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8.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용보기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읽은 지 시간이 지나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몇 구절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볼까 한다.  굉장히 건조하게 책 소개를 하자면, 대중 철학자 앙리 레비가 파리의 고등사범학교 뒷산 홀에서 "나는 어떻게 철학을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는 알튀세의 제자다. 비록 앙리 레비가 학계에서는 철학자로 대접받지 못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용보기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읽은 지 시간이 지나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몇 구절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겨볼까 한다. 

 

굉장히 건조하게 책 소개를 하자면, 대중 철학자 앙리 레비가 파리의 고등사범학교 뒷산 홀에서 "나는 어떻게 철학을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그는 알튀세의 제자다. 비록 앙리 레비가 학계에서는 철학자로 대접받지 못한 눈치이지만 철학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쓸모 있는 말을 담은 듯하다. 한때 철학도를 꿈꿨던 드미트리에게도 울림 있는 몇 구절이 있어 옮겨보고자 한다. (라고는 썼지만, 철학이 아니라 역사 - 사상사를 포함한 - 로 관심을 옮긴 뒤로는 철학(?)적 담론이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학문의 기초는 인문학이고 인문학의 기본은 철학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웃기고 있네, 라고 답할 드미트리니까)

 

저는 철학을 그런 것으로 봅니다. 이 세계는 결코 하나의 체계도 질서도, 조화도 아니기에 말입니다. 세계는 언제라도 내파당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고, 또한 내파의 위험 때문에 자나 깨나 우리는 멍한 혼미상태에 사로잡혀 있기에 말입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카오스, 소요, 눈사태 등, 철학적 체계성을 필요로 하는 온갖 형태의 재앙이기에 말입니다. (38쪽)

 

앙리 레비는 철학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로 세상의 부조화를 든다. 이런 태도는 강연 내내 이어진다. 균열에서 철학은 탄생한다. 철학은 균열을 개념화하고, 문제화하며 논쟁에 부친다. 철학자, 하면 말장난을 일삼고 말싸움을 하는 사람이 떠오르는데, 흥미롭게도 철학자 중에 대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일단 들뢰즈가 그랬고, 앙리 레비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대화를 믿지 않는다고, 사상이 그런 식으로 작동을 개시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당연히 그것을 철학적 조작방법들을 늘어놓는 테이블에서 치워 버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중략) 저는 이 두 번째 가족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중략) 아닌 게 아니라 사실 저는 어떤 사람이 철학적 대화나 아니면 그냥 일반적인 어떤 대화를 나누고 나서 이전에 지녔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54~55쪽) 

 

그렇다면 앙리 레비는 왜 철학하는가. 그는 타인과 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유령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세계의 속삭임을 전제(60쪽)한다고 말한다. 덧붙이기를, 이미 이 속삭임에게 너무나 볼일이 많기 때문에 철학은 소통 환상으로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할 여념이 없다고 한다. 소통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정말로 있다면 맥빠진 말이겠지만, 솔직히 현실을 보자면 앙리 레비 입장이 옳다. 대화해서 바뀌나. 많은 사람의 지론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인간은 8살 넘어서는 쭉 간다고 확신한다. 대화했다고 해서 안 바뀐다. 권위 있는 전문가로부터의 조언이라든지, 책으로 아주 살짝 바뀔 수는 있으나 적어도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이라든지 대화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바뀔 수는 없다. 고로, 철학도 학문도 전적으로 자신의 유령성과 마주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강연 중후반으로 가면 앙리 레비는 '융합'을 이야기한다. 철학과 다른 학문이 대등한 위치에서 뒤섞이는 게 아니라, 다른 학문을 철학으로 끌어오는 게 진정한 철학하기라고 저자는 말한다. 

 

철학을 한다는 것, 그것은 물론 철학을 예술이나 과학 혹은 유대교학에 "뒤섞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저것에 접목시키는 것, 철학에 속하지 않는 실천이나 소리를 철학 안에 도입하는 것,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세계들을 서로 대화하게 하는 것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96쪽)

 

이 대목은 철학자로서 철학을 다소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지하다시피, 철학은 학문적 대상이나 방법론이 타 분과학문보다 모호하다. 거대담론이 사라지면서 철학이 더는 학문을 끌고 나갈 수 없는 지금, 철학은 '비평'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유행하고는 있으나 딱히 철학이 다른 학문을 포괄할 만한 역량은 없다. 그런 면에서 앙리 레비의 인식은 너무 안이한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철학의 정당성은 강연 후반에 말하는 이 대목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기에도 철학만의 특권을 주장하기에는 뭣한 근거긴 하지만.

 

제가 철학을 하는 것은 우리가 전쟁 중에 있기 때문이요, 전 지구적 전쟁을 겪고 있기 때문이요, 그 전쟁이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할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에게 철학이란 사건의 폭력성을, 돌출을, 그 예측 불가능성을, 때로는 그 공포를 사유하거나 혹은 사유에 대한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122쪽)

 

대한민국 맥락으로 가져온다면 '전쟁' 대신 '세월호'를 넣어도 무방하겠다. 즉, 앙리 레비는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철학'을 버릴 수 없다. 

 

나머지 그의 철학적 주장을 좀 더 인용하면서 마치자.

 

저는 라캉주의자이자 현상학자입니다. 주체는 "구성하는 자"라기보다는 "구성되는 자"라고 생각하며, 우리에게는 지향성, 주관적 경험, 사물들과의 만남만큼이나 많은 "나"가 있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나"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우리의 연속적인 동일시들의 총합, 혹은 그것들의 일시적인 결정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142~143쪽)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철학의 가장 고귀한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진리의 추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저는 어떤 이유로든 간에 진리를 단념한 철학자는 명예와 존엄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은 제가 보기에는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진정으로 적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여론'이 철학의 적이었고, 오늘날에는 상대주의, 미분화주의, 냉소주의 - 결국 같은 것이므로, 이름은 중요치 않습니다 - 등이 적입니다. (160쪽)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대목이 바로 여기다. 상대주의, 냉소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철학이 존재한다... 뭐, 좋은 표현이긴 하다면 이상과 현실 간 괴리가 참으로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4.11.3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깡패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
"깡패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 내용보기
철학자는 개념의 장인이다.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베르나르-앙리 레비 모두 철학이란 '만들기'라고 믿었다.  앙리 레비의 스승 알튀세르는 철학을 '제작한다'라고, 들뢰즈는 '배치한다'라고, 칸트는 '종합한다'라고 말했다. 철학자는 언어를 장인처럼 다루어 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가령 들뢰즈는 개념들이 자유롭고 야생적인 상태에 있는 사물들 자체이고, 철학이란 개념들을 발
"깡패 철학자가 필요한 이유" 내용보기

철학자는 개념의 장인이다.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베르나르-앙리 레비 모두 철학이란 '만들기'라고 믿었다.  앙리 레비의 스승 알튀세르는 철학을 '제작한다'라고, 들뢰즈는 '배치한다'라고, 칸트는 '종합한다'라고 말했다. 철학자는 언어를 장인처럼 다루어 체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가령 들뢰즈는 개념들이 자유롭고 야생적인 상태에 있는 사물들 자체이고, 철학이란 개념들을 발명하고 배치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철학은 세계의 재현과 해석이 아니라 차이들을 창조하고 개념화하는 일이다.

 

"철학을 할 때 저는 명상을 하지 않습니다. 꿈을 꾸지 않습니다. 저는 직관도, 상상력도, 심지어 관념도 앞세우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것은 말들에 의해 연동하는 개념들의 생산, 해부, 조작, 증식, 유기적 결합입니다."(28쪽)

 

동서양 철학사는 모두 철학 자체의 재생산이다. 철학의 목표는 상식적인 재현을 전복하고 새로운 사유방식, 즉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생산해내는 일이다. 철학적 개념이란 '프랑스 이데올로기'(나치 독일에 협력한 페탱주의자들과 레지스탕스 활동가들의 공통점)나 '순수성의 의지'(나치즘, 공산주의, 이슬람 원리주의 등의 공통점)와 같이 여러 사건들을 함께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논증적 단일성이거나, '파시슬라미즘' (파시즘과 이슬람주의의 합성어)처럼 허구적인 단일성의 봉인 하에 접합된 하나(회교도)를 둘(종교와 파시즘)로 분해하는 논증적 단일성이거나다. 다시 말해서 철학적 개념은 겉으로 보기에 상관성이 없어보이는 현상들을 한데 묶는 것과 푸는 것, 연결하는 것과 구분하는 것, 한데 그러모으는 것과 분리하는 것을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이다.

 

모든 서양 철학자는 두 부류로 구별할 수 있다. 발명하는 철학자와 베끼는 철학자, 행동의 철학자와 직관의 철학자, 체계의 철학자와 반체계의 철학자, 대화의 철학자와 반(反)대화의 철학자, 인용하는 철학자와 인용하지 않는 철학자 등등.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철학자는 발명하는 철학자, 행동하는 철학자, 열린 체계의 철학자, 대화를 믿지 않는 철학자, 인용을 하지 않는 철학자다.

 

우리 사회는 철학자가 필요한가? 이는 올바른 질문이 아니다. 일단 철학박사 학위만 받으면 평생 떳떳하게 철학자 행세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이거다. '우리 사회는 어떤 철학자가 필요한가?' 이것이야말로 바른 질문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철학자는 전사가 되어야 하고 또 전사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철학이 여론과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곳은 바로 거리, 공장, 감옥의 문 앞, 전쟁터와 살육의 폐허다. 대학이라는 상아탑연구실이나 교실이 아닌 것이다.

 

철학자는 싸움을 잘 하는 ‘깡패 철학자’여야 한다. 철학은 대화의 딸이 아니라 폴레모스(전쟁)의 딸이다. 즉 철학은 무술이 되어야 하고 철학 기법은 전투 기법이, 철학 집단은 파이트 클럽이 되어야 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z***a 2013.08.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