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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워야 한다’는 말은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듣던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철이 들 무렵부터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말을 들었고, 결혼 후 애들을 키우면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 헌데 무엇이 남자다운 것일까? 눈물을 보이는 것과 같은 감정을 표시하면 안되고, 스스로 알아서 결정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척’을 해야 했던 것 같다. 아파도 안 아픈 척, 무서워도 용감한 척,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으면서도 의연한 척, 힘들어도 강인한 척 하는 것이 바로 남자다움이라고 배우고 생각했다. 남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내면의 감정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완전히 달라야 했다. 그래서 나는 과연 남자다웠는지, 설사 남자다웠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보면 아리송하다. 오히려 나를 속박하고 내 삶을 헝클어뜨린 것이 바로 남자다움이라는 주문이 아니었을까?
오스트레일리아의 평론가이자 작가인 필 바커가 쓴 이 책 [남자다움의 사회학]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자다움이 지닌 속성과 그 폐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남자다움에 대해 교육받고 강요당해온 남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당연시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한편에서는 그것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그런 남자다움이 유발하는 폐해를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최근의 성역할에 대한 변화를 중심으로 자신과 주변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비록 저자가 예로 들고 있는 것은 주로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이지만 남자다움의 속성과 그 폐해는 가부장적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동일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는 먼저 남자다움의 속성을 맨박스라는 개념을 통해 알려준다. 맨박스는 삶에서 남성성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년과 성인들의 집단 활동에서 사용해온 개념이라고 한다. 이 상자의 벽은 다른 남자, 여자, 부모, 친구, 파트너, 그리고 궁극적으로 남자 자신이 제어하는 남자다움이란 가식의 펜스로 쌓아 올려져 있으며, 그 안에는 남자다움에 필요한 목록이 들어있다. 남자들은 맨박스 안에서 남자다운 행동을 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있으며, 그 벽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소통, 공감, 배려, 우정, 열린 마음,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 같은 것은 바로 상자 밖에 있기 때문이다. 상자 밖에 있다는 말은 남자다움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라는 의미이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성역할에 대한 주문을 많이 받고 자란다. 그리고 자라면서 그러한 역할은 점점 강화되고 남자다움의 규범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누가 더 이상 알려주지 않더라도 맨박스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통해 서로를 감시하고 강요하면서 남성들 마음속에 뿌리내린다. 그럼으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 직장 내의 성폭력, 자살과 같은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런 문제는 문제가아니라 남자다움에서 비롯된 일상적인 일 일수밖에 없었다. 또한 남자다움은 남성들 스스로에게도 고통을 유발한다. 남자다움을 가장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좌절, 소외감, 분노와 같은 감정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또 다시 폭력이나 자살과 같은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만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종 연구 자료와 사례를 통해 이처럼 남자다움이 유발하는 사회문제는 범죄를 저지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범죄가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낸 심원하고 체계적인 사회자체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그 기저에 바로 은연중 가부장적 사회가 강요하는 남자다움이란 맨박스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자들과 그 역할에 대해 수많은 글을 써오고, 자신 또한 맨박스에 갇혀 지낸 적이 있다는 저자는 이러한 남자다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자고 한다. ‘진정한 남자다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창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남자다워라’는 명령이 어떤 피해를 초래하는지 이해하는 남자들’이라며, 남자들 스스로가 강요당하는 남자다움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남자다움으로 나아가길 주문한다. 성별 역할 구분으로 기세를 올리는 남자다움, 슈퍼맨이 되려는 남자다움에서 깨어나 맨박스 바깥에 자리하는 인간다운 특질들을 공유하는 인간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남자다움이란 그냥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이라며, 본보기가 되는 리더십을 통해 아이들을 돕고, 동료의 성차별적 언어와 행동을 제지하는 목소리를 내자고 말한다. 특히 저자는 아이에게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지를 통해 남자다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보스, 리더, 해결사, 공급자, 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항상 자신과 함께 하는 아버지를 원한다며, 그러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자다움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그러지 못한 나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나를 속박했던, 아니 우리사회의 모든 남성들이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남자다움이란 맨박스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맨박스에 갇힌 남자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남성 스스로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남자다움을 포기(?)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옥죄고 억눌렀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속박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역할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며 신뢰의 수준과 질을 높이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 자신의 생각을 일반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남자다움을 과도하게 섹스의 능력과 연결시키는 글은 차라리 압축과 생략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남자다움이란 주술에 압박을 받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