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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청나라와 일본에 대해서는 알았어도 조선은 알지 못했다. 동양 자체가 미지의 공간이긴 했지만 조선만큼 뽀얀 안개에 휩싸인 공간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조선으로 몰려왔다. 권력을 잡고 있는 허수아비와도 같은 이들이 조금 더 개방적인 태도를 지녔더라면 그들은 국토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폐쇄적인 사회가 문을 연 것은 강요에 의해서였다. 조선으로 흘러 들어온 이들은 조선을 일본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했다. 게다가 그들은 서양인 특유의 시선을 고수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으며 저열한 이들에게 문명을 전파한다는 고귀한 이념을 실천 중이라는 의식은 그들의 뼛속 깊은 곳까지 박혀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조선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모습은 조만간 타파되어야 하는 구시대의 산물과도 같았다. 미국이나 기타 서양의 모양새를 닮아 조선이 다시금 일어서길 바랐지만, 너무도 앞서 있는 자신들을 따를 수 없다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일본의 방식도 나쁘진 않을 거라 믿었다. 복합적인 시선에 의해 조선은 왜곡됐다. 안타깝게도 기록은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몫이다. 우린 우리 자신의 과거를 살펴보기 위해 일본에 의존해야 하고 몇몇 서양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만 한다. 존재감 없던 미개한 땅을 방문한 이들은 제법 많았다. 그 중에서 이 책은 세 명의 여성을 선택하여으니, 선교사 베라 잉거슨(Vera Ingerson)과 콜렉터 거트루드 워터(Gertrude Warner),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가 바로 그들이다. 그들이 조선을 찾아온 목적은 서로 달랐다. 그렇지만 그들의 시선에 비친 조선은 대동소이했다. 그들은 곧잘 조선의 모습을 일본과 견주었다. 자국과의 비교는 아예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는데, 일본과의 비교에서도 조선은 한없이 못나 보였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조선에 일본의 통치는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식민 통치를 긍정하는 마음을 그들은 기록을 통해 드러내고는 했다. 물론 그들 역시 조선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는 있었다. 조선식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의 증거다. 잉거슨은 ‘인거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간호사로서 그녀는 조선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부대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특별해 보인다. 그녀는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홀로 한복을 챙겨 입음으로써 조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외국인이었음에도 한복을 차려입는 것으로 조선인들과의 거리를 줄일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가 머물렀던 선천 지역의 독특성이 큰 역할을 했다. 인구의 무려 4/5가 기독교인이었다고 했다. 외국인이라면 두려워하고 반대하기 바빴던 다른 지역과 달리 선천 지역은 기독교적 소명을 실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곳이었다. 거트루드 워너의 경우 우리의 필요에 의해 재조명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수집품 중에 조선의 것도 제법 여러 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녀가 조선에 관심을 드러냈던 것은 아니다. 역시나 그녀도 일본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아찔했던 점은 그녀에게 전쟁이 생과 사가 오가는 끔찍한 무언가가 아니었단 사실이었다. 전쟁은 자국의 문화재가 반출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신경이 덜 쏠리게 만드는 훌륭한 기제였다. 아무리 돈을 주고 구입했다 하여도 그렇게 쉽게 타국의 문화유산을 반출할 수는 없는 법이다. 불법과 합법을 두고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다툼을 생각하면 불운했던 이 시기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또한 그녀의 수집품은 일본과 조선의 격차를 한껏 부풀려 보여주는 것들이 많았다. 사진의 경우, 화사한 색을 입혀 일본의 풍요로움을 돋보이게 만든 반면 차라리 색을 입히지 아니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바로 조선의 것이었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일본의 아이가 쌀밥이 가득 담긴 그릇을 손에 쥐고 있는 모습에 비했을 때 과연 씻기는 했을까 의심이 갈 정도로 꿰제제한 조선 아이들의 모습은 동정심을 일으키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콜렉터로서 그녀는 제 안에 깃든 서구중심적인 시선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조선은 영원히 굶주림에 떨어야 하는 곳으로 기억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화가로서 엘리자베스 키스의 시선에서는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그림에서는 가난보다 조선 특유의 따스함이 묻어났다. 뛰어난 데생 능력을 가진 그녀는 조선의 풍경과 인물을 묘사함에 있어 사실적인 시선을 견지했다. 가난을 과장하지 않았던 것은 정도가 더해갈수록 받아들이기 힘들어졌던 일본의 통치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도 일본인들의 깔끔함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전쟁에 대해 긍정할 정도로까지 무모하진 않았다. 많은 사진이 내가 경험치 못한 오래 전 조선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흑백이어서 묵직했고,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초라함도 제법 묻어나서 서글펐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을 기록한 서양인들의 있었음은 기억해야겠지만 그들의 시선까지 고스란히 내면화하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역시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하다 여겨지는 사회를 바라볼 때 과거 제국주의 문명을 떠받들었던 이들과 동일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나의 시선에 의해 굴곡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사회는 좀 더 다채로운 공간이 되어 제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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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조선을 찾은 서양의 세 여인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194페이지의 책에서 93페이지가 되어야 세 분의 여성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앞부분은 어떤 내용이 있을까요? 서구인들의 눈을 통해 본 조선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NO Man's Land" 조선이라는 나라는 수천 년동안 세계에 숨겨져 있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야 '지리상으로 발견' 된 나라입니다. 서양인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오리엔탈'이 아닌 '옥시덴탈' 즉 발육이 덜 된 나라로 단정지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현실을 사진과 그림 속에 남겨 놓은 기록물을 보여 줍니다.
조금은 비굴하고 씁씁한 사진들이지만 1910년대 조선의 모습을 만나 볼 수 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합니다. 식민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외국에 알리기 위한 일제의 정책 일환으로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의 시각에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요?
사진 뿐만아니라 1850년대 랜턴 슬라이드로 기록된 많은 기록 사진들. 여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10년도 일본 게이샤 렌턴 사진입니다. 1910년도 사진이라고 믿겨지시나요? 흑백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한 옷 색깔과 생생한 얼굴 표정까지 1970년대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듯 합니다. 이런 슬라이드가 어떻게 1910년도에 만들어졌을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흑백 사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통해 사진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세 여인의 시각으로 조선을 바라 본 내용은 실망스럽습니다. 그저 단순히 1910년대의 조선의 사진과 생활상을 보기 위해서라면 권장해 볼 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