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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묘청의 난을 재구성, 정지상과 김부식의 한판 대결을 보았다
"『최후의 결전』묘청의 난을 재구성, 정지상과 김부식의 한판 대결을 보았다" 내용보기
학교 다닐적에 역사 시간에 배웠던 '묘청의 난'을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만났다. 고려시대, 서경 출신의 묘청은 풍수지리설에 의거, 개경의 지덕이 쇠약한 때문에 고려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판단, 서경 출신의 정지상과 백수한 등의 지지를 받아 당시의 왕이었던 인종에게 서경으로 천도를 옮길 것을 제안하였다. 인종은 서경의 명당인 임원역에 '대화궁'을 짓게 하였고, 반면 경주
"『최후의 결전』묘청의 난을 재구성, 정지상과 김부식의 한판 대결을 보았다" 내용보기

학교 다닐적에 역사 시간에 배웠던 '묘청의 난'을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만났다.

고려시대, 서경 출신의 묘청은 풍수지리설에 의거, 개경의 지덕이 쇠약한 때문에 고려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판단, 서경 출신의 정지상과 백수한 등의 지지를 받아 당시의 왕이었던 인종에게 서경으로 천도를 옮길 것을 제안하였다. 인종은 서경의 명당인 임원역에 '대화궁'을 짓게 하였고, 반면 경주 출신의 김부식은 서경천도계획을 극구 반대하였고, 인종은 서경천도계획을 단념하고, 묘청은 반란을 일으켰다.

 

 

인종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했던 이자겸의 난을 비롯, 우리 역사서에 있는 난들이 왕권을 도전하는 난들이 있었던데 비해, 묘청의 난은 왕권을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라고 지었으며, 새로운 왕을 옹립하지 않았다. 이는 새로운 왕을 세우기보다는 현재의 인종을 왕으로 세우고, 단군 왕검이 나라를 세웠던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자 했던 것이다.

 

  

『최후의 결전』은 묘청의 난을 재구성한다.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고조선을 세웠던 단군 왕검의 뜻을 이루어 북방으로 나가려 했고, 자주적인 고려를 찾고자 한 정지상과 중국의 유학사상을 바탕으로 지금의 고려를 유지하고 싶은 김부식의 한판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고자 한 일이었다. 서경파와 신라 출신인 김부식의 동경파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서경파인 정지상은 운명을 바꾸려 했고, 동경파인 김부식은 권력을 지키려했다. 묘청이 뜻이 아무리 위대하였다고 해도, 그는 대결에서 패한자다. 묘청의 난이 끝난 후 김부식은 승승장구했고, 인종의 곁에서 다시 권력을 그러쥐었다.

 

 

고려의 권력 구조가 개경 세력과, 개경 세력을 견제하는 서경 세력으로 인해 권력이 균형을 이루었다면, 묘청의 난으로 인해 묘청과 함께 서경천도계획에 참여했던 정지상 등이 죽고나서는 개경의 문신 세력들이 독주를 하게 되었다. 힘이 없던 인종의 곁에서 김부식등의 문신세력들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여겼고, 문신 귀족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문제들이 후에 무신 정변을 일으켰다 하니, 권력을 향한 욕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정지상과 김부식의 대결을 그린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역사를 있는 그대로 써낸 역사서적인줄 알았다. 묘청의 난을 일으켰던 배경과 정지상과 김부식의 대결을 역사서로 써냈다면 역사의 진실을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이어서 더 흥미진진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예를 들면 정지상의 여인을 가상의 인물로 내세웠던 점이 그랬다.

 

 

아이들이 어렸을때 그토록 읽어주었던 삼국사기도 이긴 자의 역사를 다르게 쓰기였던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이처럼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다. 기록을 남길때 자신들이 했던 잘못은 슬쩍 빼버리고, 역사를 새롭게 쓰기도 한다. 이런 면을 이 소설에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역사서를 읽는다는 것은 역사를 새로이 보는 시각을 열어주는 일인 것 같다. 잊고 있었던 역사적 지식을 기억해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6.07.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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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후의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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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바로 얼마전에 읽었던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http://melaney.blog.me/50169070867 라는 책이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를 위한 기록이라 하였지만 역사를 사대주의에 맞게 왜곡하려 한 승자들의 역사 조작은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이 책은 국사 시간에 우리가 배웠던 서경 천도설을 주창한 묘청의 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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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바로 얼마전에 읽었던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http://melaney.blog.me/50169070867 라는 책이 떠올랐다. 역사는 승자를 위한 기록이라 하였지만 역사를 사대주의에 맞게 왜곡하려 한 승자들의 역사 조작은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이 책은 국사 시간에 우리가 배웠던 서경 천도설을 주창한 묘청의 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에 앞서서 이자겸의 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책에 그려진 인종의 모습은 참으로 심약하고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여러 목숨이..아니 수백, 수천, 수만의 목숨이 없어지기 일쑤였는데 강력한 왕권을 갖지 못했던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흔들렸고, 그로 인해 소중한 인재들을 잃어나갔다.

 

단지 서경파 정지상과 개경파 김부식의 대립만이 그려진 책이 아니었다.

삼국사기의 저자로 알려진 김부식에 대해 교과서와는 다른 모습을 엿볼수 있는 글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예전에 배웠던 교과서 속의 삼국사기와 묘청의 난 등을 다시찾아보고 싶었지만 오래전이라 교과서가 남아있을리 만무하였다. 아쉬운대로 네이버 캐스트 등을 찾아 보니 묘청의 난, 정지상, 삼국사기 등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었다.

정지상과 김부식은 놀랍게도 시에 있어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실은 정지상이 훨씬 더 한수위인 ) 그런 사이였다 한다. 훗날 정지상을 제거한데 있어서도 김부식이 그의 재능을 시기하여 죽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한다. 또  <백운소설>에 그려지기로 김부식은 이후에도 정지상 귀신이 나오는 악몽을 예사로 꾸며 그의 시를 정지상이 고치기도 하는 등의 일화가 담겨있기도 하였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책에서도 정지상은 서경이 낳은 최고의 천재로 나온다. 서경은 개경인들에게 천시받는 곳이었다. 그래서 서경 출신인 그가 장원급제를 하고서도 등용되지를 못했었다. 뒤늦게 어찌어찌하여 어렵사리 등용된 그와 달리 김부식은 송나라 황제에게까지 가서 <자치통감>을 직접 하사 받은 적이 있었고 이후에 송과 유학에 더욱 단단히 신봉자가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자신과 동생의 이름 역시 소동파, 소동철의 이름을 따서 짓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는 꽤 유명한가보다. 김부식 편을 찾아보아도 그가 자치통감을 하사받고 송나라 휘종의 극찬을 받았다 되어있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편에서 비슷한 일례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일본에 대한 충심이 높아진 사람이 한국의 유명한 사학자가 되고, 최고 대학 교수가 되어 비슷비슷한 제자들을 양성해냈다는 이야기 말이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나라가 굳건히 설 수 있는 법인데, 그 뿌리와 기강을 세워야하는 역사학자 자체가 잘못 물들어 있을 거라고는 (독립국가라는 나라에서 말이다.)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풍수 사상을 바탕으로 개경에서 서경으로 천도를 주장했던 묘청의 난은, 왕을 바꾸는 난이 아니었다.

유교 중심의 중국 사대 주의에서 벗어나 단군 신화를 바탕으로 한 하늘 아래 떳떳한 우리 나라였던 천자국으로써의 조선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바램이었다.

 

이 소설은 작가의 허구가 많이 들어간 역사소설이었지만, 묘청의 난과 정지상, 김부식 등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작가가 쓴 책이라 한다.

신채호는 묘청의 난을 두고,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할 수 있었을거라 말하였다 한다.

 

김부식이 서경 사람들을 죽여없애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서경역적이라는 말을 새겨 이를 갈았을만큼 그들이 정말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겸의 난과 더불어 묘청의 난까지. 한 왕이 집권하던 시대에 참으로 많은 피바람이 불었구나 싶다.

그리고, 고려가 중화주의와 유학에 휘둘리지 않고, 일찌감치 독립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더라면 조선시대의 역사, 그리고 지금의 현대사 역시 많이 달라져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서경 전역(戰役)은 낭불양가(郎佛兩家) 대 유가(儒家)의 싸움이며, 국풍파(國風派) 대 한학파(漢學派)의 싸움이며, 독립당(獨立黨) 대 사대당(事大黨)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였던 것이다. 이 전역에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하였으므로 조선사가 사대적ㆍ보수적ㆍ속박적 사상, 즉 유교 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ㆍ진취적 방면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 난을 어찌 1000년래 제1대 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정지상이 묘청과 함께 추구했던 서경 천도 운동은 당시 상하층에 유포되어 고유 신앙으로 자리했던 풍수도참설에서 비롯하였다. 풍수도참설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고려 왕조의 지배 이념이었던 유교 사상과는 달리 풍수도참설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체질화된 전통 문화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 지배 계층의 견제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묘청을 비롯한 서경 세력의 주장에도 무리가 없지 않았다. 금국 정벌도 당시의 국제 정세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서경 천도의 당위성을 풍수 사상에만 의존했던 것도 문제였다. 묘청의 난이 실패로 돌아간 뒤 고려 사회는 표면상 평온을 되찾았으나, 그 반란이 고려 사회에 끼친 영향은 컸다. 

 

출처: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북한, 신정일, 천년래의 대사건 묘청의 난 중에서

 

 

 

[백운소설]이 전하는 알력은 이제 정지상의 사후(死後)까지 이어진다. 지상이 부식에게 피살되어 음귀(陰鬼)가 된 다음, 어느 봄날 부식은 느꺼운 기분으로 한 구절 시를 지었다.

버들 빛은 일천 가닥 푸르고   柳色千絲綠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구나    桃花萬點紅

 

정연한 대구를 이룬 득의의 구절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 귀신이 나타나 부식의 뺨을 쳤다. 일천 가닥이니, 일만 점이니 잠꼬대 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버들가지가 천 개인지 세어보았으며, 복사꽃 봉우리가 만 개인지 헤어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쳐준다.

버들 빛은 실실이 푸르고     柳色絲絲綠
복사꽃은 점점이 붉구나      桃花點點紅

 

실인즉 그렇다. 버들가지 세겠다는 것 아니며, 꽃봉오리 헤아리겠다는 것 아니다. 부식으로서도 그만큼 많다는 표현을 얻고 싶었는데, 천사(千絲)를 사사(絲絲)로 바꾸고, 만점(萬點)을 점점(點點)으로 바꿔 놓으니, 시의 품격도 높아지고 입에 달라붙듯 읽기도 좋다. 역시 시를 두고 부식은 지상에게 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식은 더욱 마음속으로 지상을 미워하였다.

 

 

 

그가 그대로 시인이었더라면

 

한시 강의를 하는 선생들은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이 이야기로 김부식과 정지상이 숙명적 라이벌이었음을 알려주고, 더 멋진 시의 모범과 시 고치는 일의 요령을 가르쳐준다. 어쩌면 후자의 경우가 더 큰 목적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을 한방에 때려눕히는 통쾌한 사건일 뿐이다.   

 

사실 정지상은 인종 5년(1127) 좌정언(左正言)으로 있으면서 척준경(拓俊京)을 탄핵하여 유배 보냈다. 서릿발 같은 그의 칼날이 잘난 척하는 권신 귀족을 베어내니 모든 보통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다. 게다가 그는 시를 잘 쓰지 않는가.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로 시작하는 ‘대동강(大同江)’은 천하를 울린 명편이다. 그러나 ‘송인(送人)’ 또한 그에 못지않다.

 

뜰 앞에 한 잎 떨어지고             庭前一葉落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       床下百蟲悲
홀홀이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    忽忽不可止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               悠悠何所之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         片心山盡處
외로운 꿈, 달 밝을 때               孤夢月明時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질 때       南浦春波綠
뒷기약 그대는 제발 잊지 마소    君休負後期

 

3, 4행과 5, 6행의 대구를 보라. 홀홀(忽忽)과 유유(悠悠)는 한자어임에도 그냥 우리말처럼 들리고, 편심(片心)과 고몽(孤夢), 산과 달은 절묘의 극치에서 마주하고 있다. 가을날의 이별을 이렇듯 애잔하게 그린 시가 또 있을까. 복잡한 정치판의 파워게임에 휩쓸리지 않고, 그가 그냥 시인으로 살았더라면, 당대의 시적 수준을 얼마나 끌어올렸을지,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가편(佳篇)을 남겨주었을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정지상 편

 



m*****y 2013.06.17.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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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종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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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 초 <소설 동의보감>을 필두로<소설 토정비결>, <소설 목민심서>, <매월당 김시습>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을 뿐 아니라, 지역을 넓혀 <소설 강태공>, <소설 의성 화타> 등 중국의 역사에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대형 출판사의 상업자본이 한몫했다는 사실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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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90년대 초 <소설 동의보감>을 필두로<소설 토정비결>, <소설 목민심서>, <매월당 김시습>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을 뿐 아니라, 지역을 넓혀 <소설 강태공>, <소설 의성 화타> 등 중국의 역사에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대형 출판사의 상업자본이 한몫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시대적으로 정치적 허무주의의 만연, 세기말적 현상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들 알겠지만 TV에서도 책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나도 그 시절에 이러한 전기류, 야사류의 역사소설을 열심히도 사들였었다.  상업적 대중소설의 활황에 나도 일조를 한 셈이다.  90년대의 역사소설은 개화기의 역사소설-이를 테면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이나 이광수의 <단종애사> 등-이나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 조정래의 <아리랑> 등과도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어쩌면 그 시대의 우리 국민은 소설 속의 인물과 같은 영웅의 출현을 간절히 원했는지도 모르고, 역사에 가미된 소설가의 상상력에 흠뻑 취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의 역사소설은 또 다른 면모로 나타난다.  김훈의 <남한산성>과 최근에 출간된 김진명의 <고구려>, 그리고 역사와 판타지를 교묘히 섞은 <해를 품은 달>과 같은 소설들은 90년대 역사적 인물의 삶을 다룬 통속적 역사소설과는 많은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등장한 역사소설은 전쟁의 오욕과 상처의 기억,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고통을 잊기 위한 낭만적 도피나 환상의 역사가 아닌, 죽음이 얼룩진 수난의 역사에서 삶의 이유를 찾으려는 듯 보인다.

 

나는 그 때를 생각하며 최근에 나온 역사소설 한 권을 읽었다.  우영수의 <최후의 결전>.  고려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묘청의 난'을 다룬 작품이다.  고려 숙종, 예종, 인종 대에 걸쳐 전횡을 일삼았던 이자겸과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던 김부식, 그리고 서경 천도를 주장했던 정지상과  묘청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나에겐 1980년의 광주와 1135년의 서경성이 겹쳐 보인다.  두 사건 모두 특정 지역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고, 사건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으로 나뉜다.  두 사건의 승자는 정국의 1인자로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이후 시대적 변화와 함께 역사의 방향도 달라졌다."    ('작가의 말'에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작가는 잘못 인식되고 알려진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고증을 통하여 소설의 얼개를 짜고 소설이 전개되는 지역적 배경과 시대적 범위를 설정하겠지만 자료에도 없는 여러 인물과 사건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허구적 요소마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작가의 '역사 인식'이 필수적이다.  “조선 역사상 일천 년래 제일대사건”이라 하며 이 사건의 승자가 바뀌었다면 조선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통탄했다는 단재 신채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구 세력의 패륜과 역사적 과오를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한참 동안 정지상을 바라보던 김부식은 목소리를 차분하게 가다듬었다. 조용했지만 싸늘한 목소리가 김부식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옛 영광이 있었다고 오늘날 다시 그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송을 중심으로 오랑캐인 여진의 금을 타도하여 질서를 확립한 뒤 예와 법이 살아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저도 남들 못지않게 공맹의 예와 법을 공부했다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공맹의 예가 유일한 예이고 법이라고는 생각하질 않습니다. 백성이 평안한 길이 있으면 그걸 따르면 될 일이지 어찌 공맹의 예와 법만 언급하십니까? 어사대부와 제 사이엔 현실인식에 대한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싶습니다.”
정지상의 반론을 들은 김부식의 얼굴이 파랗게 변해갔다."   
(p.270)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사대주의와 유학사상을 고려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려 했던 김부식과 김부철 형제.  그들은 소식과 소철을 흠모하여 자신들의 이름마저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에 맞선 정지상은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고려의 충신이었으며 고조선 건국의 이념과 동이족의 풍류대도 사상을 통하여 자주국 고려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했다.  그 한가운데에는 열다섯 살에 왕위에 오른 인종이 있었다.  즉위부터 신하들의 위세에 눌려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우지 못했던 인종이 정지상과 더불어 서경천도를 추진하려다 마음을 바꾼 인종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던가.

 

이것을 어찌 역사 속의 일로만 치부할 것인가.

오늘날에도 역사를 부정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모 사이트가 연일 뉴스에 등장하고,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역사서가 교과서로 인정되는 세상.  종군 위안부를 '성매매업자'로, 김좌진 장군과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역사서가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 아이들의 교과서로 채택되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 굴욕과 자괴감에 어깨가 처진다.  어찌 같은 민족의 후손으로서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역사의 동력을 방해하는 기생충 속성의 인물들이 오늘의 세상에도 활개를 치고 있다.  굴종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s*****l 2013.05.3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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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 - 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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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난'을 아십니까??? 물어본다면... 많은 분들이 국사시간에 이름은 들어보았지만....대부분 '묘청의 난'에 대해 자세히 모르실듯 합니다.. '고려'시대에 일어났던 반란중 하나로 알거나... 또는 '개경파'와 '서경파'의 권력싸움으로 알고 있을수도 있구요...   그런데, '신채호'선생님께서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제1대 사건'이라고 묘사하셨으며 만일 '묘청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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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난'을 아십니까??? 물어본다면...

많은 분들이 국사시간에 이름은 들어보았지만....대부분 '묘청의 난'에 대해 자세히 모르실듯 합니다..

'고려'시대에 일어났던 반란중 하나로 알거나...

또는 '개경파'와 '서경파'의 권력싸움으로 알고 있을수도 있구요...

 

그런데, '신채호'선생님께서 '묘청의 난'을 '조선 역사상 제1대 사건'이라고 묘사하셨으며

만일 '묘청의 난'이 승리를 거두었다면, 역사가 바꼈을꺼라고 말씀하셨지요.

 

왜 '신채호 선생님'은 '묘청의 난'에 대한 의미를 높게 두셨을까요??

 

사실....이때가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가장 자주적일때였고

'묘청의 난'이후...본격적으로 우리는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중화사상'의 노예가 되어버리니까요..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약한 나라였습니다...

전 왕조였던 '당'왕조가 무장들의 권세에 멸망한후...

'송태조'는 지나치게 문치주의를 내세웠고...이에 따라 군대가 힘을 잃었죠

그래서, 거란족, 여진족에 침입에 속수무책이였고, 결국은 몽고족에게 멸망하지요..

 

그렇지만, '고려'는 '송나라'에서 의존했을만큼...'자주국방'의 나라였고

몇차례나, 거란족의 군대를 물리친 강국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정치가 혼란하면, 군대도 약해지는법...

여진족의 침입으로 인해, 백성들은 힘들어했고..

 

15세의 나이로 왕의 자리에 오른 '인종'은 '정지상'과 '김부식'등의 힘을 입어

오랜 세월 권력을 잡았던 '이자겸'을 제거합니다..

 

그리고..'인종'은 불타버린 개경을 바라보며..새로운 시작을 다짐하지요

그렇지만, '인종'의 심복이던 두사람은 대립하기 시작하죠..

'고구려'의 정통성을 계승하여 서경으로 천도할것을 주장하는 '정지상'

'중국유학'을 중심으로 고려를 재편하자는 '김부식'

 

'최후의 결전'은 '묘청의난'의 이야기이며

'정지상'과 '김부식'의 대결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법..

이에 '정지상'과 '묘청의난'은 역적의 이름으로 남아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진보적이고, 자주적인 사상보다는...

반역자의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앗습니다.

 

물론...역사에 만약은 없습니다...

'신채호 선생님'이 말씀하시듯이..그후 역사가 크게 바꼈을꺼라는 의미가..

꼭 좋은 의미일수만 없거든요....

 

그래서 이책을 읽으면서도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말하기는 그랬던거 같아요



s*****o 2014.0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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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결전 - 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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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후의 결전>은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 일어났던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은 개경파 김부식과 서경파 정지상이었다. 이자겸은 포악한 외척세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묘청은 인물적인 매력보다는 완벽함의 성자스러움이 짙게 드러나서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2. 이 작품의 상상력의 토대는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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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후의 결전>은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 일어났던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은 개경파 김부식과 서경파 정지상이었다. 이자겸은 포악한 외척세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고, 묘청은 인물적인 매력보다는 완벽함의 성자스러움이 짙게 드러나서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2. 이 작품의 상상력의 토대는 창조가 아닌 복원에 가깝다. 즉,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지적했던 기득권 사학자들의 식민사관을 벗겨 내고, 식민사학자들이 쉬쉬하고 있는 역사적 진실이 바로 <최후의 결전>의 모습일 것이다.  

 

3. 단재 신채호는 '묘청의 난에서 김부식 일파가 승리함으로써 이후의 고려, 조선 역사는 독립 진취적 사상이 아니라 보수적 사대주의적 유교 사상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라고 말했다. 여기서 보수적 사대주의적 유교 사상이며,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은 김부식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의 역사로서 진위성을 의심받는다. 

 

 

 

4. <최후의 결전>을 보면 아주 충격적인 비화가 공개된다. 춘추전국시대의 종언을 고한 진시황의 분서갱유의 목적이 유가의 책들을 불태우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고조선의 역사와 기록들을 불태우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사료 연구를 통해 고조선이 교과서에 기록된 지역과는 달리 중국의 본토를 위협할 정도로 거대했었다는 결과가 속속 공개되고 있다고 한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과거의 고조선은 한반도와 요동지역. 그리고 요서지역까지 세력권에 두고 있었으며, 이토록 넓은 지역의 통치를 위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삼한과 부여, 옥저, 동예, 고구려같은 국가가 연방제의 성격으로 탄생되었다는 이야기였다. 

 

5. 따라서 묘청의 난.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은 단순한 풍수지리사상에 의한 - 서경의 터가 좋으니 도읍을 옮겨야 한다.는 - 그런 개념이 아니라, 과거 우리 민족의 사상인 풍류도와 영토를 회복하기 위한 자주적인 의미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우게 되는 '자주적'의 의미 또한 고구려의 영토와 힘이 아니라 고조선의 영토와 이상이었다는 설명이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6. 그러나 이들의 저항은 보다시피 실패로 끝난다. 그들의 꿈과 이상은 현실에 안주하는 데 만족하고, 그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여 최대한 이권을 챙기는 것에 만족했던 김부식 일파에 의해서 완벽하게 당해버렸다. 

 

김부식은 고려 땅에서 제2의 분서갱유를 완성시킨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뿌리를 잘라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동이족이라는 오랑캐가 아니라 공맹을 따르는 숭유주의자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역사란 참 알 수 없는 것 같다. 권선징악이 통하지 않는…. 차라리 권력징약이 더 맞는…. 그리고 우리들은 권력을 했던 승자들이 남긴 역사를 배우고 자라는….

 

7. 소설 속의 김부식을 보면서 많은 불특정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k*******7 2013.06.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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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가 되기 전엔 최후란 없다[최후의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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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페이지를 훨씬 넘기는 방대한 분량이었습니다. 술술 풀리는 이야기 중심이었다기보다는, 작가가 평소에 겨레의 역사와 올바른 지향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절절히 털어 놓은 에세이격 장편 서사시였다고 생각합니다.이 소설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 참, <묘청의 난>은, 그 사건을 <난(亂)>으로 본, 그리고 이 소설에서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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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페이지를 훨씬 넘기는 방대한 분량이었습니다. 술술 풀리는 이야기 중심이었다기보다는, 작가가 평소에 겨레의 역사와 올바른 지향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절절히 털어 놓은 에세이격 장편 서사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 참, <묘청의 난>은, 그 사건을 <난(亂)>으로 본, 그리고 이 소설에서 역사 왜곡과 모화 사상에 빠진 정파의 괴수 격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김부식의 시각에서나 가능한 용어겠습니다. 요즘은 교과서에서도 <서경 천도 운동>으로 칭하는 걸로 압니다. 그게 타당한 명명(命名)이겠고요.


소설의 전반부에서는 이자겸의 난을 재미있게, 그리고 여러 문헌을 참고하여 생생하고 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극의 몰입도가 높았던 부분이, 바로 이 전반부였습니다. 학교 교과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7대 80년 간 국구(國舅)로서 국사를 전단해 온 이자겸이, 금(金) 제국에 치욕적인 사대(事大) 정책으로 치닫고 급기야 옥좌까지 찬탈하려 든 혼란상으로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대단했던 실력자가 어떻게 해서 몰락하고, 왕씨 가문 중심의 정계 재편이 이루어졌는지, 또 그 후 불과 10년도 안 되어 서경 천도세력이 새로 부상, 기존의 집권 귀족 세력(이 소설에서 말하는 경주 중심 호족)을 위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거의 알 수 없었어요. 요즘 한국을 일러 <다이나믹 코리아>라고도 부르지만, 지금으로부터 근 900년 전 반도의 시스템과 분위기 역시 상당히 다이내믹했나보다, 이런 씁쓸한 웃음만 떠올렸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아, 그래서 그렇게 된 거구나."하는, 사건의 앞뒤 정리가 말끔히 이뤄진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제 동생과 자식을 인종 친위 세력의 손에 잃은 척준경이, 무슨 이유로 그리 쉽게 인종의 친서 한 장에 쉽게 반(反) 이자겸으로 돌아설 수 있었는지, 이 소설의 서술만으론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물론 자겸의 노비와 자신의 가노 사이에 붙은 시비가 발단이 되었다고 언급은 하는 중이지만, 대화 속의 설명만으로 그친 게 소설적 균형을 좀 무너뜨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극이 중대한 전환을 보이는 흐름에서는, 단순한 간접 인용이 아닌 직접적 드라마화가, 별개 씬을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괴력을 지닌 척준경의 사연과 행적에 대해, 책을 덮은 후에도 도저히 잊을 수 없게 자세한 묘사가 이뤄진 데 대해서는, 작가의 빼어난 솜씨 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 한 줄로 간단히 언급되고 만 인물, 사건에 대해 잘 정리된 게 못내 뿌듯한 느낌입니다.


이자겸의 난과 서경 천도 운동을 한 고리로 엮는 인물은, 다름 아닌 정지상입니다. 만약 이 고리가 빠졌다면, 소설은 중간에서 어색하게 반토막이 나는 구조였을 겁니다. 김부식이 소년 왕 인종 앞에서 과감하게, 이자겸의 전횡과 실정을 탄핵하는 장면에서, 젊은 좌정언직의 정지상은 그 주장의 무리함을 지적하다 오히려 이자겸의 편을 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 주장의 참신함이 눈에 띄어, 인종의 곁에서 평소의 지론을 전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우리 고유의 풍류도와 단군 천제 사상, 고대 전 동아시아에서 화하족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룬 자랑스러운 역사를 설파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작가는 이후 정지상의 입을 빌어 수시로, 사대주의 세력에 의해 말살된 배달 겨레의 웅혼을 일깨워 천하를 경영하는 제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론을 계속 상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젊은 벼슬아치이자 지사인 정지상이 군주 개인에게 간하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고, 작가 본인이 현대 한국을 살고 있는 우리 독자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민족 정기를 바로잡자는 제안을 하는 셈입니다. 소설에서 이 메시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법 커서, 전반적으로 소설이 어떤 역사의 스토리를 극화했다기보다는, 재야사학계가 주장해 온 대(大)배달, 온 가우리 사상의 경전과 같은 인상을 줍니다.


작가가 펼쳐 놓고 있는 생각은 이분만의 순수 독자적인 창안은 아니어서, 인터넷 곳곳을 '환(한)단고기' 같은 검색어로 둘러 보면 그닥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특유의 논리적이고 단정한 문장으로, 그런 주장들의 일견 거칠어 보이는 외피를 잘 다듬어 소설 속에서 매끄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웅-환인-단군의 세 존재를 기독교의 3위일체와 비교한 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투르키스탄의 유목민과 중동 원주민, 유태인을 싸잡아 색목인으로 칭하면서(실제 역사에서도 그러했긴 합니다만), 그 먼 옛날 우리 동이족이 그들에게 끼친 아련한 영향의 흔적이거나, 최소한 그들과 우리가 공유했었으나 화하족의 음모로 이산가족처럼 서로 떨어지고 만 고리처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대의 수재였던 정지상의 입을 빌어 도도히 펼쳐집니다. 하지만, 천제 사상이 서양의 왕권 신수설과 연결되는 부분은 약간 실소를 자아냅니다. 알다시피 보댕이 왕권신수설을 정립한 시점은,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시대보다 사벽 년은 뒤떨어진 일입니다. 유럽은 이 때 봉건 제후의 전성기였고, 왕이란 건 허울뿐이거나 아예 자리잡지조차 못한 시대였는데, 세련된 중앙집권화를 상당히 진척한 우리 고려나, 일찌감치 대 영역에 걸친 제국을 확립한 화하족의 사정과 비교할 게 못 되죠. <다윗의 별>까지만 해도 뭐 그러려니 합니다만.


기왕에 정지상을 화자, 주인공으로 설정했으면, 역사상으로도 말살되지 않고 잘 드러나 있는 그의 멋진 연시(戀詩)들을 작품 속에 삽입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닌게아니라 조휘 같은 여진족 처녀의 등장은 이 소설을, 건조한 사상의 나열이 아닌 매혹적인 로맨스의 세계로까지 완성하는데 큰 기여를 합니다. 특히 지상과 조휘의 사랑을 묘사한 부분은, 외설적이거나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청춘의 고혹적인 결합을 품격 있는 문장으로 그리고 있어서, 작가의 필력과 격을 증명하는 대목이었습니다(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너무 맘에 들어, 머리 속에 특별히 메모리를 해 두었어요^^). 그런데 왜, 정지상의 절대 걸작이자 중국에서도 칭송이 자자했던 <송인(送人)>을, 예를 들면 조휘가 왜국으로 떠나가는 대목에서 멋지게 인용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저 절창의 배경이 아직 확연히 드러난 바도 없는데,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번참에 멋진 정당화의 근거를, 소설의 자유를 빌어 하나 마련했다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김부식이 지상을 못내 처형하고 만 건 정치나 사상의 스탠스 차이도 있지만, 바로 이처럼 자신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운문 창작 능력을 보유한 천재였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임을 감안하면요. 제 생각에 작가는, 학창 시절 배운 국사 지식은 소설 창작에 백분 활용하면서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살짝 웃음이 나왔습니다. " 아, 이분, 고딩시절에 진짜 열심히 책을 판 모범생이었겠다." 그거 시험에 문장째 잘 나오는 부분이거든요), 국문학사적 지식은 별반 소설에 크게 녹여낸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광주민중항쟁을 살짝 서경천도운동과 연결시킨 대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의문을 가집니다. 낭도 세력은 그럼 이 서경 세력이 대변하고 있었다는 건데, 김부식은 경주 중심의 전통 기득권층이면서 왜 이들을 적대했는가? 아시다시피 낭도 하면 화랑이 그 대표격이고, 이 소설에서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 화랑 세력이 신라 건국의 주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민족혼 투철한 낭도들이, 왜 그 역사의 결정적 시점에서 동족을 적대하고, 화하족의 당 제국에 붙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서, 소설에서 주장하는 바와 모순됩니다. 당장 여기서도 사대주의= 구신라 출신-누대를 이어온 기득권의 상징 김부식의 존재가 매끄럽게 해명되지 않는 걸로 그 모순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정지상은 극중에서 진시황의 분서 갱유를 두고, 실상은 동이족의 찬란한 역사를 말살한 만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시황 정(政)이야말로,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 출신으로, 화하족의 패권 정립을 막기 위한 동이족의 후예였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입니다. 실제로 중국인의 체질에 맞지 않았던 법가를 배격하고 유가를 다시 전면에 내세운 한(漢) 제국이 진(秦)을 극복하고 이후 수백 년간 그들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이 주장 역시 근거가 빈약할 뿐 아니라 오히려 단군 사상에 자충수를 두는 면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론적인 면을 떠나 소설만 놓고 봐도, 왠지 서경천도 운동, 700여일 간 장엄하게 전개되었던 그 비장한 이벤트가, 또 소설의 중심 테마로 이미 설정된 그 사건이, 소설 초두에 다소 몽환적으로 제시된 걸 제외하면, 이 대단원에서 다소 피상적으로 그려지고 말았다는 게 크게 아쉬운 점입니다. 최근에 저는 김형오 전 국회읩장이 쓴 <술탄과 황제>를 읽었습니다만, 작가의 기획 의도에 따르자면, 소설 속에서 이 서경 농성 장면이,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그 순간만큼이나 상세하고 생동감 있게 처리되었어야 옳지 않았나, 너무 간략하게, 서둘러 마무리된 것 아닌가, 그런 아쉬움을 떠올립니다.


소설은 그렇지만 많은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역사적 기록들을 폭 넓게 참조하고 이를 소설 속에 녹여 낸 점이 탁월합니다. 소식 소철 형제의 이름을 따 그들 형제가 개명까지 했다는 사실 같은 건 참 재미있는 정보 아니겠습니까? 이 소설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소동파는 중국 역사에서도 노골적인, (요즘 일본 말로 하면) 혐한의 대표 주자였다는 걸 상기하면 더군다나 흥미를 끕니다. 소설의 마무리는, 부식의 아들 김돈중이가 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태운 충격적 사건을 살짝 언급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여력이 미친다면, 이 무신 정변에까지 소설화를 시도하여 속편을 내놓으면 어떨지 제안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k*********6 2013.06.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