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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임팩트, 2012, 투모로우, 샌 안드레아스, 해운대 등 재난 영화를 보면 어김없이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고 도시의 모든 것을 초토화 시키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이 소설에서도 예외가 아닌데...(다만, 주인공들을 제외하고 자세한 묘사는 생략되어있을 따름이다.)
바다 저편 어느 섬에서 화산이 분출, 폭발로 인해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발생하고 그 주위에 대부분의 땅이 물속에 잠겨버린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집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가족이 있다. 무려 11명이나 되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집주위로 바닷물이 빠지기는커녕 서서히 차오르고 급기야 폭풍우까지 불어닥치는데...!
→ 물결 그림과 홀로그램의 만남이 꼭 진짜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느낌을 주는 표지, 넘 멋지다!
그러던 것이 몇 차례의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점점 집 주위로 바닷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처음 쓰나미를 겪었을 때 떠나야 했단 걸 뒤늦게 깨닫게 된 파타(아버지)는 아내인 마디(어머니)에게 떠나야한다고 말하며 보트에 전부 다 태우지 못하니 조심스레 두고 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디는 쓰나미 발생 이튿날부터 떠날 준비를 하자고 했다. 파타는 그럴 필요 없다고, 물이 빠질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녀가 옳았고 그가 틀렸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p33
아버지로서 도저히 입 밖에 꺼낼 수 없는 문제, 그의 입속을 활활 태우는 문제. 그들에게 배는 달랑 한 척뿐이었다. ...(중략)...그녀는 바다, 폭풍, 불운이 모두 그의 탓이라는 듯이, 순전히 그의 탓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누구를 남길 건데?" p35
어느 어머니가 그런 상황에서 자식을 단 한명이라도 두고 갈 수 있겠는가. 물론 아버지도 마찬가지겠지만. 암튼 파타는 나름의 기준으로 보트에 태우지 못할 자식들을 선택하고야 만다.
"절름발이, 애꾸, 난쟁이, 그러니까 제일 성치 못한 애들을 남기자는 거네. 타고난 불운에 어미 아비가 쐐기를 박는 셈이야." p44~45
공교롭게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선택되었다. 부모가 자신들을 깨우지 않고 버리고 떠난 뒤 세 아이들 중 제일 어리며 왜소해 난쟁이로 불린 노에는 말한다.
한동안 극심한 혼란과 슬픔에 빠진 나머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루이, 페린, 노에는 데리러 오겠다는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아빠가 데리러 온다는 말을 믿는다 해도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기다릴 수 밖에 없었고 어떻게든 살아야하니까 아이들은 조금씩 기운을 내어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활을 꾸려가고...
한편, 세 아이를 두고 떠나야만 했던 마디와 파타.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고지대를 찾아 보트를 몰지만 거듭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엄청난 슬픔과 대혼란 속에 빠지게 되는데...!
남겨진 세 아이는 하루하루 잠겨가는, 아니 죽음을 향해 가는 집이 있는 언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떠난 가족들은 무사히 고지대를 찾아 남겨진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들의 결말은??
물론 그대로 죽을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래도 무언가 다같이 헤쳐나갈 방법을 생각해내었다면, 그랬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 무척 아쉽다. 천재지변으로 생겨난 일이지만 소설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때론 잔인하면서도 섬뜩하게, 때론 가슴아프면서도 뭉클하게 그려낸다. 가족 모두에서 세 아이들로, 그리고 떠난 가족들로, 그러다 다시 세 아이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며 자꾸만 결말이 확인하고 싶은 탓에 손이 근질근질거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다 읽고난 지금,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혹은 재난 영화를 본 기분이 든다.
서로가 가진 것을 뺏으려 하지 않고 나눌 때 비로소 폭풍우가 걷히고 그제서야 바닷물도 잔잔해지는 느낌이 드는, 세 아이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남으려 애쓰는 의지와 끝까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 엄마의 의지가 돋보이는 가슴시린 이야기이며 그런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또다른 등장인물 뤼세트, 아델. 두 할머니와 세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왠지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많이 씁쓸하지만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이야기였다. 결말 부분이 아주 조금만 더 길었다면...하는 진한 아쉬움은 남지만.
파도가 지나간 후, 그들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그들을 지켜보며 우리에게 남은 것은 또 무엇일지... 생각이 많아진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이 무척 냉혹하고 몹시 비정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또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직접 이 가족을, 남겨진 세 아이들을 꼭 한번 만나보면 좋겠다. 너무나도 당연해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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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해안 마을에 거대한 쓰나미가 닥쳤다. 마을 사람들 모두 죽고, 그 마을 언덕 꼭대기에 살던 파타와 마디 부부 가족들만 살아남았다. 집안의 가장인 파타는, 여느 쓰나미가 그렇듯 머지않아 물이 빠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바닷물은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위가 오르기 시작했다. 아내 마디는 직감적으로 집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타는 마디에게 고집을 부렸다. 곧 물이 빠질 거라고. 가장으로서 체면을 구기기 싫은 아집, 고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쓰나미 이후 바다 수위는 시나브로 계속 높아졌고, 설상가상으로 갑작스러운 폭풍우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다. 고집을 부리던 파타도 더 이상 집에서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 배 한 척이 있다. 배에 탈 수 있는 인원은 총 8명. 하지만 파타의 식구는 총 11명이다. 3명이 인원 초과된다. 파타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무리하더라도 가족 모두를 배에 다 태울 것인가, 아니면 가족 중 3명을 골라 집에 남기고 떠날 것인가.
파타에게는 총 9명의 자식이 있다. 리암, 마테오, 루이, 페린, 노에, 에밀리, 시도니, 로테, 마리옹. 파타와 마디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농담 반으로 했던 가족계획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고 낳다가 보니 자식이 9명이 되었던 것이다. 9명의 자식을 키우기에 경제적으로 빠듯했지만 근면 성실하고, 알뜰했던 파타와 마디는 부족한 것이 9명의 자식을 모두 키웠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몰려온 쓰나미 때문에 집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파타와 마디는 잔인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떠났더라면 여유 있게 자식 모두를 다 데리고 떠날 수 있었을까. 파타의 고집으로 시간이 너무 촉박해졌기 때문에 세 명의 자식은 집에 놔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인 마다는 집에 놔두고 갈, 아니 '버리고 갈' 자식을 선택하지 못했다. 결국 파타가 집에 놔두고 갈 자식을 '정했다'. 누구일까. 바로 몸이 성치 않은 3명의 아이, 루이 / 페린 / 노에였다. 루이는 절뚝거리며 걷는 절름발이였다. 페린은 어렸을 적 둘째 오빠인 마테오가 눈을 찔러서 한쪽 눈을 실명했다. 노에는 선천적으로 너무나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파타는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세 명의 자식을 집에 놔두고 밤 사이 도둑처럼 가족 모두와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엄마 마디는 괴로웠지만 또 다른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배를 타고 떠난다. 이후 수몰되어 가고 있는 3명의 아이와 배를 타고 떠난 파타와 마디 그리고 여섯 명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섬에 남은 아이들은,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다. 이런 과정에서 루이는 자신과 동생들을 죽이고 집안의 먹을거리를 강탈해 갈지도 모를 악당을 살해하기도 하지만, 배를 타고 가다 우연히 만난 할머니 두 분을 구하기도 한다. (할머니들은 한쪽 눈마저 다친 페린의 눈을 치료해 주시고,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은 물론이고 편찮은 당신이 먹고 고통을 잠재울 아스피린의 마지막 한 알까지 페린에게 주셨다) 이에 반해 성한 몸의 아이들만 골라 데리고 떠난 파타와 마디. 그들은 두 명의 자식을 잃는다. 우량아로 태어난 로테는 폭풍우 속에서 바닷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둘째 마테오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바닷속 괴물과 싸우다 육신이 찢어져 죽어버린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지대에 닿는다. 새로운 삶의 시작. 그러나 아이들의 엄마, 마디의 마음은 수몰되어 가는 집에 남겨진 아이들 생각뿐이다. 이웃집 배를 몰래 훔쳐 혼자 아이들을 찾아 나선다. 상드린 콜레트의 작품 『파도가 지나간 후』. 전체적으로 뚜렷하지는 않지만 권선징악의 구조가 살짝 엿보인다. 재해 속에서 타인을 해치고 본인 혼자 살려고 했던 사람들의 운명은 좋지 않다. 끔찍한 재해 속에서, 본인 살기도 힘듦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을 고난을 뛰어넘어 기대해 볼 수 있는 '내일'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몸이 성치 않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파타와 마디에게 '로테'를 잃는 크나큰 고통이 주어지고, 동생의 눈을 실명케 한 마테오는 짓궂은 오빠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가족을 위해 괴물에게로 뛰어드는 죽음을 선택한다.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빼앗고 죽이려 한 아데스는 오히려 그가 죽음으로 몰렸다.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집에서 생을 마감하려 한 할머니는, 모두가 이 할머니를 살리고 싶어 한다. ──── 파도, 즉 '고난'이 닥친 후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혼자 살려고 할 것이냐, 양보하거나 함께 살려고 할 것이냐. 저자 상드린 콜레트는 '함께 살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 살려고 바둥거리면 죽거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고, 다른 이와 함께 살려고 노력하면 기어코 살 수 있고 만약 죽더라도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나에게도 이런 파도가 몰아닥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혼자 사는 삶? 아니면 함께 살아남는 삶?! 평온한 지금 머리로는 선택할 수 있어도, 막상 이런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내 마음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멀었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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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는 소설로 읽는 철학의 문제일까 싶었다. 쓰나미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점점 물에 잠기는 집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가기 위해 탈출을 해야하는 가족이 있다. 11명의 가족이 타기에는 배가 작아 8명은 배를 타고 떠날 수 있지만 나머지 3명은 남아있어야 한다. 과연 가족에게 강요된 선택은 무엇일까? 어떤 결정이 되었든 또 다른 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이 상황에서 소설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고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긴장감과 긴박함, 스릴이 넘쳐나는 가족의 앞날은, 지금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인한 불안감과 겹쳐서 그런지 지구의 미래에 닥쳐올지 모르는 쓰나미 이후의 세계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듯 해 더 마음 졸이며 읽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니 실상은 언제나 그렇듯 세상경험 많은 이들의 눈에는 보였던 자연의 징조들은 무시되었고 괜찮다는 말만 믿고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쓰나미가 밀려왔고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마디와 파타네 집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물이 빠지기 시작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기다리며 생활에 적응해보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물이 빠지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수위가 높아져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집마저 침수될 위기에 처해있다. 마디의 가족 11명이 집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자그마한 배 한 척, 그러나 배에는 8명 이상 탈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물의 수위는 점차 차올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들에게 결단은 강요되고... 결국 세 아이를 남겨두고 부모는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집에 남겨진 세 아이는 ... 우연찮게도 한 방에서 잠을 자는 중간의 아이들이다. 의외로 부모의 결정은 쉬워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며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를 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미가 도대체 뭔가. 그녀는 지금까지 파타의 무모함을, 어리석은 희망을, 말이 안되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로테를 잃어버린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이었다. 그녀의 실책이었고, 그녀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왜 하필 로테일까? 언덕 위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우연을 어쩌겠는가. 사무치는 슬픔을 어쩌겠는가.(178)
이야기는 남겨진 아이들의 생활과 떠난 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집에 남겨진 아이들에게도, 떠난 이들에게도 첫날은 견딜 수 있을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각자의 고통과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게 되고... 그 나날들의 묘사가 세세하고 긴장감 넘치는 공포감을 주고 있어서 글을 읽는 내내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소설은 끝을 향해가고 있는데 도무지 이 이야기의 끝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이들 이야기의 끝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거나 그들앞에 망망대해만 펼쳐졌다, 라는 것일까봐 더 두려웠다는 것이 맞을것이다.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듯 한박자 쉬어가지만 이야기는 끝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어"라는 탄식이 과연 그들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긴장감 넘치는 가족의 고통과 시련에 공포감이 더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기 급한 독서였는데 다시 곱씹어볼수록 생각해볼거리가 너무 많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선택에 대해 옳다, 그르다 라는 판단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되는 가치는 무엇일까 ... 정말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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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드린 콜레트. <파도가 지나간 후>의 작가이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된 책이라고 한다. 책을 순식간에 다 읽고 나서, 나는 작가의 이름을 꼭 기억하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이 작가의 책이 나오면 반드시 무조건 다 읽겠다고 말이다. 믿고 보는 작가의 리스트에 올려놔야겠다.
이 소설은 책소개 때부터 내 눈을 사로잡았다. 자녀 9명을 둔 일가족 11명이 쓰나미로부터 살아남았다. 이웃들과 마을은 모두 물에 잠기고 가장 높은 언덕에 있던 자신들의 집은 지대가 높아 다행히 물에 잠기지 않았다. 하지만 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가고 이 집도 얼마 못가 바닷물에 잠기고 말 것이다. 부모는 결정해야 했다. 배를 타고 고지대를 찾아 떠나기로. 하지만 그 배에 온 가족이 다 탈수가 없다. 과연 누구를 두고 가야만 할까? 트롤리 딜레마처럼 반드시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지만 그 어떤 선택도 쉬운 선택이 아니다. 특히 가족중에 누구를 두고 가고 누구를 데려갈까? 정말 가장 마지막까지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이다.
세 파트로 나뉘어진 이 소설은 한 번 잡으면 순식간에 단숨에 읽게 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작가는 굉장히 흡입력 있는 글로 독자를 그 이야기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한다. 마치 내가 쓰나미가 쓸고간 그 언덕 집에 있는 거 같고 고지대를 찾아 떠나는 가족들이 탄 배에 있는 거 같은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자녀는 모두 9명으로 15살 장남과 13살 차남, 그 밑으로 다리를 저는 11살 루이, 한 쪽 눈이 먼 페린, 8살이지만 5살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노에, 그 밑으로는 6살 에밀리, 5살 시도니, 3살 로테, 1살 마리옹이 있었다. 아빠와 배의 노를 교대로 저으면서 가려면 장남과 차남은 꼭 데려가야했다. 6살 밑으로 어린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중간의 실패작이라고 불리는 절름발이 루이, 에꾸눈 페린, 난쟁이 노에를 두고 가기로 결정한다. 마침 그 셋은 같은 방을 쓰고 있었기에 다른 가족들은 그들 몰래 배를 타고 가기에 수월했다. 소설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부모가 과연 누구를 남겨둘까도 궁금했지만 루이, 페린, 노에가 어른없이 홀로 망망대해에 남겨져서 살아남을 수있을지 그리고 그들에게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철썩같이 약속했던 부모가 무사히 고지대에 도착해서 그들을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을지가 더욱 더 궁금해서 이 책을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첫번째 파트에서 홀로 남겨진 아이들, 루이, 페린, 노에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서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낀 그들이 엄마가 남긴 편지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 생활을 헤쳐나가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위험에 노출되고 계획적으로 식량을 분배하지 못해 나중에는 먹거리들을 어떻게 조달해서 먹는지를 말이다. 자연재해라는 끔찍한 재난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지를 똑똑이 보여준다. 두번째 파트에서는 중간의 실패작 아이들을 언덕위에 남기고 떠난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피난길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폭풍우로 바닷속에서 아이 둘을 잃고 만다. 먹을 음식도 충분치 않아서 모두 배를 곯게 되고 노를 저어 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두고 온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분노, 여러가지의 감정때문에 엄마인 마디는 어디를 가든지 마음이 편치 않다. 드디어 육지에 도착한 그들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꾸리게 되지만 다시 언덕위의 아이들이 남아있는 집으로 순찰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자 경찰은 이미 그곳은 물에 잠겨 아무도 없다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마디는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놓이게 된다. 세번째 파트에서는 다시 언덕위의 집에 남겨진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물의 수위가 점점 놓아졌고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 부모는 언제올지 깜깜 무소식이다. 그들은 마냥 자신의 부모가 자신들을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기만 할까? 타고갈 배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그냥 그렇게 죽음을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작가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흡입력 또한 굉장하다.
쓰나미라는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서 얼마나 사람들이 약하고 자연앞에서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노를 저어가며 망망대해를 지나가는 배에서 난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삶과의 투쟁에서 얼마나 사람이 처절해지는지 말이다. 물의 수위가 올라가 점점 언덕의 집들이 잠기는 것은 지구온난화로 바닷물의 수위가 올라가는 것이 떠올랐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재난 소설을 상상해서 썼다는 느낌이 아니라 실제 우리에게 곧 닥칠 수도 있다는 실화의 이야기같았다. 긴장감과 흡입력으로 그 어떤 미디어나 영화보다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소설을 원한다면 단연 첫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북튜버<책읽는 치어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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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나미가 덮쳐 자신의 가족이 사는 섬이 잠겨버렸을 때 루이와 아이들은 자신들이 평소 힘들게 오르던 언덕 맨 위에 자신들의 집이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주위 이웃들 대부분은 그 쓰나미에 집이 잠겨 빠져나올 새도 없이 수몰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이 섬에 살아남은 사람은 루이네 가족 11명뿐이지만 가족 모두 무사한 것과 집이 남아 있어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했던 마음도 잠시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쓰나미가 지나간 후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와 바람은 그들의 집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했고 가족은 좀 더 크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문제는 그들 가족 모두가 타기에는 배가 너무 작았다는 것이다. 다 같이 죽지 않으려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엄마 아비는 자신의 뱃속으로 나은 자식을 버리는 짓을 할 수 없다 울부짖고 격렬히 반대한다. 결국 아빠이자 가장인 파타는 섬에 남을 아이들을 선택했고 먹을 것과 물을 남겨둔 채 몰래 떠나게 된다. 아비도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죽지 않으려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파타가 한 짓을 용서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렇게 어느 날 느닷없는 재해로 한 가족이 자신의 터전을 잃고 거기에다 자식들마저 일부 남겨 둔 채 떠날 수밖에 없는 죽음보다 더 깊은 선택의 고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이 책은 남겨진 아이들 3명과 선택된 아이들을 싣고 떠난 부모의 이야기로 나눠 그들이 겪는 고통과 생의 투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 아빠도 언니 오빠도 없고 어린 동생들마저 없이 그저 자신과 같은 방에선 잔 동생들만 남겨져있다는 걸 발견한 소년 루이의 나이는 고작 11살 아무리 둘러보고 불러봐도 자신들만 남았다는 걸 깨달은 루이는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걸 깨닫는다. 비록 엄마가 남겨둔 편지에는 안전한 곳에 도착한 후 반드시 자신들을 찾으러 올 거라고 쓰여있지만 루이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신들이 왜 선택된 건지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체념하지만 동생들은 다르다. 엄마 아빠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 동생들을 대신해 자신이 모든 걸 진두지휘하고 살아남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아쉽게도 비는 계속 오고 집은 서서히 잠기고 있다. 자신들도 떠나지 않으면 집과 같이 잠겨버릴 거라는 걸 깨닫지만 배가 없고 어린 자신들의 힘으로는 뗏목조차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절망한 순간 누군가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사람조차도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다. 그에겐 이 아이들이 가진 음식만 필요할 뿐이란 걸 깨닫는 순간 루이는 대장으로서 특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 순간 루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장난치는 것에 열중했던 아이의 순진함을 벗어난다. 이렇게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부모 역시 평탄하지 않다. 자식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거친 파도에 작은 배로 맞서야 할 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의 칭얼거림도 감수해야 하고 밤낮없이 노를 저어 나가야 함은 물론이고 그 들 뒤를 바짝 쫓는 바닷속 괴 생명체를 따돌리기도 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뜻밖의 불행으로 자식마저 눈앞에서 잃어버린다. 그들 가족이 겪는 엄청난 불행과 고난의 순간이 처절하도록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읽으면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마치 한 편의 재난영화를 보는듯 그려져있다. 아이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는 게 어린아이들 셋이서 겪는 일 역시 지독하도록 힘들고 고통스러워 읽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편치 않았지만 여느 작품들과 다른 점은 이 모든 불행에서 아이들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겨진 아이들이 조금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끝내는 부모와 행복한 조후를 한다는 식의 평범한 전개가 아니라 극히 현실적인 묘사를 통해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그리고 좌절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파도와 폭풍우같이 거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생생하고 치열하게 묘사해서 글에서 박진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불안과 공포에 잠식된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에 대한 냉정한 통찰은 이 책을 읽기 편하지 않게 한 요소이지만 그게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뻔한 재난 영화나 소설보다 훨씬 더 긴박감 있고 긴장감이 넘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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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기 싫을 정도로 여운이 짙게 남는다. 쓰나미로 단 몇일 만에 마을이 잠기고 그나마 고지대에 살던 11명의 가족들만 살아남았다. 물은 계속 차오르고 곧 잠길 것 같은 집을 두고 또 다른 고지대를 찾아가려는데 보트의 정원은 8명. 누구를 남기고 갈 것인가? ?? 살고자하는 욕망 그에 반해 고난, 슬픔, 손실로 인한 무기력감 등으로 인한 삶의 포기.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려는 부모와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부모. 남겨진 아이들의 슬픔과 생존기.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세 명으로 스토리 절반을 넘게 끌고 간 힘이 대단하다. 초반에 지루함, 아이들에게 닥쳐지는 불행과 고난들이 스토리를 루즈하게 만들었지만 중반부터 시작되는 집중력과 스토리. 마지막 결말을 통한 감동과 아쉬움,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도 독자가 상상속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게 만드는 힘.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 특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부모의 감정,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남겨진 아이들의 생각들, 고난을 겪고 무너지는 모습과 이겨냈을때 성장하는 모습 등 감정을 표현하는 문장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예사로 읽기 시작한 책인데 가슴에 묵직한 뭔가를 내려놓은 이야기. 가족소설, 성장소설, 재난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강력추천! 5점 만점에 5점 이상을 주고 싶은 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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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과 먹먹한 가슴... <파도가 지나간 후>를 읽는 순간부터 밀려오는 감정과 생각들, 마치 쓰나미 같았어요. 엿새 전, 그 파도를 직접 본 사람은 루이뿐이었어요. 열한 살 소년 루이는 저녁을 먹기 전인 일곱 시 정각, 닭장 문이 잘 닫혔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러 나왔고, 저만치서 괴물이 하늘을 다 가릴 태세로 돌진하는 걸 봤어요. 너무 놀라 쏜살같이 뛰어 집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어요. 루이는 고함치며 헐떡대느라 아무 말도 못했어요. 루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땅과 벽이 무섭게 흔들렸고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파도에 두들겨 맞았어요. 그날 밤 가족 모두는 파도와 강풍에 흔들리는 집 안에서 불안에 시달렸어요. 바다 저편 어느 섬에서 화산이 분출했고,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났고 땅의 절반이 침수되었어요. 다행히 루이네 집은 물에 잠기지 않았어요. 그러나 점점 해수면이 올라가는 걸 보면 남은 땅이 언제 잠길지 알 수 없었어요. 여길 떠나려면 망가진 보트를 고쳐야 했어요. 루이네 가족은 11명이에요. 아빠 파타, 엄마 마디 그리고 9남매 - 장남 리암(15살), 차남 마테오(13살), 셋째 아들 루이(11살), 넷째 딸 페린(9살), 다섯째 아들 노에(8살), 여섯째 딸 에밀리(6살), 일곱째 딸 시도니(5살), 여덟째 딸 로테(3살), 아홉째 딸 마리옹(1살) 9남매 중 세 명만 장애가 있어요. 루이는 한쪽 다리가 뒤틀린 채 태어났고, 페린은 한쪽 눈이 안 보이고, 노에는 유난히 몸이 왜소해요. 심술쟁이 형들은 부모님이 안 계시면, 루이는 '절름발이', 페린은 '애꾸눈', 노에는 '난쟁이'라고 부르며 놀렸어요. 열셋째 날 아침, 잠이 깬 루이는 같은 방에서 자고 있는 동생 페린과 노에를 바라보았어요. 어제와 똑같은 아침인 줄 알았는데 뭔가 확실히 달랐어요. 집에서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어요. 커피 냄새도, 빵 굽는 냄새도,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어요. 집에는 세 아이만 남겨졌어요. 그러니까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은 보트를 타고 이 섬을 떠나버린 거예요. 어째서 셋만 남겨두고 간 걸까요. 과연 보트를 타고 떠난 가족들은 무사할까요. 애초에 잘못된 선택을 했어요. 쓰나미로 점점 가라앉는 섬을 떠나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보트에 누구를 태울 것인가. 아빠 파타와 엄마 마디에게 아홉 명의 아이들이 똑같이 사랑스러운 존재였다면 무슨 기준으로 보트에 태웠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누구를 탓하겠어요. 가장 괴롭고 슬픈 건 그들일 텐데. 아무도 쓰나미를 탓하지 않아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이니까.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존재하는 자연의 일부이니까. 그러나 파도가 지나간 후,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어요. 어떻게 살 것인지. 다만 아직 어린 세 아이, 부모에게 버려진 그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어요. 그저 살아남는 수밖에. 참혹한 비극의 현장, 치열한 생존기를 보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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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인 마다는 자꾸만 가라앉지않고 불어나는 해수면에 어느 자식을 집에 나두고 아니 버리고 갈지 선택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갑작스럽게 몰려온 쓰나미 때문에 집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아빠인 파타와 엄마인 마디는 잔인할 수 밖에 없는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떠났더라면 여유 있게 자식 모두를 다 데리고 떠날 수 있었을까 엄마 마다는 되돌릴 수 없는 이 선택에 괴로웠다. 하지만 결국 엄마인 마다는 나머지 아이들의 생존을 위해 결국 세 명의 자식은 집에 놔 둔 채 배를 타고 떠난다. 아빠인 파타가 정한 집에 놔두고 갈 세 아이들 바로 몸이 성치 않은 3명의 아이, 루이와 페린 그리고 노에였다. 루이는 절뚝거리며 걷는 절름발이였다. 페린은 어렸을 적 둘째 오빠인 마테오가 눈을 찔러서 한쪽 눈을 실명했다. 노에는 선천적으로 너무나 작고 왜소한 아이였다. 파타는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세 명의 자식을 집에 놔두고 밤 사이 도둑처럼 가족 모두와 배를 타고 떠나버린다. 엄마 마디는 괴로웠지만 또 다른 자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배를 타고 떠난다. 이 책의 저자 상드린 콜레트는 프랑스 추리문학 대상을 받은 작가로 서스펜스와 문학성을 모두 갖춘 작품들로 한계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 등 인간적 고뇌를 담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벤담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과연 옳을까를 고민하게하는 이 소설은 쓰나미로 인해 모든 것이 물에 잠긴 상황 속에서 점차 해수면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한 가족의 상황을 통해 극단의 상황 속 인간의 본성과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루이가 자신들이 남겨진 것을 깨닫는 장면이었다. 평소처럼 났었어야할 빵굽는 냄새도 커피 냄새도 그리고 엄마 마다의 목소리도 결국 루이와 페린 그리고 노에 세 사람이 남겨졌다. 이 장면에서 루이의 상실감과 두려움이 너무 생경하게 느껴져 똑같이 사랑한다면 왜 자신을 남겨두고갔을까하는 속상함과 두려움, 그렇다면 다른 가족들은 어떨까하는 걱정 등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 했다. 인생에서 닥친 시련들을 어떻게 해쳐갈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생존과 관안된 이야기라면 이 책은 읽고 난뒤 많은 물음표를 남긴다. 과연 나는 이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이 소설을 읽으며 사랑에도 무게가 있다면 과연 다르다해서 버릴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남겼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이성과 본능, 한계상황, 사랑의 무게, 선택과 버림, 유대관계, 희생, 분노, 회복, 생존가치 등을 고민해보고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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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없어. 명예도 이제 없어.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어. 「파도가 지나간 후」 엿새 전, 그 파도를 눈으로 본 사람은 루이뿐이었다. (13쪽) 고작 11살에 한쪽 다리가 불편한 소년이 가장 먼저 쓰나미를 발견했어요. 닭장 담당이었기 때문에 매일 저녁 7시 정각 닭장을 향해야 했거든요. 그저 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을 하러 나간 것 뿐인데 엄청난 장면을 보게 된 거에요. 그야말로 괴물같은 파도를 본 루이는 재빠르게 집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어요. 너무놀라 고함을 치면서도 숨이차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루이를 본 엄마는 루이를 달랜 후 무슨일인지 묻기 전 땅과 벽이 흔들리고 모든 창문이 깨지는 모습을 보게되요. 그렇게 모든것 앗아간 그날 밤을 가족들은 모두 잊을 수 없었어요. 그날 밤 이후 세상의 풍경이 바뀌어버렸어요.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집을 오가며 투정 부렸던 그 길도 모두 물에 잠겨 버렸어요. 덩그러니 루이네 집만 세상에 남겨진 듯 주변은 온통 바다 뿐이었어요. 세상을 집어삼킨 파도가 일어난 이유는 인근섬의 화산 폭발 때문이었어요. 화산폭발이 일어나면서 섬이 무너졌고, 섬이 무너져 바다에 가라 앉으면서 파도는 쓰나미로 변해버린 거에요. 겨우 6일만에 온세상엔 루이네 가족만 남은 듯 느껴지게 된거에요.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8남매만 남겨진 그 좁은 땅에서 하루하루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그런데 이 물이 좀처럼 빠질 생각이 없어보였어요. 오히려 점점 차오르는 수위를 체크하며 하루하루 불안감을 느끼던 아빠는 이내 결심을 하게되요. 그곳을 벗어나기로. 몇일이 지나도 자신들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기에 내린 결정.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집에 남겨진 사람은 11명, 섬 한켠에 떠있던 배의 정원은 8명. 배를 타고 떠나야 한다면 적어도 3명은 그곳에 남아 있어야만 해요. 하지만 그 고민도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아요. 결국 어느날 아침 남겨진 3명의 아이들은 평소와 다른 집안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요. 평소처럼 음식냄새가 나지 않아요. 북적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아요. 남겨진 세 아이들은 뒤늦게 탁자위에 남겨진 엄마의 편지를 보게되요. "아무도 없어." (48쪽) 한쪽 다리가 불편한 루이, 한쪽눈이 불편한 페린, 체격이 남들보다 작은 노에. 건강하지 못한 세명의 아이들이 남겨지게 된거에요. 아이들을 남겨두고 몰래 떠난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남겨진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버텨요. 남은 아이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열한살 루이는 동생들을 이끌며 하루하루를 보내요. 하루는 살아이는 닭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감자가 있는 인근 섬에 다녀와요. 그런데 루이가 없던 사이 두 동생은 닭을 한마리 죽여요. 그것도 루이가 가장 예뻐했던 닭을요. 하지만 닭을 잡아도 어떻게 손질하는 지 모르는 아이들은 결국 먹지 못한 채 닭을 묻어줘요. 그런데 파도가 한번 더 세 아이들이 있는 섬을 덮쳐요. 페린은 날씨의 변화를 감지하고 무사히 피할 수 있었지만 고집을 부리는 노에 때문에 루이까지 위험에 처하게 되요. 결국은 세 아이 모두 살아 남았지만 그 경험은 이내 자신들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안겨준거 같아요. 결국 나이가 가장 많은 루이는 그 섬을 떠나자고 결심하게 되고, 세 아이들은 섬을 벗어나기 위해 고민해요. 한편 세 아이를 섬에 남겨둔 채 배를 타야했던 엄마는 배에 탈 수 있었던 8명의 아이들보다 섬에 남겨진 3명의 아이들을 생각해요. 자기 스스로 아이들을 버렸다는 생각에 자책을 하다가도 자신의 품에 남겨진 8명의 아이들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하지만 몇일을 이동해도 배가 정박할 섬은 보이지 않고, 걱정하던 먹구름이 현실로 다가와요.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한 가운데! 갑작스럽게 바다에 빠져버린 남편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쉽지 않아요.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바다에 빠지게 되고, 엄마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막내를 가슴에 안고있다는 것도 잊은 채 바다에 뛰어들어요. 바다에 빠져버린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요. 바다에 빠진 한 아이의 후드를 겨우 잡아 챈 엄마! 품안에 막내와 함께 후드를 놓치지 않으려 발악하던 엄마는 큰 아이들 도움을 받아 구해지지만 자신의 손에 남겨진 후드속에 아이가 없다는 걸 알지 못해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폭풍이 지나간 후에야 자신의 손에 옷만 남겨졌다는 걸 알게되고 아이를 잃었다는 걸 인지하게되요. 과연 섬에 남겨진 세 아이들이 무사히 섬을 탈출할 수 있을지.. 배를 타고 탈출한 8명의 가족들은 무사히 육지를 발견할 수 있을지 긴장을 하며 책을 읽어내려갔어요. 스스로 선택해 세 아이를 남겨두고 떠난 엄마와 아빠. 이 선택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있을지 아직 모르겠어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이라고 하기엔 마음이 너무 씁쓸 하더라고요.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보려 하지만, 이 상황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결말이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보세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될거에요. 전 여전히 이렇다할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상상 그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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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홉 명의 아이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정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그런 그들의 삶에 쓰나미가 닥쳐온다. 물은 마을을, 사람들을,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 그나마 높은 지대의 언덕 위에 살던 오직 11명의 가족만 남겨두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먹을 것도 조만간 다 떨어질 것이다. 조금 더 일찍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마음 대신, 불행이 마치 코를 잡고 흔드는 것처럼 서둘렀더라면 가족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까. 떠날 수 있는 배는 한 척. 배의 정원은 8명.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태울 것인가. 파타와 마디는 육지에 도착하면 데리러 돌아올 거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남기고 가는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거라 생각하면서 6명의 아이를 선택한다.
선택받지 못한 아이는 루이와 페린과 노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루이, 어릴 때 사고로 한 쪽 눈을 잃은 페린, 체격이 왜소하고 몸이 약한 노에. 공교롭게도 남겨진 아이들은 몸이 제일 성치 못했고, 한 방을 쓰고 있었다. 맨 위의 아들 둘은 아버지를 도와 노를 저어야 하니 꼭 데려가야 했고, 밑의 여자아이들은 엄마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한 방을 쓰는 아이들 중 누구를 선택하면 깨우는 부산스러움에 이별이 어려워질 거라 자위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아이들이 버틸 수 있을 거라 계산한 식량과 편지를 남겨둔 채 육지를 향해 떠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족들이 자신들을 두고 떠나버린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황망함을, 슬픔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왜 자신들만 두고 떠난 것인지, 그 이유가 그들의 몸이 불편하기 때문인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한없이 되묻지만, 급선무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부모님이 남겨두고 가신 식량은 아무리 쪼개고 쪼개보아도 부족했다. 굶주렸다. 외부인의 침략에 두려움에 떨었다. 아이들은 결심한다. 이 집이 물에 잠기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비록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상처는 남았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남아있고, 더 강해졌다.
육지를 찾아 떠난 가족들도 마냥 행복하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망망대해에 오직 자신들만 존재한다는 두려움.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육지를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 또다시 태풍이 몰려올까 겁을 내면서 노를 저어야 하는 고단함. 그 와중에 괴생물체마저 생존을 위협해온다. 그리고 마침내 오고야 만 비바람에 아이 하나를 잃었다. 부모라면 작품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릴 수밖에 없지만 첫 번째로 아이를 잃는 이 장면에서 정말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분투한 엄마. 하지만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된 그 허망함과 슬픔, 분노와 좌절이 한꺼번에 밀려와 나를 삼켜버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음에도 자신들을 덮친 불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정신을 놓은 것 같던 엄마는 다시 길을 나섰다. 남편은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남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하자고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엄마는, 엄마니까. 마지막 부분은 운명에 의한 것일 수도,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믿고 싶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의지. 강한 삶에의 집착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어우러진 가슴 뭉클한 결말이었다. 최악의 딜레마와 최악의 불행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강해지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통찰하게 만드는 작품. 기억해야 할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자, 당신이 부모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혹은 남겨진 아이들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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