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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호호 웃음소리와 참 잘 어울리는 오은 시인님의 말솜씨에 익숙한 나에게 이 책은 시인님의 두번째 책이다. 시와 그다지 친하지 못해 처음 읽은 글도 시인님의 산문이었다. 책 속의 시인님은 내가 익숙히 보아오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 더 가라앉아 보였고, 조금 더 스스로에 대한 질문도 많아 보였다.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은 그런 느낌. 아마 이러한 책 속의 모습도, 밖으로 내보이는 모습도, 모두가 모여 지금의 오은 시인님이 되어왔지 싶다. 읽기 전에는 누군가를 다독여 주기위해 썼을 것 같았는데 읽다보니 일기같이 쓰인 이 글들은 시인님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써 내려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스스로를 다독이는 글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덧 읽는 독자도 이해해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누구나 스스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점을 느꼈는지, 그것을 충분히 이해받고 지나갔는지- 의외로 모른척하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일이 가장 편하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편하게 모른척한다고 해서 ‘나’의 생각과 마음이 덮여지는건 아닐테지.
오은님의 글을 읽으며 짧게라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들었다 허허허. 행동으로만 옮기면 퍼펙트<-인데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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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고프다'는 '자유롭고 숨김없이 말을 하고 싶다'는 뜻이고 '귀고프다'는 '실컷 듣고 싶다'는 뜻이다. 어른이 되니 입고픈데도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을 닫는 일이 많아졌다. 귀고픈데도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많아졌다' 이렇게 귀와 관련된 말이 있다는 것~! 그만큼 듣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지, 좋은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귀가 트이고 눈이 뜨이고 머리까지 맑아지곤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요즘 나에게... 귀치레, 귀맛을 알게 해주는 소리~ 어떤 거 있을까? 지치고 힘든 퇴근 시간... “오늘도 수고했어” 라는 상사의 격려의 말, 재잘 재잘... 언제 들어도 유쾌한 친구의 수다, 새근 새근... 자고 있는 아기의 숨소리. 또 누군가 힘차게 뛰며 내는 헉헉 거리는 숨소리.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작은 소리 하나에도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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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애를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그때 나는 말했어야 했다. 부자지간이라 쉽게 나오지 않던 말이 실은 부자지간이라 부러 애써서 해야 할 말 이었던 것이다. . 아빠에 대해 알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 또한 나를 슬프게 했다. 소중한 대상이 떠나고 난 다음 장면은 쉽사리 그려지지 않는다.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에서 어떤 것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만다.'
누가 세월이 약이라 했나, 세월의 힘에 무뎌진다는 건 애초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세월이 지나면서 슬픔은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지고 구체화 되어간다. 그리고 그 때에 놓친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후회하고 자책하며 끝내 슬픔은 바로 곁에 머문다. 한번 슬프다보면 그 마음이 자꾸 커져 버린다. 이젠,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일 그 마저도 슬픔이 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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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과 은유를 헷갈려 오은 작가가 여자라고 착각했던 나는 책읽아웃 팟캐스트 홍보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누구냐. 저 사람은. 오은이 건장한(?) 남자 작가임을 안 후에야 그의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좋다는 팟캐스트도, 책을 읽는 것보다는 못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 그리고 팟캐스트에서 다루는 책은 내가 안 읽은게 많아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럼 그를 제대로 아는 길은 책을 읽어보는 방법 뿐.
귀여운 아이가 곰인형을 품에 안고 있는 따뜻한 그림과 다독임이라는 제목이 정갈하게 적힌 책 표지는 꽤 인상적이었다. 2014년부터 2020년 올해초까지 쓴 글들을 모아 낸 책은 제목처럼 우리의 삶을, 기분을 다독여주는 역할을 한다. 아마 이 글을 쓰며 저자는 자신의 감정을 다독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며, 또 어떤 사람은 수다를 떨며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다면 오은과 같은 사람은 글을 쓰며 자신의 마음을 다독였고,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차분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하루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스친 날이었다. 그들은 모두 질문과 답에 둘러싸여 있었다. 누군가는 열정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또다른 누군가는 답을 구하는 데 열심이었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질문 역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묻는 것이 두려워질수록 삶은 생기를 잃는다. 질문이 없는 삶은, 질문이 없다는 점에서 답이 나오지 않는 삶이기도 하다.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내가 아직 이 세상에, 스스로의 내일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눈만 뜨면 생겨나던 무수한 질문 덕분에 우리는 그토록 열심히 꿈을 꿀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부서장과 좋은 사람은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좋은 사람이었던 그는 항상 질문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회의는 흥미로웠고 뭔가 새로운 방법으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밀려드는 일을 너무 많은 생각으로 허비하다보니 직원들의 정신적 육체적 소모가 너무 컸다는 것. 그걸 본인이 보전하기 위해 함께 현장을 뛰다보니 서로가 너무 지쳐갔다.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질문 역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건 알겠는데 살다보면 그런 모든 일에 질문을 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다. 적당히 타협하며 살다보니 질문을 하는 것 자체를 잊고 살기도 하고. 그래도 답이 없는 삶을 살 수는 없으니 좀 더 힘내봐야하겠다.
잘사는 것이 물질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잘 사는 것은 정신에 상당 부분 기대어 있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소를 짓는 것, 문득 떠오른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 신문으로 접한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자기 전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육안으로 보이는 별의 개수를 세어보는 것 등 잘 사는 것에는 삶의 결을 헤아리는, 하루하루의 의미를 찾으려는 능동적 태도가 수반된다. 또한 잘사는 것은 주변에 마음을 쓸 것,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행해지는 피땀 어린 움직임들을 헤아릴 것, 어떤 경우에도 비겁해지지 않을 것 등 삶의 목표나 의지와 연결되기도 한다.
잘 사는 것과 잘사는 것의 차이를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해주다니. 이상은 잘사는 것에, 현실은 잘 살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자신의 삶에 몰두한답시고 주위를 살펴보지 않고 살아온 지난날이 참 부끄러운 대목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겪고 느낀 일이 나의 일상을, 나아가 나의 인생을 구성한다. 개중에 어떤 것은 추억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한때'를 호명하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은 점점 희미해진다. 무수한 '한번'을 소환할 때 나는 좀더 나다워진다. 이때 글쓰기는 나를 지키려는 안간힘이자 마침내 나를 지켜내는 작은 기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이미 쓰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꺼내놓기 부끄러운 글을 왜 이렇게 쓰고 있는가. 잠을 줄여가며, 책 읽을 시간을 쪼개서 쓰는 이유는 뭘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처음엔 책 읽은 것 자체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데 이젠 그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시기의 기분과 상황을 떠올릴 수 있어 개인의 기록이 되었따. 어떤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이미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는구나.
오은 작가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7년의 기억,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마음의 다독임에 관한 책. 오은 산문집, <다독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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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의 진행자로서 처음 알게된 오은 시인님의 에세이<다독임>. 시인의 에세이라 그런지 참 섬세하고, 게다가 너무 따스했다. 하나하나 줄어가는 페이지가 너무 아쉬울만큼 아껴가며 읽게 된다. 오은님의 다른 책도 빨리 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다독임>. 책 한권으로 인해 위로를 받고, 책 한권으로 인해 행복한 느낌이 들게 한 책이다. 일기처럼 쓰여진 글들, 관찰자적 입장에서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세심하게 포착하는 작가님의 문장들을 보면서, 나도 하루하루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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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시인님은 책읽아웃을 통해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애정하는 김하나작가님이 궁금해서 팟캐를 찾아들었다가 오은시인님의 채널까지 너무 애정하며 듣고있다. 따뜻한 사람일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시인님은 새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묻고따지지도 않고 바로 책을 구입하였다.. 역시나 읽으면서 시인님의 결을 느낄수있었다. 현재 나에게 필요한 따뜻한 이야기들.. 다독임이란 제목과 딱 매칭되는것 같다. 계속 꺼내보고 읽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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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을 보통 언어의 마술사라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인들은 숨어있던(우리가 잘 쓰거나, 아님 놓쳐버린) 언어를 발견하고 그 언어를 정말 오래 탐구하고 그 쓰임(?)을 생각해서 아주 적절한 곳에 쓰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시인들의 산문집은 그래서 그 언어의 예민함으로 더욱 깊이 있는 글이 완성된다.
오은시인의 시를 읽어보지는 못했다. 에세이로 먼저 만났는데 그것 또한 참 좋았다. 책읽아웃에서 만나는 시인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난 것 같아서 반갑고 좋았다.
다독거림.. 참 따스한 단어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가 아닐까? 상대를 배려하고 힘든 것을 함께 이겨내야할 때, 먼저 내밀어 준 손을 따스히 잡고 함께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게 아마도 이런 단어가 아닐까?
어쩌면 문학이란게 가장 힘이 없을 무용의 것이지만,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이 주는 힘! 평범한 일상의 모든 순간을 마법같은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책이다. 작고 아름다운 것,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것들의 아름다움을 말해준다. 지금 제일로 필요한게..누리던 일상을 다시 소소하게 그렇지만 큰 행복을 주는 그런 일상을 누리고 싶은건데...ㅠㅠ 이 책을 읽으면서 위로가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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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을 다 읽고 책을 덮고, 마치 한 사람의 팝업북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책인줄 알고 펼쳤는데 챠라라랑 하고 입체적으로 올라오는 각가지 색의 여러 장면들에 눈이 반짝였다. 뚜껑을 열었더니 별사탕이 푱푱 하고 쏟아져 나오는 상자 같기도 했다. 책의 이 쪽에서 저쪽으로 저자가 걸어간다. 저자가 걸어가며 보는 장면과 보낸 시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저자 곁에서 나도 함께 듣고 빙그레 웃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어색할 때가 있지 생각했다. 어깨가 축 처진 슬픈 시인의 모습을 보며 나의 슬픔에 빗대어 보고 조심스레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저자가 걸어갔던 길에 독자인 나도 작은 흔적을 남겨보았다. 마음에 담고 새기기 위해, 곳곳에 연필로 도랑을 치듯 줄을 그었다. 꺽새로 묶기도 하고, 총총 따옴표도 쳤다. 도닥이는 손과 다독이는 마음을 내게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무연한 사람들에게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함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독임은 그런 마음을 품게하는 책이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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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으면서 체험할 수 있는 감동 중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저자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을 읽으면서도 그러한 감동을 여실히 느꼈다. 이 책은 2014년부터 최근까지 저자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이나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2014년, 당시 저자는 주중에는 직장에 다니고 주말에는 시를 쓰는 생활을 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쾌활했다. 길 가다 쌈밥집 간판을 보면 배가 부른 상태인데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먹성도 좋았다. 고향에 '내려가면' 아버지와 둘이서 대중목욕탕에 갔다. '떼부자'는 아니어도 '때부자'는 맞다며 실없는 소리로 아버지를 웃겼다. 2020년의 저자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시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만 써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연재도 하고 팟캐스트 진행도 하고 있다. 부르는 곳이 늘었고 이름 있는 큰 상도 많이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바쁘게 살지만 식욕은 줄었다. 밥 한 공기를 다 먹기 힘들어서 반만 먹고 나머지 반은 잘 먹는 후배에게 준다. 이따금 고향에 가지만 뵐 수 있는 건 어머니뿐이다. 그 사이 아버지가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2014년의 오은과 2020년의 오은은 분명 같은 사람인데 다른 삶을 산다. 예전과 다름없이 날마다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글을 쓰지만, 이따금 벌어진 일상의 틈새 사이로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와 그로 인한 아픔이 떠오른다. 죽음에 관한 책을 읽거나 아버지가 입원해 있었던 병원 이름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는데 어디에나 '있다'. 볼 수 없는데 보인다. 들을 수 없는데 들린다. 아버지뿐 아니라 허수경 시인, 황현산 선생 등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세상을 떠나서 저자를 슬프게 한 사람들 모두 그렇다. 마음에는 늘 자리하지만 육신으로는 더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은 아마 영영 가시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예전처럼 많이 웃고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어도 그때의 저자는 예전의 저자, 또 지금의 저자와 다를 것이다. 마치 내가 아무 일 없는 듯 하루를 살다가 가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면서 요즘 이맘때가 생일이었던 죽은 친구를 떠올리듯이. 이 책으로 충분하게 다독임을 받아서일까. 읽기 전에는 다독임을 받고 싶었는데, 읽은 후에는 다독임을 주고 싶어졌다. 오은 시인님, 부디 아프지 마시고 늘 안녕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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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단어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걸 이렇게 생각하셨다니요... 작가님 좋아하는 마음이 몇 배로 커졌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들로 가득하네요. 밖에서, 회사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돌아와, 엄마가 차려준 막 지어진 따끈한 저녁밥을 먹으며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내일 다시 힘내서 살아갈 무언가를 주는거 같아요. 포근합니다. 빠르게 읽기 보다는. 곱씹어서 한 단락을 읽고 또 읽으며 제 마음을 다독이고 싶어집니다. 다른 책들은 빨리 읽어버리고 싶은데. 정말이지 이건 아껴읽게 되었습니다. 힘들어하는, 힘들지 않아도 힘나게 해주고 싶은 주변인들에게 선물해주고픈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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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나 시인이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나에게 있어 '작가'란 다른 직업보다 더 특별하고 멀리 있는 것 같은 분들이라 좀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은 일도 크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섬세한 감성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보다 더 기본적으로는 (당연히)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의 글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책 내기가 쉬워서 아무나(라고 쓰고 개나소나라고 읽는다) 다 책을 내는 시대라서..... 진짜 너무도 아마추어 같은 글로 낸 책을 읽노라면 화가 날 지경이라. 그런 면에서 오은 시인의 <다독임>은 그런 나의 여러 기준에 참 잘 맞았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 것 같은 '작가'의 일상도,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구를 만나고, 카페에 가고, 지인이 아프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투표일이 되면 투표하고, 세월호 사건에 아파하고... 비슷한 모습의 삶인데 그걸 느끼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랐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시인은 말을 건져내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제목부터가.... '다독임' 다독다독은 의태어지만 다독이거나 다독임을 당할 때, 우리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뭉근하고 다정한 위로가 들릴 때도 있고 "괜찮아? 괜찮은 거지?"라는 다급한 물음이 들릴 때도 있다. 어느 것이든 괜찮은 사람이 괜찮지 않은 존재에게 건네는 말이다.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말이다. 마침내 나를 살게 만드는 다독임이다. (8~9쪽) 어감도 예쁘지만 뜻도 예쁜데, 그 뜻을 이렇게 해석하고 표현하실 줄이야. 이 책에 어떤 단어를 이야기하고 설명한 부분이 굉장히 많다. 낯선 단어도 있고 늘 사용하는 단어도 있는데 그걸 글로 녹여내신 부분에서는 정말 그 표현에 계속 감탄이... 결이 고운 체로 단어를 여러 번 쳐서 가장 마지막까지 걸러진 가장 정제되고 가장 적확한 단어를 찾는 것이, 그렇게 찾은 단어를 최대한 얇게 펴서 생각을 싸는 것이 시인의 일인가 했다. 그래서 오은 시인의 글은 아주 가볍고 부드럽고 따뜻한 다독임이었다. 그리고 좀 재미있었던 건, 이 책이 2014년부터 최근까지 쓰여진 글인데 마지막 글이 '코로나19의 여파로 거리에 사람이 없다'로 시작한다는 거였다. 책에는 보통 과거의 일이 소재가 되는데 코로나는 현재진행중인 사건이라 책을 실시간으로 받아 본 기분?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