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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임순, <3.1과 반탁>, 앨피 1.분단 한반도 2019년 6월 6일 현충일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언급하자 짧지만 굵은 논란이 일었던 것을 기억한다. 김원봉이 열렬한 독립운동가였음은 명백하다. 다만 논쟁의 씨앗은 그가 공산주의자로서 북한 정권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고, 결국은 한국전쟁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현충일에 긍정적인 의미로 언급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나와 같이 전쟁을 직접 겪지도 않고 전쟁의 타격을 간접적으로라도 전혀 겪지 않은 세대는 이 문제에 대해 심드렁하게 반응하지만, 여전히 몇몇 중장년층에게 대통령의 발언은 분노와 충격을 일으키는 문제였다. 이들이 가진 분노와, 그보다 더 근원적인 두려움과 공포는 실재다. 그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다. 이들이 가진 나름의 사고방식과 감정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이는 한국전쟁의 어쩔 수 없는 상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전부터 한반도는 분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이념의 대립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전쟁과 분단은 이와 같은 대립이 참혹하고도 잔인하게 실제적으로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전쟁 전후 한반도에서 이념이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기 위하여 다투었고, 승리한 쪽이 현재 우리들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규정해왔는지를 탐구한다. 2.같음과 다름 여러 가지 대상들을 같으면 같다, 다르면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가장 기본적인 작동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들은 적의와 배제를 내포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해방정국에서 이러한 판단기제는 가장 순수하지만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시행되어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적 도식화가 이루어진다. "일제 지배블록이 무너지고 새로운 지배블록이 막 형성되려던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한반도는 헤게모니 쟁투의 보편화, 전체화 및 적대화가 격렬하게 펼쳐졌던 지역"(168)이었다. 예컨대 이 시점 '우익=항일=반공=반탁=자유민주주의'라는 도식화가 이루어졌다. 사실 각각의 낱말들을 살펴보면 이 연결은 한낱 자의적인 것이며, 이데올로기의 버무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선전과 비방은 이와 같이 단순한 사고 도식을 확산시켰다. 그리하여 양분화된 이념들은 서로 극렬히 대립하였고, 이는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3.전체주의 책에서 대한민국 국가 주권의 현시를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매우 흥미롭게 읽으며 일제의 전체주의가 조선인들의 사고방식에 잔존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진정한 맑시즘을 구현하겠다는 북한은 이미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전체주의 국가(혹은 종교집단)으로 보는 것이 매우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 대한민국 또한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띠었으니, '국가보안법 체제' 또는 '1949년 6월 총공세'(반민특위 습격 사건, 국회 프락치 사건, 김구 암살 등)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가공적이고 관념적인 구축물"(194)에 불과한 국가주권을 "사회와 개인보다 우위에 선 초월적 입법자(주재자)로 주조"한 것이다. 이는 매우 반어적인데 "국민의 합의와 동의에 의해 양도되고 위임된 국가주권이 역으로 국민적 정체성을 구획하고 한정지음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권리 행사를 국가주권의 수호와 방어로 제약하는 이율배반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95) 저자는 이를 단순히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로 볼 것이 아니라, 북한과 비교하여 국제연합의 승인을 얻었다고 하는 승리감에 도취된 국가주권의 발현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보인 이러한 면모들이 일제가 주입한 전체주의 사고방식에서 비롯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반공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가치가 '자유'인데, 북한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국가주권이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남한만의 국가주권 현시(과시)라기보다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의 잔재라고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4.김구의 모습 '역사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지만, 특정한 역사 서술이 어떤 배경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파헤치다보면 이 명제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을 역사가 그려온 김구의 모습으로 맺고 있다. 한 인물의 삶도 이념이라는 체에 걸러져 우리에게 전달되어왔음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김구가 한민족의 스승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가 남한만의 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북한과의 대화를 줄기차게 시도했던 인물임은 많은 사람들이 모른다. 사실 해방 이후 김구의 이와 같은 행적은 꼬투리 잡히기에 딱 좋은 부분이었다. 북한의 피는 우리와 다른 '악혈'이라며 '우파=민족주의'라는 도식에 균열이 발생하였고, 김구는 오히려 철저한 민족주의자로서 결을 달리한 것이다. 이 때문에 2014년 그야말로 '갑툭튀'한 서북청년단은 김구를 '빨갱이'로 주장, 즉 그를 살해한 인물이 가졌던 이분법적 도식을 그대로 답습했던 것이다. 사실상 반공을 제일의 기치로 삼았던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서 김구라는 독립운동가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맑시스트가 아니었던 것이 근본적이기도 했지만, '반단정 통일협상론'이라는 4.19 혁명의 불길을 진압하기 위해서 군사정권이 시행한 '건국공로훈장' 덕분이었다. 이 훈장 수여를 계기로 3.1운동-4.19혁명-5.16군사정변이라는 권력의 흐름이 공고화되었다. 혁명의 바람대로 이승만은 축출되고 그 자리에 민족의 지도자 김구가 들어선 것이다. '군사정권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는 독립운동가'의 존재가 가능했던 것은 이승만으로부터 견제를 받았던 김구의 아들 김신이 5.16군정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반이승만=박정희(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이분법적 도식은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분명 김구만이 수행한 독창적인 운동인 남북협상론은 그 이후 많이 묻히게 되고, 그는 상해임시정부 주석으로만 이야기되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김구에 대한 '찬반'이 아닌 그의 행적과 발언을 역사적 맥락과 조건 속에서 찬찬히 숙고할 수 있을 때, 그가 꿈꾸었던 자유로운 문화정치도 싹틀 수 있을 것이다."(333)고 말한다. 5.나 아직 안 끝났어요!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펴내는 심정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가 파장될 무렵, 혼자 '나 아직 안 끝났어요!'를 외치는 심정이다. 다 끝난 잔치 자리에서 진상 떠는 손님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생사가 다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라고, 누구 하나쯤은 객기를 부릴 수도 있지 않느냐는 항변으로 이 책을 펴낸다."(12-3) 그러나 사실 저자뿐만 아니라 모든 대한민국 사람에게 이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해방 전후 한반도를 뒤덮은 이념들의 알력다툼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파헤치고 이것이 어떻게 현대까지 이어지는지를 매우 다양한 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니 이게 어떻게 끝난 일이겠는가. 우리 모두에게 끝나지 않은 일이다. "현재를 만든 과거의 현장을 반추하는 것"(162), 이것은 영원히 현재진행형이다. #네이버원탁의서평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