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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사회는 퇴계, 율곡, 정약용 등과 같은 대학자를 높이 받들고 있으나, 김육처럼 정책 업적을 가진 조선 시대 인물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학문을 발전시킨 인물과 정책 업적을 쌓은 인물에 대한 균형감을 가진 관심과 평가는 조선 왕조의 이해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와 정책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임진왜란이 이순신과 유성룡을 역사적 인물로 만든 것처럼, 전란 후 왕조 중흥을 위한 제도 개혁이 절실한 시대는 김육과 같은 인물을 요청했다. 위인은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
| 김육은 그다지 유명한 인물은 아닙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재상으로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삶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광해군 시절 계축옥사가 일어나면서 성균관에 있던 김육은 벼슬을 내던지고 가평에서 직접 밭을 가는 농부로써의 삶을 삽니다. 그것도 10년이나 말이죠. 그러다가 인조반정때 다시 등용되어 벼슬을 합니다. 그가 인생의 황혼에 있을 때 영의정이 되어 대동법을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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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창 교수의 「김육 평전」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김육” 하면 대동법과 동전유통을 시행한 조선의 관료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양란 이후 우리나라는 송시열의 성리학에 매달려 예송논쟁과 사색당쟁으로 날을 지샌 것,. 그 바람에 영ㆍ정조 시대의 문예부흥 기운을 살리지 못한 것, 국제정세에 어두워 쇄국정책으로 외침을 자초한 것 등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김육 평전」은 이러한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전쟁으로 피폐된 민생을 안정시키는 한편 행여 민심이 이반될까봐 노심초사했던 경세가가 17세기 전반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실시하여 방납의 폐해를 불식한 것, 동전을 유통시켜 시장기능을 활성화한 것, 시헌력을 도입하고 수차와 수레 이용을 독려하여 생산성을 높인 것, 그리고 정부가 못하니 가업으로라도 인쇄출판을 발전시키고자 한 것은 잠곡 김육의 공이었다. 4.15 총선 결과를 보면 아직도 진영논리가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가 김육과 같은 실용주의/공리주의 실천가가 있는 줄 모르고 송시열 같은 이념논쟁만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염려된다. 이 책을 읽고 또 읽어 김육이 평생 실천했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영문판)에 김육의 기사가 토막글로 그친 것을 보고 이 책을 참고하여 상세한 해설을 추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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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지적한 대로, 잠곡 김육은 그동안 경제사 분야에서 대동법의 시행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제대로 다룬 저서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의 출간은 상당히 반갑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김육의 일생을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로 나누어 자세히 서술하고 김육의 사상과 그의 업적, 역사적 의의를 다룹니다. 인물 평전으로써 상당히 짜임새 있는 구성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평전은 이런 형태로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약간 경제사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치사 측면에서도 김육을 자세히 조명하니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정치사 면에서든 경제사 면에서든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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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경지를 만나면 흔히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한다. 강자를 원망하고 사회를 저주하고 천지를 원망한다. 얼핏 보면 영웅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기를 약하게 한 것은 다른 강자가 아니라 자기며, 자기를 불행케 한 것은 사회나 천지나 시대가 아니라 자기다. 망국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제이,제삼의 정복국이 다시 나게 되는 것이다.자기 불행도, 자기 행복도 타에 의하여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련하기도 하지만 가증스럽기 더할 수 없다. 자각과 노력은 만사 성공의 원천이 된다" <김육 평전>을 읽고 가장먼저 떠오른 문장은 한용운의 말이다 김육의 생애가 그러했다 역사에 남은 인물들 대부분 화려한 머리와 집안을 자랑할 때 어려서부터 부모를 모두 잃고 8년동안 상을 치르며 10대와 20대초반을 보냈다 결혼하여 낳은 자식도 둘을 떠나보내고 부모와 자식을 모두 가슴에 묻은채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김육의 생애 34살때 잠곡으로 내려가 나무를 해 숯을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어떠한 기반도 없는 타향에서 기반을 닦고 살아나가야 하는 길을 만들었던 김육은 자각과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책을 읽는 독자인 나는 여러번 같은 부분에서 김육의 생애를 돌아본다 불행한 경지를 만났을 때 김육이 하늘을 원망하고 조상을 탓했으면 어땟을까, 제도를 원망하고 정치를 탓하고 사회를 원망하면 어땟을까, 그러나 김육은 자신을 탓했다, 답답한 가슴을 인정하고 끌어안은채로 낙향하여 술이나 퍼마시며 한탄할수도 있었을 그 10년이라는 시간을 독서하고 농사짓고 나무하며 끝없이 노력했다 해서 <김육평전>을 다 읽고나서 떠오른 한용운의 말처럼 김육이 제일 처음 바로잡은것도 자신이기에 책에서 줄줄이 강조하는 수기(자신을 다스리고) 치인(타인을 다스린다)이라는 유학의 정신을 가장 잘 실천한 유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육은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출세를 이용하여 타인의 행복을 위해 힘썼다, 한용운은 (자기 행복도 타에 의하여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련하기도 하지만 가증스럽기 더할 수 없다)라고 말했지만 김육은 자신의 생애를 건 노력으로 자신의 고통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는 출세를 자신을 위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쏟아부었다. 해서 젊은날 침체하고 조소에 익숙했을 김육이라는 한 사람의 불행한 경지는 자각과 노력으로 인해 만사 성공의 원천이 되었으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그렇게 이룩한 성공을 망국의 원인을 제거시키는데 쏟아부어 어쩌면 더 빨리 무너질수도 있었을 조선이라는 한 국가의 생명에 백년 혹은 이백년의 숨결을 더 불어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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