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의 땅에서의 다시 오실 메시아는 로마로 부터 억압 되있는 자신들을 구원해낼 왕임을 기대했다. 흰 옷을 입은, 한손에는 검을 든 그런 영웅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절대적으로 구유에 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꼴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 인정되는 그 때에 모든것은 뒤집어졌다. 그저 세상에서 보기에 강한 사람이 다스린다는 그 패러다임은 완벽하게 무너진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은 목적과 이유. 그리고 왜, 어떻게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사역을 하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 하기까지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드러났다. 그저 선택됐다 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하나님 나라임을 나타냈다. 사회적으로 죄인이라 여김받던 부정한 병자들부터, 인정받지 못한 소외된 모든사람들 또한 하나님 나라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에 대한 바울의 이해, 그리고 그의 해석은 결국 바울 서신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내야할지를 한대 묶고있다. 특별히 ‘로완 윌리엄스’는 이런 바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바울은 아주 넓은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서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식으로 자신의 직업을 전개합니다. 한쪽 끝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강렬한 영광을 드러내는 이입니다. 다른 쪽 끝에서 예수는 하느님에게서 가장 멀어진 상태를 대표하는 이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는 우리에게 가장 날카로운 역설을 보여주는 인물이며 바울은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주장이 결코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지성과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물론 바울도 절대적으로 인간임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성격이 어떠했는지, 가지고 있는 질병들과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더 나아가 그의 인간됨은 빌립보서에서 본인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빌3:11-14) 그러기에 바울이 더욱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복음과 구원, 교회 공동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 다다르기까지 제안하고 있는 그러한 서신, 그 이야기들은 ‘죄인’인 우리를 향할 수 있는 것이며, 실제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고민해야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로완 윌리엄스’는 자신만의 언어로 독자들에게 바울을 이야기 하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말 고민해야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이 시대 교회와 세상은 이렇게나 대치하고 있을까 싶을정도로 마주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중에 있는 ‘코로나’와 ‘차별 금지법’을 통해 보여지는 교회의 모습은 감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게 사실 아닐까. 바울 또한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으로 성경에서는 나타난다. 그럼에도 분명한것은 그가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달려가기에 수많은 고민거리들은 그 어느것도 분명한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고민의 스펙트럼을 더 깊게 늘려주는 듯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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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캔터베리 대주교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의 학장인 로완 윌리엄스의 바울 해설서. 그 거대한 영향력 만큼이나 바울은 많은 논쟁의 중심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거대한 흔적을 남긴 사도이자 최초의 신학자인 바울의 서신들을 살피며 바울이라는 인물과 그 사상의 특징을 해설한다. 작게는 신약 성서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바울 서신의 저자 문제부터 시작해 바울이 서신들을 통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 예수와 바울의 관계, 후대 그리스도교에 미친 그의 영향까지 수많은 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남긴 견해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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