세한 문장력은 자꾸 들여다 보게 되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거기에 조금은 비주류인 청소년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은 그 자신의 특이한 이력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런 이력 때문에 그의 글이 더 이해가 되고 빛나게된다.
많은 이들에게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책이지만 나는 이책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표지그림이 책 내용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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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 Traite sur les miroirs pour faire apparaiitre les dragons>, 상실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 Written by. DdAm* 은유로써 삶을 말하는 책<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제목에서부터 기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숨은 용은 무엇이며,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대체 어떠한 형체를 갖추고 있을까 등에 대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제목 전체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정상이다. 이유는, 작가 자신조차도 이 글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사에 의하면, 책 제목에서 등장하는 '용'이나 '거울'은 현실 이면에 숨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에 대한 은유라 하는데 물론 이 말도 맞지만, 책을 읽는 독자에 의해 '용'이나 '거울'의 정의는 달라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책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소설 속에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함께한다는 점이다. 가령, 주인공 '마르탱'의 삶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다. 어머니를 잃었으며 부인을 잃은 남편인 마르탱의 아버지는 의사임에도 잠옷을 입고 환자들을 돌본다. 오히려 어린 마르탱보다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능력이 떨어져보인다. 기지개를 켜다 오늘 아침 죽어버린 개, 게다가 고양이 눈을 지닌 아름다운 소녀 '마리'에게 사랑고백을 받았지만 육십 분이라는 짧은 시간 뒤에 그 고백은 철회됐다는 것. 짧은 시간동안 사랑의 상실을 겪은 마르탱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나름의 다양한 행동을 취한다. 그 상실의 극복과정 속에서 마르탱은 '인생'을 배워나간다. 결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만이 상황을 조절할 수 밖에 없다. 이상한 행동들로 괴짜로 불린다든가, 그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내든가 하는 모든 결과는 결국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타인이 아닌 자신만이 삶 곳곳에서 만날 수 밖에 없는 상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성장'해나간다는 것이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알겠지만, 이 책의 저자 '마르탱 파주'와 소설 속 주인공인 '마르탱'은 동명이다. 하지만 저자는 완벽한 자서전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삶이 어느정도 반영된 것이 이 책의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비단 이 책 속의 마르탱은 작가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상실을 경험한 바 있다. 작가가 아버지를 여의고, 소설 속 마르탱이 어머니를 여읜 것처럼 우리가 부모를 여의는 것은 아닐지라도 가족을 여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한, 소설 속 마르탱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랑했던 연인도 잃었을 것이다. 삶에 있어 '상실'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것을 딛고 일어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실이 주는 '고통'에만 사로잡힐 뿐, 상실이 주는 '깨달음'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말이 이 책을 제대로 요약해준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상실도 삶의 일부니까.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것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렇다. 상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는 상실, 아픔, 고통, 우울 등 부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사랑, 행복, 가족, 친구 등 긍정적인 면들도 존재한다. 부정적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듯 우리는 우리 스스로 긍정적인 면들을 통해 성장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마르탱은 자신의 이별을, 그리고 상실을 '구멍 뚫린 치즈'에 비유한다. 구멍은 커질 수도, 혹은 메워질 수도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의 마음먹기로부터 기인된다. 저자는 청소년들에게(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꿈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상실이 주는 가치에 대해서도 재고해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책을 다 읽어도 기어코 등장하지 않는 용과 거울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는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에 대한 저자의 세 가지 이유들 중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 마음에 든다. '내 생각엔 삶도, 사랑도, 여자도, 결국 중요한 주제는 전부 이런 식인 것 같다. 우리는 사랑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 '랑'이라는 두 글자를 쓰지만, 사랑이 정말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감정과 존재에 책 제목을 붙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다. 삶과 죽음은 우리가 그 깊이와 본질을 완벽히 알기는 어렵다. 아주 옛날 이탈리아어로 쓰여 있던 번역하기 어려운, 아빠 서재에 있던 책처럼 말이다.' 그렇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면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책 제목, 그리고 우리의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의미를 찾아 나선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숨은 용'은 '나의 찬란한 미래'에 빚대보고 싶다. 그리고 '거울'은 물체 자체가 갖고 있는, 그리고 내포하고 있는 의미 그대로 '자아상'으로 해석하고 싶다. 결국 모든 상황에서도 나의 찬란한 미래를 비춰주는 것은 나 자신에서 기인된다는 것. 이 세상 모든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부여돼 있다는 것. 나의 잿빛 쌓인 거울이 아닌 찬란한 거울을 위해 늘 내 마음을 갈고 닦아야 겠다는 것. 이것이 내가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을 읽으며 느낀 점이다. 비록 87페이지의 분량에 불과하는 짧은 소설이지만 이 책 속에는 다양한 은유와 상징, 그리고 시적인 표현들이 대거 등장한다. 읽음 자체가 환상이다. 이 책은 사랑, 가족, 친구와의 우정 등의 다양한 소재를 빌어 '삶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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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아름다움과 함께 뭔가 슬픔을 생각나게 한다. 그만큼 순수하고 아름다우면서 이루어 지는데 어려움이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어른이 되어 만나는 청소년을 위한 성장 소설은 나의 어릴적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울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것 같아서 언제나 반갑기만 하다.
본격적으로 <숨은 용이 보여주는 거울>은 제목과 전혀 안 어울리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애써 제목으로 선정된 이유가 그저 아름답기 때문이란다. 마르탱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마리, 그리고 정말 마리를 좋아하는 마르탱이 제대로 고백도 하지 못하고 1시간만에 결별을 한다는 마리의 통보는 너무나 황당하기만 하다. 그리고 마르탱이 느끼는 좌절감은 그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죽음과 5년전에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불행은 같이 온다는 사실과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마르탱 자신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이들이 곁을 떠나버리는 허전함을 느낄수 있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더 이상해진 아빠의 모습 또한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인지고 모르겠다. 마르탱이 현실의 불행을 벗어나기위해 친구들과 함께 서로를 이야기하고 진짜 마리가 떠난 이유를 알기위해 마르탱이 이별를 통고 받았던 가고 싶지 않는 도서관을 찾으며 마리가 진짜 숨어있는 '용'임을 느낌다. 그리고 자신을 떠나지마라는 아빠의 모습에서 정말 엄마의 죽음에 자신보다 아빠가 더 힘들어 한다는 것을 마르탱도 알 수 있었다. 아직은 미완성이인 마르탱이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전만으로도 더 멋진 결과를 예상할 수 있듯이 아직은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시기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많은 도전을 이끌어낸다.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라는 소제목으로 만나게 된 이책은 솔직히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자라나는 청소년인 울아이들이 한번쯤은 느끼고 해결하기 위해 도전해보아야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내용이다. 가볍게 읽어나가면서 자신의 힘든일에 벗어나기 위해 도전할수 있는 힘을 길러 나가기를 바라는 맘에 울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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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위한 테라피. 이 문장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마르탱 파주는 이제는 아득해져버린 청소년 시기의 설렘, 좌절, 슬픔, 기쁨을 멋부리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울리고 때로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문장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상처받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마르탱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오랜만에 떠올릴 수 있었다. 순수해서 더 쉽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마르탱처럼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졌을지...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이 책을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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