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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
제목이 내마음을 대변해 주었고 나를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
프롤로그..
'나는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다'
비혼의 여자교수라면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하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인생에서 기를 쓰고 지켜야 할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 결국, 세상은 내 의도나 계획에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사실..
마흔넘어 비로서 자기 탐색을 시작했다. 내 안의 목소리에 더 집중한다.
어른 같지않은 어른..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조카 억울한데 왠지 싫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가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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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상한 강의 강의에 자부심 있던 내게 충격적인 내용의 피드백을 받았다.
현실적이지 않고 뜬구름만 잡는 수업이었으며,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철학적 이야기. 작가나 영화감독이 주고 싶은 메세지를 자신의 생각으로 덮어씌워 더럽히는 수업이었고, 영화의 정확한 내용이나 상황 등은 무시하고 보이는 것과 교수의 생각으로만 설명하는 괴상한 강의다.
익명의 군중속에서 날아온 계란을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어떤 놈인지 글하나 참 '찰지게' 썼네. 선생다운 의연함을 지키려 했지만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피드백을 쓴 학생이 누구인지 더욱 굼금해졌다. 찾아내서 꼭 A+를 주고 싶었다. 그대는 진정 나의 스승이라고. 그대의 쓴소리가 질문이 되어, 나의 신념을 흔들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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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물이라고 말한다는게 봄나물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시인! ㅎ ㅎ" "복사물보다 봄나물이 좋아요"
실수를 해도 시인은 다르다며 이해해준다. 나는 그냥 모른 척 시치미를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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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사람의 마음..
골목식당을 보며 배운 다는 것,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놀라는 건 백종원의 태도다. 선생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정확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방법을 가르쳐 준다. 변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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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원래 어리석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 변하기 싫은거다. 하던 대로 하는게 가장 편한 거다. 인간은 그런 존재인 거다.
나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나조차도 변하기 싫어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변화시킨단 말인가?
내 눈앞에서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가르침때문에 그의 삶이 변할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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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봐서 아는 것들
어딘가 조금씩 고장 난 물건들이 쌓여간다. 나랑 별 상관없는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잠깐 안타까워하면 된다.
떠난 것만 한 리셋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살지 않아도 큰 탈은 안단다.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면 된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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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개연성도 일관성도 없는 장르.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대학 기숙사에서 혼자 조용히 지내고 있다.
이 삶이 또다시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누구 보라고 상영되는 영화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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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퇴근길.
한해의 마지막 날이다. 교정도 텅 비었다. 겨울 냄새가 난다. 도로에 다다를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노란 가로등만 차가운 어둠을 녹이고 있다.
적적함도 설렘도 없이 한살 한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내가 싫지 않다. 나는 이렇게 조용히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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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다, 일단 해본다'의 공식
간절히 원하면 기회가 생긴다는 사실. 첫번째 그림책을 출간했다. 오롯이 내손으로 했다. 머리속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이야기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마흔은 탐색하기 좋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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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택배 상자. 중년을 미리 살아본 여자가 한창 중년을 살고 있는 여자에게 보내는 구호 물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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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옆 대나무숲.
마흔이 넘은 나이쯤 되면 '그저 여행'이란 없다. 저마다 고민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나를 만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부산에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숲'인 것이다. 바람과 바다라니 부산의 바람속에 풀어놓지 않을 수 없다.
다정한 문자를 남기고 돌아가서 뜸해지는 친구에게 서운할 게 없다.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 것이 군자의 기쁨이라했다.
땅위에 우주를 만든다. 여전히 살아 있을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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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내가 준 선물 중 가장 소중한 것은 오래 보는 눈이다.
순간만을 포착한 눈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오래, 자주, 바라보다 보면 흐름을 이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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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무는 곳이 모두 내방이라는 것을, 내가 돌아가는 곳이 내집이란 걸 알았다.
나는 집을 떠나 집을 찾은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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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의 자기 탐색 에세이.
친구의 일기장을 본 기분이 들었다. 이젠 내가 이 일기장의 답장을 써야할 그런 때인 것 같다..
... 소/라/향/기 ...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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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책을 좋아한다. 거기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공감되고, 배울 점이 있으면 더욱 좋다. 이 책은 그 이상이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웅크린 내 마음을 쓰다듬고 안아줬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읽고 보는 성격이라, 이 책도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서평단을 신청했다. 제목부터 작가님이 "내 인생 이야기를 들어봐."라고 속삭이는 느낌이었고, 미리보기로 몇 페이지 넘겨보니 글을 진솔하게 적어 내려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받고 표지에 또 반했다! 표지 그림은 그림이라기 보다 물감 색깔을 조화롭게 묻힌 것 같았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표지가 에세이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그림이 이국적이어서 그런지, 작가가 한국인 교수임을 분명 알고 있었는데 표지 윗부분에 '비혼 교수'라는 글자를 '비흔 교수'라고 읽고 자꾸만 "아 이거 외국 교수가 쓴 거 였어?"라는 이상한 착각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에세이 내용이 감각적이고, 시적이고, 감동적이다. 시집 두 권을 낸 시인이기도 한 작가님이어서 그런지 감정들을 마치 작은 조약돌 펼쳐놓듯이 섬세하게 표현했다. 담담히 읊조리는 독백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 영화로 보는 것 같았다. 피식 웃음 짓게 되는 부분도 있고 마음이 짠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따로 노트에 옮겨 적는 편인데, 이 책은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노트에 옮겨 적으면 글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두 부분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포스트잇 까지 붙였다.
이 문단을 보고 떠오르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나를 지켜주지만, 고립시키는 감정이다.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고 감정도 어렴풋이 알것 같았다. 혼자 있을 때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이 있다면, 혼자 있을 때 한번 씩 맛보는 쓴맛도 있는 것 같다. 가족과 사이가 엇나갔을 때는 혼자 방에 있는게 편하고 좋았다. 하지만 가끔씩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서럽고 괴로워서 눈물이 나기도 했다. 부산 여행중에 창문에 비치는 밤 바다를 보며 거실을 빙글빙글 돌며 나에게 묻고 답했던 적이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묻고 답하다 보면 땅을 파헤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처럼 내 솔직한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멀리 밀어두었던, 안 보이게 파묻었던 마음을 마주하면 눈물이 먼저 나온다.
달밤에 일렁이는 물결처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유히 걸어다녔을 작가님이 상상됐다. 나도 밤 산책을 즐긴다. 어둠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거리에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이 어둠을 타고 떠다니는 기분이다. 쉭쉭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타는 냄새 나는 식당을 지나며, 다들 바쁜 밤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저 사람도 인생의 주인공이겠지, 알고 보면 모두 혼자 아닐까, 라는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하며 오묘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서성이듯 걸어다닌다. 그리고 이 두 부분 말고도 밑줄 친 여러 문장들이 가슴에 남았다.
나는 가끔 내 삶이 평범해서 지루하고 기대할 만 한게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기쁘다고 웃으며 좋아다가도 상처받으면 우울해하고, 미래도 그런 순간의 반복일 게 뻔해서, 살아갈 의지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굳이? 사는 게 무슨 의미지?'라는, 정답도 없는 물음을 던지며 밀려오는 공허함에 답답해했다. 나는 답이 궁금했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세한탄을 핑계로 평범한 일상을 가능하게 해준 부모님을 탓하진 않았는지 돌아봤다. '모두의 삶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특수하다.'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내 삶도 특수한 삶인데, 그동안 내 삶을 백화점에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품처럼 여기며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혼란스러워 하며 의미를 찾는 과정'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말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나는 인생에도 시험의 정답처럼 '정답'다운 인생이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늘 긍적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의 단계를 차근 차근 성곡적으로 밟아나가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러지 못하는 나를 비관했다. 그런 생각을 차츰 극복하고 나니, 인생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고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열심히 망망대해를 헤엄쳐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부정과 파괴의 경험을 피하지 말고 배움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잘 견뎌야 겠다'고 다짐했다. 공부하다가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 할 때, 이 문장이 떠올라서 문득 안심이 될 것 같다.
역설적인 문장이다. 사람마다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르면, 그게 과연 '기본'인가? '당연'한 일 따위는 없다면, '당연'이란 말은 언제 써야 하는 건가? 싸울 때 '당연'과 '기본'처럼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없다. 각자가 생각하는 '당연'과 '기본'의 차이로 생각의 마찰이 일어난다. 모두가 상상하는 '기본'과 '당연'이 다르다는 사실을 끄덕이며 받아들이면 화낼 일도 없을까?
공감되는 부분이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은 뇌리에 박혀서 어떻게든 시간을 값지게 써야 될 것 같은데 마음은 그 반대로 흘러간다. 드라마 몇 편을 보다 보면 몇 시간은 훌쩍 간다. 그 시간이 분명 좋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하루를 버린 것 같고 죄책감이 든다.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나를 발전시키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자책을 하다 보면 차라리 공부를 하는게 나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대학 교수님도 그런 감정을 겪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한편으론 위로가 됐다!!ㅋㅋ
작가님은 10개월동안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부지런히 지내면 오히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어쩔 줄 모르게 되니 뭐든 느리게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을 보냈다. 그런 날들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여행을 하며 마음의 공간을 넓히신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은 의지로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자신에게 드는 회초리를 내려 놓는 연습, 조급함을 내려 놓고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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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나기 전〉 마흔을 넘어선 나에게 저자는 어떻게 용감해졌는지, 무엇에 용감함을 보여야 했는지 궁금했었다. 무엇보다 비혼이라고 하니 굳은 결심과 의지를 가지고 비혼을 결심한 계기가 있지 않았나를 찾고 싶었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은 더 좋아보이고 미화되기 마련이다.
조카의 어른같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 저자는, 어른같아 보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자신다운 것에 더 집중하자는 의미였던 듯 싶다. 영화 토이스토리에서 버즈가 비행사라고 생각하여 실제로 하늘을 날고자 한다. 그런데 자신이 장난감임을 깨닫고 좌절하였지만 그 장난감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자신의 역할과 의무를 다할 수 있었다. 저자는 현실과 이상 속의 괴리를 정체성 확립으로 지금의 현실로 끌어들인다.
또한 저자의 이야기 중에서 와 닿았던 다른 부분은 '기본'에 관한 이야기이다. 능력자일 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잣대가 너무 높은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엄마와 자신의 관계 속에서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람마다 그 기본이 다를 수 있고 이해하지 않으면 함께 갈 수 없고 때로는 상대에 대한 내려놓음이 우리를 훨씬 풍성하게 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2부 기숙사 생활자 연구년을 맞이하여 해외에서 보내는 동안 한국에서 자신의 거처를 처분(?)해버린 그녀의 결정에 간단하지만 또 간단하지 않은 그 결정이 아마도 내게는 가장 용감한 마흔으로 가는 길처럼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안정과 편안함을 위해 더욱 정착하려고 하며 그 정착을 도모하는 것들에게 집중하기 마련인데, 그녀는 떠났고 또 돌아올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그것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기숙사 생활을 하지만 연구실과 기숙사에서 물질적 안정, 안락함보다는 위안과 위로를 받는 듯 했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그건 용감함이었다. 3부 자기 탐색하기 좋은 나이 그녀에게서 비련의 여주인공 러브스토리를 기대한다면 그런 것은 없다. 그렇다고 어벤져스의 여주인공들처럼 풀에너지를 가지고 전투적으로 지내는 모습은 없다. 누구나 즐기고자 하는 여유를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집착이나 미련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데 우리는 여유보다는 경제를 안정을 더 찾으면서 여유가 없음을 토로한다.
그렇다고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가에 대한 자부심 부분을 살펴보면, 3000원짜리 색깔펜을 여러가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유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 우리네와 다를바 없다. 4부 지도에 없는 길 걷기 지도를 보고 여행하다 보면 길을 잃게 되고 다시 그 길을 찾는데 수 많은 문명 기계의 힘을 빌어 목적지에 다다르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그 문명 기계에 집중하는 동안, 잃어버린 길 - 지도에 없던 그 길이 어쩌면 운명이 우리를 데려다 준 또다른 좋은 길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도에 없는 길을 걷게 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저자의 많은 이야기는 화려하거나 특정인들만이 즐기거나 학구적이나 교훈적이기보다는 우리의 진솔한 이야기, 마흔이 아니어도 자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 나이 어느 즈음에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읽으면서 누구나 가는 길이고, 혹은 갈 수 있는 길을 못 가 본 것에 대해 독려해 주는 길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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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기숙사 사는 이야기를 글로 써보라"는 제안 받기 어렵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말을 빌자면, 혼자 사는 게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이자 대세인 요즘은 더욱 더. 그런데 윤지영은 그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책을 썼다. 책 제목에 왜 작가가 그런 제안을 받았는지의 단서가 종합 세트로 담겨 있다. [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 간다: 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의 자기 탐색 에세이] "비혼, 사십 대 중반, 여성." 여기까지는 도시 1인 가족에서 쉽게 찾을 공통분모이다. 이제 독특한 요소가 가미된다. "부산 동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단 시인, 무주택자, 대학기숙사 거주자" 솔직히 나부터도 그 독특한 조합에 끌려서 이 책을 찾았다. 영구 주소지를 대학 기숙사로 삼으며 몇 년씩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콕 집어 "40," "마흔"이 뭐길래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고 제목지었을까? 궁금해서 읽었고 책 읽으며 궁금함은 거의 해소되었다. 우선 그녀는 국문학과 교수였던 아버지, 시인이자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와 등단시인이자 고전산문 박사인 여동생을 둔 문학가족 출신이다.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장기 플랜을 세웠던 아버지의 진두지휘에 따라 서강대 국문학과에 들어갔고, 아버지의 관리하에 강의시간표를 짜고 교수들에게 제출하기 전에 과제를 점검받았다. 아버지의 그랜드 플랜처럼 40전에 국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30후반에 인생의 사랑을 만났다. 하지만, 비극적 죽음으로 연인을 떠내 보냈다. 비혼을 결심했고,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33평 아파트가 있었지만, 거추장 스러웠다. 안식년마다 외국에서 멋진 방랑생활을 하기 위해 과감히 집과 가구를 처분했다. 빨래는 이용자 적은 시간에 공용세탁실에서 돌리고, 기숙사 통금 시간이 지나면 연구소에서 침낭 깔고 잠을 잔다. 이 정도만 늘어놓아도, 저자 윤지영이 어떤 이유에서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이다. 우선 외롭기 때문에 가급적 기숙사에 머무르지 않고 대신 연구소에 나와 있다. 부산 동의대학교 교정의 나무와 풀들을 자택 앞뜰의 수목처럼 상상하며 감상한다. 교정을 산책하다가 까마귀를 만나면, "까악 까악"하고 놀래켜주기도 한다. 학자니까 논문 써야지하면서도 Netflix에 필 꽂히면 정주행 시청한다. 시간을 환산해보니 12달 중 1달을 꼬박 본 셈이라 한다. 그래도 강의평가 좋은 교수이며, 까마귀랑 서로 "까악까악" 교감한 이야기를 강의 소재로 끌어낼 만큼 일상을 학문하는 삶과 연결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세번 째 질문은 책을 읽고도 풀리지 않는다. 1) 본문에서 윤지영 교수는 모르는 사람이 봐서는 꽤 자학적 조크를 한다. 왜 했을까? 무척 궁금하다. 그리고 실은 나도 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4차원 안드로메이다" "괴짜스러움과 소탈한 매력" 이런 생각을 했는데 본인도 알고 있나보다. 이렇게 자평한다. 얼마 전 SNS에서 나 같은 부류의 사람에 관해 쓴 글을 보았다. 우주가 자기를 중심을 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글은 이들이 얼마나 피곤한 족속인지 조목조목 분석하고 나서 그런 사람에 대처하는 법을 제시했다...(중략)...맞는 말이다. 나도 이런 내가 싫다. 그런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 고쳐지기는커녕 나이가 들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223쪽) 질문 하나, 윤지영 교수는 자신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가? 게다가 왜 이렇게 독자에게 친절하게 솔직한가? 질문 둘, 동의대학교에서 우수강의상도 받았을만큼 강평 좋은 인가 교수인데 왜 단 한 명의 비판에 그토록 집착할까? 오죽했으면 책을 내며, 자신을 비판한 학생의 평가를 토씨하나 안 빼고 그대로 옮겨 소개하는 노력까지 하면서. 왜 그랬을까? 등단시인이라면, 강단에 서 온 교수라면 어느 정도의 비판에는 무뎌지는 자기 훈련을 거치지 않았을까? 다음에 인용한 문단은 윤지영 교수의 강의에 대한 익명의 학생 평가 현실적이지 않고 뜬구름만 잡는 수업이었으며,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철학적 이야기, 작가나 영화감독이 주고 싶은 메시지를 자신의 생각으로 덮어씌워 더렵히는 수업이었고 영화의 정확한 내용이나 상황등은 무시하고 보이는 것과 교수의 생각으로만 설명하는 괴상한 강의이다. (31쪽) 나는 왜 윤지영 교수가 처음엔 이 익명의 학생을 괘씸해하며 색출하고 싶어하다가, 마지막에는 "찾아내서 꼭 A+를 주고 싶었다"고 굳이 자신의 에세이에서 밝히는지 굉장의 궁금했다. '너는 나를 욕했지만 나는 너에게 "A+"을 주고 싶어.' 이 말을 정말 왜 한 걸까? 결국 최종적으로 널 평가할 사람은 나라는 권력관계의 우위성을 보여주는데도? 다음 번엔 책 말고, 그녀가 열연하는 연극무대에서 그녀를 직접 보고 싶다. 섬세해서 상대를 피곤하게 할 수 있으나 사람을 끄는 매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활자 밖의 그녀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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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기숙사에서 사는 여교수의 이야기라 했을 때 비슷한 나이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의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늦었지만 그냥저냥 남들처럼 비슷한 길을 가는 나와는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은 어떨까? 내가 많이 포기했던 그런것들을 지금까지 했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현재의 모습은 다를 수도 비슷할 수도 있지만 방황하던 방법은 나와도 참 많이 닮았다. 내가 방황하던 시절 들었던 오아시스, 스매싱 펌킨스, 라디오헤드를 그녀도 걸으며 들었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에 갔던 인도여행 그녀가 많은 생각들을 했던 시절에 나도 비슷하게 지냈었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하고 그냥 버티며 걸었던 길과 지나쳤던 동네의 냄새까지도 떠오른다. 대학교때 친구처럼 그녀도 지금처럼 자신의 길을 가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말이다.
나는 마흔 넘어 비로소 자기 탐색을 시작했다. 남들 하는 대로 성실히 쌓아 오린 것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은 조금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조금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버릴 것은 버리고 놓친 것들은 뒤늦게 살피며 나는 내 안의 목소리에 더 집중한다. P.9
세상에는 어떤 이유나 원인 없이 그저 다른 것들이 존재하니까. 그리고 나는 그러한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가 안 될 때 ‘도대체 이해가 안돼’라고 투덜거리는 건 자유지만 다른 건 그냥 다른 거다. 그런 문제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P.41
마흔 이후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지나온 시간을, 그리고 과거의 나를 조금씩 잊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견딘다는 의식도 없이, 견뎌야 한다는 다짐도 없이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삶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이제는 알겠다. P.103
지도에 표시된 곳에 다녀오는 것이 여행의 목적은 아니다. 대신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멋진 곳을 많이 만났다. 지도에 없으니 다시 그곳을 찾아갈 수 없다는게 문제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곳들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테고, 어차피 세상에는 지도에 표시된 곳보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곳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도에 있건 없건, 그곳이 어디건, 처음 가는 길은 늘 새롭고 때때로 어리둥절하다. P.270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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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작가는 이 책에서 마흔의 시기를 통과하며 경험한 서툴고 불안하지만 뜨거웠던 자기 탐색의 과정과 기숙사와 학교를 오가며 보내는 담담한 일상을 솔직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자신이 그 시간을 보내며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용감해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오직 자기 안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온전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봤기 때문이리라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실연과 방황 20대에나 할 법한 배낭여행에 가까운 1년간의 세계여행 서툴지만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고 기꺼이 실패하는 과정들 시인의 정체성과 가르치는 일에 대한 고민 매일 기숙사 작은 방에서 혼자 잠들고 혼자 깨는 조금 쓸쓸하지만 홀가분한 일상까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담한 기숙사 방이 떠오르고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마흔의 단단한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쓸슬해 보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살아보고픈 충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윤지영 작가는 30대까지만 해도 세상이 정해둔 규칙을 따라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마흔이면 여자 인생 끝이라는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30대 후반 뒤늦게 그 길을 벗어나 샛길을 헤매는 자신의 인생에 빗대어 인생은 개연성도 일관성도 없는 장르 불명의 장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생이 꽤 괜찮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란 듯이 자신의 터무니없고 황당하고 부끄러운 실수와 실패들을 솔직하다 못해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그는 조카에게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라는 핀잔을 듣고 학생에게 괴상한 강의라는 평가를 받고 간단한 거절을 하지 못해서 보지도 않은 땅까지 덜컥 계약한다 그리고 아주 잠깐 괴로워하지만 곧 정신승리로 극복하고 그 부끄러운 일들이야말로 자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어른 같지 않은 어른에서는 시인이자 대학교수로서 맞닥뜨리는 고민과 질문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대학의 구조조정과 인문학의 위기를 고민하고 요즘 학생들을 이해하려는 교수의 눈물겨운 노력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2부 기숙사 생활자에서는 기숙사에 살게 된 과정과 일상 비혼자라면 누구나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주거와 노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3부 마흔 자기 탐색하기 좋은 나이 4부 지도에 없는 길 걷기에서는 마흔 요즘 뒤늦게 시작한 자기 탐색의 과정과 경험 감상을 때론 뜨겁고 때론 담담하게 그려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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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보다 흥미로운 것은, 제목 위 부제이다. '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의 자기 탐색 에세이' 단어마다 호기심이 차오른다. 그래서 <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라는 상당히 흔해진 '나이 에세이'의 심드렁함을 확실하게 상쇄하며 독자의 손길을 재촉한다. 나도 그 마케팅에 고스란히 넘어간 독자 1인으로,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비혼이나 교수는 딱히 놀랍거나 궁금하진 않았으나) 마흔이 되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을까? 자기 탐색 에세이라는데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노력과 성공기이려나? 같은 궁금증을 안고 책을 펼쳤다. <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의 저자 윤지영 교수의 프로필은 대단했다.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대학교 3학년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당선했고, 서른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기부터 넘사벽의 기운이 물씬....) 5년간의 시간강사 생활 끝에 부산의 한 사립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40대 초반에 집을 통째로 정리하고, 1년여 동안 모로코, 터키,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았다. 대학 기숙사(게스트룸)에서 혼자 생활한 지는 2년 전 부터이고 마흔 즈음에 자기 탐색의 재미에 빠져, (책에 나온 정보로 추측컨대) 마흔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집안도 좋다. 한국 문학계 종합세트를 달성하는 문학계의 로열 패밀리를 꿈꾸는 교수 아버지의 꿈이 그녀와 그녀의 동생이 박사학위를 받고, 그리고 제부가 교수가 됨으로써 현대소설 전공자의 슬롯만 채우면 얼추 이루어지겠지만 여기서 윤지영 교수의 발랄함과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ㅎ 아버지의 영향으로 문학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길이 진짜 자신이 원하던 것인지 뒤늦게 생각해보고, 어린 나이에 등단했을 때의 스스로를 돌아보며 부끄러워 이불킥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누군가, 무엇인가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꿈과 진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과 '비혼'으로 마음이 굳어져가는 자신 때문에 아버지의 꿈은 미완성으로 남을 것 같다는 '역시 사람은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나 보다.'라는 가벼운 문장의 마침표가 독자와 저자와의 간격이나 벽을 없애버린다.
현대를 함께 살아가는, 나이는 어른이지만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공감하였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을 줄 알았고 그렇게 살아왔지만 세상 일이라는 허망한 것이 예상치 못한 큰 파도에 덮쳐져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그래서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이해하기 싫었던 것들, 지레짐작 했었던 것들과 내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잔함과 '그럴 수 있지' 하는 포용이 늘어간다. 그 포용과 애잔해 하는 마음씀이 결국 스스로에게까지 닿게 되어 더이상 나를 들볶지 않고 있는 존재 자체로 수용하게 되면서도, 난 도전과 모험, 호기심과 무모함, 창의성을 모두 버리고 안주하게 되버리고 만걸까? 하며 쉴새없이 흔들리는 자기의 모습이 탐탁치 않음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저자는 대학 기숙사에 산다. 청춘의 푸르름과 성인이 된 해방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자부심과 기대감에 충만한 대학생들을 (특히 신입생들이라면 더더욱) 만나고 가르치고, 기숙사의 삶을 공유하며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의 부러움, 회한이라는 말이나 인생 선배라는 말 보다는 앞선 경험으로 얻게 된 지혜(?)나 어차피 말 해봐야 스스로 경험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내려놓음, '내가 해봐서 알지만 ^^', 이리저리 비틀대도 인생에 큰 탈은 안 난다는 해탈의 이야기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달복달 못하고 있거나, 나이 숫자에 맞지 않는 어수룩함을 기꺼이 보인다. 분명 이 책을 읽을 수도 있는 자기 학생을 다음 날 마주쳐야 하는 교수님이. ^^
그래서, 작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것까지 쓴다고? 할 정도의 내밀한 이야기부터, 솔직담백한 감정, 부족한 모습까지. 숨김이나 꾸밈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깊어짐의 시기에 자기 탐색을 시작했음이 다행이라는 고백과 탐색이 시작된 것이지 달관은 멀었다는, 그렇지만 상관없이 계속 해볼거라는 태도에 책으로 처음 만난 사람임에도 왠지 여러 해 알고 지내, 분기마다 카페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단어를 영민하게 다루고, 일상의 사소함에 감성이 폭발하기도 하지만, 생활인의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유쾌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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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만 봐도 벌써 IMF 시대에 직장을 잃은 분들이 부지기수니까요. 그래서 굴삭기운전기능사와 같은 전문 자격증이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올 상반기에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30여년이 훌쩍 넘게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나니, 많이 허전하고 울적한 기분이 드시나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새 활력을 선물해 드리고자 이 책을 준비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반드시 굴삭기운전기능사를 따셔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소일 삼아 공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제2의 인생을 발견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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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시대라고들 말합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만 봐도 벌써 IMF 시대에 직장을 잃은 분들이 부지기수니까요. 그래서 굴삭기운전기능사와 같은 전문 자격증이 인기를 끄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올 상반기에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30여년이 훌쩍 넘게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나니, 많이 허전하고 울적한 기분이 드시나 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새 활력을 선물해 드리고자 이 책을 준비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반드시 굴삭기운전기능사를 따셔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소일 삼아 공부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가 제2의 인생을 발견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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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용감한 마흔이 되어간다. 최근에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자기 탐색 에세이.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기숙사에 사는 비혼 교수’ 라는 부제목이 신기했다. 교수님이 학생들과 같이 기숙사에 산다고? 엄청 불편 할텐데..뭔 일이 있었던거지? 라는 호기심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5년여동안 흔히 보따리 장수..라고 하는 시간 강사를 지내고 부산의 사립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중이다. 마흔을 넘긴 미혼의 여자 교수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세련되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독립적이며, 자기애가 강하다…라는 게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또 다시 편견의 늪에 빠진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만나보지 못했고 알지 못하니 일단 편견을 바닥에 깔아둔다고 하더라도 근데 왜 기숙사에서 살고 있지? 라는 의문을 털어내지 못했다.
구겨넣고 1년간 해외를 다니며 세상을 구경하며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매 순간 희열과 실패의 두 추가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함을 느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그렇게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얽매인 것이 없기 때문이겠지.다시 되돌아온 작가는 대학의 게스트 룸에서 미니멀라이프를 몸소 실천하며 그녀는 기숙사의 작은 방에서 무릎 담요를 덮고 덧버신을 신은 채 붉은 새벽 하늘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기숙사 앞 마당엔 온갖 꽃나무들이 있어서 봄이면 꽃들의 향연을 매일 즐길 수 있다. 조용히 글을 쓰거니 일을 해야 할 때는 학교 연구실로 가면 된다.
젊음이 쏟아지는 대학 교정에서 자고 일어나고 일하며 생활하는 작가의 삶이 어느 한군데 모자라거나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구속 없이 조금 쓸쓸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녀의 처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선택으로 우리네 삶을 짓는다.비혼 주의의 삶도, 돌아올 집도 남겨두지 않고 훌쩍 외국으로 떠났던 일도, 대학 기숙사에서 글을 쓰며지내는 것도..작가의 삶이 나와 닮지 않았다고 해서 부러워하거나 다르다고해서 수근수근 할 수 없다. 각자 원하는 모양새로 자신의 삶을 이끌고 가면 되는 것이니까..이 책에는 그녀의 지나온 삶들이 기록되어져 있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가슴 아픈 이별, 내 피붙이 가족들의 이야기, 조금은 어수룩한 그녀의 일상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었다. 꺼내놓기 어려워 꽁꽁 묶어서 가슴 속에 숨겨두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을텐데, 조용조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모든 걸 필터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 보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작가라는 명찰을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내 일 같아서 더 애처로웠던 작가의 삶을 응원하며 쉽고 멋지게 글을 써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길 권한다.
내가 읽은 수 많은 책 중에 이렇게 맛깔스럽고 입에 착착 감기는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는 드물었다. 한줄 한줄 새겨가며 읽다보면 그녀의 직업이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였구나 라는 것이 문득 떠오를 정도다. 자기 과시나 자기 비하에 빠진 흔해빠진 에세이와 다른 발랄하고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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