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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2층에서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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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이후 냉전 시대가 찾아왔다. 미국인들은 일상 속에 스며든 불안과 압박을 슈퍼히어로 만화를 통해 발산했다. 그 중심에 스탠 리가 있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문화 스타일과 목소리를 그대로 만화책에 반영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코쿠리코 언덕에서〉에 나오는 다이토쿠 제1빌딩. 이 빌딩 2층에 도쿠마쇼텐이 이었다.
▲애니 〈코쿠리코 언덕에서〉에서 도쿠마쇼테텐이 입주해 있던 2층의 한 장면
1963년 미야자키 하야오·니와 케이코가 각본을 쓰고, 미야자키 고로 감독이 만든 〈코쿠리코 언덕에서〉에 도쿠마쇼텐이 거의 그대로 등장한다. 지금 당시 건물은 사라지고 없고, 다른 곳에 도쿠마쇼텐 빌딩이 세워져 있다. 오쓰카는 이 영화를 보고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을 글썽였다. 그 시절 2층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마침 현재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대표이사로 있는 스즈키 토시오가 원고를 의뢰했다. “정말로 우연치곤 너무 잘 짜인 각본 같았다.” 이렇게 해서 그 시절 2층 이야기는 시작됐다.
“나는 우연히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방관자일 뿐 당사자는 아니다. 그러나 반 발짝 뒤에 있었기에 볼 수 있었던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곳은 이 나라의 서브컬처나 일본 애니메이션, 혹은 ‘오타쿠おたく’라든지 가타카나로 쓰인 ‘오타쿠オタク’6, ‘부녀자腐女子’7, ‘모에萌え’8, 그리고 ‘지브리’ 등을 전부 다 포함하여 한 가지 단어로는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의 기원이 된 장소였다. 그 자리에 내가 함께한 것은 우연이었다.” (15쪽)
오타쿠 문화의 전성 시대는 1980년대였다. 이때 매거진하우스나 ‘뉴아카’(뉴아카데미즘)와 같은 만화잡지가 문화를 이끌었다. 여기서 1978년 창간된 월간 〈애니메쥬〉를 빼 놓을 수 없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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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일본어: オタク、おたく、ヲタク)는 특정 대상에 집착적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일본어로, 주로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팬들을 의미한다. 접미사로도 쓰이며 열중해 있는 소재 다음에 '~오타' 식으로 종종 사용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오타쿠라는 단어는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가 잡지 망가 부릿코(漫?ブリッコ)에 개재한 에세이에서 유래했다.」
오타쿠. 사전적 의미는 위에 소개를 했지만 흔히 방이나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나가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거나 만화 같은 것에 심취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오타쿠라고 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소개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할 때, 그 애니메이션을 봤던 나에게는 당연히 그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면서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한 번 쯤은 들어봤던 일본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이름들이 열거될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앞서 이야기한 「코쿠리코 언덕에서」에서 나오는 빌딩이름은 도쿠마쇼텐이고, 도쿠마쇼텐의 2층이 바로 <그 시절, 2층에서 우리는>의 배경이 되는 장소다. 저자가 1980년 어느 날, 도쿠마쇼텐 2층 빌딩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주소년 '아톰'을 탄생시킨 '데즈카 오사무', '우주전함 야마토'를 만든 남자 ~'니시자키 요시노부', 말이 필요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 그 외에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탄생시키는데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기억과 추억의 이야기다. '흰 장갑을 끼고 필름을 묵묵히 더듬어 찾는 그들은 하나의 동화(動?)속에서 원화 애니메이터의 버릇이나, 같은 캐릭터를 그리더라도 꿰뚫어 볼 수 있는 개성을 찾아낸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와 똑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2층에 모여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 (p24) 저자가 오타쿠스러운 그들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했고 높이 평가했음을 알리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가치는 위대하고 또 위대했다. 중학교 시절, 오빠가 재미있다고 보여준 비디오테이프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인 「귀를 기울이면」이었다. 그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 나는 오빠의 보물 상자에 곱게 모셔다놓은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모노로케 히메」 「붉은 돼지」 「마녀배달부 키키」 「반딧불이의 묘」 순으로 하나하나 챙겨 보면서 지브리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어린시절 주말 아침에 방영 했던 「빨강머리 앤」 「키다리 아저씨」 「은하철도 999」 「미래소년 코난」 등을 보면서 자란 세대들은, 그 때 우리가 늦잠을 포기하면서 봤던 세계 명작극장의 그 만화들이 이제 보니 다 일본만화 였다는 것을 알고 봤을까?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그래도, 그나마 많이 봤던 나도 책에 나오는 작가의 이름을 다 알지 못해서 일일히 검색을 하면서 아! 이 사람이 그 만화를 만든 사람이야? 라고 하면서 책을 읽었다. 에도 시대 가부키와 아카혼, 기뵤시가 항상 정치에 대한 풍자와 야유였던 것처럼, 대중 문화와 그 연장선에 있는 서브컬처 역시 그 순간순간의 정치 및 사회에 대한 우화다. 1960년대 말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가 사회와 정치의 우화라는 사실을 만드는 이와 보는 이 모두 자각하고 있었다. (p131) 무명에 가까운 이들의 미래를 보고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실패할까의 두려움, 마감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의 불안감, 능력에 대한 불신감이 충분히 자리잡을 수도 있을법한데, 저자의 말대로 도쿠마쇼텐의 텔레비랜드 편집부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 작업으로 애니메이션을 '컷'이라는 단위로 재확인되었고, 필름 한 컷 한 컷 단위로 재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까 도쿠마쇼텐 2층이 얼마나 중요한 장소였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이케가와 도쿠기는 작은 방에 틀어박혀 한 달간<선더버드>전편의 필름을 접사했다. 그리고 그다음 한 달간 필름을 정리했다. 포지티브 필름을 한 장 한 장, 투명한 시트에 넣고 메커닉과 인물, 각 회의 명장면 등으로 구분한 것이다. 3개월의 편집 기간 중 2개월을 필름 촬영과 정리에 사용했다. 게다가 그 작업을 한 두 사람은 편집자로서도 필자로서도 무명에 가까웠다. "저 녀석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허락해준 도쿠마쇼텐<텔레비랜드> 편집부 사람들은 얼마나 대범했던가.(p200) 어느 작품이든 혼자서 100퍼센트 모든 것을 완성하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들의 땀과 능력, 실력과 협업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야마토나 건담 같은 남성적인 스타일의 보다는 소녀와 마법사들이 나오는, 지극히 여성스럽고 귀여운 스타일이 좋았는데, 도쿠마쇼텐 2층 《애니메쥬》에서도 1981년 8월에 미야자키 하야오 특집 이후에 점차 흐름이 소녀 감성 스타일로 바뀌어갔다. 잡지에서 시작된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점차 극장 개봉 영화에서 TV애니메이션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세계 역사도 커다란 전환전을 맞이하는 시기에 데즈카 오사무가 사망하고 곧 컴퓨터 게임시장이 확대되었으며 전자책이 시작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2층의 정식 명칭인 도쿠마쇼텐 제2편집국도 역시 끝나가게 되었다. 일본 역사와 함께 성장한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대부분 이라 정치 상황이나 사회, 역사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들만의 리그와 사정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만든 작품에서 자신의 생각과 정신을 담아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은 자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단순한 것이 좋고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만화나 애니몌이션을 볼 때 나만의 느낌대로 받아들이며 이해하면서 보기 때문에 때로는 숨어있는 속내가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도쿠마쇼텐은 일본의 출판사다. 도쿠마쇼텐 2층으로 인해서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발전하고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발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무명에 지나지 않았던 인물들이었지만, 끝없는 그들만의 집념과 노력으로 훗날, 일본의 예술과 문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유명인사들이 되었다. 저자 또한 그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이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일본의 이야기지만 어릴 적, 우리나라 잡지와 텔레비젼에서도 방영하고 접할 수 있었던 유명한 작품들이었기에 그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성장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추억들이 생각나게 해 준 책을 읽게 해 주신 리뷰어 클럽과 요다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리뷰 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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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놓고 내가 애니메이션 오타쿠라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지만, 평균 이상으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은 맞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중에선 애니메이션을, 애니메이션 중에선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오타쿠 세대의 탄생'이라는 부제목을 봤을 때 읽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90년대생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시절'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현세대 애니메이션 오타쿠로서 이전 세대에서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으로 이 책을 완독하기는 힘들었다. 저자는 1980년 빌딩 2층, 도쿠마쇼텐 제2편집국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의 시선으로 그 시절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그게 문제였다. 책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마치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여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내용이 쏟아져 나온다. 전혀 모르는 사람, 전혀 모르는 회사, 전혀 모르는 작품들의 내용이 나온다. 수십페이지를 읽으면서 그나마 알아보았던 것은 데즈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건담과 지브리가 끝이다. 물론 그 시절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 당연하다. 애초에 이런 것일 줄 알면서도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니까.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책을 펴보지 않고서야, 책 소개 문구만 읽고서는 책 형식과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알고 싶다는 마음만으론 완독하기 힘들었다. 몇 번을 펼쳤으나 100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이 후반으로 갈수록 시간이 흘러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쪽이 나오면 읽기 수월하지 않을까, 혹은 관심있는 부분만 읽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책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어 끼어들기 쉽지 않았다. (예로, 13장 <'건프라'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읽어봤으나 잘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다 읽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반대로 이 시절을 어느정도 알고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 소개의 '청춘들의 이야기와 서브컬처 역사, 애니메이션 비평까지 담은 진짜 오타쿠 에세이'가 거짓이 아닌건 확실하다.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정말 다른 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여기까지 쓰면서도 이것도 리뷰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꼭 책 내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주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보고 이 책을 읽어보려하는 예비 독자가 '이런 사람에겐 이런식으로 다가올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여 책을 펼지말지 결정할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리뷰라고 생각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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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이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다. 솔직히 나는 내가 오타쿠인지 또한 잘 모르겠다. 오타쿠에도 상대성이란 게 있지 않겠나! 나는 그런 상대성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일본의 오타쿠들과는 다르게 가장 바깥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마치 명왕성처럼 말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가 이와 같은 자기 고백 혹은 자기 검열적 생각을 하는 이유는 모두 한 가지 때문이다. 오타쿠라는 이름의 불결성. 오타쿠라는 이름은 왠지 기분을 찝찝하게 만든다. 오타쿠라는 이름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일단, 기본적으로 몸매가 매끈하거나 적어도 준수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자기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빼빼말랐으면서도, 배가 나온 마른비만 타입의 인간이거나, 반대로 털도 많고 배가 산만하게 나오고 게을러 보이는 뚱보다. 그들이 입는 옷 또한, 뭔가 캐쥬얼한 트렌드를 잘 따라가기 보다는, 오타쿠질을 하느라 모든 돈을 싸 질렀기에, 자기 관리할 돈이 없어서 그냥 있는 옷을 이것저것 입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일본 애니를 보면서 혹은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려졌던 오타쿠들의 모습은 여러모로 이랬다. 하지만 최근에 내 생각은 변했다. 마로 애니메이션 <오타쿠에게 사랑은 어려워>를 보면서부터다. 그 애니메이션에는 키도 크고 안경을 쓴 말짱한 남성이 오타쿠로 나온다, 여주 또한 마찬가지다. 커리어 우먼이다. BL물을 좋아하는. 이세계 물이나 중세물 혹은 주인공들이 특별한 능력이나 특별한 상황에 처한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일상물이다. 해당 만화는. 하지만 그 만화는 ‘오타쿠’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그 어떤 만화보다 전향적이다. 분명히 여주와 남주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은 오타쿠가 맞지만, 기분나쁘지 않다. 하지만 해당 만화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오타쿠적 이미지를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아마 우리 시대에 ‘오타쿠’들이 격는 고충(?)을 잘 표현한 만화가 아닐까 싶다.
오타쿠의 탄생
오타쿠는 이처럼 변화한다. 옛날. 즉 콘텐츠가 별로 없던 시절의 오타쿠와 널린 시기의 오타쿠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하면 오타쿠 또한 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 일본의 버불경기가 폭발하던 시절의 오타쿠와, 잃어버린 20년이란 시간을 탈출한 오늘날의 밀레니얼 세대의 오타쿠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 <그 시절, 2층에서 우리는: 애니메이션 오타쿠 세대의 탄생>은 어쩌면 일본의 7,8,90년대 일본의 문화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인 텍스트가 아닐까 싶어서 나는 이 책을 구매했다. 카툰, 만화 등등.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창작물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로 탈바꿈하며 전세계의 하류문화에 끼친 영향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그 영향에서 나 또한 무사치 못했다.. 하하) 이 책은 그 하류문화가 어떠한 경로와, 어떠한 정동에 의해서 생긴 것인지를 추적한 책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바로 이 책에서도 다루고 있는 ‘건담’이나 ‘에반게리온’과 같은 것들이었다. 90년대 KBS의 <열려라 꿈동산>을 통해서 처음으로 오덕에 입문했지만, 그 시기에는 아키라나 에반게리온 혹은 건담과 같은 것들이 유행하고 있는 시기였다. 물론 시골에서 초딩만화를 보고 있는 나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과 문화 교류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일본문화에 대한 붐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 시대에 나는 <열려라 꿈동산>과 같은 것을 보고 있었기에, 당연히 그 당시의 열기를,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이 공유하던 것을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뿐만인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 만화는 일본의 오타쿠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오타쿠와 건담을 연결시키는 것이 많고, 건담 프라모델 같은 것들이 주요 오타큐를 상징하는 도구로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어떻게 오타쿠 문화들이 산업적 이해와 맞물려서 사람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켰는지를 한편으로 잘 보여준다.
오늘날, 이 책의 의미
이 책은 일본 하류문화의 탄생기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책 자체도 재미있지만, 나는 오늘날 달라진 일본 애니메이션 소비 문화와 비교해서 텍스트를 읽으면서 더욱 재미를 느꼈다. 굳이 따지자면, 당시의 오타쿠들은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있었고, 오늘날의 오타쿠들은 디지털적인 면모가 있다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당시 오타쿠들은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현대의 오타쿠들은 또 다르다. 코미콘에 참여하더라도 그들과 오늘날의 그들은 너무나도 다르다. 오타쿠가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의 강력한 상징성이 있지만, 그들 또한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일정정도 수동성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단순히 만화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만화를 소재로 한 책이기도 하지만, 사회학적으로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책 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