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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루저’가 들어가 있다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학교폭력, 괴롭힘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게 나오는 이야기는 조금 어둡기도 한데, 이 책은 밝은 편이다. 고등학생이라고 하는데 어쩐지 중학생 같기도 하다. 열다섯 살이라고. 이 책이 그렇게 어둡지 않은 것은 많은 아이들이 루저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루저인 아이, 루저인데 제리 위트먼을 따르는 아이, 루저도 제리 패거리도 아닌 아이.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 거의 한사람을 여럿이 괴롭히는데 여기에서는 제리 위트먼이 많은 아이들을 괴롭히고 돈을 뜯어낸다. 그런데 제리는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꼭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제리가 한사람 뇌성마비 때문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알렉스 쉐어우드만은 괴롭히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제리는 알렉스를 업신여기고 얕보는 듯했다. 알렉스는 루저들을 도와준다. 돈이 없는 아이한테 돈을 빌려주고, 윈스턴이 사물함에 갇히면 꺼내주었다. 그리고 뚱뚱한 매니와 함께 있어주기도 한다. 알렉스가 함께 있으면 제리가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윈스턴은 몸집이 작다. 세 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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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라는 단어를 방송에서 잘못써서 인터넷 상에서 한바탕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제는 루저라는 말은 광범위하게 쓰이고 더이상 새롭지도 않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실패자, 패배자로 통용되는 루저라는 단어를 듣는것이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도 당당히 루저 클럽이다. '사상 최고 루저들이 뿔났다!'니 위너들이 들으면 '그래서 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세상에 둘도 없는 지질이들이 모여서 루저 클럽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쉐어우드, 키작은 루저 윈스턴 챙, 뚱보 루저 매니 클랜들 등, 괴롭히는 아이들의 눈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루저로 만들어 버린다.
루저클럽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인 제리 위트먼과 그의 패리거들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엄연히 학교 폭력이다. 매주 금요일에 상납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모자라면 폭력을 일삼는다. 그리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 학생이 그렇듯 이들도 쉽게 제리 위트먼에 대항하지 못한다. 그저 조용히 학교 생활을 마치고 싶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참다 못한 루저들 중의 쉐어우드가 제리와 그 패거리의 악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그들의 용기가 가상하다. 어떻게 보면 시작도 전에 게임 끝일것 같은 제리와의 도전에 그럼에도 맞설수 있다는 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부분이고 응원하게 되니 말이다.
결국 루저클럽은 제리와의 도전에서 승리한다. 그리고 제리의 사정도 밝혀지는데 왠지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 책에서처럼 현실속의 아이들도(물론 학교 폭력 피해학생이 모두 루저라는 의미는 아니다.) 루저클럽의 아이들과 같이 당당하게 맞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든다. 또한 아이들이 고통스러운 학교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많은 학교 관계자와 교육기관, 정부 등의 사람들이 변화를 위한 행동을 몸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
경쟁에서 실패, 패배자란 뜻의 루저. 사상 최고 루저들이 뿔났다. 책두깨감은 있지만 학교폭력을 소재로한 이야기라 더 관심을 가지고 보면서 부담없이 즐기면서 볼수 있었다. 제리패거리들에게 도전장을 낸 루저들의 왕 쉐어우드 어디선가 어려움이 처해지면 나타나는 슈퍼맨처럼 그들과 맞서기위해 용기를 낸 쉐어우드로 인해 루저들에게도 희망을 가져본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있는 학교폭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주인공인 뇌성마비로 목발을 짚고 다니는 루저들의 왕 알렉스 쉐어우드, 키가 작아 사물함에 갇히게 되는 굴욕을 맛봐야만 하는 윈스턴 챙, 뚱보 매니 클랜들까지 제리 패거리들의 먹이감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데 누구하나 나서지 못하고 피해다니는 모습에서 그들이 설자리가 없음을 알게 해준다. 여기에서는 학교폭력을 막아줄 어른도 누구하나 중재해줄 사람도 볼수가 없다 오로지 아이들 스스로 극복해 내면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을 볼수가 있다. 쉐어우드는 윈스턴과 함께 룸메이트 생활을 하게되고 그 옆집에 사는 해리의 개성넘치는 모습과 이해할수 없는 행동들을 보면서 대화를 통해 서로 다름에 대해서 생각해 볼수 있었다. 우리는 겉모습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서로 소통하면서 이해해 나가며 다름에 대해 받아들일수 있을것 같다. 제리 패거리들과 크리스마스 전구 경쟁을 과연 이겨낼수 있을지 루저들이 이 난관을 극복해내고 학교폭력에 맞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을 만나볼수 있다. 조금은 어두울수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내용만큼은 아이들의 심리나 일상의 상황들이 흥미롭게 펼쳐져서 재미있게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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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소년 도서이다. 학교폭력이 일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 안타깝지만 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가 없는 점이 상황대처와 상황극복에 초점을 맞추기에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목발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알렉스의 처지는 자칫 이중 따돌림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테지만 자신의 상황을 루저들을 돕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상납할 돈까지 빌려주는 알렉스의 행동은 가히 구세주라 불릴 만하다. 키 작은 윈스턴, 목발 짚는 알렉스, 뚱보 매니 이렇게 세 친구들이 주최가 되어 그들처럼 일명 루저인 괴롭힘 당하는 약자들이 모이게 된 루저클럽으로 이어졌다.
주인공인 세 아이들과 가해자인 제리조차도 사실 결손가정의 피해자들이다. 윈스턴의 집에서 지내게 된 세 아이들은 돌봐줄 어른이 없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서로를 위로하며 지내는 것이지만, 친구 집에 모여 자유롭게 지내는 모습은 부럽게만 보인다.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이라는 대결로 내기를 함으로써 그들의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여럿이 힘을 합쳐 자신들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위험하고 무모하게 생각되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 학교폭력의 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결국 루저들이 승리함으로써 보람과 성취감을 안겨주고 모두의 마음속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겼을 것이다. 인생의 밑거름이 되는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소중한 경험은 인생을 살면서 포기하지 않는 불씨가 되어줄 것이다.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http://cafe.naver.com/hanurimom 좋은 책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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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란? loser 즉 패자라는 것이다. 루저 클럽이라면 패자의 클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루저들이 제리 위트먼에게 도전장을 내밀어서 결투를 하는 것이다. 당하고만 있었던 루저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루저들의 왕인 쉐어우드가 도전장을 내밀어 결투를 하게 된다. 만약 이 결투에서 지게 된다면 그들은 영원히 루저로 살아야 한다.
차례는 원스턴 챙부터 승리의 날까지 총 20부가 있다. 맨 마지막의 제목이 승리의 날이니까 루저들이 결투에서 이기게 된 다는 것을 예상 할 수 있다. 차례의 중간중간 제목들을 보니 흥미진진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나는 “어떤 분야에서 내가 너를 눌러 버릴 수도 있어.”라고 했다. 제리 위트먼은 즐기고 있었다. “너무 범위가 넓잖아. 그렇지 않아, 쉐어우드? 조금 좁혀 보는 게 어때?” 쉐어우드는 크리스마스 전구 불빛 축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게 바로 내가 너를 눌러 버릴 수 있는 종목이야.” 제리 위트먼은 그 결투를 받아드렸다.
제리 위트먼은 현재로 치면 깡패 같은 사람이다. 즉, 가해자이다. 쉐어우드가 제리 위트먼에게 “어떤 분야에서 내가 너를 눌러 버릴 수도 있어.”라 말할 때 속이 시원했다. 계속 당하고만 있어서 답답했던 쉐어우드가 갑자기 충격적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편지가 있는데, 글과 편지를 구분할 수 있도록 글씨 두께를 다르게 해서 좋았고, 아이들이 읽으면 재미있어 할 책처럼 보여서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웃겼다. ‘아! 나도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되겠구나!, 이런 짓을 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당하면 바로 되돌려 주는 센스가 있다. 그래서 웃길 것 같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는 느끼는 게 많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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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루저라는 단어를 알게 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요!! 네이버에서 실시간검색 1위를 하길래 클릭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거 같아요~
지금도 루저라는 말이 사실 많이 공감 되진 않고 있어요. 루저라는 말이 가히 좋은 뜻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루저라고 부르는 이유를 보면 굳이 루저라고 표현할 일도 아닌거 같아요~ 만약!! 나 자신이나 주변에 누군가를 루저라고 괴롭히고 또 나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단비청소년 도서 "루저클럽"을 필독해 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어요~
"루저클럽" 책표지만 보면 익살스런 표정등을 보며 흥미 위주의 도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표지를 제외하곤 모두 빼곡한 글들로만 되어 있어서 처음에 책을 접하면 다소 부담스럽다고 느낄수도 있어요. 하지만 폰트가 커서 어느정도의 분량도 부담없이 읽는 정도라면 초등 고학년도 충분히 소화할수 있는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루저클럽은 다소 무겁다고 생각할수 있는 사회문제를 다룬 책이예요. 주인공 알렉스 쉐어우드가 포함되어 있는 루저클럽과 또 루저들을 괴롭히는 제리 위트먼 일당 이야기!!
학교에서 제리 위트먼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상납금을 내야 하고 또 제리 위트먼이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것엔 거리를 멀게 해야 하는등...어찌 보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 에서도 이런 일들이 학교에서 버젓이 일어 나고 있다는 사실!! 루저라고 말하지만 어찌보면 루저클럽의 아이들은 결코 실패한 패배자가 아니라는 사실~ 주인공 알렉스 쉐어우드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를 갖고 있는데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알렉스 쉐어우드를 루저라고 부른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아실거예요. 우리 삶에 있어 성공과 실패를 섣부르게 따져 묻는다면 그게 더 바보같은 행동이 아닐까?.... 마지막장인 승리의 날을 읽다 보면 제리 위트먼에게 갖고 있던 나쁜 감정을 조금은 누그러 들게 하는 반전이 있어요....제리가 왜 그렇게 친구들을 괴롭히고 루저라고 따돌리고 했는지...
제리를 그저 나쁘다고 하기 전에 우리 어른들이 먼저 생각해보고 뒤돌아 보고 반성해야 할 일들이 있는거 같아요. 저는 사람은 누구나 동등하다고 생각해요. 루저라는 말 뜻이 경쟁에서 패배하고 또 경멸적인 어조를 담아 실패자라고 한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은 루저라는 말로 누군가를 비하하고 또 이것이 일파만파 퍼져서 어느 순간에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여지는 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루저클럽을 보면 결국 "루저클럽"이 승리하긴 했지만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심각하게 느끼고 생각해야할 부분들이 많아 졌다는 것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어요. 저는 읽으면서 크게 지루함을 느끼진 못했는데 제가 만약 청소년이라고 생각했을땐...좀...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360P 분량도 단숨에 읽어 내려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에겐 좀 지루하게 느껴질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중간 중간 삽화라도 있으면 오히려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적극 권장하고 싶은 도서라는 것을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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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의 그림만 보면 초등 저학년 도서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책은 청소년 도서다. 360 페이지 까지 있는, 생각보다 두툼한 책의 두께에 놀라게 된다. 책이 워낙 재밌어서 읽다보면 두께는 잊게 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책속의 등장 인물들은 고등학생들로 벤쿠버에 사는 학생들이다.
루저 클럽
사상 최고 루저들이 뿔났다! 더 이상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루저들의 왕, 구세주 쉐어우드가 제리 위트먼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리와 패거리들은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이는데... 이 결투에서 지면 그들은 영원히 루저로 살아야 한다. 보기만 해도 지질한 그들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루저들은 게리 위트먼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고통을 당한다. 상납금을 제때 내지 않으면 개인 사물함에 가두기, 급식실에서 날아오는 도넛에 맞기! 화장실 변기에 얼굴 쳐박기 등등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루저 아이들은 그걸 고스란히 감내를 하게 된다.
결국 아이들은 루저들의 모임인 루저 클럽을 만들게 되고, 힘을 모아서 말도 안되는 괴롭힘에서 당당히 벗어나게 된다.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건 바로 루저들의 구세주, 쉐어우드 때문이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쉐어우드지만 그는 당당하게 제리 위트만에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다.
책속에는 많은 루저들이 존재한다. 키가 작은 루저, 부모가 이혼한 루저, 너무 가난해도 루저, 너무 부자여도 루저, 장애인도 루저, 뚱뚱해도 루저..
결국 이렇게 놓고 보면 우리 모두가 루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또한 루저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루저들을 괴롭히는 게리 위트먼 역시 그의 아빠 입장에선 루저일뿐이다. 아마, 게리 위트먼이 아이들을 루저라며 괴롭히는건 자기가 아빠에게 당한거에 대한 보복을 아이들에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루저가 아니라는걸 그의 아빠에게 말하고 싶은걸 잘못된 방법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듯 하다.
똑같은 인간끼리 괴롭히는건 올바르지 않다는걸 알려주고 싶다. 각 학교마다 일진이 있다는 말을 듣지만, 사실 나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서 긴가민가 할때가 많다. 진짜로 학교에 이런 아이들이 있다면 해결 방법을 모색을 해야 할것 같다. 난 학생의 입장이 아니라 부모의 입장이다 보니 아이들 스스로 고민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어른들께 알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 입장에선 보복이 무서워서 '쉬쉬' 비밀로 하지만 그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이런 부분은 개입을 해줘야 할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선생님들이 없기를 바래본다.
다행히 루저 클럽의 아이들은 슬기롭게 제리 위트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자는 약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생각을 잊지 말기 바란다. "루저 파워"를 외치며 아이들은 '메리 크리스마스, 제리 위트먼' 을 선보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윈스턴과 나는 칠면조 엉덩이 뒤에서 우리를 귀신처럼 쳐다보고 있는 제리 위트먼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니는 제리 위트먼의 얼굴을 갈색 페인트로 살짝 뒤덮었지만 우리는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고 진정하려고 애썼다. "너희가 내 마지막 작업을 마음에 들어 하니 기쁘구나. 나는 이걸 '메리 크리스마스, 제리 위트먼'이라고 이름 붙였어." 매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윈스턴은 다시 활짝 웃으며 선언했다. "만약 당신이 쿨할 수 없다면 바보처럼 굴어라!" "미숙함은 반란의 강력한 형태다." 내가 덧붙였다. 매니는 주먹을 공중에서 흔들며 소리쳤다. "뚱보 파워!"
(p/342 루저클럽 '승리의 날' 중에서..)
루저가 아니라 남들과 조금 다를뿐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갖길 바라며, 난 특별하다는 생각을 통해서 자존감을 가져보자! 루저면 어떤가! 나만 행복하면 되는것 아닌가? 위축되지 말고 당당히 어깨를 펴도록 하자! 루저클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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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루저 라는게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뿐인 인생인데 누구는 루저로 누구는 루저를 괴롭히는 아이들로 살아간다. 뭐 처음부터 내정된 인생은 아닐지 몰라도 여러가지 상황이 그 상황속에 몰아넣는다. 나역시 뭐 완전히 루저다!!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그런 비슷한 때가 있었다. 사람들과 지내다보면 야무지고 활달해서 전혀 그런일이 없었을 것 같은 사람들도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뭐 그렇다고 모두가 한번씩 겪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런 루저인 상태에 되는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루저에서 벗어나도록 용기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사실이다. 이 책속의 루저들의 집합체를 만들어낸 아이는 뇌성마이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알렉스 쉐어우드. 뭐 그 아이도 루저는 아니지만 루저인 아이들에게 어쩌다 보니 버팀목이 되어 있다.
루저중에는 사물함에 자주 갇히는 작은 체격읜 윈스턴 챙. 그리고 뚱보인 매니 크랜은 자연스럽게 알렉스 쉐어우드 옆에 모여있게 된다. 쉐어우드의 아버지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엇이든 만들어내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머리가 나는 약?을 만들었다가 그 약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 소비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뭐 그뿐 아니라 쉐어우드가 딱 감당할수 있을 정도로 일반인과 다른 괴짜다.
윈스턴과 매니 역시 가정사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은 루저들을 괴롭히는 제리와 패거리들에게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수 있는지 모색하지만 그 길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무한정 당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느날 제리와 쉐어우드는 더 이상 루저로 살지 않아도 될만한 방침을 의논한다. 제리는 분명히 모두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거라고 생각하고 루저 클럽의 아이들 역시 제리와 대결을 한다는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런 루저 클럽에 몇몇 어른들도 동참을 하면서 이야기는 루저들의 승리로 진행된다. 물론 승리를 이루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우여곡절끝에 루저들은 멋진 승리를 이루어내지만 그만큼 제리의 희생도 간과할수 없는 사실이다. 매니는 루저였다가 루저가 아니라는것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언제 또 제리가 나타나 괴롭히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떤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처가 어느순간 아픔으로 다가오듯이 말이다. 가끔은 명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때 난 루저였어! 하지만 노력해서 루저에서 벗어난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정한 루저였을까? 그렇게 벗어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루저들이 힘을 내고 나약한 처지에서 박차고 일어날수 있는 응원군이 되어줄수 있을것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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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존 레키치
고통은 언제나 그의 친구 (또 다른 고통)를 동반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루저클럽을 만들기로 했다. (p6)
루저의 의미는 무엇일까? 단어 의미 그대로라면 어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자. 패배자라는 의미일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쟁에서 진것일까? 인생이라는 삶의 현장의 경쟁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죽을때를 맞이하지도 않은 이제 막 피어나는 학생들에게 왜 벌써 루저의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것일까? 타고난 환경이 남보다 조금 힘들고, 신체적으로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출발점부터 왜 루저이어야 하는가?
마셜 매클루언 고등학교에서 제리 위트먼은 언제나 루저들을 괴롭힌다. 정해진 상납일에 돈을 가져다 주지 않으면 일주일내내 그에게 고통을 당한다. 윈스턴 챙도 그중의 하나다. 그는 남보다 상당히 작은 키에 여리여리하다. 언제나 제리에 의해 자신의 사물함에 갇히기 일쑤이다. 매니 크랜들은 남들보다 뚱뚱한 몸집으로 제리에게 놀림을 당한다. 툭하면 점심시간에 도넛이 날아오곤 한다. 나 알렉스 쉐어우드도 제리의 입장에선 루저이다. 언제나 목발을 짚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알렉스에게만은 직접 고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고통을 주면서 알렉스를 누르려는 모습을 보인다. 알렉스는 자신의 돈을 조금씩 몰래 아이들에게 빌려줌으로써 제리의 횡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구세주 쉐어우드"라는 별명이 붙었다. 어느날, 참다못한 나 알렉스는, 제리 위트먼에게 도전장을 낸다. 엘비라 멈포드 기구에서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전구 달기 대회에서 알렉스 편이 우승하면 다시는 돈을 뺏거나 괴롭히지 않기로, 그대신 제리 편이 우승하면 알렉스가 상납금을 빌려주던 일을 그만 두기로 한다. 제리측은 부동산업자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착착 진행되지만 알렉스 측은 여전히 힘들다. 옆집 괴물 해리 베이즐리가 알렉스의 도움으로 세상과 단절된 삶에서 바깥으로 나온뒤 크리스마스전구만들기를 도와준다. 뭔가 일이 착착 진행되는 순간 밤새 제리네 패거리들이 와서 장식을 모두 부셔버린다. 엎친데덮친격으로 해리도 어느날 사라져 버린다. 이제 루저들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이 지쳐만 간다.
세상 어느 학교나 약한자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는 가보다.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힘으로 밀리는 자들에게 군림하려는 걸까? 자신이 가진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선택되어 진 것인데, 마치 자신의 능력인 양 떠드는 이들때문에 많은 평범한 아이들이 즐겁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들은 편부모이거나.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후천적으로 질병을 갖게 된 아이들이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루저라고 칭해버리고 루저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이 비단 어느 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루저들이 힘을 합쳤다. 그들의 작은 소망을 모아모아 어쩔수 없는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 그들에게는 어쩌면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이상은 당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그들의 한곳으로 집중시킨다. 그들의 이런 용기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했다. 루저들 내부에서 스스로 일어난 힘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루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인생에서의 루저는 아님을 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또렷이 알고 있다.
"어째서 루저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거지?" "가끔은 아무 말도 필요 없을 때가 있더." 윈스턴이 말했다. 윈스턴이 옳다. 때로는 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p359)
제리의 끝없는 괴롭힘을 보면서 그의 부모는 이 사실을 알까 하는 생각을 책을 보면서 했다. 책 말미에 나오는 그의 아버지의 발언을 보면서 또 한번 문제부모는 있지만 문제아는 없다는 진실을 깨달으려 한다.
제리의 아버지는 처음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곧 그는 야유를 퍼부으며 "그게 바로 루저들이 하는 말이야. 나는 네 탓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더 크고 똑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 "불만 있냐?" 라고 말했다. (p349)
자신이 남보다 약하다고 못났다고 생각하는 십대들이여. 자신의 삶을 겁쟁이들에게 맡기지 말았으면 한다. 내 삶의 주체로서 건강하고 자신있게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남들이 정하는 루저는 결코 루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책인데도 불구하고, 활자체가 상당히 커서 처음에는 초등학교 고학년용인줄 알았다. 활자가 크다보니 3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되다보니 첫눈에 그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활자가 조금만 작았다면 조금더 얇은 책이 되었을 텐데... 내용상 굳이 고등학생이 되어 읽지 않아도 되기에 독자에게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어린학생들을 위한 배려로 활자를 크게 한것일까? 출판자의 의도는 잘 모르겠다. 한가지 더는 여기에 일일이 기록은 해두지 않았지만 오탈자가 너무 많았다.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것도 많았고... 세심한 검토가 없었음이 아쉬웠다. 번역도 조금 아쉬웠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문장의 끝맺음 형식이 다소 딱딱하고, 때로는 책을 겉돌게 만들게 했다. 좀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번역체였으면 좋겠다. 그에 비해 표지 그림은 상당히 마음에 든다. 전체적인 내용을 읽고 보면 표지가 얼마나 자세히 표현되어있고 내용을 잘 간추려 놓았는지 알수 있다. 아마도 그림을 그린 사람이 완벽하게 책을 읽었음을 느낄 수 있는 표지그림이었다. 그래도 내용은 청소년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으로 여러가지 흥미요소들을 두어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끌어 가고 있다. 다만 첫 전개부분이 느려서 조금은 지루했던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도대체 선생님들은 뭐하고 있는 것일까?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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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고 얇은 동화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책을 받아보니 꽤 두툼하다. 무려 360페이지라고 한다. 그냥 단행본이라고 생각해도 이 정도 두께면 두꺼운 책인데... 루저에 대해 작가가 할 말이 많았나보다 하며 책을 읽어나간다. 책의 핵심독자가 청소년인 것 같은데 청소년이 읽기에 지루하지는 않을까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청소년용이라서 그런지 학교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임에도 어렵지 않게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었다. 벌써 몇 년전 이야기가 된 것 같은데 한 방송에서 여대생이 키가 작은 남자를 몽땅 싸잡아 루저라고 하면서 루저라는 말이 붐처럼 번졌던 기억이 난다. 태생적인 문제로 자신이 어쩔 수 없는 부분까지 루저라고 폄하해서 불쾌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은 당당하게 루저클럽이라는 클럽이 등장한다.
누가 누구에게 루저라고 말 할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정해놓은 기준에 기죽을 필요가 있을까? 이 책은 루저들이 똘똘 뭉쳐 당연하게 받았던 괴롭힘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다. 자신과 다르다고 괴롭히는 잔인함에 화가 나다가도 그것을 극복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고개를 끄떡이게 되는 훈훈한 책이었다. 사실 하나하나 다 따지다보면 사람들이 정상인이라고 만든 범주에 하나도 빠짐없이 다 포함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과 달라도 일방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그런 문화가 성숙해졌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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