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지금 고전인가』는 고전이 갖고 있는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며, 고전을 통해 우리 시대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와 정치까지를 아우르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고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각 시대와 힘의 관계를 들려주기도 한다. 막강한 교회의 힘으로 라틴어는 학문과 법 분야에서 전 유럽에 걸쳐 사용되는 언어였고, 그 결과 고전은 과거 모든 교육의 기초 역할을 했다. 라틴어는 모든 과학적 지적 소통에서 필수적인 매개체였으며 고대 로마의 문헌을 통해 고위층에게 교육되었다. 고전에 담긴 모든 지혜는 지식의 원천으로도 간주되는데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의학은 갈레노스, 철학은 플라톤, 역사는 헤로도토스로 시작돼 오늘날에까지도 학문 뿐 아니라 정치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전이 부상한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전의 권위가 붕괴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여기에서의 고전은, 과거 문헌의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술로 개발되는 실용 학문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읽기 쉽게 번역한 고전은, 고전어 지식 없이도 고전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고전은 귀족 남성 교육의 전유물이었으며, 특히 영국에서는 20세기 중반까지도 명문대 입학 조건에 고전어 능력이 필수였다. 19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와 독일은, 로마제국의 정복을 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 미국 또한 노예제도가 폐지된 지금도 백인 문명이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활용하는 실정이다. 고전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한 결과지만, 이만한 비도덕적인 악용이 따로 있을까 싶다. 성리학을 정치 기반으로 둔 조선 신진사대부의 다른 이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고전의 모순된 방식과 고전 문화의 성취 뒤에는 힘없는 노예와 민초들의 죽음이 있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과거 지식의 유용성과 학문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투키디데스의 글을 제시한다. 언제부턴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다루는 논쟁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의미)'은 단골로 등장했다. 작금의 미중무역전쟁은 우리에게도 악재로 통하고 있으며, 최근 불거진 한일 갈등 역시 비껴갈 수 없는 문제로 작용한다. 우리가 고전을 배우려는 의도는, 시간의 연속성이 있으며 그러한 규칙성을 밝힌 인물이 투키디데스였다. 그는 인간 본성, 인간 조건 측면에서 규명했고, 국가의 행위, 국제 체제의 속성, 갈등의 기원에서 그 경향을 발견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것에 버금가는 '역사를 잊은 자는 과오를 반복하게 된다'라는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주장이 본문에 재기된다. 우리는 역사 덕분에 불확실성에 빠지지 않고, 역사의 순환을 통한 흥망성쇠 또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지점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단할 수 있는 잣대로 고전을 활용한다면 도움이 되리라. 고전은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성취의 절정이며, 한층 높은 수준의 존재와 이해를 향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p34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진실하고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p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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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전을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반복되고 있으며 시대나 사람에 따라 우선순위로 원하는 바는 다를 수 있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고전을 무조건 읽어라! 라는 내용의 책은 아니다. (예상외로) 고전이 가지고 있는 문제도 인지하고 있었고 경계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도 짚어가며 한쪽으로 치우쳐서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신뢰가 더 쌓이는 책이었다. 특히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부분은 '접근법'이었는데 고전을 읽고 연구한다고 하여 근시대적인 시각에 갇혀 있지말라는 것이었다. 시대와 문화가 변했으니 문제를 인식하고 과거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만들라는 것. 너무 멋진 말이었다. 이 부분은 과거가 무조건 잘못되었다 - 라는 부정이 아닌 그 시대를 이해하고 우리는 우리의 시대에 맞추어 가야한다고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요즘같이 많은 분야에서 양극단으로 대립하여 싸움이 많아 지쳐가는 나에겐 정말 멋진 어른의 한마디 같이 느껴졌다. 책이 작고 가벼워 틈틈이 나의 쉬는 시간을 메워줄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퇴근 후의 시간을 이 책에 집중하게 만드는 겉모습과는 다른 친구였다. 개인적으로는 '서양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라는 말에 배신감이 살짝 왔다. 책 소개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고전 내용과 함께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한번에 와닿기 힘든 부분들이 꽤 많았다. 오히려 고전에 대하여 깊게 얘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반가워할 책이 아닌가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즐거웠던 이유는 깊이 있는 생각과 중심을 잡고 이야기하는 학자의 열정을 보며 아직도 해결해야할 문제들과 폐단이 많지만 고전과 친해져야할 이유를 다시한번 깊게 새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전이라고 하여 꽉 막힌 느낌이 아닌 오히려 사방으로 열려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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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전이 중요하고 가치있는 학문이라는 건 알겠는데 고전이 실생활에도 도움이 될까? 이런 질문들로 우리는 고전 읽기를 꺼린다. 솔직히 말하면 책이 넘처나고 인터넷만 검색해도 지식이 넘처나는 세상에서 고전은 실용서적들에 비해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왜 지금 고전인가'는 전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이처럼 고전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한 권의 그리 길지 않는 180페이지 정도의 내용으로 설명한다. 동 서양의 고전들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서양 고전을 중심으로 그리스 로마 문화의 사상과 예술, 문학등의 가치들을 밝히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지않는 학문으로만 느껴지던 고전들에서 어떤 해석으로 서양 고전들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삶 속에서 고전의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이 책의 저자 네빌 몰리는 고대가 앞선 시대에 주요 학문이었듯 현재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를 무시할 수 없음을 논리적으로 알려주면서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는데 문화, 사회, 정치 등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다가가야할지에 대한 고전의 중요성을 밝힌다. 서양 고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큰 줄기를 알려주면서 고전을 어떻게 잘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접근법을 알려주며 고전이 많은 이들에게 고리타분하지만 상유층의 학문으로 느껴졌던 이유를 비판적으로 밝히며 서양 고전의 불편함 중 하나인 '서양 문명'의 우월성의 초점을 맞추지 말고 비판적으로 고전을 이해하는 것이 고전을 이해하는데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고전을 읽는 이유를 찾고 싶은 이들과 서양 고전 입문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본 내용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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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작고 얇은 책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요즘 인스타에서는 고전읽기가 유행이다. 책 좀 본다는 사람들에게 고전읽기가 인기인 모양이다. 그래서 고전을 하나도 모르는 나는 이 책에 끌렸다. 사실 난 고전읽기에 동참하고 싶다기 보다는 메이저 출판사들이 내놓는 전집이 너무 탐이 나기도 했다. 100권 넘게 시리즈로 나오는 고전 전집을 책장에 딱!!!!! 꽂아 놓으면 얼마나 멋있을까??? 어쨌든 나는 고전을 들어가기 전에 [왜 지금 고전인가]를 읽어야 겠다는 심정으로 책을 펼쳤다. 책이 작고 얇아서 혹은 나의 지식이 너무 얕아서 그런지 책을 두 번 읽었다.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 어려워서 ㅠㅠ 저자는 예전에도 고전은(그 때엔 고전이 아니었겠지만) 있는 사람들이 자랑하기 위해 읽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전집을 사다가 책장에 딱 꽂아 놓는 상상을 하는 것과 비슷하겠지. 그런데 그런 허영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전읽기의 열풍은 없어지지 않는다. 왜냐면 고전은 우리에게 허영말고 더 많은 걸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 더 많은 건 뭘까? 저자는 고전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정의 내리기도 어렵고, 그 자체로 순수한 고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변화되거나, 아니면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자료가 충분치 않았거나, 어떤 정치적 혹은 예술적 목적으로 수정되었거나..... 그렇지만 그 결과 더 다양해지는 모습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인기가 있는 게 아닐까? 교훈이나 지식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지금 시대에 읽어도 잘 어우러지는 그런 폭 넓은 무언가가 고전의 매력이 아닐까? 미친듯이 변하는 이 시대에 고전을 읽는다는 건 시대에 동떨어져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저자는 고전학은 더 이상 제한적이고 우월하다고 간주되는 사료에 대한 독점적 권리로 학문을 정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전이라는 의미가 요즘에는 다양한 영역과 맞물려 새로운 창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예전에 했던 고민을 지금도 하기 때문일까? 그 때의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의 고민을 안고 가는 거다. 나에 대해서, 내 삶에 대해서 그리고 타인에 대해서 오히려 복잡하기 때문에 고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인가? 고전으로 돌아가면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떤 것부터 읽어봐야 할까? 이 책을 읽으니 고전을 하나 읽고 다시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 사람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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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난 후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현대소설에선 재미를 추구하면서, 고전과 명작소설에선 뭔가 깨달음을 얻어야 된다는 틀에 박힌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것도 그냥 재미로만 보면 안되는걸까? 내가 어린 시절이었을 때 어른이었던 사람들은 왜 항상 책을 읽고 난 후 쓰는 독후감에 느낀 점만 써서 제출하면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고 하며, "그래서 넌 그 이야기에 뭘 배웠니?"라는 질문을 당연하다는 듯 했을까? 그 당시에 나온 소설들도 당연히 그 때에는 현대소설이었지만, 그런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에도 늘 교훈을 한마디씩은 적어야만 "저 아이는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한 아이"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무려 30년 전이지만. 이 책은 저자가 영국의 고전고대사학 교수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이야기는 고전중의 고전이라 불리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들이다. 그 옛날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쓰여진 고대사들에 대한 이야기. 재미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재미보단 토론장에서나 들을 법한 심오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고전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점검해 볼 수 있기도 한 내용들이다. 수레바퀴 아래서에 등장하는 주인공 한스가 신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하던 것들에 '라틴어와 그리스어, 그리고 크세노폰의 글'등이 등장한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의 자리다. [왜 지금 고전인가]라는 책 속 내용에서 지적했듯, 이 언어들은 정치가, 성직자 등 권력을 가진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왔고, 그렇게 사회적 우월성과 엘리트주의를 강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왔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서양의 고대소설은 벤허나 십계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등은 신과 인간세계에서 권력의 우두머리가 등장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며,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보다 종교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언어가 가진 권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식되어진 고전문학은 일반인에게 멀고 재미없는 이야기로 낙인 찍혀있다. 오늘날에는 이르러 고전은 더 이상 일부 지식인이나 정치인 등 소위 말하는 엘리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는 학문이다. "역사는 사례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라는 말처럼 고전을 통해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하나의 학문으로써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어려운 고전문학이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더 넓어지는 기회를 만나기엔 충분한 책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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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초등학생 엄마들 사이에 고전 읽히기가 교육의 열풍이 불고 있다. 나또한 고전을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독서하게 할까가 많은 관심이다. 난 학창시절에 필독서인 고전 몇편도 읽기가 힘들어 했던 기억들이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고전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서점을 찾아 아이에게 고전을 친숙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고전을 읽기가 어려우니, 아이가 독서를 해도 독서토론을 할 수가 없어서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안내서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쉽게 서양고전을 접할 수 있는 책으로 핸드북처럼 가지고 다니며 읽기 좋게 손바닥 모양의 크기에 페이지도 얇아서 거부감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책은 아무래도 고전 입문자를 위한 안내서로 아무래도 고전을 논하는 책이라서 쉽게 풀어 썼다고는 하는데 좀 술술 읽히기는 어렵다. 그래도 서양고전을 초보자들이 접해보고자 한다면 한번쯤은 읽어보는게 좋다고 생각된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고전을 읽고, 지금도 세계 경제, 정치를 하는 엘리트들이 꼭 읽는다는 필독서 고전을 단편적으로나마 접하기에는 손색이 없는 책이다. 서구의 엘리트 교육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연구로 고전 문화에 대한 지식을 창의적인 인재들을 양성하는데 고전읽히기는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책의 구성은 4장으로 고전이 마주친 문제, 과거의 추적, 현재의 이해, 미래의 예상이라는 과거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자세로 고전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이 책에서 논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생산된 지식은 당시 유럽의 엘리트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지식으로 인식되었으며, 자연계, 인간 사회와 정치, 예술을 이해하는 토대로 영적 세계인 성경을 논하며 교회 덕분에 라틴어는 학문과 법 분야에서 전 유럽에 걸쳐 사용되는 언어”라고 서술하면서 라틴어 고전의 독서를 논하며 로마 문학과 문화의 상당량을 흡수한 고대 문헌의 자체라고 하고 있다. 라틴어의 유용성을 말하며 단순히 언어의 관점보다는 그 시대의 과학자들과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단순히 독서를 하는게 아니라 전체 세계를 다양한 면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라며 고전문학을 정의하고 있다. 고전을 통한 교감은 오늘날의 역사적 변화와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과거에 상황이 달랐으니 미래도 현재와 다를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힘과 변화를 일으키는 잠재력의 원동력을 제시하고 있다. 고전은 단순한 독서가 아닌 현재를 살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과거의 가르침을 주고 복잡한 문화, 사회 및 정치 세계에 중요한 교훈을 지금도 제공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전을 꼭 읽어야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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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큰 인기를 끌면서 고전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아졌다. 그러나 왜 고전을 읽으면 인문학적 인재가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없이 무작정 따라 읽는 고전 읽기가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아이비리그처럼 인문학 강좌가 많고, 독서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꾸준한 고전 읽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다 내린 결론은 시대와 문화에 상관없이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전이 시간에 상관없이 유효한 이유다. 당연히 고전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할 것이다. 『왜 지금 고전인가』라는 제목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고전을 읽는 방법이나 고전을 어떻게 읽으면 좋다는 식의 방법론을 담은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고전을 읽으려면 어떤 책을 읽으라던 가. 어떻게 읽으라는 식의 리딩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고전이 어떻게 고전이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낚시의 역사에 대해 알려준다로 할까. 독자들에게 고전의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다며 반문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오래된 책을 고전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고전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그 역사를 알아야 고전을 읽는 이유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과거, 고전은 그 시대의 문화와 정치를 아우르며 지식의 원천이 되었다. 정치사의 경우,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의미를 읽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받아들여지고, 사라지기까지의 과정은 그 자체가 생각의 거대한 발자취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고대의 의학은 현대에는 효용성이 없지만, 고대 의학을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과학과 의학, 철학, 정치, 역사에 대한 지식들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사라져도, 사고는 사라지지 않아 현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AI가 인간을 대채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고전을 통해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을 통해 무엇을 하려하는가!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아닌가. 고전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고전학자들의 역사를 아는 것또한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활동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읽어나가면, 고전이 왜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을 배우는 이유는 지식이 아닌, 인간을 역사를 알기위함이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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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단어는 두근거림과 두려움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누나와 형이 읽던 책장 안의 전래동화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결이 다른 무게감과 부담감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전과 필독서는 상당수가 겹치는데 그 때문에 '읽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읽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일이 많아진다. 뭐 그냥 읽고 넘기는 방법도 있으나 그런 경우 제대로 고전을 접하지 못한 것 같은 강박감에 든다. 이 책은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고자 싶은 나를 '어떻게 고전을 공부할 것인가'라는 문구가 잡았던 책이다. 솔직히 제목과 표지 디자인을 보자면 꽤나 두껍고 무거운 내용의 책이겠구나 싶었다. 뭐 전자는 틀렸고, 후자는 반 정도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180여 페이지의 책이었고, 판형도 페이퍼백 정도의 사이즈라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최적화됐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집에서였다. 지하철에서는 몇 페이지 넘기지 못했으니... 책은 총 4장으로 되어 있는데 내가 기대하던 고전 공부의 내용은 아니었다. 정말 학문으로서의 '고전학'에 대한 내용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문자가 읽기에 괜찮은 내용인지는 부족한 내 수준에서 보자면 좀 어렵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고전학을 제대로 준비하려는 이들의 마음가짐을 다잡기에는 좋은 내용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왜 제목을 이렇게 정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또, 부담스럽지 않게 입문자로 서양 고전의 안내를 받고자 했는데 그 부분도 아쉬움이 남는다. 서양 고전을 어떻게 읽을지 보다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어렵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다시금 '고전'에 대한 두려움과 두근거림이 떠오른다. 이 책은 그러한 감정들을 진정시키며 고전의 본질에 다가가게 해주는 책이라 전하며 리뷰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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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에게 고전은 지긋한 숙제였다. 도대체 읽어도 이해할 수 없고 숙제를 내고 독후감을 써오라는데 내 머릿속에는 이미 무료함에 활자만 지나칠 뿐이였다. 읽기의 기본인 해독을 지나 독해를 해 자기화 해야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요즘들어 고전이 눈에 들어오고 시간의 여유가 있을때 고전을 다시 손에 들었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이제야 고전을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었고 티비에서도 책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고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현재와의 연결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다시금 머릿속에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고전을 읽기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기초가 들어있다고 해서 기대감이 가득했다.
이 책은 '고전은 이렇게 읽어라'가 아니라 고전의 역사를 보여준다. 고전학자들의 발자취를 소개하며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 정치적 환경 등을 보여주고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삶을 보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나침반과 같은 지침서와 같다고 한다. 고전 또한 19세기 즈음에 철학자 헤겔은 고전의 오랜 가치를 상실했다며 새로운 교육체계를 고찰해야 한다며 고전은 인간의 심신을 개발하기 위한 것으로 신사들이 연구하기엔 적합하나 실용성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허위적인 고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교양있는 사람이여야 한다는 주장에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며 그때의 고전학자들이 고전을 이상화시키려 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의 해석이라고 했다. 과거 고대 사회의 복잡한 시대적 상황을 현재와 미래에 대응하며 시대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며 더 나아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이 바로 고전이다.
살아온 시간이 그만큼 쌓였기 때문일까? 고전은 자아를 성찰하고 현재를 직면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하룻밤만에 끝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는 미치지 못했다. 쉽게 읽혀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소 어려웠고 내용을 다 이해하기에 기초지식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쨋든 고전에 흥미를 느끼는 요즘, 계속해서 읽어간다면 고전의 이해가 예전보다 한층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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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읽고 있으며 로마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자와 맹자의 지혜를 가슴에 품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약하게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지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데, 현시대의 문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문명 생활을 한 그들의 이야기에 왜 우리는 주목하는 것일까? 고전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왜 지금도 고전을 읽어야 되는지 네빌 몰리는 주목했다. 글의 서두에는 고전이 마주하고 있는 최초의 문제에 대해 주목했고 그 중심에 고전학자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우리가 고전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과거를 어떠한 방법으로 연구했는지에 대해 나오며 책의 제목에서 품은 의문점을 책의 마지막 장에 서술하며 마무리한다. 책은 내가 생각했던 제목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제시하고 있었다. [왜 지금 고전인가]라는 제목으로 내용을 유추했을 때는 고전 소설이나 역사를 언급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덧붙여 고전을 읽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말해주는 책인 것 같았다. 하지만 본문으로 들어가서 읽어보면 책은 논문에 가깝다. 고전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데 역사적 배경을 제시하고 고전으로서 대접을 받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언급하며 서술한다. 단순히 [왜 지금 고전인가]에 대한 제목에 초점을 맞추어 구입하여 읽으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 같은 책임은 확실하다. 실망으로 책을 덮으려는 독자는 책을 덮지 말고 조금만 힘을 내어 4장을 읽어보길 바란다. 고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기록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재시 하는 방향성을 결정하는 지혜를 주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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