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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는 뭉클하다, 이건 국내 저자('국내'라는 사실은 자명하므로 굳이 언급의 필요가 없지만)의 표현이다. 확실히 그의 화풍에서는 다소의 비애가 느껴짐도 분명하며, 불안과 절망, 혹은 초월과 통찰에의 의지가 반드시 '슬픔'과 결부될 필요는 없다 해도, 저 먼 근원의 어둠, 혹은 조셉 콘래드적 의미에서 '암흑의 핵심'을 주시할 때(그게 가능하다는 걸 전제로 하고), 우리는 뭔가 애틋한 심기의 일단이 저 깊은 곳에서 피어오름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느끼는 건 불우한 천재 예술가들의 그 순탄치 않은 삶, 현상적 외피에 대한 동정(과 야릇한 안도감)에서 더 크게 유래한 일종의 선입견이지, 그 작품 자체가 풍기는 미적 효과는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작가의 의도가 그것임이 명백한 작품에서도, 예컨대 아무도 백남준이나 앤디 워홀의 (개별)작품, 퍼포먼스를 두고 비애를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 예술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하는데, 무지한 대중은 그저 '상품 가치 탁월한' 아티스트의 인격에 더 주안을 두는 현실이 기막히고, 예술가의 절망과 비애는 그런 몰이해의 악순환을 통해 더 깊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언제나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 '특히 미술에 있어, 작품의 대면 감상이 아닌, 문자를 도구로 한 서술로 과연 그 작가를 '이해'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그에 대한 답은, 평론가의 안목과 필력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할 수도, 또 절망적인 왜곡과 한심한 오도로 이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베스테르만의 여러 평론을 다양한 기회에 내국어, 그의 모국어로 접한 입장에서, 시각 예술이 문자 예술로 승화, 변모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이 점 새삼 확인이 가능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중요한 건 궁극의 경지를 그 일부라도 맛보는 체험의 실감이지, 그에 이르는 경로의 번잡한 준별이 아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 모로 가는 서울이 더 한층 발디딤의 보람과 눈익힘의 쾌감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차라리 진실일 수 있다. 내가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예술 전문 서적은 확실히 편집부의 세련된 안목과 섬세한 손길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왜 구상화나 극사실주의보다, 추상 미술이 현대의 총아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단일하고 명료해서 고정된 이미지와 메시지는, 보는 이에게 식상함(아주 세련된 감상자에 국한한 사정이지만)을 안길 수 있지만, 한 폭에 다량의 심상과 착안을 유발하는 추상은, 보는 이의 심기와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독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세련된 스탠스는 언제나 식상함을 그 필생의 대적으로 삼으며, 그에게 있어 지상의 과제는 태양 아래 새로운 쾌감과 미각을 찾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 그림을 보라. 이 유명한 마스터피스에서 우리는 뭉크에게 원초적 영감을 전달한 미주 원주민 미라의 그 기막힌 박제된 마스크, 온전한 고대의 아우라를 심안으로 꿰뚫을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결핍과 무지에 찌든 정신나간 촌년의 단말마, "아! 내 눈과 눈은 왜 이렇게 멀고도 멀지? 나는 왜 10년 묵은 썩은 옷만 걸치고 다니는 저주 받은 운명으로 태어나서, 못 배운 짓만 골라 하고 다닐까? 이러니 온전한 남자가 내게 눈길을 줄 턱이 있나!" 하며 영도다리 앞에서 죽음에의 충동(네크로필리아)에 사로잡히는 처참한 광경을 떠올릴 수도 있다. 추상의 매력은 바로 퍼스펙티브의 다각화에 있으며, 우리는 이제 뭉크를 통해 집단 세례의 축복을 받은 셈이다. 선과 면, 색이여 영원하라. 그를 감지하는 포유동물의 시각 기능이여, 그 불멸의 트랜스퍼를 길게도 간직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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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뭉크가 그린 그림 중 뭉크 자신을 등장시키거나 뭉크의 심적 상황이 제대로 드러난 그림을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한마디로 자화상을 중심으로 뭉크의 일생을 들여본다는 얘긴데, 내가 올해 안에 뭉크 관련 서적만 세 번째 접하는 지라 솔직히 크게 인상적인 책은 아니었다. 일단 자화상을 중심으로 다룬다니까 꼭 뭉크의 덜 알려진 작품들을 다룬다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 어느 정도는 생소한 작품들도 다루고 있긴 했다. <환상>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 사실 뭉크의 대다수의 대표작 중 그의 자화상이 꽤 많아 책의 그림들이 대부분 낯익었다. 이 책이 꼭 자화상만 다루는 건 아니고 뭉크의 당시 정서가 강하게 표현된 작품도 다루지만 그런 작품이야말로 뭉크의 대표작이들이기에 역시 낯익은 작품이 많았다. 뭉크만큼 자신의 삶을 그림 속에 적극적으로 투영한 화가도 없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글쎄,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이름이 알려진 화가 중 과연 그렇지 않은 화가가 몇이나 될까 싶다만. 뭉크에 대한 팬심을 떠나서 하는 말이다. 뭉크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읽었던 책에서 이미 접했던 내용이고 또 그 책들의 포스팅에서도 써본 내용이기에 특별히 더 덧붙이거나 하진 않겠다. 다만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무려 3만원이 넘는 이 책을 봐야 할 이유로 나는 상당히 거대하고 양질의 판본으로 뭉크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있다고 감히 단언해보겠다. 책을 사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나지만 이렇게 고가의 미술책은 처음이었기에 아무래도 구입하기가 망설여졌지만 큰맘 먹고 사서 읽은 보람이 있었다. 뭉크에 대한 팬심이 없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뭉크의 팬이 됐을 테니까 애당초 가정 자체가 무의미하려나. 아무튼,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가 그림을 크게 보기 위해서듯 미술책을 보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단 걸 이 책을 읽고 알게 됐다. 그림은 역시 크게 봐야 돼. 가격 때문에 이 책으로 뭉크에 입문하라고는 못하겠지만 그게 제약이 되지 않는다면 추천해본다. 단기간에 뭉크 책을 많이 읽어 내 개인적으로 식상했다 뿐이지, 다루는 내용도 풍성하고 무엇보다 주석이 탄탄하다. 주석이 미주尾註 형식이라 페이지를 왔다 갔다 하는 게 좀 귀찮았고 또 그 양이 양인 지라 더욱 귀찮았지만 그만큼 내용이 알찼다. 단순히 내용의 출처만 밝히고 마는 게 아니라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다뤄 주석이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554790642 이건 유성혜 씨의 <뭉크> 포스팅. https://blog.naver.com/jimesking/221601395453 이건 뭉크가 쓴 글들을 모아놓은 <뭉크 뭉크> 포스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