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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삶 속에 흐르는 우리의 역사 어린 소녀가 겪은 일제치하의 생생한 기억, 6,25 피난민의 삶,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 현대사의 굴국을 지나온 생생한 기억들 잃어버릴뻔 했던 우리의 과거
저자는 1938년 강계에서 부유한 집안의 의사의 딸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일제시대와 6,25사변을 겪엇고 월남하여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최우등 졸업,한때 한국고전 무용의 기대주로 시공관과 부민관등에서 공연했으나 이화여자대학졸업과 함께 문고부주관 유학시험에 합격하여 유학준비에 들어 갔다 그러나 1969년대 서울상류사회에서 유행했던 사진 결혼의 종류에 따라 약혼하고 현대판 사진신부로 1962년미국으로 도미했다 삶,,, 산다는 것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현재 아이가 에세이집을 읽어야 하는데 고민중에 있을때 마침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고등학생 아이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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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라고 하면 앙상한 가지밖에 남지 않은 초라한 나무가 생각난다. 그런데 벌거벗기까지 했다니... 살을 애는 듯한 추위가 벌거벗은 나무의 속살을 뚫고 모든 걸 얼려버릴 듯 하지 않은가. 책을 받아보고 느낀 느낌은 그런 것이었다. 헐벗은 데다 세파에 시달리기까지 한 고단한 삶... 책의 표지에 일제치하, 625 피난민의 삶이라고 써 있는 것을 보고는 쉽지 않은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회고록으로 남기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나이 80넘은 노인이 할머니나 엄마가 아닌 인간 '김애라'의 삶을 책으로 남기고자 집필한 책이다. 이민자, 목사, 박사 등 자신을 포장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쓴 책이다. 1938년 강계에서 태어난 저자는 의사집안의 딸로서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625사변때 월남하여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시집가서 신학대학을 졸업해 목사가 되고 공부를 더 한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 정교수로 강단에 섰다. 이렇게 들으면 부유한 집안의 화려한 유학생활에 대한 이야기 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가부장제 아래에서 불행한 엄마의 삶을 보며 자랐고, 625 피난길에 큰 병을 얻어 담배를 팔기도 했고, 친구의 배신으로 사진결혼 당해 비참한 미국생활을 시작, 죽을수도 없는 상황에서 꾸역꾸역 외국인노동자처럼 일하며 미국에서의 삶을 이어가다가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는 자신의 괴로운 현 상황만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보며 살아야겠다는 열망으로 다시 미국행을 결심하고 재기를 위해 다시 한번 일어선다. 저자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배움에 대한 열정, 그리고 다시 배움을 시작했을때 늘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눈물흘리는 저자의 마음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과 맞짱뜰 기세로 신학대학을 갔지만 하나님은 플로리다로 휴가갔다는 교수의 말에 실망하는 저자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다시 신앙의 의미를 깨우치는 부분은 감동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암울하고 어두운 이야기지만 저자의 마음속의 변화와 용솟음치는 용기와 투지에 격려를 보내며 읽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옛날엔 가부장제 아래에서 할말도 못하고 숨죽여 사는 여자가 많았다. 여성의 배움에도 인색했다. 여성목사인 저자는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인종차별받고, 여성 목사를 낯설어하는 시선을 받았다. 그나마 저자가 미국에서 살았으니 그렇게라도 뜻을 이루며 살았지, 한국이었다면 그렇게 뜻을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며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과거를 집필하여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용기를 낸 것에 박수를 보낸다. 나도 아이를 낳고 커리어를 포기한 채 살다보니 우리아이 기억속에 내가 단순히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만 남으면 억울할 것 같다. 단편적인 나의 조각만을 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나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글로 남겨두면 어떨까 생각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과거를 다시 생각하고 그 마음을 성숙해진 노년에 들여다 본다면 나도 저자처럼 감사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생생하게 담긴 생의 기록이다. 읽으며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어린 7남매를 데리고 전쟁 피난길에 올랐고 그 와중에 죽은 자식도 있었다고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병에 걸린 자식을 병원에도 데리고 가지 못하고 집에서 지극정성으로 돌봐 살려내기도 했다는 그 당시 이야기는 처참하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우리의 가슴아픈 과거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너무 가슴 절절한 이야기가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술술 읽히는 문체로 인해서 잠시 영화를 보고 온 것 같은 느낌에 빠지게 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라도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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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38년에 태어난 한 여인의 회고록이다. 우리 할머니가 87세에 돌아가셨는데 할머니께서 살아생전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이 생각나고 연배도 비슷하셔서 할머니 생각이 더욱 많이 났다. 불과 백 년도 안 된 일이거늘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들.. 평양북도 강계에서 태어난 여인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시대에 아버지가 병원을 운영하셨고 공부도 잘했던 그녀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피난민의 삶으로 쓰디쓴 고통을 겪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이 시대에 태어난 게 너무도 감사함을 느꼈다.
전쟁의 고난의 시기가 지나고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훗날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요즘 같아선 정략결혼도 매우 드문 일인데 그 시대에는 얼마나 힘든 결혼생활을 했을까 싶다.
기대와는 달랐지만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 없어 강행했던 결혼생활에 해외로 이민까지 가게 되었지만 첫째 아이를 기를 형편조차 되지 않아 한국으로 보냈다. 나 같으면 포기하고 돌아왔을 것 같은데.. 저자는 그 시대 여성이지만 보통 당찬 여성은 아니라 느껴진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자신의 스펙을 높이고 동양인 최초로 여성 목사로 거듭난 그녀가 참으로 대단하다.
책의 제목 '벌거벗은 겨울나무'처럼 피난민의 고된 삶, 이민생활의 차별과 설움 그리고 한때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그녀의 삶이 참 외롭고 슬프기도 했다. 부유한 집안의 의사의 딸로 태어나 엘리트의 삶을 살던 그녀가 겪어온 파란만장했던 인생의 회고록을 읽다 보니 그 시대의 역사와 설움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이를 출산하고 보니 경단녀가 되었다는 생각에 우울 해지고 이제 더 이상 사회생활할 일이 없겠다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만큼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한 멋진 여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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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일본의 아베정권은 지금도 과거의 군국주의 시절에 젖어있는 듯 합니다. 동북아 국가들과 평화롭고 화합하며 지내기를 거부하고, 과거 군사력을 멋대로 휘두르던 국가의 모습을 만들려는 노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시작은 지우고 싶은 일제치하의 시대부터 저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자는 일제 말기인 1938년에 압록강 근처인 평안북도 강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일제시대와 6.25사변을 모두 경험하였던 세대입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의사였기에 나름 엘리트였고 어머니는 부잣집 딸에 신교육을 받은 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재혼이였고 전처의 자식들과 전처가 같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분노한 이모에 의해 별거를 하게 되었지만,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다시 강계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삼촌들이 어머니를 때리 등 고부간의 갈등은 계속 있었다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세 여동생이 더 태어나는 등 그 곳에서 월남하기까지 7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강계는 저자에게 어린 날의 추억이 깃들고 즐거웠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어린시절이야기는 우리의 할머니로부터 들을 수 있는 과거를 대신 해 주는 듯 했습니다.
저자는 고등학교때 전교 1등을 했지만, 목표였던 서울 법대는 낙방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미국 유학을 지원하는 국가시험에도 합격하는 수제였습니다. 유학 준비중에 당시 한국의 상류사회에 유행이었던 사진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처음 알게 된 사진 결혼이란 것을 저자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사진 한 장만 보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지만, 기대와 다른 미스터 문과 그 곳의 생활 모습은 한 순간에 한 사람의 삶이 180도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자존심, 아버지의 자존심, 신고 결혼 후의 미국 결혼 생활은 처음의 유학이란 꿈을 포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곳에서 자식을 키우며, 우리와 비슷하게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40대 중반에 신학교에 진학하였고,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노력 끝에 뉴저지 연회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여자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후의 목사로서의 삶에서는 과거의 삶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는 것 같았습니다.
긴 저자의 삶에서 큰 이벤트만 추리려 해도, 워낙에 심적으로 큰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남자인 저로서도 저자와 같은 큰 심적인 일을 겪는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가부장적이고 불안정한 시대에 한국 최고 수준의 엘리트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당시에 미래의 방향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새삼 요즘 시대의 한국 여성들은 큰 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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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강계에서 부유한 집안의 의사의 딸로 태어난 저자는 유년의 시절을 일제시대,6.25 사변을 겪고 월남하여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이화여자대학교 졸업 문교부 주관 유학시험에 합격,유학준비를 하던 중 1960년대 서울상류사회에서 유행하던 사진결혼의 풍류에 따라 생면부지의
샌프란시스코 주재 부산일보 특파원과 약혼하고 사진 신부로 1962년 미국으로 도미한다.
그녀가 미국에서 겪은 상상할 수 없었던 남편의 과거사를 비롯 예상과 다른 결혼생활,
미국의 냉혹한 현실로 사진관등을 전전해야했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한다.한 여성이 겪은 사회사를 이미 팔순을 넘긴 그녀의 생생한 기억으로 더듬어 가고 있다.벌거벗은 겨울나무 속으로 들어가보자.누구나 청춘의 푸른 꿈이 있다.시작은 그녀의 과거로 부터이자 자라온 환경과 가족들의 소개,
일제치하의 생활과 한국 전쟁의 피난 시절등이 소개되고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로 진학 학구열을 불태운다.동창인 김명희의 만남으로 사촌오빠가 소개되고 국제전화와 편지등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게된다.실제로 보지 못하고 전화와 사진으로 알게된 두사람은 가족들의 우려속에 약혼식을 하고 미국으로 도미하게된다.깜깜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그녀의 불안감은 예측을
빗나가지 않았다.경상도 억양의 남자가
마중을 나온 것이다.그후로 시작된 미국생활은 환상을 깨고 현실의 촉박함이 엄습한다.결혼과 신혼의 달콤한 꿈은 생각할 겨를이 없이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송두리째 앗아갔다.화려한 결혼은 커녕 젊고 통통한 백인 판사 앞에서 결혼선서를 하고 결혼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렇게 그들은 정식 부부가
된다.
샌프란시스코 중심가 기어리에 위치한 두샴 키콜만 사진관 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미국 생활이 시작되고 한국의 공주님이 미국판 노동자로 전락한 어이없는 일의 연속이었다.한국과 미국의 생활습관이 다름을 몸으로 배워야했다.그사이 첫째 아이가 임신이되고 첫 딸이 태어났다.남편의 과거를 알게되고 이미 부부가된 그를 그녀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한국행,두 번째 딸의 출산으로 달라지는 생각속에 남편의 과거행적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녀는 서울보건전문대로 입학하여
임상병리사 고시에 합격한다.살아가기위한 몸부림은 시작되고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한다.남편의 형님이 북한관련 일이 있고 금의환향을 꿈꾸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두딸과 함께 미국으로 1971년 7월 5일 떠난지 10년만에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여 다시 시작하는 이민생활을
준비한다.딸들의 적응에 늘 감사했고 하지만 외뢰움의 한구석을 채울 수는 없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고 미국땅에서의 적응을 해나갈 무렵에 남편의 뉴욕지구 한인회의 이사장이된다.그러나 결혼후 20년 그녀에겐 삶의 변화가 필요했고 드류신학교에
입학한다.새로운 학문에 눈을 뜬 애라,노익장을 과시하며 열심히 신학 공부를 하고 드디어 덴빌 연합감리교회의 청소년과 청년담당 부목사로 부임을
받는다.
딸들과의 갈등과 남편의 강요에도 굴하지않고 애정이 없던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되고 또 다른 김애라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물론 사람들마다 자존감이니 자존심을 앞세우며 이야기 하기도 하고 굳이 하나님을 앞세우며 신의 섭리니 예정이니를 말하지만 결정은 당사자 본인이 하는 것이다.
그 결정이 결국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중요하다.내가 없는 나의 삶은 빈껍데기요,쭉정이로 살아간다.무작정의 미국행 그리고 낯선 남자와의 결혼 두 딸의 출산,신학교의 입학과 목사의 길,이혼,한 여인의 삶의 굴곡진 인생사는 수많은 페이지를 남기고 있다.인생에는 당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는 교훈을 우리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그녀는 우리시대의 딸이요,여인이요,어머니다.부디 험한 파도와 풍랑의 뒤에 평온함이 있길 빌어본다.이제라도 하나님이 그녀의 삶에 주인이되어 행복하시길....,선한 목자되신 예수님과 함께 그녀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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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사회혼란과 사람들의 불안감, 더욱 빠르게 변했던 사회상, 시대상을 알아 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여성의 삶을 조명하며 누구나 힘들었던 시기지만, 여성이라서 더욱 차별받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희생이나 강요를 받아야 했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거워서 다루기 힘든 주제일 수 있으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적 의미나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고통받는 대상 또한 일반 민중들임을 알아야 한다.
책에서는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관통하며 피난민의 삶, 이민자, 해외로 유학 간 사람들이 겪은 고충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지금이야 해외유학이나 이민이 자유롭고, 높아진 우리의 국격 만큼이나 대우받는 것도 많고 전혀 문제 될 것도 없지만, 불과 반 세기 전만 하더라도, 이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알아야 하며,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의식이나 이론적 의미, 해석 등에 집착하기보단, 서민의 삶을 조명하며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삶을 이어가며 경험한 부분이나 자신이 느낀 삶의 의미나 목적이 무엇인지, 개인마다 추구하는 성향이나 가치관도 다르며, 같은 사건이나 인물을 보더라도 평가는 다양하게 나오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의미를 전해받거나 느꼈다면, 이를 올바르게 바라보며 나를 위한 방법론으로 해석하며 활용하는 자세가 중요 할 것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에세이집과는 달리, 다소 무거울 지 모르나,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만큼, 읽어 보길 바란다.
요즘처럼 여성학, 여성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나 인식의 전환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맞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고, 개인이 바꿀 수 없는 어떤 변화나 사회문제, 국가 차원의 혼란 등이 일어났을 때, 개인들은 얼마나 무기력해지며, 평소에 일상적으로 누렸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절망과 고통, 좌절의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다신 일어나서도 안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절대 잊어서도 안되는 역사적 의미, 이를 개인의 삶을 통해 바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벌거벗은 겨울나무,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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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겨울나무 / 김애라 / 행복우물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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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겨울나무책은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책 속에는 저자가 겪은 일제치하의 설움, 6.25전쟁의 참혹함과 피난민의 비참한 삶 등이 저자의 뛰어난 기억력에 의해 복원되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 김애라는 1938년, 강계에서 부유한 집안의 의사의 딸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일제시대와 6.25 사변을 겪었다. 월남하여 수도 여자고등학교를 최우등 졸업, 한때 한국고전 무용의 기대 주로 시공관과 부민관등에서 공연했으나, 이화여자대학 졸업과 함께 문교부주관 유학시험에 합격하여 유학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1960년대 서울상류사회에서 유행했던 사진결혼의 풍류에 따라 생면부지의 샌프란시스코 주재 부산일보 특파원과 약혼하고, 현대판 사진신부로 1962년 미국으로 도미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없었던 남편의 과거 사, 예상과 달랐던 결혼 생활, 미국의 냉혹한 현실로 사진 관 등을 전전하며 일을 하게 된다. 현재 미국 UMC 재단의 목사로 정년퇴임하고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즐겨 부르던 "마음의 고향" 이라는 노래다. 팔십문턱에 다가선 지금도 나는 이 노래가 좋아 부르곤 한다. 평안북도 강계,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곳에 위치한 고요한 산촌, 산맥이 깊고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던 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강계는 아버지의 출생지이다. 저자가 한 살이 되었을 때 저자를 데리고 강계역으로 왔다. 강계라면 진절머리를 치던 엄마는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동안 짐을 싸서 할머니 집의 광에 넣어 두었다. 남한으로 가서 안정을 찾은 후 짐을 다시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과 북이 차단되어 왕래가 두절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건 같다. 빈틈없는 일처리로 우리 가족이 무사히 월남한 사건은 내가 엄마를 다시 보게 된 계기였다.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실행항 엄마의 지성과 투지에 지금도 감탄할 뿐이다. 1945년, 월남과 함께 강계는 내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 소식도 끊어졌고 갈수도 없다. 하지만 강계를 떠난 지 72년이 지난 오늘도 강계는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쉰다.
우리 가족의 피난민 생활은 계속되었다. 병원개업 이을 3월 1일로 했다. 첫날부터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밤이 되면 엄마는 돈주머니를 차고 병원을 나가 아버지 책상에 앉아 돈을 세고는 주머니에 넣어서 들어왔다. 우리는 차츰 피난민 탈을 벗으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병원은 계속 번창했다. 전쟁이 터지고 전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무장공비의 습격도 심해졌다. 저자는 아픈 와중에도 누워서 중학교 진학 국가고시 준비를 열심히 했다. 3년을 끌던 한국저너쟁은 1953년 휴전협정으로 정전이 되었다. 이화여자대학 졸업과 함께 문교부주관 유학시험에 합격하여 유학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1960년대 서울상류사회에서 유행했던 사진결혼의 풍류에 따라 생면부지의 샌프란시스코 주재 부산일보 특파원과 약혼하고, 현대판 사진신부로 1962년 미국으로 도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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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 생활은 외로웠다. 우리 주변에는 백인들뿐이었다. 피부색이나 생김새, 음식과 풍습도 달랐다. 남편의 박사학위에 희망을 걸고 일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흥미가 없는 사람을 억지로 박사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훨씬 쉬웠겠다. 결혼 후 20여 년 동안 나는 나를 남편보다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내 꿈을 죽여가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남편을 추켜 세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는 진정한 내 삶이 아닌 가식적인 삶을 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