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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에 이어 두번째로 윌리엄 골딩의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피라미드'는 '파리대왕'과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자못 흥미로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으로 참전했던 윌리엄 골딩은 전쟁동안 겪었던 뼈아픈 경험을 한 권의 소설로 승화시켰다. '파리대왕'은 인간의 영혼은 마치 백지와도 같이 선과 악, 질서와 야만 환경에 따라 어디로든 쓰여질 수 있으며 그런 인간들을 적절히 통제해 줄 문명이 그 힘을 잃어버렸을 경우 인간들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스스로 혼돈을 초래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파리대왕'은 문명이 가진 긍정적인 의미를 어느 정도 보여주었는데 하지만 이번에 읽은 '피라미드'는 달랐다. 그 문명이 자기만의 궤도에만 과도하게 집착하여 원래 문명이 존중해야 할 인간을 더이상 존중하지 않을 경우 도리어 인간들에게 얼마나 감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명이 그렇게 된 사회를 단적으로 윌리엄 골딩은 '피라미드'라 부른다. 이 소설은 '스틸본'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은 현대 사회 어디라도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계급적 질서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의 고개 뒤로 강을 쳐다보았지만 대신 챈들러스 클로스의 그림이 즉각 떠올랐다. 배비컴 중사의 집은 윌멋 대위 집 입구 건너편에 있었다. 두 집이 나머지 집들보다 뚜렷하게 우월했다. 그 너머로는 집들이 점점 더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더러워지고 퇴락해서 폐허가 된 공장까지 이르렀다. 남자 아이들은 '가난한 소년'의 운동복을 입었다 아버지의 바지를 잘라 입었는데, 버려진 셔츠가 밑으로 튀어나왔다. 대부분 맨발이었다. 나는 거기가 신문에서 빈민가라는 부르는 곳임을 갑자기 깨달았다.( P. 67)
![]() 스틸본의 모습을 표지로 사용한 한 '피라미드' 표지 중에서...
이런 공간 속에서 주인공 올리버는 세 명의 인물을 통해 '피라미드'적 사회의 진실을 깨달아 나간다. 그 '스틸본'은 '파리대왕'에 나오는 문명화되지 못한 무인도와는 정반대로 한껏 문명화된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만나고 느끼게 되는 위험과 숨막힘은 결코 거기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면에서 '피라미드'라는 제목은 중의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처럼 층층이 이루어진 계급 사회를 뜻하기도 하지만 '피라미드'의 단면인 '트라이앵글'처럼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전개되어 나가는 이야기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 '피라미드'란 소설은 사실 세 개의 이야기가 주인공을 중심으로 통합된 이야기이며 그 각각은 주인공이 '피라미드'적 사회의 진실에 대해 눈을 뜨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 피라미드를 형상화한 표지...
단순하게 말하면 올리버의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피라미드'에서 그를 진실로 인도하는 세 꼭지점의 인물들은 각각 이비, 애벌린, 바운스로 그들은 모두 올리버에게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비는 아직 '피라미드'적 사회의 허상을 깨닫지 못한 올리버가 여전히 가지고 있었던 상위 계급에 대한 선망의 대리 충족 역할을 한다. 즉 올리버의 이비에 대한 욕망은 정말 이비를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보다 상위 계급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의 비뚤어진 투영인 것이다. 올리버가 이비를 원한 것이 원래 동경했던 상위 계급의 화신과도 같았던 이모젠의 약혼 소식을 듣고 이루어졌다는 점과 무엇보다 이비를 원하게 되었던 계기가 자기보다 상위 계급인 보비와 함께 있는 것은 본 뒤였다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 즉 올리버에게 이비의 육체란 단순히 여자의 육체가 아닌 자기 스스로를 상위 계급으로 여기게끔 만들어 주는 일종의 전리품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사실은 이비가 자신과의 정사로 임신하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젖었을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 임신 가능성을 통해 올리버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계급에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비는 결국 올리버보다 더 상위 계급의 누군가와 관계된 문제로 인해 마을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비의 사라짐은 올리버의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비의 사라짐을 통해 '피라미드'적 사회가 약자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그는 새삼 깨닫게 된다.
그 두려움이 있어서인지 다음의 이야기는 보다 더 상위 계급에 서고자 옥스포드 대학에 들어간 올리버를 보여준다. 이비처럼 사라지지 않기 위해 그는 사회가 바라는 단계를 착실히 밟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휴가를 맞아 다시 '스틸본'으로 돌아오고 엄마의 강권으로(그는 원래 바이올린 연주를 했는데 그 연주를 맡은 사람이 갑자기 연극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올리버의 엄마가 그에게 거의 억지로 떠맡긴 것이다.) 연극을 하게 된다. 애벌린은 바로 거기서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그는 연극 연출자다. 이 부분에서 연극이 나오는 이유는 이비를 그렇게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해왔고, 그 때문에 좀 더 사다리의 윗 쪽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노력해왔던 올리버에게 사실은 그 사회가 보는 것만큼 강하지 않으며 오히려 연극과 마찬가지로 진실한 의미라고는 모조리 텅 비어버린 환영에 불과함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 부분의 연출이 참으로 절묘한데, 골딩은 이 연극이 사실은 얼마나 계급적인 것인가를 먼저 보여준다. 시장의 아내가 주인공이었을 때와 거의 내쫓겼다시피 했을 때의 시 당국으로부터 배우들이 받는 대접의 차이를 통해 이런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바로 계급 임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음이나 다를 바 없는 노래 실력을 지닌 시장 아내가 늘 프리마돈나를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골딩이 이런 에피소드를 깔아 놓는 것은 무엇보다 현재 올리버가 기울이는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보이기 위함이다. 결국 사회는 그의 예상 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그가 아무리 노력한들 이비의 운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는 한편, 그토록 올리버가 매달리려고 하는 이 사회가 과연 실제로 가치있는 것인가를 연극 연습과 공연을 통해 보여준다. 거기서 올리버는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선망해왔던 이모젠의 모습이 사실은 다 연기였음을, 그리고 그 이모젠이 대표하고 있었던 상위 계급 역시도 상연되는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연극만큼이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이는 애벌린이다. 그런데 그 애벌린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질이 낮은 인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육체는 남자지만 내면은 여성인 인물인 것이다. 애벌린은 그러한 자신의 진실을 용기있게 올리버에게 간접적으로 전하지만 올리버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큰 소리로 비웃어 애벌린을 수치심에 젖게 한다. 비록 이 '피라미드'적 사회가 허상이라는 것에는 눈을 떴으나 아직 완전히 헤어나오지는 못한 올리버는 인간이 얼마든지 다양한 면모를 지닐 수 있다는 것과 그걸 배려하거나 포용해야 한다는 것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 올리버를 거기까지 이르도록 해 주는 인물이 바로 세번째로 나오는 인물인 바운스다. 올리버가 그것을 보지 못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그동안 사회가 만든 가치관에 깊숙이 길들여져 있었던 탓이었다. 때문에 그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온전히 자기만의 시선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 과거로 다시금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바운스는 바로 그것을 위해 나오는 인물이며, 그렇게 올리버 과거의 인물이다. 바로 그 과거의 시간 속에서 올리버는 상위 계급으로 가기 위해 포기해 버렸던 원래 되고 싶었던 음악가가 되고 싶어하는 자신과 다시 만난다. 그 시간을 헤아리면서 올리버는 무분별하게 도취되어 있었던 상위 계급을 향한 선망 속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바운스는 바로 그러한 것들의 상징이다. '스틸본'에서 죽은 지 오래된 오필리어처럼 살고 있었던 바운스는 사회에 길들어지느라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을 모조리 흘려보내야 했던 주인공의 모습과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바운스도 이비나 애벌린처럼 '스틸본'에 의해 사라진다. 올리버는 그 사라짐을 마치 몸을 불로 지진 것처럼 기억에 새긴다.
또한 나는 그 장면이 불로 지진 것처럼 내 몸에 흔적을 남겼다는 것 그리고 내가 사는 곳에 지울 수 없도록 각인되었다는 걸 당시에도 알았다. (...) 아무도 바운스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틸본이 공동으로 등을 돌린 몇몇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내가 대놓고 일부러 묻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세월 그녀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P. 277)
그 사라짐이 그토록 올리버에게 깊이 새겨진 것은 바로 그것이 자신의 사라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스틸본에 의해 추방되었던 바운스는 스틸본에 의해 자기 꿈을 억지로 수정해야 했던 올리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바운스의 사라짐은 진정한 자기 자신의 사라짐과도 똑같았다. 그 바운스를 회상하면서 올리버는 자기가 잃어버린 것, 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지금 다다른 곳이 어디인가를 똑똑히 깨닫는다. 그건 다시 만나게 된 바운스의 작별인사와 곧이어 이어지는 무덤의 장면으로 완성된다.
"잘 가라.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는 것 같다."(P. 284)
이렇게 '피라미드'는 올리버처럼 사회에서 주입된 관념으로 보다 계급의 상위로 올라가려는 무분별한 욕망 속에서 정작 우리가 얼마나 큰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를 아프게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올리버는 너무나 뒤늦게 그것을 깨닫게 되는 바람에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피라미드'의 사회는 한 번 깊숙이 편입되면 놓여나는 것을 잘 허락하지 않는다는 암시임과 동시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빠져나오는 것도 역시나 커다란 용기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의 암시이기도 하다. 골딩이 마지막에 올리버에게 가족을 허락하고 유독 그의 두 아이를 강조하는 것과 바운스가 집에 불이 나면 아이 보다는 차라리 앵무새를 구하겠다는 말이 그것을 드러내는 듯 하다. '파리대왕'이 인간이 문명의 통제로 부터 완전히 벗어났을 때의 근심이 낳은 산물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피라미드'는 우리에게 너무 과도하게 이루어지는 문명화에 대한 근심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골딩의 근심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걸까 하고 묻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올리버의 비극적이라고 해도 좋을 삶을 이처럼 세 가지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일종의 타산지석처럼 너무 뒤늦기 전에 지금 찬찬히 자신의 삶을 잘 들여보라는 뜻으로.
그렇게 '피라미드'는 나 역시 이 피라미드의 보다 위 쪽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지금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나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정말로 너무 뒤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소설을 통해 그런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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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골딩은 이미 <파리대왕> 이라는 작품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인간 본성의 야만성과 도덕성 문제를 실랄하게 다루면서 작품성까지 겸비한 사회풍자소설의 백미를 보여준 작가입니다. <피라미드> 그 후속작으로 영국사회 전반에 깊게 새겨져 있는 "계급" 이라는 또 하나의 성역에 대해서 풍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올리라는 주인공이 스틸본(물론 가상의 도시죠) 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영국사회 뿌리 깊게 각인되어 있는 "계급성" 과 그로 인한 인간 본성의 왜곡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이 <파리대왕> 이라는 작품 내지는 그의 또 다른 풍자소설작품들과 비견되는 것은 기존의 우화적인 기법이나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작품과는 달리 직접화법을 사용한 사실적인 기법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다는 점인데요. 뭐 달리 보면 자전적인 성장소설을 차용한 플롯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올리(올리버)의 성장과 옥스퍼드의 진학등이 골딩의 성장모습을 재현하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 뭐 작품명에서도 얼핏 작품의 전반적인 핵심 스토리는 대충 나옵니다. "계급" 이라는 의미는 지금 현재에도 아니 오히려 지금 현재가 더 계급적인 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입니다. 인류가 집단생활 내지는 조직적인 생활을 감행하면서 필요불가분하게 동반하게된 모티브이고요, 물론 동물들 사회에서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담론입니다. 먹이사슬인 피라미드 구조 최상층에 위치하는 이들에게 "계급" 은 "질서" 와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사회풍자소설들을 접햇고 이러한 작품들 역시 거의 대동소이할 정도의 컨셉트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결말적인 부분에 이르러 아! 하고 우리의 내면을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작품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골딩의 <피라미드> 라는 작품은 상당히 이색적이고 유니크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목을 무시하고 작품속으로 들어가면 어 이거 완전 성장소설 같은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물론 작품 여기 저기에 상당히 강력하게 팁을 주고 있지만 첫번째 스토리는 그야말로 한적한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는 올리라는 소년의 성장소설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버리지 못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군데 군데 무거운 담론의 일부가 고개를 처들고 있지만 올리와 이비 그리고 바비 사이에서는 벌어지는 촌극은 성장통의 일환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첫 경험의 서사와 성애의 묘사가 신선한 느낌을 선사하면서 무거운 담론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게 하죠. 물론 두번째 스토리도 그렇고 세번째 스토리도 첫번째 스토리와는 대동소이한 느낌을 주는것이 사실입니다. 첫번째 스토리의 연장선으로 봐도 크게 무방하지 않을 정도로 이어지고 있고 마지막 바운스(돌리시부인)의 묘지에서의 회상부분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조적 패러다임을 벗어나지는 않는 작품인데요. 문제는 바로 이러한 스트럭쳐가 아주 그것도 상당히 교묘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파리대왕> 의 경우 우화적 기법 내지는 신화적인 체체의 차용으로 내러티브를 한층 가열시키면서 끌어갔다면 이번 <피라미드> 정말 노멀한 분위기 그대로 나이브한 그 자체라고 해야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작품을 다 읽고 한번 더 리뷰해 보면 더 이말에 공감하게 될텐데요, 올리를 중심으로 스틸본 마을에서 벌어지는 하나 하나의 소사들이 심지어 인물들이 무심코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에 계급의 피라미드가 그대로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보이게 되면서 깔끔한 성장소설에서 상당히 무거운 담론을 품고 있는 작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근데 말이죠 오히려 이러한 기법이나 구조가 왠지 이번 작품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가장 특색은 바로 올리라는 주인공이 드러나지 않지만 정해진 계급이라는 틀속에서 성장하면서 주변의 환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소사들을 사실적인 분위기에서 한땀한땀 그려 낸다는 점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올리라는 인물 역시 그 계급적인 구조를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솔직한 담론으로 독자들에게 어필된다는 점입니다. 계급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영웅적인 내러티브나 그 피라미드속에서 어떻게 하던 발버둥 칠려고 하는 스토리를 내장한 작품(얼핏 계급적 갈등이라는 긴장감을 가지고 스릴러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작품) 이 아닌 계급이라는 거대한 피라미드 그 자체에 순응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자체가 상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컨셉트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 점입니다. 내러티브 전반에 걸쳐 그 어떠한 긴장감(올리가 이브를 꼬시는 초반부의 스토리는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오지만요) 이나 극적인 흐름을 자아내게 하는 스토리의 반전 같은 거 하나 없이 작품을 써내는것도 실상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속도가 나지 않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 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다름 아닌 같이 한번 현실을 사실적으로 음미해보자라는 참여성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계급이라는 거대한 담론에서 살아가면서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계급이라는 자체를 제대로 이해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그 진득한 맛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작품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피라미드> 가 계측의 구조를 형상화한 도형이 아니라 어쩌면 파라오의 무덤처럼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무덤이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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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으로 넘 유명한 '윌리엄 골딩'
그래서 작가 이름만 믿고 샀는데요....ㅋㅋㅋ 이 작품은 작가분의 자전적 이야기라 넘 궁금하더라구요
'피라미드'라고...하면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운 '먹이사슬'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사회시간에는 '계급사회'를 나타내는 형태 역시 '피라미드'지요....
지금...역시 신분제도가 없다고 하지만...'계급'이라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신분상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주인공인 '올리'처럼 말이지요..
약국 조제사의 아들인 '올리'
그는 올해 '옥스퍼드'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신분상승을 노리는 그에게....시련이 닥치지요..
그가 흠모하던 '이모젠'이란 상류층 여인의 약혼소식입니다.
그녀의 약혼소식에 절망하고...괴로워 하던 그에게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평소에 대화는 커녕 아는척도 잘 하지 않던 마을 최고의 미녀 '이비'
그녀가 창문 밖에서 '올리'를 부르는 이유는...
'이비'는 '로버트'라는 상류층 자제와 밀회를 즐기다가, 차가 연못에 빠졌고
'올리'에게 도움을 청한것이지요..
'이모젠'을 잃은 '올리'는 대신 '이비'에 대해 욕망을 품고...그녀를 차지하려 합니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친절한 사람을 찾던 '이비'와 달리...
오직 그녀의 육체에만 관심을 가졌던 '올리'
드디어 그녀를 차지하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임신소식에 놀라게 되죠..
그녀가 임신했다면, 결혼을 해야되고...그럼 옥스퍼드도 포기해야하니까요
그런 모습에 '이비'는 실망하게 됩니다..
결국 임신이 아닌것으로 판별나고...'이비'는 지겨운 마을을 떠나게 되죠
몇년후....
'옥스퍼드'대학 3학년인 '올리'는 런던에서 '이비'를 다시 만납니다....
화류계여인이 된 '이비' 그녀의 기억속에 '올리'는
그녀의 첫사랑이 아닌...'그녀를 강간한 사람'이였지요....
'피라미드'는 세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올리와 이비의 이야기'
'올리와 디트레이시의 이야기'
'올리와 바운스의 이야기'
신분상승을 꿈꾸는 '올리'에 비해 나머지 세사람은 '자유'를 꿈꿉니다..
그러나...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자유'란 단어는 허상인것인지??
왠지 자유를 꿈꾸던 세사람의 결말이 별로 좋지 않아...안타까웠어요...
주인공인 '올리'는 나름 '신분상승'에 성공하지만..
그가 만났던 세사람은...ㅠㅠ
왠지 결말이 좀 씁쓸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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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윌리엄 골딩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작가가 내가 중학교 국어시간에 수행평가로 읽어야 했던 [파리대왕]의 작가라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당시 나는 과제로 [파리대왕]이라는 소설을 접했지만 이 작품에서 너무나 리얼하게 묘사된 인간의 순수한 악의 행태에 충격을 받아 영화로 된 작품까지 찾아 볼 정도로 작가에게 매료되었던 추억이 있다.
[피라미드]는 골딩이 보여준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사실적인 사회 풍자 소설이다. 작가는 ‘스틸본’이라는 작은 마을안에서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영국사회의 경직된 사회계급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골딩의 작품에서도 가장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일컬어지기에 특히 유념해서 읽게 되었는데, 골딩이 유년 시절 살았던 곳에서 겪었던 계급 질서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뚜렷하게 제시해 준 작품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피라미드]라는 제목만 보았을 때는 그냥 묵직한 형상이 떠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피라미드 계급’같은 힘의 논리가 여기저기 지배하는 이야기였다. 제일 유명한 그의 작품에서 [파리대왕]과 비교했을 때, [파리대왕]이 원시적 환경으로 돌아갔을 때 겪은 인간의 잠혹한 이야기라면, [피라미드]는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즉, 자고 일어나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깃들어 있는 힘의 논리를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소설 내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삶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18세의 소년 ‘올리버’로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상류층 여성인 이모젠을 사모했지만 그녀의 약혼 소식에 우울해 하던 중 다른 상류층 집안 아들인 보비와 데이트를 즐기다 낭패를 본 이비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계층으로 분리되어 있어 당시 영국 사회에 뿌리내린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선이 그어져 있는 '계급'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들은 ‘피라미드'에 갖혀진 채로 자연스럽게 각자의 위치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혼란속에 멈추어져 버렸다. 왜냐하면 계급주의에 물들지 않고, 인간의 본질인 사랑을 바랐던 이비와 바운스는 타락의 길로 추락했고, 계급주의를 인정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던 올리버나 윌리엄스는 훗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성공의 조건이 계급에서 시작해서 계급으로 결정나는 것이라면 낮은 사람은 짓밟힉고, 높은 사람은 딛고 올라서기 위해 이용하는 그런 것이 현실일까? 하는 의구심도 생겨졌다.
작가는 한 마디로 이 세상은 이상과 낭만보다는 현실의 실리를 쫓은 사람이 성공한다는 현실에 비추어 ‘피라미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스틸본’이라는 거대한 "크리스털 피라미드"에 갇힌 채 인간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을 담아낸 윌리엄 골딩의 [피라미드]는 단지 20세기의 옛 영국사회의 모습이 아닌 21세기의 한국사회의 모습과도 오버랩되었다. 이렇게 온갖 계층 구조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풍자하고 문제를 제기한 작품인 [피라미드]를 통해 ‘크리스털 피라미드’가 구현되지 않는 그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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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
저자 : 윌리엄 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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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 읽은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2번이나 읽은 책이 아닐까 싶다. 서평 이벤트에 참여하였을 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겠다 생각이 들어 참여하였는데 막상 첫 장을 넘기면서 보니 이 작품은 내가 절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한 글자, 한 문장 문장을 곱씹으면서 생각해보아야했고 또 다시 보아야만 했다. 처음에 읽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작품 해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평소 읽고 있는 책의 좋은 구절은 핸드폰에 정리해놓을 뿐 따로 밑줄을 긋지 않았는데 이 책은 도저히 밑줄을 긋지 않고는 나에게 다가올 것 같지 않아 정말 열심히 줄을 그어가며 읽은 것 같다. 작품은 총 3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작품이 청소년이 화자가 되는 여러 작품들과 다른 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성장 소설이 아닌 평면적인 모습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성격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진다는 점이다.
2. 먼저 처음 이야기는 주인공이 18살이던 시절에 이비 라는 한 여자아이에게 욕정을 품으며 극이 전개된다. 이비라는 소녀는 스틸본이라는 마을에서 많은 사내들의 동경을 받는 아이이다. 하지만 순수한 동경이 아니라 그녀를 오로지 성적 대상으로써 바라보는데 주인공인 나(올리버)도 우연한 기회에 이비를 다시 보게되었고 그 이후로 그녀와의 관계만 생각한다. 당시 올리버는 이모젠이라는 상류층의 한 여인을 마음속으로 사모하고 있었는데 이비에게 욕정을 품은 후 이모젠을 잊게된다. '이비에겐 이모젠의 성스러운 아름다움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온전히 속세의 여자였다' 올리버에게 있어서 이비란? 바로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이모젠과는 다르게 접근이 가능한 여자이다. 상류층인 이모젠, 중산층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약간 계급이 떨어지는 올리버, 마지막으로 빈민가 근처에 살며 하류층인 이비.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작품의 제목이 왜 '피라미드'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1920년대 영국의 작은 마을은 이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살아왔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비의 어머니가 자신들에게 인사를 하더라도 절대 받아주지 않는다. ' 베버컴부인이 제정신이 아닌지 아니면 본인에게 그렇게 인사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녀가 마을 정리의 부인과 마을 경찰청장의 부인이 친하게 지내도 되는 이상한 나라 출신인지 아무도 알수 없었기 떄문이다.' 이러한 마을의 분위기 속에서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성적인 대상이자 쉽게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이비는 마을 사람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올리버도 그녀를 성욕을 해결하는 도구,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그녀가 '사보이 오피언스'라는 대중가요 그룹을 좋아한다고 말하였을 때, 갑자기 화를 내며 '싸구려! 저질' 이라고 말을 한다. 또한 마을에서 잘 보이는 언덕에, 그녀와 단 둘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아 자꾸만 수풀 안 쪽으로 숨으려는 모습 등은 그가 자신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치욕적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비와 관계를 갖게된 올리버는 일종의 승리감과 성취감을 얻게 되는데 마치 그것은 전형적인 남성들이 보이는 도취감이다. 그 전까지는 자신과 같은 중산층이나 계급으로는 높은 보비에게 외적으로나 집안으로 열등감을 가졌던 올리버는 이비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더 이상 보비에게 열등의식을 느끼지 않는 사실을 매우 기뻐한다. '올리가 이모젠에게 느끼는 고양된 감정 조차 계급 상승의 열망으로 한층 더 낭만화 되었다면, 그가 이비를 정복하며 느끼는 쾌감은 일시적으로 보비와 동등한 계급을 획득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작품해설 中 하지만 사실 이비는, 그렇게 신분적으로 엄격한 그 마을에서 진정한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정함을 느끼고 싶었던 한 소녀였을 뿐이다. 임신이 될줄 알고 조마조마했던 올리버가 임신이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며 한번 더 관계를 갖고싶어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어떻게 보면 신분이 같아야지만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었던 그 갑갑한 마을에서는 허용이 되지 않을 환상, 즉 계급을 초월한 사랑을 하고싶다는 소망을 올리버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계급을 초월한 사랑의 주축에는 바로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 이라고 얘기했던 보비가 있었다. 그리고 올리버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자그만한 소망을 가지고 자신과의 성관계만 생각하는 올리버지만 그에게 음악을 주제로 사람 대 사람으로써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녀와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다정함을 원했다. 나도 그랬지만 그녀로부터는 다정함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고매한 환상과 경배, 그리고 절망적인 질투의 일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접근 가능한 물건이었을 뿐이다'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이비는 언덕에서 올리버와 만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썼던 올리버와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올리버는 끝까지 그녀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는데 이미 마을 사람들 속에서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알려진 이비는 한 부인에게 자신이 일하는 병원의 한 의사와 밀회장면을 들키면서 쫓기다시피 런던으로 가게된다. 이비를 자세히 보면, 내가 필립 할스만의 사진전에서 마주하였던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 많이 떠오른다. 이비처럼 자신도 한 남자의 사랑하는 여인이 되고싶었던, 비록 사람들의 평은 단순히 섹시하기만 하고 백치미를 떠올리게 할지라도 사랑을 향한 그녀의 그 쓸쓸한 구애는 이비가 보비에게, 그리고 올리버에게 했던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이비의 임신 소동 당시, 그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겪게될 마을의 시선과, 또한 부모님이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위상이 나락으로 떨어질 두려움만 생각하던, 한마디로 전형적인 스틸본의 주민으로써 이기적이었던 올리버는 시간이 흐른 후 이비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그녀를 성적이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독자들은 올리버의 성숙함을 기대하게 된다. '나는 수치심과 혼란에 빠진 채 분노하면서도 깨끗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평생 분투하는 이비를 처음 다른 모습으로 보게 되었다. 마치 나의 좌절과 욕망의 대상이 갑자기 물건이 아닌 사람의 속성을 획득한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올리버는 다음 이야기에서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3. 두번 쨰 에피소드에서 올리버는 잠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방학을 이용해 스틸본으로 내려온 올리버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스틸본 오페라회의 바이올린 연주자로 참석하게 된다. 이 스틸본 오페라회는 스틸본이라는 시골 마을이 어떤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행사인데 사실 참여하는 인원 수가 매우 부족하고 그들의 재능 또한 오페라회를 지배할 만큼 뛰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할 수 있는 인원들의 사회적 지위 마저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 마을에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고 큰 무대와 오케스트라석 그리고 강당이 있다 하더라도, 엄청난 제약이 있는데 바로 사회적 제약이었다.~ 이비가 노래를 잘하고 미치도록 매력적이라고 해도, 결코 합창단 일월으로라도 출연을 제의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그려진 선 안의 사람들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 선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다면 참여가 아예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스틸본이 어떤 시골 마을인지 확연히 보여주는 곳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참여하는 단원들 사이에도 어떠한 감정적인 교류도 이루어 지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끼리 모여 진행하다 보니 생기는 불협화음으로 인해 공연은 엉망 진창이 되어버리고 이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적대감을 느끼다 보니 이 오페라회는 결국 매년 진행되지 못하고 3년 정도 텀을 주고 시작한다. 사랑도 없고 인정도 없는 이 스틸본 오페라회는 드디어 또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위대한 사랑> 이라는 따듯한 곡을 가지고 새롭게 공연을 하게 된다. 또한 매번 오페라회를 할때 주인공은 바로 시장의 따님인 언더힐 부인이 맡게 되는데 그녀의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천진난만한 소녀 역을 맡았고 그 후에는 공관 사용의 절차가 간단해졌음을 올리버는 얘기하고 있다. '위원회가 언더힐 부인을 무시했다면, 그녀의 늙은 아버지가 공관 사용을 금하고 최대한 피해가 가도록 공지를 끝까지 미룬 것은 자연스럽고도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어쩌면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는 음악이라는 장치 조차도 스틸본의 사회적 피라미드 구조 속에 갇혀 그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한 채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매개채가 되어버린 이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런던에서 온 디트레이시 만큼은 그들과 전혀 다른 사고로 오페라회를 지휘한다. 디트레이시를 통하여 잠시나마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극 중에서 유일하게 스틸본 사람이 아닌 타 지역 사람으로, 그를 통하여 스틸본이 얼마나 폐쇄적인 마을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언더힐 부인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주연 자리에서 내려오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상류층 계급인 클레이모어씨와 이모젠이 나온다. 그 둘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다는 그들이 갖고 있는 계급이 그들을 바로 주연으로 등극시켜 주는 것이다. 또 올리버에게 근위병 역할이 주어졌을 때, 상류층인 클레이모어와 중산층인 올리버의 어머니는 올리버의 극중 계급을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역할로나마 자신들의 상류층의 대열에 끼고 싶어하는 중산층의 욕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계급으로 판단하고 제약을 하는 이 마을에서 옳바른 시선으로 그들의 위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디트레이시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모젠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는 올리버에게 그녀가 사실은 무감각하며 허영심 많은 여자임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며 스틸본에 대한 적대심을 강하게 표출한 올리버에게 인간적임을 느끼며 자신이 간직한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자네는 처음으로, 그러니까 이 시골뜨기들을 데리고 말도 안되는 연습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 문자 그대로 유일하게 인간으로 느껴지는 사람이네.' 그의 이러한 고백은 올리버에게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올리버가 보여준 행동 하나로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데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올리버가 잠깐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불만감을 표현하였다 할지라도 그 자신 또한 어쩔 수 없는 스틸본 사람임을 뜻한다. '이비로 인해 난생 처음 타인과 공감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려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디트레이시와의 공감을 통해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갈 수 있었던 올리는 결국 실패한다.' - 작품해설 中 비록 올리버가 디트레이시로 인해 이모젠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그의 한계로 인해 다시 좁은 세계관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자신이 성공한 연주를 축하받기 위해 다시 서로 아무런 교감이 없는 듯 삼삼오오 서있고, 또한 삼 년간은 가동되지 않을 그 딱딱한 오페라회로 돌아가는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변화할 수 있었던 올리버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4. 마지막 에피소드인 바운스 부인과 헨리의 이야기는 솔직히 그동안 느껴졌던 음산했던 분위기가 다른 에피소드보다 더욱 짙게 느껴 지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계속해서 '사랑'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돌리시 부인과 헨리의 에피소드는 이 작품 속에서 말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종결시키고 있다. 돌리시 부인은 아버지로 부터 강압적인 음악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 안에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자각이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로 스틸본 내에서는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헨리라는 한 남자가 나타나게 되는데 여성으로써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바운스가 처음으로 헨리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성성이 결핍된 바운스가 헨리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서툴렀는데 상류층은 아니지만 물려받은 재산이 꽤 많아 사람들 이 무시하지 못하는 돌리시 부인이 자신보다 낮은 계급인 헨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스틸본 주민들은 그런 모습을 비웃고 한편으로는 재밌어하기 까지 한다. 헨리가 돌리시 부인의 돈을 보고 접근했다고 바라보는 주민들은 점점 헨리가 그녀의 돈으로 사업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기뻐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여러 주민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이 아닌 오직 올리버의 어머니를 통해서만 비춰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앞선 두 에피소드로 인해 스틸본 내에 가득한 이기주의와 계급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알아차릴 수 있다. 결국 헨리와 돌리시부인, 그리고 헨리의 부인이 함께사는 기이한 삼각관계는 스틸본의 전통적인 모습을 무너지게 하는 계기가 됬을 뿐 아니라 당사자인 돌리시 부인 마저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이 아이는 저런 상실된 엄숙함을 결코 알지 못하도록, 여성과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 충만함을 느낄 수 있도록 키워야 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시간이 흐른 후, 세 아이의 아빠가 된 올리버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의 부탁으로 돌리시 부인을 찾아갔을 때, 이미 몸과 마음이 피폐 해져버린 그녀를 보며, 그리고 그런 모습이 두려워 자신에게 기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자신만은 그렇게 아이를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올리버의 모습을 통해서 그가 그녀를 향해 어떠한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올리는 그녀를 이용한 윌리엄스와 관음증 적인 스틸본 사회의 잔인함이 빚어낸 결과를 목도하지만 그녀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그녀의 벌거벗은 모습에서 스틸본 사회의 위선을 보며 불편함을 자아낸 그녀를 오히려 원망한다.' - 작품해설 中 어떻게 본다면 사랑 앞에서 자신의 계급은 신경쓰지 않고 순수하게 달려든다는 점에서 이비와 바운스 부인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모습이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운영되지 않고 전통적인 계급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운영되는 스틸본 사회에서 이들의 이런 모습들은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이들은 한명은 스틸본에서 영원히 떠나고, 한명은 죽음으로 스틸본을 떠남으로써 '추방' 당하게 된 것이다.
5. 사실 스틸본의 위선과 각박함은 동네의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게 된다. Stillborn이라는 단어는 '사산된'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또한 계급을 상징하는 피라미드는 이집트에서는 거대한 무덤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피라미드 안에는 이미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자들을 매장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제목과 또 골딩이 가상으로 설정한 배경은 이미 그 시작부터 이 작품 속 내용과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암시해주는 복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로도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말보로'라는 전통적인 계급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성장 배경이 이후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 수 있게 된다. 작품 속에서 올리버는 아무리 스틸본을 떠나 있어도 자신과 스틸본 사이에 존재하는 중력과도 같은 영향력이 계속해서 자신에게 그 영향을 끼칠 것임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서 입체적인, 즉 그 속에서 성장하고 깨우치고 뉘우치는 모습이 아닌 스틸본의 영향을 받아 결코 바뀌지 않는 평면적인 모습의 주인공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위선적인 모습은 비단 스틸본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좀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이러한 모습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러한 잘못된 모습을 자각하고 반성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물들었기에 힘들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올리버의 이런 모습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 속에서도 올리버와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한번 더 나 자신부터도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 나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피라미드 속에는 어떠한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생명력은 다시 말해 사랑을 뜻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뜻하고 내가 사람으로써 느끼는 모든 욕망들을 뜻한다. 내가 이 피라미드 속에 갇혀서 이러한 생명력들을 스스로 stiiborn 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한번더 내 삶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삶은 육체적으로는 살아 숨쉴 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이미 사산된 것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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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3번째 이야기가 조금은 어려웠던...)
1. 힘의 논리
골딩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현실의 풍경은 삭막하고 우울함 그 자체다. <파리대왕>에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어린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학습된 제국주의 세계관에 따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소라를 집어던졌고, 기술문명을 상징하는 안경을 빼앗았다. 그들은 고기를 먹고 싶었고, 멧돼지를 잡을 능력을 보여주는 리더를 추종했다. 무인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승자는 랠프가 아니라 잭이었다.
피라미드. 제목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이 소설 역시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파리대왕과의 차이점을 굳이 설명하자면. 파리대왕이 원시적인 환경으로 돌아갔을 때 일어난 일을 그려냈다면, 피라미드는 지금 살고 있는 현실 그대로. 즉, 자고 일어나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에 깃들어 있는 힘의 논리를 풀어놓는다. 이 현실은 소설 내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2013년을 살아가는 현재 우리의 삶도 지배한다.
2. 계급주의 사회
<피라미드>의 핵심은 고착화된 계급주의다. 자본에 대한 양 극단, 직업에 대한 양 극단, 가문에 대한 양 극단.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정말로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정보회사를 찾아가서 상담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집 소유여부와 평수를 묻어보고 끼리끼리 논다고 그런다고 하던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이 계급의 분류 속에서 주인공으로 받을어지는 사람들은 항상 명망높은 귀족(지금은 재벌집 도련님)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소설 속 올리버의 부모처럼 주인공 옆에서 바이올린은 연주하는 사람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배역(대령, 중령, 소령)을 허락받기 위해서 꼬리를 흔들고, 그 배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행위를 통해 계급을 나눈다.
사실 소설의 주인공 올리버는 그가 사는 곳의 암묵적인 규범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남의 행동을 보면서 불평하는 올리버 또한 남들처럼 행동했다. 상류층 여인인 이모젠의 약혼이 그에게 던져준 우울함은 자격지심을 만들었다. 그래서 올리버는 자신보다 계급은 낮지만, 외모가 뛰어난 이비를 단지 육체적인 탐욕의 대상으로. 자신의 자격지심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약사의 아들인 올리버는 의사의 아들이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이비를 탐했다는 것에 기뻐한다.
한편, 자신보다 사회적인 계급이 낮은 사람을 선택한 바운스의 삶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바운스는 가진 것 없는 웨일스 청년 윌리엄스를 택했지만, 윌리엄스는 그녀의 재산으로 성공한 이후 그녀를 버리고 만다. 그녀가 어떻게 쓰러지는지 이웃사람들은 재미난 드라마를 관람하듯이 바운스의 추락을 즐긴다.
3. 혼란
<피라미드>는 독자를 엄청나게 혼란스럽게 한다. 왜냐하면 계급주의에 물들지 않고, 어쩌면 본질에 가까운 사랑을 바랐던 이비와 바운스는 타락의 길로 추락했고, 계급주의를 인정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던 올리버나 윌리엄스는 훗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올리버가 성장한 후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쓴 소설이고 말이다.
과연 성공의 조건이 계급에서 시작하여 계급으로 결정나는걸까? 낮은 사람은 짓밟고, 높은 사람은 딛고 올라서기 위해 이용하는??
골딩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동시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이 세상은 이상과 낭만보다는 현실의 실리를 쫓은 사람이 성공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라미드>같은 모습일 것이다. 이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파리대왕>도 그랬던 것 같다.
이것이 정의인가?
26. 내 시야 바로 아래에서 로버트가 나에게 '어떤 표정'을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표정'은 무엇인가 하면, 제국을 지켜 준 '표정', 혹은 적어도 제국을 진압한 '표정'과 같은 것이었다. '그 표정'과 어쩌면 채찍 손잡이로 무장했을 백인들은 곤봉과 창 속에서 쉽사리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 '표정'은 자신의 우월함을 올리버에게 드러내는 상징 149. 보이지 않게 그려진 선 안의 사람들 소수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 선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5. 올리버 :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모든 게 다 잘못되었어요. 모든 게요. 진실도 없고 정직함도 없어요. 오, 맙소사! 삶이란... 내 말은 그러니까 저기 저기에... 하늘만 봐도 그래요. 스틸본은 하늘을 지붕으로 받아들이죠. 마치... 그리고 우리가 몸을 숨기는 것, 우리가 말하지 않고, 감히 언급도 하지 않는 것들이나 우리가 만나지 않는 사람이나... 그리고 사람들이 음악이라고 부르는 그것들. 다 거짓이에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요? 다 거짓말, 다 거짓말이라고요! 역겨워요!" 237. 나는 이완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때 내게 늘 선물을 주었던 걸 유감스럽게도 기억한다. 그들 역시 크리스털 피라미드의 시간에 맞춰 진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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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의 작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접했다. ‘파리대왕’이 나에겐 너무나 인상 깊었기에 이 책 ‘피라미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특히, ‘피라미드’는 윌리엄 골딩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란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1920년대 영국 계급사회의 암울하고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이 책은 단순히 영국사회의 계급적인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수준이 아닌 영국사회에 대한 풍자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신랄하게 파헤치는 인간성 성찰의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작은 마을 ‘스틸본’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욕망과 위선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계급사회라는 피라미드에 갇힌 당시의 인간군상을 잘 들여다보게 한다.
옥스퍼드 대학의 입학을 앞둔 18살 주인공 ‘올리버’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계급에 따른 그들의 내면의 의식이 어떻게 외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골딩 특유의 문체로 잘 표현해내고 있다.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피라미드’는 첫째 ‘올리’와 ‘보비’, 그리고 두 사람이 놓고 경쟁하는 ‘이비’의 삼각관계를 통해 계급과 남녀 간의 욕정사이의 관계를 잘 묘사하며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골딩만의 문학적 특징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각기 스틸본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다른 이 세 사람의 위선적인 관계를 통하여 상위계층은 그들만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하위계층에 대한 위압감을 표출하고 하위계층 또한 자신들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계급을 이용하는 심리적 묘사들이 매우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둘째 이야기는 ‘스틸본’의 주요행사인 오페레타 공연을 둘러싼 디트레이시와 이모젠을 중심으로 하는 희극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위선적인 사람들의 계급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셋째 이야기는 올리의 피아노선생인 도로시 부인과 웨일스 출신의 떠돌이 자동차 정비사인 헨리의 불편한 관계를 무관심 한 척하지만 그녀의 몰락을 은밀하게 오히려 즐기며 바라보는 위선적인 사람들의 시선을 매우 흥미롭게 그려놓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윌리엄 골딩의 자전적이란 의미에서 바라볼 때 영국사회가 얼마나 가면을 쓴 인격, 즉 ‘페르소나’가 어떻게 사실적으로 들어나고 있는지 잘 느낄 수 있다.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그들의 행위와 심리를 통해 바라본 신분의 교체에 대한 그들의 열망은 피라미드 조직 안에서 온전한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비참하고 적나라한 그들만의 세계가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윌리엄 골딩의 특징인 희극을 통한 비극적인 이야기, 혹은 비극을 통한 희극적 이야기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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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윌리엄 골딩 올리버는 옥스퍼드 대학 입학예정인 18세 소년이다.. 그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고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것은 현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두 로맨스 사이에 나타나는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 구조를 볼 수 있다. 첫 번째 로맨스 - 올리버 와 이비 상류층 여인 이모젠의 약혼소식에 우울해하는 올리버에게 나타난 이비.. 연상인 이모젠을 사랑했다기 보다는 그를 통해 신분 상승을 꿈꿨던... 올리버에게 이모젠의 약혼은 배신과 상실감을 맛보게 해준 것이다. 그때 마침 나타난 이비에게 올리버는 육체적 욕망을 품게 된다.. 사랑을 갈구하는 이비.. 외모적인 면으로만 다가서는 남자들에게 이비는 진정으로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외모적인 모습에 호감과 욕망을 가진다. 이 둘의 사랑은 이 시대의 성공을 꿈꾸는 젊은 남자와 사랑을 찾는 젊은 여자의 로맨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시대 많이 볼 수 있는 장면... 아마 드라마를 통해 이런 장면을 많이 봐서 그런지도.. 두 번째 로맨스 - 헨리와 바운스 상류층인 바운스는 하층민인 떠돌이 헨리에 호감을 가지고 있다. 헨리에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바운스.. 그러나 헨리는 유부남이라는 것... 바운스는 헨리의 달콤한 말과 헌신적인 모습에 자신의 마음과 재산까지도 그에게 주고 만다. 그러나 헨리는 유부남이기에... 이 둘의 관계는 사실 모호하기도 하다. 일방적인 바운스의 사랑인지.. 아니면 헨리의 바람인지.. 바운스의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을 보면 헨리는 호의를 베풀었고, 바운스는 헨리를 사랑해서 옆에 두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헨리와 바운스의 사랑은 불륜이거나 짝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 두 로맨스 사이에 피라미드적인 사회구조가 뿌리 내려있다. 상류층과 어울리지 못하는 하류층.. 중산층인 올리버는 상류층인 이모젠을 통한 신분상승을 꿈꿨으리라.. 이비는 단지 욕망의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상류층인 바운스의 헨리에 대한 사랑의 모습을 통해 모든 것을 헨리에게 빼앗기듯 하지만 주위의 누구도 그것을 경고하거나 그를 도우려고 하지 않는다. 냉담한 그들에게 어찌보면 인간적인 헨리가 더 많이 끌렸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성공한 올리버에게 있어 스틸본에서의 삶은 삶의 애환과 삶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바운스를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장면을 보면서 아마 올리버는 바운스와 있었던 어린시절 바이올린을 배우고 피아노를 배웠던 시절부터 헨리와의 일, 이비와의 사건, 뮤지컬 공연의 일까지 스틸본에서 있었던 모든 것을 정리하며 아이들에게는 나보다 더 좋은 환경과 더 좋은 것들을 보여 주고 가르치고 알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람은 성장하며 많은 일들을 겪게 된다. 영국 작가인 윌리엄 골딩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라고 하는데 신기하게 나의 어린시절 모습과도 너무나 비슷하다. 돈의 많고 적음으로 인한, 성공의 유무로 인한, 직업의 귀천으로 인한 알게 모르게 나누어진 계급으로 인해 아이들끼리,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어린 시절, 누구와는 놀지 말아라, 누구 같은 아이랑 친하게 지내야 한다. ㅎㅎ 성공을 위해 부단히도 애써야 했던 그 당시 어른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다 부질없는 것이거늘... 빈부의 차이, 직업의 귀천의 차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다..는 것을 어른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그러면서 내아이들에게는 좀더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들을 만들어 주고 싶어하는 것을 보며 나도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우리의 모습이다. 영국의 모습일 수도, 한국의 모습일 수도, 미국의 모습일 수도, 세계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며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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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딩은 1911년에 영국에서 태어나 1993년까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그가 인생의 3분의 2쯤을 지나던 시기에 쓴 작품이 바로 이 피라미드다. 이 책에는 많은 인물군이 나온다. 전통적 부르주아, 영향을 잃게 된 구시대적 인물들, 떠오르는 신흥 계급을 대표하는 여러 인물들이 출현해 당시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골딩은 끔찍한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하고 관찰하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의 참혹한 유럽을 보았다. 그러나 마샬 플랜에 의해 막대한 돈이 쏟아지던 유럽사회는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다이나믹하게 변형되었다. 속물성이 판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골딩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었다. 골딩은 그의 작품을 통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그렇지만 이미 현실이 되버린 세계를 재현해낸다. 골딩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인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인 삶을 접하는 것과 같다. 골딩은 그의 대표작인 파리대왕에서 인간의 본성, 도덕적 타락, 즉 원죄에 대해 다루고자 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 이 피라미드라는 작품을 썼다. 두 작품에서 골딩이 다루는 주제는 같다. 근원적으로는 인간의 죄와 악, 표면적으로는 속물성이다. 속물성은 창조적 정신을 결여한 채 가장 저열한 것만을 모방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파리대왕에서 모호한 형태로, 알레고리화 되었던 골딩의 인간관이 피라미드에서는, 십년 뒤에는 구체적인 형상을 띤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의 사상이 좀 더 견고해진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골딩은 자전적인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 들끓었을 하이퍼그라피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골딩의 작품은 비슷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위스의 극작가 뒤렌마트의 작품과 같이 읽으면 더욱 깊은 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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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던 해 골딩의 '파리대왕'을 처음 접했다. 뭐..곤충에 관한 이야기겠거니..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읽다보니 점점 15소년 표류기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듯..그러다 사람들의 본성이 아이들에게도 똑 같이 작용한다는 것을 느낄 때쯤...갈등은 풀린다. 하지만 아이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갔던 긴장감과 두려움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피라미드'는 '파리대왕'의 저자 골딩의 작품이다. 골딩의 또 다른 작품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반가워 선택한 책이다. 책 표지를 보니 왠지 이 책도 인간의 심리를 다룬 듯 하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파리대왕' 의 강렬한 이미지가 남아 있는 내게 어쩌면 이 책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처럼 잔잔하게 다가왔다. 그만큼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세계 여행이 꿈이다. 다른 문화와 지리를 접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사람들의 다른 일상을 관찰해보고 싶어서다..
유감스럽게도 영국이라는 나라는 아직 여행해보지 못했다. 영화와 책으로만 접했을 뿐이다. 주인공은 올리버. 영국에서 올리버는 철수만큼 흔한 이름인가? 새삼 올리버 트위스트가 떠오른다. 5살 많은 연상의 여인을 좋아한다. 그녀가 선택해 주길 바라지만 다른 남자를 선택한 이모젠은 그를 열병에 시달리게 한다. 그러면서 다른 여인과의 짧은 입맞춤이 그를 설레게 한다. 사춘기 소년답게 그는 질풍노도의 감정에 휘둘리고 있나보다.
이비 주변을 떠날 수 없는 올리버..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매력에 휘둘리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는 시기이기에 올리버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제목이 왜 피라미드일까 생각했다. 책장을 덮은 후 작품 해설을 읽으며 크리스털 피라미드에 비유되는 내용이라고.. 영국 사회의 체면을 유지하면서도 은밀하게 훔쳐보는 관음증과 집단적 폭력을 드러내는 책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풍자적 이야기가 이해하기 힘들때가 있다. 그 나라..그 당시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래서 작품 해설이 필요한 거 같다. 덕분에 영국문학에 대해서 조금의 지식을 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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