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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걸으며 나만의 시간을 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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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매일 동네 뒷산에 오르고 있다. 겨울내내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숲길이 봄이 되면서 연한 초록 잎으로 갈아입고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 눈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헌데 이제는 완연한 신록이 되어 매일 같은 길을 걷는데도 처음 와보는 길마냥 새롭기만 하다.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나무들이 터널을 만드는 길을 걸으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찾는 아이처럼
"숲길을 걸으며 나만의 시간을 살아본다." 내용보기

올 초부터 매일 동네 뒷산에 오르고 있다. 겨울내내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던 숲길이 봄이 되면서 연한 초록 잎으로 갈아입고 여기저기 꽃들이 피어 눈에 즐거움을 선사했다. 헌데 이제는 완연한 신록이 되어 매일 같은 길을 걷는데도 처음 와보는 길마냥 새롭기만 하다.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나무들이 터널을 만드는 길을 걸으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찾는 아이처럼 이곳저곳 눈을 돌리기 바쁘다. 어제 보지 못한 이름 모를 야생화라도 발견하면 한참동안을 그 주위에서 머물며 또 다른 꽃은 없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집 가까이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왜 진즉부터 숲을 걸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하지만 지금이라도 아침시간을 숲을 걸으며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숲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숲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앞섰지만 사람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는 생각에 미적거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칭 숲 산책 중독자라는 저자가 숲과 숲길 걷기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사유하고 성찰한 책이라는 문구가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요즘 얼마 되지도 않는 텃밭을 가꾸면서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만 하여 책을 잡을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마침 비가 내리는 바람에 산에 오르는 대신 책과 함께 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숲은 이야기이다’에서는 숲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2부 숲 산책의 즐거움’에서는 말 그대로 숲길 걷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그리고 ‘3부 나를 만나는 행복’에서는 숲 산책의 즐거움을 넘어 인간의 조건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다.

 

숲길을 걷다보면 많은 동식물들을 만난다. 겨울철 산은 벌거벗은 나무와 누런 낙엽,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고사목이 단조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허나 봄이 되면서 산은 매일매일 화장을 하듯 달라지고 거기에 더하여 꽃과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달래가 지더니 철쭉이 그 자태를 뽐내고 이제는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을 한다. 신록이 우거지면서 빛마저도 차단하여 어둑한 느낌을 주는 숲길을 걷다보면 까치 울음소리만 들리던 산의 곳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간혹 멧돼지 울음소리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다. 저자는 숲은 이야기의 현장이라고 말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숲의 식물들은 유해한 동물과 박테리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내뿜고, 생존을 위해 광합성을 하며, 혹한을 견디기 위해 세포액의 온도를 낮추거나 농도를 높이기도 한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들이 새싹을 피워내고 누런 낙엽으로 덮였던 길에 이름 모를 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겨울을 이겨내는 끈질김과 인고에 새삼 생명의 신비를 느끼기도 한다. 저자의 말처럼 숲은 지구라는 생태계의 모든 생물의 교향(交響)이 생태질서로 굳건히 자리 잡은 곳이기에, 숲길을 걷는 동안만이래도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비록 산을 내려오면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숲길을 걷는 동안은 나도 숲의 일원이 된 느낌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산의 숲길을 거니는 일을 옛사람들은 유산(遊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등산이라는 말에 밀려 사라져가는 단어이지만, 유산의 시간은 우리를 여유와 평정과 지혜로 인도한다며 저자는 매번 유산을 하러 산에 간다고 말한다. 내가 아침마다 산에 오르는 것은 건강을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맘껏 게으름을 부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산에 오른다거나 숲길을 걷는 효과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잊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를 감싸고 있는 물질세계에서 비롯된 걱정과 근심, 기쁨과 소망은 물론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잊고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또 다른 시간을 맛본다. 처음 산에 오를 때는 목적지를 정해두었지만 지금은 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앉아 나무와 하늘을 쳐다보고 새소리를 듣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온전히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며 마음속에 쌓여있던 온갖 감정들을 털어내기도 한다. 나 또한 저자마냥 유산을 하러 산에 오르고 숲길을 걷는 셈이다.

 

저자는 여행을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여행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경험이기 위해서는 소비로부터의 휴식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그렇게 볼 때 숲은 바로 이런 간소한 삶을 맛보게 해주는 최적의 여행지 중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농경사회의 정착생활이 무너지면서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고향을 잃고 떠도는 유목민적 삶을 사는 실향민이라고 그는 말한다. 모두들 욕망을 쫓아 풍요를 추구하지만 마음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이른바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숲이야말로 영혼의 고향이며 마음의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되어준다고 말한다. 풍요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빈곤이 아니라 단순한 삶이라며, 그것은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경험하고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숲 산책의 본질은 자신을 사회로부터, 산책자 자신이 처한 일체의 상황과 압박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는 것’(146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가 강조하는 숲길 걷기는 바로 단순한 삶에 대한 아름다움이다.

 

내가 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올 2월 중순이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막 시작되고, 별로 할 일도 없는지라 운동 삼아 뒷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석 달이 넘어섰다. 처음엔 정해진 시간 없이 점심을 전후하여 산에 올랐지만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에부터 갔다 온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걷는다는 것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인적이 없어서 더 편안하다. 나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저자의 말처럼 ‘느릿느릿 다른 시간의 차원을 살아가는 숲의 친구들이 방문객인 우리에게 자신들의 시간을 살아보라고, 조용히 권하고 있는 것만 같’(157쪽)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숲 산책의 중독자는 아니래도 아마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인 숲길을 걷는 것은 오랫동안 계속 될 것 같다.

k*****1 2020.05.18. 신고 공감 15 댓글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