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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접어든 작가의 에세이집으로, '이제는 엄마나 딸이 아닌 오롯한 나로'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저자는 에세이집을 출간하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오랫동안 망설였다고 고백한다. '수필은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담는, 자신과 타인을 객관화시켜 반듯한 사고와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장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지니고 있는 저자의 이 책은 에세이집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진중한 울림을 주는 글들로 엮여져 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딸로서 살아왔던 시간들과 딸의 어머니의 위치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갈무리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딸이기 때문에 겪고 느꼈던 세월들이 그대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딸과의 관계에서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문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질문은 “여자를 위한 인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고민에 대한 답변이 이 책의 부제에 담겨, 저자 자신이 '오롯한 나로' 살아왔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직까지 저자가 쓴 소설 작품은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작품들도 매우 탄탄한 구성이 뒷받침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장은 '여자로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란 제목으로 자신을 기꺼이 인정하지 않았던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여전히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딸과의 관계들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은 저마다 옹이를 안고 산다'라고 말하고 있다. 유난히 가까운 부녀 관계도 있지만, 저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옹이'를 안고 있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현재의 딸과 자신의 모습을 통해서, 저자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이 대합입시를 치르던 날 부탁했던 '시금치국'을 준비하지 못했던 기억이 여전히 저자의 가슴속에 하나의 짐으로 남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의 글들을 통해서 저자의 성격이나 삶의 궤적들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지금이 좋아'라는 제목의 2장의 글들에서는 북한산 자락의 아파트 단지에서 거주하면서 홍차를 마시며 인수봉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현재의 삶에 대해서 자족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채식 위주의 식습관은 물론, 스스로 '절제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는 생활습관들과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들로 채워나가는 삶의 패턴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어지는 3부에서는 저자의 어린시절부터의 삶을 소개하면서, '나를 키운 영혼의 거름'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말엽에 아버지에게로 날아온 징용서류로 인해 고향인 산청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 살았던 일, 그리고 고모들의 등쌀에 힘들게 시집살이를 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 딸이기에 겪어야 했던 불편했던 사연들이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다. 어쩌면 불합리한 문화에 대해 조금은 격한 감정을 토로할 법 하지만, 저자의 글들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일관하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살아왔던 자신을 돌아보며, '기대를 접으면 홀가분해'(4장)라고 외치기도 한다. 현재의 생활에 대해서 자족적으로 느끼는 면모가 잘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마지막 장에서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삶'에 대한 의미를 규정하서, '해마다 반복하는 다짐'을 제시하기도 한다. 아마도 저자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에필로그의 제목으로 제시된 '여자로 산다는 것'에 관한 내용이라고 이해된다. 남성중심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종가의 딸로 태어나 살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저자의 삶에 그대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저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힘닿는 데까지, 주어진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 완수하는 자세'로 살아왔음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진솔함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기 마련이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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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삶을 쌓아가는 작가의 따뜻한 글들. 유명한 작가들의 에세이는 사실, 그닥 글에서 매력을 느끼지는 못 했던 것 같다. 그냥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나 호기심 해결의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최문희 작가의<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은 조금 그대가 되었다. 여자를 위한 인생, 엄마나 딸의 위치에서의 내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라는 글의 방향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기대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사실 온전한 나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을 다시 느끼는 독서가 되었다. 나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 관계에서 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버티고, 밀어내고, 지켜내는가 설령 그 관계가 가족이라고 해도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딸과의 투닥거림, 문우들과 어린 시절의 언니들, 어른들과의 이야기가 살아 있다는 그낌이 생생히 전달되면서, 작가의 이야기에 몰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딸에 행동에 상처를 받지만, 그 모습이 자신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찌하겠는가라고 속을 달래는 작가의 모습이 유독 친근하게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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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심리,경영 같은 분야만 뒤적이다 최근에 에세이,문학류에 대한 관심이 돋아났다.깊이 있고 선명한 삶의 조각들을 만나며 새로운 희열의 장이 열린다.경륜이 묻어나는 글에 반하게 된 오롯한 나로 만나기에 참 좋은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고단하고 어두운 시대를 살아오셨지만,향기나는 문체가 스르륵 마음을 빗장을 열고 다가온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부끄러워 방문을 잠그고 작업하신다는 그녀의 일상,나를 추스르고 보살피는 일은 언제나 눈치보기로 끝나버리는 시간들이 되는 걸까? 인내가 일상이 된 고단함이 진하게 묻어나는 어머니 시대의 현실을 마주한다.삼키고,꾹꾹 누르는 감종의 헌신을 오롯이 수용해 낸 며느리,딸,엄마였을 닳고 바래진 삶의 일기장 속을 들여다 보는 듯이 아픈 삶이란? 주말에 아들내외가 그들만의 일상을 온전히 누리도록 응원하는 한없이 큰 사랑을 내어주시는 어머니 그 모습에 울컷 쏟아지는 먹먹한 감정들이 뜨겁게 차오른다.나도 아이가 자라서 가정을 이루면 한달에 두어번 주말에는 꼭 아이들 돌봐줘야지.지금보다 틈이 나면 맛있는 밑반찬을 더 많이 배우고 익혀서 입에 잘 맞는 반찬 넉넉하게 해줘야지 하고 말이다.가족 끈끈한 사랑에서 늘 번외히였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다짐이다.
가정에서 사랑받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빛이 난다.아무리 큰 고난과 시련이 다가와도 이내 사그러든다.오롯이 삶을 틈틈히 느끼며 살아왔기에 사랑을 부을 준비 지금 가진 사랑을 녹이고 쏟아내고 보이며 살거다.내가 아닌 우리,그 선한 공동체가 서로에게 빛이 될 삶을 응원해본다.
작가님과 같은 70대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한켠에서 아른거린다.내가 아픈 몸을 다독일 틈도 없이 나와 일하는 것도 애써 나를 달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살아내는 것도 노모의 사랑과 정성이 묻어나는 도시락 반찬과 오십을 바라보는 아들 챙기느라 허리펼 겨를없이 사랑의 품을 내어주시는 어머니 잘 모시고픈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늘 웃는 얼굴로 함께 해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할 따름이다.항상 우리 맏이 잘 되야 하는데,조금이라도 젊을 때 살림 일구고 살기를 마르고 닳도록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어느 새 부처의 얼굴로 피어난다.벚꽃 뿌리는 고운 봄 가까운 곳으로 꽃구경이라도 모셔야하는데, 먹고 사느라 아이 맡겨두고 직장에 나온 마음이 죄송스럽기만하다.
홍차로 마음을 곁들여내는 평온으로 향하는 길과 마주한다.잡다한 생각들이 교차되고 범벅될 대 다독이듯 곁에 머무는 차 한잔, 한 모금의 감미로움은 종일 향기나는 날로 존재하는 힘이 된다.우리 어머니에게 커피가 하루를 위로하듯이 말이다.오롯하게 피어나는 나만의 날,나를 위한 날 되시길 바란다.
일에 관한 성찰들로 가득하다.여덟시간 움직여야한다는 의무근로에 관한 생각들,직업없는 백수라도 움직여야하고,할 일이 없으면 공원휴지라도 주워야 밥먹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꼬장한 어르신 잔소리인가? 어깃장을 놓고 싶을수도 있다.언제나 바로서야 하는 중심에 대해 따끔한 충고지 싶어서 새겨둔다.묵묵하게 우엉,연근 밑반찬을 만들며 노동의 신성함을 챙김하고 스스로 각성하시는 일깨움이 감사하다.
일부러 바보스럽게 살며 스스로 보호자가 되어버린 안쓰럽고 아프게 구겨진 일상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삶을 못내 보듬으며 '어머니를 거슬리게 말자'다짐하는 그녀의 지독한 외침이 느껴진다.세살 때 생모를 보내고 계모밑에서 온갖 설움을 받으면서도 얼룩진 유년과 청년기 터널을 지나 신문사 공모전에 이름을 올리고,문학상을 받고 책을 출간하고도 딸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면박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이곤 하던 모습들이 소스라치게 박힌다.치열하고 담대하고 단단하게 살아낸 모습들이 아름답기만하다. # 70세 넘은 작가님의 고전적이고 옛스러운 문체속에 간결하고 담백한 멋이 느껴진다.모든 것들이 억압되고 통제된 어려운 시절을 겪어나며,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다. 갓 피어난 들꽃향기처럼 따스하게번진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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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위한 인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여든여섯, 노작가의 이야기. 한 명의 여자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느껴왔던 인생 이야기. 한 집안의 딸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왔던, 혹은 버텨왔던 노작가의 이야기는 마치 나를 보듬는 듯 하다. 여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람과 관계, 인생에 관한 통찰은 긴 인생동안 겪어왔던 삶의 풍랑들을 들려주며, 모든 여자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여자로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식들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의 인생은 사진첩에 고이 접어둔채 그저 희생을 위해 태어난 사람인냥 한다. “너희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우린 상관없다. 우린 다 살았으니까 니네가 잘 살아야지.”라며, 자신은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간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네 엄마 세대는 특히나 더 그래왔다. 여기저기 치이고 또 치여서 이리저리 양보만 하다 한 평생을 보내버린, 한때 여자였던 그녀들의 삶. “자의든 타의든 내 나이가 되면 무관심, 무간섭이라는 세계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리나 봐요.” 웅크려왔기에, 참아왔기에, 그 삶의 농도는 그 누구의 것보다 짙다. 스쳐가는 삶의 순간, 그때 느껴지는 감정, 생각들을 진솔하고 촘촘하게 묘사하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안도감마저 들게 하는 그녀의 글은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로해준다. 이 책의 저자인 최문희님은 예순한 살의 나이에 등단하였으며, 제1회 혼불문학상까지 수상할만큼 늦은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셔서 놀라울 정도였다. 이 책은 작가님의 첫 에세이로, 노작가가 전해주는 인생 이야기로 위안을 얻는다. ?? 책 속에서... 내가 나를 보듬지 않은 세월을 살았다. 바람그늘 나무처럼 휘어지고 구부러지면서 살아내려고 안간힘 썼던 자국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 책 속에서... ‘길들이다.’ 나는 나를 길들이면서 살았다. 세상과 불화하면서도 나는 나의 감정을 숨기거나 위장하지 않는다. 나를 지탱하고 연명해주는 핵은 나 자신뿐이니까. ?? 책 속에서... 너무 오그리고 산 것 같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는 동안 미간에 가로질린 주름살 골이 깊어졌다. 하지만 누군들 그만한 굽이가 없었을까? 집집마다 방문 열어보면 숨겨둔 한숨 보따리 한두 개는 있지 않을까? ?? 책 속에서... “난 이제 말랑말랑한 말로 나 자신을 너무 구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착한 체, 겸손한 체, 순한 양의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입술을 깨무는 따위는 이제 안 하고 싶어요. 그냥 생긴 대로 살래요. 마구잡이로 살자는 건 아니고, 내 방식대로, 80년 동안 눈치코치 보면서 길들여온 그 양보와 겸손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질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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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니야. 연시가 되려면 일주일은 더 기다려.’ 대봉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나는 말 못하는 대봉을 들고 중얼거렸다. 아직 삼키지 않은 대봉의 떫은맛을 음미하면. “나도 그랬어. 젊지도 늙지도 않았던 그 중간쯤에서 너처럼 깨물렸어 거야. 내 인생인데 다른 이들이 내 삶의 터전에 짓밟고 들어와 많은 것을 요구했지. 나는 구도하는 수행자처럼 두 귀 막고 두 눈 감고 입 오므리고 방구석에 처박혀 살았어. 그게 삶이 아닌데,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고 조언하는 말들이 문을 비틀고 들이치는 거 있지.” -99p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살갗으로 느낀 아픈 기억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지층처럼 굳어 한 인생의 정서에 대책 없는 구덩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배신이 두려워 혼자 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영원불멸의 사랑을 불신하는 회의적 사고의 근원도 구덩이 탓이다. -118p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너무 가깝다고 치대는 것도 안 되고, 의지하려고 하면 도망간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시간 간격을 두고 세상을 떠난 부부를 합장할 때도 좁은 고랑을 파서 간격을 만든다. 사이와 사이를 가르는 문턱이라고 한다. 앞서가는 어떤 분의 말. 지나친 겸손이나 지나친 양보, 지나친 자기 비하는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하는 수순이라고, 말을 아끼고 부산한 동작을 삼가라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잔머리 큰머리 굴려야 손해 안 보고 적당히 이기적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212p “난 이제 말랑말랑한 말로 나 자신을 너무 구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제가 잘못했나요?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착한 체, 겸손한 체, 순한 양의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입술을 깨무는 따위는 이제 안 하고 싶어요. 그냥 생긴 대로 살래요. 마구잡이로 살자는 건 아니고, 내 방식대로, 80년 동안 눈치코치 보면서 길들여옵니다 그 양보와 겸손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질 거예요.” -240p 코로나바이러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오롯이 책 한권을 들고 개인적으로는 가볍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삶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글에 감탄하며 2020년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의 내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작가가 말한 그 이전보다 40~50년이 지난 지금 난 지금의 사회를 충분히 누리며 또한 개선점을 찾아가며 스스로 나의 종을 울리고 있는가? “나 스스로 나를 타종하고 싶어요.” “내 이름으로 불리는 인생을 살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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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 중 세 번은 한탄과 푸념이 섞인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서 도망치듯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위로의 한 문장을 발견했다. 「누구나 고통 받으면서 산다. 삶이란 절반의 고통과 절반의 배신 사이에 잠깐 빛처럼 스쳐가는 행복 때문에 질긴 끈에 매달려 있다.」 _270p 돌이킬 수도, 기대나 희망을 찾아볼 수도 없는 현실을 오늘도 살아내는 엄마의 무너진 마음을 잠시나마 외면하고 싶었다. 엄마가 감정을 풀어내는 유일한 창구인 나는 그저 묵묵히 언제라도 듣고 또 듣지만 언제부턴가 통화가 끝남과 동시에 그 속에서 빠져나가야 내 인생에 덜 미안한 일이란 것을 깨달은 이후부터.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그것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아마 누구의 방해도 협조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사색의 깊이를 더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과 나를 둘러싼 것들과의 관계를 마주하는 데는 애정 하는 여행지도, 지긋한 나이도, 극단적인 상황 가정도 필요 없다. 그저 일상을 살다 어느 한 부분에서 문득 내 삶의 조각들과 맞닥뜨려지는 순간을 잘 지켜보면 된다. 책 속에서 소중한 문장들을 건져 올리는 것처럼.
「“아무리 촘촘하게 짠 체라도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해. 버무려져 살아야지.” 이런 비유가 적당할지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 거름막이 있어야 한다고. 가볍게 토해내는 말이나 술렁거리는 감정의 누수를 받아들이는 쪽에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_225p 「관계란 거대한 하늘의 망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태어나서 소멸하는 날까지 이어지고 어우러지는 인과의 망이다.」 _294p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맺고 있고, 맺을 것이다. 나름의 유사성 있는 기준으로 걸러져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사람들과 때로는 마음을 때로는 그저 인사만 나누며 관계의 허무함에 씁쓸해하고 인연이라는 이름의 놀라움에 대해 감탄해마지않는다. 필연적 관계와 선택적 관계의 경중을 따지고 얼기설기 얽혀있는 관계 속 내 역할을 곱씹어 볼 것이다.
엄마에게서 전화 오는 시간대를 살피고, 첫마디를 내뱉는 엄마의 목소리 톤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통화내용이 하루 종일 맴돌아서 엄마의 원망의 대상을 원망하느라 다른 것에 당최 집중 못하던 날들이 길었다. 나는 그 전화 한통에 한동안 울적해지는데 엄마와의 다음 통화에서 행복의 끈을 발견할 때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배신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언제 끊어질지 모를 그 끈 덕분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서 거리두기를 선택했다. 내 역할에 분명한 선을 긋고 분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시적인 감정쓰레기통 그 이상이 아니라고. 내가 유일한 대나무 숲이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후련하다는 엄마의 바람과 지나치게 몰입하여 감정소모 하고 싶지 않은 내 바람의 접점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도피처로 독서를 선택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마음을 다치지 않는 방법은 선택할 수 없지만 지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마주하지 않고 도망가는 법만 터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오롯이 나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니 오늘도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에너지를 비축했다.
#다산책방 #내인생에미안하지않도록 #최문희 #나다움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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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복병덕에 집콕하면서 읽게된 책이다.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다산책방
요즘같이 시간이 많아진 시기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잡게된 책!
연달아 두번을 읽은 책이다.
뭔가 감동이 커서 그랬나?
그건 아니다.
나는 최문희라는 작가를 잘 모른다.
소설을 쓰시는 분이라는데, 그녀의 소설은 읽지 않아서 그런지 더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런 사전정보없이 책을 읽었다.
책의 표지에 있는
<여자를 위한 인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라는 문구가 맘에 들었다.
나도 여자이고, 아이들의 엄마이다.
나보다 앞서 살아간 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책을 두번 읽고 뇌리에 새긴 것은
자식이지만, 손님처럼 거리를 두라는 것.
아직 아이들을 품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런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 아직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그럴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것이 미래의 나와 아이들에게 좋겠다는 생각은 하는데...
실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니 실천하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그런데...
지금 나는 보모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나?
내 부모에게는 어쩌면 손님처럼 한다.
하지만 시댁식구들에게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미래의 내가 아이들에게 손님처럼 대한다면 어쩌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두서없이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책의 시작은 <여자로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다.
단 두줄인데...
딸과 엄마의 대화가 참 쓰리다.
툭 뱉어내는 듯한 딸의 말투.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쏟아져나오는 말들.
아마 저 말을 뺕어낸 딸도 돌아서서 후회했으리라.
돌아서면 매번 후회를 하면서
순간에는 그런말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이들어가는 엄마.
저 엄마를 이해하려면 딸도 엄마가 되어야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툭 나오는 그 순간을 잠시 미룰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되더라.
나도 시간을 지내고 나니 이제 알 수 있다.
수많은 후회를 하고 나서야 말이다.
솔직히 작자의 삶이 조금은 부러웠다.
그 어려운 시기.
누구하나 어렵고 힘들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작가는 조금은 여유로운 삶을 살았던것 같다.(작가님은 치열한 삶을 사셨겠지만 말이다)
내 부모보다 앞선 시기인데,
고등교육을 받고,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아온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시기 많은 여자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저 자식들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그들의 노년의 삶이 어떤지 알고 있는데...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그녀의 삶이 부럽다.
책속에서도 이야기한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온전한 자유를 찾기 힘든것이 사실이다.
과거의 여자들이나 현재의 여자들이나 말이다.
조금 이상한 결론이지만,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하려면
경제적인 여유를 가져야하는구나!
조금은 씁쓸하지만 말이다.
작가를 조금은 이해해보려고 꼽씹으면서 다시 읽어봤다.
그러면서 다시금 느끼게된 것은 내 힘을 길러야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경제적인면이나 체력적인 면으로도 말이다.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누구의 엄마, 딸이 아닌 내 삶에 당당하기 위해서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야겠다.
<결론이 너무 계몽적이다.>
잘 모르던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나니,
작가가 삐그덕거리던 가정을 잠시 외면하고 썼다는 소설이 궁금하다.
그녀는 그 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저는 위 도서를 추천하면서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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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엄마나 딸이 아닌 오롯한 나로 부제목에 더 끌린 책이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님의 이력에 놀라웠다. 예순한 살의 나이에 [서로가 침묵할 때]로 등단하여 2011년 [난설헌]으로 제1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소설보다 산문을 쓸 연륜인데 마음이 흔들렸다는 저자는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써야 하니 발가벗는 느낌, 이 나이에 무슨 망신인가 하면서 나를 꾸미고 치장하고 보태고 빼는 글은 쓸 수 없다는 생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은 저마다 옹이를 안고 산다. 소화되지 않은 멍울이다. 나 역시 누구네 집 딸이었고, 어머니가 아흔 중반 고비에 타계할 때까지 불효라는 딱지를 달고 뻔뻔스럽게 살았다. 독신을 고수하는 딸과의 대화는 어느집에나 장성한 딸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일 같지 않다고 여긴다.
저자가 10대 중반쯤 생리를 시작하고 “네 몸의 것, 그 속옷은 네 손으로 해라”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손을 물에 담그게 시작해서 맨손으로 그릇을 씻고 걸레를 빨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을 보고 “손 관리 좀 하지”라고 했다. 두꺼비를 닮은 내 친정 엄마의 손을 생각했다. 엄마가 김장을 맨손으로 담그시기에 손이 안 매우세요. 왜 장갑을 안끼냐는 물음에 버릇이 들었고 갑갑해서 그냥 한다고 하셨다. 그 시대 여인들은 맨손으로 빨래하고 밥을 짓고 청소를 했었다.
다섯 살 된 손자 아이에게 “할머니 손잡아줄래?” 말에 “할머닌 아빠 손잡아” 아이의 아비 되는 아들을 손을 맞잡아 온기를 느끼지만 아무리 귀여운 손자라도 세 시간 지나면 힘들어진다는 말이 공감이 될 듯 말 듯 다가온다. 아들이 맡기고 간 강아지 루비가 13년 살다가 유방암에 걸려 죽자 힘든 마음을 이기려고 작업에 매달린 결과가 소설[난설헌]이라고 한다.
일기장 소동으로 외갓집에 간지 사흘만에 남매가 쫒겨난 일은 웃프다. 문학상을 받았을 때 상금의 한쪽을 떼어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는 “어쩌자고 네가 긴 치마를 입고 설레발을 치는 게냐 네 동생 사업이 어려운 마당에 ...”조금 울컥하여 봉투에 넣은 돈 절반을 덜어냈다. 자신감은 유년기 부모가 건네는 한두 마디 칭찬에서 비롯되는 지렛대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는 늘 한구석 아이로 자랐다.
중학교 선생님으로 재직중일 때 반장이던 친구가 딸을 잘 봐달라고 나타났다. 반장이 모교 <숙란화보>에 기사를 실어주겠다며 후배 편집장을 대동하고 왔는데 대단한 선심이고 파격적인 대우였다. 가난해서 아버지 바지를 헐렁하게 입고 다니던 바보 머저리, 공부도 못하던 오종종한 애가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일어선 것이 반장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지긋이 반듯하게 살면 된다는 고모님의 말씀과 네 입술을 바늘로 꿰매야 할 것이야 네 속으로 힘을 키워. 아무도 널 만만하게 안 볼거라는 엄마의 말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거 같다.
유년에 겪어야 했던 공복과 칼 찬 순사의 구둣발 소리가 흘리는 전율의 잔해로 집에서도 문을 잠그는 버릇이 있어 남편이 혀를 찬다. 아침은 에스프레소 한잔에 우유 60퍼센트, 사과 반쪽에 달걀 반숙, 바싹 구운 잡곡 토스트 반쪽, 점심은 밥에 밑반찬으로 하다 성가시면 냉동만두나 감자를 삶아 먹거나 팥을 삶아 설탕을 팥죽을 먹는다. 저녁은 우유 한 잔에 고구마 반쪽으로 하고 주말에 종종 아이들과 함께 고기를 먹지만 입에 당기지는 않는다.
가볍게, 단순하게, 하나만 더 보태면, 감정의 쓰레기를 씻어낼 것. 저자가 다짐하는 말이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부모 자식 사이, ‘미움과 사랑이 버무려진’ 복잡한 관계를 가식 없이 진솔하게 포착해냈다. 오래된 기억의 일들을 진솔하고 생생하게 기록한 노작가의 글들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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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by 최문희 * * 닮고 싶은 찐어른을 발견한 순간 * * 실제 완독한 날 : 20.04.20
글에서 세월이 읽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설헌'으로 익히 이름을 알고 있던 작가의 에세이집을 만나고 글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읽다가 문득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아, 우리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으시구나. 나는 글 속의 하나하나 드러나 있는 저자의 세월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세월속에는 단순히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시간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한, 울분, 차별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자의 반절의 시간을 보낸 나의 세월에도 붙어 있을 그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우울감이 밀려왔다. 과연 읽어낼 수 있을까, 소설의 한 귀퉁이인 것 같아 헷갈리는 글들을.
p.83) 어디에선가 읽었다. 나이드는 것은 성장 과정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긍정하든 부정하든 늙음은 남루한 쇠락의 흔적이다. - '절제의 미학'편을 읽으며 어르신들의 수다가 유쾌하면서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현실대화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늙음은 서러움이 팔할이다. 자식들이 무슨 말을 해도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둥글둥글 다가오는 법이 없다. 어느 말이든지 가슴에 밝힌다. 정작 본인들께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혼자 감정이입해서 서운해하고 서글퍼한다. 참 방정맞은 중년이다, 난. '한낮에 침대는 아니올시다. 세상 사람들 모두 땀 흘리며 일하는 대낮에 사지를 뻗고 드러누워 평안을 도모하는 일은 안 된다'(p.91)는 이야기에 뜨금해진다. 입버릇처럼 '반나절체력'이라고 자칭하며 오후시간,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이상 등을 대고 누워 쉬거나 낮잠을 청하는 나는 과연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정상적인 습관으로 해로운 일을 하는 것일까. 남보다 많은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자책을 자주 하는 나를 생각하면 썩 좋은 습관은 아닌 듯 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누구도 집어주지 않았던 것에 따끔한 충고를 받고 나는 어른의 존재를 깨닫는다. 이처럼 건강한 충고를 해주는 어른이 '찐'어른이 아닐까 하고서.
p.96) 화채 그릇에 담긴 그 오묘한 향이나 맛의 유혹은 노년을 흔들지 못한다. p.97) 너무 오그리고 산 것 같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는 동안 미간에 가로질린 주름살 골이 깊어졌다. 하지만 누군들 그만한 굽이가 없었을까? 집집마다 방문 열어보면 숨겨둔 한숨 보따리 한두 개는 있지 않을까? "너무 탓하지 말고 너무 속앓이하지 말고 주어진 만큼 살면 될 것 같아." 누가 누구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내가 나를 타이르고 나를 부추기고 나를 평정하는 말이다. 그래서 평온의 나날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p.107) 내리막길. 자연이 시키는 순리다. 산에 오르면 내려와야 하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 -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노년에 대해. 노년의 맛은 씁쓸하다고나 할까. 담담히 표현하는 저자의 글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후회, 아쉬움이 남겨져 있는 듯 하다. 저자의 말대로 감정의 퇴적물이 흘러가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순화된 글로 나온다해도 한이 있으리라. 이토록 노년을 가까이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중년을 넘어선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감정과 느낌들이 달려든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면 슬픔도 있는 당연함을 알고 인정하면서도 내리막길로 들어서려는 나는 온갖 잡다한 감정들이 쏟아오른다. 이처럼 다양한 감정들을 젊을 때 느꼈었던가? 세월을 앞서 가는 저자의 뒷모습을 보며 서글픔을 지울 수는 없지만, 저자처럼 인생을 깨어 있는 건강한 노년으로 들어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p.129) 지금도 꿈속에서 좁고 깊은 골목 끄트머리에 서 있는 작은 계집아이, 호롱불을 높이 들고 자박자박 앞서 걸어가는 뒷모습이 환등처럼 어른댄다. 같은 자궁에서 배태, 세상에 내놓은 자식이라도 그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쓰임새하고 자정 나눔은 한결같지 않다는 것도 그 무렵 눈치챈 사실이다. - 3장에는 작가의 어린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어 있다. 글 속 열 살 남짓의 어린 소녀는 짠하다. 그 어린 소녀만 짠할까, 저자의 세월속에 갇힌 다양한 나이대의 소녀들을 넘어 여자는 역시 슬픔이었다.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 그 아이,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모습, 저자의 설움, 한 속에 '부모'의 자리 또한 큼이 보인다. 상처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나 상처받는 사람은 있다. 읽으며 내 두 아이를 돌아본다. 나도 저 아이들에게 똑같은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끊임없이 나의 행동, 생각을 단속해야겠다. 감정에 휩싸여 말과 행동으로 가슴에 빗금을 그어대지 않도록 말이다.
p.23)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인 밀폐 용기를 꺼내 뚜껑을 열고 접시에 담고 다시 뚜껑을 닫아 냉장고에 넣어두는 과정. 일 같지도 않은 일들이 전업주부의 하루를 몰수한다. p.38) 누구도 내 일과에 걸림돌이 되는 건 편하지 않다. 아무리 귀여운 손자라고 해도 세 시간 지나면 힘들어진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어린아이도 자기 방식이 있게 마련이다. (...) 멀수록 보고 싶지만, 자주 보면 각자의 일정이 부스러지기 십상이다. p.49) 훈계나 조언은 금물, 부모 자식 간에는 함부로 위하는 척 입을 놀리면 모자지간 틈새가 더 벌어진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아들도 손님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살아온 만큼의 지혜라는 걸 알았다. 어차피 내 자궁에서 꺼낸 자식이라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할 것을. 매달리고 구걸할수록 피차 부담감과 피로만 보태질 뿐이다. p.238~239) "(...) 나이 들면서 터득한 건, '조금 사이를 두자'에 방점을 찍자는 거예요. 자녀, 친지, 친구까지도 내 곁에서 얼마쯤 일어냈어요. 거기 있겠거니 하면서 그들의 기척을 느껴요. 먼발치에서도 그들이 뿜어내는 고른 숨결을, 은은하게 스미는 체취를 감지할 수 있어요. 듣고, 보고, 만지지 않아도 서로 속내의 문양을 기척으로 알아요." "난 이제 말랑말랑한 말로 나 자신을 너무 구부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 좋은 자리를 양보하고, 착한 체, 겸손한 체, 순한 양의 얼굴을 하고 돌아서서 입술을 깨무는 따위는 이제 안 하고 싶어요. 그냥 생긴 대로 살래요. 마구잡이로 살자는 건 아니고, 내 방식대로, 80년 동안 눈치코치 보면서 길들여온 그 양보와 겸손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질 거예요."
p.212) "전 그냥 상황에 따라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지불하고 적당히 움직일 겁니다." - 이 얼마나 현명한 삶의 자세인가.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는 '적당히'의 선을 아는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세월을 먹는다고 다 알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을 듣고 '똑똑한 바보'라고 '늘 뒤처지고 미움은 미움대로 받는'거라는 이의 말에 우리는, 저자는 힘들게 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찌 최소의 손해를 보면서 '적당히 이기적으로 삶'을 사는 것보다 스스로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바보이고 미움받을 일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세상은 이처럼 자기방어적이고 이기적인 이들에게 관대한지 이해할 수 없다. 저자가 신념이 틀린 것이 아닌데 왜 세상은 저자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던 것일까. 단순한 미움일지, 세상의 방식일지, 아마 저자는 모르겠지.
'1995년 예순한 살의 문학 지망생은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p.57) 대단하다. 61살에 작가가 되셨다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사실 글을 쓰고 싶고, 작가라는 직함을 갖고 싶은 마음 한가득인데 마음에 비해 몸은 열정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이유중 하나가 적지 않은 나이를 어느새 꿰차고 있어서기도 하다. 햇병아리처럼 발랄한 젊은 작가들의 부지런한 활보에 주눅이 든다. 할 수 없는 핑계거리만 자꾸 찾아대는 나에게 작가의 등단 나이는 흥분하게 만든다. 나도 노력을 한다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긍정적 희망. 이러한 끄적거림도 글이라 할 수 있다면 나도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해도 되나, 하며 욕심을 부려 보지만 아직은 부족한 끄적거림을 글이라 하기엔 내 자존감은 그리 강하지 못한 듯 하다. 우선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 보기로 한다. 바닥까지 떨어진 희망이 둥실둥실 떠오르게 힘찬 바람이 불지도 모르니 말이다. 책을 덮기 전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편이라 죽도록 필사하고 죽도록 읽지 않았다면 소설가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p.286) 라는 문장으로 나는 힘을 얻는다. 나역시 재능이 부족하면 죽도록 따라쓰고 죽도록 읽고 죽도록 써봐야지 않겠는가. 과욕이었다, 재능이 특출나기를 바란 건. 욕심이었다, 특출나지 않은데 그리 되기를 바라기만 한 건. 이상만 가득한 바보였다, 죽을 만큼 간절히 하지 않으면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건. 노년에 작가가 되어 지금까지 현역 작가로 매일 글을 써 내려가는 것, 참 멋진 작가라 깨닫는다. 그를 닮아 나도 그러하고 싶다. 그의 세월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 방식대로 닮고 싶어진다. 그의 신념, 그의 일상, 이렇게 나이 들고 싶어졌다. 진실로 닮고 싶은 진짜어른을 만났다. 중년을 넘어서며 이제는 안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는 어른인데, 생각과 행동은 초등학생만도 못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미처 몰랐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판치는 세상에 이렇게 건전하고 깨어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찐어른을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살포시 들이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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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인생을 많이 살지 않았지만 한번씩 내 인생에 미안해질 때가 있다. 딸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 온 세월이 만만치 않았고, 지금은 껍데기만 남아있는 듯한 공허함이 자주 든다. 작가님은 격동의 시대를 잘 넘어오셨고, 긴 인생을 나름의 소신으로 잘 채우신 것 같아 존경의 마음이 먼저 들었다.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배울 게 있고, 커피 한잔, 친구와의 전화 한통으로도 인생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온 세월 속에 후회도 많지만, 지금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그래도 나름 괜찮다는 자위도 하게된다.
나이들어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한 발자국 정도 멀리 떨어져 인생을 바라보며 현실에 만족하고 내 이름으로 불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 일을 해보려고 한다. 왜? 내 인생에 미안하지 않도록. 이 책은 이렇게 내 자신을 담담하게 돌아보게 하고, 미래를 조심스레 그려보게 하는 힘이 있다. p.287 '가볍게, 단순하게.'새해 각오는 이 두마디로 정했다. 하나만 더 보태면, 감정의 쓰레기를 씻어낼 것. 신통하게 마음에 드는 말이다. 늘 감정의 쓰레기들이 일상을 어수선하게 만든다. 많은 생각, 두서없이 끓어오르는 갈등, 상대를 기웃거리는 외로운 사람의 대책 없는 허기증. 그것들의 원흉은 감정이라는 미묘한 정서의 바탕 무늬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