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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영혼의 집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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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다가올 죽음,, 필연적 운명,,,,, 부모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죽음과 상실,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지혜를 배운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것에 대해 아쉬움을 매순간 깨닫는다. 이렇게 아들과 아버지,,, 부자지간는 묵묵히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재정립한다. 매일 삶을 살지만 조금씩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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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다가올 죽음,, 필연적 운명,,,,, 부모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죽음과 상실,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지혜를 배운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것에 대해 아쉬움을 매순간 깨닫는다.
이렇게 아들과 아버지,,, 부자지간는 묵묵히 함께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재정립한다.
매일 삶을 살지만 조금씩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옆에 누군가가,,, 가족이 있다는 사실,,,, 떠난 후에도 곁에 가족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열심히 살게하는 지향점이 된다.
부자지간의 관계로서 정을 쌓아가며,, 아쉬운 시간을 그리워하며,,,, 삶의 지향점을 느낀다!

 

 

 

 

"Furnishing Eternity"

 

삶이 완결되는 지점인,, 죽음!!

이를 통해 살아온 삶과 살아갈 삶을 성찰하기 위한 적극적인 삶의 행위이다!!

넋두리하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태도가 나에게는 필요하다!!

 

추천합니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다산책방"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h*****6 2020.03.30.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영혼의 집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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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항상 멀리하고 싶었던 죽음을 곁에다 두고 내 관을 내가 짜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요즘 '레트로'라는 단어에 한참 빠져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이 책 표지가 너무 멋지다. 나는 사실 레트로보다는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 새것이 멋져 보였지만 익숙한 것 손 때가 묻은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책 표지 소개책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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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평 : 항상 멀리하고 싶었던 죽음을 곁에다 두고 내 관을 내가 짜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책



요즘 '레트로'라는 단어에 한참 빠져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이 책 표지가 너무 멋지다. 나는 사실 레트로보다는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 새것이 멋져 보였지만 익숙한 것 손 때가 묻은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 표지 소개

책의 내용은 토목기사 아버지와 아들이 아들의 관을 직접 만드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래된 공구와 꽃을 표지로 장식한 듯하다. 그리고 밑부분의 띠지는 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나무의 모양을 넣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첫 표지에 있는 글귀들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책'

이런 글들이 들어 있다.

뒤표지에는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이자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찾아가는 이야기'

라는 글귀도 들어 있다.


작가 소개

데이비드 기펄스

기자, 작가, 교수. 미국 오하이오의 애크런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애크런 비컨 저널Akron Beacon Journal〉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였으며 MTV 만화시리즈 〈비비스 앤 버트헤드Beavis and Butt-Head〉의 작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글은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에스콰이어〉 등 다양한 매체에 실렸다. 현재 애크런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애크런을 떠나 대도시로 향했지만 그는 태어나서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이곳에 남아 집을 고치고 일하고 가정을 꾸리며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더 많이 머물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에 진정한 가치를 느꼈다. 그는 애크런의 독특하고 따뜻한 정서를 배경으로 한 회고록을 다수 펴냈다. 저서로 오하이오 북 어워드 수상작 『집으로 가는 길All the Way Home』, 『어려운 길을 가다The Hard Way on Purpose』, 『영혼의 집 짓기Furnishing Eternity』가 있다.

역자 : 서창렬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면』, 『아메리칸 급행열차』, 『보르헤스의 말』, 『축복받은 집』, 『저지대』, 『모스크바의 신사』, 『밤에 들린 목소리들』, 『그레이엄 그린』, 『에브리데이』,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토미노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제3의 바이러스』, 『암스테르담』, 『촘스키』, 『벡터』, 『쇼잉 오프』, 『마틴과 존』, 『구원』 등이 있다.


이 책은 이런 책이다?

죽음을 이해하는 에세이 정도면 소개가 될까?

그냥 하루하루의 삶을 잔잔히 써 내려간 글이다. 그 얘기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 근데 그 소재가 '관'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일반의 잔잔한 에세이 글들과는 차별화가 시작된다.

이 책을 보면서 계속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빅피쉬'였다. 물론 책에서는 판타지적인 요소도 없고 여행이라든지 갈등이라는 그런 내용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들과 서로 이해해가는 모습들, 그리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빅피쉬'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빅피쉬'의 잔잔하면서도 따뜻했던 감성이 느껴진다.

잔잔한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도 맘에 들 것이다.

물론 소재는 '관'그리고 부자의 관계이지만 죽음을 중점을 두고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와 함께 나무를 가지고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이다. 그 나무로 만드는 것은 '관'이었을 뿐이다. 이 책은 그렇게 죽음의 얘기가 아닌 가족의 이야기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해에 대한 이야기이다.


삶과 죽음, 가족과 친구

이 책은 이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버지는 토목 기사로 평생을 나무로 무언가를 해 온 사람이다. 주인공이 중년이 되고 아버지는 노년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나무를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그때도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 집에 들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다음 프로젝트로는 관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얘기하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와 아들은 아들의 관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관을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야 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냥 관이 만들고 싶어졌을 뿐이고 조금씩 관에 대해 배워나가고 조금씩 서로에 대해 배워 나가고 삶에 대해 배워 나가게 있었다.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는 관을 만들기로는 했지만 관을 어떻게 제작해야 되는지 어떤 관이 좋을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시작을 했다. 죽음도 그러하리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죽음이 어떤 것인지, 어떤 죽음이 나에게 맞는 죽음인지에 대해서 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듯이 하기로 마음먹었어도 바로 명확해질 수는 없는 것들이 있다. 너무나 사전 지식이 없고 어쩌면 관심을 일부러 두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처음부터 하나씩 알아나가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관을 만들기로 했지만 그 관이 완성되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 책은 관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3년의 시간 동안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들을 있는 그대로 잔잔히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죽음의 소재로 삶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삶이라는 것 속에서 그의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친한 친구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암에 2번이나 걸리기도 했다. 다시 삶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죽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삶 근처에 있는 것이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인지 몰랐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에는 죽음은 다시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어렸기 때문에 내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어렸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하지 않는 이상 내 주위의 사람들이 병으로 죽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가장 가까운 죽음이라는 것이 아는 사람의 부모 정도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죽음이 나의 근처에 와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작가와 같이 중년이 되었고, 이제는 내가 직접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꽤나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부터 나도 죽음을 가까이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영혼의 집 짓기'를 통해 가까지 있어도 외면하고 싶었던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그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삶은 매일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얘기를 들어도 그때뿐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본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그렇지만 그래도 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에 집중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죽음보다는 삶이라는 것이 더 간절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집중을 하고 있다. 이 순간뿐만이 아니라 나는 항상 삶에 집중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책들을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분명 죽음을 가까이한다면 살아가는 방식이 조금은 바뀔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조금은 화를 덜 내고, 조금은 너그러워질 것이고, 조금은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삶에 집중할 테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죽음을 선택할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도 관에 들어가 땅에 묻히는 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화장? 결론을 내리고 싶은 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잠시나마 생각하지 않은 생각을 해봤다는 것, 나는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나에게는 의미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나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책 속에서

내가 아는 한 어머니가 옆에 두고 싶어 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정말 잘 준비되었는지도 모른다. 전날 밤엔 묵주 기도를 했고 어머니의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았다.

다음은 탁 트인 바깥 공간. 그리고 또 한 번의 애절한 슬픔의 기도, 그런 다음....

그게 우리들 사이에 걸려 있었다.

놀라운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 한가운데에 있는 죽음을 함께 나누는 것의 묘한 아름다움이었다.

조용히 집중하고 있던 우리는 각자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어깨를 늘어뜨리거나 고개를 떨구거나 괜히 손을 움직였다. 어머니 옆에서 약간 물러나기도 했다. 109p

아버지는 보통 다른 사람이 없는 데서 슬퍼했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휑뎅그렁한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아버지의 허전함은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 없는 어머니에게 종종 말을 건다는 것을 우리에게 얘기할 정도로 컸다. 114p

아버지의 집 테라스 바닥에 죽은 시신의 자세로 누운 나는 난도 모르게 오싹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의 관을 만들고 있다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언급하곤 했던 그 오싹함을 나도 접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오싹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으니 123p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커져서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욱 절박하고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관 프로젝트의 진행을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125p

처음으로 내 관 속에 들어가 본 경험은 상사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작업장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쪼그려 앉아 톱질 모탕 위에 거꾸로 놓인 미완성 목ㄷ재 관 속으로 목을 길게 빼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못 박는 기계의 방아쇠를 위에서 아래로 당겨 합판으로 된 관의 바닥면을 틀에 고정시키는 일을 하다가 못 몇 개를 잘못 조준하는 바람에 그것들이 합판을 뚫고 관 바닥으로 돌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못뽑이를 들고 밑으로 기어들어가 잘못 박힌 못 들을 뽑아냈다. 자기 자신의 관을 짠다는 것도 섬뜩한 일이겠지만, 미래의 어느 날 자신이 엉성하게 박은 못들이 튀어나와 있는 침대로 들어가 눕는 것은 훨씬 더 섬뜩한 일일 테니까. 286p

"그래? 그 안은 어떻든."

"요란했어요" 내가 말했다.

"죽은 사람도 깨울 만큼?"

"거의 그 정도로요." 287p


아이들이 병원놀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병원이 무서운 곳이라 놀이를 통해서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죽음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근처에 두고 있으면 아이들이 병원에 대한 두려움을 놀이를 통해 해소하듯 우리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익숙함으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l*****2 2020.04.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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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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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는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저자의 관을 같이 만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우리네 정서로써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아마 우리 식 이야기였다면 아버지의 관을 함께 만드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노년의 아버지와 함께 좋은 추억과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전직 토목 기사로 목공일에 능숙한 아버지의 관심을 끌만한 아이템인 관 만들기를 선택한다. 아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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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는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저자의 관을 같이 만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네 정서로써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아마 우리 식 이야기였다면 아버지의 관을 함께 만드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노년의 아버지와 함께 좋은 추억과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전직 토목 기사로 목공일에 능숙한 아버지의 관심을 끌만한 아이템인 관 만들기를 선택한다. 아버지와 함께 관을 만드는 작업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의 아들이 노년의 아버지에게 무엇인가를 장기간 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관을 만드는 그 짧은 몇 년의 기간 동안 저자는 참 슬픈 일을 많이 겪게 된다. 절친과 아버지의 암 진단, 어머니의 죽음, 절친의 죽음, 아버지 암 재발. 불과 4년에 이렇게 많은 일을 겪게 됨에도 꿋꿋하게 아버지와의 작업을 계속 진행해 나가고 이 책의 집필도 병행해 간다.

마침내 관을 완성하게 되고, 임종 전에 이 책도 아버지에게 보여 드리게 된다. 아마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부모가 되어 보면 부모의 심정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참으로 허언이 아닌 것 같다. 아버지나 나나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라 만나도 크게 대화도 없는 편이지만 확실히 아이를 낳고 나니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달라진 것 사실이다. 이제는 한 해마다 늙어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 어떤 시간을 같이 공유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좀 더 진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 책이 확고히 해 주었다. 그리고 죽음이 상실만이 아닐 수도 있음도 같이 느끼게 해 주었다.

'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일이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각각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 새로운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으면서 끝없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다. 미래는 현재를 뚫고 나가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는 그런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p185)

'나는 먼저 죽음은 내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시간의 가치를 높여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오랜 친구가 최고의 친구라는 것, 지혜라는 것은 평생 저지른 실수에 다름 아니라는 것... 등을 깨달았다' (p329)


b****n 2020.03.3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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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거기에 뭘 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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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실보다 강한 법이다(15페이지)”는 말에 꽂힌다. 읽는 내내 기억의 부담감이 다가와서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독서를 즐겨하다 보면, 잘 읽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것이 있다. 가독성의 속도에 차이를 만드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선천적인 이해력이나 정보처리능력이라는 독자 개인의 능력, 아니면 책 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한 것인 경우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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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실보다 강한 법이다(15페이지)”는 말에 꽂힌다. 읽는 내내 기억의 부담감이 다가와서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독서를 즐겨하다 보면, 잘 읽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것이 있다. 가독성의 속도에 차이를 만드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선천적인 이해력이나 정보처리능력이라는 독자 개인의 능력, 아니면 책 자체의 어려움으로 인한 것인 경우도 있다. 이것들도 아니면 이 책처럼 내용이 내 머리 속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감정을 일으켜서 다음 장으로 못 넘어가게 하는 경우일 것이다. 특히 책의 내용이 읽는 이의 경험에 비추어서 감정이입이 많이 되는 경우에는 그러는 것 같다. 이 책의 경우가 그러는 것이었다. 잡생각이 없이 읽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감정이입을 일으키는 것의 제일 큰 이유는 비슷한 경험이나 생각의 교집합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경험과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나이 듦은 모두에게 다가 오는 현상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늙는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버킷리스트의 성공과 실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면서 시간을 마냥 즐기느라, 성장하기 바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늙음이 슬픔이 되어 인생 속으로 훅 들어오기 시작하는 때가 있다. 바로 부음 기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잦아지는 부고는 나 자신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남은 시간에 대한 생각과 행동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렇게 영혼과 영원에 대한 생각은 시작의 꼬리표를 뗀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애크런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한 지식인이 벌이는 프로젝트다. Furnishing Eternity를 원제로 하는 ‘영혼의 집’은 일응 눈에 보이지 않은 영혼의 존재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로 생각될 수 있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관(棺)’을 의미한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완전한 공간, 모든 것을 수용하는 공간을 추구하지만 구체적으로 바라본 것은 엇박자를 냈다. 흔히 ‘죽음’은 철학의 소재가 되는 것이지 ‘관’을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매너리즘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어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아버지와의 아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삶의 지혜를 흡수하기 위해서 관을 만들어 가며, 그 동안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는 덤으로 꾸며져 있다. 인생에서 남은 자들을 아주 당혹스럽게 만드는 죽음을 이겨내려는 저자 자신만의 방법이다. 죽음에 대한 시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신이 죽기 전에만 만들면 되는 프로젝트는 한 편의 콜라주를 만들어 간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일에 너무 압도 되어서 시급하고도 의미심장한 일로 여길 수 없는 우리가 각자 ‘자기 자신’을 찾아 간다.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알아 간다.

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일이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각각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 새로운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으면서 끝없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다.

미래는 현재를 뚫고 나가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는 그런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185페이지)

슬픔만이 콜라주가 아니었다. 인생 자체가 콜라주였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이야기의 전개도 그랬다. 엄마의 죽음, 친구의 죽음, 그리고 폐종양으로 인해 아버지를 향하고 있는 죽음, 그리고 누구에게나 마감 날짜가 있는 젊음의 죽음으로 자신의 생각과 삶의 변화, 그 속에 자리 잡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는 밀려왔다 밀려가며 계속된다. 큰 줄기를 향한 이야기는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옆길(?)로 샌다. 시간은 추억과 기억이 이미지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읽는 이로 하여금 시간을 들이게 한다. 관련된 여러 과거의 시간은 슬픔만이 콜라주가 아니라 모든 감정이, 인생이 콜라주가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접근하게 한다. 삶과 죽음, 그리고 질병과 그것과 관계없는 일상의 다른 사건들은 질서 없는 질서 속에서 균형을 이룬다. 더 나아가 남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만의 영감을 찾는 것도......


고지식함을 빼면 시체인 저자가 죽어 있는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도발적인 영혼의 집을 만든다. 역시나 그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저 시신을 담아만 내는 직육면체의 기다란 네모난 상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하나에 계획과 순서는 물론이고 온갖 정성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어떤 목재로 할 것인지, 어떤 철재로 이음새를 쓸 것인지에서부터 톱질하고 사포로 문지르고 접착제로 붙이고는 당연히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트림 라우터처럼 목공에 문외한에게는 아주 생소한 작업 공정도 있다. 소나무로 만들고 오크로 덮는 뚜껑에는 어떤 장식을 달고 45도의 외관구조에, 대책 없는 상상력과 비현실적 충동의 유전적 기질을 담는다. 그리고 손잡이를 달아서 추억의 물건을 담을 선반이 된다.


삶과 죽음의 거리가 멀지 않다. 인생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날짜를 모를 뿐이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게 하는 영원한 이별,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존재, 죽음과 슬픔에 대한 감정의 초보는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무섭기도 한 그것을 말이다. 그런 죽음에 관해서 객관적으로나마 감정의 동요 없이 말하고 있다는 게 진짜로 신기할 따름이었다. 역시나 그는 죽음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죽음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었고 슬픔은 부서진 잔해의 혼돈의 상태였다. 동시에 슬픔이라는 것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친구였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난 3년의 경험에서 얻는 것이다.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무계획적으로 무모하게 세상을 알아가고 우리 자신을 알아간다(342페이지). 아버지와 경험의 공유로 생각만큼 못 배웠어도 무모했던 존재는 시간과 경험의 터널을 지난다. 죽음 후에 남겨진 자들에게는 떠난 자들의 물건이 남겨져서 기억을 소환한다. 즐거웠던 추억은 슬픔을 부른다. 슬픈 기억은 지울 수 없음에 더 심연에 빠진다. 엄마가 떠났다고 해서 엄마의 소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힘들어도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고 바람막이 외투가 되어 준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은 여기에 남아 있는 자들에 대한 더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특히 초등학교 근처도 못 갔으면서도, 대학교나 대학원을 나와 더 많이 배운 존재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살다가 가셨다는 깨달음은 시간의 과거를 함부로 지우지 못하게 한다.

나는 가을날 떡갈나무 같다

떡갈나무 이파리 죽어서 땅에 떨어진다.

내 몸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듯이

그러나 떡갈나무 여전히 살아서 봄을 기다린다

내 영혼도 그렇게 살아남아

영원한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

-359 페이지-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옛 시조를 생각하며, 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서 제 정신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의 장례문화는 많이 바뀌고 있다. 화장을 하여 납골당이나 수목장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매장하는 것은 특별한 철학이 있지 않는 한 별 감흥이 있어 보이지 않게 보는 시류이다. 특히나 자신의 관을 직접 자신이 만든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예전에 시골집에 아빠는 할머니의 관을 미리 장만해서 허청해 보관해 두었던 기억은 있다. 그럼 부모가 장수하고 집에 복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때도 관을 직접 당신의 힘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의 저자는 한다.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을 만든다. 50, 지천명(지천명)즈음에 펼치는 프로젝트는 큰 평화의 바다를 건넌 우리에게는 너무 현대적이거나 너무 원시적인 양가감정(兩價感情)을 일으키는 모습이일 것 같다. 거기에다가 각자의 개인적 감정을 더하면 그 감정은 삼가감정(?)을 넘어서 초점을 잃고 삶과 죽음의 공간으로 발산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g****d 2020.03.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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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가르쳐준 인생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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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자신의 관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된 데는, 관을 설계하고 제작하기 위해서는 은퇴한 토목기사로서 목공 일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 일을 해나가면서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그런 만큼 아버지는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저자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저자의 롤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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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자신의 관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된 데는, 관을 설계하고 제작하기 위해서는 은퇴한 토목기사로서 목공 일에 일가견이 있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 일을 해나가면서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만큼 아버지는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저자의 롤 모델이자 영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버지를 묘사한 소박하고 애정 어린 숱한 문장에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361쪽, 옮긴이의 말

요래저래 바쁜 일들이 많았다. 신경쓸 일도 가끔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은데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요즘이다.

요 책도 제목만으로도 흥미로운 내용이겠구나 싶었다.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던 이유가 저자의 서사같은 긴 설명체 문장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대한 설명, 가조들의 특징, 집안내력, 지금의 모습들을 주욱~~~~~ 설명하듯이 쓰고 있지만, 문장들이 길어서 그런지 몰라도 몰입되다가도 딴 생각으로 빠지지가 십상이었다.

그래도 원래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봤고, 마지막에야 옮긴이가 설명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관을 만드는 내용의 글은 흔치 않다. 아니 없을 것 같다.

그래서 < 왜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관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버지가 워낙 목공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우연찮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쫓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가벼운 얘기로 시작되었다. 집에서 손수 만든 관을 장례업자들이 받아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하여 정말 그걸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짐금 해답보다는 의문이 더 많은 구글 검색 결과를 들고 여기 서 있게 되었다.

25쪽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가끔 그리울 때가 있다. 사실 아버지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립다는 표현도 맞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에는 그 대상과의 추억이 있어서 그림움의 마음과 정이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그림움이 정확히 맞는 표현일 것이다.

저가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따르고 존경하는 것 같다.

그런 아버지의 삶과 생활속의 모습들을 보면서 아버지의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있는 동안의 순간순간을 아버지와의 시간을 만들어가는데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물론 책은 아버지와의 내용들이 많이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도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 존에 대한 내용들이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은 어머니가 먼저 사망하게 되면서 연이어서 저자를 떠나게 된다. 평생 소중한 관계로 지냈던 친구인 존도 어머니가 사망한 1년 뒤에 사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아버지도 폐암 진단을 받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여러 달을 보내는 동안 나느 많은 것들에 대해서, 특히 죽음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게 되자 죽음의 개념이 덜 추상적이고 한결 현실적인 개념이 된 것이었다.

날카로운 고통 역시 이 거대한 수수께끼에 관해 새로이 명료한 인식을 가져다 주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촉박한 문제가 되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절화벨이 울릴 때마다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저자는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글을 쓰고 있다.

당연히 책의 내용들 중에는 한없이 담고 싶은 글들이 많다.

아버지의 헛간에서 목공을 하는 것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p.142 나는 목재에 대해서는 늘 그와 같은 식으로 생각해왔다. 주로 아버지의 작업장과 나 자신의 작업장에서 셀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목재를 열심히 살펴보고, 구분하고, 두드려보고, 손으로 무게를 재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엄지손톱으로 밀도를 시험해보고,심지어 가끔 혀로 맛을 보기도 했다.

친구 존은 저자가 태어난 애크런이라는 도시에서 함께 자란 죽마고우다. 저자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친구는 미술을 공부해서 서로 항상 의지하면 살아왔다.

p.156 중년의 우정은 흔히 이런식이다. 우정이 빠져나가고 또 빠져나가서 결국 "우린 곧 만나야 해"라고 내뱉은 말이 그런 우정은 소멸된다는 진실을 가리는 불편한 광막이 되어버린다.

저자는 자신의 관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면서 아버지와 함께 3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관을 만드는 작업을 이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해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이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초고를 아버지로 하여금 읽게 한다. 아버지는 책이 출판되고 3일 뒤에 돌아가신다.

나는 아버지와 추억이 없었고, 아버지로부터 배운것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애들의 아빠가 되어서 항상 나는 아빠로서 잘 하고 있나 의문점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 마디로 아버지에 대한 롤모델이 없었다.

물론 모델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또 그 모델이 내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느낀 것처럼 소중한 아버지와 아들, 아니 자식들과의 관계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에게 감사하다.

저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이 꼭 학습이라는 의식적인 과정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추억하는 지혜를 들어보면서 마무리한다.

물어볼 생각도 거의 하지 못했고, 대답을 부탁한 적도 없는 것에 대한 대답은 일종의 질문이었다. 아버지는 평생 그런 식으로 나를 가르쳤다.

어머니의 충고 '외로워지지마'는 슬픔이라는 것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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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2020.03.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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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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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아들과 80대 아버지의 '관 만들기' 프로젝트.토목 기사로 정년퇴직한 아버지는 나무와 연장만 있다면 만들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들은 아버지의 솜씨를 이어받아 무엇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대단하다. 이런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하나의 롤 모델이면서도 넘어서야 하는 경쟁 상대이다.장인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관을 마련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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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의 아들과 80대 아버지의 '관 만들기' 프로젝트.

토목 기사로 정년퇴직한 아버지는 나무와 연장만 있다면 만들지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재주꾼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들은 아버지의 솜씨를 이어받아 무엇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대단하다. 이런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하나의 롤 모델이면서도 넘어서야 하는 경쟁 상대이다.

장인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관을 마련하기 위해 장례 용품점에 방문했다.

보통 쓸 만한 것들은 2천 달러를 훌쩍 넘는 가격인데 비해 심플하고 약간은 초라한 관은 700달러에 팔렸다. 작가인 데이비드는 이 700달러 관에 온 정신이 팔렸다. 이런 심플한 디자인에 적당한 가격이라니...... 데이비드는 아내에게 자신이 죽으면 이 700달러 관에 뭍치고 싶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이 관은 화장용 관으로 내구성이 없는 것이었기에 아내는 절대 데이비드의 유언을 들어줄 수 없다고 선언한다.

손재주는 없지만 그래도 믿을 건 아빠 빽 밖에 없는 데이비드는 700달러 가격으로 자신이 직접 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관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사실 데이비드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였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에 대해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란하고 두려운 것은 80대의 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라는 진실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좋은 기억은 아버지를 지켜보았던 것, 아버지를 도와주었던 것,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아버지와 절친이 암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가 사망했다. 그 이듬해 아버지의 새로운 암 진단 그리고 절친의 죽음. 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일이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관을 만드는 것이 죽음의 당혹스러움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믿었다.

"인생은 짧다"

죽음은 내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만든 관에 누워 있으니 나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j******i 2020.03.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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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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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쪽에서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서른 살보다 열 살 더 먹었다고도 느끼지 않았고 쉰 살보다 열 살 덜 먹었다고 느끼지도 않았다고 했다. 올해 나는 꼭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면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건가. 그러나 열 살 더 먹었다고도 열 살 덜 먹었다고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알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와는 별개로 시간은 째깍째깍 재촉하는 것만 같다.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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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쪽에서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서른 살보다 열 살 더 먹었다고도 느끼지 않았고 쉰 살보다 열 살 덜 먹었다고 느끼지도 않았다고 했다. 올해 나는 꼭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면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건가. 그러나 열 살 더 먹었다고도 열 살 덜 먹었다고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을 알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와는 별개로 시간은 째깍째깍 재촉하는 것만 같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슬픔과 상실은 누구나 살면서 경험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매년 사람들은 삶이 시작된 날을 축하한다. 해가 가면 한 살 한 살 꼬박꼬박 나이를 먹지만 나이가 든다고 모든 것을 자연히 알지는 못한다. 슬픔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상실을 준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살아있음이 소중한 이유는 끝나는 날이 있기 때문이니까.

이 책은 저자가 아버지와 자신의 관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함께 한 과정을 적은 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관이 필요하다. 하지만 80대인 아버지와 자신의 관을 만들기로 하다니 일단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아들의 관을 함께 만든 후 죽기 바로 전에 자신의 관을 완성한 아버지에 대해서도 참 비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함께 만들어야 할 것이 관이라는 선택이 너무 뜨악하기는 하지만 저자는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리라. 왜냐하면 아버지는 실력 좋은 목공업자였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고 따라하는 것이 아들의 일이었을테니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이면서 특별한 것이어야 했을 것이고.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말이 오가는 대화보다 몸으로 나누는 대화가 더 어울릴 것 같은 관계니까.

나는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어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가지는 애틋한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나는 엄마와의 유별난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데 하긴 세상 모든 딸들과 엄마들의 관계란 특별한 것이다. 그래서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도 뭔가 끈끈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칼자국]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나의 몸 안에 나를 먹여살리느라고 엄마가 휘두른 수많은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아무리 나와 심하게 다퉈도 밥을 꼭 챙겨주셨다. 아무리 당신 몸이 아프셔도 아무리 힘이 들어도 늘 내 입에 무언가 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칼자국들이 시도때도 없이 아프다고 했다. 책을 읽고 나 역시 그럴 것 같아서 벌써부터 가슴이 저리는 듯 했었다. 그리고 엄마가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실 건데 나는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더 많이 엄마와 함께 무언가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는 일도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절대 아니지만 누구든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중한 누군가가 내 곁을 떠나더라도 남겨진 이들의 삶은 지속된다. 슬픔에 잠식되어 후회만 하며 남은 생을 보내는 것은 먼저 간 이들이 결코 바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중에 다시 만나는 날 기쁘게 서로를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보내야 한다. 잘 보내고 잘 살아내는 일, 그게 우리가 결국 해야하는 일일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아버지와 저자, 그리고 저자의 아들 이렇게 삼대가 여행을 간 이야기이다. 싱글베드 2개짜리 2인용 방을 예약하고 007작전 하듯 성인 남성 3명이 묵어야 한다는 사실을 호텔 직원에게 숨기려고 애쓰는, 그 어색해하고 민망해하면서도 재미있어서 킥킥거리고 싶어하는 다 큰 남자 3명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르는 것 같아서 물기어린 미소가 지어진다.

상실의 슬픔은 일상을 집어 삼킬 수도 있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 상실을 함께 나누고 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영혼의집짓기 #데이비드기펄스 #다산책방 #이별의순간아버지와함께만든것 #뉴욕타임스북리뷰_에디터의선택 #아버지가없으면우리는어떻게하지



k*******j 2020.03.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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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살아갈 힘이 되어 줄 그들의 프로젝트...
"[영혼의 집 짓기]살아갈 힘이 되어 줄 그들의 프로젝트..." 내용보기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p60이건 무슨 의미의 일일까? 아버지에게 자신의 관을 만들자고 한다고? 그의 이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책을 읽기 전 오은 시인의 소개글에서 봤던 이 문장을 책 속에서 봤다. 그리고 읽어가며 난 그게 그냥 관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했다. 아니 지인들의 아픔을 먼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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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묻힐 관을 아버지와 내가 만들어야 해요."p60

이건 무슨 의미의 일일까? 아버지에게 자신의 관을 만들자고 한다고?

그의 이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책을 읽기 전 오은 시인의 소개글에서 봤던 이 문장을 책 속에서 봤다. 그리고 읽어가며 난 그게 그냥 관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을 연달아 경험했다.

아니 지인들의 아픔을 먼저 만났다고 하는게 맞겠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친구의 암 발병은 그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했고 대처하게 했다. 그렇다고 그런 행운(?)을 누리고 싶진 않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음은 어느 순간이든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고 연달아 죽음을 보고 싶진 않을 뿐이다.

 

 

저자는 그런 죽음을 연달아 보면서 아버지와의 시간을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관을 만드는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이 아닐까?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더 나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문득 난 아버지와 뭘 나누고 싶은지 생각했다.

아버진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우릴 위해 사용하셨었다. 그런 것들을 모두 내가 배울 순 없다는 걸 알지만 분명 배울만한 것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니 좀 더 곰곰히 생각해야겠다...

 

그런데 작가님이 아버지와 하기로 한 프로젝트는 한편으론 슬픔을 동반한다는 사실에 심란함을 느끼게 된다.

"이 프로젝트가 가장 심란하고 두려운 하나의 진실, 즉 아버지가 언젠가는 돌아가실 거라는 진실을 드르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없다면 어떻게 내가 해낼 것인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p89

아버지가 언젠간 내 곁을 떠난다는 사실말이다. 그가 없을 때 내가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작가님은 그게 두렵고 무서웠을테다. 나도 그 마음에 너무 공감되어 순간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부모님이 안계신 것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죽음은 슬픔 뿐 아니라 또 다른 많은 것들을 함께 동반한다. 죽은 이에겐 끝이겠지만 살아남은 이에겐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하니까... 미래를 함께 할 수 없다고 해도 그가 남긴 것들은 내가 미래를 사는데 꼭 필요한 무언가가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부모님과의 일이나 지인들과의 수많은 일들을 제대로 잘 해나가고 싶다. 그래야 누군가 죽었을 때 혹은 내가 죽었을 때 내가 혹은 주변인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누군가에겐 슬픔이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을 준다는 것... 그게 작가님이 아버지와 함께 관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잘못된 것들을 수정하면서 또 다른 무언갈 준비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라 믿게 된다. 그 힘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 해서 용기가 생긴다.

 

 

죽음이란 것이 누구에게나 온다곤 하지만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 순 없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죽음을 뒤로하고 또 살아가야 하니까... 그래서 작가님은 아버지와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 아닐까? 죽음은 끝이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추억이란 이름으로 기억할 무언갈 남겨주게 된다. 그래서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k********y 2020.03.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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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집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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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짓기>라는 제목을 보며 명상이나 정신수양 같은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었다. 막상 책을 펼쳐보고 특별한 내용에 빠르지는 않지만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어가게 되었다. ‘죽음’은 약간의 터부시 되는 주제라고만 생각했는데‘죽음’을 실감하게 하는 ‘관’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생을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내용이었다. 은퇴한 토목 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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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짓기>라는 제목을 보며 명상이나 정신수양 같은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었다.

막상 책을 펼쳐보고 특별한 내용에 빠르지는 않지만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어가게 되었다.

‘죽음’은 약간의 터부시 되는 주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죽음’을 실감하게 하는 ‘관’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생을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내용이었다.


은퇴한 토목 기사인 아버지와 함께 엉뚱하고도 기발한 착상으로 자신의 관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한 저자는,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함께 관을 만드는 3년 여의 시간 동안 어머니와 가장 친한 친구를 암으로 잃고,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이미 두 번의 암 치료를 견뎌낸 아버지에게마저 암이 재발하고 만다. 온통 죽음으로 둘러싸인 날들을 보내며 저자는 죽음과 늙어감, 삶과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저자가 배운 삶의 지혜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이라는 운명에 대해, 이미 겪었을, 혹은 언젠가 겪을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상실의 아픔과 현실적인 외로움 앞에서 가까스로 대처할 용기와 힘을 배워가고 있다.
?

저자가 아버지와 관을 짜는 것은 마치 우리의 부모님들이 나이 들어가며 수의를 미리 장만해 놓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느껴졌다.

칠십 후반 친정어머니도 영정사딘을 미리 찍어 놓으시고는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다. 사진을 보며 왠지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부모님과의 남은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이 절실하게 와닿았다.

학교졸업 후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갑작스레 아버지와의 사별을 겪었다. 벌써 어리 전 일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죽음과 부재는 미처 이별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참 힘든 일이었고 치유되지 못하는 아픔으로 남았다.


1095일 동안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앞으로 아버지 없이 혼자 해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 배워가는 저자를 보며 많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죽음과 상실, 삶의 어려운 문제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지혜를 배운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저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는 걸 매순간 깨닫는다.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는 묵묵히 ‘관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들의 관계를 재정립해나간다.


아버지는 떠나가신지 오래지만 내 곁에는 아직 어머니가 계신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전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셨기에 몇십년 만에 모녀가 가까이에 살게 되어 많이 기대가 된다. 아까운 시간들을 흘려보내지 말고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아직도 부모 노릇이 서툰 우리부부를 넉넉하게 이해하고 받아주는 우리 아들들과도 진솔한 대화와 마음나눔으로 인생을 공유하며 더 친밀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

관을 직접 만들지는 않더라도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하며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몇 주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슬퍼한 것뿐이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슬픔은 모든 것에 대해 슬퍼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내 아들이 야구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을 슬퍼하게 만들었다. 생일 케이크를 슬퍼하게 만들었다. 석양을 슬퍼하게 만들었다.

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일이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각각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 새로운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으면서 끝없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다. 미래는 현재를 뚫고 나가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는 그런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p*****3 2020.03.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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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인생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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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데이비드 기펄스 다산책방면지의 그려진 그림이 낯설었다.무엇을 만들기 위해 손으로 그려진 설계도 같았다.누가 그린 것일까?무엇을 만들기 위한 것일까? 궁금했다.첫 페이지의 한 줄이 미소짓게 했다."첫 페이지가 재미있어야 한단다."어머니의 짧은 한 마디를 잊지 않고 1쪽에 적어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다.<12쪽> 휴식은 우리 가족의 DNA와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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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데이비드 기펄스 


다산책방







면지의 그려진 그림이 낯설었다.

무엇을 만들기 위해 손으로 그려진 설계도 같았다.

누가 그린 것일까?

무엇을 만들기 위한 것일까? 궁금했다.





첫 페이지의 한 줄이 미소짓게 했다.


"첫 페이지가 재미있어야 한단다."

어머니의 짧은 한 마디를 잊지 않고 1쪽에 적어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다.







<12쪽> 휴식은 우리 가족의 DNA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가족은 남보다 더 많이 일하려고 애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15쪽>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하얗다. 하지만 그 머리털이 내 눈에서 내마음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억센 팔, 곱슬곱슬한 밤색 머리털, 이것들이 내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기본적인 진실이고, 세월의 배신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한다. 기억은 사실보다 강한 법이다.


<21쪽> 유전병,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 드는 강박관념, 새로운 일을 하려 들고, 새로운 일을 하는 중에도 더욱더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관념, 편안함을 불편해하는 성격...


<25쪽> 관을 짜는 작업을 하기로 합의했다.... 아버지와 뭔가 거창한 것을 만들고자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였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예날 집 지하실의 그 낡은 작업장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그 작업장의 달콤새큼한 톱밥 냄새, 윤활유 냄새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연결고리였다.


<34쪽> 나는 지하실 작업장을 통해 아버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은 방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가 신중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공간이었다.


<50쪽> 처음에는 나를 위해 모든 결정을 내려주고, 그러고 나서는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가르쳐준 사람을 위해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올바른 선택의 척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만약 그게 틀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57쪽> 삶과 죽음, 양호한 건강 상태와 눈앞에 닥친 죽음의 그림자는 마치 웃다가 우는 것처럼 늘 뒤섞인 상태로 존재하며,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88쪽> 나의 모름은 철저한 무지였다. 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그에 비해 아버지의 모름은 소크라테스의 역설 같은 지혜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자신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정도는 되었다. 


<115쪽> 프로젝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온 마음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면서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한 과정, 즉 끊임없은 움직임은 내가 아버지를 알아온 이래로 아버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의 관을 만들기로 계획한다. 아버지만의 장소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휴식을 모르는 아버지의 버릇이 아들에게도 전해져 집안밖의 다양한 것을 만들고 수리하면서 살았지만 관을 만드는 것에는 문외한인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시작했고, 아버지와의 시간을 공유했으며 실행에 옮기며 아버지를 더 알아가게 되었다. 이 아들에게 아버지는 영웅이다. 자신의 삶을 가꾸고 만들고 (암투병 중이지만) 유쾌하게 이어갈 줄 아는 멋진 어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139쪽> 내가 사랑하는 것은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이다. 내가 그리워한 것도 과정이었다. 나는 집을 손보고 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배관 시설이 낡은 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그것을 가구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아버지는 언젠가 배관 작업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그 일을 잘했다는 말을 듣는 유일한 길은 네가 그 일을 했다는 걸 누구한테서도 듣지 않는 것뿐이다."


<160쪽> 몇 주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슬퍼한 것뿐이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슬픔은 모든 것에 대해 슬퍼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내 아들이 야구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을 슬퍼하게 만들었다. 생일 케이크를 슬퍼하게 만들었다. 석양을 슬퍼하게 만들었다. 


<167쪽> 아버지와 함께 여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아버지가 이 일을 떠밭아줄 것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의도적으로 아버지가 하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나는 각 단계를 따라 하고 싶었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내가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기를 바랐다.


<171쪽> 한 시간이 흘렀고, 또 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나는 내가 곧잘 맛보곤 했던 변화의 과정을 겪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일에 들어가고,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일이 사람에게 들어가는 경험을 맛본 것이었다.


<180쪽> 우리는 온갖 고비와 기쁨희 순간에 서로에게 눈을 돌리고 의지했다.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상에 지도에 함께 흔적을 남기고 표시를 했다. 우리는 서로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켰다.


<185쪽> 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이링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각각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 새로운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으면서 끝없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다. 미래는 현재를 뚫고 나가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는 그런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196쪽> 우리는 똑같은 플라스틱 용기에 똑같이 절반씩 든 수프가 지금 각자의 집 냉동실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실은 우리를 무척 슬프게 했다. 언제 울음이 터질지 알게 되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울었다.


<199쪽> 나는 아버지를 지켜보고 흉내 내며 배웠고, 아버지에게 물어보며 배웠고, 어떻게 물어볼지 생각하면서 배웠다. 이제 내 나이도 쉰에 가까웠고,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를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일에 대한 안내자로 언제나 아버지를 필요로 하게 되리라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05쪽> 우리가 작업한 결과물은 거칠었지만, 그러나 그 사이에 의미 심장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더 이상 막대기와 널빤지가 아니었다. 하나의 생각의 뼈였다. 관의 옆면이 어떻게 생겼을지 넌지시 보여주고,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다. 몇 주 동안 한 일은 슬퍼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죽음과 만난다. 너무 다르지만 수없이 많은 추억을 나눈 친구의 죽음이었다. 갑자기 터진 울음은 두 시간이 넘도록 지속되었고, 온 몸이 뻐근할 때까지 엉엉 울었다. 한 해 걸러 한 번씩 맞이하는 가족과 지인의 죽음을 어떤 느낌일까? 감히 가늠할 수도 없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 슬픔이다. 두 죽음으로 아들은 아버지와의 프로젝트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관을 보면서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와 뭔가를 만들어가는 아들이 부러웠다. 나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무엇을 하게 된다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공유한 시간이 너무 적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224쪽> 나는 어쩔 수 없이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확히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차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이제 젊지 않은 것인가? 나이 많은 축에 속하는 것인가? 나는 내가 해야 할 행동들을 온단하게 행하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지?


<233쪽>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신중하고 차분한 태도로 축하하기 시작했다. 내 생일을 축하한다기보다는 내 삶에 주어진 것, 내가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을 축하했다. 


<245쪽> 나는 내 관을 만드는 것이 죽음의 당혹스러움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인생의 다른 일들에 너무 압도 되어서 이일을 시급하고도 의미심장한 일로 여길 수 없는 우리가 각자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각자 자신의 삶을 바쁘게 꾸려가면서 많은 시간을 따로 보내고 있었다. 


<257쪽> 이들 공간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식으로 살아갔고, 우리가 상상해온 장래 모습 그대로의 우리가 되기 위해 별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296쪽> "내가 삶에 관해 배운 모든 것을 나는 다음과 같은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한다.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329쪽> 나는 먼저 죽음은 내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시간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오랜 친구가 최고의 친구라는 것, 지혜라는 것은 평생 저지른 실수에 다름 아니라는 것...등을 깨달았다.


<335쪽> 나 자신의 관을 만든다는 것은 한때는 매우 매혹적인 은유처럼 보였지만, 다 만들어진 관의 모습은 자신의 진실을 가식 없이 드러내 보였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진실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상자일 뿐이었다. 


<342쪽> 무지했던 내 존재는 나에게 올바른 정신으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다양한 경험들을 허락해주었다.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무계획적으로, 무모하게 세상을 알아가고 우리 자신을 알아간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알아가는 일에, 그리고 그 실수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밝은 및 속에서 고민에 빠지는 일에 갈수록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그 실수들에는 정보가 가득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도 떠올랐다. 익어가는 인생은 혼란스러움을 서서히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했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계속되는 삶 안에서 슬픔은 순수히 느끼고 지나가야 하는 감정이었고, 죽음은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서도 배우고 익히는 여유를 선물했다. 

  단순히 아버지와 자신의 관을 만드는 괴짜 아들의 이야기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갈수록 그렇지 않았다. [영혼의 집 짓기]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었다. 진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책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두 가지를 선물했다. 관을 만들면서 자신의 시간을 나누었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확고한 연결고리를 완성했다.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을 읽을 수많은 부자들의 마음에서도 이어지길 바래본다. 





데이비드 기펄스가 준비한 자신의 장례식에 재생할 곡의 목록이 있다. 책에서 언급하는 다양한 곡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조금 더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했을 것 같다. 그 아쉬움을 이 곡들을 들으며 달래봐야겠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역자와 편집자가 준비한 위로의 곡도 준비되어 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끄적 끄적 몇 줄을 적고, 위로의 곡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한 밤이다.




b*****5 2020.03.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