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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이 나오기까지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이라고 하면 대부분 <코스모스(Cosmos)>(1980)라는 이름의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떠올린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Cosmos: Possible Worlds)>의 저자인 앤 드루얀(Ann Druyan, 1949~ )은 바로 그 칼 세이건의 아내이자 천문학자인 스티븐 소터(Steven Soter, 1943~ )와 함께 <코스모스>의 원고를 함께 작성한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1996년 칼 세이건이 사망한 후에도 그녀는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스티븐 소터와 함께 2014년 <코스모스>(1980)의 업데이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Cosmos: A Space Time Odyssey)>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했을 뿐 아니라 제작 및 감독에 참여했다. 그렇기에 40년의 시간이 흐른 2020년에 앤 드루얀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방식으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Cosmos: Possible Worlds)>을 출간하고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을 출간 및 제작했을까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이하 ‘아인슈타인’)은 1939년 세계박람회 개막식에서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p. 26]라고 말했다. 앤 드루얀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이 말이 ‘코스모스’ 프로젝트의 꿈이라고 한다. 그녀가 보기에는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여러 위기를 전부는 아니라도 많이 해결해 줄 만한 열쇠” [p. 7]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과학의 성취를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 이해한다는 것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과학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p. 7]이라고 본 것이다. 사실 우리는 과학을 도구로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그녀는 과학을 도구가 아닌 사상 혹은 관점으로 수용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그녀도 과학이 가지는 부정적인 영향력은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처럼 과학이라는 학문을 내용적 측면이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래서 그녀는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과학자들처럼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른바 지도자들은 다음 선거 혹은 사분기 평가까지의 시간에만 신경 씁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근시안적 사고를 지속할 여유가 더는 없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우리가 제대로 해결해 내지 못할 경우, 지구 문명 전체를 파괴할 위기이니까요.” [p. 9]라고 말한 것일 것이다.
인류는 이 책의 1장 처음에 쓰여진 것처럼 “우리는 이 광막한 우주에 출현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존재” [p. 39]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술적 사춘기’ 즉, “젊은 문명이 스스로를 파괴할 기술적 수단을 갖추었지만, 아직 그런 파국을 예방할 성숙함과 지혜를 갖지 못한 위험천만한 시기” [p. 421]를 거치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저자가 인류가 자초한 ‘대멸종의 시대’를 언급하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우리 중 충분히 많은 수가 전 세계 과학자들의 말을 마음에 새긴다면, 그리고 행동한다면, 이 재앙을 충분히 멈추고 되돌릴 수 있다고” [p. 8]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칼 세이건 <코스모스>의 정식 후속작’이라는 책소개를 들어 저자가 <코스모스>(1980)에 대한 신뢰와 지지에 기대어 이 책을 썼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말한 대로 과학이라는 열쇠로 인류가 재앙을 멈출 수 있다는 믿음을 확신시켜 무의식 중에 파멸로 향하는 인류의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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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지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 책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다. 칼 세이건은 그 책에서 제목 그대로 조화를 이룬 우주적 질서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1980년 칼 세이건이 자신과 동료 과학자들이 기획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코스모스]를 책으로 펴내고 앤 드루얀에게 헌정한지 40년 만에, 우리는 또 다른 [코스모스]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은 앤 드루얀이 역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펴낸 책으로 지난 40년간 과학이 이루어낸 경이로운 성과들과 함께 지구와 우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앤 드루얀은 우주적 관점에서 본 지구,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갈 가능한 세계들에 대한 이야기를 칼 세이건의 메시지와 함께 다시한번 우리에게 들려주는 셈이다.
이 책에서 앤 드루얀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은 물론 자연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뛰어든 수많은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이 이룬 성과로 인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들은 물론 그런 성과에 다리를 놓아준 잊혀진 과학의 영웅들 역시 찾아 나선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들려주었던 우주와 지구의 이야기를 앤 드루얀은 현재의 시점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들려준다. 특히 우주의 진화과정 전체를 한눈에 보여주는 달력으로 우주력을 사용하여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다. 지난 138억년 중 가장 두드러진 사건들을 1년으로 압축해 넣은 우주력은 1초가 438년, 1일이 3786만년, 그리고 한 달은 11억 3600만년을 의미한다. 우주력의 1월1일은 당연히 대폭발이 시작된 날이고 12월31일 자정은 현재를 가리킨다. 이 우주력에 따르면 1년 중 3분의 2가 지난 8월31일 비로소 태양을 둘러싼 기체와 먼지원반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작은 행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9월21일 지구의 바다 속 바위틈에서 생명이 시작되었고, 12월26일 포유류가 출현했다. 12월31일 저녁7시경 인간이 보노보와 침팬지와 진화의 길에서 갈라졌고, 밤 11시52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농업혁명과 도시의 출현은 12월31일 자정에서 20초를 남겨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앤 드루얀이 소개하는 이야기들 중 특히나 흥미롭게 읽은 것은 지구의 지적생명체와 토성탐사선 카시니호에 대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서 인간만이 유일한 지적생명체라고 생각하지만, 앤 드루얀은 인간이외에 꿀벌을 추가한다.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카를 폰 프리슈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로 밝혀진 꿀벌의 춤은 수학, 천문학, 그리고 시간을 정밀한 단위로 측정할 줄 아는 예리한 능력을 활용한 메시지라고 한다. 즉 꿀벌은 물리법칙에 대한 지식에 근거해서 수학으로 표현한 기호언어를 춤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인류가 외계문명과 공유할 수 있는 언어도 아마 이런 형태의 언어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1997년에 토성탐사선 카시니호가 발사되었다. 17세기 이탈리아의 과학자 조반니 카시니가 처음 발견한 중력도움은 행성들의 중력을 이용하여 행성에서 행성으로 건너가는 항법으로 카시니호는 토성에 이르기까지 중력도움 항법의 힘을 빌렸다. 우주선에 실려 있던 로켓연료는 토성에 다다른 우주선이 새로운 궤적을 취하는데 사용되었다. 2017년 4월 그 연료가 다 떨어져 토성으로 죽음의 하강을 하기까지 카시니호는 토성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우리에게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꿀벌의 춤과 카시니호의 중력도움은 환경과 생태가 다른 지적생명체와 소통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가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의 단초를 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로 알게 된 우주와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과 인간에 대한 탐구로 가득 차있다. 천문학서적이면서도 종교와 역사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보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앤 드루얀은 과학이 가져올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러기위해서 우리가 과학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경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녀는 인류의 결함 중 핵심적인 문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과학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과학은 우리가 직면한 여러 위기를 전부는 아니래도 많은 부분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에 전 세계 과학자들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한다면 우리 앞에 닥칠 재앙을 멈추고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류 앞에 닥친 위기를 과학이 아닌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다루려는 현대의 세계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지금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진다. 아울러 이 책의 기반이 되었던 TV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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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쌍둥이 같다.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지구의 역사와 과학 발전 그리고 우주의 새로운 세계. 새로운 세계의 부분이 공통점으로 작용하고 지구의 역사와 과학 발전이 다른 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일종의 쌍둥이 같은 책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다른 책이지만 같은 뿌리를 보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서 재미있게 읽었다. 어떤 부분은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주로 밖으로 무한히 팽창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 책은 지구로 안으로 계속 파고 들어가는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우주를 알려면 필연적으로 지구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 책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의 공통점인 우주의 이야기 중 특히 세로운 세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흥미롭다. 영화 스타트렉이 생각났다. (혹은 드라마) 어렸을 적 TV에서 귀가 뾰족한 외계인이 나오는 그 드라마는 요새 와서 SF 어드벤쳐 영화로 볼거리가 풍부해져서 나왔지만 예전만 해도 SF에 충실한 영화였다. 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종족을 만나고 협상을 하고, 만약 적대적 외계인을 만나면 협상이 결렬되고 싸우고 이해하는 내용의 영화였다. 거기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화 몇 편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신을 찾는 철학적 질문까지 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우주의 이야기를 하며 철학적 질문을 계속 독자에게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난 재미있게 읽었다. 혹 누군가 이 책을 비판한다면 아마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 이야기보다 철학적 이야기가 더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분명 과학 고양서인데 철학 이야기를 한다니. 하지만 수학을 공부해 본 입장에서 과학과 철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니 이런 관점으로 우주를 본 것도 재미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짧은 소감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코스모스 세 번째 시즌 다큐멘터리에 대해 잠깐 나오는데 이 책을 시즌2라고 한다면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인지 우주에 대한 다른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아니면 이 책이 세 번째 시즌이고 중간에 모르는 하나의 시즌이 더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너무 짧게 세 번째 시즌이라고만 나와서. 혹 코스모스 세 번째 시즌이라면 그 내용도 책으로 출판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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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내면 깊숙히 감동을 느꼈다. 자연과학 책이지만 너무 어렵지 않았고 그렇다고 얕지도 않았다. 연이어 앤 드루얀 선생님의 코스모스 2에 해당하는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을 구매하였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학적인 내용을 품고있음에도 가슴 한구석에는 잔잔한 따뜻함이 밀려왔으며 책을 덮고난 뒤에는 여운이 남았다. 그 이유는 책을 집필한 앤 드루얀 선생님이 인류애를 바탕에 두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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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를 읽었다.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아니고 드루얀의 코스모스이다. 컬러 사진이 많아졌다. 과장 없이 매 페이지마다 사진 자료가 있다. 글 바로 옆에 사진이 있으니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검게 보이는 페이지 전부 고해상도 사진이다. 흰 페이지라고 글만 있는 게 아니다. 유투브 시대를 책이 따라잡으려면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은 천문학 책이 아니다. 과학계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화를 엄선해서 풀어놓은 이야기 책이다. 마리 퀴리부터 러시아의 육종학자 바빌로프, 꿀벌과 (내 취향에는 촌스러운) 2039년 뉴욕의 만국박람회까지 있다. 별과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는 적은 편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문학 이야기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더 좋아할 이야기다. 손에 닿지 않는 과학의 경이가 천문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사람에 주목한다.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비추는 점이야말로 여타 과학서보다 돋보이는 부분이다. 지금은 당연한 줄 아는 과학·기술 개념 모두 고민과 발상에서 나왔다. 패러다임이든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이든 과학 발전을 설명하는 이론은 많다. 하지만 모든 과학은 사람의 머리와 손에서 나왔다. 현실 속 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든, 산책을 하다 불현듯 생각이 났든 말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세계사 이곳저곳의 사건도 많이 나온다. 역사를 넘어 신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온갖 이야기를 한 책에 모은 이유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를 살고 있다. 세계를 파괴할 힘을 지닌 인류가 몸 성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학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낙관적이다. 인류는 부끄러운 사춘기를 지나온 성인처럼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리라 기대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메타 연구를 들은 적이 있다. 코스모스에는 없는 이야기다.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모델 연구가 실제 상황과 얼마나 맞는지 비교했더니, 과거에 만든 모델이 현재 실제 수치와 거의 맞아 떨어졌다.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연구였다. 예측이 어긋나는 지점이 있었다. 오존층 파괴에 의한 요인이었다. 인류는 더 이상 프레온 가스를 쓰지 않는다. 사람들의 노력으로 미래의 예언이 엇나갔다. 인류가 오존층을 지켜냈듯 기후 변화나 환경 파괴 문제도 사람들이 모이면 바뀔 수 있다. 다행히 자연은 회복력이 강하다. 코로나19 사태에 불행하고 황당한 소식 안에서도 이따금 자연이 살아나는 희소식이 들린다. 베니스의 물이 맑아지고 거북이가 해안을 찾아왔다는 해외 토픽들이다. 미담에서 끝나는 대신 살아남은 이들의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 코로나19 이후의 지구가 정세랑 작가의 이야기처럼 나아진다면 앤 드루얀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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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 Druyan, COSMOS: Possible Worlds
고전의 반열에 오른 「코스모스」의 후속작으로,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의 배우자인 앤 드루얀(Ann Druyan)이 집필했다. 이번 작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와 연계하여 제작되었는데, 그 다큐멘터리의 제작과정에는 두 저자의 아들인 새뮤엘 세이건(Samuel Sagan)이 보조 제작자로 참여했다. 칼은 세상을 떠났지만, 과학대중화를 위하여 헌신한 그의 유산은 가족기업에 의하여 착실히 승계되고 있다. 아들 세이건은 코스모스 후속작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죽다 살아났는데, 그 과정이 5장 ‘우주의 커넥톰’에 자세히 나온다. 우리 뇌의 복잡성과 불가해성은 우주의 질서와 닮았는데, 저자는 이러한 신비로운 상관관계를 강조함과 동시에 아들의 치료과정에서 재확인한 ‘과학의 승리’라는 주제의식을 다시 강조한다.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순간의 아픔까지도 이야기의 소재로 매끄럽게 녹여내는 능력에 감탄했다. 드루얀은 아무래도 세이건보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는 편이다. 두 사람의 연애 이야기와 더불어 젊은 과학도였던 두 사람의 낭만적인 연애 시절 사진이 공개되었고, 세이건과의 사랑을 담은 뇌파를 골든 레코드에 기록해 보이저호에 실어 우주로 보낸 감동적인 이야기, 세이건이 두 스승 사이를 오가며 고통(?)받았던 이야기 등도 실려있다. 과학사나 문명사도 전작 못지않게 흥미로운 편이지만, 저자가 사랑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재밌다. ‘진정한’ 진정성은 늘 건조한 활자 사이를 뚫고 올라온다. 사실 인류 문명사를 헤집으며, 지속가능성과 탐험정신과 연대의식을 끄집어내는 장면들은 현재의 문제점들을 부각하기 위하여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기록이 없던 시기의 파편적인 유물 부스러기 몇 개를 들고서 생명의 본질을 논하면서 그때의 순수했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논의는 한계를 노정한다. 아득한 과거에 대한 신화화의 근간에는 ‘지금 우리보다 계몽되지 못했던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과소평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사실 선조들이나 우리나 뇌를 포함한 신체 기능에는 별반 차이가 없으므로 놀랄 이유도 없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유토피아 시기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도 없었다. 어리석은 핵전쟁과 환경파괴를 멈추고 우주로 시선을 돌려 지속가능한 번영의 길을 열자는 주제의식이 전편에 이어서 반복된다. 종교적 맹신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의 전문성에 기반을 둔 냉철한 지적 판단과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연대하자고 호소한다. 이 주제의식은 내가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David Attenborough: A Life On Our Planet, 2020)」와도 겹친다. 애튼버러 경은 다큐멘터리에서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육식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고, 열대우림을 지키자고 말했다. 나는 상영시간 내내 죽어가는 지구의 면면을 보며 분노했지만, 정작 이 영상을 보고 분노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UN사무총장, 미국 대통령, 중국 주석, 그밖에 EU 리더들이라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다. 그들이 서로, 그리고 자국민의 눈치를 보면서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페트병 라벨을 뜯고 앉아 있는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편으로, 애튼버러는 개발도상국들을 향해 탄소 배출을 줄여라, 벌목을 줄여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라, 무분별한 어업을 자제하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 국가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하여 성찰할 새도 없이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화자의 모국인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그 국가의 경제 및 정치 구조에 개입하고 그들을 생산 기지화하면서 종속성을 심화시켜 놓은 결과가 아니었던가? 보르네오 열대림의 목재를 주로 수입한 자들은 누구인가(2017년 세계 목재 수입 국가 순위는 EU,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등 순 임)? 제국주의자들은 수백년에 걸친 무분별한 수탈의 결과로 축적해 놓은 유무형의 자본을 창고에 쟁여 놓거나, 인프라 저변에 희뿌옇게 희석해 놓고는 저개발 국가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서 ‘개발을 멈추시오’라고 태연자약하게 이야기하는데, 과연 어느 정도나 설득력 있는 논증이 될까? 이 세상에 쾌적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부당한 방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서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나는 가난해도 좋으니까 인류 전체의 공존공영을 위하여 묵묵히 참고 살아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니, 그런 사람도 간혹 있으나, 그런 국가나 민족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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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천문학 서적 중에 가장 재미있는 책은 아니지만 후대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고, 주고 있으면서, 줄 것임은 부정할수 없다. 60년전에 출간되었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칼의 코스모스는 앤의 코스모스 여기 저기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부부의 평생의 연구는 경계 없는 우주의 무한함을 동경하면서 그만큼 깊은 인간의 심연을 파고든 것이다. 이 두 책은 우주의 역사와 과학적 사실을 인류의 존재와 결부시킨다. 더불어 내용 안에 충분히 여유와 여백이 있어 독자들은 천천히 호흡하면서 각자의 상상력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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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나의 삶을 바꿔주는 책이 있을것이다. 내가 과학에 인문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해준 책이 바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이다. 교회에서 존재 자체의 의문투성이인 신을 찾기 위해서 많은 세월을 낭비하면서 살아왔다. 책도 종교서적이나 성경만 읽는 아주 고립되고 한정적인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 세계에서 나를 해방시켜준 책이 바로 “코스모스”이고 이제 나에게 성경을 대신해 새로운 길을 열어준 “은인”같은 책이다. 이 책은 그의 뒤를 이어서 같이 동반자로 살아왔던 앤 드루안의 “코스모스”이다. 기대를 안했다면 거짓말이고 기대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고 잠시 잊고지냈던 칼 세이건의 향수도 되살아나서 좋았다.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출근해야 되서 이만.. 꼭 읽어 보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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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과학은 내게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따분한 과목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펼쳐 든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은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안내했다. 한 챕터 한 챕터가 주는 몰입감이 대단해서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일상의 이면에 과학자들의 치열한 사투와 피로 쓰여진 역사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가장 뜨거운 인류의 역사이자 철학이었다. 뒤늦게나마 이 거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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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너무 유명해서 한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데 책 서너장 넘기면 지루해지는 (물론 나같은 과학 초보자들에게만) 두꺼운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접근하기 쉽게 많은. 사진들과 설명으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제법 두껍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다 읽고 미리 사두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넘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