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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시험이야말로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평등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대입에서 수시보다 정시를 선호하는 것도 그런 영향이다. <시험인간>은 '시험공화국'이 되어 버린 한국 사회의 모습, 시험이 한없이 공정한 시스템이라는 명제에 대한 반박, 그리고 탈시험사회를 향한 전망을 다루고 있다. 뒷표지의 추천사에서 말하듯 지금의 한국은 시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수업을 하는 영어유치원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영어유치원들이 레벨 테스트를 통해 원생들을 걸러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지금은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도 시험을 거쳐야만 하는 시대인 것이다. 2020년 3월 현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토익 시험이 연달아 취소되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대학 졸업, 공인시험 응시, 사기업 입사 등 토익 점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점수를 제때 제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시험 하나가 취소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험의 위상이 높다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시험의 문제점은 단지 그 횟수가 많은 것뿐이 아니라고 한다. 유네스코는 시험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며 진학이나 채용과 같이 중요한 일에 활용되는 비중이 높은 시험을 고부담 시험이라고 정의했다. 즉 시험을 자주 본다 하더라도 그 시험들이 그저 학생의 학습량을 파악하기 위한 시험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의 시험들은 대다수가 고부담 시험이다. 학교에서 보는 작은 쪽지시험 하나도 성적에 반영되고, 그 성적이 곧 대입에 활용되기 때문에 작은 시험 하나도 허투루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고부담 시험은 학습자들을 금방 피로하게 만든다. 시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나 압박감 때문에 학습에 집중할 수 없는 학습자들도 많다. 위에서 언급한 토익 역시 표면적으로는 영어 듣기 능력과 읽기 능력을 진단하는 시험이지만 본인의 영어 듣기와 읽기 실력이 궁금해서 토익을 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토익 시험을 치는 사람들의 목표는 어떻게든 점수를 잘 따는 것이다. 실제로 유명한 토익 학원에서는 문제를 잘 찍는 법까지 강의하기도 할 정도이다.
한국인의 생애에서 고부담 시험에 맞닥뜨리는 횟수가 많다 하더라도, 정말 모든 시험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시험은 정말 공정하고 객관적일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990년대 미국 교육부가 시행한 초기 아동 장기 종단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집에 책이 많은 것이 아이의 성적에 훨씬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변인이라고 한다. 같은 연구에서 부모의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것, 첫아이를 출산한 시점에서 엄마의 나이가 30세 이상인 것이 아이의 성적에 유효한 변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즉 부모가 아이에게 어떠한 행동(책을 읽어 주는 것)을 하는지가 아니라 부모가 어떤 사람(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으며, 그러므로 집에 책이 많은 사람)인지가 아이의 성적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떤 부모 밑에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나는지에 따라서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시험이 모든 이들의 능력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허상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시험의 존재를 다른 무언가가 대체할 수 있을까? <시험인간>은 시험의 대안에 대해 상상해 본다. 북유럽이나 뉴질랜드, 일본의 예를 들며, 한국 사회가 교육과 채용 분야에서 시험이 아닌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자는 시험의 효과와 장점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만능주의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해 비판한다. 이 책이 시험 만능주의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일이 당장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정말 우리의 삶을 시험 결과에 맡겨 두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갖가지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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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설명. 우리사회와 간련된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들었던 생각이다. <386세대 유감>과 같은 책들이 그랬다. 뭔가 새로운 것 하나 없이, 그간이 자료들을 통해서 보기 좋게 만듬새만 유지한 것들 말이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았던 정동 혹은 미래에 우리 사회를 흔들 수 있는 현재의 정동에 대해서 탐사 하는 게 사회과학 글쓰기를 하는 작가나 기자 혹은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형식적인 마듬세만 확보한 채, 어떤 것에서도 그 너머에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것이 나쁘다”의 통찰만 있고, 그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읽었던 <시험 인가>은 달랐다. 책의 부제는 ‘불신가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이다.
<시험 인간>. 교육에 대한 특별한 통찰
특별함이란 말을 쓰기는 솔직히 민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이와 같은 수식어가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 인간>이란 책은 분명히 시험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사회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시험의 나쁜점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그 해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 모두가 시민을 디폴트 값으로 여긴다. 시험을 잘 봤든 혹은 시험을 잘 보지 못했든 말이다. 시험을 잘 본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자산을 합리화 한다. 그리고 시험을 못 본 사람은 이를 통해서 사회적 차별에 항복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문제. 시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공정한 평가 수단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왜 시험을 공정한 평가의 수단으로 보고, 이를 계속해서 진화 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피에르 부르디외는 교육에 대해 이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교육은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아니라, 계급을 합리화 시키는 기제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부르디외의 통찰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실현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꽃을 피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험을 왜 인간 능력의 디폴드 값으로 보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 환경적인 요인이 시험을 인간 능력의 최대치로 보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시험에 의해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로 이로 인한 문제는 무엇인지. 또한 단순히 시험을 한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측면으로 저자는 접근하면서 시험을 넘어 교육 그리고 우리 사회 채용의 시스템까지를 통찰하고 있다. 이 책의 통찰이 가장 빛났던 부분은 바로 211p의 <고인 물들의 고인 학문>이었다. 두 저자가 이 장에서 비판하는 것들은 과연 5지선다의 답 안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학문적 다양성의 상상력을 키우는 게 가능한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 또한 저자들과 같이 한다. 인간이 답을 찾는 방식은 5가지 이상일 것이고, 5가지는 추상화 된 형태다. 이 추상화된 형태만을 답으로 받아들이는 게 과연 우리 사회 혹은 과학에서 더 좋은 정답을 찾는게 기여할 수 있을까? 현재는 기여의 정도를 넘어 거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추천
이 책에 대한 추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바로 대학생들이다. 이 책을 가장 읽어야 할 사람은 학부모들이나 고등학생일 텐데, 솔직히 그들에게 이 책 저자들의 주장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내 생각인데 현실을 바꿀 수 있기보다, 주어진 현실을 따라가야 할 존재들이다. 또한 어쩌면 그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된 인생을 산다. 그들이 나쁜 게 아니라 사회 구조가 그렇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들은 바로 대학생들이다. 그들이 세상을 바꾸고 점진적으려 변화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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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영감을 받아 초등학교 입학 직후 첫 지필고사부터 대졸자 선발시험에 이르기까지 과연 몇 번의 시험을 치렀을까 세어보려 시도했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제도권 교육의 지필고사부터 온갖 학위, 자격, 공인 어학 능력, 대기업 입사는 물론 이민 가고 싶어도 시험을 보아야 하는 세상이다. 하기야 우리 인생 자체가 시험인데 따져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지금의 밥벌이조차도 연속된 시험을 거친 결과물이 아닌가.
사회학 박사와 심리학 박사가 힘을 합쳐 시험을 주제로 책을 썼다. 시험에 관한 기억을 돌이켜보니 씁쓸한 이유는 이 책의 부제에 표현된다.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이란다. 그러면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크게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시험 공화국이 되었는지, 한국에서의 시험이 지니는 특수한 의미는 무엇인지를 찾아보고(1장), 불신과 불공정이 낳은 슬픈 자화상으로 그려지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상을 돌아보며(2장), 앞으로 변화가 예견되는 세상을 위해 시험에 매몰되지 않을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3장).
저자는 우리나라 시험문화의 특징을 ‘고부담 시험(high-stakes exam)’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배운 내용을 확인하고 이해도를 점검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험 성적에 따라 상급학교 진학 또는 취업과 승진이 결정되며 심지어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로 이루어져 그 압박감은 최고조에 이를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에게 시험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투명성과 그로 인해 보장되는 공정성이며, 시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그 순기능에 매료되어 선발이나 자격 부여와 같은 중요한 사안일수록 시험에 의존하게 된다고 말한다.
제도권 교육에 몸담은 필자의 경우 시험 제도와 더불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의 심적 신체적 피로도를 높여주는 네 차례의 정기고사와 수행평가는 물론 각종 경시대회와 전국 학력평가 삼단 콤보를 어찌어찌 막아내면 시험의 끝판왕 수능이 그들을 기다린다. 해마다 바뀌고 복잡해지는 입학전형 탓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지금의 제도는 부담은 커지고 과정은 더 복잡해졌을 뿐이다. 이는 또한 곁에서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하는 학부모들을 비롯하여 사회 계층 전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물론 힘들기로 말하자면 내 자식들처럼 수능시험을 앞둔 고3 수험생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겠다. 시험 제도가 곧 사회 문제의 한 축인 셈으로 그 여파가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흔히 목격하는 안타까운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전체 고졸자 가운데 약 19%라는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인원이 졸업은 하되 학업이 부실하여 진학은 물론 취업도 못 하고, 제대로 된 직업 훈련도 받지 않은 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계층이 된다. 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은 군 입대 혹은 단순 일용직 등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꾸려갈 만한 역량을 갖춘 학생들이 얼마나 되겠는가를 고려하면, 시험은 계층을 선별하고 잘라내는 훌륭한 도구이다. 시험의 응시 기회만이 아니라 시험을 치를 수 있기까지의 과정에 미친 외부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미 그 결과가 예견된다는 점이 문제이다. 양질의 경제인구로 흡수되지 못하는 현상이 계속되면 그 결과는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인구 절벽과 더불어 증가하는 이민 인구의 유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매년 요동치는 입시제도 역시 이 혼란의 불바다에 기름을 붓고 있다. 마치 영토가 없어 헤매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착지 한편을 내주었던 팔레스타인이 핍박을 받듯, 처음 시작은 미약했던 수시모집이 공정성 훼손 요인으로 지목되자 이제는 정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선발 비중이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하기는 해도 소기의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시험 제도의 한계에 있다. 공부의 흥미를 제거하는 선행학습과 더불어 꼬리가 개 몸통을 흔들 듯 평가를 위한 학습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과거 학업 인구를 대량 배출하고 노동력을 대량 고용하던 시대에는 적합했을지 몰라도, 개개인의 특성과 능력이 더욱 중시되는 추세의 환경에서는 학습자의 성장과 발전이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시험 역시 이러한 흐름에 합당한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다형 지필시험은 응시자의 창의력이나 유연성은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식의 ‘반감기’라는 말처럼, 예컨대 심리학 분야의 지식은 약 7년이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반드시 정답이 있고 이를 찾아야 하는 객관식 선다형 시험은 지금까지의 정답을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 대안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찾아보는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울 수 없다면서,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고부담 시험에 매달리는 지금의 교육으로 정답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우리 기성세대는 세계로 뻗어 나갈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나아갈 길을 닦아줘야 할 의무가 있다. 소 팔고 땅 팔아 댄 돈으로 시험 만능주의에 승리하여 고관대작이 되었지만, 영혼 없는 사리사욕으로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일부 정계 인사들을 보면 젊은 층에 ‘이런 나라 물려줘서 미안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리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해 고부담 시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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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어 공부가 하고 싶어서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는데, 어느 순간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유명 강사님이 '점수가 잘 나오기 위해서는 직장인이더라도 신분은 취준생으로 설정하시고, 조깅하기와 같은 취미를 선택하세요...'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해서 시험에만 통과한들, 내 영어 공부에 큰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어느 순간 우리는 시험에 의해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시험에 통과하면 대단한 사람인양 보였고, 시험에 떨어지면 인생의 낙오자처럼 여겨졌다. 스스로를 판단하거나 타인을 판단하는 모든 기준이 시험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시험이 현재를 살아가는 전 세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왜 우리가 시험에 그토록 목을 매고 있는지 알려준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최소한 사회적인 기준에서는 시험이 될 지언정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본인을 판단하는 기준만큼은 시험으로 삼지 말자. 그리고 이 책은 그 쉽지 않은 변화를 위한 가이드를 준다.
내 인생을 시험이 아닌, 나로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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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공명정대하다는 맹신의 저변에는 입시, 채용 등 경제, 사회 활동과 직결되는 과정에서 목도한 부조리에 따른 불신이 깔려있다. 사람의 주관적인 평가보다는 객관식, 심지어는 인공지능의 평가를 더욱 신뢰한다는 예측에 큰 반감이 들지 않는 건 깊은 불신이 낳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도구로서의 공정성이 사회적 정의를 담보하지 않는다. 시험에 이르는 환경, 맥락의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수능을 치르기에 앞서 누군가는 하루하루 어렵게 생계를 지탱하는 가정에서 공부하는 반면, 누군가는 고액 과외나 학원 강의를 받는다. 수능의 고부담을 분산시키고자 도입된 학생부종합전형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특별활동 정도도 겨우 따라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교수인 학부모들의 품앗이, 다양한 경험을 부담 없이 제공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이들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의 시험은 공정하지 않다. 암울하기만 한 전망에 대안은 없는가. 책 <시험 인간>에서는 여러 나라의 노력과 사례를 통해 교과목 중심의 교육을 핵심 역량 위주로 재편하고, 수업 일수나 시간을 줄이면서 교사와 교육 시스템의 경쟁력을 강화해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래서 한 사람에 대해 시험의 결과가 아닌 다양한 측면이 함께 고려될 수 있는 구조와 문화로 바꾸어 나가기를 제안한다. 품도, 시간도 많이 들지만, 공산품을 찍어내듯 시험 훈련에 길들어 인생마저 정, 오답을 찾는 사회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며 공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사람을 기르는 교육은 사회의 근간이 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지식 대신 태도와 행동에 초점을 맞춘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책 <시험 인간>은 시험에 종속되어 그런 현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를 돌아보고, 우리의 인식과 한국의 교육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의 단서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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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가 만났을 때의 그 시너지는 상상이상의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가 <시험>이라는 키워드로 반추해본 대한민국 교육 현실을 담은 이 책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사회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설득력을 높인 부분은 새로운 접근이라 신선함을 안겨준다. 현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인생에 있어 시험이 갖는 의미와 영향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입시,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우리는 수많은 고부담 시험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고 평가해왔다. <시험인간>이라는 제목만 보고도 얼추 짐작이 갔던 이 책의 내용은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시험 공화국이 되었는지, 불신과 불공정이 낳은 결과물은 어떠한지, 그리고 결국 우리가 찾아가야 할 대안은 어떤 것인지 등 크게 3개의 틀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1장의 5에서 말하듯, 사실 시험 그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시험은 불특정 다수의 응시자들을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할 수 있는 제도이다. 평가자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연줄, 학연, 지연 등 응시자의 배경과도 관계하지 않는다. 청탁과 압력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 결과에 대해 누구나 쉽고 명쾌하게 납득할 수 있었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의지해왔다. 저부담 시험의 경우 학습자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더 나은 학습방법을 제시하도록 돕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험이라는 제도를 불공정하게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력화되고 변질되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시험이 공정하다는 생각으로부터 '시험만이 살길'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게 된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공평한 시험의 기회가 가져다준 최고의 산물과도 같이 여겨져왔다. 하지만 과연 시험이 공평할까? 시험이라는 제도 자체는 공평할지 몰라도, 시험을 치르는 응시자의 환경은 공평하지 못하다.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위태롭게 서있는 누군가가 고액 과외를 받고, 입시 컨설팅을 받는 누군가와 공평하게 시험을 치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공정성은 시험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된 경제적 기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p159
시험이라는 큰 틀로 움직이는 사회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차별과 경쟁을 조장하고 줄 세우기와 계급 나누기를 체득한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단순히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정규직과 사람을 학력과 직업, 집안으로 등급을 매기는 결혼정보 회사, 지방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지잡대'라고 부르며 멸시하는 소위 '명문대'생,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사회적 풍토 등은 바로 시험이 낳은 부작용들 중 일부이다. 인도적이고 윤리적인 가치 대신, 수치화되고 정형화된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만 제시한다면 어딘가 찝찝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저자는 책의 후미에 좋은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핀란드의 통합교육과 뉴질랜드의 역량 중심 교육, '살아가는 힘'을 강조한 일본식 교육, 미네르바 스쿨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채용 등 변화하는 시대와 환경에 맞는 선례들은 국내에 충분히 적용될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 대량고용 시대에는 시험이 합리적인 제도로서 기능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나중에는 기업에서 인력 부족으로 피고용자를 모셔가게 될지도 모르는 시대에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차별과 경쟁 구도는 비합리적이다. 즉, 100명 중 1명의 낙오자가 발생할 경우 99명이 그 몫을 나누게 되지만, 10명 중 1명의 낙오자가 발생하면 9명이 그 몫을 나눠야 한다. 공석에 대한 부담감이 더욱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우수하게 키우는 평등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혁신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왔던 블라인드 채용이 독일의 채용상인 '익명지원제도'와 갖는 근본적인 차이는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독일에서는 이 제도를 성별, 인종, 종교, 연령, 장애, 성적 지향 등 선천적이거나 불가항력적으로 결정된 특성을 가려 채용에 있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채용에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인 교육 수준과 학업성취도, 어느 회사나 기관에서 일했는지 등의 정보를 가리는데 활용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우리나라에서 학력과 경력을 어떠한 '불공정한'것으로 여겨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험인간이란, 시험이라는 규격화된 평가체계에 나를 얼마나 정확하게 부합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점수와 합격의 경력을 제외하고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p114 나는 시험인간이다. 안타깝게도 시험인간으로 자라왔다. 어느 날은 시험이 끝나고 찾아오는 공허함에 몸서리치던 적도 있다. 그 때는 그 공허함이 내가 시험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임을 알지 못했다. 많은 아이들에게 시험은 목숨과도 같았다. 그래서 친구와 절연을 하면서까지 시험을 지켰고, 잠과 여유를 팔면서까지 시험에 매달렸다. 수행평가 비중과 수시 입학 비율을 높이고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늘리고 있는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은 새벽까지 공부하고 새벽부터 공부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학원 조교를 하며 만났던 아이들은 그랬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현실이다. 나는 누리지 못했지만, 부디 많은 교육자들과 학부모들이 이 책을 읽고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길 희망한다. 자라나는 새싹들이 시험공화국이 아닌, 관계공화국 속에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관계들을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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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0 <시험인간(김기헌·장근영 지음/생각정원)> #사회학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
이 책은 시험 자체를 비판하거나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험이 교육을 집어삼켜서 ‘교육을 잘하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교육’이 되어버리고, ‘시험점수를 높이는 수업’을 통해 ‘시험선수’를 배출하는 교육이 되어버린 현상. 그리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 당연한 정도를 넘어서 더 심각한 시험선수를 만들어내려고 이를 이른바 경쟁력의 강화라고 착각하게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 경고하려는 것이다. -p176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 재직 중인 사회학 박사와 심리학 박사가 결합하여 불공정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그 근원 원인과 대안을 ‘상상’한다. 저자들은 우리나라를 ‘시험공화국’으로 정의했다.
저자들의 정의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시험에 ‘중독’되어있는 나라도 없다. 초, 중, 고 12년 동안,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다시 시험의 늪 속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면 시험은 끝나는가 우리나라 기업들의 채용 방식이 무엇인가? 바로 공개 채용 ‘시험’이다. 우리가 경험해온 시험은 진학이나 채용을 결정하는 ‘고부담 시험(high-stakes exam)’이다.
“입시와 취업의 굴레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은 시험인간이다. 시험공화국에 살아가는 한 누구도 시험인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험이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받은 지는 아주 오래되었고, 시험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험’ 자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시험을 활용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시험은 교육의 과정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의 목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험은 지능이나 교육 분야에서 다른 영역으로 쉽게 확산되고 인간에 대한 공통의 사회적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 근본적 원인은, 추상적인 인간의 특성을 수량적인 점수로 환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시험, 특히 점수 환산이 쉬운 선다형 시험을 통해 우리는 질적인 특성(머리가 좋다/머리가 나쁘다)을 양적인 척도(지능검사 점수가 몇 점이다)로 변환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방법뿐 아니라 인력을 수량적으로 평가하고 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 시험은 대량고용 시대에 적합한 선발 도구였기에 우리가 오랫동안 의존해왔다. 그러나 21세기 정보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 도구가 되었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취약한 부분이 바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적 관계를 통하여 이용할 수 있는 자본을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자본은 타인에 대한 신뢰다. 신뢰는 도움을 주고받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시험인간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치르는 고부담 시험은 협력보다는 경쟁과 배신을 유도한다. 현재 공교육 시스템을 갉아 먹는 가장 큰 원흉은 사교육이 아니다. 사교육을 키워주는 불신, 배신의 게임이 반복되어 생긴 결과다. 그 배경에는 일회성의 고부담 시험이 있다.
우리나라 시험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수능시험은 투명하게 공개된다. 신뢰성은 시험이 투명할 때 확실해진다. 사지선다형, 요즘은 오지선다형 지필 시험의 출제와 채점이 단순하다. 시험 과정의 공정성을 인정하지 않는 수험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결과인 수능점수에는 부모의 사회문화적 자본의 힘,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의 차이가 담겨있다. 지금의 청소년 세대는 이제 그들이 ‘금수저, 쇠수저, 흙수저’라고 자조하는, 계층 차이로 현격하게 벌어진 출발선에 서 있다. 한국 사회 공정성의 기반이 사라진 것이다. 시험의 공정성은 신화다. 학생부종합전형만큼이나 수능시험 또한 부유한 학생과 가난한 학생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능은 공정하다고 믿으면, 그 점수에 따라 갈라지는 인생의 길,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불평등도 모두 공정한 것으로 믿게 된다.
우리가 시험 이외의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건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시험을 치러야 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수험생의 삶, 수험생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삶, 시험 결과에 인생이 결정되는 삶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시험 이외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터널비전은 시험에 투입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심해진다. 시험은 누구나 인정하는 ‘정당한’ 등용 방법이고, 나머지는 모두 의심스럽거나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시험에 의존하고 중독되는 것이다. -p99
교육의 효과를 측정하고자 만들어진 평가방식 즉 시험은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험의 결과를 통한 차별은 우리의 기억 속에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시험의 결과는 합산되어 그 사람의 인생, 그 사람이 일하는 직장과 계층의 차별을 당연하게 만든다. ‘차별을 통한 사회적 지위 차이의 정당화 과정’ 시험을 통해서 주어진 집단 정체성, ‘합격자 대 불합격자’, ‘명문대 대 지잡대’, ‘정규직 대 비정규직’
‘성장(growth) 마인드셋(mindset)’은 실패를 극복하고 계속 도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이 성장하게 이끌어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태도다. ‘고정(fixed) 마인드셋(mindset)’은 실패를 기피하고 안정만을 추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이나 공동체를 퇴보로 이끄는 부정적인 사고방식과 태도다. 그렇다면 시험인간의 사고방식은 어떤 마인드셋에 더 가까울까 시험의 결과만으로 사람의 자격을 평가하는 고부담 시험은 고정 마인드셋과 정확히 일치한다. 고정 마인드셋은 또한 차별의 정당화와도 찰떡궁합이다.
고부담 시험에 의한 서열주의나 벗어날 수 없는 열등감은 삶에 대한 만족도나 주관적인 행복지수를 떨어뜨린다. 또한 (교사로서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공부의 즐거움이나 재미를 빼앗아간다. 학습하려는 동기나 의욕 자체를 꺾고 공부하기를 포기하는 학생들을 만들어낸다. 시험 훈련이 끝난 성인들은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그 지겨운 공부를 중단한 한국의 어른들은 빠른 속도로 멍청해진다.
학력고사 세대인 나는 15등급 중 등급이었던 나는, 수능에서 아이들의 등급을 한 등급이라도 땡겨주려고 28년째 고생중이다. A 결혼정보회사 직업별 등급표에 의하면 11등급이다. 무슨 쇠고기, 돼지고기도 아니고, 쳇!!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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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인간>은 시험으로 만연한 우리 사회와 그 속에서 너무 익숙해져버린 우리 모두에게 따끔한 경종을 울린다. 시험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시험인간>은 수험생과 취준생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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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인간이라는 책의 부제와 책 소개에 이끌려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이라는 부제 하에 ‘당신은 몇 등급입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너무나 현실적인 문장으로 씁쓸한 성과주의의 현재를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학벌과 재산, 학구열이 뜨거운 학군 등 이미 우리의 등급은 초등학교 아니 빠르면 유치원시절부터 정해져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그 순간부터는 어느 기업에 입사를 했는가로 일생이 좌우된다는 말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시험으로 인한 제도로 사람의 등급을 평가하고 그것이 곧 그 사람 자체라는 인식을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아마 이 책이라면 명쾌한 해답과 함께 나름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시험인간’을 쓴 김기헌, 장근영 저자는 한국의 시험은 단순히 자기 능력을 측정하고 학습의 방향을 정하는 ‘수단’이 아니다라고 한다. 영유아기부터 영어유치원 선발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초등학생이 되면 영재원에 합격하기 위해 사교육을 시작한다. 이는 내가 직접 겪은 사실이기도 하다. 이어서 특목고 진학을 위해 중학교부터 성적을 관리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시험지 유출마저 일어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시험은 인생의 길목마다 자리해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개인에게 큰 위험부담을 전가하는 ‘고부담 시험(high stake exam)’이다. 저자들은 한국 사회를 지배한 고부담 시험이, 선발과 경쟁에 익숙한 ‘시험인간’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려면 제도는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제도라는 것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많은 문제점들이 정도를 지나치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시험인간의 저자들은 이대로 시험인간들의 세상이 계속될 경우, 승자독식으로 인한 갑질과 불평등 문제, 시험만이 공정하다는 맹신 속에서 사회 제도를 비판적으로 볼 수 없다는 측면을 책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에 대한 논리를 뒷바침하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이 있어서 수록해본다. 우리가 시험 이외의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건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시험을 치러야 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수험생의 삶, 수험생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삶, 시험 결과에 인생이 결정되는 삶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시험 이외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터널비전은 시험에 투입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심해진다. 시험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당한’ 등용 방법이고, 나머지는 모두 의심스럽거나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시험에 의존하고 중독되는 것이다. 이어서 학교라는 장소는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건강한 인성을 쌓아올리고 사회력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이 당연한 개념이 무색할 정도로 무조건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하여 경쟁심을 독려하는 곳이 되어 버린지 오래되어 버렸다. 그에 맞는 책의 내용이 있어 일부 발췌하였다. 실제 나 또한 느껴보았던 감정이고 더 심화될수밖에 없는 환경과 조건이기에 더 씁쓸한 느낌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학생이 과외를 통해 그 학기에 배울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학교에 온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당연히 나머지 학생들보다 시험성적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원래 능력보다 더 우수한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학생들이 이 학생의 배신을 알아차렸다. 이 배신에는 특별히 보복할 수단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이제 모든 학생이 과외로 미리 한 학기 앞서 공부를 하고, 그러면 처음 배신한 학생의 이점이 사라진다. 그 다음부터 악순환이 시작된다. 배신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더 강력하게 배신한다. 모두 한 학기를 미리 공부하면 이번엔 다음 1년 치를 미리 공부한다. 물론 다른 학생들도 곧 이를 따라 한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2년 치 공부를 미리 한다. 배신이 배신을 낳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 센 배신을 하는 배신의 증폭이 일어난다 하루하루 밥벌이를 위하여 직장에 몸을 담고 일하는 이 순간에도 시험인간의 삶을 계속된다. 분기마다 본인의 업무에 대한 평가서를 제출하라는 공지를 받을 때 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성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나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는데 역시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씁쓸함이 참 슬프게 느껴진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선이 있다. 물론 그 적당한 선이 매우 지키기가 어렵다. 시험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아마도 시험인간-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에서는 이러한 사회의 제도에 대하여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일종의 개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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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시험중독에 대해 논하는 책이다. 특이한건 사회학자와 심리학자 두 사람이 공동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그래서 시험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접근이 버무려진 대한민국 진단서다. 얼마 전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이슈가 되면서 시험에 대한 문제점들이 더 주목받고 있는데 이 책은 이런 시험인간을 양산하는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을 그려낸다.
실제로 자녀교육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장에서는 영유아기부터 영어유치원 선발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초등학생이 되면 영재원에 합격하기 위해 사교육을 시작한다. 특목고 진학을 위해 중학교부터 성적을 관리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시험지 유출마저 일어나고 있다. 시험에 따른 사회적 보상이 어떻게 보면 공정한 방식인 듯 하지만 지금처럼 시험인간들의 세상이 계속될 경우, 승자독식으로 인한 갑질과 불평등 문제, 시험만이 공정하다는 맹신 속에서 사회 제도를 비판적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과학적 논리적 연구결과와 그 과정에서 저자들이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런 주장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총3장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시험공화국이 되었는지와 불신과 불공정이 낳은 슬픈 우리 자화상을 공개하고 후반부에서는 이런 시험의 병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후반부 대안을 제시하는 대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시험사회를 해체하라거나 시험을 없애야 한다는게 아니라 시험에 대해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험은 다음 학습을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성장기 학생들에게 학습을 기억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수단임은 인정한다. 대신 시험은 학습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하고 개인의 능력과 자질, 좁게는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실제 연구에서는 놀랍게도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쪽지시험을 통해 학생들은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보여줬다. 이는 교사의 주입식 교육보다 시험이라는 도구를 활용한 학생의 인출식 학습이 학습의 성취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시험인간이란 무엇일까? 시험에 대한 정의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선발과 경쟁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는 시험에 적응한 인간형을 뜻한다. 시험성적에 있어서는 고성과자와 중간성과자, 저성과자로 차이를 보이겠지만, 이러한 시험방식에 적응해 살아간다면 누구나 시험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입시와 취업의 굴레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거의 대부분은 시험인간이다. 시험공화국에 살아가는 한 누구도 시험인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무수한 젊은이는 엄청난 시험 부담에 시달리며, 시험인간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시험 이외의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는 건 대안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시험을 치러야 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수험생의 삶, 수험생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삶, 시험 결과에 인생이 결정되는 삶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시험 이외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터널비전은 시험에 투입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더 심해진다. 시험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정당한’ 등용 방법이고, 나머지는 모두 의심스럽거나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시험에 의존하고 중독되는 것이다. 1960년대 부모가 논 팔아서 대학에 보낸 세대가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그것이 한국 사회의 발전 동력과 국민들에게 부여된 성취 동기의 에너지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부모 세대에게는 더 이상 팔 논이 균등하게 주어져 있지 않다. 지금은 이전 세대가 논을 팔아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얻었느냐에 따라 뚜렷하게 계층이 나뉜 단계다. 지금의 청소년 세대는 이제 그들이 ‘금수저, 쇠수저, 흙수저’라고 자조하는, 계층 차이로 현격하게 벌어진 출발선에 서 있다. 한국 사회 공정성의 기반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고부담 지필시험만으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그저 헛된 소망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