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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족'은 고 박경리 작가님이 1967년 중앙일보에 3개월간 연재했던 동명 제목의 연재소설을 다시금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책이다. 당시의 신문 연재소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이 소설 역시도 유행했던 통속성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뱁새족'의 통속성은 여타의 다른 통속 소설들과 분명히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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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 박경리 작가님의 통속성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통속성과는 다르다. 다른 작가들의 통속성은 이를테면 어떤 인력이 작용한다. 그러니까 지금 서 있는 일상에 그대로 머무르게 붙드는 인력이 말이다. 이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실존이란 어디까지나 자유롭고 싶어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체적으로 꾸려가길 원한다. 그 누구도 콧두레에 코가 꾀인 소마냥 끌려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늘 반복되고 변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우리들은 늘 무기력하기만 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상의 궤도는 늘 정해진 대로 돌기만 하니 콘테이너 벨트 위에 놓여진 물건처럼 마냥 끌려다니고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자신의 일상을 훌쩍 떠나게 되기를 꿈꾼다. 본격적인 분업화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더욱 대체가능한 부품화가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여행이 중요한 상품으로 떠오르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 여행이 유일하게 일상으로 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짧은 기간이나마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알고보면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가공된 세계이지만 그것과 함께함으로써 일상의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으니까. 어쩌면 정말 사람들은 그저 재미가 아니라 조금이나마 일상으로 부터 자유로움을 맛보기 위해 소설을 읽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타의 통속성은 문제가 있다. 일상을 벗어나 뭔가 좀 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고 싶은 영혼들을 다시금 기다란 밧줄로 끌어당겨 그런 꿈 따윈 아무런 쓸모가 없어라고 말하듯 비루한 일상에다 여지없이 묶어놓고 있으니까. 통속소설은 바로 우리의 일상과 닮은 이야기라서 다른 소설보다 더욱 편하게 읽히지만 질낮은 통속소설들은 그 편안함에 취하도록 만들어 아예 도약하려는 동기조차 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통속소설은 그야말로 마약과 같다. 그처럼 빈약한 현실 도피 말고는 아무것도 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반면 고 박경리 작가님의 통속성은 오히려 우리 삶과 아주 많이 닮아있는 통속성을 통해 더욱 내가 처한 삶의 부조리를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여기서의 통속성은 인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있는 것은 모처럼 일상을 벗어나 보다 진정된 삶의 가치를 희구하는 영혼들을 더욱 멀리 보내버리는 원심력 뿐이다. 그 원심력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건 세상이 감추고 있는 온갖 부조리한 면모들을 여과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아주 통속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바로 우리네 현실 삶과 빼다 박은 이야기라서 진실처럼 여기게 한다. 즉 고 박경리 작가님의 '통속성'은 한 마디로 사회의 속내를 감추고 있는 가면을 낱낱이 벗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소설에 흐르는 풍자는 그 가면을 벗김에 따르는 통쾌함의 웃음이고 슬쩍 드리워지는 비애는 감춰진 진실된 얼굴을 확인함에서 오는 씁쓸함이다.
그러므로 고 박경리 작가님의 통속성은 다른 통속 소설처럼 편안하지 않다. 거꾸로 그것은 날카롭다. 사회가 모른척하고 뒤집어 쓴 가면을 벗겨낼 비판의 칼날을 등에다 감추고 있는 통속이니 그렇다. 참으로 맵고 짜다. 그 맵고 짠 통속의 칼날로 부터 달아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사회의 가장 높은 꼭대기 부터 가장 낮은 바닥까지 고 박경리 작가님의 통속성은 천라지망처럼 모두를 잡아들인다.
그리고 보라한다. 우리들의 참 모습을. 쓸데없이 남의 눈을 의식하며 오로지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허위와 기만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 가치를 부풀러 왔음을... 그렇게 우리 모두 과장과 허세의 매트릭스에 갇혀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채, 거짓에 도취되고 거짓을 가지고 곧 허물어 질 모래성만 쌓아가는 허깨비, 환영에 불과한 황새 걸음을 주제도 모르고 따라하려다 자신의 가랑지가 찢어진 것도 모르는 뱁새족임을...
고 박경리님의 '뱁새족'은 바로 그러한 우리들 자신의 용렬한 모습을 통렬하게 보여주는 진정한 의미의 통속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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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뱁새족>은 일제시대 통영 땅이 배경인 <김약국의 딸들>보다 어째 더 읽기 쉽지않았다. 시간적 배경으로 본다면야 <김약국의 딸들>이 훨씬 이전이지만, 1960년대의 용어나 시대상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보았다. 1960년대라면 50년 전쯤으로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건만 너무도 낯설어서 한 문장을 읽는데도 두세번을 반복해야 했다. 음미하고 느끼며 되새길 시간이 없을만큼 빠르게 우리나라의 사회 상황과 경제 상황이 달라진 탓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외국문학을 더 많이 접한 탓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이것은 내 개인적 취향 탓일까, 출판계의 경향 탓일까? 거창하게 출판계 상황까지는 잘은 모르니 소견 좁은 내 취향 탓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소위 지식층과 상류층으로 불리는 계층의 허위허식을 비판한 이 책은 고급 주택가에 어울리지 않는 분뇨 냄새로 시작된다. 등장인물을 보자면 상류층으로 분류되는 그들은 대체로 모두 한결같이 웃고있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주인공인 유학파 병삼은 이렇게 표현한다.
모두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슬픔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얼굴을 주워 모아 웃기고 있는 만화의 한 컷 같았다. '단순하고 배짱 좋고 만사를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약고 재빠르며 능청스런 그네들... '(중략) 소심하고 복잡하며, 뽐내고 등쳐먹고 굽실거리는, 그래도 슬프니 말이다. 광대이기 때문에 슬픈거다. 광대는 자고로 남자였었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노리개가 되고 남자는 병신에다 못나야만 노리갯감이 된다. 슬프고 비참하지 않고서 어찌 남을 웃기겠는가. (62쪽)
이러한 시각으로 당대의 지식인과 상류층을 바라보는 병삼은 우스꽝스러운 그들의 모습에서 그 자신 역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밉살스런 소리를 잘도 하는 병삼이 마냥 밉기만 하지 않다. 그러나 욕망이 나쁜 것,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하류로 머물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상류로 모여들기 마련이 아닐까? 모두가 한결같이 욕망을 쫓는 이 실타래에서 누가 진정 황새이고, 누가 황새를 쫓는 뱁새인지의 구분은 필요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본시 인간사회에 타고난 황새란 누구이며, 황새가 되고자 하는 뱁새는 누구인지 말이다. 인간은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인데 굳이 상류, 하류의 구분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정작 본인은 선택한 적도, 선택할 수도 없는 '태생'만으로 그런 구분이 가능하지 않다면, 욕망을 쫓아 신분 상승을 꾀하는 일이 어째서 잘못인지 하는 황당한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황새가 되고 싶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더 안쓰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본질적으로 '부'로 계층을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황당하고 우스운 것이다. 한마디로 이래저래 똥 폼 잡는 인간이 우스운 것이다.
일본 왕의 징표인 검, 곡옥(?), 거울을 '삼종신기'라 한다는데, 작가는 1960대 상류층의 삼종신기로 '텔레비전, 냉장고, 피아노'를 꼽았다. 2013년 오늘날 상류층의 삼종신기는 무엇일까. 한정판 외제차, 표나지 않는 명품백 뭐 그런것으로 상류층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놀라울만큼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고 그 결과로 텔레비전, 냉장고, 피아노 따위야 얼마든지 넘쳐나는 요즘에도 여전히 물질적인 것들로 상류를 나누는 시대이긴 하다.
병삼은 지적 충만함을 일등시민의 조건으로 보고있는데, 나 역시 병삼과 같은 부류로 물질적인 것으로 신분상승을 꾀하는 그들을 모멸과 질시를 담은 눈으로 보지만, 병삼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럴때 나역시 슬픔을 느낀다. 산다는 건 모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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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발표되었던 박경리의 작품 뱁새족. 학창시절엔 일부러 시간내어 1960년대~80년대 발표된 소설을 찾아서 읽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요즘 소설이 아닌 1960년대 발표된 소설을 읽는 것 같네요. 지난 주말 통영에 있는 박경리 기념관에 다녀온지라 뱁새족이 더더욱 새롭게 다가오네요. 기념관에서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던 박경리 선생님의 젊은 시절 모습과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아 몰랐었던 그 분의 작품까지 알뜰하게 구경을 잘 하고 온지라 더더욱...ㅎㅎ
토지가 워낙 유명한지라 흔히 박경리~하면 다들 대표작인 토지를 제일 먼저 떠올리지요?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가 주목받기 전에는 의외로 연애소설을 많이 썼었답니다. 하지만 뱁새족은 그 무렵에 쓴 많은 연애소설과는 달리 1960년대 지식인과 상류계층의 허위의식을 비판한 소설로 당대 상류층의 허세와 외국의 문물을 추종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주목받는 작품이지요. 옛말에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지요? 소설 뱁새족은 딱 그 속담에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요즘으로 치면 몇 년 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되어 많이 회자되는 신조어인 된장녀,된장남과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는 것 같구요. 소설은 불란서 유학을 다녀온 화가이며, 미술평론가인 주인공 유병삼의 시각으로 펼쳐집니다. 미술에 재능은 없으나 오로지 동생을 대학교수로 만들기 위한 누나의 조력으로 유학까지 다녀오게 된 유병삼과 그의 누이 유신애, M대학 교무처장 홍재철, 대재벌을 꿈꾸는 박영수, 연기, 용모도 신통치 않은 여배우 강순미, 양두연, 최대식 등 상류층이 되기 위하여 처절하게 사투를 펼치는 그들의 삶의 허세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유신애가 세금을 회피하려고 다이아몬드를 삼킨 사건은 방법은 좀 달라도 요즘도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 중 일부가 행하는 행동이 아닌지...
소설의 배경이 된 1960년대나 지금이나 시대는 바뀌었지만 외국문물에 열광하는 모습은 별다방 커피와 명품백에 열광하는 모습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네요. 뱁새족은 신분상승을 꿈꾸며 끝임없는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모습 뿐만아니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 시선까지 담고있어 사회성이 짙은 소설이 아니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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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서울 강남에서 활동했던 '~족'들이 있었는데, 오렌지족, 야타족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이룩한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서울 강남 일대에서 퇴폐적인 소비 문화를 즐기던 젊은이들로 1970~80년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고 강남 지역에 뿌리내린 부유층 2세와 부모의 부를 바탕으로 유학 경험이 있는 부류가 대부분이었다. 이 오렌지족들은 소위 잘나가는 부모를 둬서 부모의 후광, 빽으로 무위도식, 호의호식하며 흥청거리던 젊은층들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술이나 마치고 여자를 꼬시던 족속들이다. 그런데 오렌지족 등장하기 꼭 30년 전인 1960년대에 뱁새족이라 불리우는 이들이 있었으니, 이들 뱁새족은 1990년의 오렌지족, 야타족과는 어떻게 다른 족속들이며, 뱁새족은 왜? 어떻게 해서 뱁새족이 되었을까?
<뱁새족> 제목이 무척이나 독특하다. 그리고 박경리 선생님의 장편소설 가운데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생소하기도 하다. 박경리 선생님의 필력은 재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대단하며 이미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서 전국민이 모두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는 낯선 장편소설 <뱁새족>를 통해서 박경리 선생님께서 알리고자 한 1960년대의 시대 모습은 뭘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소설은 분뇨마차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계급의 주택지에 수세식 변소 없는 집이 있었다니, 거 여간 큰 체면 손상이 아닐세!"
뱁새족은 사회비판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60년대 식자층, 소위 지식인, 상류계층의 허위의식을 꼬집어 비판한 소설이다. 뱁새족은 유학을 다녀온 화가이면서 미술평론가인 유병삼이라는 인물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박경리 선생은 유병삼의 냉소적인 시선 속에서 당대 상류층의 허세와 외제품을 추종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소설 속 주인공 격인 유병삼의 시선은 곧 저자 자신의 시선일 것이다. 소설에서 '뱁새족'은 재능도 없이 천재가 되겠다고 파리 유학 갔다 온 유병삼 자신과 대학 졸업장 딸랑 한 장으로 학자인 척 하는 홍재철, 정조만 제공하면 스타가 될 걸로 착각하는 여배우 등의 인물 모두를 가르킨다. 이들 뱁새족은 황새가 되기 위해, 신분상승을 위해 욕망의 전투를 벌이게 된다.
자본주의의 허세를 채우기 위해 평생 뚜껑도 열어보지 않을 피아노, 외국어 원서들로 가득 꾸며진 서재
황새가 되기 위한 뱁새족들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들이다. 하지만, 뱁새족들이 황새들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았는데... 뱁새족들은 이들 갖추고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 해 보지만, 그 결과는 참담함이었다. 뱁새는 결코 황새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게 이치였다. 속담에서처럼 무리하게 억지로 따라가려 하면, 가랭이만 찢어질 뿐이었다. 이 속담의 의미를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뱁새족들을 통해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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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경리작가님의 책은 그리 많이 읽어보지 못했었다. '그형제의 연인들'을 읽고 오래전 쓰신 글이지만 현대적인 소설 못지 않게 흥미롭게 읽어내려갔었다. 그 후 다시 읽게된 '뱁새족'. 뱁새족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랑이가 찢어질 수 있는 상류층 내지는 나보다 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시절에 유학까지 다녀온 유병삼을 주인공으로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다 높은 신분으로 올라가기위한 삶을 그리고 있다. 유학까지 다녀온 동생인 병삼이 대학강사 자리를 박차고 나온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누나 유여사. 그 시대에나 현재인 지금이나 누구나 그렇듯 결혼으로 인해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이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신분상승을 위해 혹은 스타가 되기위해 배신을 하고 허세와 허풍이 난무하는 이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책의 핵심을 읽다보면 지금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보니 사실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는다. 지금도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사람 한두명쯤 있지 않을까? 누구나 좀더 지금보다 여유롭게 살고싶고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대접받고 싶은 욕심과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류계층에 있는 이들일지라도 그자리로 만족할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욕심은 한도끝도 없다. 그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읽으면서 속을 긁어준듯 역시 박경리작가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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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지식인과 상류계층의 허위의식을 비판한 박경리 장편소설
황새가 되고싶어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황새를 쫏아가는 뱁새족의 허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1960년대 지식인들과 해방 후 벼락부자가 된 상류계층의 실상을 유병삼이라는 인물을 통해 비판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1960년대일 뿐이지 요즘 사회의 뱁새족도 똑같지 않을까?
불란서 유학을 다녀와서 명문대 강사자리를 마다하고 화가이자 미술평론가로 일하고 있는 유병삼 역시 자신의 예술적 기질과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알 고 있지만 스스로 황새이고 싶어하는 뱁새족이다. 그런 유병삼의 눈으로 당대 상류층의 비판하고 냉소를 보내는 것 자체가 약간 아이러니하지만, 그 또한 이 책의 또다른 재미인 것 같다.
진실이 모욕이 되는 세상이죠. 뭐 오늘날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황새를 따라갈려는 뱁새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희극이라는 데 있죠. 재능이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 온 놈을 위시하여 돈푼이나 긁어모은 상놈이 어느 명문 호적에 기재된 이름 석 자밖엔 가진 것 없는 거지 처녀를 비단에 싸서 데려오는 위인, 졸업장 한 장 우물쭈물 얻어둔 덕택으로 학자 행세하게 된 인사, 남의 재간을 계산하고 장래의 대재벌을 꿈꾸는 사람, 사업가 호주머니 털어서 여자나 끼고 다니며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를 넘보는 건달이, 남들은 천 미터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데 겨우 백 미터 지점에서 허둥지둥 뛰면서 사랑의 순결을, 사회의 정의를 목마르게 외치는 전시대적인 친구, 어디 그뿐인가요?.. _ p185
졸업장 하나로 지식인 흉내를 내려는 M대학 교무처장 홍재철, 남의 재산을 계산하고 대재벌을 꿈꾸는 박영수, 사랑의 순결과 사회 정의를 목마르게 외치는 구시대인 양두현,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여배우 강미순 그리고 미모로 미래를 꿈꾸는 김윤이까지 유병삼의 눈에는 영락없는 뱁새족이었다. 그들이 황새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가랑이만 찟어지는 비운의 뱁새로 남을지는 미지수지만 황새가 되기위한 몸부림은 참으로 치열하다. 스스로 황새가 아님을 알고있지만 황새로 살고픈 지나친 욕망의 결과겠지만 유병삼의 속마음은 끝까지 냉소적이고 비관적이다.
소설 전반에 걸쳐서 인물들의 속마음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실제 행동과 속마음이 다른 그들의 이중적 모습을 재미있게 잘 그려낸 것 같다. 소설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박경리 선생님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조금 못한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 시대의 삐뚤어진 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아주 흥미로웠다. 신분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의 그저그런 가치관 뿐만아니라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 시선까지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소설이었다.
해방이 되어 이십삼 년, 그동안 벌써 곰팡이가 슬게 된 이야기지만, 금배지를 달고 들어가 앉을 좌석을 탐내는 양반들이 선거기간 동안 누구라 할 것 없이 선거구민이면 누구나에게나 머리를 조아리며, 주권자들의 부지런한 심부름꾼이 될 것을 맹세하고 애소도 하다가 몽매간에 그리던 좌석을 차지하고 보면 다음에는 신성불가침한 권위의 장막을 내려놓은 그런 풍토에 비기는 것은 다소 거리기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은숙의 경우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_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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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뱁새족 지은이 : 박경리 출판사 : 마로니에북스
뱁새족이 뭐지?? 이 책의 제목 '뱁새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의문 한번 갖어보지 않은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에서의 뱁새였꾸나.. 소설속 내용에 빠져들면서 의미를 깨달았고 뱁새족이라는 풍자적인 명칭이 나름 재미있게 느껴졌다. 책의 이야기 전개는 주인공 유병삼의 시선으로 여러명의 인물들이 관찰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로 그때당시 상류계층의 허세, 허위의식을 비판하고 있다. 다양한 뱁새족이 황새족 즉 상류층 부류에 속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들을 냉소적으로 잘 묘사해주고 있다. 졸업장 한장만 믿고 지식인 행세를 하는 홍재철, 재능도 없으면서 황홀한 스타가 되길 꿈꾸는 양두연, 얼굴만 믿고 호사를 꿈꾸는 사람, 남의 재산을 계산하면서 재벌을 꿈꾸는 사람 등 다양한 뱁새족의 모습을 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구경?해 볼수가 있다.
토지로 너무나도 유명한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을 이제서야 처음 접하게 된 나로써는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케 읽을수 있었던 적당한 두께의 소설이였다. 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내가 살아온 시대와 거리가 멀어 박경리 선생님이 의도했던 공감을 100% 느끼지 못하는 부분도 없지않아 있었지만, 그시대 뱁새족의 모습은 지금도 분명 더하면 더했지 사라지지 않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계속해서 읽혀지고 읽어야만 할 소설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의 허세를 채우기 위해 평생 뚜껑도 열어보지 않을 피아노, 외국어 원서들로 가득 꾸며진 서재
소설속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던중 문득, 그럼 나의 모습은 뱁새족과 거리가 먼가? 생각해 보았다. 나역시 뱁새족 성향에 여러모로 상당히 많이 젖어들어 있었다는 점을 의식하게 되었고 소설속 등장인물과 나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면서 내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어 보았다. 회사에서나 그 외 무리에서나 내 주변에 많은 황새족들이 있고 그들의 생활 패턴과 모습들에 익숙해져 나또한 비슷하게 흉내내고 있는 부분은 없었떤가...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삼종신기로는 무엇을 둬야할까도 생각해본다. 그 옛날 상류층의 상징이였던 텔레비전, 냉장고, 피아노-삼종신기가 아닌. 의미있고 값진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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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무한, 실로 욕망 무한이로다 <뱁새족 - 박경리>
우리나라에서 '뱁새'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아는 속담 때문에 부정적으로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박경리 작가의 <뱁새족>또한 그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골적인 비판의식이 담긴 책이며, 196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 산업화 시대의 경제성장으로 많은 이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자본주의 파도에 견뎌내기 위해 힘썼다. 그 중 지식인과 상류층을 대상으로 박경리 작가는 이 소설을 펴냈다. 작가는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미술평론가 (지적 욕망만을 꿈꾸는) 병삼의 입을 빌려 그 당시 상류층과 지식인들의 허세를 비판한다. 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답답해보이기까지 하는 병삼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속물적 욕망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 당시 서울의 가장 핫플레이스였던 공간에서 각자의 인물들이 대화를 통해서 드러내는 허세를 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실력도 없으면서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 지고지순하게 사랑에 목매는 사람, 학자 행세를 하는 사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입으로 삼키기도 하는 사람 등... 이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다리가 찢어질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마구 달리는 뱁새족들의 모습들이다. 말 그대로 욕망무한이다. 병삼은 이를 보고, 자신을 재능도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온 놈'이라고 욕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뱁새족을 비판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우스꽝스럽고 어이없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60년대의 뱁새족들이, 지금은 과연 없는 것일까? 결국 인간의 욕망과 허세는 시대에 발을 맞추기 위한 몸부림 끝에 어떻게든 따라오는 요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상황 서술보다는 대부분 인물들의 대화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특별한 사건들보다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그 시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실제로 있었던 시대의 산물인 영화와 소설 등의 이름은 문화 속에 투영된 사람들의 욕망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장치로 존재한다. 아직 박경리 문학의 핵심인 '토지'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박경리 작가의 소설 몇권을 읽어보니 이젠 약간은 박경리의 문체가 느껴지는 것 같다. 무언가 모르게 독특하다.
- 시뻘건 해는 빌딩 뒤편에 걸려 있었다. 꿈속의 풍경처럼 놀이깔린 시가는 너무 황홀하여 불안했다. 잇달아 밀려오는 차량, 그것들을, 전등 둘레를 미친 듯 선회하는 풍뎅이, 포도에, 건널목에, 구름다리 위에 군중들은 민적민적 떼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서로의 어깨를 비비며 떠밀며. 음향과 음향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황혼의 도시는 무성영화와도 같이,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는가, 자동차는 무슨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가, 짓눌린 침묵에 싸여 있는 것만 같았다. 병삼은 짙은 색채와 침묵이 덩어리로 엉켜, 그 덩어리가 전등 둘레를 미친 듯 선회하는 풍뎅이처럼 선회하는 것 같은, 광란의 의식에 쫓기며 길을 횡단한다. (51p)
- '모두 허기가 들어서 저러는 거다. 눈앞에서 황금덩이가 번쩍번쩍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으려니까, 답답하고 조갈증이 나서 저러는 거다. 욕망 무한, 실로 욕망 무한이로다.' 병삼은 묘하게도 자기 자신까지 슬퍼지는 생각이 들었다. (86p)
- "가발 같지 않지? 글쎄, 말도 말어. 이젠 식모까지 미니컷이란다. 온 창피스러워서, 모두들 원숭이처럼 흉내는 자알 내지. 처지도 모르고, 어울리고 안 어울리는 것 가릴 것 없이, 줄에 엮은 동태처럼 너도나도야. 외국에선 유행이라면 상류사회를 돌다 마는 건데." (101p
- 진실이 모욕이 되는 세상이죠. 뭐 오늘날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황새를 따라갈려는 뱁새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희극이라는 데 있죠. 재능이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 온 놈을 위시하여 돈푼이나 긁어모은 상놈이 어느 명문 호적에 기재된 이름 석자밖엔 가진 것 없는 거지 처녀를 비단에 싸서 데려오는 위인, 졸업장 한 장 우물쭈물 얻어둔 덕택으로 학자 행세하게 된 인사, 남의 재산을 계산하고 장래의 대재벌을 꿈꾸는 사람, 사업가 호주머니 털어서 여자나 끼고 다니며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를 넘보는 건달이 (...) 그리고 또오...... 많죠. (1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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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잘난척, 있는척, 아는척 하는 사람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척'이라는 것은 상대도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있다고, 안다고, 잘났다고 말해도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어쩌면 말하는 본인만 모르고 있을뿐. 그렇기에 그들은 우리 앞에서 가면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먹고 살고 바쁠때는 그런 척을 하며 사는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하니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많이 자랑하고 싶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을, 알지 못한 것을 가리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책에서 만나는 많은 인물들은 어쩌면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가면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면 무도회. 서로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가면을 벗기는 것은 서로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알면서도 가면의 모습을 인정합니다. 아니 어쩌면 서로 가면이 벗겨지는 것이 두려워 다른 사람의 가면을 차마 벗기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짓말이면 어때요? 그것도 살아가는 방편이라면 할 수 없죠. (중략) 탐욕이 빚은 사기 수법보담은 나아요. 고상하고 점잖게, 권위를 만인에게 인정하게끔 하면서 실속을 차리는 치들의 더러운 내막보담이야 낫소. 그네들의 거짓은 왜 허용이 됩나까? 아니 허용보다 존경의 대상자까지 되느냐 말입니다, 감추기만 잘하면 대공비전하도 될수 있는데, 까짓 이런 세상엔 약과죠." - 본문 132쪽~133쪽
불란서 유학파 유병삼.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유병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 순수한 사랑과 사회정의를 외치는 양두연, 졸업장 한장으로 학자 행세를 하는 홍재철, 남의 재산으로 재벌이 되길 꿈꾸는 박영수, 연기가 아닌 자신을 바치는 것으로 스타를 꿈꾸는 여배우 강순미, 자신의 외모만으로 허황된 꿈을 꾸는 김윤이. 그들은 황새를 따라하려는 뱁새족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가끔은 황새의 모습으로 살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내 가랑이가 찢어지는 한이 있더하라도 한 순간만이라도 황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책에서처럼 허황되게 겉모습만 쫓는다면 가랑이는 찢어질 것입니다.책에서 만나는 뱁새족이 쫓으려는 꿈은 허황되고 부질없는 욕망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모습들은 우리를 찌푸리게 하기 보다는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어 읽는 우리들로 하여금 웃음짓게 합니다.
이 책에서의 뱁새족들은 1960년대 지식인과 상류계층을 비판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물론 겉모습을 보고 쫓으려는 이들이나 자신을 겉모습만 치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뱁새족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과감히 포기하라고 말할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우리 같은 뱁새족들도 가끔은 황새의 꿈을 꿀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한다고 하지만 노력하는 뱁새족들에게 무조건 네 분수를 알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