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은 미국과 싸워 이긴 나라다. 세계 최강의 나라와 싸워 이겼다. 베트남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의 내전이었다. 그러나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전쟁 양상을 띠었고, 나중에는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한 국제전이었다. 군사력으로 보면 북베트남 정규군인 베트남인민군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렇지만 북베트남이 이겼다. 인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베트남인민군의 저항정신과 치밀한 게릴라전이 거둔 승리였다. 당시 미군은 네이팜탄 같은 대량살상무기와 고엽제 같은 화학 무기로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했다. 우리나라 군대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들이 풍족하게 살지 못한다고 무시한다. 그들의 문화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베트남의 대표 동화가 우리의 편견을 깨고 그들을 이해하는 작은 징검다리가 되면 좋겠다.
제목은 귀뚜라미 표류기다. 표류는 사람이나 배 따위가 물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표류하는 사람이나 배의 의지라기보다 태풍이나 다른 영향을 받아 흘러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표류기는 내용과 조금 거리가 있다. 표류하는 장면이 없지 않지만 귀뚜라미가 스스로 고향을 떠나 넓은 세상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이 중심이다. 귀뚜라미는 끝내 평화롭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에 바짝 다가가는데 대부분의 모험담 구조를 띠고 있다. 그러니 표류기라기보다 모험담이 더 적절하다 하겠다.
쮸이는 고집을 부렸다. 두 다리 중 뭐든 먹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다리 한두 개 없어져도 아무 상관없고, 절대로 그것 때문에 죽지는 않을 거라고 강조했다. 또 언젠가 뒷다리가 없는 귀뚜라미 형을 만난 적도 있다며 나를 설득하려 했다. (91쪽)
그들이 모든 종족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니, 전에 그들과 싸운 일이 몹시 후회되었다. 항상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을 급하게 처리하는 성격 탓에 그런 전투가 일어난 거다. 먼저 그들에게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같이 겨울을 지내자고 부드럽게 제안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한편으로 그런 착한 메뚜기들이라면 쮸이도 무사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163쪽)
인용한 첫 번째 구절은 의형제 쮸이가 배에서 열흘 정도 굶고 난 뒤 죽어갈 지경이 되자 하나라도 살자며 자기의 다리를 뜯어먹으라고 하는 장면이다. 두 번째 구절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보이메뚜기들의 실체를 알게 된 뒤 그들과 싸웠던 과거를 후회하는 장면이다. 주인공이 모험을 하면서 의형제와 진정한 평화 세력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모험이 성공하도록 이끄는 가장 큰 조력자를 만나는 순간인 셈이다. 물론 힘을 선한 경쟁에 쓰도록 따끔한 충고를 하는 사슴벌레 아저씨와 결국 평화의 전령이 되는 개미들의 우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 덕분에 쮸이를 공격한 참새, 주인공을 둥지의 관리자로 사로잡은 물총새, 개미 마을을 초토화하는 인간 등 모험을 아슬아슬하게 하는 힘도 끝내 이겨내는 것이다. |