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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멀리 가냘픈 두 여성작가가 보이고, 그들을 바라보는 두 마리의 개의 뒷모습이 있다. 두 마리의 개는 책이 쌓여 있고, 원고들이 연필과 함께 흩어져 있으며, 담배가 놓여 있는 식탁, 혹은 책상에 앉아 있다.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과 《명랑한 은둔자》을 거의 다 읽을 즈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기서 ‘두 여성작가’란 말할 것도 없이 캐롤라인 냅과 게일 캘드웰이다.
캐롤라인 냅은 2002년 4월 폐암 말기를 선고받고, 그로부터 7주 후 죽는다. 그 사이에 오랜 연인 사이였던 모렐리와 결혼식을 올렸다. 게일 캘드웰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억하며 이 책을 썼다. 캐롤라인 냅과 게일 캘드웰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성장했으면서도 보스턴에서 ‘개’를 매개로 만나 7년 간 진한 우정을 나눴다. 모두 글을 쓰는 작가였고, 개를 키우며 애정을 쏟는 애견가였다. 둘 다 알코올 중독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수영을, 또 한 사람을 로잉(캐롤라인 냅의 책에선 조정)을 즐겼고, 서로에게 자신이 자신 있는 운동을 가르쳤다. 둘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둘의 사정을 조금은 알고 책을 읽으면서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다. 세상을 떠나고 자신을 기억해주며 책을 쓰는 이가 있는 있다는 게 행복한 것일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아 죽은 이를 추억하며 글을 쓰는 이가 더 행복한 것일까? 남아 있는 사람이 자신을 그토록 그리워한다는 게 더 행복한 일일 것 같기도 하고, 죽음이란 의식이 사라지는 것이니 의식을 가지고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쓸 정도로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일 것 같기도 하다. 이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여러 차례 되내이며 책을 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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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길로 돌아갈까..제목만 보면 얼핏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의 여유있는 에세이가 아닐까 싶은 제목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내용을 보면 굉장히 삶에 밀착한 이야기라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책은 소설은 아니고 게일 캘드웰이라는 작가와 캐롤라인 이라는 작가의 우정이야기입니다. 두 여성작가는 개를 매개로 친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책 표지에 그려진 뒷모습을 한 동물의 모습이 개인가봅니다. 저는 처음에 고양이인줄 알았답니다. 사실 저도 개를 키워봤지만 개를 키워본 사람들과는 금방 친해지고 이야기거리도 진짜 많답니다. 그런데 개를 한번도 키워보지 못한사람과는 개 이야기를 할때 할 이야기가 없답니다. 공통점이 하나만 있어서 사람들은 금방 마음을 열고 친해지기 좋은것 같습니다. 개를 사랑하는 두 여인..그리고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는 사람들..당연히 사람들은 심각하던 아니던간에 자신들만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라던지 여러가지 우울증이라던지..이들의 우정도 개를 매개로 이어졌지만 서로의 깊은부분까지 공유하고 대화하면서 그들은 깊은 우정을나누게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친구에게 알려준다던지..서로 로잉을 하면서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둘은 아주 친해집니다. 사람을 떠내보낸 사람들은 깊은 공감을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가족과는 또다른 친구의 부재..정말 큰 상실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넓은 인간관계보다는 친한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가 더욱 소중하게 됩니다 내 주변에 있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사람.. 하지만 너무 가까워서 평소에 소홀하게 대하게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있다면 정말 좋을것 같습니다 이책을 읽자 그런사람에게 더욱 잘해주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항상 옆에있어서 소중함을몰랐던 존재..내 친구나 가족..그들에게 전화 한통 걸어보고 싶게 만들어주는 책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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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여자들만의 우정을 이야기 한다 우정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는 많은데 대부분이 남자들의 우정만을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 이번에 읽은 이 책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우정이면 다 같은 우정이지 남자들만의 우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편견으로 가득한 남성 우월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게일 캘드웰과 캐롤라인 냅의 우정을 다루는 동시에 그들의 우정이 깃드는 사이에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한 그들의 애완견 클레멘타인과 루실의 이야기도 들어 있는데 이처럼 이 책은 두 여성의 우정뿐만 아니라 그들이 아끼던 애완견과의 우정도 애틋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히 밝혀진 사실은 아니지만 동물도 느낌이 있으므로 그들이 인간에게 가지는 우정도 있을 것이라 느껴지고 그것을 작가는 그리고 싶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우리의 우정은 대부분 같은 처지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싹트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나이도 여덟 살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자라온 환경도 너무나 달랐다 그런데도 그들이 급속도로 우정을 쌓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이 키우는 애견에 대한 사랑의 공감이 가장 컷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렇게 가까워진 그 둘은 서로의 상처를 서로 들여다보고 나누고 서로 공감하며 서로가 서로를 마치 토플갱어와 같은 심정적 느낌으로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렇게 둘이 아니 넷이 즐거운 우정을 삶을 살던중 캐롤라인 냅이 폐암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나는 동시에 게일 캘드 웰이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교감을 가지고 자신의 솔직한 느낌과 감정을 서로 공유하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그녀의 애완견 클레멘타인도 세상을 떠나게 되어 우리 인생에서 겪고 싶지 않지만 꼭 겪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이별을 겪고 깊은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이별을 하고 난 후 그녀의 부재로 인해 그녀는 생각한다 “ 인생은 반박의 여지 없는 전진운동이고 죽은 이들 너머를 겨냥해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몇 달간 나는 시간의 폭력성으를 실감했다 우리를 태운 대형 바지선이 캐롤라인만 기슭에 버려두고 떠나는 듯했다 하루는 뜰 안 나뭇잎들을 치우다가 불현듯 사라져버린 존재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일상의 모두를 허망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사랑하던 이의 죽음을 털고 일어나는 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내적 성숙을 비로서 이루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하는 이를 현실에서 잃고 난 후 마음속에서 비로소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모습을 잔잔히 그려내 이 책을 읽고 좀 더 성숙한 마음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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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재밌을 것 같지 않은 제목에 눈길이 간 것은 행간에서 읽은 캐롤라인 냅이라는 이름때문이었다. 어디에서건 어느때 들려지건 간에 내겐 잊을 수 없는 이름, 충격적일만큼 글을 잘 써서 한번 읽고는 이름을 외울 수 밖엔 없었던 이름. 캐롤라인 냅... 그녀가 이미 몇 년 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는 얼마나 안타깝던지, 아마 내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본적이 없는 사람임님에도, 거기에 이미 죽은 사람임에도, 단지 내가 그녀에게 아는 것이라곤 그녀가 쓴 책 몇 권 읽은 것 뿐임에도, 캐롤라인 냅은 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강렬했고, 솔직했으며 독특했다. 그녀의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한 글들을 통해 나는 어느 여류 작가에게서도 얻어내지 못하는 위로를 얻었고, 공감을 느꼈으며, 그녀가 누구보다 가깝게 생각되었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그렇게 가깝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고통에 대해 조금 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주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끝장을 내기 전까진 자신을 내려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런 지성적인 태도와 집요함이 난 마음에 들었었다. 왜냐면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늘 고통 앞에서 주춤대며 망설이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고통의 크기를 보여 주었고, 그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용기를 보여 주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그녀는 현실 속의 영웅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드링킹>을 보면서부터 그녀가 이젠 좀 행복해졌기를 바랐었다. 이런 고통과 갈등과 처절한 사투를 뒤로하고 이젠 편안하게 살기를 말이다. 그러다 <남자보다 개가 좋아>라는 책을 보고는 그녀가 멋진 동반자 개 루실을 얻었다는 말에 매우 흐믓했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말이다. 2002년 41살의 나이로 폐암으로 그녀가 사망했다는 말을 들은 나는 <남자보다 개가 좋아>에서 그녀가 썼던 구절에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과연 누가 나를 지킬까 라는...가까운 친구도 애인도 남편도 없었던 그때, 그녀는 자신에겐 루실이 있으니 쓸쓸하게 죽지는 않을 거라고 썼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굉장한 위로가 된다는 뉘앙스를 담아. 물론 그 말은 개가 얼마나 충실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어가는 순간을 담담하게 지킬 수 있는 애정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지,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것을 가정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자식을 먼저 두고 떠나길 원하는 부모가 없듯, 냅에서도 가장 두려운 일이 자신이 그녀의 개 루실보다 먼저 떠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바라던 대로 풀려가지 않는 법. 그래서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때 내가 걱정한 것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냅이 외롭게 죽어갔을까 라는 점과 루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것.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기에, 답을 얻는 것을 불가능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답을 들려 준다고 나타났을때 내가 얼마나 반가웠을지 짐작이 되실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 꽂힌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임에도 캐롤라인 냅의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덥썩 손을 잡고 싶어지던 그녀, 이 책의 저자 게일 캘드웰이다. 우선은 그녀가 이런 회고록을 내어 준 것에 무척 고마웠다. 이책을 쓰는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 과정이었던지 간에, 나는 실제로 그녀가 이 책을 써 냈다는 것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왜냐면 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으므로,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허무했었다. 난 알고 싶었다. 그녀가 책속에서 미처 드러내지 않은 모습은 어떠한지. 글에서 보는 겸손함과 극도의 자기 절제력을 감안하면 분명 그녀는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을 보여줬을 것이었다. 최악을 보여주면서, 최고의 모습은 쑥쓰러워서, 내진 자신에게 그런 괜찮은 자질이 있는지 알지 못해서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 내 짐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직감은 이 책을 통해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녀는 정말로 대단히 매력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매력적인지 이해하지 못하는...아마도 그런 점 역시 그녀의 매력중 일부에 속했겠지만서도. 이 책은 두 여류 작가가 나눈 7년간의 우정을 그린 책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고, 8살 차이가 나는 언뜻 보기에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둘은 개를 통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그 둘의 우정의 연차가 7년밖에 되지 않는 것은 그 중 한 명인 냅이 죽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할 친구라고 생각하고, 늙어서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을 줄 알았던 우정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그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죽음이란 그렇게 무정한 것이다. 타협도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게일이 말했듯이 거대한 부재를 남겨 놓은 채, 그곳에서 활보하라고 산 사람을 밀어넣고는 그만이다. 만약 죽은 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우린 그것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 안에 떨어져 벌벌 떨면서 이 고통이 언제쯤 끝이 날까 두려워할 뿐... 그리고 깨닫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살아있고,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계속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사려깊고 우아했던 냅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자신보다 남편이나 게일이 더 상처를 입을 것을 걱정한 것은 얼마나 정확한 예견인지. 물론 그것은 죽음 이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단순한 추측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지 말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게일 캘드웰은 10년이 지난뒤 이 책 속에서 비로서 그녀를 추억한다. 그녀의 모든 것과 그녀와 나눈 우정,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그 풍부했던 삶의 여정들과 남겨진 자의 비통한 슬픔까지...그래서 사람들이 없다고 단정하는 여자들의 진한 우정에 대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말이 더 하고 싶어서 먼 길로 자진해서 돌아가는 단짝 두 친구에 대해서. 이 책을 보면서 우선 가슴이 아팠다. 마치 내가 게일인 것처럼. 아니 게일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라면 견딜 수 없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 고통을 묵묵히 견디어낸 게일이 대견해 보였다. 물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서도... 둘째는 냅이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서 안도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7주만에 사망을 했다는데,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 둘려싸여 간병을 받았다고 한다. 알고보니 역시나 냅은 엄살장이였더라. 그녀 주변에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그걸 알아 차리지 못했다니, 어딘지 그녀 답다. 거기에 20대와 30대를 자신을 파괴하는데 몰두하는 듯 보였던 파괴 성향이 40대 즈음엔 강렬한 삶의 의지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그녀의 책을 보면서 늘 그녀가 불행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말이다. 그녀가 삶의 방향을 선회해서 어느때보다 살고 싶어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이지만 내게는 위로가 됐다. 왜냐면 나는 그녀가 이놈의 세상,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는데 잘 됐다 라면서 죽어갔음 어쩌나 걱정했었으니 말이다. 난 그녀가 그런 식으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음 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영리하며,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해야 하는 여자였고, 이미 넘치도록 시행착오와 고통을 겪어낸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녀가 어느 시점에서는 평화를 찾았기를 바랐었다. 그런 내 생각은 아마도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었는가 보다. 그녀의 장례식엔 비가 오는 날임에도 사람들이 넘쳐 났었다고 하니 말이다. 만약 그녀가 그걸 봤더라면 수줍어 하는 성격에 그다지 달가워 하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랑스러워 하진 않았을지. 자신이 그렇게나 사랑받는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게 되었는데 냅은 죽기 전에 사랑하던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루실은 그에게 맡겨지고. 그녀의 강렬했던 삶을 생각하면 죽음의 잔인함만 뺀다면 완벽한 결말이다. 그래서 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나쁜 죽음은 아니라고 말이다. 안도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명백한 것은 우리는 그녀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 남아서 계속 글을 썼더라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지 나는 궁금해 할 것이다. 그녀에겐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 있었으니까. 게일이 그녀와 더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침반을 잃어버린 그런 허전한 심정이 아닐런지...우리 모든 여성들에게 나침반이 되주었던 냅. 그녀가 평안하게 영면하시길. 그리고 이젠 아마 루실도 죽었지 않을까 싶은데, 이봐~ 루실! 천국에서 냅을 만났거든 그녀를 잘 보살펴 주렴. 그녀 덕분에 우리의 삶이 조금은 충만했었다는걸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고도 전해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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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로 돌아갈까? 처음 제목으 봤을때, 과연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궁금했었다. 우리는 계속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나 좀더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길을 걸어갈때 이런예기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사이에서도 만약 산책 중이라면 빨리가는 지름길과 먼길로 돌아가는 길중에.. 좀더 산책을 같이 하고 싶고 예기를 함께 하고 싶을 때 "우리 먼길로 돌아갈까" 라는 말을 할 것이다. 이책에서 게일 캘드웰과 캐롤라인이 함께 산책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먼 길로 돌아갈까라는 문장은 함께 하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이 이책을 읽기전과 읽은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표지이 사진또한 다른 사람이 찍어준 사진에 대한 그림으로 두개가 두주인을 충성스럽게 기다리는 뒷모습, 두친구가 사이좋게 걸어오는 사진을 찍은거하고 한다. 그때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란환경은 서로 다르지만 서로 두여자 친구는 같은 점도 많았던것 같다. 직업이 작가라는 점, 애완견을 사랑하고 키우고 있다는 점, 담배를 피웠다는 점, 알콜주독자라는 점 등 같으면서도 다른 두 여자의 우정이 이야기를 읽으니 나는 마음한켠이 흐뭇해지기도, 아프기도, 왠지모를 그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특히 이책의 작가 게일 캘드웰이 죽은 친구 캐롤라인의 우정의 의미로 책을 써다는 점이 왠지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폐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을 떠난 캐롤라인에 대한 회상과 함께 했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 책이여서 아련한 감정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애완견 클레멘타인의 죽음도 너무 슬펐다. 물론 노견으로써 수명을 다해 죽는 것이였지만, 게일 캘드웰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슬프고 아픈 우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아니였다. 모든 생명은 언젠가는 죽는다. 나도 죽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것들은 영원하지 못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애완견을 잃는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슬픔일 것이다. 일정기간의 애도의 시간이 흐르고 살아있는 자들은 다시금 삶을 살아내야 한다. 생명이 다한 이들을 기억하며, 추억하며, 그들을 영원히 잊지않으며, 내 남은 삶을 충분히 살아내야 한다. 이책의 느낌도 그렇다. 함께 우정을 나눴던 친구도 10여년을 동거동락한 애완견의 죽음을 감당해 내면서, 오늘도 캐롤라인 냅은 성실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좀더 강해졌을 거예요. 딱딱해진게 아니라 단단해 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처럼 "상실은 나를 새롭게 만든어 줬어요." 어쩔수없이 맞이하는 상실은 우리를 힘들고 아프게 하지만, 그것 또한 담담히 받아들여 그들이 못다한 삶에 예우를 갖추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술을 지키고 글쓰기를 잃은 세상은 술이 없는 세상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나이 차이가 있어 각자 놓인 지점이 달랐을 뿐 우리는 같은 길을 따라 움직였다. 내가 빈둥댈 때는 그녀가 나를 몰아쳐주었고, 그녀가 과잉능률로 곤란에 처하면 예컨대 주차장에서 급하게 진입하다 보트 걸이가 차에서 거의 떼어질 때는 거꾸로 내가 그녀를 위로했다. 햇빛 찬란한 이오후에 캐롤라인은 죽어가고 있고 소피는 슛을 넣었다. 엄마! 그렇게아이는 지치지 않는 생명력으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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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먼 길로 돌아갈까’는 퓰리처상 수상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게일 캘드웰'이 세상을 떠난 소중한 친구 캐롤라인 냅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기록을 담고 있다. 저자가 '캐롤라인 냅'을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무렵이었다. 44살의 저자와 36의 '캐롤라인 냅'. 여덟살릐 나이 차이가 있지만 나이보다 더 큰 차이는 두 사람의 자라온 환경이었다. '게일 캘드웰'은 텍사스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자랐고 캐롤라인 냅은 교육도시 케임브리지에서 저명한 심리분석학자의 딸로 태어나 자랐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서로 다른 매체의 저술가로 활동하던 두 사람이 가까워진것은 1996년 무렵으로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었고 둘의 공통의 관심사인 개를 매개로 우정을 쌓아간다. 산책과 대화로 차곡차곡 엮은 둘의 일상은 외면상의 차이보다 훨씬 강하고 깊은 둘의 닮은 점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이처럼 은둔을 즐겼던 저자와 우을증을 겪었던 캐롤라인 냅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특별한 우정을 즐길 즈음 2002년 '캐롤라인 냅'이 폐암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난다. 저자는 깊은 슬픔에 빠진 저자는 캐롤라인 냅을 애도하고 그녀와 함께 보낸 7년간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이 책을 펴냈다.
친밀한 관계란 그런 것이다. 글로브 두 개로 공 하나를 주고 받으며 같은 즐거움을 나누는 것.(p.9)
캘드웰이 세상을 떠난 소중한 친구를 애도하며 적은 이 책은 우정 회고록이자, 행복에 대한 추억이다. 책은 친밀한 유대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수긍이자 고백을 담고 있다. 책의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책의 첫 문장인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다. 내게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죽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도 함께했다"라는 내용을 쓴뒤 일 년 동안 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또 저자는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아니라 이야기를 바꾸어 놓은 것임을 깨닫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이 책에서는 공통의 관심사인 개를 매개로 우정을 쌓아간 두 여성 작가의 특별한 우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연애의 참담함을 겪을만큼 겪은 싱글여성들에게 애견과의 단순하고 정직한 애착은 기대 이상의 위로가 되었다.공원을 걷고 숲을 걷고 산길을 걷는 산책은 자연앞에 겸손해지고 내면의 소리에 솔직해지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들이 여성들의 소소한 화제거리도 많이 등장하지만 젠더를 초월해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온다.두 사람의 우정을 보면서 우정과 상실의 읨미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게기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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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로 돌아갈까?' 라는 제목에서 풍겨지는 느낌은 그저 인생의 길을 천천히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 책의 내용과 일맥 상통하는 한 글귀였다. 학창 시절, 여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친한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면서 헤어지기 싫어서 '우리 돌아갈까?'라고 하며 귀가하는 길을 늘리고 늘려 헤어지면서 아쉬워하던 기억을...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 '먼 길로 돌아갈까?'를 이해할 것이다. 게일 캘드웰이 마흔네 살, 캐롤라인 냅이 서른여섯 살 때 둘은 개 훈련소 교관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공통의 관심사인 ‘개’를 매개로 우정을 쌓아간다. 개를 산책시키면서 둘은 친해지고 점점 우정이 쌓여가면서 산책길이 끝나가자 '먼 길로 돌아갈까?'하고 제안하게 된다. 즐거운 은둔자와 명랑한 우울증 환자가 그렇게 특별한 우정을 즐길 즈음, 캐롤라인 냅이 폐암선고를 받고 마흔두 살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두 사람의 7년간 우정이야기가 씌여진 이 책은 잔잔하다. 게일은 알콜 중독을 겪어냈고, 캐롤라인은 로잉을 게일에게 가르친다. 게일과 캐롤라인의 지인들은 두 사람의 이름을 헷갈려할 정도로 둘은 가까이 지냈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속에서 둘의 우정은 깊기만 한데 캐롤라인이 어느날 갑자기 떠나고 게일은 캐롤라인의 부재를 느끼며 그들이 함께 한 7년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처음엔 캐롤라인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 하고, 혼잣말로 자꾸 캐롤라인에게 물어본다던지 대화를 시도하는 게일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사람들의 모습과 똑같다. 9살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항상 도움이 되는 사이였던 것이다. 서로 다른 성향의 친구이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속에서 가족이상으로 가까이 지낸 사람들은 이렇게 한사람이 먼저 떠나고 나면 그 빈자리를 이겨내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이 책을 씀으로써 게일은 캐롤라인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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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여자들의 우정, 아니... 이것은 어쩜 서로에 대한 존경과 존엄과 또 사랑을 담아낸 작품이라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게일과 캐롤라인이 자신들에게 뗄래야 뗄수 없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개를 매개로 우정을 쌓아가고 또 서로의 공통관심사를 발견하고 추구해가는 과정이 낯설면서도 흐뭇하게 읽혔다.
어쩜 이 둘은 주위사람들이 더 먼저 알아봤다. 둘이 잘 어울리고,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될것이라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우정을 키워가던중 두사람중 누구 한명이 병으로 인해 먼저 떠나고, 남은자가 그를 기억하고 추억을 되짚어간다는 것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게일은 자신만의 주특기로 슬픔을 승화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말없이 지켜봐주는것 만으로도 충분한 힘이 되어주는 관계를 형성하려면 얼만큼의 노력이 필요할까?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인간관계가 팍팍하고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마냥 어리고 순수할때는 상대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갖고 있는 것을 그냥 보여주고, 서로 도우려 했었는데.
아무튼 게일과 캐롤라인이 서로 다른 환경과 나이차가 남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돈독하게 쌓아갈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키우고 있는 가족과도 같은 클레멘타인과 루실의 역할때문이었다. 그둘은 서로 걸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책제목이 탄생하게 된 배경 역시도 둘만의 시간을 더 갖고 싶어서 차안에서도 계속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고 싶어서 일부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멀리 돌아서 갔던 그녀들. 그렇게 이야기 해놓고도 집에 들어와서는 전화기를 붙잡았던 그녀들. 그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여자들이 전화로 실컷 이야기 해놓고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라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떠난자를 기억하고, 좋은 추억으로 계속 간직하는 게일 같은 친구가 있다면, 아마도 캐롤라인 역시 저 세상에서 마음이 포근하지 않을까?
아무튼 대단히 따뜻한 마음을 가진 두 여자의 우정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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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여자들의 우정을 두고 남자들의 우정에 비유해서 가볍거나 오래가지 못한다고 이야기들을 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건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퓰리처상 수상작가 게일 캘드웰과 베스트셀러 작가 캐롤라인 냅의 7년 우정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고 십년지기라는 타이틀을 가진 우정에 비하면 오래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지켜 온 우정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우정의 시간을 보내왔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마흔 네 살의 게일 캘드웰과 서른 여섯 살의 캐롤라인 냅이니 삶에 대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남자들의 우정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것처럼 남자들 역시도 여자들의 우정을 모두 이해하기란 힘들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두 작가 중에서 우리 나이로 치면 언니라고 할 수 있는 퓰리처상 수상작가 게일 캘드웰이다. 그녀가 또다른 여인인 베스트셀러 작가 캐롤라인 냅을 만난 것은 1996년 무렵이라고 한다. 솔직히 두 여성작가가 나눈 우정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동작가여야하지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가 게일 캘드웰 혼자인 이유는 캐롤라인 냅이 2002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캐롤라인 냅이 서른여섯 살 때 처음 만나 혼자 사는 여성작가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다른 공통점들을 간직한 두 사람이 그중에서도 '개'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통해서 우정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하고 아무리 N극과 S극이 끌린다고는 하지만 공통점과 공통 관심사가 주는 소통의 편암함도 중요한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흔 초반에 친구를 잃은 게일 캘드웰의 아픔이 상당했을것 같다. 그리고 그런 친구와 보낸 칠년 간의 우정을 게일 캘드웰이 이 책에 담았으니 내용을 담았는데 게일 캘드웰이 2001년 퓰리쳐상 비평부분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책의 표현에도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좀더 의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함께 할 수 없는 친구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면서 그녀는 과연 어떤 마음이였을지, 소중한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할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만한 책인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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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잠시라도 내 기쁨을 안아주시기를 아니라면 당신의 눈물로 내가 울게 하시기를
-에드나 밀레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 피정 때 참여한 유서써보기 프로그램 정도가 거의 다.. 그때 나름 주어진 시간동안 꽤나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너무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이라고 해서 그들의 밝고 즐거운 우정에 대한 탐색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보니 이건 죽음에 맞닿은 누군가를 보내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맞을 듯하다. 내가 본디 어둡고, 무섭고 이런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영화도 그러하고 책도 그러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는 이야기를 챙겨서 보지는 않는 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점이리라 생각해서 본 것이었는데 중반을 넘어서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너무 가슴 절절 남아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물론 한명이 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암에 대한 진단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죽음 이후에 미치는 영향 등이 뒷부분에 훨씬 크게 조명된다.
p.33 기질과 능력으로 보아 내가 느리게 걷는 사람이라면, 캐롤라인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라 할 만큼 빠르고 동작이 민첩했고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급하게 서두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단 내 평소 걸음을 확인하자 그녀는 속도를 늦추어 줄곧 내게 맞춰 걸었다. p. 59 우리는 이런 역학관계를 차츰 존중하게 되었다. 캐롤라인은 모범생으로 나는 반항아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워 각자의 지평을 넓혔다. p.97 "몰랐어요? 우리는 그런 결함을 사랑하는 거예요.“
걸음을 확인하고, 속도를 늦추어 맞춰 걷는 것, 그것이 우정의 시작이 아닐까? 우정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나아가는게 우정의 완성, 인간관계의 완성이라고 본다. 나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비슷한 성향,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될 정도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같아서 완벽하다기보다는 서로 존중할 부분을 존중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만남이 더 빛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정에 비해 더 집착에게되는 사랑의 관계에서 결함을 인정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p.41 나는 그날의 대화로 마음이 후련해진 한편으로 상처입기 쉬운 내 모습에 불안해졌다. 마치 캐롤라인과 내가 서로에게 무심할 수 없는 관계로 새로이 진입한 느낌이었고, 둘 다 발을 빼기엔 늦은 것 같았다. 울 둘이 함께인 그곳에서는 무엇 하나도 사소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반쯤 웃고 있었지만, 내 눈시울은 뜨거웠다. “왜 그래?”걱정스럽게 묻는 그녀에게 내가 대답했다. “나는 자기가 필요해.”
여기까지 보면...이게 레즈비언의 이야기인가 막 헷갈렸다. 중요하지 않는 건데도 자꾸 거기에 신경이 쓰이는 나는 뭐지? ^^::
p. 48 나는 상담치료사를 찾아갔다. 부드러운 말시에 마음이 넓고 특유의 빈정거림이 있는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고 곧 신뢰하게 되었다. 이 브루클린 출신의 유태인 치료사는 보들레르와 토니 모리슨을 곧잘 읊어주고, 내 농담에 껄껄대며 웃었다. 하지만 내가 잘난 척 고통을 감추려들 때는 웃지 않았다. 흐느끼며 나는 감정이 너무 격하고 도가 지나친 사람인 것 같다고 털어놓으니, 그는 이런 대답으로 내 울음을 그치게 했다. “만약 누군가 나더러 게일 당신에게서 지키고 싶은 오직 한 가지를 묻는다면, 나는 당신의 그 지나침을 꼽을 겁니다. ”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 상담. 그런데 문득 비용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게 현대인들의 삶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현대인에는 나도 포함되는데 난 상담치료사 대신 울 엄마가 여동생을 낳아주셨다. 감사할일...이래서 내 전화요금이 만날 오바된다.^^::
p.53-55 나는 이 애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제 목숨을 내게 의지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깊은, 필시 모성을 닮은 감정이었다... 중략... 독립심이 강한 설매개를 훈련시키려면 확실한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위협하는 방식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뒤섞인 신호를 주거나 빈정거리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도 통하지 않았다. 개들이 갈망하고 부응하는 것은 직접적인 지시와 인정과 칭찬, 다시 말해 곧은 화살 같은 마음의 언어였다. p.113 “반항하는 딸에게 윽박지르는 것 말고 아버지가 달리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겠니?“ 나는 대답했다. ”그냥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버지가 그냥 너는 내 소중한 딸이다. 그래서 네가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은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개에 대한 게일의 감정이었지만 꼭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 내게 왔을 때 이 의지하는 감정 때문에 때로는 아주 무거운 무게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걸 게일은 개에 대해서 느꼈지만 아마 모성의 대리체험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끝에 클레멘타인이 다른 개들에게 공격당해서 상처입고 집으로 돌아온 것을 캐롤라인이 돌봐 주어서 라고까지 생각한걸 보면 말이다. 또,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의사소통방법은 매우 중요한데 위협, 뒤섞인 신호, 빈정거리기, 우유부단한 태도는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때로는 아이가 바르지 않는 길로 가는데 일조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모의 태도는 중요하지만 현명하게 행동하기가 쉽지않다. 게일이 아버지에게 바란 것처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면 되는데 우리들은 안돼! 틀렸어! 옳지 않아! 그 길이 아니야!라고하여 생채기를 낸다.
p. 171 투병초기의 가슴을 후비는 그 다정한 기억은 이후 몇 주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 p. 176 의학적 현실과 감정적 현실이 충돌할 때 허조그는 대화상대가 돼주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꼬박꼬박 전화해 내가 잘 견디고 있는지 살펴준 사람도 그였다. p. 178-180 핵심은 시간을 얼마나 버느냐지. 캐롤라인이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울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나는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그녀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저 화학치료에 맞춰 병원에 태워가고, 별 도움 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녀의 신호에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탈모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평정이 무너졌다. “바보 같이 보인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야. 나머지는 너무 엄청난 문제들이라.” 수년간 그녀의 긴 머리를 손질해준 남자 미용사가 주말에 집으로 찾아와 그녀의 머리를 짧게 깎았다. 그는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왔고 머리를 잘라준 값을 극구 사양했다...중략...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안도가 되고 가르침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도 낯선 이들의 감정에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도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은밀한 문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선 벌거숭이가 된 심장처럼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은 아닌데 왜 나는 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더 힘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내가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그래서 부정하과 화를 내고 인정하지만 몹시 우울해지는 그런 시간들을 겪게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죽음의 문턱만 넘어설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었음에 불구하고 이후 어딘가 불편하게 살아야하는 시간들이 오면 왜 나에게...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환자뿐만아니라 그 환자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은 참 힘들다.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도 지인도 그런 상황을 극복한다는 게 답이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다.
p. 185 급히 택시를 타러 가다가 받은 상태를 길에 떨어뜨렸다. 상패 귀퉁이가 깨졌다. 나는 상패를 그냥 바닥에 내버려 두고 갈 뻔했다. 무서운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치 자잘한 삶의 징표들이 무언가 어두운 진실의 역류에 휩쓸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중략...그녀가 괴로운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내 귀에 그 소리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나를 알아보는 단순한 소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나타난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먼 거리를 내가 다시 되돌아왔다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깨닫고 내는 소리였다. p.187 ‘앉아-기다려’가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정직하고 중요한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일도 그것이었다. 앉기 그리고 기다리기 p.188-191 고통이란 막막하고 무력한 세계임을 나도 안다. 의식이 또렷한 멀쩡한 이들은 정말로 이해하지도, 어찌 손을 쓰지도 못한 채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다. 고통은 삶의 마지막 판도를 바꿔놓고 검은 죽음의 외피를 희게 탈색시킨다. 시간 밖의 침침한 통로처럼 온몸의 기운을 짜내고 윽박질러 결국 죽음의 문을 열게 할 만큼 고통은 위력적이다...중략...그 꼼꼼한 자상함에 가슴이 먹먹했다...중략... 다 끝났다는 모렐리의 전화를 받고 나는 부엌에서 통곡하는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임종의 세세한 순간들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프다. 숨을 쉬고 기다리고 다시 숨을 쉬고 기다림의 연속이다.
아...이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 대한 표현이 잘 되어 있는 게 있을까
p.197 비탄을 가르치는 수업은 언제나 단기 집중 강좌로 진행된다. 캐롤라인이 죽기 전까지 나는 딴 세상 사람이었다. 직선으로 다다를 것이라는 순진한 일차원적 기대가 지배하는 세상에 속해, 비탄이란 단순히 가슴 아픈 슬픔과 그리움의 영역이고 서서히 희미해질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누락되어 있었다. 상실이 신체에 가하는 타격, 일시적인 착란, 직설적이진 않지만 지독히도 강렬한 일련의 감정들까지 p. 208 아이디어 초안과 내러티브 맵은 작가의 블록쌓기라 할 수 있다. 하루는 그 자료 뭉치에서 내가 혼자 끼적인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그녀를 죽게 두라.” 그 이야기를 할 차례임을 스스로 상기하려고 황색 괘선지 맨 위에 이 한 줄을 적어두었다. 다음 날 그걸 보는데 턱 하니 숨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내게 내리는 명령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를 죽게 두라. 애도의 이동경로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세 단어가 아닐까. 여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p. 226 “이런 일이 생기면 너도 당장 총을 들고 싶지, 안 그러냐?” 유난히 마음이 동요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로 물었다.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잘 들어라, 애야.” 어머니는 마치 결심이 굳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였다. “그건 안 될 일이다.”
케롤라인을 보내고 클레멘타인을 보내는 과정 속에서 게일은 삶의 성숙의 단계를 거쳐 올라간다. 태어남과 죽음이 삶과 공존하는데 그걸 자주 잊어버리고 생의 출발에만 다들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하지만...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내가 아니라 내 주변의)그 과정을 겪음으로 떠나보낸다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삶의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는 거 같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본 것 같다. 실제 겪은 일은 쓴 것이니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어느 영역에 속해 있 던 간에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소울메이트와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삶의 이야기..그리고 죽음이야기가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단조롭지도 않게 감정을 잘 전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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