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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에 대한 진리는 비록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성립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 투쟁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려고 한다.
회의주의와 상대주는 양날의 칼이다. 권력자들에게 의문을 제기하여 더 큰 포용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모든 종류의 지식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도록 사용될 수도 있다.
확실성과 의심 간의 상호작용을 받아들이는 개방적 태도는 민주주의의 발전적 성격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키게 해준다.
자신의 설명이 결정적으로 옳은 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잠정적인 것이며 어느 역사도 최종적인 것일 수 없다. 그와 같은 역사의 민주적 실천은 정직한 탐구에의 헌신과 개방적인 연구 과정이라는 것으로 새롭게 규정되고 의미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대중적 토론을 끌어들인 객관성에 의존할 것이다.
계몽주의가 개인이라는 근대적 이념을 정의한 이후, 서구의 문화적 기획에 적대적인 입장이었던 철학자와 정치적 운동은 계몽주의에 공격을 집중했다. 그들은 그 일차적 교조 가운데 하나인 문화적 이상형으로서의 자율적 개인을 공격했다. 칸트는 편견과 미신의 족쇄에서 해방된 개인적 정신을 찬양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더 위험한 결과로 여겼다. 우파에 속하는 비판자들은 이 개인적 자율성을 교회와 국가, 공동체를 전복시키는 존재로 보았고, 최근 들어 좌파에 속하는 비판자들은 이성의 영광이 억압과 탐욕의 핑계라고,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면 식민지적 탄압과 남성 우월성을 위장하는 가면이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서구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볼 때, 문화 전쟁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시간 때우기 놀이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계몽주의는 독특한 정치적인 의미를 획득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내내 그 적들은 계몽주의가 혁명을 유발했다고 비난해왔다. 현대에 와서 서구의 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인종주의와 성차별을 허가했다고 말하는 회의주의자들은 자기만족과 엘리트 의식, 또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근시안적 소견을 가졌다는 죄목을 들어 계몽주의를 비난한다. 결국 필로조프들은 거의 모두가 죽은 유럽남자들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거만하고 근시안적이라 하더라도 계몽주의의 필로조프들은 어떤 목표, 기존 제도의 개혁이라는 목표를 위해 진리를 추구해왔다. 그들의 열정에 불을 붙인 것은 절대주의, 프랑스 정부의 신교도 박해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57 자료 수집 및 수고스럽고 근면한 경험이 지식의 열쇠라고 강조한 베이컨의 주장은 사실상 신교의 직업윤리를 자연의 경험적 연구에 결부시킨 것이었다. 19세기의 영미식 과학관은 17세기식의 청교도적이고 혁명주의적인 맥락을 완전히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62 이제 과목으로서 성숙한 단계에 들어선 역사, 해석학, 지질학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다윈 진화학과 짝을 이루어 성서가 물러가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마치 영미인들은 19세기 중반까지 기다린 뒤에야 계몽주의의 마지막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둔 것 같았다.63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근대성은 군주제와 교회 제도가 돌이킬 길 없이 약화된 17세기 후반의 영국에서 처음 나타났다. 그리하여 서구에서의 근대성과 민주주의의 기원은 서로를 함축하고 있다. 85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는 20세기에 서구 역사적 해석의 세 주요학파가 성립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마르크스주의, 프랑스 아날학파, 미국 근대화이론이 그들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겠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는 그 기원을 근대성에 관한 마르크스 자신의 통렬한 진단에 두고 있다. 장기적인 사회적 과정의 영향을 강조하는 뒤르켐의 입장은 전통적인 정치적 외교적 생물학적 설명보다 광범위한 인구조사와 경제적 경향에 관심을 두는 프랑스 아날학파에서 보인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근대화이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개발된 미국의 사회적 과학적 모델은 근대성의 기원에 관한 베버의 비교 연구가 남긴 영향을 보여준다. 106 도전의 이야기로 방향을 바꾸기 전에 근대화에 봉사하는 공정한 과학과 과학적 역사라는 개념이 가진 경이적인 힘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편견 없고 초연하며 모든 것을 보는 과학적 탐구자라는 영웅적 이미지는 과학과 산업을 통해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물질적 개선만이 아니라 미신, 광신, 기타 모든 지적 정치적인 절대주의 형태의 종식도 약속했다. 근대적 전쟁과 기술이 빚어낸 참상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거의 모든 역사가는 근대성을 거의 모든 전통적 사회가 겪었던 무지와 상대적 빈곤을 벗어나는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인다. 119 역사가들은 신의 의지에 대한 해석이나 성서를 참조하느라 방해받는 일 없이 실제 그대로의 역사를 전함으로써 스스로가 근대를 향한 진보를 촉진한다고 믿었다. 그럼으로써 역사가들은 서구의 확연한 지배, 모든 공정한 탐구자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보편적 실체로서의 시간과 사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역사에 대한 서구 역사의 지배를 확정하는 데 기여했다. 노동자, 노예, 이민자들의 사회적 역사, 제3세계 주민들의 역사는 모두 지배적인 모델인 역사 발전의 서구적 모델 속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그것이 마르크스주의의 형태이건 아날학파 형태이건 아니면 근대화이론이건 상관없었다. 이런 모델들은 모든 것을 포괄하려 한다는 점에서 모두 제국주의적이었다. 120 한 페이지 밖에 안되는 지면에서 터너는 진화론을 사용하여 원주민들의 사라짐을 설명하고 그런 다음 미국이라는 통일 집단에게 개척지가 기여한 바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그들의 존재를 불러왔으며, 개척지에서 늘 일어나던 무력 충돌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공격에 저항하도록 준비시켜주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착민과 인디언들의 도덕적 지위를 뒤바꾸는 결론을 내린다. 157 1958년과 1978년 사이에 대학원 연구의 주요 영역으로서 사회사적 주제가 다루어진 비율은 네 배로 늘어나 정치사적 주제를 능가했다. 젊은 연구자들은 미국의 과거를 찾기 위해 선조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이 찾아낸 곳은 역사적 인물들이 있을 법한 장소와는 정말 무관해 보이는 곳이었다. 상점, 노예 거주구역, 거실, 난민 보호소, 금주 모임, 에스파냐인 거주 구역, 미국 초기의 흙집, 논, 천막 부흥회 등이었으니까. 그들의 배경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잘 이해될 만한 시각이지만 미국의 과거를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시각은 정치가, 장군, 외교관, 지식인, 엘리트 기관들을 주로 다루던 예전 세대의 신사학자들이 중요성을 판단하던 기준과 첨예하게 대비된다. 컴퓨터 기술과 탁월한 눈을 갖춘 1960년대의 젊은 학자들은 오랫동안 간과되어오던 출생 결혼 사망 등의 증명서와 검인 재고품 목록, 등기권리증, 노예 매매, 도시계획, 세금 평가 등의 기록을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망각 속에 묻혀 있던 이런 자료에서 그들은 미국의 과거에 있었던 삶과 죽음, 결혼과 인구 이동, 기회와 성과의 패턴을 교묘하게 구상해냈다. 길은 여는 사람과 영웅들에게 관례적으로 던져지는 집중 조명이 드리우는 그림자 뒤로 밀려나 있던 남녀들의 삶도 밝혀냈다. 사회사가들은 그 30년 전부터의 기록보관소를 뒤져 미국적 성공이라는 단일한 이야기 덩어리에 쉽게 동화될 수 없는 좌절과 실망의 이야기를 찾아냈다. 196 뉴턴의 생애에 종교라는 요소가 없었더라면 우주의 만유인력 법칙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뉴턴의 과학에 포함되어 있는 사회적 우주는 그의 실험실에 있는 것만큼 캠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칼리지 예배당에도 있었다. 종교적 확신은 그에게 우주의 중력을 개념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236 뉴턴이 연금술 관련 문헌을 읽은 덕에 우주적 중력 법칙이 철학적 근거가 심화되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중력 법칙이란 행성들 사이의 먼 거리에서 발생하는 우주 내의 진공을 통해서도 작용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의 힘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매우 분명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믿어지던 과학과 마법 사이의 구분이 뉴턴에게는 낯설었다.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뉴턴이 자연을 인식하는 경로는 과학적이기도 했고, 그가 살고 있던 정치적 문화적 세계에 의해 깊이 영향받은 방식 면에서 철학적이기도 했다. 뉴턴은 여전히 수학적 천재이고 그의 노트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방법은 정말로 엄격하게 실험적이며 비상하게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239 다윈에게는 맬서스와 다른 학자들의 사회사상이 필요했다. 그런 사상이 없었더라면 그는 자연선택의 설명적이고 이론적인 매커니즘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243 우리가 볼 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마르크스주의자와 자유주의 인문학, 공산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모든 해방의 기대를 한덩어리로 뭉뚱그려 공공연히 비난하는 환멸감 가득한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모든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근본적으로 똑같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데올로기들은 과학과 진리라는 이름을 내세워 주문을 훈육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에 의해 추진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형태의 해방도 이런 통제 변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 면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아이러니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한 세계관이며 극단적인 형태에서 보면 역사에 예전에 맡았던 역할을 거의 맡겨 주지 않는 세계관이다. 273 포스트모더니스트가 하위 주체 집단이라고 부른 것들, 노동자, 이민, 여성, 노예, 동성애자들의 역사는 하나의 미국이라는 국가의 이야기 속에 통합시키기 힘들다는 것이 밝혀졌다. 286 물질적 힘만으로는 어떤 집단에게 권력을 줄 수 없으므로 문화적 지적 지도력을 행사할 수단도 함께 개발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그 자체의 독자적인 문화를, “그 자체의 고유한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어야만 권력을 쥘 수 있다는 것이었다(그람시) 290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은 모든 지식의 지위를 상대화한다. 메타서사 또는 기본 서사는 역사의 해석과 글쓰기를 조직하는 거대한 도식이다. 앞에 나온 장들에서 우리는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메타 서사 세 가지를 설명했다. 과학을 통한 진보의 영웅적 모델, 미국이라는 나라가 펼치는 서사시, 그리고 근대라는 관념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 자체도 모두 미국과 서구적 문제의 기원 및 현재 삶을 영위하게 될 방향과 미래를 위한 치료법에 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메타 서사의 보기들이다. 304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극단적인 서사 비판 형태에서 특히 조롱당하는 것은 교육받은 일반 대중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역사의 모순과 정치적 세력과 이데올로기적 긴장을 생각하지 않기로 즉 현상 유지를 위한 프로파간다 형태로 바꾸기때문이라는 것이다. 306 우리가 보기에 현실과 그것에 대한 해설(그 표상)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해서 그 해설이 어떤 근본적 의미에서 원천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이유는 없다. 서사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두 똑같이 허구적이거나 신화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지금은 우리가 볼 때 서사는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 모두에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역사 글쓰기에서의 규정적 요소이며 여기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역사학적 전통은 전문가로서의 역사가와 현대사회의 시민 모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역사가가 낡은 사회 이론이나 메타 서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라도 반드시 새롭고 더 나은 사회 이론, 또는 새롭고 더 나은 메타 서사를 개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서구에서 진보의 메타 서사가 기독교의 메타 서사를 대체했듯이, 사람들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또 새로운 메타 서사를 개발하고 싶어 하리라고 믿을 수도 있다. 새로운 체험은 항상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설명을 필요로 한다. 사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런 메타 서사의 하나다. 그리고 많은 해설자들은 그 요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것이 모더니즘의 서사에 암묵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어떤 역사가가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처럼, 역사적 메타 서사의 종말을 선언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서사 작품이다” 메타 서사를 모조리 거부한다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309 가장 급진적으로 회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정치, 내러티브를 구제 불능의 근대적인 관념이라고, 현대 세계에서는 구식이 되어버렸다고 무시하는 것이 최신 유행의 태도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역사, 정치, 내러티브는 여전히 세계를 다루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가장 쓸모있는 도구들이다. 310
새로 열릴 공간의 점령에 대한 저항감은 미합중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서 보일 수 있지만 전통주의자라 불리게 될 현상 유지의 옹호자들 사이에서 특히 직설적으로 나타났다. 다문화주의와 대학의 민주화에 대한 전면전을 개시했다. 전국학자연합은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내어 교과목 개혁 가운데 반대할 만한 조항들을 줄줄이 게재했다. 그런 특징으로는 학생들의 필독 도서에 여성과 소수민족이 쓴 작품을 더 많이 넣는 일, 인종 문제, 여성 문제, 계급 문제를 교과목에 포함시키는 일, 여성과 소수민족 연구를 발전시키는 일, 학부생의 필수 과목으로 여성이나 소수민족 연구를 넣도록 하는 일 등이 있다. 357 옛날부터 인간들의 활동 무대에 대한 관찰자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둘로 나뉘었다. 우리는 그 두 가지가 긴장 관계에 있다고 본다. 즉 생각되고 행해지는 것을 제약하고 지시하는 구조와 사회적 거푸집을 깨고 자유롭게 행동하면서 인간의 노력의 물꼬를 트는 개인적 욕망을 섬기는 상상력은 서로 팽팽하게 양립한다. 구조가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결정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순간에 행동의 선택지를 제약하는 것은 사실이다. 설사 구조 자체는 변화의 힘에 의해 깨뜨려질지라도 말이다. 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