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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장맛비로 인한 습도와의 전쟁에서 독서만한 피서가 없다. 대청마루에 대자리를 펴고 누워 꼼짝 않고 몇 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단 몇 시간 만에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문장에서 주는 리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건조하고 경쾌하며 딱딱 끊어지는 단문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미국 소설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스콧 피츠제럴드 역시 하드보일드 문체에 피사체를 포착하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사건 만을 묘사하는 방식을 따랐다. 화자의 개념이 배체된 리얼리즘을 쫒는 형식! 이 건조체의 소설이 장맛비에 딱 맞아 떨어지는 장르였다. 작가의 미묘한 생각이나 숨겨놓은 비밀들을 찾으려 머리 굴려가며 탐구할 필요 없이 아주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왜 여태까지 『위대한 개츠비』를 안 읽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국문학을 별로로 치고 있던 내 안의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좀 늦었지만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데 ‘개츠비’란 한 사내가 저 빗속을 뚫고 마구 걸어간다, 분간없이….
『위대한 개츠비』는 최옥정 작가가 번역한 작품이었다. 이 작가의 문장엔 독특한 점이 있다. 문장을 따라 읽다보면 입속에서 저절로 경쾌한 리듬감이 생겨 자꾸 소리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도 그의 다른 작품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