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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드러내듯 선언문이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처럼. 무언가를 상세히 설명하는 이론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으며―물론 책의 행간을 읽으면 저자들이 이해하는 관점의 페미니즘이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의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지 밝힌다.
책은 11개의 테제, 즉 주제를 선언적으로 제시하고 각각의 테제를 왜 선정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11개의 테제는 다음과 같은데 이 테제들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선언문이 바라보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테제 1. 밀려오는 새 페미니즘의 물결은 파업을 재발명한다. 테제 2.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파산한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설 때다. 테제 3. 우리에게는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99%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테제 4.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전체 사회의 위기이며, 위기의 근원은 자본주의다. 테제 5.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젠더 억압은 사회적 재생산이 이윤을 위한 생산에 종속된 데 기인한다. 우리는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를 원한다. 테제 6. 젠더 폭력은 여러 형태를 띠며, 그 모두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로 뒤엉켜 있다. 우리는 맹세코 그 전부와 맞선다. 테제 7. 자본주의는 섹슈얼리티를 단속하려 든다. 우리는 그것을 해방시킬 것이다. 테제 8. 자본주의의 태생은 인종 차별과 식민주의적 폭력이다. 99%의 페미니즘은 반인종주의적이며 반제국주의적이다. 테제 9. 99%의 페미니즘은 자본의 지구 파괴를 되돌리기 위해 싸우는 생태-사회주의다. 테제 10. 자본주의는 현실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와 함께 갈 수 없다. 우리의 답은 국제주의 페미니즘이다. 테제 11. 99%의 페미니즘은 모든 급진적 움직임이 공동의 반자본주의 혁명에 함께하기를 촉구한다. 각각의 테제는 길어야 열 쪽 남짓의 길이로 구성되어있다. 열 쪽이라고 해도 책의 작은 크기와 글자의 큰 크기를 고려할 때 보통의 책으로 하면 두세 쪽 정도 분량에 불과하다고 보인다. 그런데 이 짧은 길이에 담긴 메시지의 의미는 묵직하다. 게다가 이 메시지의 의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미리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문제점에 동의하지 않거나 잘 모른다면 선언문이 지향하는 바에 거부 반응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고 본문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다. 즉 이 선언문은 반자본주의 선언문이기도 하다.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99%, 즉 다수가 공유하고 또 다수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섬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대하면서 저자 중 한 명인 낸시 프레이저가 그의 저서 <전진하는 페미니즘>에서 다루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페미니즘의 제2물결 중 2막이 인정 투쟁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반성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분배의 정의와 젠더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돌아보는 페미니즘으로의 방향 전환이 요구된다는 내용 말이다. 각각의 테제로 들어가기 전에 나오는 프롤로그 격의 [갈림길에서]라는 글에서 페미니즘 운동의 두 가지 흐름이 대비된다. 하나는 기업 페미니즘 또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서 일터에서의 착취와 사회 전체의 억압을 관리하는 지위가 지배 계층 남성과 여성에게 고루 배정되는 세상(P.20)을 지향한다. 이는 지배 기회의 평등이 소수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계급사회의 창출에 불과할 뿐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목격되었지만 자기 계급의 이익에만 열렬히 복무하는 고위직 여성들이 늘어난다고 전체 사회의 가치가 늘어나지 않음은 명백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성차별적인 억압과 착취,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를 요구하며 ‘여성들이 고분고분 복종하며 침묵을 지키기 원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동맹에 대한 저항과 투쟁’(P.19)을 외치며 자본주의의 종식을 원하는 반자본주의 페미니즘이다. 그러면서 이 선언문을 만든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첫 번째 테제에서는 2016년부터 발생한 페미니스트 파업이 파업이란 형태에 다양한 유형의 운동을 결합하여 파업을 강화하고 노동의 범위를 재정의하였음을 드러낸다. 이런 움직임이 신자유주의의 지배를 약화시킨 사례는 페미니즘이 우리의 실생활을 풍요롭게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 선언이 전개됨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후의 테제들에서도 반자본주의 관점을 분명히 한다. 그냥 자본주의라서 반대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우리를 억압하는 실상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것임을 밝힌다. 자본주의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여러 문제들을 자본주의가 어떻게 고착화하고 악화시켰는지도 드러낸다. 예를 들자면 여섯 번째 테제인 '젠더 폭력은 여러 형태를 띄며, 그 모두는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와 뒤엉켜 있다. 우리는 맹세코 그 전부와 맞선다.'에서 전 세계 여성 3명 중 1명 이상은 살아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성폭력을 경험한다고 연구자들은 추정한다고 한다. 이런 폭력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구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책은 설명한다. 그러면서 99%를 위한 페미니즘의 운동 방향을 이해하고 그런 운동이 자본주의에 맞서 우리의 실생활을 의미 있게 변화시켰음을 수용해서 동참, 연대하기를 드높이 외친다.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인간을 도구화하고 빵만 쥐어주면 다 빼먹을 수 있는 종속물로 취급하는 행태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빵만이 아니라 장미도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스스로 알고 있으므로.
책은 좀 힘들게 읽었다. 이런 유의 내용―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페미니즘 모두―에 전혀 무지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책읽기를 시작했는데 짧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시 생각하고 돌아볼 것들이 많았다. 문장을 곱씹어가며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도 자주 동원되었다. 페미니즘이 궁금해서 집어들 책은 아니라는 평가를 하게 된다. 쉽지는 않았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한 결정적 방안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치를 깨닫게 된 점은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본다. 여성에게 부담지워진 사회적 재생산의 문제를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된 것과 여성이 담당하는 노동의 범위를 확장해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책읽기가 남긴 가치다. 앞으로의 페미니즘의 방향성을 알고 싶은 이, 페미니즘이 우리 삶에 미칠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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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그런 느낌(!)이 오지만, 이 책을 태그로 요약하면 #맑시즘 #페미니즘 의 교차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맑시즘은 페미니즘에 대해, 페미니즘은 맑시즘에 대해 서로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경우가 많다. 맑시즘은 "젠더 문제는 노동 및 계급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페미니즘은 "언제까지고 젠더 문제가 뒤로 밀릴 순 없다, 젠더 문제가 가장 급한 문제다"고 반론한다. 그래서 페미니즘과 맑시즘을 교차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나 정당은 찾아보기 힘들다. *예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녹색당'이 젠더+환경+노동 아젠다의 삼색정당이었는데, 젠더는 여성의당으로, 노동은 정의당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녹색당의 연합적인 성격이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전면으로 부정한다. '이 짧지만 강렬한 책은 불평등 불공정 부정의에 대항하는 99% 여성의 선언이다.' 책의 앞표지에 적혀 있는 문구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모든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선언문, 이것이 <99% 페미니즘 선언>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200쪽도 안 되는 짧은 분량에 글씨 크기 또한 매우 큰 까닭에 내용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각 테제들에 담긴 함의들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 이 책은 맑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널리 알려진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테제 역시 여기서 나왔다)를 의식해서 썼는지 총 11가지 테제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내용은 사회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페미니즘이다. 테제 1. 밀려오는 새 페미니즘의 물결은 파업을 재발명한다. 테제 2.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파산한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설 때다. 테제 3. 우리에게는 반자본주의 페미니즘,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테제 4.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전체 사회의 위기이며, 위기의 근원은 자본주의이다. 테제 5.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젠더 억압은 사회적 재생산이 이윤을 위한 생산에 종속된 데 기인한다. 우리는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리기를 원한다. 테제 6. 젠더 폭력은 여러 형태를 띠며, 그 모두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뒤엉켜 있다. 우리는 맹세코 그 전부와 맞선다. 테제 7. 자본주의는 섹슈얼리티를 단속하려 든다. 우리는 그것을 해방시킬 것이다. 테제 8. 자본주의의 태생은 인종 차별과 식민주의적 폭력이다.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은 반인종주의이며 반제국주의다. 테제 9.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은 자본의 지구 파괴를 되돌리기 위해 싸우는 생태-사회주의다. 테제 10. 자본주의는 현실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와 함께 갈 수 없다. 우리의 답은 국제주의 페미니즘이다. 테제 11.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은 모든 급진적 움직임이 공동의 반자본주의 혁명에 함께하기를 촉구한다. 다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페미니즘보다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더 강한 테제들로 이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전반적인 선언의 분위기는 맑스주의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국제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특히.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각 테제마다 '페미니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맑시즘이 목표라면 페미니즘은 수단이며, 이는 여성에 대한 존중과 평등 사상을 기초로 한다. 맑스주의가 노동 해방만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며 여성, 이민자, 외국인, 흑인, 동양인, 프레카라이트, 농민, 쁘띠 부르주아를 배제했다면, 99% 페미니즘은 앞서 언급한 이들을 모두 포용하며 맑시즘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의 지위는 전혀 낯설지 않다. "집에 가서 애나 볼 것이지!"라는 말도 이제 옛 말이 됐다. 하지만 이에 비해 여성을 포함한 노동자의 인권은 2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노동환경은 열악하고, 특히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나 성 관련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영역에 속해 있다. 비록 이 책의 주장처럼 99%의 페미니즘이 무조건 노동자를 해방하고 행복한 사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진 않지만,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면 이전보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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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메갈리아를 선두로 페미니즘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넷상을 거점으로 여러 담론들은 크고 작은 논쟁을 낳으며 페미니즘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이제 여성들은 평범한 일상에도 불편을 느낀다. 약자의 불편함이 모든 혁명의 단초임을 곱씹어 보면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한 변화다. 불편한 여성들은 새로운 시작에 관해 입을 모으고 그리고 2020년, 넷상의 어떤 페미니즘 흐름은 우리 여성이 더 돈을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 사회의 정점에 오르길 부추긴다. ‘돈’과 ‘권력’이 페미니즘의 핵심이라 외친다. 여기서 이 <99% 페미니즘 선언>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불편함을 던진다. 기존의 사고방식을 뒤엎는다. … 그 옹호자들은 소수의 특권 계층 여성이 마침내 높은 자리에 앉고, 같은 계층 남성과 똑같은 보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데 매진한다. 당연히 제1의 수혜자는 이미 사회, 문화, 경제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차지한 이들이다. 나머지 모두는 지하에 갇힌 채 버려진다. (45p) 우리는 유리 천장을 부수고, 그래서 대다수가 바닥에 쏟아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게끔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다. 전망 좋은 사무실을 차지한 여성 CEO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CEO와 전망 좋은 사무실이란 것을 없애 버리길 원한다. (48p) 영국의 문화 비평가 마크 피셔의 말을 빌리자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이제 자본주의는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유를 장악한 진리에 가깝다. 한국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해방의 열쇠를 ‘돈’과 ‘권력’이라 상상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전개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주의 사고는 필연적으로 가부장제에 복무한다는 점에서 반 페미니즘적 모순을 내포한다. 가부장제는 자본주의적이고 자본주의는 가부장적이다. 자본주의는 가장 ‘효율적’인 결정이라며 남성을 사회 참여에, 여성을 집 안으로만 내몰았다. 모든 행위에 그에 합당한 경제적 보상을 제시하자면서 정작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는 침묵했다. 여성이 더 많은 자본주의 유물을 손에 넣어 정상에 오르는 게 페미니즘이라면, 유물 획득에 실패해 바닥을 기게 된 여성에겐 아무런 구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허점들에 페미니즘 선언으로 맞서며 비판한다. 자본주의의 태생은 인종 차별과 식민주의적인 폭력이다. 99퍼센트의 페미니즘은 반인종주의이며 반제국주의다. (122p) 여성을 소외시키기란 너무나도 쉽다. 우리가 자본주의 이념에만 집착해 여성에게 능력주의와 정상성에 규합하는 인간이 되자고 외치면 외치면 그만큼 여러 소수자 여성들은 배제된다. 이러한 외침은 많은 사회문제 속 약자가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상상하는 우리의 편협한 고정관념을 증명한다. 페미니즘에 인종 문제, 환경 문제와 자본 문제를 엮지 말라는 주장은 자연히 우리가 페미니즘의 주체를 백인 중산층 비장애인 비퀴어 여성, 즉 1퍼센트의 여성을 시점으로 두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파이 싸움이 되어선 안된다. 자본주의의 열화판이기도 한 이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가장 소수성이 제거된 일부 여성들이며, 그 윗자리엔 기득권 남성들이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페미니즘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여성 간 차이를 인정하고 시작하는 연대의 페미니즘이다. 여성은 절대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급진적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요즘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급진적’이 무엇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 내릴 수 있지만 그 사전적 어원을 곱씹어 보면, 이 책은 지금 한국에서 진정 급진적으로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을 관련한 담론의 다양성이 거의 메말라있던 한국에서 이런 사유를 던지는 책이 번역되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99% 페미니즘 선언>은 우리에게 기득권의 장막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것은 일상적인 사고에 매몰된 우리에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 다른 미래를 창조하는 희망은 그러한 사유에서 피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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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페미니즘을 이해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한듯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