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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소설이 읽어보고 싶은 날이 있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 빠져 허우적거려 보고 싶다. 그것이 내 이야기이거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라면 더욱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잠시나마 감정이입하며 나의 일상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다. 다만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만 아니라면 소설을 읽는 시간은 온전히 작품 속에 몰입할 수 있어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소설 책 몇 권을 구입했다. 허나 막상 책을 펴들지만 읽는 것도, 읽고 난 후 정리해 보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가까스로 한 권을 찾아 읽었지만 읽은 지 열흘이 넘도록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뭉그적거리고 있다.
오정희 작가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표제작을 포함하여 주로 2000년대 이전에 발표한 11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에서도 혹 읽어본 것이 있나하고 생각해보지만 작품 모두를 처음 만나는 느낌이다. 작가를 아는 것과 그의 작품을 읽어본 것과는 별개의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작품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이상하리만치 아버지와 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상상속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웃의 정상적인 가족을 바라볼 때 아버지는 그리움과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현실 속에서의 아버지는 가족위에 군림하며 착취하는 폭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족은, 특히 딸들은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지며 원망하지만, 마음속 한쪽에서는 그리움 혹은 연민이 자리하고 있다. [저 언덕]의 원단은 지방의 중학교 교사인 승재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부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원단이 9살 때 14살 난 언니와 첫돌도 안 된 동생을 두고 세상을 떠났고, 상이용사인 아버지는 노름꾼이었다. 아버지는 원단과 가족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철이 들고 집을 떠나 독립하면서 원단은 다시는 아버지와 엮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결혼 후에도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으며 남편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와 당분간 묵어가겠다고 한다. 서모가 전셋돈을 빼내 자취를 감춰 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같이 살게 되었지만 원단은 냉담했고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어느 날 원단이 외출 후 돌아오니 아버지는 동네노인들을 불러들여 화투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원단과 아버지 사이는 더욱 냉랭해졌다. 승재가 원단을 위로하고자 어느 주말 하루여행을 다녀오자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를 잊고 여행지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떠나고 없었다. 상이용사라는 정체성을 빼고는 삶의 목적이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안정된 삶만을 추구했던 원단은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표제작인 [저녁의 게임]에서 아버지와 딸은 저녁을 먹고 난 후 식탁에서 화투놀이를 벌인다. 그러다 딸은 말없이 빠져나가 인근 주택공사장에서 일하는 남자와 정사를 벌이고 들어온다. 아버지는 여전히 혼자서 화투놀이를 하고 있다. 정신병으로 입원해 있다 죽은 엄마, 집나간 오빠를 대신해 딸은 생계를 책임지고 아버지는 그런 딸을 착취하며 살고 있다. [유년의 뜰]에서 전쟁이 나자 아버지는 전선으로 떠나고 피난을 온 가족의 생계를 어머니가 책임지고 있다. 읍내에서 국밥집을 하는 어머니는 때때로 몸을 팔기까지 한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노릇을 하는 오빠는 웃지도 않고 말도 없고 오로지 식탐만 많은 화자에게 분풀이를 한다. 화자의 상상 속에서 아버지는 미화되고 어서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어느 날 교무실로 불려간 화자에게 교장선생님은 아버지가 집을 몰라 학교로 찾아왔다고 말해준다. 교장선생님이 먼저 나가자 책상위의 케익 한 조각을 잽싸게 집어 입에 넣지만 목에 걸려 켁켁거린다. 변소 창틀 사이로 아버지에게 뛰어가는 언니를 보면서 화자는 무언가 소리치며 끓어오르는 것이 보이는 듯 했다.
작품집에 실려 있는 소설들 대부분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여성들과 그런 여성들을 대하는 사회의 모순이 내재된 시대상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전쟁의 시기 혹은 전쟁 직후에 겪은 유년의 기억들이 그녀들의 삶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그런 기억들은 시대적 상황과 함께 당시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 당시를 살았던 여성들 대부분이 지금은 죽었거나 노년이다. 우리는 그들을 잊어버린 지 오래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며 그녀들이 살았던 사회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이제 노인이 되어버린 그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가부장제적 억압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작가의 오래전 작품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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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는 작가 자신의 말처럼 "과작의작가"이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 지하는 작가다. 한국 여성문학 연구의 주요 테마는 상당 부분 오정희의 작품에 대한 해석을 근간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 언이 아니다. 특히 현재 시점에서 과거 사건을 현재화하여 서술 하는 기법, 서술자의 내면 독백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실제 사 건과 환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표현 방식, 감각적이면서 도 모호한 비의적인 문체, 여성성에 대한 인식을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 의식과 겹쳐놓음으로써 자아와 세계에 대한 인식 론적 확장을 꾀하는 작가 의식 등은 오정희 소설의 인장태표인 동시에 이후 1990년대 여성문학을 관통한 주제 의식과 방법론 의 기원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