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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mate3416/222036159673 < 책방 하고싶은 면서기 >
남편과 나는 주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이번 두통은 좀 오래 가네 / 나이 들어서 그래 이 집 짬뽕이 원래 이렇게 매웠나? / 나이 들어서 그래 팔에 점이 생겼어 / 나이 들어서 그래 글씨가 옛날이랑 달라진 거 같아 / 나이 들어서 그래 이상해, 맥주 고거 마셨는데 배불러 / 나이 들어서 그래 나 지금 뭐하려고 그랬지? / 나이 들어서 그래
선창자와 응답자를 적어두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가, 무엇으로 말을 꺼내든 상관없다. ‘나이 들어서 그래’는 마스터키처럼 다 들어맞는다.
남편은 세무직 공무원이다. 그가 속한 도道의 세무부서는 매년 시市, 군郡 세무직 직원들을 모아 정책제안과 발표를 진행한다. 한정된 분야에서 매년 정책을 만들어 낸다는 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매일의 업무를 하는 와중에 제출할 원고를 쓰고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는 것, 많은 사람 앞에 서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당연히 자원자가 없어 세무직 간에 순번을 정해놓고 한 번씩 임무를 다하기로 합의 했다. 7급 이하 직원들이 먼저 고난을 이겨냈고 6급 팀장들의 차례가 되었으나 (역시나) 실망스런 대답을 내놓았다. 후배직원과 ‘함께’ 분통을 터뜨리려 했던 남편은 이런 답을 들어야 했다. (남편) “이럴 거면 순번을 왜 정해놓은 거야. 젊은 직원들이 했으면 좋겠대.” (후배) “네? 그럼 저 혼자 하라는 거잖아요!”
간단히 정리하면 이쯤 된다. (남편) “젊은 우리가 하래!” (후배) “그럼 나 혼자!”
나는 행정직 공무원이다. 여권업무를 보던 시절, 갱신신청을 받으며 ‘삶=중력’이라는 공식을 구했다. 5년 전, 10년 전 싱그럽고 여유있던 표정이 슬픈 눈, 고집스러운 입매로 변해버린 것은 중력 때문이라는 것. 그들이 각박한 사람이 되어 무서운 표정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단지 중력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는 것. 그들의 탓이 아니라, 중력 때문이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했다. 서글퍼하거나 동정할 필요가 없잖은가.
올해 서른여덟이 되었다. 나이에 대해 민감하지도 아쉽지도 않지만 확연해지는 신체적 변화와 두뇌활동을 감지할 때면 조금 씁쓸하긴 하다. 까부네, 소리 들을 말이지만 내 나이 즈음을 살거나 지나온 분들이라면 알 것이다. 분명 전과 다르다. 눈코입도 지능도 몸의 능력도 당최 위를 향하지 못하고 아래로만 흐르니 아무리 섭리라 해도 그래, 솔직히 속상할 때 종종 있다.
나는 이런 노인을 좋아한다. ‘자네들, 세상은 이런 곳이라네.’ 가르치는 대신 ‘얘들아, 나한테 이런 일도 있었단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 ‘이런저런 위대한 것들이 다 내가 한 일이지.’ 자랑 대신 ‘이런저런 멍청한 짓들도 내가 한 일이지.’ 용기를 주는 노인. ‘내가 누구, 누구와 각별했어.’ 처세 대신 ‘나는 누구, 누구의 어떤 점이 부러웠단다. 닮고 싶었지.’ 지혜가 있는 곳을 넌지시 일러주는 노인. 억지스런 농담으로 호응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웃긴 말을 할 줄 아는 노인. 그리하여 뽐내지 않았는데 폼 나는 노인.
십년 전, 노인업무를 보며 인간에 대한 회의로 심각하게 전종(轉種?)을 고려한 적이 있었다. 지혜, 포용, 미소, 너그러움, 필요한 말을 적시적소에. 이런 것들이 오랜 세월을 살아낸 인간이 지닌 것들이라 생각했었다. 후배인간은 선배인간에게 조언을 구하고 속상함을 나누고 가끔은 눈물을 보여도 괜찮은, 그런 훈훈함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종족의 뛰어난 미덕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상처 받았다. 노인들의 아집과 노여움, 편협과 독선을 마주할 때마다 ‘저는 이만 탈퇴하겠습니다. 절차가 어떻게 되죠?’ 묻고 싶었다. 하필 큰꼬마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였다. 주변에서 ‘아기 가졌을 때 누구 미워하면 애가 그 사람 닮는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저 표독스러운 얼굴과 무례를? 세상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수련했다. 미워하지 말자, 미워하지 말자. 그 때의 경험들이 나이듦에 대한 공포가 되어 남았다. 노인에 대한 편견이 되면 안 된다, 나이들 나에 대한 경계로만 기억하자 다짐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훨씬 많은 노인들이 나를 인간종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상식적 인간으로 나이 든다는 것은 사실 아주 고된 날들을 살아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제 조금은 안다. 그리하여, 다분히 또는 너무나 상식적인 노인들을 만날 때마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나도 당신처럼 나이 들고 싶어요, 고백하고 싶어진다.
미국의 계관시인 도널드 홀Donald Hall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읽었다. 원제인 ‘Essays After Eighty’보다 한글판 제목이 좋다. 「문이 없는 집」의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에서 구한 듯한데 잘 지었다. 표지 디자인도 좋다. 정돈되지 않은 백발의 머리칼, 스타일과 색조합을 전혀 고려치 않은 패션(테러)의 노시인이 나이듦에 대한 몸의 경험과 마음에 담긴 상념을 열네 편의 에세이에 담았다. 혹 고상한 문체와 아름다움이 뚝뚝 떨어지는 문장을 기대한다면 차라리 그의 시를 찾아 읽어보는 게 좋겠다. 대신, 감추거나 잘나 보이려 애쓰지 않는 에세이가 좋은 에세이라는 자명함을 겪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읽는 중간 흐흣, 웃음 터질 수 있으니 공공장소에서라면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라는 당부도.
“밤이 밀려오는 시각 언덕 꼭대기에 혼자 걸터앉아 있는 것이다.” / 죽음, 150쪽 여든 이후의 삶에 대한 도널드 홀의 문장을 흰 종이에 연필로 그려보았다. 어둑해지는 하늘, 평원의 작은 언덕, 굽고 왜소한 노인. 혹시 그가 몸을 곧게 세우고 있었다면, 쭉 뻗고 앉은 다리에 근육이 있고 땅을 짚은 손마디가 아직 젊었다면 문장을 읽는 마음이 조금 덜 서글펐을까. ‘밀려온’다는 밤 앞에서 조금 덜 두려울 수 있었을까. 멈추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느 곳을 향해 계속해 흐르고 있는 그림을 그려두고 마음이 조금 아팠다.
나이 든다는 것을 나이 든 그는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는 아내 제인이 그의 어머니의 말년을 그린 시―커다란 원을 그리며 달리던 말이 점점 원을 작게 그리다 마침내 멈추어 버리는―를 회상하며 자신의 몫의 원이 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크게 원을 그리며 달리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 시원하고 자유로웠다. 바람을 맞는 근육이 터져나갈 듯 삶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씩 작아지는 말발굽의 궤적을 따라가며 흥겨움을 잃는다. 차츰 속도를 늦추더니 걸음을 걷고 이내 멈추어 버린 말의 모습이 고단하다.
10년 단위로 흘러버린 세월을 회상하기도 한다. 겁내던 30대, 술로 흘려보낸 40대, 전성기였던 50대와 60대. 암과 아내의 죽음. 그 후의 여러 해는 마치 다른 우주로 여행을 온 것 같았다고 한다. ‘노령이라는 세계는 미지의 우주이자 뜻밖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낯선 것이고 노인들은 별개의 생명체다.’ 미지의 세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젊은이들의 것이라 생각해왔다. 노인들의 삶은 매일이 같을 테니까, 새로운 일이나 흥미로운 사건은 없을 테니까. 그 나이를 살아보지 못한 자가 저지른 모자란 추측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자신의 노쇠를 매 순간 마주해야 하는 그들의 일상이 같을 수 없음을, 친절의 가면을 씌워 나이의 권력을 행사하는 젊은이와 마주쳐야 하는 그들의 불안을 나는 짐작하지 못했다.
조현욱, 최희봉 번역가는 시인의 글을 옮기며 천연색의 단편영화를 관람한 것 같았다고 했다. 에세이를 읽은 독자라면 이야말로 정확한 독서후담이라 고개 끄덕일 것이다. 여든이 넘은 노구의 몸에서 이렇듯 싱싱하고 유쾌하고 진솔한, 살아있는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한다. 짐작컨대 이는 자신의 생과 글(어쩌면 그것이 그것일 테지만)에 대한 솔직함과 성실함으로부터 가능했던 것이리라. (실제로 이 책에 실린 열 네 편의 글은 30번에서 80번의 퇴고를 거쳤다.)
‘나는 여든을 넘겨 생존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쾌활하게 생활한다.’ 그는 건강한 마음으로 나이 든 삶을 살았고, ‘어제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아서 잠드는 사람이 아니다.’ 매일 새로워지는 몸으로 역시 그 삶을 살았다. 여든아홉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 파란색 안락의자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고, 구부정한 등으로 글을 쓴 이 노시인을 아마도 나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이미 죽은, 나이가 아주 많았던 시인에게 ‘우리 언제 한 번 만나볼래요?’ 묻고 싶은 마음으로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의 독서후담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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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혼자 힘으로 요리를 해 먹지 못하고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홀아비용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운다. 손가락의 움직임도 둔하고 옷의 단추를 끼우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린다... 이번 겨울부터 나는 머리에 뒤집어써서 입는 셔츠를 착용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전했지만 80세가 되던 해 두 차례 교통사고를 냈다. 누군가가 내 차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기기 전에 운전을 그만두었다. 가게나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누군가가 나를 태워주어야 한다... 나는 내 몫의 원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노년이란 연속적인 상실의 통과의례다. 마흔일곱 살이나 쉰두 살에 죽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그게 더 바람직하다. 탄식하고 우울해해 봤자 좋아지는 건 없다. 종일 창가에 앉아 새와 헛간과 꽃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편이 더 낫다. 나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기쁨이다.” (pp.13~14)
“나는 평생 노인을 사랑하며 살았고 이제 자연법칙에 따라 내 자신이 노인이 되었다. 세월은 10년씩 흘러갔다. 서른 살은 겁나는 나이였고 마흔 상리 되던 날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눈치채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50대가 최고였는데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60대가 되자 50대의 행복이 연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암에 걸렸고 아내가 죽었다. 그 후의 여러 해를 돌아보면 마치 다른 우주로 여행을 온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해도, 별수 없다. 노령이라는 세계는 미지의 우주이자 뜻밖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낯선 것이고 노인들은 별개의 생명체다... 우리는 여든 살이 되면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잠시라도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반드시 깨우침이 온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바로 느끼는 것이다...” (p.18)
도널드 홀 Donald Hall / 조현욱, 최희봉 역 /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여든 이후에 쓴 시인의 에세이 (Essays After Eighty) / 동아시아 / 239쪽 / 2020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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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선물하려고 구입했어요. 생일 건물과 함께 주려고요. 40대의 아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 궁금하네요. 늙어가는 것에 대해 걱정이 있는 걸까요. 아내가 다 읽어본 후 저도 읽어볼 생각입니다. 늙어가는 것에 대한 블안함이나 지난 삶에 대힌 후회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먼저 그 과정을 겪은 작가의 삶과 철학을 살짝 엿보는 정도로 보려고요. 다 읽고 블로그에 또 글을 남겨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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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는 것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항상 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최근 느끼고 있다. 작년과는 다른 몸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 많던 머리카락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눈이 침침해져서 밤에는 책을 볼 수가 없다. 치유가 될 수 있다면 어떠한 방법이라도 써보고 싶지만 노화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늙어 가는 것이 걱정인 나에게 "도널드 홀"의 에세이는 선물처럼 다가왔다. "달구지를 끌고" 그림책 작가이기도 한 그가 여든 이후에 쓴 에세이라고 한다.
(13p) 나는 내 몫의 원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낀다. 사실 노년이란 연속적인 상실의 통과의례다. 마흔일곱 살이나 쉰두 살에 죽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그게 더 바람직하다. 탄식하고 우울해봤자 좋아지는 건 없다. 종일 창가에 앉아 새와 헛간과 꽃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편이 더 낫다. 나의 일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기쁨이다.
(18p) 세월은 10년씩 흘러갔다. 서른 살은 겁나는 나이였고 마흔 살이 되던 날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눈치채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50대가 최고였는데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60대가 되자 50대의 행복이 연장되기 시작했다.
(198p)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 내가 균형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을 걱정한다. 일어나고 앉는 게 힘들어지는 걸 걱정한다. 어제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앉아서 잠드는 사람이 아닏. 매일매일 게으름이 나를 무기력하게 한다.
(208p) 내가 서른이었을 때, 난 미래에 살았었다. 왜냐하면 현재가 견딜 수 없었기 떄문이다. 내가 쉰살, 예순 살이었을 땐 사랑과 일로 충만한 날들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노년은 의자에 앉아 있다. 저술을 약간 하고 점점 작아져간다. 기진함은 에너지를 막는다.
여든이 넘어 쓴 그의 에세이는 매우 솔직하다. 워싱턴에 갔던 날들, 시 낭송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수염을 세 차례 기른 이유, 아내와의 여행이나 미술관 관람 등 소소한 삶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흡연에 대한 것과 자신의 육체적 건강 상태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노년의 특징으로 거의 잊힌 시대에 대한 얘기를 자꾸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삶에 대한 기록들을 읽으며 나의 여든살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그 때 나도 그처럼 지난 날을 추억하며 글로 남길 수 있을까?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잘 보관하고 잊히지 않도록 마음 속에 간직해 두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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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홀이라는 미국 계관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이제 중년에 들어가는 나이가 되면서,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80세의 시인이 쓴 산문이라.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산문이다 보니 책은 저자의 생각이 담겼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국적도 살아온 방식도 모두 다른 저자의 책을 읽고 있자니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두분이 보고싶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두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그 목소리가 자꾸 떠올라서. 내용은 유쾌하다. 삶이 늘 즐거운 분은 아니셨으나, 그 삶을 즐기고자 살아간 저자의 인생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40대에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관에 체포된 그는 80대에는 더이상 운전하지 못한다는것을 깨닫고 차를 팔아버린다. 노인이 되어서는 움직이기 힘들어했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젊을 때는 현재를 견딜수 없어 미래를 꿈꿨는데, 이제는 하루를 현재를 살아간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글에서 부모님이 투영된다. 나이들어가는 부모에게 연민을 가지지 못하는 자식이, 얼마나 부모를 슬프게 하는지.
책은 밝고, 유쾌하게 쓰여졌는데, 마음은 슬프다. 돌아가신 분들이 그립고, 곁에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해지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의 조부모님께서 하시던 말을 이렇게 책으로 써내어볼껄. 그리울때마다 읽게.
Good!
'내가 늙고 쇠약해진다는 사실의 증인 역할 을 조용히 하고 있다. 거울을 보면 풍성한 수염이 보인다. 내 뒤통수가 대머리라는 건 나는 전혀 모른다. 내가 서른이었을 때, 난 미래에 살았었다. 왜냐하면 현재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쉰 살, 예순 살이었을 땐 사랑과 일로 충만한 날들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노년은 의자에 앉아 있다. 저술을 약간 하고 점점 작아져간다. 기진함은 에너지를 막는다' p.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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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홀이라는 미국 계관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이제 중년에 들어가는 나이가 되면서,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80세의 시인이 쓴 산문이라.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산문이다 보니 책은 저자의 생각이 담겼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국적도 살아온 방식도 모두 다른 저자의 책을 읽고 있자니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두분이 보고싶어서. 돌아가시기 전에 두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그 목소리가 자꾸 떠올라서. 내용은 유쾌하다. 삶이 늘 즐거운 분은 아니셨으나, 그 삶을 즐기고자 살아간 저자의 인생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이다.
40대에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관에 체포된 그는 80대에는 더이상 운전하지 못한다는것을 깨닫고 차를 팔아버린다. 노인이 되어서는 움직이기 힘들어했던 어머니를 떠올리고, 젊을 때는 현재를 견딜수 없어 미래를 꿈꿨는데, 이제는 하루를 현재를 살아간다.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의 글에서 부모님이 투영된다. 나이들어가는 부모에게 연민을 가지지 못하는 자식이, 얼마나 부모를 슬프게 하는지.
책은 밝고, 유쾌하게 쓰여졌는데, 마음은 슬프다. 돌아가신 분들이 그립고, 곁에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해지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의 조부모님께서 하시던 말을 이렇게 책으로 써내어볼껄. 그리울때마다 읽게.
Good!
'내가 늙고 쇠약해진다는 사실의 증인 역할 을 조용히 하고 있다. 거울을 보면 풍성한 수염이 보인다. 내 뒤통수가 대머리라는 건 나는 전혀 모른다. 내가 서른이었을 때, 난 미래에 살았었다. 왜냐하면 현재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쉰 살, 예순 살이었을 땐 사랑과 일로 충만한 날들이 해마다 되풀이되었다. 노년은 의자에 앉아 있다. 저술을 약간 하고 점점 작아져간다. 기진함은 에너지를 막는다' p.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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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정말 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미국적이고, 너무나도 시인의 삶에 근거한 글이다보니... 기대하던 늙는 것에 대한 걱정이 공감이 되는 부분이 적었습니다. 물론 종종 격하게 공감이 되는 통찰력있는 문장이라든지, 파안대소가 나올만큼 시인으로서의 위트가 담긴 부분들이 있었으나 전체적인 느낌에 영향을 줄만큼은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바이백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