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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와 함께 살라 / 맥스 루케이도
맥스 루케이도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예수님처럼’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단번에 그의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분명 그의 글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책을 넘어 삶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성경 이야기들을 ‘현재 내 삶에 일어나는 이야기’로 바꿔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 후 ‘너는 특별하단다’ ‘우리 동네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일곱 가지 이야기’ ‘예수의 유산’ 등 그의 책은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읽었다.
그리고 그의 책이 또 한 권 탄생했다.
언제나 읽기에 너무 좋은 맥스 루케이도의 책이지만, 이 책은 사순절 기간에 읽기에 더욱 좋다. 더욱이 각 장마다 스터디 가이드를 제공해서 이야기들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말씀을 통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적인 묵상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나눔을 하기에도 참 좋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폭풍우 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과,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 닻을 내려 고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를 떠내려가게 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허무, 실수, 죽음을 집중해서 살펴본다. 때로는 허무함으로, 때로는 실수로 인해서, 때로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우리는 흔들리고 무너진다. 그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바라보며 ‘인생은 목적이 있기에 허무하지 않다’는 것, 하나님이 실수 없이 나를 만드셨기에 ‘나의 실수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것, 예수님의 구원으로 인해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금요일, 그날의 6시간 동안 예수님께서 만나신 사람들, 행하신 일들, 들려주신 이야기들을 살펴보면서 허무, 실수, 죽음을 해결하고 새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기억하게 한다.
그렇다. 우리 삶에 수많은 고민들, 어려움들 앞에서 예수님을 기억하면 된다.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 수치심을 덮어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사랑을 확증하시고, 간음한 여인의 실수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돌아온 탕자를 두 팔 벌려 품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십자가에 두 팔을 벌려 죽으시고,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에게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은혜를 베푸시고, 죽은 이들을 살리시고 스스로도 부활하셔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면 된다.
어른이 되어 딱딱하고 계산적인 나의 마음에 맥스 루케이도는 예수님의 사랑을 녹여 흘러 보내준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사랑을 알지만 세상 앞에서 단단해야만 하고 경계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어느샌가 예수님 앞에서도 굳은 마음으로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예수님께는 마음이 더 따뜻해도 된다고, 더 부드러워도 된다고 말해준다. 수없이 세워 둔 마음의 벽들을 예수님 앞에서는 허물어도 괜찮다고,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었다고, 나의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로 나아와 모든 두려움과 아픔을 예수님께 내어놓고 예수님을 기억하면 된다고 토닥이며 말해준다. 예수님이 내 안에 더 깊이 스며드시도록 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예수님 때문에 평안하고,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감동해서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한 것이다. 예수님께 닻을 내리면 우리의 삶은 안전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더욱이
부활의 주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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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실수, 죽음’ 이 세 단어를 보자마자 마음을 들킨 거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고민하는 주제들이 아닐까? 어느 금요일 여섯시간에 일어난 사건이 우리 인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순절 기간 이 책을 읽으며 그 분의 은혜 이야기 속으로 깊이 잠겨보면 좋을 거 같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경의 몇가지 이야기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보여준다. 성경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경험하는 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각 장마다 딸려나오는 질문들은 다시금 말씀에 비춰 나의 삶을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맥스루케이도의 책들이 그렇듯 이 책에도 정말 간직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구절들이 수두룩했다. 허무에 대한 이 문구가 맘에 들었다. 어느 묘비에 적혀있다. "잠들었지만 쉬지 못하네. 사랑했지만 사랑받지 못했네.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려 했지만 본인은 기쁘지 않았네. 살아있을 때 그러했듯 죽어서도 혼자라네". 이 책에서처럼 아마도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녀의 묘비에 적혀있을 문구다. 어쩌면 나의 묘비문구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두려움에 다락방에만 모여있는 것 같은 현대교회에도 메시지를 던진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에게 구원 얻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잃어버린 바 된 것의 비극을 잊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에게 용서의 메시지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십자가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다고 결정했기 때문일 수 있다.” 두번째 주제인 실수에 대해서 흥미로운 관찰이 있다. 죄를 지으면 심리치료사는 죄를 털어놓으라고 한다. 친구들은 우울해하지 말라고 한다. 낙천주의자들은 모든 걸 잊어버리고 즐겁게 살라고 한다. 율법주의자들은 죄의 짐을 줄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해주신다. 아버지 보시기에 우리의 죄의 실수들이 용서받지 못할 만큼 그리 치명적이지 않음을 알려준다. 세번째 주제인 죽음에 대해 통찰력을 얻었다. “죽음은 삶에 침입한 불량배다. 그는 골목에서 당신을 붙잡는다. 놀이터에서 당신을 비웃는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 당신을 괴롭힌다. 죽음이라는 불량배는 우리가 상대하기 벅차다. 우리에게 큰 형이 필요하다”. 죽음의 그림자는 우리 삶에 언제나 드리워져있다. 두려움과 슬픔, 고통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죽음의 강을 직접 헤엄쳐 반대편으로 나오신 그 분을 본다. 그리고 죽음이 정복되었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 큰 형이 해결해주셨다.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다. "금요일 여섯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수로 캄캄해진 인생에게 그 금요일은 용서를 의미한다. 인생의 허무함으로 좌절한 가슴에게 그 금요일은 목적을 의미한다. 그리고 죽음의 터널을 들여다보는 영혼에게 그 금요일은 구원을 의미한다”. 이 책의 마지막 결론은 이 책 첫 부분에 나와있다. "인생은 허무하지 않다. 실수는 치명적이지 않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이 책을 두번 읽었다. 첫번째 읽을 때와 두번째 읽을 때 느낌이 매우 달랐다. 깊이 들어갈수록 더 감동이 올라왔다. 사순절 기간동안 조금씩 읽어나가며 그 분을 기억하게 되었다. 나중에 또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어느 누구라도 첫번째 읽을 때는 마음의 눈물이 흐르고, 두번째 읽을 때는 여기 나온 예화들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어 안날이 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 주님은혜로 마음의 평강이 찾아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