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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사상가 10인이 말하는 인간 본성 이야기..
"동양의 사상가 10인이 말하는 인간 본성 이야기.." 내용보기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우리가 처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접한 것은 아마 학교 다닐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맹자와 순자로 대표되는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에 대해 배우면서 마음속으로는 성선설에 기울었지 싶다. 인간의 본성이 선(善)하다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리기도 해서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역사적배경이 유학이었고 맹자가 공자를 이어받는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동양의 사상가 10인이 말하는 인간 본성 이야기.." 내용보기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우리가 처음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접한 것은 아마 학교 다닐 때가 아닌지 모르겠다. 맹자와 순자로 대표되는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에 대해 배우면서 마음속으로는 성선설에 기울었지 싶다. 인간의 본성이 선(善)하다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리기도 해서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역사적배경이 유학이었고 맹자가 공자를 이어받는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는 경험을 누구나가 한 번씩은 해보지 않았을까? 나 또한 그랬다. 과연 인간은 본성은 무엇일까?

 

이 책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는 동양철학자인 저자가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살펴본 책이다. 묵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상앙, 한비자, 노자, 장자, 순자, 맹자, 손자, 오기, 그리고 공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였고, 또 왜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묵가, 법가, 도가, 유가, 병가 등, 춘추전국시대 사상의 통일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했던 제자백가들의 인간관을 비교, 대조하면서 그들이 바라보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비슷한지를 통해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셈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가장 대중적인 인성논쟁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성론(人性論)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춘추전국시대는 혼란의 시기였다. 춘추시대가 끝나가면서 철기의 등장은 생산력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기존의 씨족사회를 해체하면서 혼란은 가중되었다. 씨족사회의 해체라 함은 인간이 사회구성과 통치의 기본단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씨족공동체의 파괴는 덕(德) 관념의 추락과 예(禮)를 앞세운 종법제도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회규범을 필요로 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인간에 대한 정의를 필요로 하였기에 인성론과 인간에 대한 담론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춘추시대 말기 이후를 살아간 제자백가들이 인성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다. 따라서 인성론은 철저하게 정치적인 논쟁이 되어갔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의 인성론에서 주류는 우리들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성악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선설은 맹자, 잘 쳐준다면 공자까지 단 둘 뿐이었고,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본성을 성악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볼 때 우리에게 성선설이 주류처럼 소개되고 있는 것은 조선시대가 유교를 앞세워 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한나라 대에 이르러 유가가 관학이 되기 이전, 즉 춘추전국시대의 주류는 법가와 병가였다. 마찬가지로 성악설이 주류가 된 원인은 전국시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먼저 악(惡)의 개념에 대해 살펴본다. 성악설에서 악은 서양의 그것과는 개념과 다르다고 한다. 동양에서 악은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들게 하는 대상 혹은 현상을 일컬었다. 특정한 실체를 가지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라 무질서해 보이는 사회의 현상을 의미하는 뜻이 강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제자백가들이 말하는 성악설에서 악은 사회적 혹은 사회학적 개념으로 보아야하며, 선과 악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즉 성악설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현실을 직시한 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묵자는 하층민의 입장에서 현실을 보았고, 순자와 맹자는 지식인의 관점으로 보았다. 장자는 힘없는 주변부 지식인의 시선으로 보았고, 노자는 역사를 살핀 지식인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다. 관중은 관료의 시선으로, 한비자는 왕의 관점으로, 그리고 손자와 오기 같은 병가는 장수의 입장에서 현실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제자백가들의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은 비단 인성론뿐만이 아니라 그들 각각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들은 인간 하나하나를 보기보다는 사회의 혼란과 어지러움을 악이라 보았고, 혼란과 무질서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생긴다고 본 것이다. 성악론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런 욕망을 어떻게 하면 충족하게 해줄지에 대해 고민했다. 순자와 묵자 그리고 법가는 타고난 인간의 욕망이 부정적이니 사회의 규범을 배워 사회화해야 한다고 했고, 노자와 장자는 타고난 면은 긍정적이나 문명과 사회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주입하여 변질된 모습이 부정적이니 타고난 면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즉 타고난 본성에 관계없이 사람은 욕망을 추구하는 오염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으니,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당연히 혼란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성악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성악론자들은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인치(人治)를 부인하고 객관적인 규범과 원리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악(惡)의 개념에 이어서 저자는 제자백가 중 위대한 사상가 10인의 인간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 살펴본다. 가장 먼저 인성론을 주장한 묵자는 인간을 이익과 관련된 욕망을 충족해야 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이런 인간들이 모여 살면서 서로의 이로움을 주장하니 극단적인 갈등이 일어나고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성악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묵자는 인간의 계산하는 이성을 신뢰하였기에 겸애(兼愛)를 내세웠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는 반드시 이로움을 선택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가 상(賞)과 벌(罰)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이다.

 

처음으로 법치를 체계적으로 논한 상앙은 인치를 혼란의 원인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았으며 정치에서 인간 내면의 마음과 감정에 의존하면 혼란만 커진다고 하며, 철저히 주관주의를 거부한 성악설론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윤리와 도덕이 아니라 명문화된 규범과 법만이 답이라고 생각한 상앙은, 그 수단으로 예외 없이 공정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들었다. 그럼에도 상앙이 인간의 욕망을 보장하고 개방하여 사유재산의 보호를 철저하게 법으로 규정하고 법에 대한 교육을 강조한 것은, 인간의 변화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한비자에게 있어 인간의 본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다만 환경에 따를 뿐이다. 한비자가 인간을 극단적으로 불신한 이유는, 인간은 이익을 위해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과 벌로 만들어진 세(勢)를 통해서만 압박하고 강제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다시 말해 한비자에게 있어 인간 각자의 인격과 도덕성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법과 제도를 빈틈없이 만들어 유도 내지는 강제해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법과 제도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성정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자와 장자는 제자백가 중 인간에 대한 기대가 가장 낮았고, 세상을 늘 투쟁의 공간으로 보았다고 한다. 다만 노자는 궁궐 안 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았고, 장자는 궁궐 밖의 지식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먼저 노자는 욕망에서 파생된 이성이 인간세상을 어지럽힌다고 보았다. 투쟁의 공간에 사는 인간은 욕망과 욕심이 가득 차있고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꾀를 궁리하는데 이것 또한 세상을 어지럽힌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윤리와 도덕이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권력자의 이익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며, 그래서 윤리와 도덕이 강조될수록 세상은 더욱 혼란해지고 무질서해진다고 주장했다. 노자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방법이 무위(無爲)였다. 만족을 아는 지족(知足)과 멈춤을 아는 지지(知止)를 삶의 목표로 삼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반면에 장자는 인간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성악설론자이지만 인간의 본성은 긍정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장자는 인간의 본성을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적 삶을 살아가는 자연적 본성과 국가권력이 주입한 이념과 가치로 만들어진 후천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본성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사회적 본성으로 살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정치권력과 사회가 요구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이 인간타락과 사회혼란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장자는, 자연적 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설파한다.

 

병가는 인간심리에 대한 통찰이 탁월하다고 한다. 전쟁을 하기위해서는 많은 군사를 조직하고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하지 싶다. 그러다보니 병가는 인간 자체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손자가 지휘중심의 병법가였다면 오기는 통솔 중심의 병법가였다. 따라서 손자는 조직을 다루는 방법의 기본을 상벌과 설득에서 찾았고, 오기는 파격적인 보상제도와 국가유공자제도 등과 같은 정치에서 찾았다고 한다. 저자는 병가에서 말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심리학, 조직학, 지도자의 리더십이라는 세 가지 핵심으로 압축할 수 있고, 성선과 성악의 프레임을 넘어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인감심리를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유학이 지향하는 목적은 군자(君子)가 되자는 것이고,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하면 착하게 살자는 것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이라는 인성론의 상징적인 사상가로 꼽히는 순자와 맹자는 모두 공자의 사상적 제자이다. 그래서 인간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인간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순자는 성악설의 대표주자로 인식된다. 그러나 순자의 성악설 역시 인간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가진 인간이 모인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순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욕망덩어리인 인간 모두가 각자 이익을 찾고 욕망을 향해 달려가니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모여 있는 상태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분(分)이라고 주장했다. 순자는 인간은 태어나면서 선이나 윤리 같은 것을 가지지 못한 결핍된 상태로 이해했다. 즉 자연적 본성을 결핍 혹은 공백으로 보았으며, 그런 결핍을 후천적으로 습득하고 채워 넣기 위해서 배움이 필요하고, 그 배움의 대상을 예(禮)에서 찾았다. 결론적으로 순자는 인간의 욕망은 절대 없앨 수 없으며 개인의 욕망을 변화하게 하거나 적절히 충족하게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범을 만들고 지키면 인간의 욕망은 문제없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본능으로서의 본성과 본질로서의 본성으로 나눈다. 본능으로서의 본성은 배우지 않아도 타고나는 성질과 경향성으로서의 인간 본성으로 성악설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인간 본성이다. 반면에 본질로서의 본성은 다른 존재와 구분되게 하는 항상적 불변성을 말하며, 이것이 맹자가 말하는 본성이라고 한다. 맹자는 인의를 중시하고 사랑하고 아끼며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인데, 그 본질로서의 윤리와 도덕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맹자가 성선론자로 불린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맹자는 본능으로서의 본성보다 본질로서의 본성에서부터 시작한 셈이다. 또한 맹자는 인간의식을 도덕적 감정과 이성으로서의 인간본성인 심지관(心之官)과 욕망과 감정의 영역인 이목지관(耳目之官)으로 구분하고, 이를 대체(大體), 소체(小體)로 연결시킨다. 맹자에게 중요한 것은 본질로서의 인간본성인 심지관이고, 측은지심은 바로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가는 소인을 억압하거나 훈육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지배층의 도덕심이었다. 맹자는 내 안의 사단(四端)을 키우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고, 사단을 키우기 위해서는 생각(思)을 해야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서 군주에게 왕도정치를 주문했으나, 전국시대 군주의 입장에서는 한가한 소리였고 그래서 외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맹자의 주장은 지식인이 정치권력을 독과점해야 한다는 정치적 구호였다. 이처럼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기득권층의 입맛에 맞게 바꾸었고 차별과 특권을 옹호했다. 맹자가 후대에 공자의 후계자로 지목된 것은 기득권층에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공자는 주체로서의 인간의 범위를 밝히고 그런 주체로서의 인간을 강조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왕과 신하만이 스스로 생각하고 가치를 지향하는 존재이며, 대다수 인간은 정치권력의 힘과 폭력으로 끌고 다닐 수 있는 객체라는 당시의 관점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래서 덕(德)을 닦는 것이 많은 이의 숙제가 되도록 했다고 한다. 인성론의 관점에서 볼 때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다만 후천적 습관과 학습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순자의 성악설과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인성론은 이처럼 성악설이 주류였다. 제자백가가 인성론을 다룬 것은 지적호기심이나 심리학적 접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성악설을 주장한 사상가들의 사고에는 하층민들에 대한 연민이 많이 엿보인다. 그래서 저자는 제자백가의 인성론이 피지배층으로서의 백성, 혹은 민중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하는 것일 게다. 철학이란 사람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사고(思考)를 넓히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분명히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 한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의 인성론을 알아간다는 것은 바로 인문학으로서의 철학하는 마음이란 생각이 든다. 인문학이 실종되었다고 말하는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더불어 제자백가로 통칭되는 동양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k*****1 2020.12.26. 신고 공감 22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