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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소시민들의 아픔을 그려내는 김혜진 작가의 글이다. ‘딸에 대하여’를 충격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성소수자를 딸로 둔 엄마와 딸의 관계를 그려내고 있는 글이었다.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딸과 엄마의 애증이 얽혀 있는 글, 작가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자전적인 성격이 짙은 글이다. 아픔이 진하게 묻어나는 삶들이 표현되어 있다. 주로 어릴 적 한 지역에서 삶이 모티브가 되어, 빈부의 차이, 재개발 지역민들의 애환 등이 표현되어 있다.
지난 우리들의 삶이 현대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아픔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 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더욱 부유해 지는 상황도 있었고, 가진 자들이 횡포를 부리는 일들도 잦았다. 그런 가운데 상처 입은 사람들의 회복할 길 없는 아픔은 하소연할 곳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이고 자신이 그런 상황에 머문 적이 있다면 그 일들은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도 그런 상황이 담겨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용
제목의 자서전은 자신의 삶을 얘기할 것이고 불은 분노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남일동이라는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옆 동네와 비교되는 많은 상황을 만났다. ‘남민’이란 신조어는 남일동 난민이란 의미로 놀림의 말이 되었다. ‘남일도’란 말은 남일동이 세상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섬과 같은 곳이라는 의미다. 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성장 과정에서 가난한 동네에 사는 것도 아픔인데, 그것을 자꾸 일깨움을 가한다는 것은 큰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남일동 사람들의 삶을 그리면서 재개발로 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그곳의 안타까움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지난달 남일동 제일약국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약국이 있던 1층만 보면 세월의 흔적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고개를 들면 붉은 벽돌이 떨어져 나간 흔적과 금이 가고 깨진 자리가 선명히 보이는 3층짜리 조그마한 건물이었습니다. 남일동 초입에 있는 탓에 재개발, 재건축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가정 먼저 철거 대상에 오르고 관심을 끌었지만 매번 일이 흐지부지되면서 남일동을 대표하는 구닥다리 건물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재개발과 그 일에 아울러 일어나는 여러 가지 관계 및 삶의 애환들을 표현해 보고 있다. 도심에 낡은 건물, 재개발이 되어야 하지만 오랜 추억이 얽혀 있는 집, 재개발과 아울러 일어날 여러 문제들이 글의 줄거리를 이룬다. 어려운 삶을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과 이해관계에 따라 그것이 자꾸 무산되는 일들에 대한 아픔이 그려진다. 지난 우리들의 삶이 그대로 재현된 듯해 무척 안타깝다. 글의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든다.
광주 재개발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건물 붕괴 사고는 당시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번 사건에 많은 희생자가 났다. 그들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누구의 잘못인가? 인재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책임지는 자 없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 산업화, 현대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기엔 당한 자들은 너무 아프다. 이 글 속에서도 재개발과 취소, 그러면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자들의 아픔이 도외시 되고 있는 모습은 기득권자들의 횡포인 듯하여 더욱 분노가 된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편을 갈라 다투는 동안 기대감은 사그러들고, 그 일은 반드시 실현하겠노라 장담하던 사람들도 자취를 감추고, 이웃에 대한 불신과 원망,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미움과 연민 같은,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들이 남일동에 남은 활기나 생기 같은 것들을 조금씩 갉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남일동에서 어린 나를 키워온 엄마는 늘 걱정이 가득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환경이 다른데 그들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똑 같이 놀고 있는 나를 보는 일은 엄마에게는 늘 조바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른 어떤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꾸역꾸역 살아온 공간, 이제는 새롭게 단장을 해야 할 정도로 모든 것들이 낡았는데, 재개발을 해주겠다는 얘기는 무성한데, 일이 제대로 진척이 없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개발이 무산되고 또 무산되던 시간들의 이야기다. 인간들의 이기가 칼날같이 대립하고, 조금도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집단들의 주장에 개발을 추진하던 세력들은 늘 불신의 깊이만 더해 갔다. 그것은 일의 결과를 예단할 수 없게 되어 갔고, 무산이라는 것으로 그들에게 돌아왔다. 서로 조금의 이권을 내려놓는다면 모두가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런 시간들을 하소연하면서 화자는 남일동의 애증을 들춰낸다.
시간이 지나고 왜 숨바꼭질하듯 숨어서 그 집을 볼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경매로 집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누군가가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집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누군가의 슬픔과 불행을 목격하는 대가로 싼 집을 구입할 때 각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알 리가 없었습니다. 남일동 52-1 번지
나의 삶 속에 다가온 나의 집, 우리 집은 경매를 해서 구한 집이었다. 집을 구해 놓고도 그 집에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 집에 가보기 위해 어린 마음에 그 집을 훔쳐보는 일이 잦았다. 하루는 그 집 앞에서 기웃거리니, 아이를 업은 아줌마가 나와서 친절하게 나에게 물었다. 집을 잊어버린 것이니? 집이 어디냐? 내가 데려다 줄 게. 그 집이 우리 집인데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는 게 그때는 이상했다. 뒤에 안 내용이지만 그 집에 서는 사람들이 망하여 어쩔 수 없이 집을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런 집을 샀다고 이웃들의 질타도 받는다.
우리가 집을 처음 가졌을 때 아버지는 그 집의 주인이 무책임하여 그렇게 집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내가 만난 아줌마는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몇 달 후에 우리는 그 집에 이사를 갔다. 무척이나 후락한 집이었다. 이런 집에서도 살지 못하고 그들은 어디에 갔을까? 그런 생각이 나에게 머물렀다. 어렵게 살던 남일동의 모습을 얘기해 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그 시간은 모두 그렇게 어렵게 살았었다. 설움 가득한 인생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졸업을 고작 한 달 앞둔 전학이어서 중앙동의 고등학교 진학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진학을 하는 경우가 아주 드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작 그런 이유로 내게 아이들이 그토록 냉랭하게 굴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3학년 8반 남토.
텃세가 강했던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고 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지금 타인들이 꺼리는 사람과 혼자 소통을 하고 있다. 박대리다. 사람들이 박대리를 그렇게 외면한다. 보잘 것 없는 여행사를 전전하다가 지금의 여행사에 들어온 것을 가지고 대놓고 못마땅한 듯이 텃세를 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해준 것도 없으면서.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기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짐승처럼 과도한 행동을 보인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의도적으로 박대리와 말을 섞는다.
남토란 말은 남일동 토박이란 말이다. 중학교에서 전학을 해 따돌림 당한 일은 마음에 큰 상처가 되어 있다. 그럴 일도 아닌데, 남일동이라는 허름한 곳에서 왔다고 해서 그렇게 돌림을 당해야 할 일은 아닌데 말이다. 화자의 안쓰런 마음이 잘 드러난다. 그것이 오늘의 삶 속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만일 중앙동에서 남일동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그럴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묻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 밤 나는 정말 없애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작중 화자가 남일동에서 친구인 주해가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재개발할 아파트의 입주권을 하나 얻기 위해서 어렵게 버티는 생활을 지켜본다, 그러다 결국 주해는 견디지 못하고 먼 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남일동은 이권관계로 재개발이 계획되었다가도 무너지고, 또 계획되다가도 취소되기를 반복한다. 그런 가운데 화자는 변하지 않는 남일동이 과거와 겹쳐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재개발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화자는 남일동을 찾는다.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는 남일동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이리저리 걸어 다닌다. 그러다 버스 종점 한쪽에 쓰레기 태운 흔적을 발견한다. 화자는 불씨가 남아 있는 드럼통을 발로 통통 치며 불을 살린다. 불은 더욱 기세를 올린다. 화자는 그 불길이 남일동의 찌꺼기들을 모조리 태워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주차된 마을버스 한 대를 태우고 옆에 휴게실로 쓰던 컨테이너까지 번졌다는 얘기를 아버지를 통해 듣는다. 조사를 받고 돌아온 화자에게 아버지는 대로한다. 남일동에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그곳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고. 결국 단순 실화로 처리되었고 벌금 150만원 내고 일단락되었다.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이 저지른 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한두 달이 지나고 나서는 모두 그 일을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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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현대화 되는 과정에서 많은 아픔들이 있었다. 이 글은 그 아픔의 한 단면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었기에 더욱 생생하다. 물론 그것이 소설이라는 이름을 빌어 세상에 나오기까지 많은 각색이 이루어졌겠지만 개연성을 갖추기 위해 있을 수 있는 이야기로 치환했으이라 생각된다. 주어진 이야기들을 현실과 가까이 여겨도 무방하리라 여겨진다. 글을 통해서 지난 우리들의 삶, 그 단면을 기억해 볼 수 있고 반성해 볼 수 있어서 감사하게 본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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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주택 담보 대출을 위해, 주민센터에서 초본을 떼어보니, 얼마나 이사를 다녔는지, 출력된 종이가 두 페이지 정도 되었다. 그 안에 빼곡히 적혀있는 주소들을 보니 그 질척거렸던 시절들이 떠올라 어찌나 서글퍼지는지... 하지만, 그런 기억들 덕분에 글들이 겉돌지 않게 잘 읽었다. 요즘 이슈가 되는 휴먼거지, 빌라거지...혹은 사는 동네로 신분이 구별되는 은근한 차별과 혐오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러하였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남일동 같은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의 엄마가 책 속 홍이의 엄마와 비슷하여, 허접한 동네에 살면서 그저그런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슬그머니 하면 안되는 일이 되어 (뭐, 나도 별로 친하고 싶지 않았지만) 동네친구도 없었고, 집에 친구를 데리고 와 본 적도 없다. 특히, 비평준 고등학교 정책에 따라서 동네에 나를 포함한 한 두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른 교복에 다른 방향의 고등학교를 다녔던 것은 아마 그 절정이 아니였을런지. 뭐 여하튼, 책을 읽는 동시에 나의 이야기들을 상기시켜보며 재미나게 읽었지만... 책을 읽고 나니, 뭐가 옳다 그르다고 말하기는 살짝 애매하다. 내가 만약 남일동 거주자라면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며 울분을 토하겠지만, 반대로 중앙동 거주자라면 남일동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주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가막힌 시츄에이션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영원하겠지. 하지만, 이게 나쁜 것일까? 남일동이든 중앙동이든 서로 잘 어우러져 사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그게 가능할까? 과연?
나는 그냥.... 열심히 노력했을 경우 중앙동으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는 육교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극소수가 되더라도, 그렇게 희망의 다리가 존재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도 있으리라. (뭐, 요즘 사회를 보면 그냥...불가능한 것 같기도하지만) . 쓰고 보니..먹먹하네. 김혜진 작가의 글을 자주 찾다보니, 내가 왜 이 작가의 글을 지속적으로 예의 주시하는지 알겠다. 덕분에,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가 되기도 하였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였고, 다 늙어 직장에서 퇴출 당하는 9번이 되기도 하였다. 덕분에 나도 모르게 생각의 변화, 그들에 대한 이해의 정도도 넓어졌으리라. 이 책과 더불어 소중한 경험이였다. 작가가 교만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게, 더 많이 고민하고 마구 마구 잘 써내려 갔으면 좋겠다. 책장 한 켠에 김혜진 코너를 만들 생각~. 덧붙임. 책이 예쁘게 잘 만들어졌는데...2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이 할인해서 11,700원이면 비싸다. 장편도 아니고, 중편 소설이면 8,000원 정도만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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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우리는 여러번 이사를 다녔다. 길을 사이에 두고 이사를 간다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나와 동생들은 그저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문 밖으로 나오면 친구들을 만날수 있다는 사실로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다보면 그런 추억과 상반되는 장면들이 여러가지 떠오른다. 책을 읽고 어린시절을 반추하는 나의 목구멍에서 왠지 모를 쓴맛이 느껴진다.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뒷편을 바라보게 되었다. 잊고있던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듣고 느껴서 내 안에 자리 잡은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의 기준이 무엇인지 감지했다. 어른이 되며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을 경제력에 빗대어 판단하려는 속물스러움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조장되는 편 가르기에 다수의 편에 서려는 옹졸함을 깨달았다. [불과 나의 자서전]의 주인공 최홍이 주해와 수아를 만나며 부모님이 그토록 벗어나려 했던 남일동의 본모습을 마주하는 것을, 남일동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주해의 모습을, 주해와의 교류를 통해 회사 내 왕따 문제로 괴롭힘을 당한 아픔을 극복하려는 최홍의 의지가 보이는 것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았다. 결코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에 개인의 노력이라는 불씨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감동했다. 터무니없이 작다고 생각한 개인의 노력들이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를 삭제하는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 희망을 마주하고 나니 어쩌면 모든 것에 대해 체념하며 살았던 우리의 태도가 그 경계를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대상화하여 가치 판단하고 그에 따른 경계를 만들어 철저하게 저쪽 편의 그들과 구분 지으려는 마음. 그것은 다수에 소속되어 낙오되지 않으려는 근원적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런 것이라면 주해의 노력과 같은 작은 불씨가 큰 불로 번져서 연대의 힘을 모두가 느끼게 된다면 극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모든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고 다시 남일동 골목에 쓰레기가 버려진 것을 보고 현실의 냉혹함에 좌절감이 느껴졌다. 또한 최홍이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고 본인이 경험했음에도 경계선 건너편의 불안과 욕망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 왠지 모를 패배감도 느껴졌다. 그런 최홍에게 ‘불’은 남과 다르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경계의 소멸을 간절히 바라는 의지의 표현 도구였다. 나의 인생 속 중첩된 기억들은 안정감이 세상살이의 최고 덕목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인 나 역시 집에 대한 욕망은 불안감 없이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 그것을 가시적인 효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내가 가진 집일 거란 생각, 아이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의 행복을 규정짓는 것이 내가 가진 것, 나의 안정감만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최홍이 주해와 수아를 만나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불을 통해 현실을 직시했듯이 나 역시 나의 의식이 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만 잠식하지 않도록 삶의 기준을 확고하게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게 [불과 나의 자서전]이란 책은 마치 주인공 최홍의 ‘불’과 같은 의미로 다가왔다. 알지만 외면하고 싶던 생각과 행동을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옳지 않다고 생각되었던 것들, 부끄러운 것들의 발화를 통해 더 깊이 삶의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골목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놀았던 기억만 간직하고 싶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내 인생을 가로지르는 자서전을 쓰게 될 때 내 인생은 경계와 분할이 없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쓰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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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 사는 집, 다니는 학교, 입는 옷, 가진 물건보다 내가 가진 게 더 나아’라는 생각의 만연. 그렇게 만들어지는 타인과 나, 남일동과 중앙동 사이의 분할선. ?? 알레르기가 심한 홍이는 약 효과가 잘 드는 남일동 제일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습니다. 그리고 남일동에 새로 이사 온 모녀 주해와 수아를 만납니다. 주해의 다정함과 무모하다 싶은 정도의 추진력과 실행력은 홍이가 가져본 적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해와 수아를 만나며 홍이의 알레르기는 어느 순간 사라집니다. 주해는 딸 수아와 남일동에 오래 화목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가로등, 마을버스를 가져다 놓고 마녀 시장도 개최합니다. 그런데 주해에게는 개인의 과거가 있었습니다. 과거가 드러난 이후 주해와 홍이와의 사이는 멀어지고 홍이가 변화의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남일동은 다시 자신의 부모가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안간힘을 썼던 남일동으로 되돌아갑니다. 홍이에게는 알레르기가 다시 일어납니다. ??40_ 나를 뒤흔드는 그런 감정 속에서도 내가 한 일이 정말 옳은 일이라는 생각만은 놓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 내가 한 일이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옳은 선택이라면 나는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시선들이 있을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감정에 휘말릴지 그 소용돌이의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내 선택을 믿어주고 같은 편이 되어주자.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내 선택에 후회한다면 언젠가 나는 내 후회를 다시 후회할 것만 같다. ??42_ 내가 수없이 다짐하고 어렵게 감행했던 일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 사람들의 미움과 분노를 불러오는 일들. 그런 일들이라는게 늘 뭔가를 바꾸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항복하듯 두 손을 들고 침묵하는 편에 서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 말입니다. ??44 ~ 45_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며, 그 결과에 책임을 다하는 것만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특유의 긍정성과 단순함,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과 실행력이 주해에겐 있었습니다. ??49_ 담에 올 땐 여기 환하게 만들어 놓을게요. 또 놀러와요. ?? 주해의 진심이었다. 가로등, 마을버스, 마녀 시장. 모두 하나같이 마을을 위한 것이었다. 3시간 동안 4명의 동의 서명을 받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일동에서 오래도록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만은 정말 주해의 하얀 진심이었다. ??72_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두드려왔던 부싯돌에서 마침내 조그마한 불꽃이 솟아나고, 드디어 우리도 가느다란 불꽃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는 기쁨과 놀라움이었습니다. ??122_ 왜인지 내 눈에는 금방이라도 와르르 허물어질지도 모르는 그 집을 자그마한 어머니의 그림자가 간신히 막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47_ 하기야 남일동 골짜기까지 오는 데엔 다 이유가 있겠지. ?? 마치 남일동 골짜기에 와야했던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는 듯이 얘기한다. ??152_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해네 집을 나서는 순간엔 새삼 여기가 남일동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내 부모가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안간힘을 썼던 그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161_ 그러니까 주해가 일으켜 세운 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3_ 아니, 따져보면 나도 이곳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나 역시 끝까지 주해를 믿지 못했으니까. 결정적인 순간 나 역시 주해를 외면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168_ 그러나 그 밤 나는 정말 없애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 작품 해설 - 김건형 ??177_ 우연적 분할을 가능한 한 보지 않고 본질적 차이로 전환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178_ 우발적인 재난은 저들의 속성으로, 우연한 행운은 자신의 노력으로 전환하면서 평범한 ‘시민’이 생겨난다. ??179_ 그렇게 혐오는 바람직한 시민을 만들고 그에 미달하는 자들의 법적 시민권을 박탈하는 권력이 된다. ??180_ 남일동에서 중앙동으로 전학 가는 것만으로 ‘남토(남일동 토박이)’라는 멸칭을 들었어야 했다. 그 혐오의 방향성은 분할의 운동에서 오는 반작용이다. 상승을 위한 운동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분할선 아래로 밀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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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때문에 구매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은 책이다.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 책. 사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대체 어떤 책인지 가늠이 안 가서 내용이 정말 궁금했다. 불, 나, 자서전 세 개가 어떻게 엮인단 말인가. 궁금증에 호로록 읽었는데, 제목이 다른 제목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적인 소설인데 더 매력적인 제목이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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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 같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자기가 합당하게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엄청난 이익을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이게 존재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더군다가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만들어진 구조는 인간 사이의 갭을 더 벌어지게 만든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진 쪽으로 점핑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올라갈 수 있을까. 부동산 가격은 특히나 더 가혹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영역이다. 그 건물의 가치는 정말 초라하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로 인해 그 가격이 훌쩍 뛰는 현상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생활의 터전인 주변 영역까지 집의 가치에 포함되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좋은 환경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거 아닐까. 그곳에서 살기위해서는 너무 많은 돈이 필요하고 너무 특별한 소수에게만 그 기회가 허용된다. 소설에서는 남일동에 살고 있거나 산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남일동을 혐오한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정을 나누고 하고 싶은 것들이 똑같이 있는데도 왜 소외받아야 하는 장소가 되버린 것일까. 지역의 계급화가 사람의 계급화로 이어지는 현상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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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분양이냐, 임대냐를 따지는 세상이다. 분양아파트에 사는 누군가는 공동체 내에서 성공적으로, 안온하게 성원권을 얻는다. 그렇지 못한 반대편의 임대아파트 속 누군가는 몇년마다 짐을 싸고 푸르기를 반복하며 불안과 편견 속에 하루를 살아간다. 한국 사회에서 거주 형태는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다. 이 소설은 누구에게나 가장 편안해야 할 '집'이라는 장소가 가진 역설적인 속박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성과 사회에 사는 우리는 성공의 열매를 위쪽으로 올리고, 불평등의 독소는 아래로 내린다. 하지만 '높은 지대의'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멸시와 빈곤을 모두 감당하고, '낮고 평평한 지대의' 한강뷰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크나큰 아이러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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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세번째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 이후로 9번의 일, 이번 책까지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책이 예뻐서 하나씩 읽어가고 있는데 김혜진 작가의 책이 여기서도 나와서 반가웠네요. 너와 나의 선 가르기. 이쪽과 저쪽. 이동네와 저동네. 요즘 집 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서 동네별 아파트 값 검색하는게 취미가 되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를 한번 돌아보게 되었어요. 집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집을 중심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구요..주해라는 인물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서서히 변해가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김혜진 작가의 작품은 알고는 있지만 내 일이 아니라고 지나치게 되는 일(성소수자,비정규직 노동자, 주거문제 등)을 잠깐이나마 멈춰서 돌아보게 하네요.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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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딱 "난쏘공"을 읽은 느낌이었다. "남일동'이라는 낙후된 동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나(홍이)는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다 버티지 못하고 퇴사. 알레르기에 시달리고 남일동 약국안에서 유일하게 심리적 안정과 그곳에서 받는 약으로 버틴다. 부모에게 용돈 받아가며 살고있는 '다 큰 딸'이다. 부모시점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나에 대한) 미루어 짐작하게 하고 화자의 미안함과 염치없음으로 짐작하게 할 뿐.(하지만 그들의 가치관은 읽힌다. 삶에 대한, 돈에 대한, 집에 대한, 타인에 대한) 약국에 앉아있던 어느 날 새롭게 이사 온 주해와 수아를 알게 되고, 가까워지고 친밀해지다 결국 멀어지는 과정의 이야기다. 나는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는 김대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부당해 보이기 때문이겠지. 오기로 가까이 하려다 그가 그만두자 내가 새로운 왕따가 되고 투명인간 취급 당하는 처지에 몰려 견디지 못하고 결국 퇴사한다. 어려서 아버지가 같은 동네의 집을 경매로 낙찰 받아 살게 되지만 가까웠던 이웃들은 매정한 사람들이라고(이웃의 불행을 이용했다는 오명) 거리를 두고, 부모는 더욱 악착같이 그 동네를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만 자의로는 이룰수 없는 꿈이다. 남일동은 패배한 곳, 후진 곳, 무례하고 뻔뻔하며 염치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가난한 삶은 품격과는 멀어진다) 주해는 소아과 간호조무사였지만 알수없는 병원 치료로 아기들이 죽고 의료사고에 대한 해명없이(어떤 해명이 필요한 지는 설명이 없다)숨어 살지만 피해자들에게 집요하게 괴롭힘 당고 남일동을 도망치듯 또 떠나고 만다. 그녀가 해냈던 동네의 놀라운 변화들은 (골목길 가로등 설치나 마을버스 연장, 무단 쓰레기 투기 방지등) 쉽게 잊혀지고 스캔들로 뒷말만 무성하다. 세상은 정의도 없고 선도 없고 오로지 탐욕만 있을 뿐. 인간에 대한 혐오만 짙어지는...끔찍한 세상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