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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영역을 처음으로 접했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잡는 과정만 보여주던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며, 당시의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시켜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짜릿함을 느꼈었다. 어느 순간 사건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사건을 둘러싼 주변부의 모습들에 애닯기도 하고, 여러 감정들이 드는 거였다. 그런 '미야베 미유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문장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고, 일본 사회파 범죄소설의 시원이라고 불려진다니 어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만난 작품이 <점과 선>이었다. 그 작품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고, 결국 이 책으로 '마츠모토 세이초' 와 두 번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가마타역 조차장에서 한 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전차가 움직이면 얼굴과 다리가 잘려나가게 되어 있는 상태로 버려져 있는 시체는 얼굴이 뭉개져 있었다. 신분증도 없었고, 신원을 알 수 없었는데, 그는 전 날 밤 역 근처의 한 바에서 동행과 함께 술을 마셨기에 목격자들의 증언은 들을 수 있었다. 도호쿠 지방의 사투리를 썼으며, "가메다는 지금도 여전하지요? " 라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들이 있었다. 같이 있었던 사람이 용의자일거라고 생각을 하게된다. 피해자의 신원은 파악이 되지 않고, 용의자로 보여지는 동행에 대해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모두 잘 알고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가메다를 찾는 수밖에.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내가 읽던 잡지에서 우연히 단서를 발견했는데, 그들이 말했던 가메다는 사람이 아니라 지명일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수사는 방향을 틀게 되었다. 후배 요시무라와 가메다로 탐문수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수상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남자를 이 살인사건과 연결지을 수 있는 고리를 찾지 못한채 돌아와야 했다. 돌아오기 위해 들렀던 역에서 '누보 그룹'의 일원들을 만났다.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젊은 예술가 집단으로서 기성세대의 권위를 모조리 부정하고, 기존의 제도와 도덕을 파괴하자는 것이 그들의 신조였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961년이었다. 어느 시대든 기성세대와 맞서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가보다. 그렇기에 발전을 해온 것이기도 하겠지만, 무조건적으로 기성세대를 나쁜쪽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이 썩 좋게 다가오지는 않았었다. 이 그룹의 멤버들의 각자의 개성, 그들의 예술적인 활동, 그들 사이의 미묘한 경쟁심과 질투등 그들의 모습 이 그려졌다. 이마니시가 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과 누보그룹의 행보들이 교차되었다. 이마니시의 수사 과정을 보면 정말 끈기있는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서를 찾기위해 인간승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수사 를 해나가는 장면과 형사의 감으로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는 모습은 감탄스러웠다. 처음 수사를 시작했을 때 결정적인 정보라고 여겼던 것이 '가메다'와 '도호쿠 사투리'였는데, 그것이 헛다리 짚기였다는 것을 알아나가는 과정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누보그룹이 워낙 사회의 이슈로 떠올라 있던터라 우연히 만나서 그런 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마니시에게 그들의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결정적 단서를 줄거라고 생각했던 한 여자의 자살, 그리고 한 남자의 의문의 죽음이 연이어 일어났다. 독자인 나로서는 '누보그룹'이 이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을것 같다는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는데, 이마니시는 어떻게 사건의 단서를 잡게될까?
"그런데, 뭐랄까, 좀 묘한 느낌이 드네요. 이렇게 이곳에 온 것은 이마니시 선배가 형수님의 여성잡지 부록을 보셨기 때문이지요? 그게 없었으면 저도 여기에 올 일이 없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사소한 일을 계기로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알 것 같아요." - p 57
이 문장은 가메다로 함께 출장을 가게 된 요시무라가 했던 말이었다. 뭐랄까? 피해자도 어느 시점에서 자신은 기억하지도 못했던 사소한 일 하나로 저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마니시가 뭔가 단서를 발견한듯 보이면서 1부는 끝이 났다. 자, 2부로 넘어가자. [모래그릇]이란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아직 모르겠는데, 2부를 마저 읽고나면 알게 되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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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도쿄의 한 칵테일 바의 장면으로 시작된다. 반백의 사내와 서른 살 정도의 사내가 바로 들어오지만 원래 바를 드나드는 단골 손님들은 아니다. 바의 종업원이 주문한 음료와 함께 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두 사람 중 젊은 쪽이 이 동석을 거절했다. 두 사람이 앉은 자리는 화장실로 가는 길목이어서 손님과 종업원들이 지나갔지만 젊은 쪽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다. 반백의 사내는 다음날 새벽 얼굴이 짓이겨진 시체로 발견된다.
마쓰모토 세이초 / 이병진 역 / 모래그릇 / 문학동네 / 1권 335쪽, 2권 367쪽 / 2013 (1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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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심지어 가지고 있는 책인데 모르고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다른 출판사이긴 했지만 허무......... ㅠㅠ 하지만 다시 읽었다. 두번 읽어도 아깝지 않은 책. 추리 소설이 세계문학 전집에 포함되는 경우가 드문데, 읽고 나면 아~ 하게 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건, 아니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범인의 한 마디. '가메다는 지금도 여전하지요?' 이 한마디와 수사관 이마니시의 집념이 사건을 해결한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는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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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책을 통해서였다. 『이유』라는 책을 읽고 나서 나는 한동안 미야베 미유키 작가에게 푹 빠졌는데, 그건 그녀가 제공하는 미스터리가 기존에 내가 알던 미스터리와는 다른 신선한 관점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알던 미스터리는 『소년 탐정 김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트의 몇몇 작품들밖에 없어서 거기서 본 몇 종류의 이야기가 곧 나에게는 미스터리의 개요였다. 그 개요란 이렇다. 하나, 사건이 일어나고 몇몇의 사람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둘, 탐정이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 증거를 수집하고 추리력을 동원해서 용의자의 수를 줄여나간다. 셋, 마침내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범행 동기가 드러난다. 미스터리의 팬들이라면 아마도 범인이 어떤 방법으로 범죄를 저질렀는가, 요컨대 범행수법에 관심이 있었으리라 짐작되는데 나의 경우로 말한다면 최대의 관심사는 항상 범행동기였다.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 보다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가 늘 궁금했던 것이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책들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도 그녀의 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범행수법이 아니라 범행동기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미스터리 작품들의 경우 이야기의 초점은 대개 추리에 맞춰져 있었고 범행동기는 마지막에 한 단락 정도만을 할당할 뿐이었다면,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작품은 거의 90%가 범행동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이유는 범행동기를 개인의 특수한 사정으로 한정하지 않고, 그 특수한 사정이 생기게 된 경로를 추적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왜 이런 짓을 저지르게 되었는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왜의 왜’를 파고들었다고 할 수 있다. 거칠게 이분화하면 추리물은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쪽과 범행동기에 집중하는 쪽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 이분화는 스릴에 집중하느냐 드라마에 집중하느냐가 아니라 책임 소재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가령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작품의 경우 범죄의 책임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있다. 사건이 일어나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용의자가 된다. 그러나 탐정이 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순간 안개가 걷히듯이 주변 사람들을 감싸고 있던 의심과 의문은 날아가버린다. 이것은 얼핏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점의 차이다. 살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나의 이슈라고 가정해보자. 친구 네 명이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한 친구가 일어나다가 테이블에 부딪히면서 음료가 가득 담긴 컵 하나가 넘치는 바람에 다른 친구의 치마가 젖었다. 이 경우 책임은 일반적으로 테이블에 부딪힌 친구에게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그들이 앉은 좌석은 원래 4인석이 아니라 2인석이었다. 카페에 사람이 많아서 4인석은 이미 자리가 차버렸기 때문에 네 사람은 할 수 없이 다른 테이블에서 의자를 빌려와 2인석에 앉게 되었다. 네 사람 중 A라는 친구는 다른 카페로 가자고 제안했지만 C는 여기 돌체라떼를 꼭 먹어야 한다며 앉기를 주장했다. 하필 그들이 앉은 테이블은 바닥의 균형이 맞지 않아 B는 발로 테이블 바닥을 눌러서 테이블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 있던 참이었다. D는 종업원에게 자기 음료를 가득 채워달라고 부탁했다. 사건은 A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순간 발생했다. A가 조심스럽게 일어나던 순간 바로 뒤에 붙어있던 좌석의 주인이 의자를 뒤로 빼면서 둘이 부딪혔고 그 여파로 A가 앞으로 밀리면서 테이블이 흔들렸다. 그때 잠깐 발을 쉬고 있던 B가 테이블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테이블 기둥 바닥을 힘껏 발로 밟는 바람에 테이블에 반동이 일어났다. D의 앞에 있던 음료는 가득 채워진 상태였고 가벼운 진동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테이블에 반동이 생기자 컵이 흔들리면서 음료가 쏟아졌다. 이런 경우에서 테이블에 부딪혔다는 이유만으로 A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작품들은 그렇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작품에서 탐정이 살피는 것은 오직 물적 증거와 행동뿐이다. 범인이 왜 그런 행동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살피지 않는다. 탐정이 범인을 밝혀내는 순간은 다르게 말하면 행동의 주체를 발견하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행동의 주체가 밝혀지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용의선상에 벗어난다. 말하자면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다. 범행동기는 물론 대개 안타까운 것들이 많지만 그것은 탐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범인에 의해 발화되는 것이므로 나쁘게 말하면 변명이고 좋게 봐줘도 개인의 사연 이상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작품들은 단 하나의 원인, 단 하나의 범인이 있다고 전제한다. 앞서 예를 든 테이블 사건의 경우로 말한다면 컵을 넘어뜨린 단 하나의 원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밝혀지면 나머지는 책임에서 벗어난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단 하나의 원인, 하나의 책임 같은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서 “하나의 원인이란 신학적”이라고 말했다. 테이블 위의 컵이 여러 가지 요소가 모여서 넘어진 것처럼 만약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문제는 사소하고 다양한 원인이 모여서 생긴 것이지 단 하나의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고 그 원인제공자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책임을 밝혀내는 게 아니라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가깝다.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작품의 경우는 그런 면에서 볼 때 사실을 재료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탐정이 수집한 증거는 물론 실재하는 것이고 범인의 행동 역시 정말로 했던 행동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최종 결과물은 하나의 원인과 하나의 책임이라는 가상의 관점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제물을 올려서 사회의 불만을 없애고 통합을 꾀했던 고대의 문화를 계승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물에게는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범행동기에 집중하는 작품들은 누구의 책임이냐를 밝히는 대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밝히는데 주력한다. 만약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면 거기에는 그런 문제가 생길 만한 다양한 원인이 결합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 결합의 방식과 원인의 종류를 밝혀내는 것은 재발의 위험을 막는 것이 된다. 특히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범죄를 한 인간의 문제, 다시 말해 특수한 인간군을 상정하는데 반해 범행동기에 집중하는 작품들은 사람과 사회를 연계시켜 생각하기 때문에 보편적 인간상을 제시한다. 요컨대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작품들에서 범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특수한 인물이다. 그들은 이른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물들인 것이다. 그러나 범행동기에 집중하는 작품들에서 범인은 범죄 DNA가 내재된 인물이 아니라 피해자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사회가 가진 내재적 모순이 그를 통해 표출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치게 범죄자를 옹호하는 느낌이 든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실제 ‘그런 인간’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떠나서 문제를 개인에 한정시키지 않고 사회와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방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관점은 특수한 인간이라는 구분을 없애고 하나의 원인이라는 허구를 부수며 모든 문제는 공동체의 문제이고 모든 책임은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의식을 함양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편적 인간 역시 허구가 아니냐 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특수한 인간과 보편적 인간 중 하나의 허구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편이 보다 이롭다고 믿는다. 범행수법보다 범행동기에 집중하는 이러한 작품을 소위 사회파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작가로 앞서 언급한 미야베 미유키가 있다.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수식하는 말 중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장녀’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내가 이 책, 『모래그릇』을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범죄를 한 사람의 책임으로 국한시키는 대신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는 관점을 도입하는 선구자의 작품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이 책에서 대단한 인상을 받은 건 아니다. 오히려 발견하게 된 것은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특징들의 기원이다.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장소가 아닌 다양한 장소와 연계되어 있다는 지리적 연관성, 사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한정짓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일생과 관련지음으로써 얼핏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끼리도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성 등이 그렇다. 책을 서술한 방식대로 생각한다면 이러한 관점은 아마도 1950년대 후반의 일본의 사정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지방에서 도시로 상경하는 젊은이들과 과거를 말소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욕망, 구시대를 경멸하면서도 구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그러면서도 동일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양가성, 엘리트주의 같은 것이 그렇다. 이 소설에서 탐정 역을 맡은 이마니시 형사는 책임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대신 온갖 곳과 다양한 사람들을 경유하며 그 모두를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시킨다.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다는 점에서는 범행수법에 집중하는 작품과 똑같지만 초점을 누구의 책임이냐가 아니라 사건의 경로에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 경로를 따라가는 일은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얼핏 관계없고 서로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서로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인드라망이랄까,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누가 봐도 분명한 것을 추상적으로 흐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런 광의의 시야는 꼭 필요하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죽인 사람을 밝히는 것으로 끝난다면 거기에 남는 것은 죄를 지은 자는 어떻게든 밝혀지고 벌을 받는다는 공통의식이다. 범죄의 연루되는 순간 자기 자신이 하나의 책임의 주인이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공동체라는 것이 누락되어 있다. 인과응보의 교훈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과응보의 목적이다. 우리가 범죄를 징벌하는 이유는 어떤 인간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서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2025년 8월 5일부터 2025년 8월 9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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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 마쓰모토 세이초. 일본추리소설의 대표적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스승같은 존재라고 추앙하는 작가라 접하게 되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뭔가 어려운 말같지만, 한 인간이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가 사회의 어두운 이면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조명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아무잘못없는 사람을 무참히 살해해 버리는 비정한 인간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그 단서를 집요하게 뒤쫓는 주인공 형사 이니마시의 모습은 선과 악의 긴 추격전같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위해 인간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 야망에 휩싸인 인간의 추악함은 어디까지인가. 이른바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 향상심에 사로잡힌 인간의 본모습을 고발하고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형사의 집념을 그리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줄거리라고 할 수 있다. 두권으로 나뉘어져있어 읽는내내 더더욱 조바심을 냈다. 놀라운 반전이나 숨겨진 복선같은 것은 없지만, 범인의 뒤를 묵묵히 뒤쫓는 주인공 형사의 집념에 감정이입이 되어 오랜만에 가슴뛰는 소설을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