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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로 불리는 정조 임금의 눈에 띈 연암과 다산은 현재적 삶에 충실하며 본연의 길을 걸어 독자성을 확보하여 사유하며 천착하는 글쓰기에 능숙하였다. 두 지성은 대조적인 외양만큼이나 서로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교류하며 소통하는 일이 없었다. 함께 지냈던 벗들 중에는 공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었다니 특이한 일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으로 서로에 대한 관심의 촉발로 소통할 기회를 만들 수도 있었을진대 둘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목도한 정조는 치세에 어려움이 따랐던 만큼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였다. 개성적인 글로 독보적인 재능을 보인 연암과 다산은 만난 적이 없지만 정조를 중심으로 한 궤를 형성하였다.
길을 잃고 무명의 세계를 헤매는 이에게 밤하늘의 북극성은 제 빛을 발하며 갈 길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었듯 시공간을 초월해 연암과 다산은 조선 시대의 두 지성으로 자리한다. 별은 스스로 빛을 내지는 못하지만 주변에 잇는 별의 분사로 빛나 혼란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행성으로 행로가 다른 궤도를 돌며 구심점으로 자리한다. 연암학파의 북학과 다산학파의 서학으로 집약되는 인생의 좌표는 경계를 넘어선 포스트모더니티로 자리한다. 불꽃같은 명징함으로 경세를 위해 계몽의 시대를 이었고,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다산과는 달리 연암은 일렁이는 물결처럼 경계를 허물며 생생한 리듬을 변주하였다. 강진 다산초당에서의 18년 유배생활은 다산의 박람강기로 충족시킨 지적 욕구는 방대한 저술로 이어졌다.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잘 드러나듯 박학에의 열정과 이상을 향한 격정적인 열정을 담아 저자 일변도의 계몽을 실천하였다. 유배지에서 생활하는 동안 친구들과의 교류는 끊어졌고, 후학들을 양성하며 제자들에게 자료정리를 시켜 지식 경영의 일면을 보여줬다. 이에 비해 연암은 친구들과 교류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즐겼던 까닭에 곳곳에 유머와 위트가 숨어 있어 친근감이 있는 글을 써내려갔다.
머무름 없이 파동을 일으키며 흘러드는 물결처럼 권력에 대한 욕심 없이 주류의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원심력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이질적인 것들과의 융합을 꾀하였다. 이에 반해 다산은 비주류의 부활을 꿈꾸며 중심을 향해 전력을 다하여 동질적인 입자들과의 확산을 도모하였다. 수(水)기운이 강한 연암은 내면 성찰이 지나쳐 우울감에 젖기도 하였지만 이를 인생의 변곡점으로 자연을 유람하고 타자들을 향한 시선으로 경계의 벽을 허물고 만난 벗들과 교류하며 우정의 향연을 벌였다. 열하를 여행한 뒤 3년을 탈고하여 열하일기를 펴낸 연암은 여행지에서의 삶을 생생히 기록함으로써 현장에서의 생생한 삶을 구체화하였다. 그는 홍국영이 권력을 잡아 집권할 때 노론 벽파로 의심을 받게 되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고는 유람하다 발견한 황해도 금천군의 연암 협에서 은거하며 배움과 소통의 장을 이었다. 생계형 관직에 나가 녹봉을 받는 수령직을 고사하고는 벼슬살이 10년에 책 한 권이 날아갔다고 탄식한 연암은 자신을 움직이는 동력은 원초적인 글쓰기에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패기와 열정으로 이상을 향해 질주하여 갔던 다산은 영원한 제국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부모의 신주를 소각하고 제사를 거부한 유교적 통치 이념에 반하는 행동으로 천주교 박해를 몰고 온 진산 사건의 영향으로 서교에 입문한 다산 일가 역시 유배를 떠나야 했다. 전라남도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18년 유배 생활을 보내며 선진 경학을 통해 내면의 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올연히 펼쳐 내었다. 다산이 끌어안고 싶었던 정조와 서교는 양립할 수 없는 운명을 숙명처럼 여기고 벼슬길이 끊긴 상황에서도 학문 경연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성리학적 도그마를 벗어나 새로운 이상을 추구하여갔다. 가족 중심으로 소통하기를 즐겼던 다산은 자식들에게 훈계를 담은 계몽 편지를 보내며 정분을 두텁게 하였다.
소설과 패관잡기에 빠져서는 사대부의 정학을 구축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정조는 고문의 부활을 꾀하였다. 왕명에 부응하면서도 자신의 개성과 원칙을 발휘하는 일에 유연하였던 연암은 고문을 부흥하지도 못한 채 새로운 흐름을 중지시킨 문체반정에 위축되기보다는 비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균질화를 지향하는 글쓰기를 벗어나 미시적이고 분열적인 흐름을 통해 천지자연의 생생함을 드러낸 연암은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유영하는 이로 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투명한 거울처럼 비루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투사하여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를 담은 다산은 파토스적인 열정으로 가시적인 효과를 중시하였다. 복수보다는 학문을 좋아하였고, 권력보다는 지성을 중시하였던 정조 시대에 두 별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상이한 길을 걸음으로써 지성인으로 독보적인 자리에 올랐다. 생전에는 둘이 만나 담론을 벌이고 우정을 나눌 기회를 만들지 못하였지만 사후 지식의 경연장에 큰 축을 형성하며 진리를 익히며 문제를 해결하고 표현하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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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연암, 이 둘처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다.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임에도 그 둘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는다. 아니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다산이 근엄한 학자의 이미지를 풍긴다면, 연암은 영락없는 놀이패의 이미지를 풍긴다. 아마 그 둘에 관한 책이 그런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한몫 기여했음이 분명하다. 다산의 목민심서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과 같이 다산을 그린 작품들에 나타나는 모습은 왠지 시골서당의 훈장을 연상케 만들기에 충분하다. 반면에 [열하일기]에 나타난 연암은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를 모르는 자유분방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고미숙은 이미 임꺽정과 열하일기를 통해서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에 반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지만, 왠지 다른 책에는 선뜻 손이 가지를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다산과 연암에 대해서 서로를 비교하는 평전을 쓴 것이라 하길래 망설임 없이 구해놓고 읽기를 차일피일 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그것도 독일출장을 가면서 왕복 20시간이 넘는 비행기안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책이기도 했다. 우선 저자는 연암과 다산이 25살의 나이차가 있음에도 동시대, 동일지역에 살았음을 주목한다. 우리들은 18세기 조선시대를 수놓았던 실학자라는 이름으로 그 둘을 한 묶음으로 배워서 알고 있지만, 실상 그 둘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또한 연암에게는 문체가, 다산에게는 서학이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로 따라 다녔다. 그러한 상대방의 주홍글씨에 대하여 다산은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문체를 바른 곳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했고, 연암은 천주교에 대한 발본색원을 주장했다. 그런데도 연암과 다산이 만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서로가 몰랐을 리 만무하지만, 서로에게 무심하기만 했다. 그래서 저자는 그 둘을 잇는 매개체로 정조를 앞세워 연암의 [열하일기]로 인해 촉발된 문체반정과, 다산을 끝까지 옭아 메었던 서학을 중심으로 두 사람의 사유와 글쓰기를 비교해 간다. 먼저 연암과 다산, 그리고 정조가 중첩되는 부분은 딱 100년이다. 연암이 태어난 1757년부터 다산이 죽는 1856년까지, 이 기간 동안 연암은 중국이라는 타자를 통해 청문명의 역동적인 이질성에 주목했고, 다산은 서학(천주교)과 서양문명이라는 아주 낯선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정조가 있었다. 연암과 다산, 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처한 위치가 서로 상이했다. 그들 모두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연암은 당시 집권세력이던 노론 벽파 소속이었던데 반해, 다산은 재야세력이던 남인이었다. 다시 말해 연암은 그 당시 조선사회의 주류에 속해 있었지만 소수자의 삶을 살았고, 다산은 비주류이었지만 다수자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에게 연암을 통해 노론 벽파의 이면을 살피면서, 그가 일으키는 균열을 통하여 원심력의 소용돌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다산을 통해서는 비주류의 부활을 꿈꾸며 전력을 다해 중심으로 달려가는 남인의 권력의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연암은 북행을 통하여 청 문명을 접하는 기회를 가졌고, 열하일기는 자신이 주류이었지만 외부로 시선을 돌려 기꺼이 마이너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다산은 서학을 받아들이고 충격에 빠졌지만, 곧이어 배교를 한다. 이는 그가 중심을 얼마나 추구했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했다. 연암과 다산을 비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그들의 저작이다. 저자 역시 그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를 비교한다. [열하일기]는 길 위에서 겪은 일상의 행로로 곡선이라 할 수 있으며, 이후 연암은 더 가난해져 생계형 출사를 하기에 이른다. 반면 [목민심서]는 한 곳에 머무른 채 겪은 마음의 행로로 직선을 이루며, 전 48권이 완성되면서 다산은 귀양에서 해배 된다. 여기서도 그들의 행적은 어긋난다. 또한 산문을 즐겨 쓴 연암이 20대 후반에 쓴 [양반전]은 마이너의 시선으로 본 양반에 대한 풍자로 윤리적 해방 차원으로 사회적 모순에 접근했다면, 다산이 강진 유배 중 지었다는 한시 [애절양]은 백성들의 수난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통치의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수탈의 현장을 고발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연암과 다산의 사유와 글쓰기는 패러독스와 파토스로 대별되지만, 의외로 그들의 삶에는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유배지에서 보낸 다산의 삶과 프리랜서로 지낸 연암의 중년기는 오직 읽고, 쓰고, 배우고, 가르쳤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그런가 하면 말년에 귀양 해배 후 다산은 산수를 유람하며 유유자적하고 보낸다. 이는 연암의 청년기와 닮아 있다. 저자는 이를 두고, 두 사람의 인생궤적이 서로 맛 물려 돌아갔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연암과 다산의 편지 글, 한시, 그리고 묘지명 등을 통해 두 사람의 사유와 삶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글쓰기에 드러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유가 20세기와 21세기에 만나는 지점이 어디인지, 왜 만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 준다. 다산의 [목민심서]를 통한 계몽적 목소리는 20세기의 민족주의 잘 맞아 떨어졌고, 그러기에 다산은 20세기 계몽의 시대 빛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의 시대가 되면서 이제는 [열하일기]와 같은 연암의 사유와 글쓰기 특질이 더 잘 어울린다고 한다. 그래서 21세기에는 연암이 주연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때 실학이라는 틀 안에서 격물치지와 경세치용을 구분하지 않고 그들을 묶어서 생각했지만, 저자는 이제 그들을 각각 빛나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18세기 조선에 25년의 간격을 두고 두 별이 탄생했고, 그들은 죽어서 다시 별이 되어 오늘의 우리에게 왔다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살아간 그들이지만, 전혀 다른 인생행로와 사유로 오늘날 우리들의 사유를 풍부하게 해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저자의 글쓰기에 매료된다. 그것이 연암과 다산에 관한 것이어서 더욱 좋았고, 미처 몰랐던 두 사람의 사유와 글쓰기의 차이를 알려주는 것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은 여행이 되었다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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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난 만남이
뜻밖에 의미가 생기듯 책도 그럴 때가 있다. 고미숙의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도 그런 경우다.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을 비교한, 말하자면 교차 평전인 셈인데, 다산에 대한 책은 좀 읽어 봤어도 연암에 대한 책은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점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이 책에서도 주요하게 다루는) 정조의 문체반정에 관한 책에서 읽었을려나. 책은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한 둘이 한번도 만난 기록이 없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시작한다. 그건 그들이 아주 다르다는 얘기다. 나중에 명명한 ‘실학(實學)’이라는 공통분모로 생각했을 때는 의아한 일이지만, 아마도 둘은 상대를
모르지 않았겠지만 같은 길에 서 있는 인물이라고는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기질도 달랐고, 지향점도 달랐고, 걸어간 길도 달랐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책은 모두 대단했지만, 아주 다른 형식과 내용과
영향력을 지녔다. “연암의 글은 물이고 다산의 글은 불이다. 연암은 지혜와 유머가 흘러넘치고 다산의 글은 박학과 격정이 솟구친다. 연암이
좁쌀 한 알에서 우주적 징후를 간파하고자 한다면, 다산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담아내겠다는 결기로
충만하다. 연암의 생애는 뱀처럼 매끄럽다. 변곡점이 있긴
하지만 급격하게 꺾이는 대목은 드물다. 스스로 물처럼 흘러갔기 때문이다. 반면 다산의 행로와 동선은 급격하다.” (32쪽) 이러한 둘은 비교하는
것은 조선 후기 지성사의 가장 큰 별이자 지도였던 인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지향해야 하는 지점의 다양성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심에서 태어나 변방을 지향한 연암이나
주변에서 태어나 중심을 지향한 다산이나, 지위와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간 연암이나 자신의
경륜을 세상을 향해 쏟고자 했던 다산이나 아주 다른 길을 걸어갔지만 어느 쪽을 택했든 둘은 별이고, 지도였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 길을 걷든 진실되게, 분명하게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미숙은 연암과 다산
모두를 큰 인물로 쓰고 있고, 그들의 저술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연암에
대한 전문가이니 어쩔 수 없이 연암을 위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어쩌면 다산을 비판하고 싶은데, 형평성 차원에서 그러지 못한다는 느낌도 가끔 준다. 혹은 다산의
무게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너무 쉽게 같은 쪽의 인물로 묶어 버리는 둘은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단 한 가지, 왜 명리학 얘기는 자주 하는지… 둘은 이해하는 데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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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다산, 누구에게 주목해야 할까? 한국 지성사를 대표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조선 후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이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며 그 가치를 높여가고 있는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이다. 이 둘은 조선 후기 정조 왕이 치세하던 시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자신의 발자취를 뚜렷하게 남겼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심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기에 이 두 사람에 대한 관심 역시 주목하는 시기와 관심사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선,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라는 두 사람의 저작에 대한 관심 역시 그것이 주목받는 것은 시대적 요청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될만 하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어쩜 당연한 것이고 우리의 고전문학에 관심을 갖는 사람 역시 이 두 사람의 저작에 주목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고전 평론이라는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 책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의 저자 고미숙 역시 연암의 열하일기를 자신의 눈으로 해설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통해 연암과 다산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었다. 저자가 주목했던 두 사람에 관한 관심이 심화되어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이 책으로 보인다.
저자 고미숙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평전을 쓰면서 기존 평전들이 보여주는 바와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출발한다. 일대기를 쫓아가는 평전이 아닌 저서라는 굵직한 삶의 흔적에서 출발하는 점이 그것이며 한 사람이 아닌 동시에 두 사람을 비교분석한다는 점이다. 크게는 연암과 다산에 대해 '열하일기'와 '목심심서'를 중심으로 시문, 척독, 묘지명 등과 같은 저작물을 통해 그 저작물이 담고 있는 형식과 내용에 비추어 두 사람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함께 고려되는 사람이 두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던 바로 정조 왕이다.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통해 살펴보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일이다.
연암과 다산은 그들이 살았던 당시에 만났을까? 라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이 책이 이 가설이 가지는 의미성에 주목하여 다양한 경로로 두 사람의 삶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물과 불로 표현될 만큼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연암과 다산은 학문영역뿐 아니라 삶의 모습에서도 차이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러한 생활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모아진 것이 그들의 저작이라는 시각이다. 하여, 저작물에 대한 관심이 그들이 살았던 당시뿐 아니라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둠 속에서 갈 길을 밝혀주는 별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여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고미숙의 연암과 다산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통상적으로 이 두 사람을 각각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기존의 시각을 종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지만 한 사람은 끊임없이 주류를 향한 마음을 보였다면 한 사람은 방외지사 격이다. 이 둘을 한 가지 기준으로 묶어내고자 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여, 저자 역시 다양하게 비슷한 점을 찾아보지만 그 속에는 차이를 인정하며 비교하고 있다. 비교하여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것은 비교하는 대상들의 우열을 판가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독특함을 드러내 우뚝 세우고자 함이 전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저자가 두 사람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 후기의 라이벌이 아닌 동반자로 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현실의 혼란함과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가 사는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라면 이 두 사람 중 누구에 주목해야 할까? 연암과 다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한다면 두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이런 시도가 의미 있는 것은 우뚝 선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하여 그 속에 담긴 가치를 찾고 이를 통해 현대인이 살아가야 할 삶의 지침을 밝히고 있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역사나 문학을 통해 자신이 서 있는 현재 위치를 밝히고 앞날을 살아갈 방향을 찾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연암과 다산에 대해 기획하고 있다는 두 사람의 라이벌 평전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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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거창하다고나 할까? 이 책 또한 제목만으로 내 관심을 끌었고, 부제목은 궁금증을 폭발시켰다. '평전'이라는 말은 조금 딱딱한 느낌을 주었지만 '라이벌'이란 말은 나에게 흥미진진함을 예고하고 있었다. 보통 평전이 한 인물의 삶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 알고 있었기에 두 인물의 삶을 다루는 평전은 이색적인 느낌이었다. 그 두 인물은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에서 등장했었던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이었다.
두 인물이 두 개의 별을 뜻하는 것은 알겠는데, 두 개의 지도라니 그것은 무슨 뜻일까? 나침반이 없던 시절, 별을 보고 길을 찾아갔던 때에 별은 곧 지도였다. 그렇다면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또는 길을 잃었을 때 두 인물에게서 그 길을 찾아볼 수 있다는 말일까? 저자는 이 책의 입구에서 세 개의 '미스터리'란 이름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그들은 동시대 인물이면서 왜 서로 만나지 않았을까? 둘째, 왜 서로에 대해 노 코멘트 했을까? 셋째, 둘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모든 질문들이 그렇듯이, 연암과 다산이라는 화두는 결국 우리 자신의 발밑을 겨눈다. 즉, 이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꼼짝없이 가두고 있는 인식의 봉인 - 특히 차이의 봉합과 전통의 우상화에 대한 - 을 해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18p
저자는 입구에서 세 가지 '미스터리'에 대한 추적의 목적을 위와 같이 밝히고 있다. 나 자신을 꼼짝없이 가두고 있는 인식은 무엇일까?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잘못된 고정관념을 말하는 것일까? 저자가 말하는 차이라는 것과 전통의 우상화는 두 인물을 두고 말하는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전통을 우상화하지 않고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조금 어렵게 다가오는 문장 속에서 여러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양자역학적으로 보자면 연암이 파동이라면 다산은 입자다. 파동은 수많은 물결을 만들어 내는 데 비해 입자는 어떻게 보더라도 명명백백한 입자다. 연암의 침묵 혹은 위트와 다산의 '자찬묘지명'의 그 엄청난 언설의 차이도 거기에서 기인한다. 연삼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어 두었지만, 다산은 그런 식의 모호함과 중층성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실은 바로 잡아야하고 분명히 '말해져야'한다. 그리고 그 발화의 주체는 오직 나다! 나만이 그 진실을 증언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침묵할 수 있으랴! 이것이 입자의 세계다. 32p
저자는 연암과 다산이란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양자역학(입자 및 입자 집단을 다루는 현대 물리학의 기초이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을까? 두 인물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한 것일까? 두 인물을 비교하고 대조하며 비평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고전과는 거리가 한참 멀게 느껴지는 물리학 용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즉 인문학과 과학, 두 개의 분야를 넘나들며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통섭'이란 것이 중요한 것일까? 저자는 두 인물을 과학적인 개념으로 뿐만 아니라 사물에 빗대어서도 정확히 표현해내고 있어서 마음 속으로 탄복하며 읽어나갔다.
인순고식因循姑息은 낡은 관습에 사로잡혀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 구차미봉苟且彌縫은 구차하게 임시변통을 일삼는 것. 둘 다 진부함의 극치다. 천하만사, 인생만사의 재앙과 오류가 다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연암의 철칙이었다. 고로 생성과 창조는 이 진부함과 결코 공존할 수 없다.205p
두 사자성어를 통해서 본 나의 지금 모습은 어떠한가? 나에게는 버려야 할 낡은 관습이 무엇일까? 매일 하루가 반복되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게에서 보내는 나는 그저 익숙함과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게를 찾는 손님과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저 상황만을 넘기려고 애쓰지는 않았을까? 똑같은 문제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난 근본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는가?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난 가게를 가꾸고 있는가? 이 모든 대답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연암의 철칙을 마음에 새겨 보았다.
이 질문은 참으로 절실하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방과 표절 사이를 헤메고, 새로움과 괴벽사이에서 길을 잃곤 한다. 그래서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절규가 이어진다. "대체 그러면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나는 어찌할 것인가?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 왜? 글쓰기는 원초적 본능이자 소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사유의 모험을 시작한다. 고와 금, 신과 구, 그 '사이'에 대하여. 358p
저자에게 내 생각을 들켜버린 느낌이랄까? 이제 나에게 글쓰기는 멈출 수 없는 원초적 본능이자 소명이 되어 버렸다. 아! 이제까지 겨우 몇 권의 독서후기만을 썼을 따름인데, 표현이 너무 거창했나? 이외수의 [글쓰기 공중부양]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소박한 목표를 세웠었고, 석지영의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를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상당히 털어낼 수 있었다. 물론 난 책을 쓰는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니까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절규까지는 느낄 필요는 없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을 때 쓰고, 글속으로 사유의 모험을 떠나고 싶을 때 떠나면 되니까. 그렇지만 위의 질문은 나에게도 참 중요하다. 내가 쓴 글을 나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함께 읽을 것이기에 모방과 표절 그리고 새로움 '사이'에서 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루카치가 말했듯이,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는 복되도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 복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나의 별도 아닌 두 개의 별이 우리의 창공을 비추고 있으니 말이다. 두 개의 별은 두 개의 지도다. 두 지도는 리듬과 강밀도가, 행로와 과정이 전혀 다르다. 이 다름에 눈뜨는 그만큼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은 가슴마다 라파엘을 가지고 있다."(마르크스)는 말이 맞다면, 이 지도를 길잡이 삼아 우리 또한 별이 될 수 있지 않을까.410 - 411p
연암과 다산. 두 인물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읽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다. 저자는 두 인물을 통해서 그들을 길잡이로 삼아 우리 또한 누군가의 별이 되고 누군가의 지도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두 인물의 삶과 두 인물이 남긴 저서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주변 인물들을 저자의 눈을 통해 따라가면서 난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두 인물이 가리키는 삶에 관한 다름에 난 얼마나 눈을 떴고 내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 단순히 책을 한 권 읽었다고 내 말과 생각과 행동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있다. 하지만 책 한 권이 나를 달라질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고 힘이 되며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는 연암과 다산, 두 인물을 시대순으로 그 삶과 그들이 남긴 저작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하나씩 대결시키고 있었다. 정조와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전개된 2장과 3장 부분은 문체반정이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정말 흥미진진했다. 두 인물의 대결은 4장과 5장 부분에서 각자의 대표작인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를 두고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흥미로웠던 점들이 몇 가지 더 있었는데, 하나는 이덕일의 [조선 왕을 말하다]에서 읽었던 '정조와 노론과의 관계가 적대적이었다는 관점'과 입장이 다르게 우호적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역사학자의 입장과 고전평론가의 입장이라는 것도 작용했을까? 또 하나는 다산, 그의 형제들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서학 즉 천주교에 대한 초기 교회사를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은 2탄(15년 출간)과 3탄(17년 출간)을 염두에 둔 시리즈였다.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용어들과 신조어가 적지 않았지만, 저자의 글은 물고기가 파닥파닥 뛰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고 활기찼다. 또한 전혀 막힘이 없으며 청산유수였다. 앞으로 저자의 2탄과 3탄도 정말 기대가 된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임에도 늦잠을 자면서까지 참 재미있게 읽었다. 자기계발서나 에세이와 달리 명확하고 쉽게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내 사유의 공간은 조금 더 깊어지고 확장이 되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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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이라는 부제부터가 흥미진진하다. 조선 최고의 학자였던 다산 정약용과 조선 최고의 글쟁이였던 연암 박지원을 비교한 라이벌 평전이다. 라이벌 평전이라 했지만 우열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절대 섞이지 않을 것같은 물과 기름처럼 평행선을 그리며 각자의 운명대로 살아간 두 사람의 삶의 자취를 따라간다. 관심은 있었지만 잘 몰랐던 두 인물의 삶이 저자의 글 속에 그려지고 있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 책에서는 연암 VS 다산 두 인물의 평행선을, 명리학적 기질인 '물과 불', '파동과 입자', 대표 저서 '열하일기와 목민심서', '유쾌한 노마드(고원을 넘나드는 바람의 아들, 유목민)와 치열한 앙가주망(고요함 속에 학문적 깊이를 더해가며 계몽가, 목자)', '패러독스와 파토스' 등의 몇 가지 차원에서 그려내고 있다.
두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호불호는 갈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다산과 연암의 면모는 한걸음 분명해질 수 있다. 책에 실린 초상화를 보면 벌써 생김부터가 극과 극을 달리지 않는가? 한 인물에 대한 탐구로도 즐거운데 당대의 대스타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다 보니 대비점에서 두 사람의 모습은 더 명학해진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 다산은 열이면 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계획하고 계획한대로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깐깐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심하고 제자들이나 자식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가지고 있으며 묻는 족족 명확한 답을 내놓는 철두철미한 스승이자 학자인 셈이다. 반면 연암은 명확한 답이나 확실한 결론은 애초에 없다. 자신이 직접 답을 내리거나 꼼꼼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해석과 탐색이 가능한 열린 사상과 태도로 발전을 모색하는 자유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다산을 '불(열정)과 입자', 그리고 치열한 '앙가주망'으로 설명하고, 연암은 '물과 파동', 그리고 유쾌한 '노마드'로 설명한다.
비주류 남인이었던 다산은 유배 직전까지는 정조의 비호 아래 잘 나갔지만 대세 노론이었던 연암은 스스로 벼슬자리를 멀리한다. 정조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는 점, 다산은 유배지에서 그리고 연암은 스스로 비주류가 되어서 글쓰기에 매진했다는 점, 시기와 질투, 비판을 받았던 두 사람이지만 후대에 와서는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는 점이 공통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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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에 관해 읽은 책들은 여러 권인데, 그 중 가장 기억나는 책은 박석무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이다. 다산에 대한 연구로는 박석무씨가 으뜸일 것이다. 책을 읽은 감명이 컸었기에 박석무씨의 강연도 한번 들었는데. 다산선생에 대해 모든 것을 꿰차고 있는 분으로 보였다.
그리고 연암에 관해 읽은 책은 <열하일기,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유일하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연암에 대한 관심보다는 청장관 이덕무선생에 대한 책을 읽고 난 후 백탑시절 동무들(당시 연암은 청장관의 스승이었다)에 관심이 생겨 읽기 시작한 책이었는데. 읽으며 연암의 아웃사이더 기질-유쾌한 노마드를 알게 된 책이었고 저자인 고미숙씨를 알게 된 책이기도 했다.
연암의 팬으로 여겨졌던 고미숙씨가 조선후기 인문학을 지탱하고 있는 양대 거대산맥, 다산과 연암을 동시에 논한다? 과연 이 컨셉은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궁금증과, 내가 관심을 갖고 여러 권을 찾아 읽었던 다산과 한권의 책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된 연암을 이 한권의 책에서 만난다는 것에 바짝 구미가 당겼다.
고미숙씨의 명리학적 해석에 따르면, 연암은 물(水)이요, 다산은 불(火)이다. 의외였다. 다산이 물의 기질이고 연암이 불의 기질로 보였는데. 따라서, 다산은 불꽃으로 빛의 입자 상태로 질서정연한 우주인 코스모스라 한다면 연암은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를 빛의 파동이며 카오스다. 차~. 해석 한번 멋들어진다. 그래서 연암은 사이비(似以非/진짜와 비슷해 보이나 가짜인 것)를 못 참고 다산은 뒤죽박죽 섞이는 것을 참지 못하여. 연암은 기득권의 세계에서 미끄러져나와 유쾌한 아웃사이더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내보이며 살았고 다산은 드높은 이상주의를 품고 오로지 중심과 빛을 향한 치열한 의지로 살았다.
연암과 다산은 비슷한 시공간에 있었음에도 단 한번도 만나지않았다 한다. 하지만 연암과 다산의 교집합에는 정조가 있었다. 지식인들을 스스로의 자기검열을 통해 길들이려 했던 정조의 문체반정에. 연암은 개의치않고 자유분방한 글쓰기를 계속 했고 다산은 완전 어용이었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다산의 글쓰기에 꼭 들어맞는 이상향이었으니 그럴 수 밖에. 정조의 문체반정을 받아들이는 두사람의 입장은 각자의 성격만큼 확연했고 가는 길이 확연히 달랐으니 만나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
연암과 다산. 저자는, 연암이 다산보다 스물다섯이나 많은 연장자이지만 역사적 해석에서는 다산이 먼저 우리에게 오고 연암은 나중에 온 자이므로 '다산과 연암'의 순서를 취했다하지만. 내가 읽은 결과로는 고미숙씨의 마음속 순서는 연암과 다산이다.
두 거대산맥을 비교하여 대중에게 선보이는 결과물로 내놓을때에는 물론~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했겠으나. 역시. 고미숙씨는 연암의 골수팬임을 느낀 책이다. 책의 구절구절에서 고미숙씨는 연암을 더 좋아하는 것으로 읽혔다. 글쎄. 이 책을 통해 연암에 대해 더 매력을 느끼게 된 내 생각의 반영인지도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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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부서이동이 있었습니다. 2년 반을 반강제적으로 영업조직에 있다가 다시 기술부서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기간이 개인적으로 무의미하거나 힘겹지는 않았습니다. 팀장이나 저나 서로에게 힘든 시간이 되었을 뿐, 그 관계를 제외하고는 제게 새로운 삶의 모습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부서 이동을 앞두고, 떠나보내는 팀장이 제게 선물로 책 한 권을 주었습니다. 실상은, 책을 한 권 선물할 테니 저더러 한 권 찍어달라고 해서 받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이드 칸의 '아주 작은 집'처럼 나름 고가(3만원 정도하는)의 책을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 동안 읽으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이 책을 신청했습니다. 책을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본인이 읽고 좋았던 책이나 추천하고 싶은 책을 선물해 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연암박지원과 다산정약용. 아마 지금의 우리들 대부분은 연암보다 다산을, 열하일기보다 목민심서를 더 많이 기억하고, 더 우위에 두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건, 우리가 판단하고 이해하는 그들의 삶과 행적이 학교교육이라는 한정된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세기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연암보다 체계적이고 파악이 쉬운 다산이 국가권력의 이해와 맞아 떨어졌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즉, 권력이 지향하는 바와 이런저런 면에서 잘 맞는 다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횟수와 강도에 의해서 뇌리에 각인되는 정도가 달랐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책은 연암과 다산이 영.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물리적으로 지근거리에 살았고, 학문적으로 완성된 지위에 있었고, 나이차이를 떠나 서로 겹치는 교우 관계도 있었으니 당연히 한 두 번 만나거나 마주치거나 서로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법한데, 그걸 다 비껴간 것에 대해서 의아해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왜 두 명이 고수는 서로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것이죠. 강호의 고수건 학문적인 고수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한데 25년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서로 중첩된 시절이 있었음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미스테리한 일이라고, 저도 읽으면서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연암은 1737년에 당시 정권의 정점이던 노론벽파의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지만, 입신양명으로 이어지지 않고 교묘하게 권력의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갑니다. 과거를 보러 가서는 시화를 그려내거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관직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데, 그 아버지 되시는 분도 그런 아들의 행동을 탓하기는 커녕 잘했다며 격려를 합니다. 아마도 이 집안은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권력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느꼈거나 천성적으로 자유를 지향하는 DNA가 잠재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산은 1762년 권력을 지향하는 남인계열 성호좌파의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역시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다산은 일찌감치 과거에 급재하여 권력의 흐름으로 진입을 합니다. 권력의 허망함보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너무 커서 권력을 지향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절정기는 그의 능력을 꿰뚫어 본 정조를 만나면서 극에 달합니다. 정조가 딱히 다산만 유별나게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관심을 둔 그룹에 속해 있던 것만은 사실인 듯합니다.
인간의 삶을 태어날 때의 사주를 가지고 해석하는 명리학적인 해석으로 보자면,
연암은 물과 지혜(흐름)를 타고 났고, 사건과 사실을 꿰뚫은 힘 즉, 사물의 본질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와 유머가 넘치고 파동처럼 세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탈영토화합니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권력의 틈을 비집고 밖으로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용을 합니다. 권력(권위)은 늘 엄숙함에 닿아있어 그걸 해체하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유머와 해학, 웃음입니다. 그래서, 연암의 글에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담겨져 있어서 기존의 권력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산은 연암과 달리 불과 열정(솟구침)을 타고 났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투시력(계몽)을 지녔습니다. 연암이 사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것과 달리 모든 사물을 재영토화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체계를 잡아 나갑니다. 그는 정조라는 시대의 성군을 등에 업고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중심으로 걸어갑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한치의 웃음이나 유머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통해 훈육을 한 것으로 유명한 그였기에, 다정다감한 아버지가 아니라 엄숙하고 흐트러짐이 없는,존경받아 마땅한 스승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힘이 정조 사후에 유배된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라고 하는 대작을 쓰게 합니다.
책에 나와 있는 걸 바탕으로 생각해 보자면, 정조는 늘 연암을 의식하고 있었고, 다산과 같은 인재를 키우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권력자의 속성상 그 애정을 한 곳에 쏟거나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접속하고자 했던 모습도 보이고,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자 했던 모습도 드러납니다. 정조가 문체를 옛것으로 되돌리고자 문체반정을 일으키면서, 패관소품체의 배후로 지목했던 게 연암의 '열하일기'입니다. 생각을 어떤 형식으로 나타낼 것인가에 의해서 세상이 바뀐다고 보았던 정조는, 다른 정치적인 이유를 배제한다면, 자유분방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인해 본인이 구축하고자 했던 영토가 균열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영토로부터 탈주하는 무리들을 가두기 위한 끊임없는 벽쌓기였다고 봐도 무방할 테고, 다산은 거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합니다.
영토화, 체계화, 계몽 등 다산이 가진 특성들은 20세기 대한민국이 처했고 지향하던 시대이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집니다. 그래서 권력은 다산을 취하게 됩니다. 120 다산콜센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다 알려드릴게요. 방대한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분류되어, 원하는 것을 말하면 바로 검색하고 알려주는 시스템. 그게 다산입니다.
21세기, SNS와 노마드의 시대.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접속과 단절이 벌어지는 세상, 하나의 현상에 답은 하나가 아니고, 도서관이 아닌 길거리서 답을 얻는 21세기는 다산이 아닌 연암을 선택합니다. 견고한 권력의 생성이 아닌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끊임없이 해체되고 다시 재생성의 과정을 거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필요조건은 유머와 웃음입니다.
18세기에 조선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두 개의 별,연암과 다산. 20세기는 다산과 접속했고, 21세기는 연암과 접속을 했습니다. 또 다시 다른 미래가 오면 두 개의 별은 또 다시 시대와 접속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둘이 만나 더 큰 시너지를 불러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이 가진 최고의 완성품을 세상에 남겼다는 것. 그걸 지도삼아 우리가 이 세상을 비춰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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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이 '불을 품은 물'이라면 다산은 '물을 품은 불'이다. (고미숙)
연암 박지원(1737~1805)과 다산 정약용(1762~1836).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은 조선 최고의 문인이자 학자로서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연암과 다산은 확연히 다른 외모만큼이나 평행선처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책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에서 두개의 평행선처럼 만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헤어질수도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라이벌' 구도로 풀어 놓는다.
'라이벌 평전'이라는 독특한 컨셉의 이 책은 역사를 보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연암과 다산, 두 사람의 인생을 각각 다루어도 이야기꺼리가 어마어마할텐데, 이 둘을 한 데 묶어 '역사의 라이벌'로 재탄생시켰으니 그 재미가 오죽하랴. 거기에 두 사람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인물 정조(1752~1800), 18세기 조선시대 르네상스가 시대적 배경이니 흥미진진한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천재에 관한 미스터리
정조 시대를 다룬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작품들이 있지만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이 함께 등장하는 작품은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둘은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난 적이 없으니 함께 만든 드라마가 없다. 심지어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당대에 이름을 떨쳤던 이들이 서로에 대해서는 철저히 '노 코멘트' 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다산의 글에서는 연암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연암의 글 어디에서도 다산에 관한 언급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조선 뿐만 아니라 세계 지성사에도 빛나는 천재였던 그들은 왜 한번도 만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서로에 대해 철저하게 침묵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 찾기다. 저자는 연암과 다산이라는 상이한 기질과 벡터를 지닌 천재가 동시대에 공존했다는 사실로부터 이 둘의 생애를 동시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역사적인 추적에 나선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분명 연암은 주류고 다산은 비주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연암이 소수자고, 다산은 다수자다. 연암을 통해 노론 '벽파'의 이면을 볼 수 있고, 다산을 통해 성호 '좌파'의 권력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 더 중요한 사항 하나. 이제 연암은 주류의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원심력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이고, 다산은 비주류들의 부활을 꿈꾸며 전력을 다해 중심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한 사람은 중앙에서 변방으로, 다른 한 사람은 변방에서 중앙으로. 원심력과 구심력의 한판 승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43쪽)
18세기 당파와 당론이 좌우하던 조선 정치판에서 '노론 벽파'인 연암은 주류였고, '성호 좌파'로 분류되는 다산은 비주류였다. 하지만 둘은 모두 파벌정치에 물들지 않았고 계파의 이익에 충성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연암은 허세와 권위를 거부하고 주류 내부의 균열을 꾀하며 '중심에서 변방으로' 달려갔고, 다산은 비주류의 부활을 꿈꾸며 끊임없이 중심으로 질주해갔다.
우도(友道)를 중시한 연암은 청년기를 벗들과 유람하는 것으로 보내며 주류세력으로의 편입을 거부했다. 다산은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방법으로 입시에 전념했다. 관료사회 진입을 거부해 오던 연암은 가정 경제가 심각하게 기울자 마흔의 나이에 늦깍이 생계형 관직에 나서 잠깐 동안 관료 생활을 했을 뿐 대체로 평탄한 삶을 영위했다. 반면 관료사회 진입의 강한 열망을 품은 다산은 정조의 정치적 파트너가 되어 승승장구하다가 정조 사후 18년 넘는 세월을 유배되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인생을 살았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넓고도 깊은 학문적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열하일기'(1783)와 '목민심서'(1818)다. 연암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다. 유사 이래 연암을 뛰어넘을 만한 탁월한 문장가는 없었다.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가 출간과 동시에 조선 전역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후대에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 이유이기도 하다.
다산은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였다. 그 중 '목민심서'는 누구나 존경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혹은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불운한 '고전'으로 꼽힌다. 무려 48권에 달하는 '목민심서'는 치밀하고도 방대한 체계와 내용을 자랑한다. 연암이 질로 승부했다면 다산은 양으로 승부한 셈인데, 두 사람은 각자의 분야에서 모두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조선의 문장가라면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어야 하고, 조선의 관료라면 다산의 '목민심서'를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
둘이 만났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조선 하늘에 뜬 두개의 별. 한번쯤 서로를 쳐다봤을범직 한데 어째서 그토록 서로에 대해 침묵했던 것일까.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추론할 뿐이다. 저자는 "둘의 영역이 너무 심오하고 각자 밟아나가는 '길'이 더할 나위 없이 뚜렷해 만나기 어려웠다"며 "만나는 순간 '빅뱅'이 일어날테니까. 하여 둘은 서로 무의식적으로 비켜갔던 건 아닐까. 마치 저 하늘의 별들이 그러하듯이"(390쪽)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18세기 조선에 25년의 간격을 두고 두 별이 탄생했고, 그들은 죽어서 다시 별이 되었다. 연암과 다산이 없는 18세기. 아니 조선사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별은 지도다. 별이 없으면 길 또한 없다. 그러므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둘은 왜 만나지 않았을까?가 아니라 저 두 별을 어떻게 우리 삶의 지도로 변환할 것인가? (391쪽)
저자는 "지금까진 이 두 별을 하나의 자리로 연결하려 애썼다. 한때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지닌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실로 부질없는 노릇"이라며 "지금 중요한 건 이 두개의 별을 각자 빛나게 해 주는 것이다. 알고 있듯이, 별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서로를 비춤으로써만이 빛난다. 다산이 다산이 되려면 연암이 있어야 하고, 연암 또한 마찬가지다. 저 멀리서 다산 같은 별이 빛나야 그걸 배경으로 전혀 다른 빛을 분사할 수 있다"(410쪽)고 결론짓는다.
다산과 연암의 '현재적 함의'
저자가 보기에 연암이 21세기 코드라면 다산은 20세기 코드다. 백과사전적 집대성과 총체성, 계몽적 사고가 주를 이루는 20세기는 다산의 세기였다. 다산은 방대한 지식의 세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모으고 누가 무엇을 물어도 명쾌하게 답변해 주는 '콜센터'와 같다. 반면 연암은 21세기와 조응한다. 생동감과 중심으로부터의 탈주를 추구했던 연암은 정보의 소통과 쌍방향 네트워크가 중시되는 SNS 시대와 어울린다. 이것이 두 개의 별이 밝히는 두 개의 지도에 담긴 '현재적 함의'다.
다산은 '나중에 온 자'지만 '먼저' 우리에게 나타났다. 20세기는 명실상부한 다산의 세기였다. 그때 연암은 배경이었다. 연암은 먼저 왔으되 나중에 온 자다. 21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과의접속을 시작했다. 이로써 보건대, 역사는 결코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순환하고 변전할 따름이다. (409쪽)
고미숙의 연암과 다산에 관한 라이벌 평전은 3탄으로 예정된 방대한 기획물이다. 2015년에 2탄을 출간할 계획을 밝혔으나 아직이다. 1탄을 감명깊게 본 독자로서 2탄이 어서 출간되기를 기다린다. 다산과 연암이 보여줄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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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이 저자의 열하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고 (슬프게도 지금은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동시대의 다산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드디어 이 책이 나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나의 엉뚱한 생각은 연암의 일생을 평생 좌우 한 것은 젊은 시절의 우울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에 읽은 뇌과학에 대한 책에 의하면 유명한 창의적인 인간들은 우울증을 알았다고 한다. 또한 현 시대에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깨닫기 전에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는 것이다. 연암은 지배당인 노론 출신이면서도 그 시대의 변방인으로 살았고 한반도에 한문이 들어 온 이래로 가장 창의적인 문장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자신의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아니였을까?
방대한 저서를 유배 기간 동안 남긴 다산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태양족'이다. 정조의 죽음으로 끝난 그의 정치에 대한 욕구는 그 시대 유학자들의 또 다른 목적인 글쓰기로 나타났다. 또한 자신의 저서와 함께 자신의 이름도 잊혀지지 않기를 바랬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행태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가지고 있던 다산의 이미지 - 정조를 도와 무엇인가 해 보려 했던 '젊은 그들'의 이미지-가 이 책을 읽으면서 꼬장꼬장한 유학자의 이미지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