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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중 하나가 이른바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일 것이다. 서로 자신이 보수라 우기고, 또 서로 자신이 진보라 우기지만 그들에게 왜 자신을 보수 혹은 진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다면 아마 머뭇거리거나 개념과는 동떨어진 대답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대적인 개념임에도 그것을 절대적인 가치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에 보수가 보수 같지 않고 진보가 진보 같지 않은 촌극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볼 때 이 책 [보수의 시작 퇴계, 진보의 시작 율곡]은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갖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자는 어째서 퇴계와 율곡을 보수와 진보의 시작이라 했을까? 이는 퇴계와 율곡의 생애와 그들의 사상,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을 알지 못하고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기에 퇴계와 율곡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되리라는 기대감도 책을 선택하는데 한몫했다.
이 책의 구성은 ‘합쳐보기, 퇴계와 율곡’, ‘나눠보기, 퇴계와 율곡’ 그리고 ‘그 뒤, 퇴계와 율곡’의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퇴계와 율곡을 동일선상에 놓고서 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1장에서 살펴본 다음, 그럼에도 퇴계와 율곡이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지점을 2장에서 살펴보고, 그들의 사후에 벌어진 일들을 3장에서 정리하고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의 양대 거봉이라 칭할 수 있는 두 사람 모두를 다룬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들을 합쳐보고, 나눠보는 방식이기에 두 사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또한 책 제목마냥 두 사람의 비교를 통해서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라 생각되었다.
먼저 1장에서 저자는 퇴계와 율곡의 만남과 그들의 동질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조선의 개국과 함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공신이 되면서 그들은 막대한 권력과 금력을 차지하게 된다. 그에 반해 사림은 훈구파로 불리는 이들의 탄압 속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마침내 조선중엽 재기에 성공하여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러한 사림의 성공 뒤에는 퇴계와 율곡이라는 공통의 스승과 성리학이란 확고한 정치적 이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퇴계는 율곡보다 35살이 더 많았기에 이들을 동시대 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로 교차되는 지점은 있다. 이들의 첫 만남은 23세의 율곡이 처가가 있던 성주에서 강릉 외가로 돌아가는 길에 도산서당을 찾음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후 서신교환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면서 퇴계와 율곡은 서로에게 묻고 격려하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저자는 그들의 서신과 시문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퇴계가 70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율곡은 퇴계를 추모하는 제문을 지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깍듯하게 대하고 존승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후평가인 [조선왕조실록 졸기]에 실려 있는 후세인들의 평가는 퇴계의 경우 학문위주로, 그리고 율곡의 경우는 인품위주로 실려 있어 당시에도 두 사람의 직접적인 비교를 피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어 2장에서는 사림 공통의 스승이었던 퇴계와 율곡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지점을 저자는 살펴보고 있다. 그들의 생애와 벼슬길,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 어렸을 적 생활, 그리고 그들의 상소문과 저술을 통해서이다. 퇴계는 한미한 집안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서당에도 다니지 못하고 스스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래서 27세에 이르러 처음 향시에 급제했고, 34세에 이르러 대과에 급제함으로서 종9품의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첫 벼슬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에 반해 율곡은 강릉 오죽헌에서 명문가의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나 13세에 초시에 급제하면서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고, 부친의 시묘살이가 끝난 29세 때에는 초시, 복시, 대과에 모두 장원급제하면서 정6품 호조좌랑으로 벼슬길을 시작하였다. 또한 퇴계가 살았던 시기는 훈구파와 사림파가 마지막 불꽃을 튀기던 사화의 시대였다. 현실정치 자체를 혐오한 퇴계는 임용과 사직을 반복하게 되고 57세가 되던 해 도산남쪽에 터를 잡고 서당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학을 기르며 학문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반면 율곡은 사화가 끝난 다음 훈구에서 사림으로 정권이 바뀌고 사림 안에서 내부분열이 일어난 시대를 살았다. 건국한지 200여년이 가까워진 조선왕조에 일대 혁신을 강조하면서 임금과 대신들에게 직언을 서슴치 않았고 동인과 서인의 화합을 도모하는 정책을 지향했다. 그러나 이후 동인은 율곡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율곡을 비난하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퇴계와 율곡의 생애를 통해 그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있다. 어렸을 적 가난과 어머니 박씨가 부단히 자신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고 자란 퇴계는 구체적인 현실문제보다는 성리학 정도의 원칙에 방점을 둔 성장의 길을 걸었고, 어머니 신사임당으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한 율곡은 정도의 원칙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에 방점을 둔 성장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즉, 어렸을 적 생활의 차이가 퇴계에게는 현실을 ‘지키는’ 가치를 우선하게 만들었고, 율곡에게는 ‘바꾸는’ 가치를 우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그들의 상소문과 저술에서도 나타난다. 퇴계의 상소문인 <무진육조소>나 저서 [성학십도]가 현실정치에 대한 이야기 없이 성리학의 이념을 기반으로 군왕의 학문과 덕성에 대한 주문이 주라면, 율곡의 <만언봉사>나 [성학집요]는 군왕의 수양은 물론 묵은 제도의 폐단과 그에 대한 대안제시와 같이 백성을 위한 경세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성리학을 공통의 이념으로 공유하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향 및 지향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퇴계 사후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된다. 표면은 이조좌랑에 대한 인사권을 두고 벌어진 분열이지만 정권을 잡으면서 동질성보다는 내부의 이질성이 두드러지면서 시작된 분열이었다. 율곡은 이들을 합당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고, 분당의 정파 앞에 퇴계와 함께 이름자가 휩쓸려 들어갔다. 사림은 자신들의 사상 뒤에 퇴계와 율곡이 있다고 믿었기에 두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았든 동서인의 영수가 되어갔다.
이처럼 저자는 퇴계와 율곡 두 사람의 동질성과 이질성을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보수와 진보의 시작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퇴계는 지키는 가치에 우선을 두었으며, 이기이원론과 군왕의 방향성을 중시하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보수의 시작이 되었고, 율곡은 바꾸는 가치에 우선을 두었고, 이기일원론과 백성의 방향성을 중시하며 청빈을 실천함으로써 진보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퇴계는 지속을 강조함으로써 안정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고, 율곡은 항상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저자가 보수의 시작으로써 퇴계를, 진보의 시작으로써 율곡을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퇴계와 율곡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 알아가는 동시에 처음 책을 읽기 전 생각했던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과연 나는, 우리는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저마다 소리 높여 보수와 진보를 외치고 있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은 어떠한지도 살펴보게 만든다. 혹 나 역시도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의 시기에 보수와 진보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 상당히 좋은 책을 읽었다는 생각에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우리나라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왠지 내용이 지루하고 어려울 것 같아서 그동안 이 두 사람에 대한 책을 읽어볼 생각은 못하고 살았는데 이번에 보수와 진보에 대한 책을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하고 호기심이 동해서 구매해본 책입니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의 기원이라든가 상대적인 차이점이라든가 그런 것보다는, 이황과 이이라고 하는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의 전생애를 한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엿보게 되었고 그만 가슴 깊은 곳에서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1000원짜리 지폐랑 5000원짜리 지폐를 더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고 ㅋㅋㅋ 제 책장 중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두었습니다. 다만 동일한 문장이 상당히 많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서 조금 의아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 작가의 의도적인 반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려워서 최소 일주일은 걸리겠거니 했더니만 너무 재미있어서 이틀만에 다 읽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