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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지루함의 아나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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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들어 사람들은 권태에 지쳐있다. 매 시간 언제나 접속해 있음의 상태로 머무른 채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다", "권태롭다"는 말과 생각을 일삼는다. 권태는 매 순간 우리에게 온다.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친구들과 있다가도 권태에 시달린다. '내가 지루한 상태에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권태는 나를 괴롭힌다. 권태로움에 빠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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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에 들어 사람들은 권태에 지쳐있다. 매 시간 언제나 접속해 있음의 상태로 머무른 채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다", "권태롭다"는 말과 생각을 일삼는다. 권태는 매 순간 우리에게 온다.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친구들과 있다가도 권태에 시달린다. '내가 지루한 상태에 있음을 자각하는 순간' 권태는 나를 괴롭힌다. 권태로움에 빠져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권태를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권태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입과 몸으로 권태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몸문화연구소에서는 '권태'와 '지루함',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태: 지루함의 아나토미』는 권태에 대해 연구한 연구자들의 논문을 모아 놓은 책으로 권태는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권태의 감정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 감정이다. 분주하게 일을 하는 듯 보이지만 한가하며, 즐거운 듯 보이지만 지겹고 따분해 하는 감정이다. 하이데거는 권태를 "다자인Dasein의 심연에서 소리 없이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뒤척이는" 상태, 혹은 "무관심의 말없는 안개"로 표현했다. 안개는 사물의 얼굴과 표정을 지워버린다. 해밀튼Hamilton은 "졸리는 듯한 권태", 스벤젠은 "불면의 상태"로 각각 묘사했다. 이러한 진단에서 공통되는 특징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 감정이다. 이러한 중간 감정은 마음과 몸의 분리와 맞물려 있다. (74쪽)

 

 

 권태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권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 권태란 과연 무엇일까? 권태는 근대적 현상이며 알맹이가 없는 진공상태와 같다. 주관적인 심리적 시간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양태로써 예전에 권태를 느끼던 사람들은 신분이 높은 귀족들 뿐이었다. 소일거리 하나 없이 풍요로운 삶을 향유했던 그들은 '할 일 없는 시간' 속에서 '지루함'에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권태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이 향유하고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고 지루하며, 시간의 흐름이 느리다고 느끼는 자신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권태에 빠져든다. 그렇기에 권태는 뜨거운 열정도 아니며 차가운 무관심의 시간도 아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적지근한 상태, 중간 감정에 불과하다. 조선시대로 따지자면 양반들, 서양으로 따지자면 귀족들이나 권태의 감정을 느껴왔었다. 그들은 노동계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 할 필요도 없었고, 하루 종일 무언가에 매달려 있을 것도 없었다. 가만히 누워서 책을 보거나 구름을 바라보거나, 잠을 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들은 권태로움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간다. 매 시간, 매 분, 매 초마다 사람들은 움직이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한다. 그럼에도 권태에 빠져든다.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근대에서 모든 사람들이 권태를 느끼는 이유는 '지루함' 때문이다. 정보의 바다라고 할 정도로 인터넷이 도입된 시점에서부터 우리 주변에서는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지는 사회가 바로 지금의 사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정보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매체들이 쏟아내는 뉴스와 드라마, 영화. 다양한 컨텐츠와 아이돌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다. 정보의 과잉, 대중매체의 과잉. 이 시대는 과잉의 시대이자 권태의 시대다. 즐길거리가 이토록 다양한 시대는 이전에는 없었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되기 시작하면서 손 안에서 게임과 책, 드라마, 영화, 채팅, 사진 등 다양한 거리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런 컨텐츠들은 사람들을 오래 붙잡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큼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매체에 질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고 강하며, 자극적인 컨텐츠를 원하기 때문에 생산자들은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컨텐츠를 생산해내기 위해 애쓴다.

 

 

 대표적인 예로 대중문화를 들 수 있다. 아이돌 문화, 게임 문화가 바로 그런 것이다. 권태를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즐거움과 폭력을 들고 있는데, 즐거움은 대중문화를 소비하면서 느껴지는 것이다. 단순한 시각적 효과에 지나지 않는 까꿍놀이만 봐도 그렇다. 우리는 왜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는가. 아이돌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또 아이돌이야?"라고 반문하지만 그러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군무에 쉽게 빠져든다. 그리고 그들이 물러난 자리에 새롭게 나타난 아이돌을 보며 우리는 그들을 빠르게 받아들인다. 지금 세상은 까꿍놀이를 하고 있다. 고정되지 않은 기호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소멸한다. 아이돌은 왜 자꾸 나타나기 무섭게 사라지는 것일까? 그들의 성공 공식은 정해져 있고, 노래의 리듬 역시 정해져 있다. 사람들은 이미 그런 그들의 규칙성에 질려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아름답고, 칼 같은' 군무를 보이는 아이돌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소비한다고 권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잠깐, 일시적으로 해소가 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욕망의 대상-원인데 도달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상 24시간 접속 상태에서는 권태나 지루함을 느낄 여지가 없다. 고독조차도 불가능하다. 고독이란 무엇인가? 고독이란 타인의 부재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과는 다르다. 고독이란 자발적으로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내면적인 자아와 만나고 그 자아와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행위다. 고독은 스스로 자신의 내부로 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능동적인 활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독은 당당하고 자부심에 넘치는 자아의 능동적인 활동이다. 고독이 자발적으로 찾아들어가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라면 권태나 지루함은 수동적으로 강제되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지루하거나 따분할 때만큼 시간이 길게 늘어나 그 시간의 무게가 주는 압박에 고통스러운 순간도 없다. 그럴 때 시간은 일종의 고문기구가 된다. 우리는 시간에 고문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지도 모른다. "지루한 건 못 참아!"라면서. (92쪽)

 

 

 우리는 '언제나 응답할 수 있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언제라도, 즉시' 대답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것이다. 매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카톡이 오면 답장을 보내고, 알람이 뜨면 바로 확인하는 것도 그렇다. 우리는 고독하지 않다. 고독을 향유하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 누군가와 소통하길 원하고 대화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임에도 우리는 고독함을 느낀다. 다른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내 옆에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고독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독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고독'이 아니라 '권태'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홀로 있는 순간,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면 속의 자아와 소통하는 것이 고독이라면 권태는 주변 외부상황에 의해 강제적으로 내면으로 보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 대상 자체가 지루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자체가 '나'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이다.

 

 

 권태에 빠져들면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데도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바로 권태다. 권태로울 때 시간의 흐름과 무게는 이전과 달리 무겁게 다가온다.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10분 간격으로 핸드폰을 확인하게 되는 것도, 체감 시간은 2시간이 넘은 것 같은데 막상 확인하니 20분도 채 안됐다던가 하는 것들이 모두 이런 느낌이다. 그 시간이 '지루하고', 나에게 '의미 없다'고 생각될 때 시간의 무게는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이 권태라는 것 역시 고독과 마찬가지로 향유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점을. 권태로운 시간 자체가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하기 때문에 아깝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우리에겐 권태가 필요하다. 권태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자각할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권태: 지루함의 아나토미』에서는 권태를 향유해야 할 필요성과 해소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만약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황은주, 이종주, 김운하의 논문을 깊게 읽어볼 것을 권한다.

 

b*****l 2014.02.1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권태와 흥미로움, 그 사이에서 헤매는 우리
"권태와 흥미로움, 그 사이에서 헤매는 우리" 내용보기
<권태> - 지루함의 아나토미, 몸문화연구소 엮음.   9명의 저자가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권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관철한 책으로 ‘권태라는 주제에 걸맞게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엄청나게 흥미로웠다.   권태의 가장 주된 첫째 증상은 시간을 의식하는 데 있다. 이때 “시간”뿐 아니라 “의식”도 의식되는 것이다. 어떤 일에 흥이 오르면 거기에 심취해서 시간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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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 - 지루함의 아나토미, 몸문화연구소 엮음.

 

9명의 저자가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권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관철한 책으로 권태라는 주제에 걸맞게 지루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엄청나게 흥미로웠다.

 

권태의 가장 주된 첫째 증상은 시간을 의식하는 데 있다. 이때 시간뿐 아니라 의식도 의식되는 것이다. 어떤 일에 흥이 오르면 거기에 심취해서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른다. 무엇에 너무 빠져있으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도 의식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권태에 잠기는 순간에 이러한 시간과 일, 의식의 관계가 역전된다. 이제 시간은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그것도 오뉴월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 하품만 나게 한다. 시간이 시간으로서 의식되는 것이다. 더불어 권태의 주체는 그렇게 시간을 의식하는 자기 자신을 마치 타자라도 된 것처럼 낯설게 의식한다. 내가 시간의 무게에 짓눌리는 타자로서 현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이기를 못 견디는 타자가 된다.

 

어쩌다 주어진 여유가 행운이라면 일상화된 여유는 쇼펜하우어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현대인은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 그리고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삶은 실패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영화처럼 삶이 흥미진진하고 기쁨으로 가득하기를 기대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충족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기대치가 없었다면 그럭저럭 괜찮았을 삶도 기대의 시선이 투영하는 순간에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변질된다는 데 있다. 행복은 기대(혹은 욕망)와 반비례한다. 기대가 높을수록 불행을 더욱 예민하게 의식하는 것이다.

행복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기쁨이라면 쾌락은 순간적인 자극, 특히 관능적 자극으로 그러한 자극이 부재하는 상태가 권태다. 권태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때에도 발생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흥미로워 한다는 기대나 뭔가 흥미진진한 오락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그 빈 공간은 권태의 몫이 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나라의 불행지수가 유난히 높다는 것은 이젠 상식이다. 그러나 불행지수가 높다는 사실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불행에 대한 의식은 행복에 대한 기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와 같이 기존에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권태라는 개념과 우리나라의 한숨 나오는 자살률과 불행지수를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내게 너무나 흥미롭고 즐겁게 다가왔다.

 

낭만주의는 근대적 권태를 이해함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토대를 구성한다. ‘지루한이라는 단어는 흥미로운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단어는 거의 동시에 유포되며, 거의 동시에 사용 빈도가 증가한다. 18세기 말 낭만주의가 도래하면서 비로소 삶이 흥미로워야 한다는 요구가 자기실현에 대한 일반적 주장과 더불어서 생겨난다.

 

권태라는 것이 꼭 권태로운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 수도 있으며 결국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권태로운 것이다. ‘권태흥미로움은 같은 시기에 생성되어 쓰이던 단어이며 낭만주의시대에 권태라는 개념이 크게 도래했다는 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는 부분에서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폭력성과 권태를 엮은 부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간 본성에는 누구나 폭력성을 갖고 있으나

그것이 적정수준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억압되면 분노와 비슷한 권태로 인해 스릴감이나 쾌락을 느끼려고 폭력이나 범죄를 저지르곤 한다라는 주장에서 꽤나 개연성이 있는 얘기라고 들렸다.

 

재미중독시대, 인간의 사이보그화. 기계화를 논하며 나르시시즘적인 데카르트적 주체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도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점점 모든 쾌락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성 상품화, 늘어나는 강력 범죄들 또한 이런 것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가상현실이 현실과 거의 흡사해지는 순간부터는 타인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거라 믿는다.

 

사람은 쾌락을 추구함과 동시에 도넛처럼 가운데가 뻥 뚫리는 공허함에 시달리며

진정 어린 관계에 목마를 것이기 때문이다.

 

쾌락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자극이라면 행복은 개인 자신이 생산하는 기쁨이다. 전자의 개인이 수동적이라면 후자는 능동적이다. 수동적으로 삶이 관리당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권태의 위협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권태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우리의 고유한 것인지를 가리켜주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삶이 고유한 주체, 삶이 관리 당하지 않는, 기계화가 되지 않고 쾌락에 중독되지 않은 이들이 분명 어디에나 있고, 그들이 세상을 그렇게까지 치닫게 만들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권태에 대한 철학을 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스피노자는 경이를 정서가 아닌 일종의 상상(표상)으로 본다. “경이는 어떤 실재에 대한 상상으로, 여기서 정신은 고착된다. 왜냐하면 독특한 상상은 다른 것들과 아무런 연관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이가 정서가 아닌 이유는 이것이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역량의 변이도 낳지 않기 때문이다. 곧 경이는 우리가 새롭게 마주치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생겨나는 상상이어서 우리에게 어떤 기쁨이나 슬픔을 주지 않고 따라서 우리의 존재역량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지도 않는다. “

반면 경멸은 경이와 같은 유로서 정반대 상상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경멸은 정신이 어떤 사물의 현존에 의하며 그 사물 자체 안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그 사물 자체 안에 없는 것을 상상하게끔 움직여질 정도로 정신을 거의 동요시키지 못하는 어떤 사물의 상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경이와 경멸은 하나의 상상, 혹은 착각에 불과하다.

 

현대인들은 주위에 사람들이 없거나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어 권태를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바딜은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람과 접속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권태의 하품을 참을 수가 없다. 양적으로 풍성한 대화에 정작 알맹이가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감정이 따분함이라면 사람들에 둘러싸여 분주한 가운데 찾아오는 텅 빈 것 같은 진공상태가 권태다.

 

권태의 배후에는 보다 충일하고 보다 행복한 삶에 대한 요구가 버티고 있다. 더욱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냥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면서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권태를 경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재주술화해야 한다는 요청인 것이다.

 

여러모로 과잉자극과 놀거리가 넘쳐나는 지금 이유없는 권태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홀로 있는 시간은 권태롭지 않게,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는 독립적이고 행복한 현대인이 되려면 우선 자신의 증상인 권태로움이 어떤 것에 기인한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 권의 책을 읽었지만 주제와 관점이 각각 다를 뿐 아니라 다른 책 내용의 인용도 잘 어우러져 마치 다양한 책을 한꺼번에 읽은 느낌이었다. 뇌를 뒤적이고 주위와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마음에 쏙 드는 책이다.

 



w******l 2013.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권태라는 감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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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지루해지거나 아무것도 관심없고 동기도 의욕도 없는 상태에 이를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감정이 권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그 권태의 감정에 대해 너무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책 제목은 권태이지만 책에대해서는 읽으면서 전혀 권태롭지 않았다.   권태가 사회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이 책은 또한 설명해 주고 있다.   삶이 권태롭거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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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지루해지거나 아무것도 관심없고 동기도 의욕도 없는 상태에 이를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감정이 권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그 권태의 감정에 대해 너무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책 제목은 권태이지만 책에대해서는 읽으면서 전혀 권태롭지 않았다.

 

권태가 사회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이 책은 또한 설명해 주고 있다.

 

삶이 권태롭거나 무기력한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쯤은 읽어 봤으면 하는 책이다.

k*****3 2015.09.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