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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맞는 죽음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역사는 되풀이 되어지는 물레방아의 모습이다.지나간 과거는 전쟁의 얼룩으로 우리들의 뇌리에서 하나 둘 사라져간다.함펠 부부의 나치 저항 활동에 관한 소송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독일 국내에서 나치체제를 비판한 최초의 책으로 기록되어 있다.한스 팔라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에서 오는 각 인물들의 갈등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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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맞는 죽음은 나치 치하의 "오토 크방웰" 부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토 크방웰은 그저 평범한 가정의 남편으로 가구공장의 작업반장으로 뛰어난 재주는 없어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잘 수행해 나가는 도시 소시민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러기에 정치적인 일이나 세상사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징집으로 전선에 끌려간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으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잘못된 부분에 대한 의식이 싹트고 결국에는 나치의 잘못을 알리는 엽서를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일을 아내 안나 크방웰과 시작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에셔리히에게 체포되어 수감되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을 하고 각 인물들은 우리 현대사회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조금은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다. 스스로 일을 하는 것보다 여자에서 빌붙어서 사는 에노 클루게. 뻔뻔하고 파렴치하지만 여자가 약간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집요하게 파고 들어서 기대서 사는 기생충같은 인물이다. 강한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지독하리 만큼 악독한 바르크 하우젠. 세상을 휘드르는 나치 당원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모습이지만, 유대인,여자,어린자식등 사회 약자에게는 더없이 악독하고 그들에게서 갈취한 것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소설 말미에는 늙고 병들어서 아들에게 기대고자 하지만 본성을 버리지 못하여 친 아들에게조차도 버림을 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권선징악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원인 페어지케 가족은 도덕성은 없으며 주변의 사람들을 깔보는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인륜을 무시하고서라도 권력의 중심에 이르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막내아들이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살해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사회 지식인이지만 결코 스스로의 모습을 사회에 잘 드러내지 않는 프롬. 크방웰 부부가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할때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극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있으나 기득권층에 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이다. 이 이외에도 여러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인간의 전형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인물의 묘사와 더불어 제목과 같이 "홀로 맞는 죽음"의 의미는 죽음처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을 스스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즉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신이 감내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위의 각 인물들은 작은 일련의 사건들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맞는 결말을 맞이한다. 나치 치하라는 특수한 환경하에서의 소설이지만 현대사회의 극단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직면하였을때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행동 양식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주는것 같다. 특히 오토 크방웰이 체포되어서 자백을 하는 장면에서 그는 스스로의 한일에 대하여 잘못을 뉘우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심지어는 죽음에도 이르는 불행에 대하여 알게되어 자백하였으며,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에 대하여 자책을 한다. 이는 어떠한 정의도 모든 사람에게 다 올바른 것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누구의 입장에서 사실을 직면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토 크방웰의 측면이 아닌 다른 이의 시각에서 다시 이 소설을 본다면 또다른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기대된다. 그러기에 책을 책장 깊은 곳이 아니라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다시 들쳐보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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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홀로 죽음을 맞는다. 피하려고도 해서도 안되고 피한다고 되는 것도 안되는 죽음의 양면성을 안다. 전쟁중이다. 남의 나라를 침공하고 승전을 축하한다. 사람들은 특히 대중은 전쟁보다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의 일들에 더 관심이 많다. 누가 누굴 고발하고 나는 너와 달라 짖밟혀도 된다는 식으로 물건을 몰래 훔치고 내달 팔아도 아무 죄책감도 없다.
왜? 나는 게르만이란 우월한 민족으로 태어났고 전쟁에서는 계속 승승장구중이니까 히틀러 총통만 있으면 우리는 모두 최고가 될 수 있으니까
유태인의 대량학살을 다룬 많은 영상매체를 보고 느끼는 한가지는 어떻게 하나같이 힘없이 당하기만했나와 또 그런 압박과 핍박에서 살아 그들의 참혹한 진실을 알린 위대한 민족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늘 똑같다.
독일인이란 입장에서 다룬 몇권의 책을 읽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듯 찬란한 미래가 늘 그대로 영원하리라 여겼던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안 뒤에 오는 혼란의 시간들은 어떨지 조금 공감했다. 지금 다시 그 시간대로 돌아간대도 누구나 장담할 수 없는 대중에 휩쓸림을 나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지, 정의라는 이름으로 나는 저항의 편에 설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하는 책 한스 팔라다의 <홀로 맞는 죽음>(2013. 6 로그아웃)이다.
생생한 학살의 현장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무표정의 군복차림까지 한 세트로 표현되는 나치군들의 모습이 나오리라 예측했지만 전혀 다르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서 대단히 차분하게 시작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보여준다. 오히려 긴장감이 고조 되는 효과가 있다.
하나뿐인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방엘 부부는 절망한다. 우울하고 슬픈 나날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수라도 생길라치면 어떻게서든 돈을 뜯어 내려는 기생충같은 이들이 나타난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여기 저기 빌붙어 살아가는 이들과 달리 이웃을 훔쳐보고 어떤 이상행동이라도 놓치지 않고 감시하는 이들도 있다. 이유는 하나, 총통을 위해서다.
아들을 하나만 낳은 것도 아이를 낳지 않은 것도 죄가 된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피같은 자식을 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을 고사하고 이렇게 저렇게 둘러댄 가짜 편지도 다시는 받아 볼 수 없게 되 버린 크방엘부부는 비밀리에 저항의 엽서를 쓰게 된다. 걸리게 되면 무조건 사형임을 알면서도 ..
삐라와 같은 엽서를 발견한 뒤로 이들을 뒤쫓는 가운데 엉뚱하게도 여러 여자들을 전전하는 에밀클루게가 걸린다. 또 가장 친한 바우크 하우젠이 그들 뒤쫓는 개가 된다. 서로 뜯고 뜯기기가 반복되고 그 과정에서 아비와 자식간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어떤 시대에도 있었고 물론 지금도 있는 어떻게하면 쉽게 살아보려는 이들의 최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꼬리가 잡힌 이 부부가 겪는 고문과 감방생활은 어두컴컴하고 무섭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말도 안되는 배후를 찾기 위해 잔인한 말도 서슴치 않는다. 자신 때문에 무고한 이들이 잡혀오고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부부는 모두 형상의 이슬이 되어 사라진다.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독일 국내에서 전후 나치체제를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라고 한다. 독일내에서 숨죽이고 살았던 소시민의 생활과 시대에서 저항했던 이들이 겪은 참혹한 최후까지 실감나게 표현되는 대화와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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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독일의 야블론스키 가에 살고 있는 크방엘 부부를 중심으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반대로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맹목적 민족주의나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그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고 하루하루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등 여러 부류의 인간들의 삶을 그려놓고 있다. 크방엘 부부는 전쟁에서 외아들의 전사통지를 받고 이 전쟁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이며,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도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짓을 하지 않은 유대인 로젠탈의 남편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유대인이라는 것만으로 끌려가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알콜 중독자이며 무질서한 삶을 살아가던 발두르 페어지게 가족은 나찌에 영합해 작은 권력을 휘두르며 로젠탈 부인의 재산을 탐하며 적당히 살아간다. 전쟁이 가열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소한의 도덕이나 양심마저 상실되어가는 속에서도 양심을 지키며 단 한사람이라도 고통과 희생을 막으려는 늙은 최고재판관 프롬은 유대인 로젠탈 부인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걸 감지하고 그녀를 숨겨주며, “살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특히 당신이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라”며 삶의 희망의 끈과 자존감을 일깨워 주지만 악몽에 시달린 로젠탈 부인은 결국 페어지게 가족들에게 발각되어 자살하게 된다. 가구공장에서 막일을 하는 크방엘 부부는 전쟁의 무의미함과 그런 전쟁은 국민에게 아픔과 상처만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어머니! 총통이 제 아들을 죽였어요. 어머니! 총통은 당신의 아들들도 죽일 거예요. 총통은 이 세상 집집마다 죽음의 통곡을 불러와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라는 엽서를 써서 무작위로 배포하지만 엽서를 발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내용을 다 읽어보기도 전 첫 머리를 읽는 순간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엽서를 당국에 신고하므로 죽음을 각오하고 쓴 대부분의 엽서는 게쉬타포의 손에 접수되고, 그 범인을 잡기 위해 게쉬타포는 에셔리히 경감을 책임자로 임명한다. 에셔리히 경감은 엽서의 범인을 잡으라는 상부의 강한 압박에 나태하고 사회 부적응자 에노 클루게가 사건과 무관한 자임을 알면서도 그 엽서를 배포했다는 자술서를 받아 공범으로 만들고, 그를 놓아준다. 이 사건과 연루된 에노 클루게는 아내에게 버림받고 갈 곳도 없는 부랑자임에도 헤테 헤베를레라는 부유한 미망인에게 자신이 게슈타포에 쫓기는 반전운동가로 포장해 그녀의 동정으로 동거생활을 하지만 거짓말을 일삼으며 경마장을 출입하게 되면서 헤테에게 버림을 받고, 에셔리히 경감의 강압적 권유에 권총으로 자살하므로 추악한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 에노 클루게의 자살로 에셔리히 경감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위 해제되고 결국 감방에 갇혀 수없는 고문을 당하고, 사건은 후임자로 초트 경정이 배정되지만 후임자 초트 경정은 지나친 자만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엽서의 작성자 오토 크방엘 부부를 잡았지만 놓아주는 실수를 하게 되자 초트 경정은 해임되고 또 다시 에셔리히 경감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가구공장에 근무하는 오토 크방엘은 갑자기 회사에 나가게 될 일이 생기므로 집에서 작성하던 엽서를 주머니에 넣고 출근했다가 회사에서 그걸 떨어뜨리게 되므로 에셔리히 경감에게 잡히고 나서야 2년 동안 총 276장의 엽서와 9통의 편지를 작성했는데 대부분은 경찰에 신고되고, 18통만이 신고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이 일에 대해 에셔리히 경감은 오토 크방엘에게 “다른 사람만 불안하게 했을 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비난하자 “당신은 결코 이해가 안 될 겁니다. 단 한 사람이 싸우든 만 명이 싸우든 상관없어요.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면, 동조자가 있든 없든 싸우는 거지요. 나는 싸우지 않을 수 없었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렇게 할 거”라며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지 않는 당당함과 함께 “당신은 살인자에게 고용되어 일하죠. 그리고 그 살인자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희생양을 바치고. 당신은 돈을 받고 그런 짓을 하니, 어쩌면 당신도 그 사람을 믿지 않는지도 몰라요. 네, 당신은 그를 믿지 않는 게 확실해요. 단지 돈 때문에.....”라고 에셔리히 경감을 자각시키는 말을 한다. 오토 크방엘의 말에 충격을 받은 에셔리히 경감은 자신이 에노 클루게를 희생시켰다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상부의 명령에 성과를 올리지 못할 때 전에 해임됐을 때처럼 감방에 들어가 혹독한 고문으로 결국은 거기서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히틀러는 살인자를 크방엘의 말에 공감하며, 누가 정권을 쥐든 전쟁은 계속 될 것이고 인간사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갈등하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오토 크방엘이 엽서를 통해 생각을 바꾸어 놓은 유일한 사람은 에셔리히 경감 자신 뿐 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은 유일한 오토 크방엘의 추종자는 라고 시인하면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오토 크방엘 부부가 잡히면서 우연치 않게 헤어게젤 부부(전사한 오토 크방엘의 아들의 약혼녀 : 트루델 바우만)가 잡혀 고문 끝에 트루델 헤어게젤이 자살하고, 안나 크방엘 동생의 부부가 잡히면서 본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이 혹독한 고문을 통해 하나씩 죽어가면서 인간은 누구나 홀로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오토 크방엘은 옥중에서 만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육체적인 노동만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이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것만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알게 된다. 처음 같은 방을 쓰게 된 칼 침케는 서른 살가량의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로 과거 SS대원으로 수없이 사람을 죽인 잔혹하고 비정한 인간으로 미친 짓을 하면 죽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개처럼 네발로 기어다니며 감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으며 괴롭혔다. 오토 크방엘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의식이나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줘서는 안되겠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떳떳한 죽음을 맞겠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맞서자 19일 만에 그 사람은 변화되어 오토 크방엘에게 순종하며, 먹을 것을 함께 나누어 주는 등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그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된다. 다른 방으로 이감되어서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며 사상가인 라이히하르트 박사와 같이 생활하면서 먹을 것이 부족하고, 여러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죄수들과 나누면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 살아요. 우리가 어떤 인물이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남들을 위해서라 할 수 있죠.”라는 말을 통해 새로운 정신세계와 전쟁에 대항하는 데는 자신의 방법만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 도둑질로 감옥에 들어온 사람에게 지휘자는 많은 것을 나누고 더없이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그는 지휘자의 무시하고, 빵과 담배를 전부 훔치고, 비누를 훔쳐 다른 사람들에게 몰래 팔고, 가족사진을 찢는 등 파렴치한 모습에 크방엘은 분노를 하며 폭력을 행사하려 하자 지휘자는 “우리도 그들과 닮아가길 바라나요, 그들은 우리를 폭력으로 복종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폭력이면 다 된다고 믿지 않아요. 우리는 선의, 사랑, 정의를 믿지요!”라는 말을 하며, 한 달만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서 인간은 진정한 선의와 사랑, 정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가르침에 큰 감동을 받는다. 지휘자를 통해 베토벤의 음악을 통해 ‘불행을 견뎌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모차르트 음악에서 ‘쾌활하고 즐거운 기분을’,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에서는 ‘마음의 고뇌와 인생의 원대한 꿈을 깨닫는 감동’을 느끼곤 하면서 음악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뜬다. 또 다른 감방에서 결핵으로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수감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40세 전후의 프리트리히 로렌츠 목사를 통해 예수의 사랑에 대해 듣지만 끝내 하나님의 사랑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깊은 감동과 죽음이 인간의 사랑보다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친다. 형식적인 재판으로 사형선고가 내려진 날 같은 아파트에 살던 최고재판관 출신 프롬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오토 크방엘을 면회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고통스럽게 죽지 않고 간단하게 죽을 수 있는 독극물을 전해준다. 오토 크방엘은 전쟁의 상황 속에 양심적인 사고가 그를 늘 칩거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것을 이해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며, 사형 집행 때 그 약을 통해 고통없이 죽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먹지 못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면서 생을 마감한다. 남편 오토 크방엘이 죽은 줄도 모르고 처형장에서 함께 처형당할 때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던 안나 크방엘은 수감되어 있는 감옥에 박격포가 떨어져 순식간에 고통없이 죽어간다. 인간은 그렇게 각자가 홀로 죽음을 맞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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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을 파헤친 소설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과연 인간의 선과 악의 어느쪽에 서있는가'하는 것이다.동물의 본성에 가까운 존재이면서 대를 이은 교육이나 습관등에 의해 잘 포장이 되어있다가 어느 순간본성이 뛰쳐나오는 것은 아닐지 생각케된다.그런 인간의 본성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있는 시기는 바로 전쟁이나 폭력과 같은 위기의 순간일 것이다.이 소설의 무대는 인류 최악의 전쟁이었으며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있는 참혹한 집단 살인이 연출되었던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1940년에서 1942년까지 베를린의 한 노동자 부부의 저항 일지이다.하지만 단순한 저항일지를 떠나 위기의 순간에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인간본성일지'이기도 하다. 나치가 독일을 통치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의 승리를 위해 독일의 많은 청년들이 전쟁터에 끌려나갔다.가구공장의 작업반장인 크방엘과 그의 아내 안나는 어느 날 자신의 외동아들 오토의 사망통지서를 받아든다.당시 독일은 프랑스 점령을 축하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으며 곧 영국도 점령하리라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모든 국민들을 당원으로 흡수하여 충성을 맹약하게 하려는 시도와 국내에 있던 유대인을 색출하여 수용소로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크방엘부부와 유대인노파 로젠탈, SS친위대에 세아들을 보내고 충성을 맹세한 페어지케가족과 전직 최고 재판관 크롬,방관자같은 게쉬부인등이 사는 임대아파트는 또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이다.착한 아내를 배신하고 놀음에 빠진 에노와 모사꾼이며 첩자인 바르크하우젠과 같은 인간이 뒤섞인 인간세상의모든 것은 보여주는 무대인 것이다.크방엘은 소심하고 깐깐한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신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실하게 일했던 공장은 단지당원이라는 이유로 하찮은 인간들은 승진을 하고 월급을 더받는 상황이 되면서 나치 정권에 환멸을 느낀다.크방엘은 외동아들의 전사를 계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어머니, 총통이 제 아들을 죽였어요...당신 아들도 죽일 거에요'크방엘은 엽서를 써 배포함으로써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나치에게 대항하기로 한다.하긴 평범한 가구공장직원이었던 크방엘이 나치독일에게 어떤 거창한 항거를 할 수나 있겠는가.결국 엽서들은 게쉬타포의 손에 들어가고 기필코 범인을 잡겠다는 애셔리히경감에 의해 2년만에 잡히게 된다.편파적인 재판과 보호받지 못한 변호로 크방엘부부는 재판에 넘겨지고 결국 사형을 선고 받는다.사형을 기다리는 크방엘부부는 지난날을 회상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전쟁이란 죽음의 존재를 가장 크게 느끼며 더불어 생존의 의지를 부추기게 된다.크방엘부부에게 죽음은 장렬하며 고귀한 것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죽음들에는 나름의 무게가 있다.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온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비열한 인간들과 숭고한죽음으로 승화시키는 인간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그린 작품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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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홀로맞는 죽음 저자 : 한스 팔라다 역자 : 염정용 출판 : 로그아웃 금액 : 16,000 원
처음으로 접하게 된 독일 고전 홀로맞는 죽음의 저자인 한스팔라다는 국내에서는 그리 알려진 작가가 아니지만, <광야>의 귄터 그라스,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수여받은 상의 이름이 한스 팔라다상이 바로 작가의 이름에서 나왔으며
한스 팔라다는 나치 치하에서도 해외로 망명하지 않고 국내에서 집필을 하였으며 독일 국내에서 최초로 나치체제를 비판하는 책을 펴낸 작가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있기에 읽는내내 더더욱 가슴깊이 와닿았다.
한스팔라다의 홀로맞는 죽은 합본
한스팔라다가 남긴 작품들중 가장 마지막의 작품으로 4주라는 경이로운 기간에 집필을 완료하는 그는 결국 책의 출판은 보지못한채 심부전으로 생을 등졌다.
한스팔라다의 본명은 루돌프 디첸으로 어린시절 동반자살을 하려다가 친구만 죽고 홀로살아남은 경력때문에 그의 아버지가 그의 이름이 알려지는것을 꺼려해 가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나치치하에서 아들을 잃은 크방엘 부부가 엽서로 나치의 만행을 전파하고자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있으나
한스팔라다의 말처럼 소설은 나름의 원칙이 들어가야만 하고 모든 면에서 현실을 보여줄수 없는지라 두사람의 실생활은 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게슈타포의 조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책이다.
나치체제하에서 나름 체제에 크게 동조하지도 않았지만, 반항하지도 않은채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가도 있던 크방엘부부에게 별안간 날아든 편지한장
바로 아들 오토헨의 전사통지서다.
이 편지 한장으로 인해 오토와 안나 크방엘 부부는 나치체제를 부정하게 된다.
편지를 받은날 밤 오토 크방엘은 그의 집안에 부인인 안나와 전사한 아들의 여자친구인 트루델 외에 다른 한명이 집안에 들어와있다는걸 알게된다.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는 유대인 노파였다.
나치하에서 유대인의 삶이란 끔찍했으며, 호시탐탐 유대인 노파를 노리는 이들때문에 안나크방엘이 부부의 집으로 그 노파를 숨겨준것이다.
이렇게 나치에 순응하며 살아오던 부부는 처음으로 나치에 미약한 반항의 몸짓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크방엘은 이 나치의 부당함과 잘못됨을 다른이들에게 알리고자
"총통이 제 아들을 죽였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엽서를 작성하고 매주 손으로 꼼꼼하게 작성한 편지를 건물 계단에 놓아두기로 한다.
처음엽서를 놓기위해 모든 긴장을 다했던 그는 어느 건물에 창턱아래 엽서를 놓아두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엽서를 발견한 인물은 발견즉시 게슈타포로 엽서를 신고하게 된다.
첫 엽서가 놓여진지 반년이 지난후
크방엘 부부가 작성한 48장의 엽서중 44장이 게슈타포의 에셔리히 경감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크방엘 부부와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 나치체제의 대한 반역은 곧 단두대로 직행하는 길이라 독일국민들 어느 누구도 그 엽서를 가지고 있지조차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44장의 엽서가 발견된 위치를 기반으로 게슈타포에서는 집요하게 크방엘 부부를 노리고 있었다.
꼬마 도깨비 게슈타포의 에셔리히 경감은 엽서배포자를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자꾸 계속되는 상관의 압박때문에 에셔리히경감은 클루게라는 남자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자백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물론 범인이 아님을 알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시간을 끌 요량으로 한 선택이었으나
이 선택으로 에셔리히 경감은 큰 곤욕을 치르고 클루게라는 남자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크방엘이 게슈타포가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지도 모른채 계속해서 엽서를 작성하고 있을무렵 그에게 위기의 전조가 찾아온다.
바로 어느 건물에 엽서를 놓아두다가 누군가의 시선에 포착된것이다. 다행히 그를 본 이는 그의아들의 여자친구인 트루델
한때 공산주의 세포로 활동하던 그녀는 이미 다른남자와의 단란한 결혼생활을 이루고 잇엇지만, 우연히 예 애인의 아버지가 하던 모습을 보게되고, 이 일의 그녀가족의 불행으로 이어지게된다.
위기의 전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결국 크방엘은 누군가의 눈에 엽서를 놓아두던 모습이 발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시점에 노련한 에셔리히 경감이 지하감옥에 갇혀있었는지라, 새로 사건을 담담한 경감은 자신이 프로파일링한 범인과 직업이 다르다고 해서 내버려두고 천우신조로 크방엘은 살아남게 된다.
몇번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2년여동안 꾸준히 엽서를 뿌려오던 크방엘은 결국 자신의 무모함으로 인해 그 꼬리가 잡히게 된다.
에셔리히 경감에게 국가 반역죄와 내란죄 혐의로 체포되고 말았다.
자신을 나락으로까지 떨어뜨렸던 꼬마도깨비. 즉 크방엘부부를 체포하게 된 에셔리히 경감
독일 비밀경찰인 게슈타포로써 잔혹하기 그지없었던 그는 크방엘부부를 쫒는내내 크방엘 부부의 엽서를 접하고, 체체에 쓴맛을 보게되면서 유일한 전향자가 된다.
허나, 크방엘 부부의 활동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던 그는 자살을 하게 된다.
아내인 안나와 함께 게슈타포에 잡혀온 오토는 게슈타포의 모진심문 앞에 우연히 만났던 트루델의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트루델 부부 역시 잡혀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차피 죽을바엔 당당하게 죽고자 했던 크방엘 부부는 법정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벌인 일을 시인했으며, 감옥을 전전하다 결국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처음으로 읽어본 이 독일고전은 높은 몰입도가 매우 매력적인 소설이었고, 나치체제 하에서 침략을 받은 나라는 물론이고, 침략을 벌인 나라의 국민들도 무척이나 힘들었음을 보여주는 색다른 소설이었다.
여태껏 일본이라면, 일본국민이라면 무조건 악랄했을거란 생각을 하고있었지만, 어쩌면 대다수의 일본국민들은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채 그들 나름도 희생을 했을거란 생각을 해보니 전쟁을 벌인 주범들은 정말 잔혹하고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만 마땅하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스친다.
두께만으로 죄와벌처럼 읽기가 힘들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뒷내용이 궁금해서 다른일을 할수가 없을정도로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인간내면의 묘사가 극적으로 표현된 작품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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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을 파헤친 소설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과연 인간의 선과 악의 어느쪽에 서있는가'하는 것이다. 동물의 본성에 가까운 존재이면서 대를 이은 교육이나 습관등에 의해 잘 포장이 되어있다가 어느 순간 본성이 뛰쳐나오는 것은 아닐지 생각케된다. 그런 인간의 본성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있는 시기는 바로 전쟁이나 폭력과 같은 위기의 순간일 것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인류 최악의 전쟁이었으며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있는 참혹한 집단 살인이 연출되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1940년에서 1942년까지 베를린의 한 노동자 부부의 저항 일지이다. 하지만 단순한 저항일지를 떠나 위기의 순간에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간본성일지'이기도 하다.
나치가 독일을 통치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의 승리를 위해 독일의 많은 청년들이 전쟁터에 끌려나갔다. 가구공장의 작업반장인 크방엘과 그의 아내 안나는 어느 날 자신의 외동아들 오토의 사망통지서를 받아든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 점령을 축하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으며 곧 영국도 점령하리라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모든 국민들을 당원으로 흡수하여 충성을 맹약하게 하려는 시도와 국내에 있던 유대인을 색출하여 수용소로 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크방엘부부와 유대인노파 로젠탈, SS친위대에 세아들을 보내고 충성을 맹세한 페어지케가족과 전직 최고 재판관 크롬, 방관자같은 게쉬부인등이 사는 임대아파트는 또하나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무대이다. 착한 아내를 배신하고 놀음에 빠진 에노와 모사꾼이며 첩자인 바르크하우젠과 같은 인간이 뒤섞인 인간세상의 모든 것은 보여주는 무대인 것이다.
크방엘은 소심하고 깐깐한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신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실하게 일했던 공장은 단지 당원이라는 이유로 하찮은 인간들은 승진을 하고 월급을 더받는 상황이 되면서 나치 정권에 환멸을 느낀다. 크방엘은 외동아들의 전사를 계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어머니, 총통이 제 아들을 죽였어요...당신 아들도 죽일 거에요'
크방엘은 엽서를 써 배포함으로써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나치에게 대항하기로 한다. 하긴 평범한 가구공장직원이었던 크방엘이 나치독일에게 어떤 거창한 항거를 할 수나 있겠는가. 결국 엽서들은 게쉬타포의 손에 들어가고 기필코 범인을 잡겠다는 애셔리히경감에 의해 2년만에 잡히게 된다.
편파적인 재판과 보호받지 못한 변호로 크방엘부부는 재판에 넘겨지고 결국 사형을 선고 받는다. 사형을 기다리는 크방엘부부는 지난날을 회상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이란 죽음의 존재를 가장 크게 느끼며 더불어 생존의 의지를 부추기게 된다. 크방엘부부에게 죽음은 장렬하며 고귀한 것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죽음들에는 나름의 무게가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다가온다. 전쟁이란 극한 상황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비열한 인간들과 숭고한 죽음으로 승화시키는 인간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죽음의 무게를 그린 작품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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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였던가? 독일의 나치 정권 때 행해졌던 생체실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내가 어떤 연유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지독하게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독일군의 행태에 이것은 지극히 허구적인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성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다보니 책에서 보았던 생체실험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이미 다른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지배집단의 판단과 지시로 인해 국민들의 삶의 방향은 순식간에 바뀌고, 생각을 지배당하고, 말할 자유를 빼앗기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리기도 하니까.
한스 팔라다는 이러한 사회의 구성원, 즉 국민들의 고통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나치체제 하에서도 망명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글을 썼으며, 그가 쓴 <홀로 맞는 죽음>은 독일에서 최초로 나치체제를 비판한 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4주 동안 광적으로 매달려 글을 쓴 그는 1947년 2월 심부전으로 사망한다. <홀로 맞는 죽음>은 실제 나치체제에 저항했던 한 부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 졌다. 주인공인 크방엘 부부는 그럭저럭 나치체제에 순응하며 조용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 뿐인 외아들이 전쟁에서 사망하고 만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착하게 살아 온 그들에게 아들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억울함이었다. 게다가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고, 가족조차 믿을 수 없는 그들의 삶. 전쟁터에서는 이유 없이 생명들이 사라져 가고, 잠깐의 실수에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는 시대적 상황은 그들에게 견디기 역겨운 것들이었다. 또 거만하고 교활한 나치 당원들의 행태는 얼마나 잔혹하던가? 결국 그들은 나치제체에 저항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평범한 베를린의 시민이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크방엘 부부는 익명의 엽서를 작성해 배포하며, 히틀러의 만행을 폭로하고 시민들을 일깨우고자 노력한다. 나치 정권에 끝까지 저항하고자 하는 크방엘 부부와 그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게슈타포(비밀 국가 경찰)의 싸움은 당시를 살아가는 베를린 시민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숨 막히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변할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비열함은 한스 팔라다의 치밀한 묘사를 거쳐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고통으로 피어나고 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나치정권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탄생한 글이기에 <홀로 맞는 죽음>은 더욱 더 진솔하고 가슴 아프게 전해진다. 한 독재자로 인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신과 불안의 삶을 살아야했던 독일의 국민들.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어두운 역사이기에 그들의 잔혹했던 과거를 되새기며 지나온 한국의 역사, 우리가 사는 이 나라의 정치라는 것에 국민으로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