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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가? 시인가? 서사성 있게 구성되어 있는 글들을 주로 보던 나에게 김엄지 작가의 <폭죽 무덤>은 조금 특별한 형식으로 다가온다. 문장과 행간을 지나 계속해서 화자의 동선을 따라가보지만, 당최 작가가 작품을 쓴 의도나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작품을 내면화 시키는 일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결국 작품의 반도 읽지 못하고. 김대산 평론가가 작성한 <폭죽과 무덤 사이, 욕망과 생각 사이>해설집을 집어 들었다. 전반적으로 작품의 분위기는 음울과 스산함이 오고 가는 동시에 건조체로 이루어져 있다.
"벽대여, 그렇게 적힌 명함을 받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작품은 화자인 나는 재미로 벽을 만들고, 벽을 관리하고, 벽을 대여하는 남자의 뒤를 쫓는다. 시간당 5만 원이라는 말에 끌렸던 것인지. 벽을 부서도 좋다는 말에 끌렸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빌리기로 한 벽은 5미터 높이의 벽돌 벽이었다. 나는 그 벽을 훼손시킬 궁리를 한다. 벽을 가장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벽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이 바뀐다.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여동생과 의논 끝에 요양원에 모셨다. 여동생과 나는 엄마에게 붙었다는 귀신의 거처가 바뀔 때마다 팥을 뿌렸다. 엄마가 혼자 말을 시작할 때는 나는 못 들은 척 벽을 보고 누웠다. 엄마는 다음번에 올 때는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과일을 자신에게 가져달라를 부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엄마의 유품을 처분하기 위해 집을 청소하는 도중 창밖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김대산 평론가는 이 작품에서 폭죽은 삶의 이미지와, 욕망의 이미지를 나타내며, 무덤은 죽음의 이미지와 (어쩌면 지루할지도 모를) 생각의 이미지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결국 폭죽 무덤이란 삶과 죽음, 욕망과 생각이라는 기이한 이율배반적 대립성들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동거를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평론가의 설명도 나에게 어렵다. 개인적으로 엄마와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의 상황이 폭죽을 의미하고 모텔이나 여자, 성욕과 벽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는 부분들이 무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화자는 우연히 들린 편의점 벽에서 "산송장"이라고 글씨가 적혀 있는 벽을 보게 되면서 소설은 마무리가 되는데 살아는 있지만 감각을 무디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소설의 내용은 너무 어려웠지만 주옥같은 문장들을 포집 할 수 있었던 김엄지 작가님의 <폭주무덤>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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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아지던가요? 시간이? p118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사는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 고통과 환희, 생과 사, 꿈과 현재를 오가며 산다. 일정한 규칙과 리듬으로 사는 것 같은데 내 안을 들여다보면 진짜 정열된 삶인지 알 수가 없다. . ??방 안을 걷는 동안 춥기도 하고 덥기도 했다. 추위와 더위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은 처음부터 내 몫이 아니었다. 내 몫이 아닌 처음에 대해서 나는 생각했다. p100 . 뒤섞인 감정과 시간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있어 무척 당황스럽고 혼란스럽다. 그 모양이 폭죽과 무덤사이쯤이 될것 같다. 화려한 폭죽은 검은 빛의 재가 될테니 이 또한 정상이고 비정상이다. . ??형, 불꽃은 무슨 색이야? A가 물었을 때, 검정색, 나는 대답했다. 그건 재야.A가 말했다. P69 . 재가 될지라도 지금을 사는 것. 까만 무덤에 들어가더라도 현재를 환히 밝히는 것. 익숙함과 낯섬사이에서 춤을 추는 것. 슬퍼도 한 발 떼어 희망을 보는 것. 혼란스러움속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것. 비극과 희극인 삶에 이리저리 휘둘리면 인간사를 이어 가는 것이 삶이겠지. 그래서 모든 인생은 혼란스러움과 당황에 걸친 줄을 타면서 절망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끼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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