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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그 작가의 나라를 의식하며 읽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책의 세계에서조차 국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어떤 경우는 더 부각될 때가 있다. 미겔 시후코는 필리핀 마닐라 출신의 작가다. <일루스트라도>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그 경계를 가르기 어려운 소설이다. 2001년 9.11 테러가 터진 지 다섯 달이 지난 어느 날, 뉴욕 허드슨 강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죽음은 자살로 마무리되지만 그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미겔 시후코는 의문을 품는다. 그는 분명히 역사의 진실을 말하는 작품 <불타는 다리>를 쓰고 있었고, 그의 갑작스런 죽음과 함께 원고는 사라졌으니까. "......살바도르는 그런 식으로 인생을 끝마칠 만큼 용기가 있지도, 비겁하지도 않았다. 필리핀 문학계의 흑표범은 느닷없이 살해당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피 묻은 촛대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피 묻은 촛대는 발견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원고는 모호한 암시밖에 주지 못했다......" (14p) <일루스트라도>의 작가 미겔 시후코는 스스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 된다.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유일한 친구이자 살바도르를 자신의 멘토로 생각했던 사람으로. 처음에는 미겔이 살바도르의 죽음 속에 감춰진 진실을 밝혀낼 줄 알았는데, 미겔이 선택한 것은 <크리스핀 살바도르 : 여덟 번의 인생을 살다>라는 전기를 쓰는 것이다. 살아 생전, 곁에서 지켜봤던 인물과 죽은 뒤에 그 인물의 살아온 흔적을 찾아가는 건 전혀 다른 일인 것 같다. 죽은 살바도르를 위해 그의 작품과 미겔이 쓴 살바도르의 전기, 그리고 미겔 자신의 이야기가 마치 퍼즐조각처럼 하나씩 맞춰져 가는 듯하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의 일생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살바도르의 작품 중 <자신을 표절한 자>의 일부분을 보면서 <일루스트라도>가 곧 <자신을 표절한 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겔은 필리핀 문인들에게 살바도르의 전기를 쓴다는 사실을 숨긴 채 살바도르에 대해 묻는 내용이 나온다. 리타 : "크리스핀을 죽이고 싶어한 유일한 사람은 크리스핀이야." 푸리오 : "글쎄, 이 홀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러고 싶었을 거야. 적어도 한 때는. 솔직히. <자신을 표절한 자>는 죽여줬지......" 리타 : "진실은 우리를 아프게 하니까." (312p) ......중략 나 : "두 분은 크리스핀의 작품은 좋아하셨나요? 걸작 <당신 때문에>는 어떻습......" 푸리오 : "<다힐 사요>? 별로 독창적이지 못해. 필리핀 사람의 본질을 포착하지 못했어." 리타 : "그 책의 문제는 새로운 것에 집착한 나머지 그야말로 진부해졌다는 거지." 푸리오 : "그래도 인정을 받으려고 애쓸 때 작품이 좋았어." 나 : "그럼 <유럽 4부작>은요?" 푸리오 : "엘리트주의지! 극도의 엘리트주의." 나 : "<형제들>은 그래도 꽤......" 리타 : "이 친구야! 그건 너무 마닐라 중심적이야." 나 : "<붉은 대지>는요?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는 농부들 얘기였는데." 푸리오 : "너무 지방적이지." 리타 : "게다가 너무 논쟁적이야." 나 : "<선각자들>은요?" 리타 : "거 참. 탈식민주의적 남성우월주의지." 나 : "<자신을 표절한 자>도 안 좋아하셨겠네요." 푸리오 : "그건 난 좋아했어." 리타 : "형편없으니까. 남 안 되는 걸 보는 건 깨소금 맛이거든." 푸리오 : "아닙니다, 자매님. 적당히 봐주고 한 작품은 아니야. 하지만 권력에다 대고 진실을 말할 땐 그들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돼. 적어도 그들을 웃게 만들려고 노력해야지." 리타 : "<자신을 표절한 자>의 문제는 필리핀인들을 위하기보다는 필리핀인들에 관해서 썼다는 거였지." 푸리오 : "미국인들은 좋아하고 필리핀인들은 싫어할 책이지. 우린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 써야 돼." 리타 : "여자 동포들 포함." (312p~314p) 크리스핀 살바도르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또한 그의 작품은 필리핀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소설은 살바도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살바도르는 새롭게 태어난다. 조국 필리핀은 살바도르가 그저 세상에서 제일 눈에 띄는 필리핀 작가가 아니라 좀 더 제대로 필리핀적인 작가이길 바랐지만 살바도르는 동조하지 않았다. 전설이 된 <불타는 다리> 원고는 어디에 있을까? 텅 빈 박스, 사라진 것은 사라지지 않은 것의 윤곽을 짐작케 해준다는 말. 그 텅 빔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 전체가, 삶이 어떻게 끝이 났고, 우리 각자는 그렇게 끝이 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남겨 있다는 말. <일루스트라도>는 필리핀 작가 미겔 시후코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의지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그 글이 한 권의 책이 되었을 때는 새로운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하는 것 같다. <일루스트라도>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미겔 시후코와 크리스핀 살바도르이 함께 녹아든다. 필리핀적인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깨달음에 대하여. 죽음의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삶의 미로를 헤매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아, 현기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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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같은 아시아 국가이지만, 세부등의 여행지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책은 한 작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사실 이 책에서 많은 부분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일루스트라도> 꽤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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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의 총체적 난항은 그 역사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서 극에 달한다 지난 세기 열강의 침탈과 지배 거기에서 유래된 구조적 모순이 점차 중첩되고 축적되어 사회적 구조가 뒤틀리고 질서가 파괴되었다 그런 나라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곤고하며 난처하다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의 그런 삶의 총체적 불가피함은 쉽게 처리하지 못할 난제이다 필리핀도 역시 그런 나라들 중 하나이다 스페인 식민 지배에서 출발한 그들의 억압받는 불행한 사회 구조는 미국의 침략과 그 후 일제의 점거 그리고 독립 후의 비민주적 부패 정치의 횡일까지 층위를 달리하면서도 인간의 삶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그런 지난한 역사를 겪어온 필리핀의 근현대사는 모순과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지지부진한 민주화의 요원함과 지배층의 타락과 부패로 인한 민중의 고통받는 삶까지 그들 필리핀인들이 걸어온 길은 난국의 진행형이었다 더군다나 더욱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도 그런 역사가 진행되고 있디는 것이다 이 구조적 문제는 어디에서 유래하고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이며 과연 끝이 있는 것일까 문제가 있는 나라가 필리핀만이 아니지만 그리고 어는 나라든 문제가 있지만 아시아에서도 필리핀은 그 징후가 선명한 나라 중 하나이다
그런 필리핀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현황을 소설로 포착하여 형상화한 작품이 이 작품이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이 거센 현대까지 필리핀의 모습을 흘러가며 한 작가의 삶과 문학에서 거울처럼 비추어 조명하고 있다 그 작가의 삶은 지난하고 다채로우며 격정적이고 동시에 혐오와 경멸과 반목으로 갈등한다 필리핀의 태동이 그러했듯이 아마도 필리핀이라는 특수한 지형적 사회적 조건이 품고 있는 난해한 모순이 그 작가의 삶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필리핀과 호흡하며 함께 꿈틀거리는 역사적 문학이라는 명제가 그 작가를 그런 사람으로부터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필리핀은 아름답다 이 아름답다는 말은 반어적 등가의 가치로 작용한다 아름답다는 말 속에 담겨 있는 현기증 나는 반목과 대립과 욕망 그리고 증오와 추악함이 복마전 같은 필리핀의 사회적 역사의 복잡다단함을 증거한다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그 추악한 아름다움의 미학은 문학하는 작가인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추적하는 작가의 분신에 의해 겹으로 투영되며 지난 시절의 주인공과 작가의 분신이 서로 호응하며 다시 한 번 되풀이 반복되고 있다 과연 역사에 생명이 있는가 역사는 진전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필리핀은 아직까지도 무지와 가난과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작가의 분신은 주인공을 쫓아가고 그가 남긴 소설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가 찾으려던 소설은 결국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역사란 실체가 없는 것이고 그 의미는 찾을 수 없다는 얻을 수 없다는 일종의 체념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체념은 체념이라기 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인식의 경지일 것이다 난마처럼 얽힌 형국 그 형국엔 답이 없고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깊은 인식
필리핀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발한다기 보다는 같이 흘러가며 들려주고 있는 이 소설은 필리핀이 걸어온 삶의 지문으로서의 역사를 채집한다 그 와중에 발견하는 진실은 고통스럽다 그것은 필리핀의 맨 얼굴이고 필리핀의 치부이며 필리핀의 자랑이자 영광이다 필리핀이여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신음하며 어둠에 잠겨 있던 아시아의 진주여 필리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굳이 이 소설에서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지난 세기와 시간에 보내는 애증의 헌사로 성찰하는 것이 이 소설을 좀 더 의미있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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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작가 자신에 대한 소설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작가의 전기 같기도 하다. 너무나 생생한 묘사와 퍼즐처럼 얽힌 구성으로 책을 놓을 수 없게 함과 동시에 이것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갸우뚱하게 만든다.
어느 날, 뉴욕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떠오른다. 그 남자는 무엇엔가 맞은 듯한 외상도 있지만 자살로 처리 되다. 이 죽음은 사건이 일어난 뉴욕과 동떨어져 있는 필리핀에서 핫한 이슈로 떠오른다. 그가 필리핀의 저명한 소설가 크리스핀 살바도르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 얼마 전까지 햄버거를 먹으며 우정을 나눴던 제자 미겔 시후코는 그의 자살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는 스스로 생을 끝마칠 만큼 용기가 있지도, 비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미겔은 살바도르가 오랫동안 필리핀 상류층의 부정과 부패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는 글 ‘불타는 다리’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살바도르가 역사의 진실에 대해 말하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필리핀 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원고는 사라졌고, 사람들은 어쩌면 그 원고는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미겔은 그가 그 원고를 타이핑한 것을 본 유일한 목격자다.
미겔은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실망시키면서 살바도르의 전기를 쓰는 일에 몰두한다. 살바도르의 삶을 추적하기위해 필리핀으로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의 생을 더듬는다. 이 소설은 살바도르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며 살바도르 가문의 이야기를 파헤치는 한편 필리핀과 스페인, 필리핀과 미국, 필리핀과 일본등 식민지와 전쟁으로 얼룩진 필리핀의 근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다.
이 작품은 필리핀의 유명 소설가이자 컬러비아 대학교수인 살바도르의 가문에 대한 진실과 살바도르가 남긴 작품들, 또 작가 미겔 시후코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이것은 필리핀의 치욕스런 역사를 드러내고, 상류층의 기회주의와 이기주의를 폭로한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사실을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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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에 한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사라진 원고를 찾기 위한 스릴있는 작품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까지 봐왔던 들녘의 세계의 작가 시리즈에서는 장르적인 내용과 일반 소설의 분위기 사이에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이 작품도 다르지 않았다. 줄거리만으로는 장르소설같았지만,실제로는 필리핀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한 편으로 알 수 있는 일반소설이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이 작가 미겔 시후코의 데뷔작이라는 점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데뷔작임에도 밀도나 구성 면에서 난해하다는 걸 뺀다면 큰 단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필리핀 출신의 작가 크리스틴 살바도르가 2002년 어느날 뉴욕 허드슨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 작품이 시작된다. 그는 죽기 전에 '우리가 공유한 죄악의 진실을 알게 될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을 출간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는데,제자이자 친분이 두터운 미겔에게는 자신의 또다른 작품인 <불타는 다리>를 공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타살인지,자살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집필 중이던 책까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뒤늦게 미겔이 그 책을 찾기 시작하지만,원고 일부와 약간의 메모였을 뿐이다. 그것들을 근거로 미겔은 그의 전기를 쓸 결심을 하고 그의 행적을 쫓기 위해 필리핀으로 향하는데,그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작품의 큰 틀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크리스틴 살바도르의 소설과 미겔이 쓴 그의 전기로 대표되는 다른 글씨체의 글들이고 다른 하나는 미겔이 그의 행적을 쫓는 필리핀에서의 분량이다. 첫번째로 나온 다른 문체들에 나온 여러 글들은 소설 뿐만 아니라 블로거 게시글,댓글,신문 기사,언론 인터뷰 등으로 표현되면서 우리가 크리스틴 살바도르라는 캐릭터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그 분량이 생각 외로 많은 편이어서 읽는 데 애를 먹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려는 또다른 주제인 필리핀의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알 수 있었다. 필리핀도 우리나라처럼 한때는 여러 나라의 식민지였고,또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권으로 내부적으로 반발도 많이 있었던 아픔을 가지고 있는 국가다. 현재에도 그리 좋은 분위기는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과 그것도 첫 소설로 썼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뿐이다.
장르소설인 줄로만 알았다가 의외로 아주 커다란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대체적인 암울한 역사를 알게 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55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필리핀의 역사를 단 한 권으로 표현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미겔 시후코는 그것을 작가라는 지식인의 글과 눈을 통해서 신랄하게 펼쳐보이고 있다. 그가 갑자기 시체로 발견된다는 설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가 자살인지,타살인지 밝히는 것 대신 필리핀의 분위기를 대체적으로 더 많이 표현해낸 부분도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반전이나 이야기는 크게 없었지만,그래도 무거운 마음이 드는 건 필리핀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가 대체적으로 비슷한 데에서 느껴지는 공감 때문일 것이다.
2013/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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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외에 또 다른 일용한 양식이라고 할까, 때가 되면 자연스레 밥을 찾는 것처럼 매일 매일 거르지 않고 책을 읽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분류하자니 그것도 힘들다. 누군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는 것이니 추리라고 말해야겠고, 제자가 스승의 죽음에서부터 시작 그의 어린시절을 되밟아가니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뉴욕에서 의문스런 죽음을 당한 필리핀 출신의 작가 크리스핀 살바도르, 그의 죽음과 더불어 그가 집필 중이던 원고 또한 사라졌다. 그의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타살이라면 누가 왜 어떤 이유로 그를 죽인 것일까? 저자 미겔 시후코는 책속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친구이자 제자로 등장한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스승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는 것은 또 아니다.
죽은 작가 크리스핀 살바도르가 집필 중에 있던 원고《불타는 강》은 필리핀을 좌지우지하는 극소수 가문들의 범죄와 비리를 폭로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는데, 혹시 그것이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죽음을 불러오게 된 것은 아닐런지. 무작정 심각한 것만은 아니고 읽으면서 웃음짓게 만드는 대목도 있었다. "이십 선생님, 이제부터 헤엄치는 것들만 드셔야 합니다." (p.408) 라는 의사의 경고에 대해 에르닝은 '돼지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으로 해결점(?)을 찾아낸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위해 고기는 절제하고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소리에 고기를 좋아하는 나는 약간 난감했다. 나도 그럴때 에르닝과 같은 방법은 취한다면?
책속에 등장하는 아르테미오 리카르테(1866~1945)라는 사람이 실제인물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미국에 충성서약을 거부한 유일한 인물로서 조국 필리핀(수도 마닐라)에서 영구 추방당하지만 1903년 망명지인 홍콩에서 국내로의 잠입을 시도한다. 다시 충성서약을 거부하고 일본으로 망명 요코하마에 자리잡는다. 일본이 필리핀을 침공하면서 함께 조국으로 돌아간 그는 항일 게릴라 토벌 부대(마카필리)를 만든다. 미군에 맞서 싸운 필리핀 독립전쟁의 영웅에서 친일주의자가 되버린 것, 서구 제국주의자들보다는 같은 아시아인 점령자들이 낫다는 그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 일제강점기를 36년간이나 겪은 민족으로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책속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사라진 원고를 누가 가져갔는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화되어 있던 스승의 진실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면서 그 밝혀지는 진실에 오히려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존경하던 부모가 다른 사람과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란 것을 알아가는 자식들의 당황스러움이랄까. 어렸을때 내 부모님은 대단한 분들인줄 알았다 커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엇을때 무척이나 반감이 생겼고 당황스러웠었다. 성인이 되었고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지금 아이에게 존경받을수 있는 엄마가 되기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환상이 언제 깨질런지,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 작업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보낸 협박과 관련하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혀 두는 바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살아 있거나 고인이 된 실존 인물들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이거나 당신들 스스로 양심에 찔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야. -크리스핀 살바도르 작『불타는 다리』원고 가운데 아직까지 남아 있는 타이틀 페이지에서
이것이 소설가들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을 쓰기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을 겪게 될 소지는 많다. 이건 이런 사정으로 저건 또 저런 사정으로 자료에서 제외시키다 보면 정말 쓸수있는 글이 많지는 않을테니까. 작가의 조국이자 소설 속 화자의 조국인 필리핀이 궁금해 네이버에 물어봤다. '서태평양 가운데 있는 7,1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공화국이며 사람이 살고있는 섬은 880개 정도로 루손 섬과 민다나오 섬이 가장 크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연인 케이프존슨과 엠덴 해연이 있다. 1946년 미국에서 독립하였으며, 농업이 주산업으로 설탕ㆍ파인애플ㆍ마닐라삼ㆍ코프라ㆍ연초가 5대 수출품이다. 주민은 말레이계로 대부분이 가톨릭교도이고 주요 언어는 필리피노 어와 영어이다.' 라고 나와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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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일루스트라도 [ 저 / 이광일 역 / 들녘]
이 책은 필리핀 마닐라 출신의 신예작가 미겔 시후코의 데뷔작으로 전세계 15개국에서 출간되어 전세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는 책이다. 데뷔작인 이 책 한권으로 필리핀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팔랑카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간단한 저자의 소개와 미스터리한 줄거리를 살펴보고는 기대가 커서 읽어보고 싶었던 이 책은 현실과 상상,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가늠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주인공 시점과 죽은 스승 크리스핀의 시점, 소설 속안에서의 소설, 인터뷰 등 구성이 큐브,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시대가 왔다갔다하는 구성이다.
처음 시작은 미국으로 망명한 필리핀 출신의 교수이며 반식민주의 성향의 작가 크리스틴 살바도르의 죽음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이자 크리스틴 살바도르의 제자 미겔 시후코는 스승의 죽음에 대해 파헤치기 위해, 스승의 삶을 전기로 남기기 위해 마닐라로 향하는데.. 스승 크리스핀의 친구들과 지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살로 마무리 된 스승 크리스핀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파헤치는 방식으로 미겔 시후코가 알지 못했던 스승의 사생활과 비밀들을 알게 되면서 진행된다. 크리스틴 살바도르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 미스터리는 불법 벌목과 도박, 납치, 정치가들의 부정부패, 청년들의 약물중독 등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왜 저자가 제일 첫 장에 이 책을 쓰기 위해 조사 작업을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보낸 협박과 관련해 소설 속의 인물들과 실존 인물들이 비슷하다고 느꼈다면 스스로가 양심에 찔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공지를 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표현하고 사실을 널리 알리는 저자를 보면서 선과 악, 정의감.. 올바른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대감이 컸던데 비해 상당히 혼란스럽고, 무거운 내용에 약간의 지루함과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다 읽고 생각해보니 초중반부의 구성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고 할까. 어느정도 필리핀의 뼈아픈 식민지 역사와 근현대사 문화에 관해 지식이 있었다면 조금더 쉽게 이해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필리핀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이 책을 접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단순한 추리 미스터리 소설인줄로만 알았던 이 책으로 인해 한때는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던 필리핀의 역사와 제 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식민지, 빈부격차, 테러, 탄핵 등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깊은 속내까지 알게 된 느낌이다. 이 책 일루스트라도는 콕 집어서 어떤 책이다라고는 말하기 어렵고, 그냥 단지 왜인지 모르게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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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스트라도>는 한 필리핀 작가의 부음기사로 시작된다. 책을 다 읽고 그 부음기사를 다시 보니 "의미심장"하기 그지 없다. "크리스핀 살바도르"가 "느닷없이" 인생을 끝맺게 된 것에는 여러 미스테리가 존재한다. 그의 시신은 왜 뉴욕 허드슨 강을 떠다니고 있었을까? 그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필리핀 엘리트층이 여러 세대에 걸쳐 어떻게 끈끈한 인맥으로 연결되고, 불법 벌목을 일삼았으며, 도박과 납치, 부패 및 그와 얽히고설킨 범죄를 저질렀는지 낱낱이 까발리"겠다고 장담했던 그의 원고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가 정말 죽은 것은 맞는가?
제자 미겔 시후코(그는 이 책의 저자와 이름이 같다)는 스승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풀어내기 위해 마닐라로 향한다. 미셀 사후코가 쓰는 전기를 통해 크리스핀의 인생이 복원되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화자는 미겔 시후코지만, <일루스트라도>는 스승의 궤적을 쫓는 미겔 시점의 이야기, 크리스핀 시점의 이야기, 소설 속의 소설, 인터뷰 등이 퍼즐 조각처럼 교차한다. 각각의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이야기 조각들이 하나씩 더해갈수록 크리스핀의 개인사를 감싸고 있는 필리핀의 거대한 근현대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페인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시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다시 "백인의 아시아 지배를 종식해야 한다" 명분 아래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운 일본의 점령까지 무려 400년 간이나 외세의 통치 아래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부정과 부패로 얽룩진 사회. 몇 년 전, 필리핀을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골곡의 역사를 말해주듯 식민지의 흔적이 곳곳에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가톨릭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들, 미군의 주거지였다가 필리핀 상류층의 주거지가 된 타운, 타칼로그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 때는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던 사람들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일루스트라도>는 그 필리핀의 후예가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무엇을 했는가?" 묻고 있는 듯하다. 독립을 꿈꾸지 않았는가? 변화의 가능성은? 개혁의 의지는? 어떻게 그 오랜 세월 그렇게 어치구니 없는 역사를 써내려올 수밖에 없었는지 되묻는 듯한 소설로 읽힌다.
<일루스트라도>는 한 개인의 가족사를 통해 필리핀의 근현대사를 복원하며, 아이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 그 아이를 교육 시키는 문제에 "유난히" 집착하고 집중한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낙관의 제스처"로 받아들인다(230).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숙명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일루스트라도>를 보면, 필리핀의 많은 부모 세대가, 엘리트층일수록 자녀의 교육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이를 타국으로 보내 "일류" 교육을 시키려고 달러를 쳐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부정과 부패로 얻은 권력과 유산을 대물림하는 것?
그러면 그런 사람들 속에 이상을 꿈꾸고, 사회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사람은 없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한 아버지는 이런 고백을 한다. "젊은 우리는 이상에 불탔다. 새벽이 밝아온다. 불쌍한 마리아 클라라는 내가 피곤해 하는 게 우울증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이상에 불타는 젊은이었던 '아버지'를 나약하게 만든 것은 어쩌면 '아들'(자녀) 자신이기도 하다. "애들은 나의 자부심이다! 아침에 애들이 좋다고 달려들면 조국이 어쩌고 하는 거창한 생각들이 싹 가신다. (...) 우리가 떠드는 이념이며 변화의 가능성, 우리의 인내심 같은 것들은 우리가 내뿜는 담배연기처럼 뿌옇다. 그런 얘기들이 다시금 내 머리에 불을 댕기고 또 잠 못 이루는 밤이 다가온다. 지긋지긋한 과정이 반복되고 다시 아침이 온다"(190).
비극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서 잘못한 일들은 뒤집고, 잘한 일들은 더 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534).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시간은 역류할 수 없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 말이 참 뼈아프다. 왜 그런 역사를 써왔느냐고, 왜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지난 세대에게, 기성세대들에게 따지고, 질타를 하지만, 우리에게도 그것을 바꿀 기회가 있었다는 것. "다만 이제 무대에서 내려왔을 뿐"(534)이라는 것. 우리처럼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의 실수를 되풀이 할 것이라는 것. 필리핀의 식민지 역사, 부정과 부패로 얽룩진 근현대사는 그렇게 되풀이 되어 왔다.
<일루스트라도>는 지난 역사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이제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 속에 끼어서 살지 않겠다"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최소한 자신이 믿는 삶을 살겠다"고, "우리의 존엄을 지키자"고 노래하는 이야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혁명은 "단순히 부모를 죽이는 정도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258). 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나 돌아간다. 내 자식한테로 돌아간다. 그 딸내미가 이제는 준비가 되었을 터이므로"(553). "그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은 최소한 어떤 시도를 할 의지는 있다는 증명이다"(526).
<일루스토라도> 안에는 크리스핀의 <자신을 표절한 자>라는 작품이 등장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이 맞다면) <자신을 표절한 자>라는 컨셉이 이 책을 뒤덮고 있다. "에필로그"에 보면, 미겔이 크리스핀을 표절하고, 크리스핀이 미겔을 표절하고, 필리핀의 역사를 보면 '아버지'의 역사를 아들이 다시 표절하고, 그 인생을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환각이 일어난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에게 일어난 일을 끊임없이 골똘히 생각했다"(549). 필리핀에 일어난 일을 끊임없이 골똘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한 가지 기대가 이 책을 읽어야 할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다.
"언젠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고민하게 만들 작가"라는 미겔 시후코의 <일루스트라도>는 (애석하게도) 잘 읽히지 않는다. 너무 잘게 쪼개진 퍼즐 조각들, 눈치 빠르지 않으면 알아채기 쉽지 않은 중첩의 의미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전개 등, 작가는 저만치 성큼성큼 뛰어가는 데 독자는 좇아가기 버거운 소설이라고나 할까. (미겔 시후코를 보니 인도를 보여주었던 로힌턴 미스트리가 연상되는데, 로힌턴 미스트리의 작품이 훨씬 재미있게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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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인 미겔 시후코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한 다음 미국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뒤이어 호주에서 최종적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필리핀과 미국, 호주의 문화를 두루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미셀 시후코는 필리핀에서 가장 권위있다는 팔랑카 문학상을 수상했고, 맨아시아문학상까지 받은 인물로써 아시아에서 그 입지를 넓히고 있는 인물인것 같다. 그런 작가가 첫 소설 『일루스트라도』에서 무대로 삼은 것은 역시 필리핀이다.
물론 시작은 뉴욕에서 필리핀 출신 작가 크리스핀 살바도르가 죽은채 발견된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대부분 처음엔 자살로 여겨지듯 이 죽음 역시도 그렇게 생각되었지만 사실은 그가 필리핀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현재 그가 집필중이던 원고(『불타는 강』)가 사라졌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원고의 행방이 의문에 휩싸인다. 그 원고가 사실은 필리핀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소수가문들의 범죄를 밝힐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죽음과 함께 등장한 인물이 바로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미겔 시후코이다. 저자가 스승이자 친구의 죽음을 추적하는 인물에 자신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부여한 것이 흥미롭고 뭔가 의미있다. 보통 작가들의 자신의 주변인물들의 실제 이름을 쓰기도 하고, 이 작품처럼 자신의 이름을 쓰기도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저자는 이 책에 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크리스핀 살바도로의 죽음을 파헤치는 그 과정에서 저자는 비교적 많은 역사적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스페인 식민지시대, 독립투쟁과 제2차 세계대전, 필리핀 독재시대, 피플파워 혁명 등 가히 필리핀의 근현대가가 이 책 한권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작가는 크리스핀 살바도로와 그의 『불타는 강』을 통해서 과거의 필리핀과 현재의 필리핀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 둘을 희생시킴으로써 지나가버린, 감추어졌던 필리핀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싶었던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히 오락거리 이상으로 필리핀을 발견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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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한 남자의 사체가 발견된다. 남자의 이름은 크리스틴 살바도르. 남 자의 죽음은 처음에는 자살로 받아들여졌지만 그가 필리핀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그가 집필중이던 원고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의 죽음 뿐 아니라 그가 무슨책을 집필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들이 생겨난다. 그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면 누가 무슨 이유로 그를 타살한 것인가? 혹시 사라진 원고와 관련된 것일까? 아니 정말로 원고가 존재하기는 했었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 이어지지만 답을 해줄 당사자는 영원한 침묵을 지킬 뿐이다. 그 위문을 파헤치는 사람이 살바도르의 친구이자 제자인 미겔 시후코다. 그는 필리핀의 최상위 가문들의 비리를 폭로한 <불타는 강>의 원고를 본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식민지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기 시작한 스페인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필리핀의 굴곡진 역사를 담아낸다. 필리핀. 아름다운 휴양지로 알려진 나라지만 또한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에도 돈만 주면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 청부살인와 나라로 메스컴에 소개되기까지 한다. 한때 아시아의 진주라고까지 불리우던 필리핀은 오늘날과 같은 극빈국으로 전학하게 되었을까? 필 리핀도 우리나라와 똑같이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어왔다.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배를 거친후에는 미국과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지배계층들의 부전부패가 만연해졌다. 이후에는 오랜 독재로 부는 일부 계층들만이 독식하고 국민들은 가난과 억압에 시달려야 했다. 살바도르는 바로 그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살바도르의 죽음에 진실에 다다를수록 미겔 시후코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오랜시간 친구로, 스승으로 여겨오던 이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답지만 추한 필리핀의 민낯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필리핀의 뼈아픈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필린핀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란 그저 지나간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이며 또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 우리의 역사속에도 수많은 살바도르가 존재하지 않었던가....그렇기에 이 책은 타인의 치부를 통해 우리의 모습들을 반추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라고 필리핀처럼 되지 않느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