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빙 고프먼(1922-1982)은 일상의 대면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미시사회학 분야를 개척한 독창적인 사회학자다. '고프먼'하면 언제나 허버트 블루머의 상징적 상호작용론과 해럴드 가핑클의 민속방법론을 같이 떠올리게 된다. 대개 그런 식으로 고프먼의 프레임 연구에 접근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연극, 게임, 의례, 전략, 프레임과 같은 은유적 개념들은 일상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기 위한 유용한 이론적 공구다. 내가 고프먼에게 끌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뒤르켐의 의례 개념에 기반한 그의 프레임 분석 때문이다. 나는 고프먼의 개념 공구를 들고 다니면 고도로 민감한 촉을 지닌 명탐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상호작용 의례](1967)는 [일상생활에서 자아의 연출](1959), [낙인](1963), [프레임 분석](1974)에 이어 네 번째로 접하는 고프먼의 작품이다. 이 책에는 <체면 지키기><존대와 처신의 성격><당혹감과 사회조직><상호작용에서의 소외><정신이상 증상과 공공질서><행동이 있는 곳> 총 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상호작용 의례](아카넷, 2013)는 의례적 관점에서 일상생활 속 개인과 개인의 면대면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고프먼은 우리의 사회적 삶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대면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며, 그 대면 상호작용은 의례 기제를 통해 개인에게는 자아를, 사회에는 도덕적 질서를 보장해준다고 말한다. 고프먼에게 구체적 상황을 벗어난 특권적 실체로서의 사회는 없다. 사회나 군집이란 언제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고 상호작용을 하는 구체적 상황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는 지금 여기 미시 수준의 상호작용 상황에서 참여자들이 협력하여 구성하고, 지키고, 위반하면 제재가 가해지는 규칙과 질서, 곧 사회성의 요건을 실현하는 현장이다. 그래서 고프먼은 상황의 사회학(sociology of occasion)을 주장한다. 그러나 고프먼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는다. 하나는 은유적 개념을 남발하여 통합된 이론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거시 사회구조와 체계의 영향을 간과하고 지나치게 미시 수준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고프먼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질서'를 중시했다. 그는 정치 질서나 경제 질서, 가족관계 질서와 같은 거시 수준의 상호작용과는 달리 면대면의 미시적 상호작용을 주로 다루었다. 가령 여러 직업현장과 조직, 정신병동, 카지노, 거리, 파티 장소, 엘리베이터, 스파이와 사기꾼들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 여기'의 상호작용을 다루었다. 즉 고프먼의 분석단위는 개인행위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상황의 질서와 규칙이다. 고프먼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냉소, 의례, 신뢰의 복합체로 본다.
고프먼은 의례 은유로 미시 수준의 사회적 삶과 대면 상호작용을 고찰한다. 일반적으로 의례는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보장하는 행위규칙이다. 뒤르켐이 신성한 상황에 적용한 의례 개념을 고프먼은 세속적 상황에 적용한다. 고프먼은 의례적 요소의 분류표를 제시하는데 모든 상호작용이 공유하는 가장 기초적인 두 가지 요소는 존대와 처신이다. 존대(deference)란 함께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들을 그 상호작용의 상대로서 정중하게 대하는 태도를 가리키고, 처신(demeanor)이란 개인의 사회적 자아를 구성하는 행위로서, 남들에게 이상적인 모습으로 자아를 표현하는 옷차림, 몸가짐, 태도, 언행 등을 가리킨다.
존대에는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뜻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보이는 연출의례(presentational ritual)와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려는 회피의례(avoidance ritual)가 있다. 마주칠 때 나누는 인사, 친소 관계에 따른 적절한 호칭 및 언어의 사용, 필요한 것을 챙겨주는 자잘한 서비스, 작별 인사 등이 연출의례에 속한다면, 사생활 존중, 상대와 적절한 거리 지키기, 상대방이 꺼리는 금기에 대한 언급 삼가기, 실수를 못 본 체하기는 회피의례에 해당한다. 한편, 처신은 남들 눈에 자기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감지하고서 남들로부터 믿음직한 상호작용 상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자아를 연출하는 일이다. 따라서 고프먼에게 상황을 초월한 본질적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구체적 상황에서 매 순간 형성되고 실현되는 상황적 자아들이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