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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관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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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이와 같은 글을 의뢰 받는다면, 나는 콩팥에 대해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콩팥을 주제로 글을 쓴 애니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이다)는 구약성서에 서른 번 이상 나오는 콩팥에 대해, ‘신성함과 감춰진 위치 때문에 내밀한 윤리와 감정적 충동이 자리하는 곳’이라고 멋있게, 그리고 아주 추상적으로 쓰고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콩팥은 어린 시절 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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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이와 같은 글을 의뢰 받는다면, 나는 콩팥에 대해 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콩팥을 주제로 글을 쓴 애니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이다)는 구약성서에 서른 번 이상 나오는 콩팥에 대해, ‘신성함과 감춰진 위치 때문에 내밀한 윤리와 감정적 충동이 자리하는 곳이라고 멋있게, 그리고 아주 추상적으로 쓰고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콩팥은 어린 시절 내 삶을 완전히 지배했던 장기다. 내가 어느 시점부터 거기에 문제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멀리서 들려오는 어렴풋한 의사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각오하셔야 할 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분명하게 굿판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기도 했다. 한참 전에 무신론자가 되었지만, 그때는 내가 어쨌는지 모르고, 지금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안에 앉혀 놓았던 부모님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아니 고마워한다. 그리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괜찮아졌다. 아니, 괜찮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병은 재발했다. 중학교 1학년 한참 친구들과 매일 농구를 하고, 다음 해에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전국단위체육대회(전국소년체전)에서 개막식에 선보일 매스게임 연습으로 수업도 단축시키는 와중에 그 병이 와 버렸다. 이번에는 어떻게 그 병이 오는지,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낱낱이 인지할 수 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마루에 뻗어버리는 자식을 보고 부모님은 아뿔싸 싶어 병원에 데려갔고, 아마 예전과 똑 같은 진단명을 받아 들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을 권하는 의사의 말을 나는 집요하게 부정했다. 매일 학교에 갔고, 매일 병원에 들렸다. 매일 주사를 맞고, 매일 소변을 받아 검사를 했다. 김치 한 조각을 먹지 못하고, 계란에도 소금을 치지 못했다. 어느 날 병원에 들렀다 집으로 갔는데 아무도 없는 집안의 냉장고를 열었을 때 시큼한 신 김치 냄새에 나도 몰래 꺼내 한 조각 입에 넣고는 눈물을 흘렸었다. 일년 여가 지나자 이제 그만 병원에 와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투병기는 끝났다. 그때는 신장병이라고 했고, 지금 다시 표현하자면 콩팥염. 그러나 그보다 더 정확한 병명은 나도 잘 모른다.

 

『살갗 아래』는 살갗 아래에 존재하는 우리 몸의 장기들에 대해 영국의 문인들이 하나씩 맡아 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시적이고, 어떤 사람은 과학적이고, 어떤 사람은 어원을 따지고, 또 어떤 사람은 개인사를 쓴다. 개인의 경험을 쓴 글 중에서 HIV에 관한 글은 감동적이고, ‘에 관한 글에서는 백내장(cataract)의 어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인상 깊지 않아도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다루고 있는 장기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에게 귀란, 나에게 간이란, 나에게 눈이란, 나에게 코란, 나에게 폐란, 나에게 대장이란, 나에게 뇌란, 나에겐 자궁이란특히 나에게 콩팥이란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n*****m 2020.03.09.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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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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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야릇하다. 왠지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읽어야만 할 거 같다. 제목 때문에 이끌린 건 물론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 때문에 구입했다. 내 경우엔 자신감 결여가 신체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언제나 어깨를 당당히 펴라는 소릴 들으면서도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를 고수했다. 걸을 때면 시선은 땅에 고정됐으며, 이따금씩 발을 질질 끌며 걷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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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야릇하다. 왠지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읽어야만 할 거 같다. 제목 때문에 이끌린 건 물론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 때문에 구입했다. 내 경우엔 자신감 결여가 신체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언제나 어깨를 당당히 펴라는 소릴 들으면서도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를 고수했다. 걸을 때면 시선은 땅에 고정됐으며, 이따금씩 발을 질질 끌며 걷기도 했다. 나름 예민한 편이라고 자부하지만 이런 내 모습을 감지하는 일은 드물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난 내 모습을 인지했다. 동시에 걱정하기도 했다. 과연 내가 다른 이들에겐 어찌 보이고 있는지 염려하는 마음은 급속도로 커졌다. 한 마디로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인간의 신체를 다룬 책이야 여러 권 있겠지만, 그럼에도 난 책을 읽으며 독특한 시도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자주 내 자신을 온전한 가 아닌 것으로 여겨왔던가. 이런저런 장기와 이를 덮고 있는 피부 따위로 구성됐다고 말할 수야 있겠지만, 굳이 헤아리고픈 마음은 없다. 부모루부터 물려받은 몸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생각을 가끔 해도 딱 거기까지다. 내 심장이, 내 위나 장이, 내 갑상선이 각기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라는 하나의 실체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까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다분히 의도적인 시도라고 믿고 싶다. 남이 시키지도 않는 다음에야 폐를, 맹장을, 담낭을, 창자를 일일이 살필 위인(!)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글에는 일가견 있는 이들이 남긴 기록이어서 그런지, 인간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난 신체의 각 부분은 기대와는 달리 제법 그럴싸하게 그려졌다. 피부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난 나도 모르게 내 피부를 살폈다. 피부만 말끔해도 인간이 달라 보인다고 했지만, 내 경우엔 중학교에 진학하기가 무섭게 시작된 여드름으로부터 아직도 졸업을 못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반복해 그을렸던 손등에는 잡티와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피부는 내 자신이 겪은 수많은 상흔을 홀로 품는다. 종종 탈이 나 제거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는 장기인 맹장에 대해서도 글을 쓴 이가 있다니, 신기했다. 그야말로 쓸모 없는 기관이라고 많은 이들은 이를 여기고 있다. 실제로 수술로 제거를 한들 살아가는데 지장을 초래하지도 않는다. 오죽했으면 흔적 기관이라는 말로까지 불리겠는가. 그래도 예방적 차원에서 맹장 제거 수술을 강행했다는 식의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 전두엽 제거술에 대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끔찍함의 극치였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뇌를 너무도 쉽게 잘라냈다는 사실이 혐오스러웠다. 성격이 마음에 안 들어서 등 이유도 하찮았다. 하루에 스물 다섯번 전두엽 절제술을 행한 의사도 있었다. 대부분이 수술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다 떠났으리라는 건 얼마든지 짐작 가능했다. 윌리엄 파인스는 자신의 지난 경험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그의 신체에는 작은 흉터가 남아 지난날을 되새김질 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체가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치 못해 이를 대신할 인공물질에 의존하는 것 자체가 그려지지 않았는데, 그가 필요로 했다는 배변주머니는 더더욱 그랬다. 손에서 느껴지는 주머니의 묵직함, 그 안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오히려 그와 같은 경험을 통해 제 안에 막연히 존재하던 장기의 실체에 눈 떴다 하였다. 알아서 잘 돌아가겠거니, 아니, 있다는 확신조차 지니기 힘들었던 것들을 실제로 목격했으니 기분이 남달랐을 것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마냥 아름답지는 않아도 소중하다고 느낄 수 있을 듯도 하다. 지금의 내 모습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거 같고, 나를 이루는 요소들 중 어느 것 하나 뒤틀리면 더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아찔함 또한 느낄 거 같다. 나를 나이게 만드는 모든 걸 사랑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이 책의 저자들처럼 찬찬히 내 자신을 뜯어 살피는 노력을 기울이면 세상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나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필연 중 하나였다는 확신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이달의 사락 q*****2 2020.03.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