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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연예잡지 <가디언>에서 공상과학영화 올타임 탑텐베스트를 선정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목록들은 우리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본적이 있는 영화들이거나 타인을 통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 리스트들이다. 10위부터 1위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매트릭스>, <터미네이터2>, <제3종 근접조우>, <스타워즈>, <이티>, <솔라리스>, <에일리언>, <블레이드 런너>, <메트로폴리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였으며, 시대별로는 1927년부터 시작하여 1999년까지 꽤 넓은 시간의 스펙트럼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가별로는 미국이 많은 많았다. 그 외에는 독일, 러시아이다. 감독의 이름으로는 워쇼스키 남매,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리들리 스콧, 프랑츠 랑, 스탠리 큐브릭들의 작품이었으며 이 와중에 특이하게도 한명의 감독의 두 편의 작품이 올라와 있는데 그의 이름은 공상과학영화하면 딱 떠오르는 대명사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없는 그러한 이미지들을 즐겨 상상하고 혼자 공상하며 즐기기를 좋아하던 영화광 씨네키드였다. 그가 처음 만든 가정용 홈비디오도 일상의 모습을 타큐멘타리적으로 그려내기보다는 그의 평소에 그렇게 자랑하기 원했던 재능으로 집안 자동차 차고 안에 가상의 세트를 만든 다음 스토리는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의 활약을 그려낸 비급공상영화였다. 이러한 우화들을 통해서 그의 필생의 역작은 모두 그의 공상영화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평생에 걸쳐 영화 안에서 묘사하고 있는 테크놀로지를 계속해서 진화시켜 왔는데 그가 처음 만들었던 <제3종 근접조우>에서는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영화스튜디오 안에 거대한 세트를 세운다음 모든 건축물들과 자연환경들을 미니츄어하며 그 안에 각기 다른 색깔의 불빛이 비추는 작은 특수전구들을 숨겨놨던 방법들은 모두 그의 아이디어였으며 그 이후<이티>, <쥬라기공원>,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주전쟁>에서 보여준 그의 실사화된 기술들 모두 그 당시의 동시대의 다른 어떠한 공상과학영화들보다도 더 뛰어난 영화들이었다. 그런데 공상과학영화는 단지 기술의 진화만 가지고 해석하지는 않는다. 공상과학작품들은 모두 그 시대의 아우라와 분위기, 풍조, 보그, 경향, 정치, 경제, 철학, 영화적 장르 혹은 시대의 아이콘들을 대표하는 영화들이다. 예를 들면 <메트로폴리스>는 1차세계대전 패전이후 대외적으로는 급락한 외교로 인해 영토 확장은 꿈꾸지 못하면서 동시에 해외식민지는 줄어들었으며 대내적으로는 경제공황직전의 재정절벽과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활동의 침체로 인해 실업자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었던 우울한 독일시대를 맞이하며 관통하고 있던 독일국민에게 있어서는 헤겔-마르크스 역사적 계급투쟁보다는 게르만민족의 재탄생과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보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사회구조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카르스마적 철인지도자를 꿈꾸고 있었다. 그때 프랑츠 랑은 독일국민의 단결에 대해서 공론해보자 그는 지금 독일미술계에서 일대 장르적 유행이었던 표현주의를 끌어와 영화 속에 투사시킨다. 낮의 자연광과 밤의 조명으로 대비로 인한 사물의 모습을 매우 그로테스크하게 잡아내며 모든 건축물을 그 당시 유행하던 바우하우스적 관점으로 직선과 면만으로 구조화한다. 이러한 필름의 현상은 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진화를 직접 증명하는 재현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렇게 공상과학영화는 도래하지 않은 불확실한 시간의 표면을 통해 현대사회의 속살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해석한다. 더불어 봉인된 시간을 해제하는 데 온 평생을 보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단 한편의 공상과학영화를 찍은데 그것이 바로 <솔라리스>였다. 사실 이 영화는 모든 기억의 원형을 주제로 한 영화의 시초이며 근본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때어날 때부터 기억의 이미지를 통해 학습하고 경험한다. 그러면서 인간이 신체적으로 성숙하면서 동시에 정신적 성장도 동시에 이뤄지는 이유는 그들 뇌 안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맛보고 만지고 하던 감각들에 이러한 이미지들이 차곡차곡 쌓이게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산작용은 모두 기억의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기억이 소멸하게 되면 모든 감정들도 사라진다. 이렇게 기억이라는 것은 인생사에서 소중한 존재이다. 이 기억을 가지고 공상과학멜로드라마를 만든 영화감독이 있다. 미셀 공드리이며 영화 제목은 <이터널 션사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2004)이다. 공드리는 또 하나의 이러한 유형의 영화를 이년 후에 또 만드는 데 그 영화가 바로 <수면의 과학>(2006)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전 영화가 보다 더 의미있는 텍스트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느 추운 겨울 미국의 지방 도시, 평범하고 착한 남자 조엘과 화려하고 따듯한 여자 클레멘타인이 서로 만나 연애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클레멘타인이 조엘에게 이별통고를 한 후 그의 앞에서 사라진다. 조엘은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 나서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주한 그녀는 조엘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한다. 그런 연유를 찾아가던 중에 기억을 없애주는 병원에서 그녀가 조엘과 만났던 그 시간만을 제거한 것을 알고 조엘도 클레멘타인과 만났던 시간을 제거하기를 결심하던 그날에 기계의 이상으로 인해 완전히 그 기억을 없애지 못하면서 영원한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현대인한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사랑한 그 시간만큼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공상과학이라는 장르가 멜로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장르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원래 연애라 불가능한 현실의 꿈이 아닐 수 없지 않는가? 그녀와 연애했던 그 기억을 강제적으로 삭제하려던 것을 순식간에 거부하는 그의 노력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물질도 같이 동반하여 이러한 현상을 이끌어내는 것 같았다. 과학이라는 논리적인 알고리즘이라는 연산작용이 보다 카오스적인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려고 할 때 인간의 본성은 그 들어오는 힘의 반작용으로 보다 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생성한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 전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의 기억은 마음대로 없어진다고 명령을 한다고 해도 쉽게 소멸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 슬픔, 행복, 노여움, 분노, 질투, 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의 특권을 다른 영장류보다 오래 지속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만남을 지속할 때 우리는 시간의 흐를수록 그 상대방에 대해서 보다 많은 정보를 획득한 다음 그 친밀한 만남을 유지한다. 그런 단계가 지속된다면 서로 이성간이라면 사랑의 아들레날린이 생겨나는 것이다. 공상과 사랑이라는 서로 같은 바운더리에 묶을 수 있는 것은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그러한 운행의 시간이 바로 마법의 시간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분야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생물과 물리학, 그리고 지구과학과 화학 그리고 여러 가지 도통 접해보지 않았던 신기한 장르는 계속해서 변주하면서 생성된다. 사랑의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같은 사랑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 안에서 세워진 기억의 시간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정신학적으로 자심만의 영역 안에서 세워진 주관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구별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들어서기를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기억이라는 물질을 아직 완전히 해석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 영화의 끝은 어떻게 해서라도 기술의 힘을 빌린 과학이 결코 운명의 사랑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 처음 만났던 그 기차를 타고 해변가에서 만나면서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공상과학영화만큼 사랑의 위대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르는 많지 않다. 지금은 겨울, 아직 봄은 멀었다. 과학은 그 시간의 지속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지만 사랑은 아직 내곁에 오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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