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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 책의 묘사가 이해보다 공감으로 다가온다. 주인공들의 절망과 슬픔이 가슴아프다. 소설이라기보다 시라 표현해야할 듯. 낱말 하나하나, 묘사들이 아름답고 은유적이다.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삶에 대한 욕구가 절실히 느껴지고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갈구가 안타깝기만 하다. p75 집 바깥으로 빛이 후드득 떨어지는지 그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다. 문 밑 틈에 들어오는 복도 불빛을 바라본다. 빛은 힘이고, 파도이며, 입자다. 빛은 나에게 닿을 수 있고, 실제로 닿아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볼 수 있도록. p92 우리 소년들의 목소리는 검으로 찌르듯 곧장 앞으로 향해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우리의 순진무구함은 이렇게 음악으로 표현된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 특히나 열정을 안다는 것은 우리를 전율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잠시나마 앞으로 나가기 위해, 짧고도 아름다운 생을 노래하며 신 앞에 자신의 열정을 증명하는 걸 보면. 심지어 상실의 고통에도 열정이, 그리고 사랑이 있으며, 이런 고통은 죽음에 비하면 차라리 축제이기도 해서 고통을 새겨 넣을 칼날이 필요할 지경이다. p142 이런 곳에서도 나에게 내 목숨은 소중하며, 이 어둠 속에 살아 있는 것이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비록 정신을 잃기 전에 어둠에 촛불을 빼앗길까봐 벌써부터 두렵긴 하지만. 피터의 죽음 후 주인공 아피아스 제가 아르바이트하던 집 천장의 프레스코화에 묘사된 도시, 에든버러. 그곳 마지막 생존자의 편지에 쓰여진 삶에 대한 갈망. 이 책의 제목이 에든버러인 이유일까? 한국적인 이야기가 스며들어 더욱 매혹적인 이야기. 아름다운 묘사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 슬프고도 아름다운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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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환희하고 상실에 슬퍼하고 내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찾고싶어하며 나의 존재만으로 그대로 존중받고 싶고 나를 나됨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고 나도 그들도 지켜가고 싶은 것. 에든버러의 `피`의 시간에 머물면서 줄곧 그런생각을 했다. 그가 남자를 사랑했고 그가 반은 이민자의 피를 품었고 그가 성피해자이나 진정한 가해자로 자신을 비난하는 동안 그의 존재를 쥐고 흔드는 아픔과 혼란들이 과연 성소수자들만의 것인가? !!!! 문장하나하나에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 주의바람! ^^ !!!! 아프고 혼란스럽다가 서서히 스며드는 찬란한 희망에 기쁨이 터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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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이고, 은유적이며,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한 남자의 성장 그리고 사랑! 내가 읽은 것보다 읽지 못한 것이 더 많은, 그래서 거듭 읽어볼 가치가 있는 소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마법에 걸려 커다란 당나귀 머리로 변한 바텀에게 마법의 꽃즙이 묻은 티타니아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셰익스피어가 마법의 꽃즙이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사랑이란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것, 두 눈을 멀게 하고 분별력을 앗아간다는 것. 감정의 원인과 대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정서적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 여기서 사랑이 우리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현실의 모든 저항이나 장애를 넘어서게 하는 바로 그 힘 때문이다. ‘나르시스의 전설에서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결코. 그가 사랑한 대상인 물에 비친 그림자는 그를 움직일 힘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중에 자기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의 사랑은 그 힘 때문에 전설이 된다.’던 『에든버러』 속의 구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저항할 틈도 없이 닥쳐오는 폭력 앞에 고통 받던 10대의 소년들이 서로를 사랑했던 것은 어쩌면 그 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레이디 타마모가 영생을 버리고 사랑했던 자신의 남편을 따라 스스로 불에 뛰어들게 한 바로 그 힘을.
차별과 억압, 정체성의 혼란과 폭력으로 얼룩진 10대들의 민낯
『에든버러』는 한국인계 이민자이자 퀴어인 열두 살 소년 ‘피’의 이야기다. 성가대에 들어갈 만큼 훌륭한 목소리를 가진 피는 처음으로 참석한 파인스테이트 성가대에서 피터를 만난다. 아마빛 머리카락에 체구는 작아 보이지만 성량이 풍부한 피터의 입은 피에게 있어 ‘순수한 음들로 이루어진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문’이다. 널 사랑하고 있어. 그래 맞아, 널 사랑하고 있어. 피는 피터와 함께, 영원히 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높은 곳으로 함께 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응시하는 하나의 시선을 불쑥불쑥 느낀다. 합창단의 지휘자, 큰 에릭이다. 그는 나체주의자이자 소아성애자로,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나체주의의 미덕을 늘어놓고 알몸 대화를 나누며, 성가대에서 아이들이 무리지어 몰려다니는 것을 금지시킨다. 그의 눈은 올빼미를 닮아서, 하늘을 날며 밤하늘 어딘가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나중에 큰 에릭이 구속이 된 이후에야 구체적인 숫자를 알게 되지만, 성가대 대원의 절반이나 되는 아이들이 그로부터 씻을 수 없는 성폭력 트라우마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알고 있었어. 바람이 방향을 바꾸자 바닷바람이 지나간다. 이편이 좀 더 괜찮은 기억이다. 나는 큰 에릭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둘 다 소년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큰 에릭이 나에게서 무엇을 보는지 안다. 우리는 같지 않다.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그는 안다. 나는 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안다는 사실이, 내 안에 밝혀진 빛 하나가 희미한 어둠을 뚫고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는 걸 지켜보고 있다. / 66p
잠시 후 큰 에릭이 내 자리로 다가온다. 《천국의 불꽃》을 좋아하니? 그가 나에게 묻는다. 그는 내가 책에서만 읽었을 뿐 한 번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양손을 비빈다. 그렇게 손을 비비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가 유일하다. 좋아해요. 나는 말한다. 나는 그 책을 좋아했다. 큰 에릭은 나에게 이 소설을 읽도록 권했고, 나는 도서관에서 대출을 받았다. 책을 가지고 집에 왔을 때, 그가 왜 나에게 이 책을 읽도록 권했는지 알았다. 소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이야기로, 대왕은 십대 시절에 연상의 남자 교사와 연애를 한다. 큰 에릭은 미소를 짓는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아니니? 다음엔 《페르시아 소년》을 읽어라. 황제와 거세된 남자 노예의 사랑 이야기란다. 네, 그럴게요. 나는 말한다. / 84p
이미 벼랑 끝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삶에 저항한다. 피터는 자해를 가하다 결국 제 몸에 불을 지른다. 잭은 스스로 제 몸에 방아쇠를 당긴다. 피는 피터를 큰 에릭으로부터 지키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과 잭의 애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데에 대한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마치 자신이 잭의 총알이 되고, 피터의 불길이 된 것처럼 그들의 죽음에 관한 산만한 생각들이 자신 안에 불을 질러 흉측하고 붉은 흉터를 남기고, 번개에 맞은 나무처럼 완전히 태워버리는 것 같다. 더욱이 그는 그 누구와의 관계 속에서도 완전함을 얻지 못하고 수시로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낀다. 그렇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피는 훗날 고등학교 수영 강사 코치로 부임하며 피터와 똑같이 생긴 제자 워든을 만난다. 피터의 환영으로부터 벗어나 이제 덤덤하게 삶을 받아들이기로 한 피였지만 끝내 워든을 거부하지 못한다. 하지만 워든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워든은 지난 날 성가대의 지휘자 큰 에릭의 아들, 에드였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보지만 모르겠다. 아무것도 이유가 아닌 동시에 모든 게 이유가 된다. 왜 죽고 싶은 거지?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달리 그만 둘 방법이 없잖아? 죽으면 모든 문제가 끝나니까. 타마모의 모습이 보인다. 자기 손으로 남편의 두 눈을 가리고, 공기를 들이마신 후 입김을 불어 불을 내뿜는 타마모와, 그녀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만하면 됐어. 타마모는 생각했을 것이다. 타마모의 입술 위로 뿜어져 나오는 불길, 그것은 이제 나를 끝낼 것이다. / 164p
이처럼 『에든버러』는 수치심과 폭력으로 얼룩진 10대 시절, 아직 자아가 뚜렷이 정립되지 못한 소년들에게 방치된 성폭력의 그늘이 한 개인은 물론 그들 조직 전체에 얼마나 큰 비극을 몰고 오는지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통해 과감하면서 덤덤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면서도 거친 듯 섬세하고, 무기력함과 분노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나아가려는 한 남자의 감정선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얼마간 책을 읽기 힘들다가도 기꺼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껴안게 한다. 여기에 한국계 이민자로 겪게 되는 차별과 한국의 구미호 설화가 어우러진 다층적 구성, 몽환적이면서 시적인 문체는 이 소설이 미학적인 요소까지 갖춘 꽤 괜찮은 소설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나는 데스캔트를 맡고 싶다.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목소리도, 내 음역대도 그만하면 괜찮다. 나는 더 열심히 노래를 익힌다. 하지만 그 순간 큰 에릭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합창석 맨 위에 선 금발 소년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있는 음악에 감동 받길, 그 음악이 바로 눈앞에서 머무르길 바랄 것이다. / 24p
나의 옛 목소리에 대한 기억, 그러니까 소년 시절 소프라노 목소리에 대한 기억은 간절한 소망에 대한 기억이다. 목소리에 힘을 빼고 싶은 욕망. 먹이를 잡은 가마우지가 바다를 떠나듯, 성대를 풀어내고 육체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존재가 되고, 소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달 자체가 되고 싶은 소망. / 118p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기억하는가?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아무것도 모를 만큼 정말 순진했던가? 그렇지 않다.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생각할 뿐이지. 그 시절의 순진함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앞만 보고 달리느라 그 시절을 까맣게 잊은 어른일 것이다. 순진함이 악의 능력에 대한 무지라면,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들은 순진함을 운운한다. 그들은 아이를 보고 순진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기억에도 없는 그 시절을 막연히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 296p
『에든버러』는 환상적이고, 은유적이며,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소설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내가 실제로 읽어낸 것보다 읽지 못한 부분이 혹은 읽어야 할 부분이 더 많은 소설이다. 오직 한 번의 독서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해서, 거듭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은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내가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은 다른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더욱 많이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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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소설을 접하면서 '성 소수자 문학 이라고 하는데 이를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해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순히 그 단어로 대표하기엔 이 책은 남들과는 너무나 다른, 약간 우울하면서도 섬세하고 여린 한 아이의 성장소설에 기반하고 있었다. 한국계 이민자이자 퀴어인 '피', 그는 성가대에 들어갈 만큼 빼어난 목소리를 가진 변성기 전의 어린 소년.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이성보다 동성에 더 끌린다는 것을... "이따금 위를 올려다보면 내 옆에서 진짜 피터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 널 사랑하고 있어." 합창단에서 만난 첫사랑 피터와 친구 잭의 자살, 그리고 남겨진 피...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에릭 같은 남자들은 위험할 수 있어. 그래서 부모님한데 말을 하긴 해야 할 텐데, 부모님이 그 일을 아는 걸 견딜 수가 없어. 도저히." 합창단 지휘자는 어리고 여린 그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여전히 그날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자신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지하기도 어려울 어린 나이에 아이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준 선생님이란 사람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지만,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던 피에게 합창단 친구들은 그 시기 인생의 전부였다. "피터에게 묻고 싶다. 불을 지를 때, 그가 태우려는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그리고 그것이 불에 탔느냐고, 그래서 지금 완전히 사라졌느냐고." 이 책의 저자인 알렉산더 지는 한국계 미국인이었기에, 미국인이 표현하는 여우 설화는 신비함을 주었고, 설화와 픽션을 적절히 섞어 약간은 몽환적인 느낌의 문체들도 묘한 매력을 줬다. 사실 이 책을 1/3까지 읽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장면의 바뀜과 주인공 내면의 변화가 좀 낯설었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굉장히 신비한 경험을 했다. 내가 갑자기 피를 따라다니며 그의 안쓰러운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싶고 보듬어주고 싶었다. 쓰러질 듯하면서도 버텨내는, 그 모든 것들을 감싸 안은 그의 모습은 황량했고, 한편으로는 허망한 느낌을 줬다. 독백하듯 써 내려간 알렉산더 지의 문체도 정교한 흑백사진을 보는 것처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부의 화자는 워든. 이 것이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재미이자 반전, 그리고 가혹한 인생의 장난.> 읽으면서 진도가 엄청 안 나갔지만 느릿느릿 그렇게 피의 인생을 따라가며 주말은 이 책에 빠져 차분히 보냈다. 한 아이의 기구한 인생과 그걸 현대적인 문체와 더불어 뭐라 딱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조합으로 써 내려간 클래식한 디아스포라 문학.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딱 맞는 표현이 책 설명에 있네. "이 아름답고, 무어라 부를 수 없는 이 소설을 이 이상의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무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이 세계에 몸을 던져보라 권하고 싶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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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알렉산더지 #필로소픽 그리고 두 눈 위에 밤의 검은 잠이 내리고 - 사포의 시. 168 당신과 함께 할 죽음이 나를 살게하오니, 내게 있을 여우의 붉은 빛으로 영원히 태우소서. 열두살, 파인스테이트 성가대의 첫 연습에서 피터를 만났다.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 내려온 '제'가 아닌 '피'로 불러준 사람. 절반은 한국인인 피와 절반이 인디언인 피터. 변성기가 오기 전 열두살부터 변성기가 시작된 열 다섯까지, 절반 이상의 성가대 아이들이 지휘관 큰 에릭의 그루밍성폭력에 노출됐다. 잭은 권총으로 , 피터는 스스로 타올라서, 프레디는 '카일리' (대도시의사랑법-박상영)로 죽었다. 피는 긴 시간 자살충동을 반복하고, 피터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무렵 아기 에릭에게 피터를 겹쳐 본다.
색채와 질감을 진정으로 결정하는 것은 햇빛이다. (p.189) 피의 감정에 한발자국 다가가면 산산히 부서진 파편처럼 고통이 내려 박힐 것 같았다. 빛이 닿아 내 눈에 무지개처럼 보이는 슬픔과 절망의 조각들까지도 사랑의 흔적에 온 몸을 내던진 기록처럼 느꼈다. 여우의 공간 물산도, 손끝이 닿지 않는 천정에 그려진 도시 에든버러.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 연못위 나뭇잎에 부서지던 햇빛과 성가대 아이들의 금빛 머리칼, 등대 옆 어두운 바위 위로 흔들리던 등대의 불빛, 실내 수영장을 따뜻하게 밝히던 햇빛, 폐가의 까맣게 탄 방, 온 몸이 붉게 타오른 피터의 마지막과 불 속에서 죽은 큰 에릭까지. 모든 생의 모든 순간에는 빛이 있었다. 여우설화, 동양인 이민자가족, 천도교, 무속신앙, 권위적 성폭력, 퀴어, 위안부, 전통적인 2세출산 기준의 파괴까지. 이렇게나 다양한 소재가 한 작가의 소설에 적절하게 녹아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이 수많은 고통을 기꺼이 마주하고 살아가는 영혼들이 또 있을까. 아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에든버러의 연못과 오솔길이, 부서져 반짝이는 햇살이, 폭풍우가, 숨겨진 편지와 남겨둔 사진 한장이, 뉴욕 거리의 불빛이, 브리디의 인사가, 붉은 여우의 레이디 타마모가, 엘즈워스에서 내려온 빙하 표석 위 채터마크처럼 당신의 기억에 남겠지. . 아피아스 제에게 사랑 잃은 영원은 죽음과 다를 바 없어 피 흘리는 줄도 모른 채 덮어 외면하고, 데이는 줄도 모른채 사랑하는 이의 흔적으로 뛰어들었다. 사랑하지 못했던 피터를 위한 하나의 머리칼, 아기 에디를 위한 또 하나의 머리칼, 당신 안에 있을때 세상이 가장 아름다운 브리디를 위한 또다른 붉은 머리칼, 붉은 여우 레이디 타마모가 영원한 생명 대신 영원한 사랑을 찾아 불길로 들어가 종국에 인간으로 생을 마친 것 처럼. 안녕. Hi. 혹은 Goodbye. 어느쪽이든 당신과 마주 본 순간 살게하고 살아가게 하는 레이디 타마모의 유산, 관자놀이에서 붉은 머리칼이 삐죽 솟아나온다. 1. 박상영 작가님의 최신 에세이 오굶자를 읽는 중에 박상영작가님이 추천하신 책이라고 하여 냉큼 미끼를 물어버렸습니다! 과거의 나, 굿좝. 붸리굿. 오랜만에 탁월한 선택. 2. 소설 독후감의 힘든점 1.줄거리 스포를 안하고 싶은데, 안할 수가 없숴.. 2. 이 갬동을 글로 다 적을 능력이 없숴... 3. 마지막 사진의 저 부분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꿈과 환상과 현실을 오간 기분.
이런 사랑이 너무 웃기잖아. 서로를 향해 소리지르고, 질투심에 불타 비명을 지르고 죽고 죽이는 사랑 말이야. 그것도 내내 노래를 부르면서. 점점 음을 높이는 순간 문득 깨닫게 돼. 정말이지 이보다 아름다운 건 없을거다, 다 왔어, 바로 여기야. 여기라고. 그러면 바로 그때 나를 향해 음악이 활작 열리거든.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건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음악에 속하는 다른 무언가라는 걸 알게 돼. 그건 결코 내가 아니야.- p.94 피터에게 묻고 싶다. 불을 지를 때, 그가 태우려는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그리고 그것이 불에 탔느냐고, 그래서 조금 완전히 사라졌느냐고. 나는 속으로 말한다. 정작 불에 탄건 너잖아. 피터가 증오했던 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건 내 곁에 있으니까. p.125
종처럼 소리를 내라. 큰 에릭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우리가 타격을 가해야만 소리 나는 종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는걸. 우리는 타격을 가해야 소리가 나는 무엇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악기이기도 했다. 공기를 담아 흔들어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마 세상에 내지 못할 소리가 없을 거라는 걸 우리는 알게 된다. -p.117
빛이 쏟아지지만 방 안을 은은하게 비추도록 창문은 윗 부분만 살짝 여닫는다. 천장에 장식된 프레스코 화에는 한 가운데에 산이 위치한 어두운 도시가 묘사되어 있다 과연 뛰어난 천재가 차지할 만한 공간이다. 이 도시는 어디인가요? 내가 묻는다. 에든버러. 그가 대답한다. p.134
금속은 사랑과 같아요. 만져봐야 알 수 있죠. -p.336
넌 네 옆에 앉은 이 소년에게 그의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어. 그가 죽이고 싶었던 부분은 죽지 않았다고. 네가 있는 한 죽을 수가 없다고. 그는 이제 우리 안에 숨어 있다고 넌 말하고 싶지만 대신 화재 현장을 피해 차를 몰고 있어.- p.341 #퀴어 #디아스포라 #Edinburgh #AlexanderChee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 #책 #책읽기 #책추천 #책리뷰 #독후감 #데일리 #일상 #?? #bookstagram #book #readi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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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피(아피아스)는 열두 살 때 성가대에 들어간다. 맑은 목소리를 가진 소년들을 통솔하는 사람은 큰 에릭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곳에서 피는 또래의 피터, 잭을 만나 가까워진다.
성가대 여름 캠핑 첫날, 파트별 반장들과 큰 에릭이 먼저 캠핑을 시작하면서 텐트를 치고 벌거벗은 채로 연못에서 수영을 한다. 남자들끼리라 어색하진 않았지만, 큰 에릭이 알몸으로 수영하는 그들을 카메라로 찍고 밤에 텐트에서도 다 같이 알몸으로 자는 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후 성가대 소년들 모두가 모여 캠핑을 하게 되면서 피는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건물 두 군데에 소년들을 나눠 묵게 한 큰 에릭은 밤마다 1호 숙소 아이들과 벌거벗은 채로 뭔가를 하는 것 같다. 2호 숙소의 반장이 된 피는 1호 숙소에 피터가 있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 캠핑 이후 피터는 몇 번의 자살 시도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고, 피와 비밀스러운 관계였던 잭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피터를 사랑했던 피 또한 언제부턴가 자살 시도를 하게 된다.
피터에게는 카네이션 향기가 나고, 아주 희미하게 담배연기 냄새도 난다. 누군가 바에 두고 간 코르사주처럼. 널 사랑하고 있어. 그때 나는 생각한다. 그래 맞아, 널 사랑하고 있어. p.24
어쩌면 피는 피터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기 때문에 캠핑을 갔을 때 신경이 온통 그쪽에만 쏠려 있었다. 무슨 일을 당했을지 알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는 피였기에 상처 입은 피터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저 친구 사이인 잭과 남몰래 관계를 이어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피터에게 있다는 건 굉장히 잔인한 행동이었다. 피에게는 가벼운 관계였을지 몰라도 잭에게는 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큰 에릭의 범죄는 의외로 빨리 밝혀져 바로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상처받은 소년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다. 피터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는지 자살 시도를 몇 번이나 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를 사랑하는 피에겐 또 다른 상처가 되어 성인이 된 후에도 가슴에 남아 잊혀지지 않았다. 더불어 피의 말에 충격을 받은 잭 역시 둘만의 비밀 장소에서 자살을 하게 된 게 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피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이었다.
누군가 내 인생에 들어와 그날 밤 내 피부에 들러붙은 모든 신경을 끊어내 주었더라면 내 인생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감각이 없다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p.179
나는 그들의 이름을 알고 싶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고, 그들 하나하나를 찾고 싶다. 한 명 한 명에게 그의 몸을 떼어주고 싶다. p.281
피의 성장을 보면서 다른 소설이 떠오르곤 했다. 몇 달 전에 읽었던 소설과 비슷하게 어릴 때의 경험으로 성인이 된 후에도 죽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일생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점이 피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서 소설은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어떤 소년이 학교에 수영 코치로 새로 온 피에게 반하게 되면서 소설이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소년의 정체가 가벼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거기다 소년과 관련된 어떤 인물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피는 그 소년이 오랫동안 사랑했던 피터와 닮은 존재였기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고,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에게 빠져들어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닌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이들의 관계는 부정해야만 하는 애정으로 엮인 게 아니라는 것은 어떤 인물의 비밀을 소년이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소년의 손에 당한 이의 입장에서는 잔인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행동에 대한 처벌로는 너무나 가벼운 것이었다. 진작에 그랬어야 마땅한데 너무 늦었고 당한 사람들에 비해 큰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죽음이 남달랐던 건 피터를 닮은 소년이 피터가 현혹됐었던 불로 끝낸 것이라는 점이다. 소년은 몰랐겠지만 그 사실을 아는 피에게는 그 사건이 마침내 과거를 떨쳐낼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의 특징은 한국계 미국인이 쓴 성장형 퀴어 소설이라는 점이다. 시작부터 위안부로 끌려간 할아버지의 누이들에 대한 언급과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사람으로 변신한 붉은 여우에 관한 부분이 등장했다. "레이디 타마모"라는 붉은 여우가 제 몸을 불태운 것이 후손인 피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피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 섬에 갔을 때 무당에게 굿을 받는 장면도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지울 수 없는 끔찍한 기억에 대해 말하지만 불편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었다. 절제된 문장으로 내면의 상처를 표현한 부분이 여운으로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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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도 여우는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랑을 잃어도, 자신조차 불타올라도, 그 불길에 다른 무언가가 태워진대도 사랑으로 다시 살아진다.
* 필로소픽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