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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무엇보다 현재사회이론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해 다루고 있고 그 속에서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프롬을 인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선진 자본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결과(오늘날의 소비산업이 과연 새로운 자유를 촉진하는가?)를 고민할 때, 특히 현재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산업과 소비산업의 윤곽을 추적하는 데 영향력 있는 논의를 제공한 집단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사회이론의 핵심은, 개인이 ‘과잉억압’으로 고통받는다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관리사회’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명제이다. 20세기 독일 지성인 중 가장 중요한 이 두 사람의 저작과 프랑크푸르트학파 전체의 작업은 최근의 세계사는 물론이고, 대규모의 사회적 과정이 개인과 그의 사적 세계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 이 학파는 정치권력이 인간 주체의 내면세계에 스스로를 각인시키는 다양한 방식을 파악하고자, 더 구체적으로는 히틀러가 실질적으로 촉발시킨 터무니없고 무의미한 악을 비판적으로 탐구하고자 일상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에 프로이트적 범주들을 끌어들이는 대담한 이론적 행보를 보였다. 파시즘의 정신병리를 파악하려는 이 학파의 시도와 관련해서는 아도르노, 마르쿠제, 그리고 프롬이 특히 돋보인다.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미국 망명 기간 중 근대 시기의 어두운 측면을 간파한 사회이론의 역작 [계몽의 변증법]1944을 저술했다. 스스로 설정한 과제는 “왜 인류가 진정한 인간적 조건으로 진입하는 대신에 새로운 야만 상태로 빠져 버렸는지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지배 본성이 사회와 사회적 관계를 보호하며, 개인 정체성은 맹목적 본성으로부터 자아에 대한 성찰적 의식으로 이행한다고 논의한다. 이는 사실상 본성에서 문화로의 이행이다. 그러나 본성을 벗어나 왜곡된 사회는 본성으로 되돌아가며, 정체성을 훼손하고 인간의 행복과 자유의 가능성을 앗아가 버리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일어난다. 말하자면, 초기에 본성의 침탈로부터 사회질서를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던 공격성, 분노, 폭력이 문화적 정치적 질서가 구성된 다음에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폭력은 사회질서의 기저에 내재되고, 공격성은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사회적 행위자들의 모든 시도의 근간을 그것이 제아무리 고결하고 고상한 것일지라도 내쳐 버린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근본적 관심은 개인, 자아 정체성, 감정적인 삶에 특히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지향은 고전 사회학 이론의 한계를 넘어 심리학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이행 과정을 수반했다. 프롬은 프로이트에 대한 비관적인 정치적 평가에 맞서 프로이트적 분석을 사회적 해방과 폭력 종식을 위한 투쟁의 도구로서 옹호한 인물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요 이론가들은 무의식, 성적 억압, 오이디푸스콤플렉스 등 프로이트의 핵심적 발견들을 거의 대부분 채택하여 자아와 사회의 관계, 가족과 사회화의 관계,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지배의 관계를 재검토했다. 마틴 제이에 따르면, “아도르노가 초기 프로이트에 접근한 방식은 자신의 이론에 현대적 존재의 트라우마를 꿋꿋하게 도입하는 것이었다. 프롬은 1926년부터 정신분석가로 활동했으며, 프랑크푸르트 정신분석학 연구소의 일원이었다. 그의 초기 연구는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과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의 결합을 추구했다. 프롬의 프로이트 재해석에 따르면, 사회체계는 개인의 삶의 특정 역사적 시기의 경제적 문화적 맥락에 부합하도록 형성했다. 봉건사회는 개인을 농노와 영주라는 역할에 적응시키고, 시장자본주의는 개인을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역할에 적응시키며, 선진 독점자본주의는 많은 사람을 다른 무엇보다도 소비자로 만들어 낸다. 프로이트가 그러했듯이, 프롬 또한 가족이 억압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아버지의 사랑을 성취하는 것은 내재적 자아의 억압 또는 부정, 그리고 사회적으로 정해진 행동 유형에 대한 적응을 수반한다. “가족은 사회 또는 사회계급이 그 특유의 구조를 아동에게 각인시키고, 따라서 성인에게도 각인시키는 매개체다. 가족은 사회의 심리학적 대리인이다.” 가족은 개인의 삶의 중심에 외적 사회적 모순을 이식하고, 경제적 조건을 이데올로기로 유지시키며, 종속적이고 몰자아적이며 무기력한 자아 인식을 형성하는 제도다. 프롬의 자아이론은 다음 다섯 개의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관계성 대 자아도취 인간 조건은 본질적으로 관계성에 대한 욕구에 근거한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른바 ‘고독한 개인’에 도전하는 명제다. 관계성에 대한 욕구는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본성과의 분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친밀성의 번성은 창조적인 사회적 관계에 기초한다. 이러한 관계가 없으면 자아는 병리적 자아도취에 빠지며 황폐화된다. 초월-창조성 대 파괴성 생물학적 욕구라는 배경과 반대로, 개인적 및 사회적 창조성은 긍정적 부정적 양 측면에서 모두 드러난다. 프롬은 창조와 파괴는 “양자 모두 동일한 초월에의 욕구에 대한 대답이며, 파괴에의 의지는 창조에의 의지가 충족되지 못할 때 필히 발생하게 된다”고 논의한다. 고착성-우애 대 근친애 프롬은 성숙한 사회적 삶은 남성적 가치와 여성적 가치의 상호작용에 기초한다고 논의한다. 그는 프로이트 이론의 남성중심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자아의 잠재력은 이성의 남성적 영역에 여성적 특성(보호와 양육 같은)을 결합하는 것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근대 사회에서 여성적 특성은 ‘자연 상태’로 회귀하는 통합을 저해하는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정체성 감각-개별성 대 집단동조 자아 정체성의 추구는 인간 조건의 본질적 특성이며, 근대사회는 자아 조직화의 사회경제적 가능성을 구조화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프롬은 이러한 욕구의 억압적 변형이 파시즘이나 반유대주의 같은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낳는다고 논의한다. 지향과 헌신의 준거에 대한 욕구-이성 대 비합리성 세계와의 정서적 연계에 대한 욕구는 인간 자율성의 전제 조건이다. 정서적 연계가 없으면 개인은 자기애적 상태로 빠진다. 프롬 저작의 핵심적 특징은, 무기력 또는 고립이 자아와 타인 간의 관계에서 주요한 구성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친밀한 관계는 진보할 수도 있고 퇴행할 수도 있다. 타인과의 진보적 관계는 보호, 공감, 사랑이라는 정서적 특성을 포함한다. 개인적 고립의 고통은 건전한 대인관계 발전을 위해 직면되고 수용된다. 반면 타인과의 퇴행적 관계는 개인의 독자성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기능 양식에서 내적 고통과 공허함은 유아적 환상으로의 신경증적 몰입으로 회피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소비문화는 퇴행적 환상의 끊임없는 목록을 제공하며, 그 환상은 나르시시즘적 병리와 그와 관련된 장애를 유발한다. 이 같은 자아의 신경증적 퇴행적 구획의 핵심적 특징은, 자아 정체성을 고양하고 내적 공허함과 고립을 회피하고자 타인을 도구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프롬의 관점은, 마치 선과 악의 객관적 관계를 규정한 페어베른의 공식 또는 참된 자아와 거짓 자아에 관한 위니콧의 설명에서처럼, 자아 발달과 자아 왜곡 사이의 중요한 객관적인 관계적 구분으로 수렴된다. 그러나 프롬은 대인관계와 사회적 맥락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좀 더 개방적인 정신분석학적 자아이론을 제시한다. 그 논의의 요지는, 사회적 관계 병리와 연계된 자아의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문화적 지배 패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삶의 영역이 권력의 가학적 만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퇴행적 자아 해법은 개인적 영역에서 재생산된다. 인간 주체가 자기성찰을 통해 본래적 존재의 가능성을 되찾을수록, 상호존중과 자율적 행위에 기초한 사회질서가 발전할 것이다. 프롬은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조건’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합리성이나 자제력 같은 관념이 명백히 억압적인 경우가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온난화, 대량살상, 전쟁의 위험, 자연 파괴 및 오염 등 현대 세계의 많은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서구적 합리성 및 완결성의 확산과 관련돼 있다. 프롬은 유서 깊은 모든 관념론적인 윤리적 가치들을 되살린다.(Marcuse, 1956: 258). 발췌: 현대사회이론의 모든 것 ?프랑크푸르트학파부터 지구화론까지-, 앤서니 엘리엇, 김봉석 박치현 옮김, 출판사 앨피, 2020.3.5, pp. 77~95 아도르노는 프롬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병리-특히 파시즘- 연구가 사회학적 심리학적 양 측면에서 모두 중요하다고 보았다. 근대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적 권위주의에 관한 아도르노의 명제에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개인의 종언’ 명제, 자아 의식에 대한 무의식의 승리, 그리고 파시스트적 경향 또는 권위주의적 정체성과 관련된 살인적 분노가 그것이다. 관리자본주의라는 신세계에서는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후기 근대사회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경제변동은 핵가족 내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직접적으로 침식한다. 사업이 기업화되고 일자리가 전례가 없는 속도로 축소되거나 사라질수록, 아버지로서의 남성은 경제적 사회적 위치 상실로 고통 받는다. 실직자가 된 아버지는 새로운 종류의 불안, 즉 경제적 불안뿐만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불안으로 고통 받는다. 아도르노가 말하기를, 이러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부터 관리자본주의로의 변화가 초래한 중요한 결과는 자녀가 점점 더 아버지를 닮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자유주의적 사회에서 가족생활의 변화는 아버지가 더 이상 사회적 억압의 대리인으로 기능하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아도르노는 프로이트에 관해 언급하면서 개인은 대규모 집단 내에 있을 때 자신의 ‘에고의 이상’보다 비인격적인 ‘집단의 이상’과 스스로를 더욱 동일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집단에 대한 동일시는 개인 수준의 다양한 억압의 제거와 관련되며, 아도르노는 파시스트 선전이 공격성을 외집단(이방인;독자주)에 대한 증오, 이를테면 인종차별주의 같은 것으로 변환시킨다고 논의한다. 아도르노는 ‘개인의 종언’ 명제에 기초해 아버지가 더 이상 우월한 사회적 권위를 표상하지 못할수록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사회적 유대의 보증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파시스트적 경향 9가지 인습주의: 중간계급의 가치와 타인에 대한 완고한 태도를 철저히 지키는 것 권위주의적 복종: 권위자에 대한 무비판적이고 순종적인 지향 권위주의적 공격성: 인습적 가치를 넘어서는 사람들을 처벌하려는 욕망을 품고 적극적으로 색출하려는 경향 반 상상주의: 상상력, 창의력, 또는 감정적 성향을 거부하는 것 고정관념과 미신: 완고한 고정관념에 기초해 세계 질서를 인식함은 물론 운명이라는 신비적 결정요인을 신봉하는 것. 힘과 강인함: 지배/복종, 강함/약함, 지도자/추종자의 이분법에 기초하여 힘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 파괴성과 냉소주의: 인간 조건에 대한 일반화된 적대감과 심지어 증오. 투사성: 자아의 원치 않는 정서적 측면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 성: 타인의 성적 행동에 대한 과도한 관심. 현대의 여성과 남성이 겪는 고통과 억압은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의 고통 및 억압과 똑같지 않다. 마르쿠제가 보기에 억압은 심화됐으며, 특히 가격과 이윤, 돈과 독점기업을 둘러싸고 조직화된 세계에서 관능성과 에로티시즘에는 과도한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 마르쿠제의 저작 <일차원적 인간>1964, 에서 대량소비와 대중문화의 시대에 새로운 사회질서는 개성, 반대, 저항을 급격히 축소시키는 것으로서 나타났다. 선진 자본주의는 ‘허위적’ 소비 욕구에 기초한 일차원적 사회를 창출하며, 점차 개인들을 대규모 지배 및 사회 불평등 체계의 원활한 작동 속으로 통합시킨다. 근대 세계의 가장 충격적인 특징은 순응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아가 결코 긴장과 모순 없이 사회적 관계로 진입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무엇보다도 현대사회이론에 대한 통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 19 이후에 전개될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독자에게 세계를 보는 눈을 뜨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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