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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으려 한다. 그 일환으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꾸준히 읽어왔고, 작년부터 출간된 문학과지성사의 계절별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이왕이면 장편이 좋지만 새로운 작가들이 꾸준히 발표하는 단편 읽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소설을 쓴 장류진 작가의 이름이 보여 더 반가웠다. 장류진 작가가 쓴 작품을 몇 편 읽지 않았지만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일의 열정과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 「펀펀 페스티벌」도 다르지 않았다. 직장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자세하게 표현해 읽는 재미가 컸다. 「펀펀 페스티벌」은 연말 송년회를 앞두고 5년 전 세명그룹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는 소설이다. 기업은 다재다능한 인재를 뽑기 위해 심층 면접을 하기도 한다. 1차 서류전형과 2차 인적성 검사를 마치고 3차는 2박3일간의 합숙 면접을 마지막 면접이었다. 노래를 좀 했던 유지원은 밴드팀에 들어 보컬을 하고자 했다. 하지만 거기엔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찬휘이라는 가수가 있었다. 외모가 출중하여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도 눈여겨 보았던 이찬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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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는 여러모로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TV 속에 나오는 배우나 아이돌 가수들도 일단 잘생기면 한몫을 하고 들어가는 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게 마련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회사에서 합숙 면접을 하는 이유는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이라든가 제한된 환경에서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밴드팀에서 노래를 꼭 잘하는게 중요한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공연 직전, 마치 딴지를 거는 것처럼 노래를 지적한 이찬휘 때문에 지원은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송년회 날 영어 가사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서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이찬휘를 바라보는 유지원의 냉소가 인상적이었다.
5.18을 다루는 내용은 언제나 아프다. 실제로 겪지 않았지만 수많은 매체에서 나오는 내용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도 생소한 한정현 작가의 「오늘의 일기예보」라는 소설이다. 내용은 로맨스 소설의 제목처럼 달달하면서 내용은 그러지 아니하였다. 고모와 오스칼이라 불렀던 제인과 그리고 복수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고모는 소위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관들에게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른다. 보나를 데리고 한강변으로 가 강 속으로 걸어들어갔던 고모를 아빠는 그런 일을 당하고 어떻게 한국에서 사느냐며 말한다. 아빠는 고모를 여동생이라 보지 않고 그런 일을 당한 여자 쯤으로 치부했다. 보나는 옆집에 사는 오스칼을 닮은 제인을 좋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제인이 트렌스 젠더였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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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처음 알았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언제나 천진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말하지 못할 사연들이 있어도 나는 그 시절 어떤 시간들에 대해선 여전히 귀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저런 말 못 할 기억이 이젠느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살겠다는 다짐을 만들기도 했다. (123페이지, 「오늘의 일기예보」 중에서)
동물을 예뻐하는 사람은 어쩐지 모든 사람에게도 다정할 것 같다. 동물에게도 잘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는 얼마나 잘할까, 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걸까. '나'는 골목길의 교회 앞에서 고양이 태비에게 먹이를 주다가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그들을 구해주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다. '나'가 사는 동네는 재개발이 한창이었고, 재개발이 열리는 공청회에서 '너'를 만났다. 길고양이들에게 안식처를 주는 행동과 달리 재개발 지역에서 이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냉정한 말을 하는 걸 보고 다름에 대하여 생각한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길고양이들에게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대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너'를 따뜻한 사람이라 여겼던 거다.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고 격차였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너라는 사람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했던 다른 모든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얼마간 체념하는 심장이 되었고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34페이지, 「3구역, 1구역」 중에서) 투자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재개발이 확정되어 시세 차익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나 또한 그런 마음이 없잖아 있다. 지금의 트렌드 때문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옛것이 자꾸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 오래된 주택 특히 한옥을 개조하여 카페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왕이면 그런 곳으로 가 우리의 옛 것을 즐기는데 이러한 것들이 자꾸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차가 지나갈 수 없는 오래된 골목길의 높다란 계단도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면 아름다운 골목길이 된다.
물론 이 소설이 그러한 바람을 다루는 건 아니다. 간극과 격차에 대한 것이다. '너'와 '나'와의 격차가 커도 나는 너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다. 고양이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너를 알 것 같아도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사람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을 자신이 쉼터라 불리는 장소에서 돌보아도 오래된 것을 부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세 편인 소설속에서 새로운 작가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젠더와 과거의 역사의 재현,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접근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이 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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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소설을 읽는 일은 즐겁다. 최근에 현대문학에서 나온 장편소설을 읽고 『소설 보다 : 봄 2020』에서 다시 만난 소설 역시 개발에 대한 이야기였다. 「3구역, 1구역」은 개발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다. 그러니까 개발을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 화자인 ‘나’는 길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구조하는 ‘너’를 만난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모습에 호감을 느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너는 재개발로 인한 수익을 내는 쪽에 있었고 그런 행동에 나는 당혹스럽다. 무엇이 진짜 너의 모습일까 생각하면 혼란스럽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떤 것들을 네가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면서도 반가웠다. 우리가 이 동네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오며 가며 틀림없이 한 번은 만났을 거라는 짐작.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가깝게 여겨졌으므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게 한번 생겨나면 좀처럼 없애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 나이였다. (25쪽)
고개를 들면 내가 사는 3구역이 그대로 내려다보였고 그 너머로 상대적으로 높고 반듯한 1구역의 모습이 보였다가 말다가 했다. 3구역이 이렇게 생겼구나. 잠깐씩 고개를 돌릴 때마다 3구역은 넓어졌다가 어두워졌다가 깊어졌다. 높이감을 느낄 수 없는 건물들이 오밀조밀 모인 풍경은 웅덩이처럼 보였고, 재개발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고 해도 이곳을 바꿔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38쪽)
한정현의 「오늘의 일기예보」는 5월에 읽으면 더 의미있는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아니 역사를 인식한다고 해야 할까. 진실된 역사를 배우는 일, 그리고 오래 기억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한정현의 소설을 더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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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 실린 작가는 김혜진, 장류진, 한정현 세 사람이다. 이렇게 한 자리에 달랑 세 편만 읽다 보니 내 취향 쪽과 아닌 쪽이 확연히 구분이 된다. 이걸 좋다고 봐야 할지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김혜진의 글과 장류진의 글은 진지하게 빠져서 읽었고 한정현의 글은, 음, 아직은 와 닿지 않았다. 더 읽다 보면 괜찮은 쪽으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현 상황을 소설로 그려 내는 일, 소설가에게는 슬픔이 될 때도 있고 사명이 될 때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일을 글로 써야만 하다니, 기가 막히면서도 이럴수록 더 써야겠구나 싶을 테니까. 김혜진의 글과 장류진의 글을 이런 상상을 하면서 읽었다. 작가는, 지어 내는 것만 하는 직업은 아니구나, 지어 낼 바탕을 현실에서 잘 붙잡아 내는 힘도 있어야 하는구나, 그게 많은 사람을 위로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해야 할 힘이구나, 스스로는 퍽이나 고단하겠구나, 등등.
2020년에는 세상의 많은 작가들이 코로나 19와 관련된 글들을 써 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바이러스 자체도 소재가 되겠지만 사회적 거리감이나 정서적 거리감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망가지는 낮은 위치의 사람들 이야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어느 시절에도 정답이 없었구나 싶다.
나는 내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상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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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소설에서 비슷하거나 다른 감정을 읽는다.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의 화자인 ‘나’는 재개발 회의장에서 나온다. 재개발에 관심 있어서 참여한 것 같지만, 아니다. ‘나’는 세입자이고 곧 이사해야 하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볼까 싶어서 회의장에 들어간 거다. 동네에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려다가 만난 ‘너’와 가깝게 지내게 되고, 알게 모르게 ‘너’를 호감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른 현재를 산다. ‘너’는 타이밍 좋은 정보력으로 3구역에 속한 사람이다. 그마저도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싶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때 몇 채 더 사둘 것을, 이라는 말을 악감정 없이 꺼낸다. ‘나’는 가진 전세금에 맞춰 집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너’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는 ‘나’와 다른 사람이기에 멀리해야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너’와 연락을 계속 취하며 이 감정의 모순에 혼란스러워한다.
길고양이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착하게 구는 ‘너’이지만, 재개발 사업으로 현재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정하다. 나는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너무 잘 아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닌데, 동물에게 따뜻하고 선한데, 다른 쪽으로 보면 칼 같은 냉정함으로 현실을 판단하는 사람. 비슷한 감정을 갖게 하는 사람들을 겪어봤다. 좋은 사람이지만, 나쁜 것 없지만, 가까이하기에 뭔가 불편함을 부르는 사람이라고 하면 되려나. 더군다나 ‘나’는 ‘너’에게 계급의 구분을 느낀다. 이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픈 일인가. 슬프다. ‘너’를 보면서 살짝 설렜을 감정이, ‘너’를 의식하며 함께했던 긴장감이, ‘너’의 말들로 계급의 차이를 의식해야 하는 일이...
그러니까 그 밤에 내가 실감한 건 너와의 간극이었고 격차였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너라는 사람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했던 다른 모든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얼마간 체념하는 심정이 되었고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34페이지, 「3구역, 1구역」)
생각해보면 어느 시절에나 비슷하게 있었던 일이다. 분명하게 이름 붙이거나 뭐라고 표현하기 모호한 시선과 감정일 뿐이다. 현재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하지만, 번번이 무너질 수도 있는 결과에 아파하는 삶.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 역시 그 경쟁과 긴장의 연장선이다. 대기업의 3차 면접까지 올라간 유지원은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합숙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던 그곳에서 만난 이찬휘는 세상 경험 일찍 시작한 것 같으면서도, 남들에게 호감을 받으며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유지원은 이 시험에서 한 조가 된 이찬휘의 외모에 푹 빠지지만, 현실은 그와 경쟁 상대라는 것이다. 무대를 망치는 것 같으면서도 잘 수술(?)하여 관객의 환호를 일으켰지만, 그녀는 그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다.
대체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든 걸까? 이찬휘가 너무 싫어 죽겠는데, 동시에 부러웠다. 왜 나는 죽어도 할 수 없는 일을, 저 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게 된 거지? 어째서?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차이일 뿐인데, 마음은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은 대체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무대 위에서 그 애, 찬휘는 여전히 빛났다. (85페이지, 「펀펀 페스티벌」)
「3구역, 1구역」은 이사하게 쌍둥이처럼 닮은 작품으로 읽힌다. ‘너’와 ‘이찬휘’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비치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에서는 은근히 가까이할 수 없는 인물이다. 펀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건 즐기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경쟁이라는 이유로 모인 사람들 사이의 시험 무대이니까 말이다. 거기에서 이찬휘의 행동은 그들의 공동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이끌어줄 리더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가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거다. 그런 이찬휘에게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이름은 페스티벌인데, 모두가 즐겁지는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대개 이런 날들 아닐까. 다 비슷해 보이고, 다 같은 방향을 향해가고 있지만, 누구나 똑같이 기쁘고 슬프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그렇게 보면 무대의 마지막에서 유지원이 보인 행동은 찰나의 기쁨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찬휘의 진두지휘 아래 같은 조 사람들이 느꼈을 아니꼬움이, 유지원이 무대에서 보인 행동으로 답변이라도 하듯이 후련하다. 음 이탈조차 환호하게 되는 무대라니, 얼마나 즐거운가.
안타깝지만 「오늘의 일기예보」는 한 번 더 읽어야 할 듯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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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부터 기다려 온, 내가 좋아하는 소설보다시리즈. 특히 이번 '봄'의 경우 모든 작품속에 내가 있어 더 마음이 갔다. 3구역, 1구역에는 '너'에 대해 실망을 안고 관계를 끝내려고 하지만, '너'의 부유함과 여유에 매력을 느끼는 속물적인 '나'의 모습에 내가 있고, 펀펀 페스티벌에는 전부 알아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모습에, 이찬휘의 모든것이 싫지만 그 흔하지 않은 껍데기는 여전히 좋은 유지원의 모습에 내가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기고, 결혼을 하더라도 딩크족을 꿈꾸며, 친절한 직원을 보면 울적한 기분이 드는 오늘의 일기예보속 보나의 모습에 내가 있었다. 난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난 보통의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고, 유별나고 유난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은 겉도는 사람. 그런데 이렇게 작품들마다 내 모습을 찾을수 있는 것을 보면, 난 그냥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유별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는것이 위안이 된다. 기다림은 길고 읽는 것은 짧은 소설보다 짧지만 긴 여운 때문에 또 다음 계절의 소설보다를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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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출간되는 『소설 보다』 시리즈는 그 즈음의 가장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파악할 수 있어 기회가 될 때마다 읽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젊은 세대와의 갭이 느껴지고, 소설들도 트렌드랄지 흐름이라는 게 있다 보니.
기존엔 네 편씩 선정했었는데, 언제인지부터 몰라도 세 편으로 선정작이 줄었다. 2020년 봄의 선정 작가는 김혜진과 장류진, 한정현이다. 김혜진과 장류진은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으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고, 한정현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소설가다. 세 명 모두 여성이다. (요즘은 남성 작가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이것도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까?
세 편을 읽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이다. 소설 뒤에 김혜진과 인터뷰한 강동호 평론가에 의하면 김혜진은 도시, 젠더, 노동, 계급에 대해 꾸준히 탐구하는 작가라고 한다. 이 소설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사는 동네를 '구역'이라 지칭하는 건 재개발이나 부동산의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용어를 발화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는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계속 그 상대에 끌린다. 강동호는 인터뷰에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두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김혜진은 이를 계속 거부한다. 그 흐름에 말려들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찾으며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는데, 그런 부분에서 소설가에게 믿음이 갔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겠으나 비평가의 권위에 순응하기보다는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소설가의 뚝심 같은 게 느껴져서, 이 소설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장류진 작가는 최근에 매우 핫했던 걸로 아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매우 가벼웠다. 대중들이 이 소설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소설도 가볍게 소비되는 시대라는 경향성을 보여준다고 이해하면 될까? 나에게는 한 없이 가벼웠다.
한정현 작가는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전작은 광주 민주화항쟁에 관한 것이었다고 하고, 이번 소설의 경우도 1996년 연세대 사태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다 못해 논문 한편을 쓰려고 해도 이전 연구물들을 다 읽는다. 그게 공부하는 자로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 세대의 훌륭한 소설가들이 이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다루었다. 그 작품들을 넘어서지는 못 하겠지만, 최소한 그 소설들의 무게감 정도는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정 소재를 다룬다고 해서 그 자체로 소설가의 품격이나 무게감, 존재 이유가 생기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은 너무 산만해서 읽는 동안 시간이 아까웠다. 왜 선정작으로 뽑힌 건지 짐작조차 안 된다. 장편 소설을 쓸 만한 이야기의 소재들을 단편에 욱여넣었다.
소설 말미에 작가와 평론가들의 인터뷰가 살렸는데, 장류진과 인터뷰한 조연정 평론가가 작가나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보였다. 이 둘의 인터뷰가 가장 무난하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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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다. 젊은 직장인으로 일정 부분 공감이 같다. 이번에 <소설 보다 : 봄 2020>에도 장류진의 단편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냥 그랬다. 내가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면 더 재밌게 읽었을 수도 있다.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은 우리 동네 이야기 같았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골목에서 만나는 길고양이도 반갑고 만약 재개개발이 된다면 어떨까 상상도 해보았다. 한정현의 <오늘의 일기예보>는 조금 무겁기도 했고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났다. 한정현이라는 작가를 검색해보았고 젊은 작가상 수상을 했다 기사를 읽었다. 역사에 기반을 인간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인가, 혼자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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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소설 보다 시리즈. 예전에 이북 리더기가 활성화가 되기 전에는 이런 가벼운 책이 있었으면 했어요. 핸디북이라고 글씨를 아주 작게 한 책이 아닌... 단편 소설을 좋아하는지라 봄 2020 시리즈도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장류진 작가님의 펀펀 페스티벌 너무 좋아요. 장류진 작가님의 특유의 시원한 진행이 맘에 들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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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장류진, 한정현 작가님들의 소설 보다 : 봄 2020 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작고 가벼운 단편집이어서 읽기가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시리즈로 모아놓으니 귀엽고 예쁩니다. 봄 2020 도 봄에 잘 어울리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소설보다 시리즈에는 단편 뿐만 아니라 작가님과의 인터뷰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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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사 출판, 김혜진, 장류진, 한정현 작가님의 짧은 소설. 소설 보다 : 봄입니다. 작가님들의 전작을 재밌게 보아 이번 책을 구매해보았는데요.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걸 알고 봐서 그런지 저는 좋았어요. 소설마다 따로 인터뷰 형식으로 수록된 것들이 있어 본문을 해석하기도 좋아 그것도 참 괜찮게 다가왔습니다. 작가님들의 집필활동을 응원합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 많이 내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